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조 사악함과 음험함, 그리고 간사함(2) 제 3 부
적그리스도의 사악함, 음험함, 간사함을 해부하다
지난 시간에는 적그리스도의 일곱 번째 모습인 사악함, 음험함, 간사함에 대해 교제하였는데 어떤 측면을 위주로 교제하였느냐? 적그리스도의 사악함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왜 그가 사악하다고 하겠느냐? 그의 본성 본질 속에 어떤 특수한 성품이 있고 어떤 특수한 모습이나 특징이 있길래 적그리스도의 사악함, 음험함, 간사함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냐? 어떤 명확한 특징이 있어서 그의 사악함이 존재하고 실제 상황에 부합한다는 것이 입증되느냐? 우리가 이런 부류의 사람을 사악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그들의 본성 본질의 주된 특징은 무엇이냐? 너희가 말해 보아라. (진리를 깨달을 수 있지만 대놓고 진리를 어기는 적그리스도가 많습니다. 그는 무엇이 옳은지 뻔히 알면서 자기 고집대로 하며 자신의 길을 선택합니다. 적그리스도의 사악함은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나 긍정적인 인물을 까닭 없이 적대시하는 모습에서도 드러납니다.) (적그리스도는 다른 사람이 잘되는 꼴을 못 봅니다. 하나님 집에서 형제자매에게 제공하는 혜택도 형제자매에게 돌아가게 하기보다는 자기 혼자 독차지하려는 마음에 그는 이 일을 실행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 그리고 지난번 교제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적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진리를 자기 지위를 도모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삼는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특히 사악하다고 생각합니다.) 너희 중에 내가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본질을 교제할 때 들었던 사례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너희는 사례만 기억하지 내가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본질을 교제하고 해부하며 했던 말은 기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너희는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본성 본질을 교제하고 해부한 것과 관련된 진리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겠느냐?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 당시에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니겠느냐? 만약 머릿속에 각인되었다면 조금이라도 기억나지 않겠느냐? 너희가 떠올릴 수 있는 일은 너희가 이해한 일이 아니겠느냐? 너희가 생각나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 당시에 들었을 땐 그 말씀이 옳다며 도리 그대로 기억하고, 아주 힘들게 기억했지만 한숨 자고 나면 기억이 나지 않고, 한 달이면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렇지 않으냐? 네가 한 가지 일이나 한 사람의 본질을 꿰뚫어 보려면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그럼에도 네가 이방인의 관점을 고수하면서 이방인의 방식으로 일을 바라보고 논한다면 이는 네가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입증한다. 네가 몇 년간 설교를 듣고 교제해도 아무런 수확이 없고, 남들이 네게 진리를 교제하면서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알아듣지 못한다면 이는 네가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를 두고 자질이 떨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사악함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핵심적인 말을 너희 중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한편으로는 시간이 오래되어 너희가 잊은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그 말의 중요성을 의식하지 못했고 그 말이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본질을 간파하고 폭로하는 핵심적인 말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어떤 말이겠느냐? 바로 적그리스도의 사악함은 그가 긍정적인 모든 사물과 진리와 관련된 모든 사물을 적대시하고 혐오하는 것에서 주로 나타난다는 말이다. 그는 왜 긍정적인 사물을 적대시하고 혐오하겠느냐? 긍정적인 사물이 그에게 해가 되었느냐? 그렇지 않다. 그의 이익에 연관되느냐? 그럴 때도 있고 전혀 그렇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럼 적그리스도가 왜 아무 이유 없이 긍정적인 사물을 적대시하고 혐오하겠느냐? (그의 본성 때문입니다.) 그에게 이런 본성이 있어서 모든 긍정적인 사물과 진리를 적대시하고 혐오하는 것이다. 이는 적그리스도의 본성이 사악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 말이 중요하지 않으냐? 너희는 이토록 중요한 말은 기억하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말만 기억한다.