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조 사람을 미혹하고 회유하고 위협하고 통제한다 (제 6 부)

4.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어떻게 통제하는지 해부하다

사람을 통제하는 것, 이 또한 적그리스도가 일을 하는 수단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사람을 통제하겠느냐?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통제하는 수단은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는데, 너희는 본 적이 있느냐? 어떤 사람들은 리더를 한 적은 없어도 사람을 통제하려는 욕망을 지니고 있는데, 이런 사람이 바로 적그리스도 종자이다. 나이가 얼마나 되었든, 어떤 곳에서든, 어떤 일이든 그는 사람을 통제하고 싶어 한다. 밥을 먹거나 일을 할 때도, 각종 업무나 전문 분야에 관한 일에서도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듣기를 원하며, 그게 누구라도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안 된다. 그가 교회에서 권력을 잡고자 하는 욕망은 아무리 통제하려 해도 통제되지 않는다. 그는 그것이 바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고 본분 내의 일이라 생각하며, 그것이 야심이고 욕망이며 패괴 성품임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적그리스도는 어떻게 사람을 통제하겠느냐? 예를 들어 보자. 리더로 선출되면 그는 첫날부터 ‘이 사람들은 식사하고, 일하고 쉬는 것조차 규칙적이지 않네. 할 일이 많구나. 리더인 나의 책임이 막중하고 짐이 무겁네!’라고 생각한다. 그는 방안에 하루 종일 틀어박혀 두세 페이지의 내용을 쓴다. 어떤 내용이겠느냐? 첫째는 식사와 관련된 것이다. 식사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양을 먹어야 한다. 아침은 6시 반, 점심은 12시 반, 저녁은 6시 반, 바로 이 정해진 시간에만 식사해야 하고, 이보다 더 빠르거나 늦어서는 안 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시간을 준수해야 한다. 비바람이 불어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이를 어길 시에는 식사할 수 없다. 그다음에는 일과 휴식 시간인데, 이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아침 6시에는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데, 저녁에 아무리 늦게 잤어도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오후 1시에는 식후 휴식을 해야 하며, 저녁 10시 정각에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식사와 취침 시간을 정한 것 외에도 많은 세부 규정이 있다. 예를 들어, 식사는 반드시 지정 장소에서 해야 하며, 식사할 때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되고, 또 각자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등이다. 규정이 어찌나 세세한지, 하나님 집의 행정 법령 규정보다 훨씬 더 세세하다. 이러한 생활 속의 소소한 일들은 진리와는 관련이 없다. 일상생활과 식사가 규칙적이고 적절하며 건강에 나쁘지만 않다면, 이 원칙을 따르면 된다. 그렇게 세세하게 규정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그는 어째서 이렇게 세세하게 규정하겠느냐? 그는 말한다. “사람은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지만, 이러한 세부 사항이 없으면 방만하고 불규칙하게 생활해 사람다운 모습을 잃게 됩니다. 이제 제가 리더가 되었으니 여러분은 구제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흩어진 양이 아닙니다. 관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식주의 크고 작은 일을 모두 규정한 후, 그는 또 너에게 ‘비밀’을 알려 준다. “이러한 구체적인 생활의 세부 사항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가 알면 안 되는 것은 아니죠.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신 이러한 세부 사항들에 관련된 사역을 우리가 해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 외에도 자기가 또 다른 각종 규정을 만든다. 마치 그것이 매우 세부적인 명문 규정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는 이것으로 진리를 대체하고, 사람을 인도한다. 이러한 구체적인 명문 규정을 배포한 후에는, 그의 이른바 규정들을 사람들에게 지키게 한다. 만약 누군가가 지키지도 따르지도 않거나 무시하고 위배하면 책망하며, 책망한 후에는 또 그에게 이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게 한다. 그가 이런 것들로 진리를 대체하고, 사람을 인도하니, 사람이 어떤 길로 가겠느냐? 사람은 규례와 의식만을 지키게 되고, 형식만을 따르게 된다. 이러한 인솔하에 사람은 관념으로 ‘외적인 규례와 형식을 잘 지키고, 기상 시간, 취침 시간, 식사 시간을 잘 지키면, 내가 진리를 실행한 것 아니겠어? 그럼 앞으로 구원받는 것 아니겠어?’라는 오해가 생기게 된다. 구원받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겠느냐? 진리를 얻는 것이 그렇게 쉽겠느냐? 진리가 사람의 행위에만 관련된 것이겠느냐? 아니다. 적그리스도는 사람의 성품 변화와 진리를 깨닫고 실천하는 것을 무엇으로 생각한 것이냐? 공공질서나 국가의 법률을 준수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런 각종 규례가 하나님 말씀보다 더 높고, 더 구체적이며, 더 실제적이라고 사람들이 오해하게 만든다. 