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조 사악함과 음험함, 그리고 간사함(2) 제 6 부
모두가 알다시피 적그리스도가 지위를 좋아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들이 지위를 어느 정도로 좋아하느냐? 그 모습에는 어떤 것들이 있느냐? 먼저 그는 기회만 생기면 기어오른다. 그 방식이 아부가 되었든, 아니면 기만이 되었든, 혹은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한 선행이 되었든, 어쨌든 기회만 생기면 기어오른다. 그는 지위를 얻고 나면 그것을 더욱 애지중지한다. 정상인이 지위를 갖게 되면 자괴감이 들어 자중할 것이다. 특히 하나님 집에서 리더 일꾼을 맡는 것은 본분이지 지위나 관직이 아니다. 그것은 본분이다. 자기가 관직에 올랐다는 생각에 패괴 성품을 표출하여 자기를 과시할 때면 그는 이런 모습을 가끔 보이는 건 괜찮지만 자주 그러면 본인조차 역겹게 느껴지고 형제자매에게 들키면 낭패라며 걱정한다. 그에게는 존엄이 있고 체면이 있으니 어느 정도 자중하는 것이다. 그가 진리를 깨닫고 나면 지위를 점점 중요시하지 않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어떤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어떤 좋은 결과가 있겠느냐? 사람이 본분 이행에 전념하게 된다. 자기가 지금 어떤 직무를 맡고 있든 그것을 본분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왕 리더로 뽑혔다면 사람에게 리더는 일종의 부담이자 본분이기에 먼저 그 본분의 범위에 어떤 일들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 리더를 맡지 않았을 때는 어떤 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되지만, 리더를 맡고 나면 자기 본분 내의 일들을 어떻게 잘해야 할지, 어떻게 원칙과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에 따라 본분을 이행할지 고민해야 한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좋은 쪽으로 발전할 것이다. 그럼 지위를 대하는 적그리스도의 태도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과 어떤 면에서 다르겠느냐? 적그리스도는 지위에 열중하고, 지위를 추구하며, 지위를 애지중지하고, 지위를 경영한다. 그는 매사에 지위에 대해 생각한다. 그에게 지위는 목숨과도 같아서 남들이 자기를 우러러보지 않거나 자기가 실언해서 남들에게 무시당하면 사람 마음속에서 자신의 지위가 사라질 테니 그는 지위 때문에 늘 안절부절못하고 언행에 신중을 기한다. 네가 아무리 진리 추구를 교제한들 그는 알아듣지 못한다. 그가 유일하게 알아듣는 것이 무엇이냐? “제가 어떻게 해야 이 ‘관직’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관직자다울 수 있을까요?”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구체적인 모습이 있다. 가령 교회 리더가 형제자매 20여 명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는다고 할 때 존엄성이 있고 염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어디에 앉겠느냐? 가장자리 구석에 앉는다. 그럼 적그리스도는 보통 어디에 앉느냐? (가운데 앉습니다.) 그가 가운데 앉는 것은 모두가 원하는 것이냐, 아니면 그 자신의 바람이냐? (그 자신이 원하는 겁니다.) 때로 모두가 그를 위해 가운데 자리를 남겨 두고 억지로 그 자리에 앉히면 그는 속으로 흐뭇해한다. ‘이것 좀 보라고, 모두가 나를 얼마나 옹호하는지. 이 자린 내가 앉아야 해. 이런 걸 보면 모두의 마음속에 내가 리더로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지. 내가 없으면 안 되는 거야!’ 그는 기분이 좋고 즐겁다. 모두가 그를 위해 비워 둔 가운데 자리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그가 어찌 그 자리에 앉겠느냐? 그가 그 순간 그 자리와 그 기분을 즐긴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에게는 그 순간의 그런 느낌이 더없이 필요하고 소중하다. 그래서 그 자리를 사양하지 않는 것이다. 주변의 수십 명이 이 리더를 에워싸는데도 그가 정 가운데 방석을 깔고 앉아 있는 것은 자기를 돋보이게 하려는 목적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남들과 같은 높이에 있으면 안 돼. 그렇게 해서 리더로서의 내 존귀함이 드러날 수 있겠어? 자리를 좀 더 높이고 가운데 자리에 앉아야 해. 그래야 눈에 띄지. 이게 자리를 보는 안목이라는 거야. 사람들이 사진을 보자마자 나를 보고 이 사람이 우리 리더 아무개라고 하면 얼마나 영광스러워! 이 사진은 못해도 몇 년은 보관될걸. 내가 안 보이면 사람들에게 서서히 잊힐 텐데 그럼 리더를 맡은 보람이 없지 않겠어?’ 그는 지위를 이렇게나 애지중지하는 것이다.
한번은 상황을 알아보려고 어느 교회 사람들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들은 화면을 띄우고 카메라 쪽을 보고 앉았는데 가운데 자리는 비워 두었다. 그게 의아했던 나는 화면이 작아서 얼굴이 잘려 보이면 어색하니 가운데로 모이라고 했다. 조금 있다가 그들은 중앙으로 아주 살짝 이동했고 가운데 한 자리는 여전히 비워 두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왜 가운데는 아무도 안 앉지? 그 자리에 부처라도 있나. 왜 엄두도 못 내는 걸까?’ 나중에 한 사람이 왔는데 굉장히 뚱뚱했다. 그가 ‘턱’ 하니 가운데 앉는데 보아하니 둥글둥글한 게 정말이지 ‘부처’ 같았다. 알고 보니 가운데 자리는 그를 위해 비워 둔 것이었다. 너희가 알아맞혀 보아라. 이 사람이 누군 것 같으냐? (리더입니다.) 그렇다. 정중앙 자리는 신분의 상징이다. 