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조 진리를 멸시하고 공공연하게 원칙을 위배하며 하나님 집의 안배를 무시한다(5) 제 3 부
2) 적그리스도는 관념에 맞지 않는 하나님 말씀을 부정한다
두 번째 모습, 적그리스도는 관념에 맞지 않는 하나님 말씀을 부정한다. 하나님이 사역하는 동안,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많은 말씀을 했다. 이 말씀들은 포함하는 범위도 아주 넓고 내용도 아주 풍부하다. 사람의 속셈, 관점에 관계된 것도 있고, 또 사람의 섬김에 관계된 것도 있고, 물론 더 많은 것은 사람의 패괴 성품에 관계된 것이고, 더 큰 부분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인류에게 하는 요구와 관계된 것이다. 이 말씀들 가운데서 하나님은 여러 가지 말씀 방식을 취했다. 이 여러 가지 말씀 방식 중에서 말씀의 어투는, 처음에는 사람에게 상대적으로 가깝게 했다가 그다음에는 인류에 대한 심판, 폭로로, 인류에 대한 정복으로 바뀌고, 나아가 사람에게 각 측면의 진리를 점진적으로 알려 주기에 이른다. 이 말씀의 내용은 여러 측면에 걸쳐 아주 많지만, 아무리 많아도 전부 패괴된 인류에게 필요한 것이다. 이 말씀들 가운데 가장 특별한 일부 내용을 제외한 대부분의 내용은 모두 인류의 언어 방식대로, 인류가 받아들일 수 있는 어투와 어휘, 그리고 언어 논리에 따라 말한 것이다. 요컨대 이런 언어, 말하는 스타일과 방식은 모두 아주 평이해서 사람이 정상적인 사고, 정상적인 마음과 이성만 갖추고 있다면, 하나님의 이 말씀들을 모두 읽고 이해할 수 있다. 그 말은 곧 사람이 마음이 정상적이기만 하면, 이 말씀들을 읽고 그 안에서 실행의 길을 찾을 수 있고, 그 안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실행 원칙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사람에게 마음이 있고 정상적인 사고만 갖추고 있으면, 하나님 말씀의 도움과 인도로 사람은 생활 속의 각종 어려움을 해결하고, 자신의 패괴 성품을 인식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 말씀 중 대부분은 이런 내용이고, 유독 한 부분만큼은 하나님이 신성의 각도, 영의 각도에 서서 한 말씀이다. 그 부분은 아주 특별한 내용이다. 모든 인류의 눈에 비친 해당 부분의 말씀은 아주 심오하고 이해하기 힘들어서 마치 비밀 같기도 하고 또 예언 같기도 하다. 각 구절, 각 단락, 각 편의 말씀은 하나같이 하나님 뜻을 읽어 내기가 어렵고, 그 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는 배경 및 사람에게 하는 요구, 그리고 사람이 구해야 하는 진리 원칙을 찾기가 아주 어렵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느 부분의 말씀이냐? 바로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과 그 부록편으로, 이 부분의 말씀은 사람이 읽고 이해하기가 무척 힘들다. 하나님이 왜 사람이 읽고 이해하기 힘든 이 부분을 말씀하는지에 관한 얘기는 잠시 접어 두고, 내가 언급한 이 부분의 내용이 우리가 교제하려는 ‘적그리스도는 관념에 맞지 않는 하나님 말씀을 부정한다’라는 주제의 어느 부분과 관계되는지부터 얘기해 보겠다. 하나님이 하는 대부분의 평이한 말씀, 심오한 내용을 쉽게 표현한 말씀, 사람에 대한 경고와 일깨움의 말씀, 사람에 대한 권면과 위로의 말씀, 사람에 대한 폭로와 심판의 말씀, 사람에게 공급하고 인도하는 말씀 등, 이런 말씀은 진리를 전혀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이라는 글자를 신격화하는 사람들, 차라리 막연한 하나님을 믿으려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 말씀답지 않게 너무 통속적이고 직설적이며, 전부 쉬운 말이다. 그리고 각 편마다 내용이 너무 길어서 읽고 싶지 않고, 그 안에 심오한 내용이나 비밀도 별로 없어서 읽을 가치가 없게 느껴진다. 이런 이유로 그들의 눈에 비친 그 말씀은 하나님 말씀이 아니다. 소위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고 하는 이유는 말씀의 내용, 말씀하는 방식과 스타일이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입맛은 어떤 것이냐? 그들이 읽고자 하는 것은 심오한 것, 사람이 아무리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무자천서(無字天書)와 비슷한 문자이다. 그들은 그런 것을 읽고자 한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공급하는, 사람의 입맛에 맞는 말씀 방식, 어투, 스타일로 된 말씀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들은 이런 말씀에 대해 관념이 가득하고, 멸시와 조소가 가득하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이런 평이하고도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는 말씀은 아예 읽지도 않고,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 속으로 이 말씀들을 적대시하고, 배척하고,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 말씀들을 거부하고, 배척하고, 적대시하는 것이냐? 