실제로 그는 이런 것들로 사람을 미혹하고 통제하여 사람의 행위를 철저히 통제한다. 그는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며, 사람이 진리 원칙에 따라 생활하고, 일하고, 본분을 이행하게 하지 않는다. 그는 인위적으로 각종 규례와 규정을 만들어 내어 사람들이 지키게 한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사람으로 하여금 그에게 굴복하게 하고,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하고, 이런 각종 규칙을 실행하고 지켜 그의 인도에 복종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면 그의 목적이 달성된다. 그는 사람의 행위를 구속하고 규범화함으로써 사람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다. 그가 일을 하는 출발점을 놓고 보면, 드러내놓고 지위를 얻고자 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사람을 통제하는 결과를 얻게 되며, 사람은 온전히 그가 정한 각종 규례대로 생활하고 일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의 마음속에 진리의 자리가 있겠느냐? 없다. 적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은 영적인 이해력이 없어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네가 그와 함께 교회 생활을 하면, 그는 오늘은 너에게 이렇게 하라고 했다가 내일이 되면 저렇게 하라고 한다. 그는 전혀 진리 원칙을 교제할 줄 모르고, 오로지 규례만을 지키게 한다. 네가 지키기 힘들어도 지키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너를 자유롭고 구속받지 않게 놔두지 않는다. 이것이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통제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통제할 때, 주로 무엇을 통제하겠느냐? (사람의 생각입니다.) 맞다. 주로 사람의 생각을 통제한다. 그는 단지 사람의 견해와 행동 방식만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진리를 교제한다는 명분하에, 공허한 이론과 교묘한 궤변으로 너를 미혹하여 너의 생각을 통제하고 네가 그를 따르고 그가 정한 대로 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미혹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네가 그의 주장대로 하지 않으면, 너는 마음속으로 마치 진리를 위배한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죄스러움과 미안함을 느낄 것이다. 그러면 이미 통제된 것이다. 하지만 네가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죄스러움을 느끼겠느냐? 만약 그렇지 않다면, 너는 바로 양심과 인성이 없는 사람이다. 네가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오히려 적그리스도에게 순종하면서도, 마음이 전혀 불안하지 않으며,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한다면,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에게 통제된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통제할 때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 있는데, 바로 적그리스도가 권력을 잡고 있는 범위 내에서 오로지 그 혼자 결정권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가 없을 때는 아무도 감히 의견을 내거나 최종 결정을 하지 못한다. 그가 없으면 다른 사람들은 엄마가 없는 아이처럼 기도하고 구할 줄도 모르고, 또 다 같이 상의할 줄도 모른다. 마치 허수아비나 죽은 사람처럼 말이다. 적그리스도가 늘 어떤 말들로 사람을 미혹하고 통제하는지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 분명 다양한 주장과 수단들이 있을 것이며, 그로 인한 결과 또한 미혹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보겠다. 몇몇 사람이 있는데, 자질이 평범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부족하지는 않고, 본분도 충성스럽게 이행하며, 거의 소극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적그리스도와 협력해 일정 기간 본분을 이행하면, 적그리스도를 의존하게 된다. 무슨 일이든 적그리스도의 말을 따르기 좋아하게 된다. 적그리스도가 그들의 버팀목이 되어 일단 이런 적그리스도를 떠나면 그들은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만약 적그리스도가 없으면, 그들의 본분 이행은 제자리를 답보하고, 문제가 있어도 교제를 통해 결과를 도출해 내지 못한다. 그저 적그리스도가 와서 해결해 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사실, 이 사람들의 자질과 두뇌, 경험과 경력을 놓고 봤을 때, 적그리스도에게 통제되기 전에는 그들이 이런 일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적그리스도에게 통제된 후, 일단 적그리스도를 떠나면 아무도 감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또한 아무도 일을 처리하도록 명확한 방안을 제시하지도 못한다. 이들의 생각은 마치 속박이라도 당한 듯 반 식물인간 같은 성질을 지닌다. 이들이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은 그들을 통제한 적그리스도가 어떤 일을 했기 때문이겠느냐? 