이 마귀가 오더니 부처처럼 정말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다른 사람은 양 끝 가장자리에 앉기를 자청하면서 그를 무척 아끼고 ‘잘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다시 말해 ‘와, 드디어 오셨군요. 오랫동안 기다렸어요.’라고 아첨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하는 말을 아무도 듣지 않았다. 모두 그 리더만 기다렸던 것이다. 그 ‘부처’를 모셔 와야지 그러지 않으면 내가 이야기를 나눌 방법이 없었다. 어째서 그가 거기에 앉고 그토록 자연스럽게 앉는 것이냐? 이는 평소 좋아하는 것, 중요시하는 것, 추구하는 것과 관계가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평소 그들의 모습이 어떻겠느냐? 너희가 상상력을 발휘해서 생각해 보아라. 그가 만약 예배를 진행하거나 모두가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 곳에 방문한다면 다들 그를 어떻게 대하겠느냐? 조상이나 부처가 오기라도 한 것처럼 재빨리 상석으로 모시고 주인 석을 그에게 내줄 것이다. 남겨 두지 않으면 안 되느냐? 1초 동안 카메라에 담긴 장면을 보니 남겨 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것이 하나의 규칙, 즉 불문율이 되어 버린 것이다. ‘부처’가 오면 곧장 주인 석을 양보하고, ‘부처’가 오지 않아도 주인 석은 그를 위해 비워 두어야 하니 이를 지위라고 한다. 너희도 이렇게 지위를 그 무엇보다 높게 여기지 않느냐? 방금 언급한 이 장면에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사람은 지위를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대한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지위를 하나의 본분으로 여기고, 하나님의 부탁을 소중하게 여기며, 본분만 받아들이고 지위는 차지하지 않는다. 지위를 성가신 것으로 생각해서 또 다른 부담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에게 이것은 스트레스이고 속박이며 나아가서는 근심거리를 안겨 주는 것이다. 하지만 지위를 숭상하는 사람은 지위를 관직으로 생각해서 항상 지위의 복을 누린다. 그들은 지위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에 지위가 생기고 나면 이를 위해 목숨과 체면은 물론 그 어떤 것도 아끼지 않는다. 심지어는 몸까지 팔 정도로 말이다. 이것이 사악함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것을 사악함이라고 한다. 그들 눈에 지위는 무엇이냐? 높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이나 수단이자 신분과 운명을 바꾸고, 사람들 가운데서의 위상을 바꾸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들이 지위를 그토록 중시하는 것이다. 지위가 생기면 무슨 일이든 사람들이 그의 말에 따르고 순종하며 그를 용인해 주고 그에게 알랑방귀를 뀐다. 그리고 그는 남들이 이렇게 하는 것을 역겨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만끽한다. 그 리더가 가운데 자리에 앉으면서 보였던 자태처럼 유유히 만끽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악함이 아니겠느냐? 지위가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여러 우월감과 우위를 무척 좋아할 뿐만 아니라 추구하고 애지중지하며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극도로 사악한 사람이다. 어째서 극도로 사악하다고 하겠느냐? 지위를 가진 사람에게 알랑방귀를 뀌고 감언이설과 아첨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어떤 말을 하느냐? 전부 거짓말, 파렴치한 말, 낯간지러운 말, 역겨운 말, 사람을 기만하는 말이다. 심지어 듣기조차 민망한 말도 있다. 예를 들면 지위가 있는 사람이 아들을 낳았는데 원숭이처럼 못생겼다. 그렇다면 아첨하는 자들이 못생겼다고 하겠느냐? 그들은 어떤 식으로 말하느냐? (정말 예쁘다고 합니다.) 그냥 ‘정말 예쁘다’로 끝이겠느냐? 좀 더 낯간지럽게 말해야 한다. “미간이 넓고 턱이 둥글어서 부귀영화를 누릴 관상입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버젓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관직에 있는 자는 들어 보면 흡족하니 이런 말을 즐긴다. 이런 소리를 듣는 게 좋은 것이다. 어느 정도로 좋아하느냐? 자기한테 이런 가식적이고 아첨하는 말이나 그를 기만하는 말, 그를 기쁘고 즐겁게 해 주는 거짓말이나 낯간지러운 말을 하는 사람이 없으면 삶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사악함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극도로 사악한 것이다. 자신이 거짓말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역겨운데 그는 거짓말하는 다른 사람들이 파리 떼처럼 자기 주위를 맴도는 것을 좋아하고 한없이 만끽한다. 그는 언변이 좋고 비위를 맞추며 아첨할 줄 알고 에둘러 말하는 사람을 좋아해서 이런 사람들을 주위에 두고 중용한다. 이런 리더는 위험하지 않겠느냐? 그가 어떤 사역을 할 수 있겠느냐? 교회가 이런 자들의 손에 넘어가면 끝장나지 않겠느냐? 여전히 성령의 역사가 있겠느냐?