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하겠느냐? 너희에게 대답해 보라고 하는 건 너희가 어느 정도까지 이해했는지, 마음속에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 그 당시에 얼마나 이해했는지 살펴보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너희는 역시나 지엽적인 것만 기억하고 있다. 너희는 내가 얘기한 것을 모두 한담으로 치부했다. 나는 한담하러 온 게 아니라 너희에게 무엇으로 사람을 분별하는지 알려 주는 것이다. 내가 한 이 말은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본성을 분별하는 최고의 진리 원칙이다. 네가 만약 이 말을 적용할 줄 모른다면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본성을 분별하고 인식할 방법이 없다. 예를 들어 적그리스도로 규정된 사람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들이 “그는 저희를 참 잘 대해 주었어요. 그리고 사랑을 가지고 저희를 도와주었고요. 이렇게 좋은 사람을 왜 적그리스도로 규정하시나요?”라고 말한다. 그들은 적그리스도가 겉으로는 남에게 사랑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며 일부러 하나님에게 맞선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렇게 음험하고 교활한 점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분별은 하나도 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오해하고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생기며 심지어 이로 인해 하나님을 정죄하고 원망까지 한다. 이런 사람은 그야말로 머저리이니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길이 없다. 그는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농락하고 꼬드기며 아첨하는 등 그런 표면적인 일만 보고 적그리스도 본질의 사악한 면은 보지 못하며 적그리스도가 어떤 수단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독립 왕국을 세우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가 왜 알아차리지 못하겠느냐? 그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사람을 분별하지 못하며 늘 표면적인 현상에 미혹되기만 할 뿐 문제의 본질과 결과를 간파하지 못하고 사람의 전통적인 도덕관념과 세상 물정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어 적그리스도의 편에 서게 되고 하나님과 갈등하며 충돌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누구의 잘못이냐? 이 잘못은 어디에서 기인하느냐? 이것은 그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인식하지 못하면서 늘 관념과 상상으로만 사람과 일을 바라보아서 생긴 결과이다.
2. 부정적인 사물을 사랑하는 적그리스도를 해부하다
오늘은 적그리스도의 일곱 번째 모습인 사악함, 음험함, 간사함에 대한 교제를 이어 가겠다. 여기에서 중점은 사악함이다. 음험함과 간사함을 포함하고 있는 대표적인 적그리스도의 본질이 사악함이고, 음험함과 간사함은 그다음이기 때문이다. 지난번에는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본질을 교제하고 폭로했다. 그땐 하나의 큰 틀로서 개념을 정의하는 성격이 강한 내용을 교제했는데, 적그리스도의 이런 측면의 본질을 폭로하는 말씀이었다. 오늘 우리는 계속해서 이 주제를 교제해 보자. 어떤 사람들은 “이 주제에 교제할 만한 게 있을까요?”라고 묻는다. 있다. 교제가 필요한 구체적인 내용들이 이 속에 있다. 오늘은 방식과 관점을 바꿔서 교제해 보도록 하겠다. 지난번에 교제한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본성의 주된 특징과 모습은 무엇이었느냐? 적그리스도라는 작자는 모든 긍정적인 사물과 진리를 적대시하고 혐오한다. 그가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을 적대시하고 혐오하는 데는 이유가 필요치 않다. 누가 종용한 것도 아니고 악령이 들린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 자신이 원래부터 싫어하고 적대시하며 혐오한 것이다. 즉, 그의 생명과 뼛속까지 긍정적인 사물을 보기만 하면 반감이 생기는 것이다. 네가 만약 그에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진리를 교제한다면 그는 너를 증오하고 심지어 때릴 생각까지 할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긍정적인 사물을 적대시하고 혐오하는 이 측면은 지난번에 교제하였으니 오늘은 그런 측면으로 교제하기보다는 다른 면을 이야기해 보겠다. 다른 면은 무엇이겠느냐? 적그리스도가 긍정적인 사물을 적대시하고 혐오한다면 그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오늘은 이런 측면과 관점으로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본성을 분석하고 해부하겠다. 이럴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필요하다. 너희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느냐? (그러지 못합니다.) 긍정적인 사물과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본성이다. 