분명 명확한 주장과 말로 그들이 마음으로부터 따르게 했을 것이며, 또 분명 주장과 관점, 또는 행동 방식이 사람들의 동조를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결코 진리 실제를 지니고 있지 않다. 그들의 주장과 관점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이 역시 사람을 미혹하려는 것이며, 그들에게 진리 실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일부 사람들이 적그리스도에게 감탄하는 것은 적그리스도가 확실히 어느 정도 은사와 재능이 있기 때문이지만, 결코 이런 것들이 사람에게 진리 실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적그리스도를 숭배하는 사람들은 진리가 없어 사람을 분별할 줄 모르기 때문에, 적그리스도를 숭배하고, 심지어 일부 영적인 유명 인사와 위인도 숭배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 또한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단지 일시적인 것일 뿐이다. 어느 날 그들이 적그리스도가 영적인 이론만 말할 줄 알 뿐 진리를 실행해 내지 못하며, 교회 사역을 수호하는 일을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진정으로 외식하는 바리새인이라는 것을 진짜로 알아차리게 되면, 적그리스도를 버리고 증오하게 될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은사와 말재주로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을 미혹하는데, 이런 사례는 너무나 많다. 예를 들어 보자. 네가 합리적인 건의를 하면, 다들 이 옳은 방안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교제해야 한다. 이것이 올바른 길이며, 본분에 충실하고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속으로 생각한다. ‘너의 그 방안을 왜 나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는 마음속 깊이 이 방안이 옳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가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그의 본성에 따르면, 그는 절대로 너의 옳은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는 반드시 온갖 방법을 마련해 너의 방안을 부정하고 다른 방안을 세울 것이다. 그리하여 네가 자신의 방안이 아무런 쓸모도 없다고, 역시 그의 방안이 좋다고, 역시 그를 떠날 수 없다고, 오직 그가 사역해야만 다들 자신의 역할을 발휘할 수 있다고, 그가 없으면 어떤 사역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사람이 그를 떠나면 쓸모없어져 아무 일도 이룰 수 없다고 느끼게 만든다. 적그리스도의 일 처리 수법은 항상 새롭고 특별한 것과 이상론을 내세우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해도 소용이 없으며, 그는 그것을 부정한다. 설령 다른 사람의 의견이 그의 생각과 일치한다고 할지라도 그가 먼저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면 절대 인정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으며, 어떻게 해서든 깎아내리고 부정하고 정죄하는데, 의견을 제시한 사람이 자기 생각이 틀렸다고 느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만 그제서야 그만둔다. 적그리스도 부류의 사람은 스스로를 내세우고 다른 사람을 깎아내림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숭배하고 중심에 두게 한다. 그는 자기 혼자만 빛나고자 하고, 다른 사람은 그저 그의 들러리가 될 뿐이다.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은 전부 옳으며,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은 전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늘 새롭고도 기이한 관점을 내세워 다른 사람의 관점과 행동을 부정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에 트집을 잡고, 다른 사람이 제시한 방안을 교란하고 부정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그의 방법대로 움직이게 된다. 그는 이런 방식과 수법으로 끊임없이 너를 부정하고 공격하면서 네가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네가 그에게 점점 더 복종하고, 점점 더 그를 우러러보고 앙모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너는 그에게 철저히 통제되고 만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제압하고 통제하는 과정이다.

적그리스도는 다양한 수단으로 사람을 미혹하고 통제한다. 그저 눈짓이나 몇 마디 말로 사람들이 그의 말을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다. 절대 이렇게 간단하지 않다. 사람을 통제하든, 아니면 어떤 인사권, 재무권, 발언권과 같은 어떤 한 분야의 권력을 통제하든, 그는 각기 다른 수단을 사용한다. 이는 결코 어쩌다 한 번 하는 게 아니며, 남들이 그에게 감탄하고 그를 선출할 때까지 꾸준히 자신을 드러내고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면 권력이 그의 손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는 그가 일정 기간 동안 경영해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고 통제하는 또 다른 수단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지속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어 남들이 그를 이해하게 하고, 더 많은 사람이 그가 하나님 집을 위해 했던 공헌을 알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그는 “예전에 제가 복음 전파 방법을 좀 생각해 내서 복음 전파의 성과가 어느 정도 좋아졌습니다. 