내가 듣기로는 어떤 먹성 좋은 리더가 있었는데 그가 지내는 곳의 형제자매가 음식을 잘하지 못해서 음식이 맛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에게 알랑거리며 비위를 잘 맞춰 주고 날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줄 접대 가정을 구했고, 거기서 매일같이 배 터지게 먹고 마시며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잔치를 즐기는 건 정말이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런 사람은 위험하다. 설사 지금은 적그리스도가 아닐지라도 그들의 모습에서 이미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과 사악한 성품이 드러났고,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고 있음이 드러났다. 그들이 적그리스도가 될 것인지, 적그리스도인지는 앞으로 어떤 길을 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확실한 것은 그들이 지금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고 있으며 그들의 성품 본질이 적그리스도의 성품 본질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부정적인 사물을 좋아하고 긍정적인 사물은 싫어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사물을 속으로 경멸하고 정죄하며 거절한다. 그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무엇이냐? 기만과 거짓말 그리고 부정적인 사물과 관련된 것들이다. 내가 어떤 곳에 갔을 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컨디션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잠깐 쉬세요.”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언제 쉬어야 하는지는 내가 안다. 네가 그렇게 똑똑한 체할 필요도, 아양을 떨 필요도 없다. 나는 그런 걸 받아들이지 않고 혐오한다.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느냐? 일이 생기면 그 즉시 교제하고 내게 마음을 털어놓아라. 그러면 내가 네게 교제하여 네 어려움을 해결할 테니 너는 나와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내게 아부하며 잘 보일 궁리만 하지 마라. 역겹기 짝이 없다! 이런 사람은 보기만 해도 역겨우니 내 곁에서 떨어지거라. 내가 너를 똥파리, 빈대로 규정한다. 썩 물러가거라!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 곁에는 항상 시중드는 사람이 있어야겠죠?” 너는 내 신분과 지위에 걸맞은 대우와 서비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필요 없다. 절대 그런 짓을 하지 마라. 알겠느냐? 나는 그런 것에 반감을 가지고 혐오한다. 네게 정말 그런 마음이 있어서 정 나를 생각해 주고 관심을 가져 주고 싶다면 정당한 방법이 굉장히 많다. 가령 내가 어떤 일을 네게 시켰다고 해 보자. 너는 착실하게 실행하다가 어려움이 생기면 즉시 내게 말해도 된다. 다만 이방인이 관리에게 아첨하는 수법을 모방해 사탕발림 따위의 말은 절대로 하지 마라. 나는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다. 내가 키가 작은 게 분명한데도 굳이 “당신은 키가 크진 않지만 저희보다 크신 분입니다.”라고 하는데, 이런 말은 듣기 싫으니 절대 내 앞에서 입에 올리지 마라. 그런 말은 다른 데 가서 해라. 적그리스도는 이런 말을 듣기 좋아한다. 예를 들어 보자. 그가 수하에 두고 있는 형제자매에게 묻는다. “제가 뚱뚱해 보이나요?” 누군가 대답한다. “뚱뚱해도 저희보다 예쁘세요.” “그럼 제가 말랐나요?” “당신은 말라도 예쁘세요. 어차피 옷걸이가 좋아서 뭘 입어도 잘 어울려요.” 이 말을 들은 적그리스도는 흡족해서 그 사람을 자기와 한패로 생각한다. 적그리스도가 좋아하는 이런 것들은 모두 역겹고 사악하다. 그렇지 않으면 왜 그를 사악하다고 하겠느냐? 양심, 이성, 염치, 존엄, 그리고 선악과 흑백, 시비를 분별하는 능력 등 정상 인성에 해당하는 이런 것들 중 적그리스도는 어떤 것을 좋아하느냐? 그가 염치가 있는 사람을 좋아하느냐? 존엄성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느냐? 그가 좋아하는 자는 후안무치해서 아무리 낯간지러운 말을 해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것이 염치없는 게 아니겠느냐? 그는 네가 낯간지러운 말을 하면 할수록 더 좋아한다. 적그리스도의 취향, 여러 사물을 대하는 태도와 선택, 성향 등으로 볼 때 그의 사악함은 끝이 없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에서 정의감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이런 수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공직사회에서 관리에게 아첨하는 자들을 보아라. 목숨을 다해 아첨하지 않느냐! 관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준다. 자기 부인마저 바칠 수 있으니 이것이 존엄성이 없는 게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또 어떤 관리는 동성애자인데 그에게 들러붙는 동성도 있다. 자기도 내키지 않으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을 할 수 있느냐? (못합니다.) 그들은 그럴 수 있다. 그들에겐 넘지 말아야 할 선도 없고, 염치도 없고, 양심 지각, 이성도 없다. 그러니 이런 짓을 하는 것이다. 그들이 하는 말을 대사로 만들어서 연기해 보라고 하면 너는 차마 입을 열지 못하겠지만 그들은 광대보다도 더 낯간지럽게 해낸다. 무엇을 광대라 하느냐? 알몸으로 남들 앞에 서서 구경거리가 되더라도 아무렇지 않고, 낯빛 하나 붉히지 않는 강심장을 광대라 한다. 그렇다면 알랑방귀를 뀌고 아첨하며, 낯간지럽고 역겨운 말을 하고, 사악한 사물을 좋아하는 이런 사람은 광대보다 더 심하다. 그들은 단지 몸을 팔 뿐이지만 이 사악한 적그리스도 무리는 무엇을 파느냐? 영혼을 판다. 이들은 악마의 무리이니 구제할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에게 진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는 꼴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진리를 사랑할 리가 없다. 그들은 지위를 이렇게 대한다. 