한 가지 분명한 원인이 있다. 그들은 그 말씀들이 하나님이 육신의 각도에 서서 말씀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말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말이란 어떤 개념이냐? 적그리스도가 볼 때는 하나님 말씀, 천서만이 읽을 가치가 있고, 심오하고, 깊이를 알 수 없고, 비밀을 간직한 말씀만이 읽을 가치가 있다. 반면 일반적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의 문자는 그들이 볼 가치가 없고, 그들의 눈에 들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말씀을 하찮게 여긴 나머지 아예 읽지 않는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주위에서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읽지 않는지,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교제할 때 자리를 박차며 나가는지,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읽고 진리를 교제하는 소리만 들으면 하품에 기지개를 켜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짜증내거나, 떠날 핑계를 찾거나, 중간에 끼어들어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리는지 보아라. 이런 사람은 위험하다. 네가 신학을 얘기하고, 어떤 궤변이나 사람의 관점을 얘기할 때면 가만히 앉아 있지만, 하나님 말씀을 설교하거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읽고 교제하거나 하나님 말씀을 높이 받들 때면 그는 돌변해서 순식간에 비정상적인 몰골과 마귀적인 몰골을 드러낸다. 다른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을 들으면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짜증내고, 다른 사람이 진리를 교제하는 것을 들으면 정색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 한다. 이건 어떤 성질이냐? 이건 어떤 성품이냐? 이게 바로 적그리스도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당신은 어떻게 그들을 적그리스도로 규정합니까? 이제 막 믿기 시작해서 하나님 말씀에 별로 관심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고, 아직 하나님 말씀의 달콤함을 모를 수도 있죠. 그들이 믿은 지 얼마 안 돼서 분량이 작은 것도 안 됩니까?” 만약 믿은 지 얼마 안 돼서 분량이 작고 하나님 말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면, 네가 다른 얘기를 할 때는 왜 반감을 느끼지 않느냐? 네가 대재난에 대해 얘기하거나 인류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대해 얘기하고, 비밀이나 <계시록>에 대해 얘기할 때 그가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는지 없는지 보아라. 그때는 다를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로 볼 때 그들은 진리를 적대시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진리를 적대시하는 이 본성 본질은 어떻게 표출되느냐? 하나님 말씀을 읽기만 하면 반감이 들고 졸음이 쏟아진다. 하나님 말씀을 읽기만 하면 무시하고 짜증내고 듣기 싫어하는 등 여러 가지 표정과 태도를 보이고 마귀의 얼굴을 드러낸다. 그들은 겉보기에 본분을 이행하고 있고, 또한 스스로도 자신을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 인정한다. 그런데 어째서 진리를 교제하고 하나님 말씀을 교제하면 얌전하게 듣지 못하는 것이냐? 어째서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것이냐? 마치 하나님 말씀이 예리한 날을 품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 말씀이 그들을 찌르기라도 했느냐? 그들을 정죄했느냐? 아니다. 그 말씀들은 대부분 사람에게 공급하는 말씀이다. 사람이 들으면 각성하고 살 길을 얻어서 소생할 수 있고, 사람답게 살 수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일부 사람들은 그 말씀을 들으면 항상 비정상적인 상태로 변하느냐? 그건 바로 마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네가 신학을 얘기하고 사설과 궤변을 얘기하고 <계시록>을 얘기해도 그들은 반감을 품지 않는다. 심지어 네가 성실한 사람이 되고 무골호인이 되는 얘기를 해도, 어떤 영웅 얘기를 해도 반감을 품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하나님 말씀 읽는 것을 들으면 반감을 품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어 한다. 