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조 사람을 미혹하고 회유하고 위협하고 통제한다 (제 4 부)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회유할 때 조건이 있지 않으냐? 그가 진리를 사랑하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을 회유하겠느냐? (회유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은 다들 분별이 있어 적그리스도가 회유하지 못하며, 그들도 적그리스도를 따라가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적그리스도는 어떤 사람들을 회유하겠느냐? 적그리스도가 마음속으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바로 지위가 있는 사람의 환심을 사는 것에 능한 사람, 아첨과 아부를 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또 나쁜 짓을 해서 출교당할까 두려워 적극적으로 그의 비위를 맞추는 사람이다. 적그리스도는 그들을 보호하는 조건으로 사람을 회유하고 사람의 마음을 매수하여 이들이 자신을 가까이하게 만든다. 적그리스도가 회유하는 이런 사람들은 이제 막 믿기 시작해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무릇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양심과 이성이 있겠느냐? 이런 사람들 중에는 좋은 인간이 하나도 없고,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택하지 않는다. 적그리스도는 이런 사람들을 회유해 마치 어릿광대처럼 이들을 이끌면서 자신이 무슨 감투라도 쓴 듯, 무슨 지위라도 생긴 듯 느끼고 매우 만족해하는데, 이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아니겠느냐? 적그리스도는 또 어떤 부류의 사람을 회유하겠느냐? (인성이 비교적 악한 사람을 회유합니다.) 바로 악인이다. 적그리스도는 악인을 어떻게 대하겠느냐? 그는 악인을 보호한다. 예를 들어, 교회에 악인이 한 명 있다고 치자. 형제자매들이 모두 그가 무척 나쁘다고, 그가 교회에 있기만 하면 아무도 마음 편히 있을 수 없다고, 그가 다른 사람들의 본분 이행뿐만 아니라 교회 사역도 교란한다고, 그에게 본분을 이행하게 하기만 하면 교회 사역이 손해를 입는다고 말해도 적그리스도는 이런 악인을 이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회유해 자신의 곁에 두고 자신을 위해 봉사하게 한다. 적그리스도는 악인을 출교시키지 않고 오히려 보호한다. 그는 오직 악인이 자신을 옹호하지 않고 분별할 때만 처리한다. 그에게 아첨하는 자나 그를 지지하는 자, 그를 반대하는 자만 아니라면, 그는 이들을 모두 회유하고 매수해 자신의 세력을 키운다. 그렇다면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이러한 사람과 어떻게 지내겠느냐? 그들은 기본적으로 서로 아첨하고 아부하는 방식으로 왕래한다. 적그리스도가 어디를 가든 악인들은 몰려드는데, 마치 똥파리처럼 늘 함께 모인다. 그들은 함께 모여 있어도 결코 진리를 교제하지 않는다. 이는 그들이 다들 진리를 싫어하고, 그들 중에 진리를 교제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구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방인의 말만 한다. 대부분이 이간질하거나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며 자신을 높이는 말을 하고, 남들을 괴롭히는 짓을 상의한다. 또한, 그들은 어떻게 하나님 집을 경계할지를 연구하고, 어떻게 상부와 대립할지를 상의한다. 만약 누군가가 그들의 문제를 보고하려 하면,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미리 알 수 있을지, 그리고 알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상의한다. 이 악인 무리는 바로 이런 짓들을 상의한다. 그들은 함께 있어도 결코 본분 이행에 관해 교제하지 않으며, 결코 진리를 교제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형제자매들이 나약하고 소극적이어서 본분을 이행할 의욕이 없는지, 어떻게 그들을 돕고 붙들어 줘야 하는지, 또는 교회의 어떤 방면의 사역이 성과가 좋지 않을 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나 길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과 같은 일들 말이다. 그들은 결코 이런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을 상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어떻게 상부와 하나님 집을 속이면서 하나님 집에서 그들의 실상을 알지 못하게 할 수 있을지만을 의논한다. 