지위가 그들에게 가져다주는 우월감과 쾌감을 즐기는 것이다. 이렇게 즐기면서 생기는 여러 느낌은 어떤 것이냐? 이는 긍정적인 사물이냐, 아니면 부정적인 사물이냐? 전부 부정적인 사물이다. 그들은 지위만 생기면 사람들의 알랑방귀와 아첨, 아부, 사탕발림 그리고 특별 대우를 누리려 한다. 음식이든, 집이든, 물건이든 모두 특별해야 하고 무엇이든 남들과는 달라야 하는 것이다. 설마 네 몸뚱이가 남들과 다르겠느냐? 적그리스도는 지위가 생기면 자기가 존귀하고 대단하다고, 땅에 자기를 품을 수 있는 곳은 없을 테니 ‘연화보좌’에 앉아 사람들이 바치는 것들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가 말해 보아라. 정상인이 일반적으로 이런 생각을 가지겠느냐? 지위의 유무를 막론하고 정상인도 지위에 대한 동경이나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염치와 양심, 이성이 있고 게다가 이제는 어느 정도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에 지위에 대한 애착은 줄어들고 무덤덤해진다. 또한, 지위가 가져다주는 유익이나 지위의 복에도 무덤덤해진다. 남들의 알랑방귀, 아첨 등에도 반감이 들어 멀리하고 심지어 등을 돌리고 저버릴 수 있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그런 것을 저버리거나 내려놓을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에게 이런 것을 내려놓으라고 하는 것은 목숨을 내놓으라는 말과 다름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지위가 없어졌다고 “안 믿을래요. 살아서 뭐 해요? 죽고 말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겠느냐? 여기엔 문제가 있지 않겠느냐? 그에게 지위가 어쩜 이렇게 중요하단 말이냐? 그에게 무난하게 살라고 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는 반드시 지위가 있어야 한다.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기어이 남들로부터 공경과 숭배, 추대를 받고, 남들이 비위를 맞추고 환심을 사기 위해 하는 입 발린 거짓말을 들으려 한다. 그는 이런 것들을 누리고자 한다.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이 이런 걸 누리려고 하겠느냐? 절대 그럴 리 없다. 마음이 편치 않아서다. 적그리스도는 왜 이런 것들을 누리기 좋아하느냐? 내면에 사탄의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 사탄의 부류만이 이런 것들을 추구하고 그런 요구를 한다. 정상인은 이런 것들을 한동안 즐기고 나면 싫증 나고 귀찮기만 해서 피하게 된다. 반면 죽어도 이런 것을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 스타 배우들이 나이를 먹어도 영화계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후광도 없이 사람들에게 관심 밖에서 밀려나 혼자 살면 재미없기 때문이다. 하늘도 더 이상 파랗지 않고, 인생의 방향도 사라지며, 삶의 의미와 가치도 사라지고, 인생 전체가 어두워지니 그는 영화계로 돌아가 스타로서의 기분을 즐기려 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와 이들의 성질이 똑같다. 그들은 똑같이 사악한 성품과 본질을 가지고 있다. 적그리스도는 지위가 생기면 여기저기서 뽐내고 심지어 자기 집에서까지 완장을 차고 가족들이 모두 그의 말을 따르게 한다. 적그리스도는 사악한 성품과 본질을 가지고 있고, 지위를 매우 애지중지하며, 몹시 떠들고 다니며 뽐내는데 여기에서 무엇을 알 수 있느냐? 이자에게 염치가 있느냐? 없다. 지위만 생기면 신분은 물론 가정에서 부모와의 관계마저 변하니 이는 문제가 있지 않으냐? 딴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들이 이런 태도로 지위를 대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사악한 본질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하나의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창조주로,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는 지고지상하다. 하나님에게는 권병과 지혜, 능력이 있고,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이 있다. 하나님이 모든 인류와 만물 가운데서 얼마나 오랫동안 사역했는지 아는 사람이 있느냐? 하나님이 지금까지 오랜 세월 동안 사역하고 인류를 경영해 왔는데, 구체적 연한과 정확한 수치는 아무도 모른다. 하나님은 그런 일을 인류에게 알려 주지 않는다. 그러나 사탄이 이런 일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공표하지 않겠느냐? 사탄은 분명 그 사실을 공표했을 것이다. 사탄은 자신을 드러내 더 많은 사람을 미혹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공을 인정받으려 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왜 이 일을 알리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본질에는 자신을 낮추고 감추는 측면이 있다. 낮춤과 감춤에 반대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교만함과 드러냄이다. 하나님이 아무리 큰 사역을 해도, 그는 사람이 알고 이해할 수 있는 것만 말해 주어 인식하게 하면 충분하다. 하나님이 행하는 이 사역들을 통해 사람이 하나님의 본질을 알게 한다. 이것이 사람에게 어떤 도움이 되겠느냐? 이렇게 해서 거둘 수 있는 성과는 무엇이겠느냐? 사람이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으려면 이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냐? 사실 그렇지 않다.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경지는 마지막에 도달하는 객관적인 성과다. 