제9조 두각을 드러내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3) 제 1 부
2. 적그리스도의 이익
2) 자신의 명예와 지위
지난 시간에는 적그리스도의 여러 특징 중 제9조에 관해 교제하였다. 간단히 돌아보자. 우리는 적그리스도의 이익이라는 주제를 몇 가지로 나누어 해부했느냐? (세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는 적그리스도 자신의 안위였습니다. 두 번째는 적그리스도 자신의 명예와 지위였습니다. 세 번째는 혜택이었습니다.) 적그리스도 부류의 이익은 자신의 안위, 지위 그리고 개인적인 혜택 세 가지와 연관이 있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첫 번째, ‘자신의 안위’는 이해하기가 쉬운 편이다. 이는 자신에게 닥친 위험한 환경이나 적그리스도 부류와 직결된 이익인 신변 안전과 관계가 있다. 이 항목은 기본적으로 교제를 마쳤다. 두 번째는 자신의 명예와 이익으로, 지난 시간에 몇 가지 특징을 교제하였으나 비교적 개괄적으로 다뤘으므로 너희가 개념적인 이해와 인식만 얻었을 거라 생각된다. 예를 들어서 세부적으로, 구체적으로 분석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적그리스도가 지닌 이 측면의 본질과 모습을 도리상이나 문자적으로만 좀 이해할 뿐, 이 측면의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표출이나 모습은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내용은 구체적으로 교제할수록 좋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너희는 누가 떠먹여 주는 것만 좋아하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너희가 이 설교를 듣고 나면 복습하느냐? 너무 자세히 교제한다면 지나치게 자잘하고 장황하다고 생각하며 이렇게 말하지 않겠느냐? “저희 지능을 너무 과소평가하시는 것 아닙니까? 저희의 자질이 그렇게 떨어지나요? 한두 가지 예만 들어 주셔도 충분합니다. 게다가 적그리스도의 본질을 해부하는 것에 관해서는 적그리스도가 지위와 권력을 좋아하는 방면에 관한 내용만 해도 꽤 많이 교제했는데, 왜 적그리스도의 이익이라는 이 항목까지 이 주제에 포함하시는 겁니까? 이건 너무 중복되고 자질구레한 것 아닐까요? 굳이 교제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사실 중복이 좀 된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다. 여러 각도에서 교제하면, 적그리스도가 지닌 이 측면의 본질을 더 확실히 알게 된다. 또한, 진리를 교제할 때는 중복을 겁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오랜 세월 교제했음에도 진입하지 못한 진리가 있다. 늘 중복을 피하고 새로운 스타일과 표현을 추구하는 것이 옳겠느냐? (옳지 않습니다.) 진리는 그 자체로 사람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사람이 삶 속에서 드러내는 다양한 면과 패괴 성품, 사람이 나타내는 모습, 갖가지 사물에 대한 관점과 태도는 매일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니 여러 각도에서 진리를 교제하고, 서로 다른 내용과 본질을 해부하는 것은 사람의 진리 진입에 절대적으로 도움이 된다. 지난번에는 적그리스도의 이익 중 두 번째 항목, ‘자신의 명예와 지위’에 관해 간단하게 개괄적으로 교제했다. 오늘은 예를 들어 구체적으로 교제하도록 하겠다. 물론, 내 교제를 기초로 새로운 인식이 생겼거나 깨우침, 빛 비춤을 얻었거나 체험과 삶 속에서 이러한 실례를 본 적이 있다면 교제에 참여해도 좋다. 이제 적그리스도의 이익이라는 각도에서 적그리스도가 자신의 명예와 지위에 대해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어떤 패괴 성품을 드러내는지, 어떤 측면에서 이러한 본성 본질을 나타내는지 해부하도록 하겠다.