그럼 이를 바탕으로 적그리스도가 과연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기 좋아하는지, 그가 일하는 방식과 수단은 무엇인지, 그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더 자세히 생각해 보아라. 이런 관점과 측면으로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본성을 살펴보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 이것이 좀 더 구체적이고 객관적일 것이다. 먼저, 적그리스도가 긍정적인 사물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그가 긍정적인 사물을 적대시하고 부정적인 사물을 사랑한다는 의미이다. 부정적인 사물에는 무엇이 있느냐? 거짓말, 기만이 부정적인 사물이 아니겠느냐? 거짓말, 기만은 부정적인 사물이다. 그럼 거짓말, 기만에 상대되는 긍정적인 사물은 무엇이냐? (정직함입니다.) 그렇다. 정직함이다. 사탄이 정직함을 좋아하겠느냐?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기만을 좋아한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첫 번째 요구 사항이 무엇이더냐? 나를 믿고 따르려거든 먼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느냐? (정직한 사람입니다.) 그럼 사탄이 가장 먼저 사람에게 가르친 것은 무엇이더냐? 거짓말이다.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본성의 첫 번째 증거가 무엇이냐? (기만입니다.) 그렇다. 그는 기만과 거짓말을 좋아하고 정직함을 혐오하고 증오한다. 정직함은 긍정적인 사물이라 사랑하지 않고 반감을 품고 증오하는 반면 기만과 거짓말은 좋아한다. 누군가 항상 적그리스도 앞에서 “당신은 사역을 하면서 지위를 좋아하고 때로는 게으름도 피워요.”라고 정직한 말을 한다면, 이 말을 들은 적그리스도가 무슨 생각을 하겠느냐?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일종의 태도이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끝이겠느냐? 사실대로 말하는 이 사람에게 그는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 반감을 품고 싫어한다. 어떤 적그리스도가 형제자매에게 “제가 한동안 여러분을 이끌었는데 제게 의견이 있으면 얘기해 주세요.”라고 하면 다들 이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진솔하게 얘기하니 말해 줘야겠다.’ 그래서 한 사람이 “당신은 무슨 일이든 진지하고 성실하게 임해서 고생을 많이 하세요.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저희는 마음이 아픕니다. 하나님 집에 당신 같은 리더가 몇 명만 더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결점이라면 진지하고 성실한 게 당신의 결점이겠죠. 만에 하나 당신이 지쳐서 아프거나 쓰러져서 사역할 수 없게 되면 저희는 끝 아닌가요? 누가 저희를 이끌겠어요?”라고 하면 그 말을 들은 적그리스도는 속으로 기뻐한다. 그것이 거짓말이고 알랑방귀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적그리스도를 바보로 여기고 농락하는 것인데 적그리스도는 바보가 될지언정 이 말을 굳이 들추지 않는다. 적그리스도는 이렇게 아첨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이들이 그의 흠이나 패괴 성품, 결점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오히려 은근히 그를 칭찬하며 치켜세우는 것은 누가 봐도 거짓말이고 아부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그는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그 말을 들을 때 마음이 후련해지고 산해진미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느긋하게 만끽하고, 듣고 나면 으쓱거린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적그리스도 안에 거짓말을 좋아하는 성품이 있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은 적그리스도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란 사람은 너무 교만해서 사람들을 불공평하게 대해요. 당신을 지켜 주는 사람은 잘해 주고, 당신을 멀리하거나 아첨할 줄 모르는 사람은 얕잡아 보고 무시하죠.” 이는 바른말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적그리스도가 이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겠느냐? 언짢아서 듣기 싫어하고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원점으로 돌리려고 해명할 수 있는 핑계나 이유를 찾고자 고민할 것이다. 앞에서 늘 자기를 떠받들고 감언이설을 통해 은근히 자기를 칭찬하는 사람, 심지어 자기를 기만하는 게 확실한 말을 하는 사람조차 적그리스도는 전혀 추궁하지 않고 오히려 요직에 두어 쓴다. 그것도 모자라 항상 거짓말을 늘어놓는 사람을 중용의 대상으로 삼고는 그들에게 중요하고 체면이 서는 본분을 이행하도록 배치한다. 반면 늘 사실대로 말하며 문제를 보고하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보내 본분을 이행하게 해서 그들에게 윗선 리더와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고 그들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거나 접근할 수 없게 한다. 