지금도 일부 교회들에서는 이런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사실 각지의 교회들은 많은 복음 전파 경험을 종합했는데, 적그리스도는 끊임없이 자신이 했던 올바른 결정과 공로를 뽐내고, 모든 사람이 다 알게 될 때까지 여러 곳에서 이를 알리고 강조하고 반복한다. 그의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자신의 이미지와 명망을 세우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동조하고, 그를 옹호하고 앙망하고, 일이 생길 때마다 그에게 도움을 청하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이러면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고 통제하는 목적을 이룬 것 아니겠느냐? 대부분의 적그리스도는 모두 이렇게 하는데, 사람을 미혹하고, 구슬리고, 통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어디에 있는 교회이든, 어떤 무리이든, 어떤 사역 장소이든,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만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그를 숭배하고 앙모하게 된다. 어려움에 부딪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누군가의 인도가 필요할 때, 특히 중요한 일을 결정해야 할 때, 많은 사람이 은사가 있는 적그리스도를 떠올리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그가 여기에 있으면 좋을 텐데. 그 사람만이 우리가 난관을 헤쳐 나갈 방도를 마련해 줄 수 있어. 그는 아이디어와 방법이 가장 많고, 경험이 가장 풍부해. 머리도 제일 잘 돌아가.’ 이들이 적그리스도를 이 정도로 숭배할 수 있는 것, 이는 적그리스도가 평소에 자기를 드러내고, 자랑하고, 연출한 것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지 않겠느냐? 만약 그가 말과 행동이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면, 일만 할 줄 아는 사람, 말수가 적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 절대 자신을 떠벌리거나 드러내지 않는 사람, 더 나아가 자신을 자랑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사람을 미혹해 그를 중시하고 앙망하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째서 비교적 정직한 사람들, 진리를 실행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거의 리더 일꾼으로 선출되지 못하는 것이겠느냐? 바로 대부분의 사람이 진리 실제가 없고 또 분별에 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다들 은사가 있고, 말주변이 좋으며, 자기를 드러내기 좋아하는 사람을 선호한다. 이런 사람을 특히 부러워하고, 이들에게 특히 동조하며, 이들과 함께하고자 한다. 그래서 적그리스도가 자연스럽게 대부분의 사람이 숭배하고 앙망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어쨌든 적그리스도는 사람을 통제하는 일련의 수단들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쏟아부어 자신들의 지위와 사람들 마음속의 자신의 이미지를 경영한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사람을 통제하는 그들의 목적을 달성한다. 사람을 통제하는 목적이 달성되기 전, 적그리스도는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마음속으로 지위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겠느냐? 단순히 좋아하고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계획해 의도적으로 얻으려 한다. 그는 권력과 지위를 무척이나 중요시한다. 사람을 미혹하고 통제할 때 반드시 갖춰야 하는 조건이 지위이며, 지위만 있으면 모든 혜택을 저절로 누리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고 통제하는 것은 심혈을 기울여 경영해 이루는 것이지 결코 어쩌다가 이 길을 걷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가 한 모든 일은 목적과 속셈이 있으며, 모두 오랫동안 계획한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권력을 얻어 사람을 통제하는 목적을 이루면, 그에게는 이것이 수확이다. 이는 적그리스도가 마음속으로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성과이다. 그는 속셈, 목적, 의도를 가지고 권력과 지위를 추구하며, 또한 심혈을 기울여 이를 경영한다. 그가 말하고 행동할 때 목적성과 의도성이 무척이나 강하며, 목표가 매우 분명하다. 예를 들어 보자. 그는 자신이 예전에 어떤 레벨의 리더 일꾼이었는지, 복음 전파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얻었는지, 어떤 주옥같은 방식으로 복음을 전파했는지를 뽐낸다. 사람들에게 그의 이런 경험과 자본을 뽐내는 것이다. 이렇게 뽐낼 때, 그는 마음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겠느냐? 그의 출발점은 무엇이겠느냐? 어떤 말들을 할지, 진실된 말과 거짓된 말을 어떻게 섞어서 이야기해야 할지, 그의 마음속에 계획이 있지 않겠느냐? 그는 아무렇게나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하는 말은 모두 목적을 지니고 있지 결코 단지 몇 마디 말로 자신을 치켜세우는 것이 아니다. 