자신의 명예와 지위에 대한 적그리스도의 사랑은 일반인을 뛰어넘는다. 이는 그의 성품 본질 안에 있는 것으로, 한때의 취미도 아니고 한순간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의 생명 속에, 뼛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그의 본질이라고 한다. 즉, 적그리스도는 무엇을 하든 다른 게 아닌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가장 먼저 고려한다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에게 있어 지위와 명예는 그의 생명이자 평생 추구해야 할 목표이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 가장 먼저 이런 것을 고려한다. ‘내 지위는 어떻게 될까? 내 명예는 또 어떻게 될까? 내가 이 일을 하면 좋은 명성을 얻을 수 있을까? 사람들 마음속의 내 지위가 올라갈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들인데, 이것으로 그에게 적그리스도의 성품과 본질이 있음이 충분히 증명된다. 그래서 그는 문제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에게 지위와 명예는 부가적인 요구 사항이 아니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신외지물(身外之物)은 더더욱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적그리스도의 본성과 뼛속, 핏속에 들어 있는 것으로,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태도는 지위와 명예가 있어도 괜찮고 없어도 괜찮은 것이 아니다. 그럼 어떤 것이겠느냐? 명예와 지위는 그에게 있어 매일의 삶과 상태, 추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적그리스도에게 있어 지위와 명예는 그의 생명이다. 그가 어떻게 살아가든,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든,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추구하는 것과 목표가 무엇이든, 인생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든 모두 좋은 명예와 높은 지위를 갖는 것을 중심에 놓는데, 이 목적은 바뀌지 않는다. 이는 그가 영원히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진면목이자 그의 본질이다. 깊은 산 숲속에 데려다 놓아도 그는 명예와 지위에 대한 추구를 내려놓지 못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 가운데 갖다 놓아도 그가 마음속으로 신경 쓰는 것은 여전히 명예와 지위이다. 적그리스도 부류 사람들 역시 하나님을 믿긴 하지만, 그들은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 사이에 등호 기호를 그려 넣곤 이 두 가지를 대등한 위치에 둔다. 즉,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길을 걸으면서 동시에 명예와 지위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곧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이며,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이 곧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고, 명예와 지위를 얻으면 진리와 생명을 얻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그들이 어떤 명예와 이익, 지위도 얻지 못하고, 다른 이의 앙망과 우러름, 추종도 받지 못했다고 생각된다면, 깊은 실의에 빠져 하나님을 믿는 것은 의미도 가치도 없다고 여길 것이다. 그들은 속으로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건 실패한 거 아닌가? 희망이 없는 거 아닌가?’라고 느낀다. 그들은 늘 마음속으로 이런 것을 궁리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 집에서 한자리 차지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교회에서 높은 명망을 얻어 자기가 말하면 사람들이 들어주고 행동하면 지지해 줄지, 어디를 가든 자신을 따를 대상이 있을지, 교회에서 발언권과 명예, 이익, 지위를 갖게 될지 등을 궁리한다. 그들은 속으로 이런 것들을 특별히 중시한다. 이것이 바로 이 부류 사람들의 추구이다. 그들은 왜 늘 이런 것들을 중시하겠느냐? 하나님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들었는데도 이런 일에 대해 마음속으로 인식이나 분별이 생기지 않은 것이겠느냐? 하나님 말씀과 진리가 그들의 관념이나 사상 관점을 바꿔 놓지 못한 것이겠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 문제는 그들 자신에게 있다. 전적으로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진리를 싫어하기 때문에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는 그들의 본성 본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 부류는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들으면 마음속으로 방향을 찾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사실 그 ‘방향’이라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그들이 일종의 도구를 얻어서, 즉, 일종의 유리한 무기를 얻어서 그 덕분에 지위를 얻으리라는 확신을 더욱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기회를 이용해 많이 듣고 보고 배우고 교제하고 훈련하면서 차츰 많은 글귀와 도리를 말할 수 있게 되고, 또한 사람들이 우러러보게 만들고 또 잊지 못하게 만드는 소위 설교를 많이 할 수 있다. 그들은 문자적으로 사람들이 좋다고 여기는 도리를 파악한 후, 마치 생명의 동아줄을 잡은 것처럼, 또 방향을 찾고 서광을 본 것처럼 느낀다. 