일단 누군가가 상부와 연락하거나 그들의 상황을 보고한 것을 발견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지위가 위협당했고 자신들의 일을 망쳤다고 판단하고는 집요하게 책임을 추궁하여 미심쩍은 사람을 찾는다. 미심쩍은 사람을 찾은 다음에는 바로 그 사람을 다른 곳으로 보내 격리시키고, 또 아무도 상부에 상황을 보고하지 못하게 명령을 내린다. 이렇게 하면 아무도 감히 그들의 상황을 보고하지 못하게 된다. 적그리스도는 바로 이렇게 교회를 완전히 통제하게 된다. 그들이 뒤에서 어떤 악을 저질러도 상부에서 알 수 없게 된다. 상부가 상황을 알고 그들의 허점을 발견해서 그들을 조사하라고 명령하고, 결국 그들을 모두 교체시키고 출교시킬 때까지 말이다. 이러한 적그리스도와 악인 무리들은 단지 몇 달 만에 교회 사역을 엉망으로 만들 수 있으며, 형제자매들이 서로 시기하고, 훼방 놓고, 폭로하고, 공격하게 하여 교회를 분열시킬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고 교회를 통제한 결과이다. 적그리스도는 바로 이렇게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미혹하고, 또 이용할 수 있는 악인들을 회유해 교회를 통제하여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공고히 한다. 악인이 그의 말을 들으면 보호해 주지만, 악인이 그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악인을 우선적으로 처리한다. 만약 악인이 그를 따르고, 그에게 귀순하고 회유될 수 있다면, 그는 악인을 자신의 공범으로 만들어 자신이 나쁜 짓을 할 때의 조력자나 감시자가 되게 한다. 그러고는 이들을 형제자매들 사이에 침투시켜 누가 그에게 의견을 가졌는지, 누가 그가 한 일에 분별이 있는지, 그가 한 어떤 나쁜 짓들이 발견되었는지, 누가 늘 상부와 연락해 그의 문제를 보고하려 하는지를 알아보게 한다. 적그리스도와 악인은 바로 이런 일들을 전문적으로 조사하는데, 이런 일들은 적그리스도가 가장 걱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들은 종종 함께 대책을 논의해 자신들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과 자신들을 의심하는 사람을 모두 적으로 간주하고 대한다. 오늘은 핑곗거리를 찾아서 이 사람을 괴롭히고, 내일은 꼬투리를 잡아서 저 사람을 괴롭히며, 심지어 이유와 핑계를 대고 이런 사람들을 제명하고 출교시키도록 하나님 선민을 선동하기도 한다. 적그리스도가 일단 리더 일꾼이 되면 바로 이런 짓들을 하는데, 몇 달 만에 교회를 엉망진창으로 만들 수도 있다. 새 신자가 많은 교회라도 불처럼 타오르다가 그들이 끼얹은 물로 그 불이 꺼지고 만다. 그래서 적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원수이자 하나님 선민의 원수라고 하는 것이다. 이 말은 전혀 지나치지 않고, 너무나 정확하다! 적그리스도가 권력을 잡은 곳과 악인이 권력을 잡은 곳에서는 교회가 난장판이 되어 교회 생활이 전혀 없으며, 하나님 말씀을 정상적으로 먹고 마시지도 못하고, 진리를 교제하는 분위기도 없다. 오로지 아귀다툼과 못된 짓을 일삼는 것뿐이다. 이것이 바로 마귀가 권력을 잡은 것이다. 마귀가 권력을 잡으면 결과가 좋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 선민에게 재난을 가져올 뿐이다. 이는 틀림없다.

어떤 적그리스도는 어떤 교회의 리더가 되면, 먼저 교회에서 누가 예전에 늘 상부에 문제를 보고했는지를 연구하고 이런 사람을 멀리하려고 한다. 설령 이 사람의 집에서 그를 접대할 수 있어도 가지 않는다. 만약 누가 아부와 아첨을 잘하고, 늘 리더 주변을 맴돌 뿐만 아니라, 비위를 잘 맞춘다면, 그는 이런 사람의 집에 머물 궁리를 한다. 다른 사람이 “그의 집에서는 두 명의 자매를 접대하고 있어요.”라고 하면, 그는 “안 됩니다. 자매들에게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하세요.”라고 한다. 다른 사람이 “당신 마음대로 움직이면 안 됩니다. 두 자매가 그곳에 묵는 게 적합해요. 마음대로 움직이면 본분 이행에 영향을 줄 겁니다.”라고 하면, 그는 “제가 리더이니 제가 결정합니다. 당신은 반드시 제 말을 들어야 해요!”라며 두 자매를 강제로 옮기게 한다. 그가 왜 꼭 그 집에서 지내려 하는 것이겠느냐? 바로 그 집 사람들이 온순하고 나약해서 그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하든, 뒤에서 어떻게 방탕하게 굴든, 그 집 사람들은 보고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바로 이런 곳을 찾아 머물려는 것이다. 일정 기간 거주한 후에는 악인도 불러들인다. 그들은 바로 그곳에서 나쁜 짓을 하고, 대책을 논의하고, 이런저런 사람들을 괴롭힐 방법을 궁리한다. 