그가 하는 말이 너에게는 무척이나 적절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며, 적정선을 매우 잘 지키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사람이 진리를 깨달은 것을 보면, 그는 마음속으로 경계하며 그 사람 앞에서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고, 그가 분별할까 봐 좀 얌전히 군다. 만약 이런 사람들이 새 신자이거나 일반 신자라면, 그는 이런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를 고민한다. 만약 이런 사람들이 모두 리더 일꾼이라면, 그는 리더 일꾼과 같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해야 할지 고민한다. 이런 사람들이 업무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한다. 그는 외부적인 일에 있어서는 무척이나 영리하여 어떤 사람에게 어떤 말을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으며, 이런 것들을 매우 분명히 구분한다. 즉, 적그리스도와 같은 부류의 사람은 행동할 때 모두 의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과 행동, 더 나아가 말할 때 어휘조차도 의도를 가지고 선택한 것이다. 그가 일시적으로 패괴를 표출하거나, 또는 분량이 작거나, 우매하고 무지해서 어디에서든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의 수단, 일 처리 방식, 말할 때의 어휘 선택을 보면, 적그리스도와 같은 부류의 사람은 매우 기이하고 사악하다. 그들은 자신의 지위를 위해, 사람을 통제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기회만 생기면 자신을 드러내며, 어떠한 틈도 놓치지 않고, 어떠한 기회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런 사람이 내 앞에서 이런 모습을 표출하겠느냐? (표출합니다.) 어째서 표출한다고 하는 것이냐? (그의 본성 본질이 바로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적그리스도가 그저 단순히 드러내는 것이겠느냐? 그는 무엇을 위해 자신을 드러내겠느냐? 그는 지위를 얻으려는 것이며, 그 의미는 ‘넌 내가 누군지 모르지? 내가 예전에 한 일을 봐봐. 이런 좋은 일은 내가 한 거야. 하나님 집에 많은 공헌을 했지. 네가 알았으니 나한테 더 큰 사역을 맡겨야 하지 않겠어? 너도 나를 우러러봐야 하지 않을까? 네가 무슨 일을 하든 나를 의지해야 하지 않을까?’이다. 이는 목적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 적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다 통제하려고 한다. 통제를 다른 말로 뭐라고 하겠느냐? 조종과 우롱이며, 너를 지배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형제자매가 모두 어떤 일을 잘했다고 칭찬하면, 적그리스도는 즉시 자기가 한 것이라고 말해 사람들이 자신에게 고마워하게 만든다. 정말로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하겠느냐?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조금이라도 좋은 일을 하면 늘 다른 사람들이 다 알고 자신을 우러러보고 칭찬하게 하고 싶어 한다. 그러면 그는 만족한다. 적그리스도는 무슨 일을 하든 사람들의 칭찬과 숭배를 받고 싶어 해 이를 위해서 어떤 고난이라도 달게 받는다. 적그리스도는 지위와 권력을 위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어떤 기회도 놓치지 않는다. 설령 드러내는 것이 매우 어리석어 보이거나 수단이 서툴러 사람들의 경멸을 받을지라도 그는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는 사람을 통제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끊임없이 이를 위해 공을 들이고, 심혈을 기울이고 머리를 쥐어짜 계획을 세운다. 그는 자기가 조금이라도 좋은 일을 하면 끊임없이 여기저기에 자랑하고 드러내지만, 다른 사람이 좋은 일을 하면 질투하고 미워한다. 게다가 생색을 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마련해 좋은 일은 자신이 한 것처럼 만들거나 자신도 한몫했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적그리스도는 사람을 통제하는 수단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결코 일시적인 간사함이 아니며, 어쩌다가 한두 가지 일을 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는 많은 일과 말을 한다. 그들의 말과 행동 방식은 미혹성이 있으며, 그들이 그런 말과 일을 하는 최종적인 목적은 바로 사람을 통제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통제하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사람의 마음속에서 권위와 지위를 갖기 위함이다. 권위와 지위가 생기면, 그들은 지위가 주는 복과 지위가 가져다주는 다양한 이익을 누릴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날씨가 더울 때 다른 사람은 에어컨이 없는 방에 살아도 그는 에어컨이 있는 방에 살 수 있으며, 식사할 때 다른 사람은 반찬 하나만으로 밥을 먹어도 그는 고기와 국을 추가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은 방에 들어가 앉을 자리가 없어 모두 바닥에 앉아야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의자는 그를 위해 남겨둬야 한다. 이런 특별 대우는 지위가 가져다주는 것이며, 그들은 이런 지위가 주는 복을 누리기를 좋아한다. 