그렇기에 적그리스도가 설교를 듣고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은 실행하기 위한 것도,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기 위한 것도,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한 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과 그들이 생각하는 그 영적인 이론, 또는 고차원적인 설교를 함으로써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고, 또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여 자신을 숭배하고 따르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 말씀과 진리, 하나님의 도는 부지불식간에 그들이 지위를 얻고 사람들 사이에서 명망을 얻는 하나의 통로이자 사다리, 도구가 된다. 그렇기에 어떤 측면에서 보든 적그리스도 부류에게는 진실한 믿음과 순종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반면, 그들이 아무리 열심히 설교를 듣고 하나님 말씀을 읽을지라도, 아무리 ‘경건하게’ 하나님 말씀을 믿을지라도 한 가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그건 바로 그들은 이런 행동을 하면서도, 그들의 속셈과 내면의 꿍꿍이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자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따르는 자나 피조물이 되어 착실하고 성실하게 하나님의 부탁,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받아들이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이런 것들을 통해 개인적인 목적을 이루고, 사람들 마음속에서 지위를 얻으며, 하나님 앞에서 좋은 평가를 얻으려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전하든, 얼마나 옳고 대단하고 영적이고 사람의 입맛에 맞는 설교를 하든 그들 개인적인 실행과 진입은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반면, 그들이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지위와 명예는 그들에게서 점점 더 ‘성과’를 낸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이 부류가 어떻게 행동하든, 그가 고심하여 경영하는 것, 그가 추구하는 방향과 목표, 그리고 그가 모든 일을 할 때의 마음속 깊은 곳의 동기와 원천은 전부 그 자신의 이익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지위, 명예와 떼어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있다. 적그리스도가 아무리 좋은 자질과 은사를 지니고 있어도, 혹은 아무리 경건하고 영적인 모습을 보여도 그는 권력을 잡고 하나님의 선민을 통제하려는 야심과 욕망을 갖고 있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며, 오직 명예와 지위만을 추구한다. 그러니 그가 하나님의 요구대로 실행할 수 있겠느냐? 그의 일 처리가 하나님의 요구 기준에 이를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럼 그의 모든 행동은 과연 어떤 결과를 초래하겠느냐? (분명 독립 왕국을 세우고 자기가 결정권을 잡을 것입니다.) 그렇다. 적그리스도가 어떻게 행동하든 마지막에는 다 그런 결과가 초래된다. 그럼 이런 결과는 어떻게 생긴 것이겠느냐? 주요 원인은 적그리스도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은 데 있다. 책망과 훈계든, 심판과 형벌이든 적그리스도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적그리스도는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속셈과 목적이 있으며, 자기가 세워 놓은 계획대로 행동한다. 하나님 집의 안배와 사역에 대한 그의 태도는 ‘네게 수많은 묘책이 있어도 내게는 불변의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부 적그리스도의 본성에 의해 결정된다. 적그리스도가 마음가짐을 바꿔 진리 원칙대로 행동할 수 있겠느냐? 절대 불가능하다. 상부에서 직접 요구해서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전혀 하지 않는다면 드러나고 교체되는 상황에서만 그는 얼마간 실제적인 사역을 한다. 적그리스도는 이런 태도로 본분을 이행하며, 진리 실행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보인다. 즉, 진리 실행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모두의 우러름을 받고 동조를 얻을 수 있을 때 그는 분명히 호응할 것인데, 다른 사람의 눈 밖에 나지 않도록 형식적으로 할 것이다. 진리를 실행해도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사람들 눈에도 띄지 않고 윗선 리더의 눈에도 띄지 않는다면 그럴 때 그는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 그는 진리를 실행할 때 장소와 배경을 구분하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표면적으로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을지도 따져 보고, 이익이 큰지 적은지도 따져 보는 등 이런 것들을 매우 민첩하게 파악하고 임기응변도 한다. 그는 모든 부분에서 자신의 명리와 지위를 고려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전혀 헤아리지 않는다. 그래서 진리를 실행하고 원칙을 지키지 못한다. 적그리스도는 오직 명리와 지위, 자신의 이익에만 집중한다. 자기가 이익을 얻지 못하거나 자신을 과시하지 못하면 안 된다. 그에게 진리 실행은 이렇게 곤란하다. 