그러나 사람에게 그런 것을 인식하게 하는 하나님의 본래 의도는 무엇이냐? 사람이 이런 일들을 알게 한 후, 하나님이 어떻게 인류를 경영하고 주재하며 안배하는지 알게 한 후 더 이상 의미 없는 반항을 하거나 굽은 길을 갈 필요 없이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그러면 사람은 훨씬 덜 고통받게 될 것이다. 네가 순리대로 살고, 하나님이 준 방식과 법칙, 하나님의 요구와 하나님이 준 원칙에 따라 살 수 있다면, 더는 사탄의 손안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고, 두 번째로 사탄에게 패괴되거나 짓밟히지 않을 것이다. 또한, 너는 영원히 하나님이 세운 법칙 가운데서 하나님의 피조물답게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역하는 본래 의도이자 근본 취지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렇게 큰 사역을 하였음을 과시한 적 있느냐? 어떤 일이 하나님이 한 것인지 사람에게 알려 준 적이 있느냐? 그런 적이 없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일이 하나님이 한 것이고, 어떤 일이 하나님이 한 게 아닌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사실 하나님은 수없이 많은 일을 했지만 한 번도 인류에게 설명한 적이 없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설명하지 않으니 너는 그저 네가 알아야 할 것만 확실히 알면 된다. 앞으로 인류가 땅 위에서 정상적으로 살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들일 수 있고, 하나님이 인류 가운데 왔을 때 사람이 하나님과 정상적으로 교류할 수 있고, 하나님을 응접할 수 있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사탄을 따라가지 않을 수 있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가 땅 위에 나타난 것이다. 땅 위에 하나님을 경배하는 한 무리 사람들이 생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할 수 있는 한 무리 사람들이 생기면, 하나님의 사역은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성과를 이루면 된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든, 네가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 못해도 하나님은 네게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째서 설명하지 않겠느냐? 설명할 필요가 없다. 많은 일을 너는 이해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네가 인식하도록, 네가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을 알고 하나님의 능력을 알도록 네게 어느 정도의 비밀들을 말해 주진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사역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현재 집중적으로 하는 일은 무엇이냐? 바로 사람이 진리를 깨닫도록 하는 일이다. 네가 진리를 깨달으면 하나님을 알게 되고, 삶의 토대도 생기게 되고, 나중에는 하나님께 순종할 수도 있고 하나님을 경배할 수도 있게 된다. 또한, 사탄에 대해서도 분별력이 생기고 사탄을 저버릴 수 있게 되어 더 이상 사탄의 미혹에 넘어가 사탄을 추종하는 일이 없게 된다. 이러면 된 것이다. 그런 비밀들에 대해서는 이 인류가 이해할 기회가 나중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행사에는 너무나 많은 비밀이 있어 하나님이 네게 이를 드러낸다 해도 네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네가 이를 접할 수 있다고 해도 이해하거나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어째서냐? 피조물과 하나님 사이에는 거리가 있고,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에도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네가 무지개는 하나님과 인류 사이 언약의 증거임을 알아도 무지개가 어떻게 생기는지 아느냐? 하나님이 이 비밀을 네게 말해 준다면 너는 알아들을 수 있겠느냐? 너는 알아들을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네게 말해 주지 않는 것이다. 네게 말해 줘 봤자 너에게 짐이 되고, 너는 그것을 연구하고 분석해야 하는데, 이는 너에게 골치 아픈 일이 된다. 그래서 비밀 같은 일에 대해 하나님은 길게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탄에 속한 자는 이를 알면 참고 말을 안 할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본질적 차이다. 하나님이 이미 인류에게 드러낸 지 오래지만 사람이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는 수많은 일에 대해 하나님이 설명하느냐? 초자연적인 일을 하느냐? 하나님은 하지 않는다. 인류는 하나님이 만들었다. 사람이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지, 어느 정도까지 이해할 수 있는지 하나님은 알고 있다. 이런 일들은 사람의 눈앞에 놓여 있지만 사람이 이해할 필요가 없는 것은 사람에게 깨우쳐 줄 필요가 없다. 또한 사람에게 강요하여 사람의 부담이 되게 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행사에는 원칙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있어 하나님은 보호와 배려, 사랑이고, 하나님은 사람이 잘되길 바란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의 근원이자 본래 의도이다. 