적그리스도와 악인이 교회에 나타나면, 그는 먼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먼저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공고히 한다. 그는 일단은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을 건드리지 않는데, 이는 자신의 지위에 불리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일단 현재의 질서를 깨지 않고, 먼저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한 후 적절한 조력자를 찾는다. 그다음은 진리를 추구하는 형제자매들을 괴롭히고 해결할 대책을 논의한다. 그는 어떻게 괴롭히고 해결하겠느냐? 우선 그에게 동조하는 사람, 그에 대해 분별이 없는 사람, 그에게 이용당할 수 있는 사람을 회유한다. 아무리 해도 끌어들이지 못하는 사람과 그에 대해 분별이 있는 사람은 핑계와 이유를 대고 격리하거나 제명한다. 적그리스도의 이런 행위는 어떤 성품을 표출한 것이겠느냐? (흉악한 성품입니다.) 그가 어디서 리더를 하든, 그곳은 난장판이 되며, 교회 생활의 질서가 모두 깨진다. 네가 그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억압과 제한을 받고, 심지어 제명되고 출교된다. 일부 적그리스도는 불량배, 건달, 막돼먹은 여자 같다. 하나님을 믿는데도 지위를 얻고자 하며, 하나님 집에서 권력을 마구 휘둘러 하나님 선민을 통제하려 한다. 바로 이렇게 교회를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그에게 미혹되고 통제당해 결국 자신을 망치게 된다.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회유하는 측면의 모습은 거의 다 이야기했다. 내가 이야기한 이런 일들이 너희에게는 매우 희한하게 들리지 않느냐? 그런 일이 상상조차 안 돼서 ‘정말 그런 일이 있나? 아니겠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 중에 어떻게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어?’라고 생각한다.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경우도 있다. 사람들 앞에서는 모두 번듯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뒤에서의 모습이 바로 그들의 진짜 모습이다. 사람들 앞에서 하는 말과 행동은 모두 위장된 것이고 허상이며, 뒤에서 하는 말과 행동이 바로 본모습이다. 만약 사람들 앞에서의 모습과 뒤에서의 모습이 다르다면, 어느 쪽이 진짜이고 어느 쪽이 가짜인지 분별할 수 있지 않으냐? 적그리스도는 사람들 앞에서는 아주 점잖은 척한다. 하지만 그가 뒤에서 하는 그런 짓들을 만약 사람들이 알게 되면 역겨워할 것이고, 그가 군자가 아니라 비열한 소인배라며 그와 어울리는 것조차 수치스러워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정상적인 사람과 잘 지낼 수 있겠느냐? 잘 지내지 못한다. 그의 경우는 정상적인 사람이 나쁜 습관을 지닌 경우가 아니라, 성품의 문제이다. 그의 이런 성품을 보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며 마귀이다. 네가 말해 보아라. 사람이 짐승과 상대하면 어떤 느낌이겠느냐? 마치 네가 돼지를 방안에 두고, 깨끗이 씻긴 다음 옷을 입혀 반려동물로 키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다음 날, 너는 집안이 돼지우리가 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돼지는 집안에서 먹고, 마시고, 배설하며, 위생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때야 너는 돼지를 이렇게 키우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돼지는 짐승이다! 적그리스도 부류의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어느 정도 자질과 교양이 있거나 과거 사회에서 명망이 있었던 사람이어서 어느 정도 다른 사람들의 존중을 받는다. 하지만 대부분은 짐승처럼 양심과 이성조차 없다. 그에게 정상 인성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정상 인성이 없다면, 여전히 사람이겠느냐? 그렇다면 너희는 그의 인도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만약 형제자매가 이런 사람의 수중에 떨어지면 어떻게 되겠느냐? 미혹되고 회유되는데, 고통을 겪게 될 것이 분명하다. 