애만 쓰고 좋은 소리는 못 듣는다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일해도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그는 조금도 진리를 실행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집에서 직접 안배한 사역으로, 꼭 해야 하는 상황에도 그는 자신의 지위와 명성에 도움이 되는지를 고려한다. 만약 그의 지위에 도움이 되고 명성을 높여 줄 수 있다면 그는 최선을 다해 잘 해낼 것이다. 그는 그것을 일거양득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약 그의 명리나 지위에 도움이 되지 않고, 제대로 못 할 경우 지위와 명예를 잃을 수 있는 일이라면 그는 어떻게든 이유나 핑계를 대서 그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적그리스도의 원칙은 한 가지이다. 바로 명예와 지위, 그리고 이익을 얻어야 하며, 조금도 손해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고생하거나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으며, 그의 명성과 지위에 이로운 것, 이런 것이 적그리스도가 가장 좋아하는 사역이다. 정리하자면, 적그리스도는 무엇을 하든 먼저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며, 생각이 정리되면 행동한다. 그는 진심으로, 성의를 다해, 절대적으로, 완전히 진리에 순종하는 게 아니라 선택적이고 조건적으로 군다. 그 조건은 무엇이겠느냐? 그의 지위와 명예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며, 어떤 손해도 입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선결 조건하에서 어떻게 할지를 결정한다. 다시 말해, 적그리스도는 진리 원칙을 대함에 있어, 하나님의 부탁과 하나님 집의 사역을 대함에 있어, 또는 닥친 일을 대함에 있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생각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 집의 이익에 손해를 입히지 않을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만족하고 형제자매에게 유익이 될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그가 고려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다. 그가 고려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그의 지위와 명예가 영향을 받지 않을지, 그의 명성이 떨어지지는 않을지 하는 것이다. 진리 원칙에 따라 행할 경우 교회 사역에 유익이 되고 형제자매 역시 이익을 얻게 되지만 그의 개인적 명예가 손해를 입고 많은 사람이 그의 실제 분량, 본성 본질을 알게 된다면, 그는 분명 진리 원칙에 따라 행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실제적인 사역을 어느 정도 하여 더 많은 사람의 우러름과 앙망, 탄복을 받고, 더 큰 명성을 얻게 되거나 그의 말에 권위가 실리고 더 많은 사람을 굴복시킬 수 있게 되는 상황이라면, 그는 그렇게 하는 걸 택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절대 하나님 집의 이익과 형제자매의 이익을 생각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쪽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이다. 이는 이기적이고 비열하지 않으냐? 어떤 상황에서든 그의 지위와 명예는 절대적인 것으로, 누구도 그와 다투어선 안 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고 상대에게 숭배받을 수 있다면 그는 어떤 방법이든 가리지 않고 행할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하나님을 증거하여 하나님의 선민들에게 우러름을 받고 동조를 얻는다면, 그 또한 하나님을 증거하는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농락할 것이다. 하지만 적그리스도에게는 진리와 실제 체험이 없기에 그는 머리를 쥐어짜 사람의 상상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련의 이론을 생각해 내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지, 얼마나 사람을 사랑하는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어떻게 대가를 치르는지, 어떻게 자신을 낮추고 감추는지 등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하나님을 증거한 후에 얻게 되는 결과는 그가 사람들로부터 더 큰 우러름을 받고, 사람들 마음속에 그의 자리가 더 많아지고 하나님의 자리는 없게 된다. 만약 자기 인식에 대한 주제로 더 많은 사람의 신임과 앙망, 우러름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는 수시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말을 하고 자신을 해부할 것이다. 자신은 마귀라고, 사람이 아니며 이성이 없다고, 자신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진리를 갖추지 못했다고 해부할 것이다. 그럴싸하기만 하고 전혀 중요하지 않은 화제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신뢰를 얻고 더 많은 이의 동조와 앙망을 얻는다. 적그리스도는 바로 이렇게 행동한다. 체험 간증을 말하는 특정 방법이 사람들로부터 동조와 탄복을 얻어낼 수 있다면, 그는 전혀 거리낌 없이 그 방법을 쓰며, 그 방법에 관심을 쏟고 공을 들이고 머리를 쥐어짠다. 결론적으로 적그리스도가 하는 모든 일의 목표와 동기는 지위와 명예 두 가지를 둘러싼 것일 뿐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 행위뿐만이 아니라 사상 관점, 추구하는 방법도 모두 명예와 지위를 중심으로 한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가 사역하는 방식이다.