만약 차분히 들으라고 권면하기라도 하면 얼굴이 변하며 눈알이 벌게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은 어째서 하나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냐? 하나님 말씀만 들으면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것은 어찌된 일이냐? 그건 바로 그 내면의 영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그 영은 진리를 싫어하고 하나님을 대적한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 말씀만 들으면 속으로 분노가 일고, 내면에서 마귀가 야단법석을 피워서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본질이다. 따라서 표면적으로 볼 때 적그리스도는 자신의 관념에 맞지 않는 하나님 말씀을 멸시하는데, 관념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 무슨 뜻이냐? 분명 그들이 이 말씀들을 정죄한다는 뜻이다. 그들은 그 말씀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그 말씀이 진리요, 사람을 구원하는 생명의 도(道)라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는다. 관념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단지 하나의 구실이고 표면적인 현상일 뿐이다. 관념에 맞지 않는다는 의미는 무엇이냐?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하는 모든 말씀에 대해 관념이 없느냐?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하고 진리로 생각하며 받아들이느냐? 아니다. 많든 적든, 크든 작든 누구나 생각과 관념이 있고, 혹은 관점이 하나님 말씀과 충돌을 일으키고 모순을 일으킨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정상적인 이성이 있다. 이 이성은 그의 관념에 맞지 않는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 보이는 태도를 해결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 이성은 그들에게 일러준다. “설령 내 관념에 맞지 않더라도 이건 하나님 말씀이야. 설령 내 관념에 맞지 않아서 듣고 싶지 않고, 내 생각에는 옳지 않고, 내 생각과 충돌을 일으키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 말씀들은 진리야. 천천히 받아들이다 보면 언젠가는 인식하고 내 관념을 내려놓게 될 거야.” 네 이성은 너에게 우선 네 관념을 내려놓으라고, 네 관념은 진리가 아니고 하나님 말씀을 대신할 수 없다고 일러준다. 네 이성은 너에게 순종하는 태도, 정직한 태도로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여야지, 관념과 자신의 관점을 품고 하나님 말씀에 맞서면 안 된다고 일러준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네 관념에 맞으면 받아들이면서 가만히 앉아서 조용히 들을 수 있고, 네 관념에 맞지 않더라도 해결 방법을 구해서 관념을 내려놓고 하나님과 합할 수 있다. 이것이 대다수 이성을 지닌 사람들의 정상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적그리스도가 말하는 관념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보통 사람이 관념에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들이 관념에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것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즉, 그것은 하나님의 사역과 말씀,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성품과 완전히 상반되는, 사탄의 성품과 본질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들이 관념에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정죄요, 모독이요, 조소다. 그들은 하나님이 말씀하는 이런 평이한 인류의 언어는 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사람을 구원하는 성과를 내지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가 관념에 맞지 않는다고 하는 말의 정확한 뜻이다. 그렇다면 관념에 맞지 않는다는 이 말의 본질은 과연 무엇이냐? 사실 하나님에 대한 정죄요, 부인이요, 모독이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인성의 각도와 제3자의 각도에 서서 사람 언어의 방식으로, 사람의 언어 구조와 표현으로 인류에게 하는 이런 말씀은 충분히 심오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으로 정의될 충분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죽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당신은 그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는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가끔 영생활도 하고, 우리와 교제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인용하기도 하는데 이런 건 어떻게 설명하실 건가요?” 