그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재능이 있든, 하나님 집에서 어떤 본분을 이행할 수 있든 적그리스도는 일절 신경 쓰지 않는다. 오로지 남을 잘 속이고 그에게 득이 되는 사람만 쓰고 하나님 집의 이익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적그리스도는 기만과 거짓말을 좋아한다. 예를 들면 그가 담당하고 있는 교회는 복음 사역을 전혀 하지 않고 복음 전파를 위해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것도 등한시하기 때문에 복음 전파의 성과가 형편없고, 사람도 많이 얻지 못한다. 그런데도 적그리스도는 사람들이 실상을 보고할까 두려워 바른말을 하는 사람은 미워하고, 거짓말과 기만에 능해서 나쁜 일은 보고하지 않고 좋은 일만 보고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적그리스도는 어떤 말을 듣기를 가장 좋아하겠느냐? “우리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모두 잘 증거해서 복음 전파 선수예요.” 이 말은 사람을 속이는 말이 아니냐?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이런 말을 듣기를 좋아한다. 이 말을 들으면 적그리스도가 반응하지 않겠느냐? 그는 듣고 나서 이렇게 말한다. “네, 우리 교회의 복음 전파 성과가 갈수록 좋아져서 다른 교회보다 훨씬 나아요.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전문가입니다.” 그저 이렇게 서로를 치켜세울 뿐 그는 굳이 들추지 않는다. 적그리스도는 이렇게 사역한다. 아랫사람들은 그를 속이고 그도 기꺼이 속아 주면서 적당히 놀고 있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실상을 알게 되어 “그건 아니죠. 우리가 복음을 전한 열 명 중에 두 명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해서 알아보는 걸 포기했고, 남은 여덟 명 중에서도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고작 세 명뿐이에요. 우리가 전력을 다해서 그 세 명을 전해 와야 합니다.”라며 일어나 실상을 폭로하면 적그리스도는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 그는 속으로 ‘난 모르는 일이야!’라고 생각한다. 그럼 다른 사람이 그가 모르는 일의 실상을 솔직히 말했는데 그가 동의하겠느냐? 기뻐하겠느냐? 기뻐하지 않는다. 그가 기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리더인데도 교회 사역의 실상과 구체적인 사정을 모르고 있고 파악하지도 못해서 실제 상황을 아는 사람이 낱낱이 설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각 있는 사람과 정직한 말을 하는 사람이 이 일을 분명하게 밝힐 때 그 말을 들은 그에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무엇이겠느냐? 체면을 구기고 위신이 떨어지겠다는 생각이다.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본성에 따라 그가 어떻게 하겠느냐? 그에게 증오심이 생길 것이다. ‘입방정은! 너만 조용히 있었으면 그냥 넘어갈 일을, 그렇게 말해서 모두가 알게 됐으니 다들 내가 아닌 너를 숭배할 거 아냐. 이러면 내가 무능하고 실질적인 사역은 안 하는 것처럼 보이잖아? 너 나한테 찍혔어. 네가 사실대로 말하면서 매사에 나한테 대들고 맞서면 큰코다치게 만들어 주겠어.’ 봐라, 그가 진지하게 사역하고 정직한 말을 하며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을 어떻게 여기느냐? 그에게 맞서는 사람으로 여긴다. 이는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냐? 그는 얼른 협조하여 자기 사역에서의 실책을 보완하기는커녕 오히려 계속 사역에 태만하면서 사실대로 말하는 사람, 사역을 열심히 책임지는 사람을 증오하며 심지어 그들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주려 한다. 이는 적그리스도의 행동 방식이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이것이 무슨 성품이냐? 이것이 사악함이다. 적그리스도의 사악함은 이렇게 드러난다. 정직한 사람, 사실대로 말하고 진실한 말을 하는 사람, 원칙을 고수하고 진상을 추궁하는 사람이 보이기만 하면 적그리스도는 반감을 품고 혐오한다. 그의 사악한 본성이 터져 나오고 표출되는 것이다. 반면 기만적으로 행동하거나 거짓을 꾸며 내기만 하면 적그리스도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정신을 못 차린다. 너희는 ≪벌거벗은 임금님≫을 읽어 보았느냐? 적그리스도의 행동 방식에 어느 정도 이런 성질이 있다. 그 임금이 벌거벗고 길을 걸어가자 수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임금님의 새 옷이 정말 아름다워요! 임금님은 너무 멋지세요! 정말 위대하십니다. 임금님의 새 옷은 정말이지 신비롭네요!”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하는 것을 임금이 알았느냐? 그렇게 벌거벗고는 어떻게 자기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것을 모를 수 있느냐? 이것을 어리석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악한 적그리스도는 음험하고 간사하지만 지혜롭지는 않다고 하는 것이다. 왜 그가 지혜롭지 않다고 하겠느냐? 그가 벌거벗은 임금처럼 그를 속이는 말을 분별하지 못하고 벌거벗은 채로 거리를 활보하며 추태를 보이니 어리석지 않으냐? 그러니 많은 경우 적그리스도의 사악함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겠느냐? 바로 그의 어리석음이다.