적그리스도와 같은 부류의 사람은 바로 마귀이며, 이들에게는 양심과 이성이 전혀 없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일부 사람에게는 사랑이 매우 많고,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어려움, 나약함, 감정적 욕구를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이런 사람들은 전부 그가 좋아하는 사람들, 그에게 아부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사람들이라고 해도 그의 지위와 명성에 위협이 된다면, 그는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악독한 방법으로 그들을 대할 것이다. 티끌만큼의 배려와 포용도 없이 말이다. 적그리스도의 사랑과 포용은 모두 허상이며, 결코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신을 숭배하고 따르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가 이렇게 사람을 구슬리는 목적은 바로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남들의 숭배와 추종을 받기 위함이다. 적그리스도가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미혹하고 회유하든 상관없이,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그들은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각종 방식을 써서 자신의 목적을 이룬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그들이 어떻게 하든 그 모든 것은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본분을 잘 이행하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며, 자신이 교회에서 권력을 잡으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하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아예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 선민의 이익은 더더욱 고려하지 않는다. 적그리스도의 사전에는 이 두 가지를 결코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애당초 이 두 가지를 갖고 태어나지 않았다. 그들이 어떤 직급의 리더가 되든, 그들은 하나님 집과 하나님 선민의 이익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의 사상 관점으로는 교회 사역과 하나님 집의 이익은 그들과 무관하며, 그들이 멸시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지위와 이익만 고려한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은 사악할 뿐만 아니라 무척이나 이기적이고 비열하다. 그들은 단지 자신의 명예와 이익, 지위를 위해서만 일하며, 다른 사람의 사활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그들의 지위를 위협하는 모든 사람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억압하고 배척하여 죽도록 괴롭힌다. 때로는 적그리스도가 나쁜 짓을 너무 많이 저질러 고발을 당해 상부에서 알게 되기도 하는데, 그러면 그들은 지위를 잃을 것 같아 대성통곡한다. 겉으로는 통회하고 하나님께 돌이키는 것 같지만, 사실 그들이 우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무엇 때문에 후회하겠느냐? 그들은 자기가 인심, 지위, 명망을 잃어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들의 눈물에는 이런 내용이 내포되어 있다. 동시에 그들은 또 다음 단계에서 어떻게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어떻게 교훈을 얻어 재기할 것인지를 계획한다. 적그리스도의 이런 모습을 보면, 그들은 자신의 과오나 자신이 표출한 패괴 성품에 대해 전혀 후회하거나 고통스러워하지 않으며, 참된 인식이나 회개는 더더욱 없다. 설령 그들이 통곡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자신을 반성하고 저주한다고 할지라도, 그것 또한 사람을 미혹하는 허상일 뿐인데, 그걸 진짜로 믿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그 순간 그들의 마음은 진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억해라. 적그리스도는 영원히 참된 회개를 하지 않는다. 어느 날 드러나 도태되어도 그들에게 참된 회개란 있을 수 없다. 그들은 그저 자신이 실패했음을, 제대로 연기하지 못했음을, 악행이 전부 드러났음을 인정할 뿐이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바로 진리와 하나님을 증오하는 적그리스도의 본성에 따르면, 그들은 영원히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그리스도의 자기 인식은 영원히 가짜라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권력을 잡고 지위를 공고히 할 기회를 잡지 못해 인심을 잃었다는 것만 인정할 뿐이다. 