그건 다른 일이다. 그건 단지 표면적인 것일 뿐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정의한다. “성육신한 인자가 하는 말은 진리라고 할 수 없고, 하나님 말씀은 더더욱 아니야. 그러니 난 받아들일 필요도 없고, 먹고 마실 필요도 없어. 순종할 필요는 더더욱 없고 말이야.” 그런데 성육신한 하나님이 영의 각도, 신성의 각도에 서서 선포한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이라면 그것은 적그리스도가 볼 수는 있지만 닿을 수 없는 것이고, 그들이 충정을 쏟는 말씀이다. 이 충정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적그리스도는 이런 말씀을 보면서 군침을 흘린다. “바로 이 부분 말씀 때문에 당신처럼 보잘것없는 사람, 당신처럼 별 볼 일 없는 사람, 당신처럼 우리 눈에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하나님이 되다니, 너무 불공평하고 말이 안 됩니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한 가지 ‘기쁘고 축하할’ 만한 일이 있으니, 바로 이 부분 말씀의 선포로 인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추앙하고 숭배하려는 그들의 욕망과 야심이 충족되고, 그들의 시야가 크게 넓어졌다는 점이다. 그들은 말한다. “정말 좋군요.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셋째 하늘에 계신 그 하나님이시고, 가장 크신 그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그분이 하시는 그 말씀은 쉽지 않아서 사람은 한 마디도 이해할 수 없죠. 너무나 심오한 말씀입니다. 선지자의 예언보다도 심오합니다!” 매번 그 말씀을 읽을 때면 적그리스도의 마음은 부러움과 질투로 가득하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에 대해 추앙의 마음으로 가득하다. 그들은 말씀을 읽을 때마다 자신이 가장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말씀을 읽을 때마다 자신이 하나님과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 말씀들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호기심을 가장 잘 충족시켜 준다. 설령 이 부분 말씀 중에 하나님의 뜻이 도대체 무엇인지, 하나님이 하는 모든 말씀의 배경, 궁극적으로 이루는 성과가 과연 무엇인지, 하나님이 표현하려는 행간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들은 여전히 그 부분 말씀에 대해 기대가 충만하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그 부분의 말씀이 이해하기 어렵고, 성육신한 하나님의 인간미를 찾아볼 수 없으며, 하나님이 인성의 각도, 제3자의 각도에서 한 말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의 위대함, 하나님의 예측할 수 없는 신비함을 보고, 또한 하나님을 볼 수는 있지만 닿을 수 없음을 보았다. 그럴수록 그들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느끼지만, 땅의 하나님은 너무 미미하고, 믿기 어렵고, 믿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느낀다. 과장이 아니라, 이 부분 말씀 때문에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부분 말씀 때문에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러 왔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 부분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기 위해 왔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이 부분 말씀을 통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함으로써 더더욱 땅의 하나님의 낮춤과 미미함을 멸시한다. 이 부분 말씀을 볼수록 그들은 땅의 하나님, 성육신한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얕다고 느낀다. “당신이 하시는 말씀은 너무 이해하기가 쉬워요. 어째서 우리가 못 알아듣는 말씀은 하시지 않는 겁니까? 어째서 비밀을 말씀하시지 않는 겁니까? 어째서 셋째 하늘의 언어를 쓰시지 않는 겁니까? 어째서 신성의 언어를 쓰시지 않는 겁니까? 우리의 시야를 넓혀 주고 심안을 열어 주십시오. 당신이 그렇게 말씀하시고 그렇게 하시면 우리 믿음이 더 커지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당신을 대적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요? 