적그리스도에게는 자신의 명예와 지위가 타격을 받고 박탈되는 것이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심각한 일이다. 설교를 아무리 많이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그는 자신이 진리를 전혀 실행하지 않고 적그리스도의 길을 간다는 사실, 자신에게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이 있다는 사실로 괴로워하거나 뉘우치는 게 아니라 지위를 얻고 더 높은 명망을 얻기 위해 늘 온갖 궁리를 한다. 적그리스도 부류의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일은 그저 사람 앞에서 자신을 뽐내기 위해 하는 것이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이런 사람들은 지위를 너무 좋아해서 그것을 목숨으로 여기고, 인생의 추구 목표로 여기기 때문이다. 또 그들이 지위를 너무 좋아해서 진리의 존재를 믿지 않고, 심지어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전혀 믿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아무리 지위와 명예를 위해 주판알을 튕기고, 또 아무리 거짓된 모습으로 사람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인다 해도 그들의 내면 깊은 곳에는 아무런 지각도 자책감도 없고, 더욱이 아무런 불안감도 없다. 그들은 한결같이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동시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을 부정한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바로 적그리스도는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명예와 지위는 다 사람이 스스로 쟁취하는 거야. 사람들 사이에서 입지를 굳히고, 명예와 지위를 얻어야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어. 절대적 권력과 지위를 얻어야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사람답게 사는 거지. 그와 반대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매사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기꺼이 피조물의 지위에 서서 정상인의 모습을 살아 낸다면, 그렇게 사는 건 너무 못난 거야. 아무도 우러러봐 주지 않아. 사람의 지위와 명망, 행복은 스스로 쟁취하는 거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로 쟁취하고 빼앗아야 얻을 수 있지, 남이 너에게 베풀어 주는 게 아니야. 수동적으로 기다리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라고 말이다. 적그리스도는 속으로 이렇게 궁리한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성품이다. 적그리스도가 진리를 받아들이고, 잘못을 인정하고, 참으로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 사탄의 본성 본질을 갖고 있는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증오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가 어디를 가든, 설령 그곳이 까마득히 멀고 구석진 곳이라 해도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그의 야심은 영원히 바뀌지 않으며, 일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가 가는 길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 혹자는 “몇몇 적그리스도의 그런 관점은 바뀔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이 맞겠느냐? 만약 정말 바뀔 수 있다면, 그들이 여전히 적그리스도겠느냐? 적그리스도의 본성을 지닌 사람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적그리스도의 성품을 지닌 사람은 진리를 추구해야만 변화가 생긴다.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사람 중에는 악을 행하고 교회 사역을 교란하여 적그리스도로 규정되었지만, 교체된 후에 진실로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기로 다짐하여 한동안 반성하고 인식하고 회개한 후 정말 어느 정도 바뀐 사람도 있다. 그러면 적그리스도로 정의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그저 적그리스도의 성품을 지닌 것에 불과하며, 진리를 추구하면 바뀔 수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교회에서 적그리스도로 규정되어 제명되고 출교된 사람은, 소수의 예외는 있다고 해도 대부분은 진실로 회개하거나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혹자는 “그럼 그 몇몇 예외는 잘못 정의된 것입니까?”라고 묻는데 그렇지는 않다. 어쨌든 악을 행했다는 사실은 지울 수 없다. 다만 그가 진실로 회개하고 기꺼이 본분을 이행하며 회개했다는 진실된 간증이 있다면, 교회에서 받아 줄 수 있다. 적그리스도로 정의된 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죽어도 회개하지 않으며 갖가지 궤변을 늘어놓는다면, 이런 자는 적그리스도로 규정된 게 정확하고 꼭 맞는 일이다. 만약 그가 당시에 잘못을 인정하고 진실로 회개했다면 교회에서 어찌 그를 적그리스도라고 정의했겠느냐?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어떤 사람이든, 얼마나 많은 악을 행하고 얼마나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진실로 회개하는지 등의 여부에 근거하여 적그리스도에 속하는지, 아니면 적그리스도 성품을 지닌 사람인지를 판단한다. 만약 그가 진리를 받아들이고,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고, 진실로 회개하며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죽는 날까지 힘쓰기를 바란다면, 이는 정말 회개의 뜻이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적그리스도라고 정의할 수 없다. 진짜 적그리스도들이 정말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들은 진리를 사랑하기는커녕 싫어하기에 그의 인생과 밀접하게 관계된 명예와 지위를 영원히 내려놓지 못한다. 적그리스도는 마음속으로 굳게 믿고 있다. 명예와 지위가 있는 사람만이 존엄을 갖춘 사람이자 진정한 피조물이며, 지위가 있어야 상과 면류관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께 인정받을 자격이 있다고, 지위가 있으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으며 지위가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는 지위를 무엇으로 여기고 있느냐? 지위를 진리로, 사람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목표로 여기고 있다. 그러니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지위를 중요시하는 자는 영락없는 적그리스도이며, 바울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그는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정직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을 최고의 지위로 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그것은 사람됨의 목표와 기준이 아니라 그저 과정, 완전히 하나님께 보여 주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너무도 황당하고 그릇되다! 오직 진리를 증오하는 그릇된 놈만이 이렇게 터무니없는 생각을 할 것이다.