그들은 이 때문에 후회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적그리스도도 고통스러울 때는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그들은 무엇 때문에 눈물을 흘리겠느냐? 어떤 상황이겠느냐? 그들은 수많은 악행이 폭로되어 지위를 잃었기 때문에 통곡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정말로 잘못을 저지른 게 하나님께 죄스러워 후회하고 통곡할 수 있다면, 수많은 악행을 저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으며, 자신의 악행을 인정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진정으로 뉘우칠 수 있겠느냐? 그들은 악행을 저지르고도 뉘우치지 않고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저 웃음거리가 됐다고 느껴 의기소침해질 뿐이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굴지만, 실제로는 벙어리 냉가슴 앓는 것처럼 고통이 있어도 말 못 하는 것뿐이다. 그들은 마음속에 오만 감정이 다 뒤섞여 있고, 고통스럽기도 하고 눈물도 흘리지만, 진정으로 뉘우치지는 않는다. 이것이 실상이다. 때로는 적그리스도도 듣기 좋은 말을 하기도 한다. “저는 자질이 부족해 사역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방해하고 교란하는 짓을 좀 저질렀습니다. 선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으니 리더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징계하고 저주해 주시길 바랍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저를 리더로 뽑지 않는다 해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그러고는 곧이어 울기까지 한다. 분별력이 없는 사람이 동정심에 “울지 마세요. 앞으로도 당신을 뽑을게요.”라고 하면, 그는 이 말을 듣자마자 울음을 그친다. 본모습이 드러난 것 아니겠느냐? 그가 좋은 말을 몇 마디 하는 것도 인심을 매수하고, 사람을 미혹하며 속이기 위해서인데, 어떤 사람들은 정말 속아 넘어간다. 적그리스도가 눈물을 흘린다면, 이는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이다. 그를 숭배하는 사람이 그를 의심해 지위가 불안정해질 때, 그는 운다. 괴로워서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자면서 끊임없이 가족에게 “앞으로 리더를 안 하면 어떻게 살지?”라고 말한다. 가족들이 “예전에 지위가 없었을 때도 잘 살았잖아? 왜 못 산다고 하나?”라고 하면, “지위가 없으면, 이런 좋은 것들을 얻을 수 있겠어? 우리가 이렇게 잘 살 수 있겠어? 당신은 어쩜 이렇게 어리석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집에서 대놓고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지위가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살아?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우리 가족은 몇 명 안 되는 데 집에서는 내가 가족 몇 명밖에 관리할 수 없어. 그저 가장으로 살 수밖에 없는데, 지위가 높은 것도 아니잖아. 나는 교회에서 감투를 써야만 해. 그래야 인생을 헛살지 않는 거야. 게다가 내가 교회에서 이런 지위가 없었다면, 우리 가족이 이렇게 잘 살 수 있었겠어?” 뒤에서 진실한 말을 했고, 야심이 모두 드러났다. 이는 뻔뻔한 사람 아니겠느냐?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는 것은 어쩌다가 범하는 과오가 아니다. 무의식중에 저지르는 것이 아닌 것이다. 만약 어쩌다가 무의식적으로 나쁜 짓을 한 번 했다면, 그건 적그리스도가 아니다. 적그리스도는 사탄 본성의 지배를 받아 속셈을 가지고 사람을 미혹하기 때문에, 일관되게 사람을 미혹할 수 있다. 목적을 가지고 미혹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자기 손안에 통제하여 결국에는 권력을 얻는다. 사실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고 통제하는 목적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말을 듣게 하고, 그를 따라가고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것이다. 