당신이 만약 그렇게 말씀하시고, 그렇게 우리를 이끄신다면 당신 지위가 높아지지 않을까요? 우리가 그래도 당신을 멸시할 수 있겠어요?” 이건 좀 억지가 아니냐? 어처구니가 없다! 어처구니없는 사람에게 정상 인성이 있겠느냐? 정상 인성의 사고가 있겠느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적그리스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이런 모습을 보이는 이 일부분 사람들은 정상 인성이 있느냐? (없습니다.) 가끔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거기에 끼어들어 그들과 얘기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죄다 고상한 내용이어서 말 중간에 도저히 끼어들 수가 없다. 그들은 말한다. “당신은 딱 봐도 안 되겠어요. 셋째 하늘의 언어를 못 하잖아요. 우리가 말하는 건 다 셋째 하늘의 언어라서 일반 사람들은 못 알아들어요. 당신이 하나님이면 어쩌라고요? 여전히 못 알아들으시니 끼워 줄 필요가 없어요.” 너희 생각에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 사람은 눈치가 있어야 한다. 그들이 셋째 하늘의 언어를 말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고상해서 이를 수 없다 싶으면, 나는 재미없는 일을 사서 하는 대신 그냥 가 버린다. 어떤 적그리스도들은 공개적으로 이런 사설과 궤변이나 알맹이 없는 말을 하는데, 들으면 곧바로 그것이 사탄이나 천사장에게서 온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이 하는 말은 논조가 높고 시작점도 높아서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사람은 닿을 수 없다. 닿을 수 없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듣자마자 마귀적인 말이라는 걸 알고 그들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적그리스도는 관념에 맞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한다. 이 안에 담긴 본질이 과연 무엇인지 확실히 알았느냐? 하나님의 이 말씀들을, 그들은 아예 읽지 않는다. 그들은 맨 처음 호기심에서 하나님 말씀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한번 쓱 훑어보고, 그런 다음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은 볼 가치가 없군. 실제적이고 가치 있고 무게 있는 내용도 별로 없고, 깊이 연구할 만한 내용도 없어.” 여기저기 읽어 보다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을 보게 되었다. 이 부분 말씀은 신성 언어의 느낌이 있는 데다 수준과 깊이가 있어서 인류가 토론하고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고 그들의 입맛에도 맞았다. 그들이 지금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이 부분 말씀에서 하나님 뜻이 도대체 무엇인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단락마다 과연 무슨 뜻인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누가 좀 해석해 줄 수 있나요?” 이것이 적그리스도가 가장 알고 싶은 부분이지만, 그들 스스로는 알 수가 없다. 너희가 볼 때 그에게 알려 줘야 하느냐?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럴 필요가 없느냐? 마귀가 하나님 말씀을 들을 자격이 있느냐? 하나님의 비밀을 알 자격이 있느냐? (없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그를 믿고, 따르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열려 있고, 마귀, 사탄에게는 감춰져 있다. 그것들은 자격이 없다. 따라서 언젠가 하나님이 이 부분 말씀의 비밀과 내용의 본질을 밝히고, 하나님이 이 말씀을 하는 근원과 배경을 밝힐 때가 되면, 역시 하나님의 선민들에게 열어서 알게 하고, 절대 사탄 마귀들에게는 열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만약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서 다행히 끝까지 살아남는다면 너희에게는 이 부분 말씀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하나님 말씀 안에는 많은 비밀이 있고, 하나님 사역 안에도 많은 비밀이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이번에 성육신한 것은 비록 성경에서도, 과거 예언에서도 크고 작게, 많든 적든, 그리 분명하지 않게 예언되었지만, 이 예언들은 상당히 은밀하다. 하나님이 이번에 성육신한 일은 모든 인류를 통틀어, 또 6천 년 경륜을 통틀어 가장 큰 비밀이자 가장 은밀한 일이다. 인류도 모르고, 천사도 모르고, 피조물도 모르고, 능력이 가장 큰 사탄도 알 수 없다. 왜 모르겠느냐? 하나님이 알려 줄 생각이었다면 그것이 아는 건 너무 쉬운 일이 아니겠느냐? 