물론 이런 이익과 즐거움은 그들의 야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은 지위가 그들에게 가져다주는 이런 혜택뿐만 아니라, 지위가 그의 내면세계에 가져다주는 허영심, 만족감, 안전감도 필요로 한다.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회유되고, 통제된 사람은 어떤 모습들을 보이겠느냐? 그들은 서로 지위와 권력, 은사와 능력을 비교하고, 또 가정 환경과 출신, 누가 꼼수가 더 많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지를 비교한다. 종교계에 있는 적그리스도들은 함께 있으면 누가 더 오래 기도하는지도 비교한다. 어떤 사람이 10분 기도하면, 다른 사람은 20분 기도하고, 예배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도만 하는데, 마치 불당에서 사람이 경을 외우는 것처럼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이런 기도를 하나님이 듣겠느냐? 그들의 기도를 보면 성령이 그들에게 역사하지 않는다. 그들은 누가 더 오래 기도하고 더 큰 소리로 기도해서 다른 사람을 압도할 수 있는지를 겨룬다. 이는 정신이 이상한 것 아니겠느냐? 그들이 하는 일은 이해할 수 없고 어처구니가 없다.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통제된 사람은 주로 이런 모습을 보인다.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인도하면 이런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네가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통제되면, 너는 그를 앙망하고 따르게 된다. 모든 일에 그의 말을 따르고,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으며, 하나님이 말씀해도 듣지 않게 된다. 네가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통제한다는 것은 바로 사탄이 사람에 대한 지배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네가 사탄에게 통제되어 마음속에 사람의 지위와 사탄의 지위가 생기면, 성령이 역사하지 않고 너를 버리게 된다. 너는 적그리스도를 따르기 좋아하지 않느냐? 그를 앙망하기를 좋아하지 않느냐? 그의 통제와 지배를 받기 좋아하지 않느냐? 그렇다면 너를 그에게 넘겨주겠다. 적그리스도가 무슨 말을 하든 너는 그것이 모두 진리라고 생각하면, 너는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따라가거라. 너를 그에게 넘겨주겠다. 하지만 그 결과는 네가 책임져야 한다. 어느 날 네가 구원받지 못해도 하나님을 찾거나 원망하지 마라. 이는 하나님과 무관하다. 이는 네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며, 너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통제하는 이 방면의 모습에 대해서는 거의 다 교제하였다. 사람은 이제 통제란 무엇인지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하나님을 따르고 있고, 하나님의 설교를 듣고 있으며,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있고, 교회 생활을 하며, 본분도 이행하고 있고, 하나님 집을 떠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적그리스도에게 통제되었느냐? 가장 주된 원인은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먼저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었고, 그런 다음 적그리스도를 무척이나 숭배하게 되면서 적그리스도에게 통제된 것이다. 통제란 무엇이겠느냐? 바로 그에 의해 좌우되고 속박되는 것이다. 비록 네가 본분을 이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본분 이행 과정에서 진리 원칙을 구할 때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면, 적그리스도의 주장과 관점이 너의 관념과 상상에 부합하면 할수록 너는 그것이 옳고 진리에 부합한다고 느끼게 된다. 그러면 너는 더 이상 진리 원칙을 구하지 않게 되고, 너 자신조차 독립적인 사고를 하기 싫어하게 되며, 하나님 말씀에 따라 실행하지도 않게 된다. 너는 적그리스도의 관점이 전혀 틀리지 않다고 마음속으로 완전히 인정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네가 진짜로 하나님 말씀에 따라 실행할 때 오히려 마음이 불안하고 안심이 되지 않으며, 이렇게 하는 것이 적그리스도에게 미안한 짓이니 절대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는 적그리스도의 주장과 관점에 완전히 속박된 것 아니겠느냐? 너는 일을 할 때 하나님 말씀에 따라 판단하고, 구하고, 지키지 않게 된다. 그렇게 할 줄 모르고, 할 용기도 없다. 어째서 할 줄 모르고 할 용기도 없겠느냐? 적그리스도가 말하지 않았고, 그가 너에게 결정이나 결론을 내려 주지 않았으며, 결과를 알려 주지 않았고, 길을 알려 주지 않았다. 그래서 너는 자신이 이해한 대로 하지 못하고, 길을 잘못 들까 봐, 실수를 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 이것이 통제된 것 아니겠느냐? 너는 어째서 늘 그렇게 두려워하는 것이냐? 하나님 말씀이 명확하지 않단 말이냐? 하나님 말씀에서 네게 원칙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지 않았단 말이냐? 너는 어째서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기어코 적그리스도의 말을 듣는 것이냐? 이러면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통제된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사람에게 벽을 쌓으라고 했다고 해 보자. 얼마나 높고 길게 쌓아야 하는지, 어디에 쌓아야 하는지를 모두 그에게 알려 주었다. 