그의 목적은 매우 명확하다. 바로 하나님과 사람을 놓고 다투려는 것이다. 이는 일시적인 패괴 표출이나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일시적인 충동이 아니며, 특수한 환경에서 핍박을 당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는 전적으로 그의 본성이 사악하고, 그의 야심과 야망이 너무 크며, 그의 성품이 음험하고, 간계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 그가 이런 짓들을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그의 본성 본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며, 모두 그가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이런 속셈과 계획이 마음속에 있었는데 일단 리더가 되면 이런 꿈을 실현하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 기다렸던 것이다. 이것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적그리스도 내면의 실제 내적 상태이다.

이제까지 이야기한 이런 내용 속에서 너희는 자신이 진입해야 하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행위와 본성 본질이 있는 적그리스도와 악인을 분별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과 대조해야 하는데, 자신에게 이런 모습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 지금 만약 자신이 적그리스도와 같은 말을 하거나 같은 상황에서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을 너희가 대조할 수 있다면, 적그리스도와 유사한 성품이 표출되거나 유사한 행동 방식이 있을 때, 너희가 분별할 수 있지 않겠느냐? 너희는 내가 말한 사례들을 통해, 혹은 사례에서 기술한 세부 사항과 언행을 통해 여기에서 교제하고자 하는 진리를 이해하거나, 여기에서 폭로하고자 하는 사람의 패괴 성품을 알 수 있겠느냐? 이렇게 들을 수 있겠느냐? 너희는 어떤 입장에서 들었느냐? 만약 전적으로 방관자의 입장에서 적그리스도의 이러한 성품과 본질을 분별하고, 이러한 행위와 행동 방식을 대한다면, 너희가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그럼 너희는 어떤 입장에서 들어야 하겠느냐? (자신과 대조해야 합니다.) 자신과 대조하는 것, 이것이 기본이다. 또 무엇이 있겠느냐? (진리를 갖춰야 합니다.) 맞다. 바로 내가 말한 각각의 사례를 통해 너희가 깨달아야 하는 진리를 알아야 한다.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사람은 사실만 알아들을 수 있지만, 영적인 이해력이 있는 사람과 자질이 훌륭한 사람은 그 속에서 진리를 깨닫고 얻을 수 있다. 너희는 이야기나 사례에 담긴 진리를 요약해 낼 수 있겠느냐? 이야기나 사례를 교제하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실제 사정과 결합하여 실제 사정에서 구현된 각종 문제를 더 잘 이해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한 이 방면의 진리와 관련된 각종 모습과 본질에 대해 더 깊은 인상을 받게 하기 위함이다. 즉, 이 방면의 진리 및 본성 본질과 관련이 있을 때, 너는 하나의 사례와 장면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자신을 인식하고 다른 사람을 분별할 때 그림을 보는 것처럼 이해하게 된다. 이는 단순하게 이론과 글만 읽는 것보다는 훨씬 더 이해하기 쉽고, 더 실제적이며, 더 구체적이다. 만약 글만 있고 너의 체험이 없다면, 글에 대한 너의 이해 또한 어쩌면 글귀에만 머무르게 될 것이고, 늘 자신의 한정된 체험에 속박당해 이 범위 안에 멈춰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몇 가지 사례를 덧붙이고, 여기에 이야기, 화면, 구체적인 언행과 모습을 결합하면, 이 방면의 진리를 이해하는 데 보조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만약 이 역할이 달성되었다면, 네가 이미 이 방면의 진리를 깨달았다는 증거이다. 그럼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깨달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백 퍼센트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 방면의 진리에 대한 이해, 정의, 개념, 그리고 인식은 이미 확고해져야 한다. 여기서 확고해진다는 것은 무엇을 지칭하겠느냐? 비교적 올바르고 순수하여 기본적으로 사람의 지식, 관념, 상상, 억측이 뒤섞여 있지 않거나 비교적 적게 섞여 있는 것이다. 