반면, 사탄은 스스로를 뽐내면서 강제로 사람에게 들이밀며, 그다음에는 사람이 사탄을 숭배하게 하고 미혹되게 한다. 또 사람을 타락시켜 조금씩 살아 있는 마귀로 변하게 하여 멸망으로 나아가게 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깨닫고 얻게 되면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구원받을 수 있다. 이는 멸망의 결말이 아니다. 사탄은 사람이 잘되는 꼴을 두고 보지 못한다. 사탄은 사람의 생사를 개의치 않고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며, 자신의 이익과 통쾌함만을 고려한다. 사탄에게는 사랑도, 긍휼도 없으며 관용과 포용은 더더욱 없다. 사탄은 그런 것을 갖추고 있지 않다. 그런 긍정적인 사물은 오직 하나님만이 갖추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다량의 사역을 하였는데, 하나님이 얘기한 적 있느냐? 해명한 적 있느냐? 설명한 적 있느냐? 없다.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을 오해해도 하나님은 많은 말로 해명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보기에 너는 나이가 예순이든, 여든이든 하나님을 너무 모른다. 하나님을 그 정도밖에 모른다면 너는 아직 어린아이인 셈이다. 하나님은 네게 따지지 않는다. 너는 아직 철부지다. 어떤 사람은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서 육은 늙었는데도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유치하고 천박하다. 그래도 하나님은 네게 따지지 않는다. 네가 모르면 모르는 것이고, 겨우 그 정도 자질밖에 안 되는 변변찮은 인간이라서 그럴 수밖에 없으니 하나님은 네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증거하라고 요구하지만 하나님은 스스로를 증거한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하지만 사탄은 조금만 일을 해도 사람들이 이를 몰라줄까 걱정한다. 적그리스도처럼 말이다. 그는 조금만 일을 하면 늘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공적을 자랑한다. 그 말을 들어 보면 겉으로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으면 그가 하나님을 증거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뽐내고 자신을 내세우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가 그런 말들을 하는 속셈과 본질은 바로 하나님의 선민과 지위를 두고 하나님과 다투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낮추고 감추지만 사탄은 자신을 드러낸다. 이는 차이가 있지 않으냐? 드러냄과 낮춤과 감춤 중 어떤 것이 긍정적인 사물이냐? (낮춤과 감춤입니다.) ‘낮춤’이란 말이 사탄에게 쓰일 수 있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왜 그러냐? 사탄의 사악한 본성 본질을 보면, 사탄은 한 푼의 가치도 없는 싸구려이다. 사탄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게 비정상이거늘, 무슨 낮춤을 말하겠느냐? 낮춤은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신분,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성품은 위대하고 존귀하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자신을 과시한 적이 없다. 하나님은 자신을 낮추고 감춤으로써 사람이 하나님이 어떤 일들을 했는지 보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은 이렇게 묵묵히 행하고 있고, 인류는 하나님에게서 끊임없이 공급받고, 양분을 얻으며, 인도받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안배한 것이다. 하나님은 한 번도 설명하지 않았고, 그런 일들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것이 낮춤과 감춤 아니냐?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지만 이를 언급하지도 설명하지도 않고, 사람과 이런 일들을 논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야말로 낮춤인 것이다. 너는 이렇게 할 수 없는데 네가 무슨 낮춤을 논하겠느냐? 그런 일들은 네가 한 일이 아님에도 한사코 공을 가로채려 하니, 이를 뻔뻔하다고 한다. 하나님은 인류를 이끌며 이렇게 큰 사역을 하였고, 온 우주를 주관한다.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은 그토록 크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나의 능력은 비범하다.”라고 말씀한 적이 없다. 하나님은 만물 가운데 숨어서 이 모든 것을 주관하며 인류가 양분과 공급을 얻도록 하고, 온 인류가 대대로 이렇게 이어지게 한다. 예를 들어, 공기, 햇빛 그리고 인류가 땅에서 생존하는 데 필요한 물질적인 것들은 모두 끊임이 없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공급한다는 것은 조금도 거짓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탄은 조금이라도 좋은 일을 하면, 이를 숨기고 이름 없는 영웅이 될 수 있겠느냐? 불가능하다. 교회에 있는 일부 적그리스도처럼 말이다. 그들은 다소 위험한 사역을 맡은 적이 있고, 버리고 고생한 적도 있으며, 심지어 옥살이한 적도 있다. 또한 하나님 집의 어떤 사역에 공헌을 한 자도 있다. 그들은 그 일들을 늘 되새기며 잊지를 않고, 이를 평생의 공로이자 평생의 자본으로 삼는다. 이는 사람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말해 준다. 