그런데 적그리스도가 와서 “이 벽이 이 정도 높이인 것은 괜찮지만,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렇게 쌓으면, 바람이 불 때 쓰러지지 않을까요?”라고 말하면, 그는 “그렇네요. 쓰러지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지 않았으니, 일단 쌓지 않을래요.”라고 한다. 내가 가서 보고 “왜 쌓지 않는 것이냐? 벌써 며칠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쌓지 않았다니, 이는 일을 지체하는 것 아니냐?”라고 하자, 그는 “어떤 사람이 바람이 불면 쓰러질까 걱정된다는 문제점을 제시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그에게 또 바람에 쓰러질까 걱정이 되면, 기둥으로 지지대를 만들면 된다고 하자, 그는 그 말을 기억해 두었다. 나중에 적그리스도가 또 그를 교란하러 와서 “기둥 하나로 되겠습니까? 두 개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하자, 그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를 사용하라고 하셨지, 두 개를 사용하라고는 하지 않으셨어.’라는 생각에 또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모르게 되었다. 적그리스도에게 이렇게 미혹되고 교란된 후에는, 내가 앞에서 한 말들이 전부 소용이 없어졌고, 그는 그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적그리스도에게 통제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느냐? 이 일을 할 때, 너는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하겠느냐? (하나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너는 어째서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았느냐? 듣기 싫었느냐? 듣고 싶었지만, 네가 적그리스도의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에 미혹된 것이다. 이렇게 미혹되어 네가 적그리스도에게 순종하게 되었는데, 이는 적그리스도에게 납치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너의 행위와 생각이 그에게 속박되고 결박되어 있다면, 그것은 통제된 것이다. 결국 너는 본분도 이행하지 못했고, 하나님께 순종하지도 못했으며,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도 못했다. 이 결과는 누가 초래한 것이겠느냐? 너의 우매함이 만든 것이며, 또한 적그리스도의 미혹, 교란, 통제와도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그리스도가 여기에 끼어든 것은 어떤 의미이겠느냐? 그는 자신의 뛰어남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 ‘하나님이 너에게 여기에 벽을 쌓으라고 하셨다고 무작정 따르는 거야? 네 생각은 어쩜 그렇게 단순해? 여기에 벽을 쌓으면, 바람이 불면 무너지지 않겠어? 네가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것보다 내 말을 따르는 게 더 정확하니, 넌 내 말을 들어야 해. 네가 내 말을 들으면 내 기분이 좋아지지만, 네가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내 기분이 나빠지고 언짢아져. 네가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큰일 나지, 그럼 나를 어떤 위치에 두는 거야?’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는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중간에 끼어들어 일부러 이렇게 훼방을 놓았다. 훼방 놓은 후 이 일이 성사되지 않았지만, 그런데도 그가 뛰어나 보이게 되었기에 그는 기뻐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벽을 쌓으라고 하였으면, 사람은 최대한 빨리 벽을 쌓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결과는 벽을 쌓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누가 초래한 것이겠느냐? 적그리스도가 이렇게 만든 것이다. 사람이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교란되고, 통제된 것이다. 이는 뱀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이런 말씀은 진리 아니겠느냐? 진리이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네가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저 네가 그 말을 따르고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해야지, 분석해서는 안 된다. 비록 네가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정의를 마음속으로 알아야 한다. 즉, 이 진리를 네가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이 너의 관념에 부합하든 아니든, 네가 이해하든 못하든, 네가 아무리 어리석더라도 너는 하나님 말씀을 지켜야 한다. 이것이 너의 직책과 본분이다. 네가 이것을 확실히 하면, 사탄이 또다시 너를 유혹할 때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 것이 바로 가장 중요한 준칙이다. 사탄이 어떤 말을 하든 신경 쓰지 마라. 그렇다면 아담과 하와가 뱀의 말을 들었는데, 그 최종 결과는 무엇이었느냐? 사탄에게 미혹되고 통제되었다. 사탄은 그럴듯하고 모호한 마귀적인 말로 아담과 하와의 행위를 좌지우지하고 통제하였다. 이는 하나님이 보고자 했던 결과가 아니다. 뱀이 그 말을 한 목적은 무엇이었겠느냐? 