이런 사례들이 바로 이런 역할을 한다. 내가 말한 사례 속의 사람이나 일을 네가 알 수도 있고, 심지어 이런 사람을 접해 봤거나 이런 사람과 잘 아는 사이일 수도 있으며, 혹은 네가 이런 일을 접해 본 적이 있고, 심지어는 이런 부류의 사람이 이런 일을 하는 과정 전체를 직접 본 적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네가 진리를 이해하고 인식하는 데 무슨 이점이 있겠느냐? 어쩌면 네가 예전에 이런 사람과 함께 생활했을 수도 있고, 이런 이야기를 본 적이 있을 수도 있으며, 이러한 이야기 속에서 발생한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이 방면의 진리를 깨달았다고는 할 수 없다. 내가 이 말을 하는 의미는 무엇이겠느냐? 내가 말하는 그 일과 사람을 네가 알고 인식하고 있다고 해서 세부 사항이나 그 안에서 교제한 진리와 구체적인 내용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생각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설령 그 사람이 네가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네가 이미 그 안의 진리를 깨닫고 인식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내가 왜 이 점을 일깨우겠느냐? 바로 너희가 그 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이다. 그 사람이 그런 짓들을 해서 하나님이 그를 예로 들면, 너희는 그런 부류의 사람을 비웃거나 경멸한다. 이것이 진리를 대하는 태도이겠느냐? (아닙니다.) 이는 어떤 태도이냐? 한쪽으로 치우친 것 아니겠느냐? 이것이 바로 편향되게 이해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생생한 예와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구체적인 사람과 사건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각각의 사람들이 사람의 패괴 성품의 표출이 어떤 것인지 실감 나게 경험하며, 사람의 패괴 성품과 사람의 본성 본질의 표출은 어떤 것인지, 사람의 본성 본질이란 무엇인지, 패괴 성품이란 무엇인지, 이런 패괴 성품을 지닌 사람과 이런 본성 본질을 지닌 사람은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의 희로애락은 어떠하며, 그의 사람됨과 처신, 그리고 인생관은 무엇인지, 그의 일 처리 원칙은 무엇인지, 그가 어떤 태도로 하나님을 대하는지, 그가 어떤 태도로 진리를 대하는지를 실감 나게 목격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실례들, 그리고 구체적인 사람과 사건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진리 실제의 일면을 하나님이 폭로한 사람의 본질적인 면과 더 잘 결합해 훨씬 더 분명하고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의미는 무엇이겠느냐? 바로 이런 이야기들을 가볍게 보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누구의 이야기를 하든, 어떤 부류 사람의 이야기를 하든, 그 목적은 오직 하나이다. 바로 네가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네가 그 속에서 진리를 얻으면, 그것이 바로 성과를 얻은 것이다. 그러니 네가 이런 이야기들을 한 번 들으면 그저 그 안의 얕은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달을 수 있고, 글자의 표면적인 의미나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의 분량이 끊임없이 성장함에 따라, 사람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람이 다양한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성장함에 따라 생명 또한 점차 성장하여 이러한 이야기 속의 사건에 대해, 그리고 그 속에 나타난 다양한 사람의 본성 본질과 그들의 행위에 대해 다른 인식을 갖게 된다. 이러한 인식은 어떻게 생기는 것이겠느냐? 이러한 이야기들과 관련된 진리에서 오는 것이지 이야기 그 자체에서 얻는 것은 아니다. 만약 단순히 이야기만을 해서 “늑대가 왔다”라는 이야기를 한다면, 듣고 나면 그만이다. 그것은 진리와 관련이 없으며, 그저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것으로, 매우 간단하고 얕은 것이다. 하지만 진리와 관련이 되면, 이 이야기의 깊이는 단지 이야기 표면에 드러나는, 사람들이 알아듣는 그러한 의미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이야기는 사람의 패괴 성품 및 본성 본질과 관련이 있으며, 어떻게 사람을 분별하고, 길을 선택하고, 진리를 대하는지와 관련이 있고, 사람이 하나님의 요구를 대할 때 어떤 태도를 갖추어야 하는지, 사람이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와 관련이 있다. 