어떤 측면의 진리를 교제하든 적그리스도 부류가 이해하고 인식하는 방식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과 다르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진리를 들으면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 측면의 진리를 갖추지 못했어. 하나님께서 폭로하시는 이 내적 상태를 나와 대조할 수 있어. 교제를 들으니 왜 이렇게 후회되고 하나님께 죄스러울까? 나는 진리 추구에서 아직 갈 길이 멀고, 진실한 순종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너무 두려워. 이건 나에 대한 경고야. 나는 그동안 스스로 꽤 괜찮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내가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도 아니었어. 앞으로는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행동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와 빛 비춤을 구하는 데 집중해야겠어. 내 길을 가면 안 돼. 나는 이 부분의 진리에서 아직 깊이 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고, 성장의 여지도 있어. 내가 더 잘할 수 있도록, 진심과 충성을 바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환경을 마련해 주셨으면 좋겠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럼 적그리스도는 여러 가지 진리를 어떻게 이해하겠느냐? 사람을 질책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나는 이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어. 행동 방식에도 허점과 빈틈이 있었고. 몇 명이나 이 사실을 눈치챘을까? 하나님 말씀은 무척 명확한데, 설마 하나님이 나를 꿰뚫어 보신 걸까? 그럼 결과가 별로 좋지 않을 텐데. 그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야. 하나님이 나를 꿰뚫어 보셨다면, 그걸 눈치챈 사람은 없을까? 만약 누군가가 눈치챘다면 더 큰일이야. 하나님만 아시고 사람들은 모른다면 그나마 괜찮아. 만약 사람을 폭로하는 이 하나님 말씀을 누가 듣고 나한테 대입해서 적용한다면, 내 명성에 좋지 않을 거야. 어떻게든 만회할 방법을 생각해야겠어. 어떻게 만회하지?’ 적그리스도는 이런 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교제하면 적그리스도는 이렇게 생각한다. ‘바보나 정직한 사람이 되려고 할걸. 나처럼 똑똑한 사람이 왜 정직한 사람이 되려고 하겠어? 정직한 사람은 바보, 멍청이라고. 있는 그대로 다 이야기하고, 뭐든 남들이 알고 파악하게 하지.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 정직한 사람이 되라는 하나님 말씀은 상대적인 거야. 지혜로운 사람이 되면 그만이라고. 정직한 사람이 되는 건 선택적으로 실행하자. 어떤 일은 솔직하게 털어놓고 말하겠지만, 마음속 깊은 곳 비밀이나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일, 말하면 무시당하는 일 등 더 많은 것들은 말하지 말아야지. 정직한 사람이 되면 뭐가 좋아? 내가 보기에는 하나도 좋을 게 없어. 어떤 사람들은 늘 자신을 해부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려고 하고, 정직한 말을 하면서 자기 패괴 성품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데도 하나님께 은총을 받지 못하잖아. 책망받아야 할 때는 똑같이 책망받고 하나님이 특별히 높여 주시는 것도 없지.’ 그는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본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어. 이 길은 내가 가야 할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나 가라고 하자. 나처럼 똑똑한 사람이 그렇게 처신할 수 있겠어?’ 어떤 측면의 진리를 듣든 그는 마음속으로 어떤 계산을 하겠느냐? 순수하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 마음속 깊이 진리로 여겨 받아들이겠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 그는 끊임없이 계산기를 두드리고 계획하며 관찰한다. 그럼 최종적인 대응책은 무엇이겠느냐? 임기응변으로 대처하고 적당히 분위기를 맞추며 모두에게 미움받지 않도록 감쪽같이 처세한다. 