사람은 확실히 보잘것없고, 사탄은 염치가 없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적그리스도에게 하나님의 지위가 있다면 그들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어야 하겠느냐? 이름난 음식을 먹고 명품을 입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이런 물질적인 것에 대해 적그리스도가 격식을 요구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어떤 지역에 가려면 비행기를 타야 한다. 그곳에 도착하면 평범한 형제자매의 가정이 그들을 접대할 수 있겠느냐? 설령 접대할 수 있다고 해도 거기서 지내지 않고 성급 호텔에서 묵어야 한다. 적그리스도는 격식을 따지지 않느냐? 지위가 그들에게 주는 영예와 즐거움, 그리고 허영 같은 것들을 적그리스도가 포기할 수 있겠느냐? 여건만 된다면, 그리고 기회만 된다면 그들은 이런 것들을 한 아름 움켜쥐고 누릴 것이다. 그들의 원칙은 무엇이냐? 지위만 생기면 손에 돈이 들어오고 명품을 착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범한 것은 거부하고 명품만 찾는다. 넥타이, 양복, 셔츠, 커프스 단추, 금목걸이, 벨트 등 전부 명품이다. 이는 좋지 않은 징조다. 형제자매가 화를 입지 않겠느냐? 형제자매의 헌금이 적그리스도가 명품을 사는 데 들어간다. 이 적그리스도가 저지른 못된 짓이 크지 않으냐? 이것은 적그리스도의 사악함으로 초래된 결과가 아니냐? 그들은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리더가 되었는데 처음에는 평범하게 입고 다녔다. 옷가지도 얼마 없고 그마저도 명품이나 고급 의류가 아니었다. 결국, 몇 년간 리더를 하다가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체되었는데 떠날 때 보니 짐이 한 트럭은 되었고, 전부 명품 옷이나 가방 같은 귀한 것들이었다. 그는 리더를 하면서 돈을 벌지도 않았는데 그런 것들이 어디서 났겠느냐? 바로 지위를 통해 얻은 것이다. 만약 그가 남들이 사다 주는 물건을 거절했다면 형제자매가 굳이 그에게 사 주었겠느냐? 그럴 사람이 있겠느냐? 그가 거절한다면 사람들이 사 주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어떤 문제가 있느냐? 그가 강점하고 횡령한다는 것이다. 그는 형제자매에게서 갈취하기도 하고 자기가 나서서 사기도 했다. 또 형제자매에게 사오라고 시키기도 하는데 사오지 않으면 괴롭히고 못살게 굴었다. 이런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이다. 결국, 그는 ‘풍작’을 거두어 부자가 됐다. 너희는 이런 리더가 부러우냐? 너희도 기회가 된다면 이렇게 부자가 되고 싶으냐? 잘 들어라. 이런 부는 쌓을 게 못 된다. 결과가 따른다! 어떤 사람은 리더가 되어서 이런 일이 자기에게 일어날까 걱정한다. 시험이 너무 커서 사람이 피하기 어렵고 대처하기도 어렵다고, 시험에 빠져들기 쉽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전혀 개의치 않고 ‘이게 정상이지. 한자리 차지하고 이 정도도 누리지 않는 사람이 어딨어? 자리에는 왜 앉는 건데? 바로 이런 이유 아니겠냐고!’라고 생각한다. 이게 무슨 소리냐? 이는 바로 적그리스도의 소리이니 위험하다.
내가 사역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 그동안 내가 누군가의 물건을 뜯어낸 적이 있었느냐? 예를 들어 누군가의 예쁜 액세서리가 탐이 나서 그에게 “이 액세서리는 나한테 주세요. 금이나 은 같은 액세서리는 지위가 있는 사람이 차야지, 당신이 착용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지위가 없는 사람은 착용하지 마세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느냐? 그런 적이 전혀 없었다. 형편이 넉넉한 형제자매가 무스탕 같은 것을 사 주어도 다 돌려보냈다. 옷이 안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 이런 것들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고민이 되었다. ‘이 물건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사다 준 사람이 서운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물건들을 교회로 가져와 원칙에 따라 형제자매에게 나누어 주고, 귀중품은 원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싼값에 사게 하면 된다. 이는 돈을 벌려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처리하는 것이 서로에게 적절하다. 아무도 이 물건을 공짜로 가져갈 수는 없다. 필경 이것은 네게 사 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에 물건 자체가 많지 않아 모두가 골고루 나누어 가질 수는 없고, 누구에게 주든 적절하지 않다. 따라서 돈이 있는 사람, 사고 싶은 사람이 살 수밖에 없다. 분명 시세보다 저렴할 것이다. 하나님 집에서 이런 혜택을 주는 것은 내게 그렇게 할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그 물건을 나한테 주었으면 그것은 내 것이니 내게 처분할 권한이 있다. 구매한 사람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의 체면을 생각해서 이렇게 처리한 것이니 네가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처리하는 것이 정당하다. 내게 물건을 사 주는 형제자매가 많은데 내가 사 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니고, 더욱이 내가 달라고 한 것도 아니다. 그들의 마음이 그런 것이니 그 마음은 받겠지만, 그 많은 물건은 받을 수 없다. 필요 없기 때문이다. 이건 현실적인 문제다. 