바로 그 말을 통해 사람의 생각을 어지럽히고, 사람의 행위를 좌지우지하여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저버리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을 갖게 된 후에는 뱀이 가리킨 그 길을 따르게 되었다. 사탄의 목적은 무엇이었겠느냐? 바로 ‘하나님 말씀을 듣지 말고, 내 말을 들어야 해. 넌 이 열매를 먹어야 해.’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뜻은 먹지 말라는 것이었고, 사탄의 뜻은 먹으라는 것이었는데, 결국 아담과 하와는 먹었느냐, 안 먹었느냐? (먹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사람을 통제한 것이다. 네가 적그리스도의 마귀적인 말을 들으면 혼란스러워 뭐가 뭔지를 모르게 되고 방향을 잃게 되며,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너의 행위와 생각이 그에게 좌지우지되고 통제된 것 아니겠느냐? 이것이 바로 통제의 의미이다. 너희는 이런 상황에 부닥친 적이 있느냐? 일부 심사가 사나운 사람은 네가 어떤 일을 매우 순조롭게 잘해서 곧 성과가 나와 네가 돋보이게 될 때, 자신이 이 일에 참여할 수 없으며 네가 돋보이면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럴듯한 관점이나 문제를 제시해 너를 미혹하고, 교란하고, 통제한다. 결국 너는 얼떨결에 그의 말도 옳다고 생각해 어찌할 바를 몰라 본분도 이행하지 못하고 중단하게 된다. 어리석지 않으냐? 처음에 네가 미혹되지 않았을 때는 그래도 꽤 냉철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가 교란하자 흐리멍덩해져 어떻게 해야 적합한지 모르게 된다. 이는 무슨 문제이겠느냐? (미혹된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와 사탄에게 쉽게 미혹되고 통제되는 사람은 우매한 사람이자 어리석은 사람이다.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고 통제하는 이런 모습에 대해 충분히 구체적으로 교제하지 않았느냐?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일이 닥쳤을 때 각각의 진리와 대조해 자신의 언행과 본질을 반성해야 한다. 또한 이와 동시에 주변에서 발생하는 사람, 일, 사물을 인식하고 분별하여 진리를 더 밝히 알고 다양한 부류 사람의 본성 본질을 더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지금 너희 중 대부분은 이제 막 각종 진리의 구체적인 내적 상태와 모습을 접했다. 어째서 이제 막 접했다고 하겠느냐? 바로 이제 막 세부 사항을 이해하기 시작해 진정한 진입과는 아직도 일정한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해했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진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네가 이해했다는 것은 단지 네가 마음속으로 이런 일들에 대한 개념과 정의가 상대적으로 좀 더 정확해졌고, 진리에 좀 더 부합하게 되었다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이는 네 개인의 진입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 네가 듣고 이해했다고 해서, 인식했다고 해서, 자신의 내적 상태와 결합할 수 있다고 해서, 또한 자기 주변의 사람, 일, 사물과 결합할 수 있다고 해서 네가 진입한 것은 아니다. 이는 완전 별개의 일이다. 사람이 구원받고 성품 변화에 이르는 것은 각 방면의 진리를 깨닫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것 또한 각각의 진리를 실행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만약 너희가 각각의 진리에 대한 인식과 진입에서 어느 정도 기초가 있다면, 내가 너희에게 예를 들어 보라고 할 때, 너희는 즉시 자신의 모습, 또는 자신이 체험하고 본 일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가 교제하기 훨씬 더 수월해지고, 그렇게 자세하게 말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는 너희가 이미 체험했고,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너희에게 묻는다면, 너희는 현장에서 생각해야 하고, 당장 기억을 뒤져 찾아야 한다. 내가 보기에 너희는 이런 일들에 대해 알지 못하고 경험도 없으면, 내가 자세히 말해 줘야 한다. 이런 일들의 중심과 핵심적인 것들, 그리고 본질적인 문제를 모두 다 이야기해서 너희가 각종 진리의 세부 사항을 기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면, 실행할 때 개념과 정의에 관한 것을 혼동하지 않게 되며, 개념 바꿔치기를 하지 않게 되고, 또 너무 복잡하다고 느끼지도 않게 된다. 각 항목별로 분명히 구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면 나중에 교제하기 쉬워진다. 지금은 너희가 아직 닿을 수 없기 때문에, 내가 늘 자세히 얘기해야 한다. 우리가 예배에서 교제하는 이런 내용들을 너희는 얼마나 되새기고 소화할 수 있느냐? 만약 10%밖에 안 된다면, 너희는 분량이 전혀 없는 것이다. 30%라면, 약간 이해한 것뿐이고, 50%에 이른다면, 너희가 어느 정도의 분량을 갖추었으며, 어느 정도 진입한 것이다. 만약 이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진입이 거의 없는 것이다. 이해하였느냐? 내가 이렇게 너희에게 교제해 주는데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바로 자질이 너무 부족하여 진리를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자, 오늘 교제는 여기에서 마치도록 하겠다. 다음에 보도록 하자!

2019년 4월 17일

성경은 개역한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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