어떤 일을 하든, 마음속 깊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계산을 하든 다른 사람들과 하나님이 알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 주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분명히 이야기하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그는 그것이 개인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적그리스도 부류는 절대 진리를 실행하지 못한다. 그들은 스스로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것 외에도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들을 멸시하며, 심지어는 진리 실행에 약간의 오류가 있어서, 약간 그릇된 길을 가거나 잘못을 저질러서 책망과 훈계를 받는 사람들을 비웃으면서 옆에서 우스갯거리로 삼는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를 믿지 않고, 하나님이 사람을 대하는 다양한 방식에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음은 더더욱 믿지 않는다. 그는 이러한 것들을 믿지 않는다. 그는 이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고, 사람을 속이는 말이라고, 일종의 언사나 듣기 좋은 말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늘 남몰래 기뻐하는 것이 무엇이냐? ‘다행이야. 나는 뭐든 가져다 바칠 정도로 그렇게 멍청하지 않거든. 다행이야. 내 마음속 깊은 곳 더럽고 추악한 내막은 털어놓지 않았잖아. 다행이야. 그래도 지위와 명예를 붙잡고 죽을힘을 다해 추구해서, 나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위해 분투해서 말이야. 내가 나 자신을 위해 분투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생각해 주겠어?’ 적그리스도 부류는 간사할 뿐만 아니라 사악하고 진리를 싫어하며 성품이 흉악하다. 패괴된 인류가 드러내는 갖가지 패괴 성품이 적그리스도에게서는 한층 더 증명되고 ‘승화’한다. 인류의 패괴 성품을 보고 싶다면 적그리스도를 한 명 찾아 해부하고 그와 함께 지내면 된다. 그것은 문제를 가장 잘 보여 주는 방법이고, 패괴된 인류의 패괴 본질과 사탄의 몰골을 무엇보다 분명히 간파할 수 있는 방법이다. 적그리스도를 한 명 데려다가 본보기로 삼아 해부하고 인식한다면 더욱 분명히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지위와 명예에 대한 적그리스도의 추구와 욕망은 일반인을 뛰어넘는다. 평범한 사람은 지위와 명예에 그렇게 큰 욕망이 없지만, 적그리스도의 욕망은 몹시 크며 매우 눈에 띈다. 그와 함께 지내고 이야기하고 교제하는 순간, 그의 본성 본질이 네 앞에 드러날 것이며, 너는 단번에 그를 간파하게 될 것이다. 그의 욕망은 이 정도로 크다. 그러다가 그와 깊이 교제한다면 너는 그에게 역겨움을 느끼고 그를 저버리게 될 것이다. 결국 너는 그를 저버릴 뿐만 아니라 정죄하고 저주하게 될 것이다. 적그리스도 부류는 좋은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이자 진리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의 원수이다. 그들은 진리를 싫어하며, 지위와 명예를 위해 어떤 나쁜 짓도 저지를 수 있다. 그들은 어떤 일에서든 위장하고 모방하고 적당히 분위기를 맞추는가 하면, 지위와 명예를 위해 자기 뜻을 굽히고 원하는 바를 이룬다. 이런 부류의 영혼과 본질은 더럽고 역겨움을 자아낸다. 그들은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을 전혀 사랑하지 않으며, 이와 동시에 긍정적인 사물을 이용하고, 옳은 말과 옳은 도리를 전하는 것을 이용하여 사람을 미혹함으로써 명망과 지위를 얻어 자신의 욕망과 야심을 충족한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 부류의 모습이자 본질이다. 너는 사탄이 어떻게 생겼는지, 사탄이 어떻게 처세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는지, 어떤 본성 본질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고, 하나님 눈에 과연 어떤 존재로 보이는지 알 수 없다. 이는 어려움이 아니다. 적그리스도를 한 명 관찰하고 해부하는 순간, 너는 이러한 것들을 모두 알게 될 것이다. 사탄의 본성 본질과 추악한 몰골, 사악함과 흉악함을 전부 알게 될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살아 있는 사탄이자 마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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