그런데 왜 몰랐겠느냐? 한 가지 분명한 건, 바로 하나님이 그것에게 알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설령 많은 징조와 예언, 많은 사실이 이 일을 가리키고, 이 일을 분명하게 밝힐 수 있고, 이 일의 발생을 예고할 수는 있어도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면 사탄은 영원히 알 수 없다. 이것이 곧 사실이다. 사탄이 알게 하고 싶었다면 직접 알려 주었을 테지만 하나님은 사탄이 알지 못하게 얘기해 주지 않았다. 이런 사실이나 이런 예견적인 일이 나타난다 해도 하나님이 눈을 가리면 그는 알 도리가 없다. 사탄의 능력이 크냐? 이렇게 보면 그것의 능력은 크지 않다.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과 같은 큰 일이 인간 세상에서든, 물질세계에서든, 아니면 영계에서든 징조가 전혀 없을 수 있느냐? 이런 징조를 모두 종합해 보면 하나님이 하려는 이 일은 쉽게 알 수 있는데 어째서 사탄은 알지 못하는 것이냐? 어째서 하나님이 큰 붉은 용의 나라에서 그토록 오래 사역했는데도 그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한 중요성을 모르는 것이냐? 언젠가 그것이 알게 됐을 때는 이 일이 이미 이루어진 뒤라서 전혀 손을 쓸 수가 없고, 이 일의 성과와 수확은 이미 굳어졌는데, 그제서야 사탄이 발견한다면 이는 너무 늦지 않겠느냐? 이는 ‘사탄은 영원히 하나님 손안의 패장’이라는 말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냐? 이렇게 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이 사람 관념에 맞지 않고 사람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부정해도 된다고 잘못 생각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나님의 성육신은 뭔가를 이룰 수 없고, 또한 사실이 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커다란 잘못이 아니냐? 그들은 오판했고, 자신들의 계략에 넘어갔다. 어째서 자신의 계략에 넘어간 것이냐? 하나님이 말씀과 사역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바로 이런 별 볼 일 없고, 사람 관념에 맞지 않고, 고상하지도 않은 말씀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다. 바로 이 별 볼 일 없는 말씀의 행간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고, 진리, 길, 생명이 담겨 있어서 이 패괴된 인류를 능히 구원할 수 있고, 하나님의 경륜을 능히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이런 평범한 말씀을 정죄하는 그 사람들은 도태되고 정죄되고 최후에는 징벌받게 된다. 그들은 잘못 생각한다. “나는 당신이 하시는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고, 당신 말씀을 좋게 볼 수 없습니다! 당신이 하시는 말씀들은 내 관념에 맞지 않아요. 내 관념과 관점, 내 사고 방식과 맞지 않으면 난 받아들이지 않고, 대적하고 정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일을 이루실 수 없을 겁니다!” 틀렸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자기 계략에 넘어간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받아들이게 할 생각이 없었다. 왜 그런 것이냐? 그들은 사탄에 속하고 마귀에 속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할 계획도, 그들을 바꿀 계획도 전혀 없다. 이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궁극적인 사실은 무엇이냐?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부인하고 정죄하고 버리기 때문에 정죄되고 하나님께 버림받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너희가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 말씀이 사람의 관념 상상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네가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네 관념에 맞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될 수 없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네 관념에 맞지 않을수록 관념을 내려놓고 진리를 구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네 관념에 맞지 않을수록 너에게 없는 부분, 너에게 부족한 부분이고, 네가 보완해야 할 부분이고, 나아가 네가 변화되기 위해 구하고 진입해야 할 부분이다. 이것이 바로 너희가 깨달아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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