만약 너희가 이렇게 듣는다면, 너희는 매번 설교를 들을 때마다 수확을 얻을 것이며, 매번 여러 방면의 진리에서 빛 비춤을 좀 더 얻을 것이고 더 많은 원칙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어느 정도 생명 진입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고, 세월이 흐르고, 사회 환경이 변하고, 전체적인 흐름이 변함에 따라 진리가 사람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작용하고, 그러면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게 되고, 진리에 근거해 사람과 일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이래야 생명을 얻었다고 할 수 있는데, 진리가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어떤 이야기라도 한 번 듣고 끝내지 말고 여러 번 들어야 한다. 만약 듣고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교제해도 된다. 만약 이 단계에서 듣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는 어쩌면 너의 분량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닿을 수 있는 것을 먼저 들으면 된다. 자신의 분량에 맞춰 선택적으로 들으면 된다. 만약 이야기를 들은 당시에는 아주 잘 이해한 것 같았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매우 심오하여 도달하기 좀 어렵고, 자신이 현재 단계에서 체험하는 일 및 생활 환경과 결합할 수 없다면, 이 이야기를 우선 마음속에 담아 놓고 인상을 남기도록 하여라. 네가 이런 일을 다시 접하게 될 때, 네 마음속에 담겨 있는 것들이 아마 반응하게 될 것이다. 마치 네가 배웠던 어휘와 용어, 또는 뇌에 수집해 놓은 정보처럼 말이다. 너는 매일 그것들을 생각하느냐? 아닐 것이다. 네가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정보, 어휘, 용어와 관련된 환경에 처하게 되면, 일부 어휘들이 생각나게 된다. 사람은 기억이 있어 자연스럽게 마음속에 어떤 것들을 저장하게 된다. 이러한 것들은 너의 일상생활에서 네가 사용하기에 충분하고, 너에게 이로운 점이 좀 있다. 하지만 네가 일부러 그것을 사용해 억지로 규례에 맞추면 실수하기 쉽다. 너는 자신의 분량에 맞춰 자신이 체험한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들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빠르게 성장한다. 들을 줄 아는 사람은 많이 얻을 것이며,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적게 얻거나 어쩌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많은 이야기 중 자신이 듣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고, 진리와 관련된 것이 하나도 없으며, 어째서 진리를 말하지 않고 하루 종일 일상적인 이야기와 옳고 그름을 따지기만 하느냐고 생각할 것이다. 이는 어떤 사람의 모습이냐?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는 내가 설교할 때 이러한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니 그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별다른 일이 없을 때 다른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네가 알고 있는 옳고 그름이 어쩌면 내가 말하는 이 이야기들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가 말하는 것이 진리와 관련이 있겠느냐? (관련이 없습니다.) 진리와 관련이 없으면 함부로 말하지 마라. 이야기했다 하면 겉면의 일로 이야기가 샌다. 내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니 너희가 함부로 모방해서는 안 된다. 너희는 진리를 구하고 깨달아 원칙에 따라 일을 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말이나 행동이 모두 진리 원칙에 부합하도록 중시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서서히 진리 실제에 진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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