이 말이 적절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내가 이렇게 처리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또 어떤 형제자매들이 내가 추위를 잘 타서 찬 음식을 못 먹는 것을 알고서 위장에 좋은 약을 사다 주었는데 그 약을 먹고 몸에 탈이 나서 몸이 당해 낼 수가 없었다. 그러니 아무거나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너희가 이해해야 한다. 어떤 형제자매는 산삼이나 홍삼, 보약 등 건강식품을 사다 주는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나한테 맞지 않기 때문이다. 형제자매가 사 준 물건이나 그것의 출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복용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좋은 것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효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것은 많아도 먹고 나서 탈이 나거나 알레르기가 생기면 자신에게 좋은 게 아닌 것이다. 그럼 어떻게 처리해야겠느냐? 몸에 맞는 사람이 먹는 게 가장 좋다. 그래서 누구든 내게 줄 무언가를 사려고 지갑을 열 때 “절대 사지 마라.”라는 이 말을 기억하라고 하는 것이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체면 차리지 않고 직접 얘기하겠다. 알겠느냐? 너희가 가져온 물건을 보고 내가 필요 없다, 나한테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것 역시 체면을 차리느라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고, 가식적이 아니다. 내가 하는 모든 말은 사실이고 진짜다. 내 말에서 절대 다른 의도를 찾지 마라. 필요 없다면 필요 없는 것이고, 쓸 수 없다면 쓸 수 없는 것이다. 절대 그렇게 마음 쓰지 말고 불필요한 지출을 하지 마라. 그리고 좋은 것은 마땅히 하나님에게 드려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마라. 내가 쓰는지 안 쓰는지 네가 아느냐? 내가 쓰지 않으면 괜한 돈을 들인 것이 되지 않느냐? 네가 진심을 담아 내게 사 준 것이라면, 분명히 말하지만 앞으로는 절대 사지 마라. 만약 모두에게 나누어 주라는 뜻으로 내게 사다 준 것이라면 그건 괜찮다. 내가 전달해 줄 수 있다. 이런 물건과 지위나 신분으로 받게 되는 물질적인 대우를 나는 이런 태도로 대한다. 그렇다면 적그리스도는 이런 것들을 이렇게 대하겠느냐?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먼저, 그들은 틀림없이 본인에게 오는 것들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할 것이다. 누가 어떤 선물을 주든 다 괜찮은 것이다. 또 그들은 분명 갈취할 것이고 그러고 나서도 계속 탐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이며, 그들이 추구하는 지위를 통해 그들이 얻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본질과 관련해서 지난번과 오늘 나눈 교제를 통해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본질을 한마디로 분명하게 정리할 수 있겠느냐? 적그리스도의 사악함의 가장 큰 특징은 다음과 같다. 모든 긍정적인 사물과 정의롭고 진리에 부합하는 일, 사람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사물로 여겨지는 것을 그는 정죄하고 증오하며 싫어한다. 반면, 모든 부정적인 사물, 양심과 이성, 정의감이 있는 사람에게 정죄되고 멸시받는 사물은 공교롭게도 적그리스도가 좋아하고 좇고 애지중지하는 것들이다. 또 한 가지가 있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모든 긍정적인 사물과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은 증오하면서 하나님이 혐오하고 정죄하는 모든 사물은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사악함이다. 이 사악함의 주된 특징이 무엇이냐? 그는 오로지 추하고 부정적인 사물만 좋아하고, 아름답고 긍정적이며 진리에 부합하는 모든 사물은 혐오하고 적대시한다. 이것을 사악함이라 한다. 알겠느냐? 오늘은 ‘적그리스도가 무엇을 좋아하는가’라는 주제에 관해 교제하면서 일부 사례도 짚어 보았다. 이 사례에는 전형적인 것도 있었고 그다지 전형적이지 않은 것도 있었는데 이런 확실한 증거들을 통해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본성 본질을 해석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너희가 해야 할 일은, 너희가 목격하거나 깨달은 사악한 사물과 긍정적인 사물에는 어떤 게 있는지, 적그리스도가 좋아하는 부정적인 사물과 그가 혐오하는 긍정적인 사물에는 각각 어떤 것이 있는지, 너희가 깨달았거나 목격하고 체험한 것에는 또 어떤 것이 있는지 묵상하고 교제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패괴된 인류와 적그리스도는 모두 공통적인 성품과 본질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런 공통적인 것들은 심각성의 차이만 있을 뿐 성품의 본질은 똑같다. 걷고 있는 길, 추구하고 있는 목표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표출하는 수많은 패괴 성품의 본질은 공통된 것이다. 따라서 적그리스도의 다방면의 본질을 폭로하는 것은 패괴된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하나님의 선민이 적그리스도의 본질을 분별할 줄 안다면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지 않고 그를 숭배하거나 따르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2019년 8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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