적그리스도는 사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기만과 거짓말을 좋아하고 정직함을 싫어하며 진실을 증오하기 때문에 적그리스도가 권력을 잡고 있는 교회에서는 정직한 사람이나 정직한 사람이 되고자 추구하는 사람, 진리를 실행하고 기만이나 거짓말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항상 괴롭힘을 당한다. 그렇지 않으냐? 적그리스도는 사실대로 말하는 사람일수록 괴롭히고 밉게 본다. 반대로 그를 치켜세우고 그를 속이는 사람일수록 그의 총애와 환영을 받는다. 적그리스도가 사악하지 않으냐? 너희 주변에 이렇게 사악한 적그리스도가 있지 않으냐? 본 적 없느냐? 사실대로 말하는 사람의 입을 막아 진실을 말하지 못하게 하고, 네가 거짓말로 그에게 맞춰 주는 말을 하면서 한패가 되면 그때는 너와 원수가 되지 않는다. 네가 만약 사실대로 말하고 진리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기를 고수한다면 언젠가 그에게 괴롭힘을 당할 것이다. 너희는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느냐? 거짓 리더, 적그리스도의 악행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해 결국 할 말이 있어도 그냥 속으로 삭이고 말하지 못했던 적이 있느냐? 네가 사실대로 말하여 문제를 보고하면 호되게 당하는 것이다. 교회마다 문제를 보고했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한 사람이 있지 않으냐? 만약 사람이 거짓말로 교회를 속여 책망을 받게 된다면 이것이 괴롭힘이냐? (아닙니다.) 이는 정상적인 징계로, 괴롭힘과는 다르다. 그것은 네게 업무상 실책이 있기 때문에, 네가 원칙을 어겼기 때문에, 네 행동에 옳지 않은 속셈이 있었고 거짓말로 기만했기 때문에 책망을 받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는 네가 사실대로 말했다는 이유로 결과를 감당하는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탄과 적그리스도 앞에서는 조심해야 한다. 여기에 대응하는 말이 바로 임금을 모심이 마치 호랑이 곁에 있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그와 말할 때는 항상 눈치를 살펴야 한다. 그의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안색이 밝은지 어두운지에 따라 어떤 말이 그의 마음에 들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적그리스도가 “오늘 비가 오려나요?”라고 물어보면 너는 “오늘 일기 예보에 비가 온다고 하더라고요.”라고 대답해야 한다. 사실, 적그리스도가 오늘 비가 올 것 같다고 한 건 본분을 이행하러 나가기 싫다는 얘기다. 네가 만약 “오늘 일기 예보는 맑을 거래요.”라고 대답한다면 그가 화를 낼 것이다. 그러면 너는 재빨리 “아, 잘못 말했어요. 오늘 비 온대요.”라고 말해야 한다. 이에 적그리스도가 “방금 전엔 비가 안 온다더니 지금은 왜 또 비가 온다고 하시나요?”라고 물으면 너는 “지금 맑다고 계속 맑으란 법은 없죠. 옛말에 ‘하늘에 예측할 수 없는 풍운이 있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일기 예보도 틀릴 때가 있는데 아무래도 보는 눈은 당신이 정확하겠죠!” 적그리스도가 이 말을 들으면 기뻐하며 너보고 뭘 좀 안다며 칭찬할 것이다. 너희가 이렇게 처신하겠느냐? 너희 역시 그러지 않겠느냐? 남들이 참말을 하지 못하게 하고 참말을 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등 적그리스도가 자주 하는 일을 너희는 하지 않느냐? 너희는 모두 궁정극을 보지 않았느냐? 조정에서 황제와 대신이 어떤 관계냐? 그들의 관계를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그들 사이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 하나 있다. 그것은 황제가 모든 사람의 말을 글자 그대로만 이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 사람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분석하고 연구해야 한다. 이것이 그가 남의 말을 듣는 원칙이다. 모든 대신의 경우는, 남의 말을 들을 때 그 말을 분간할 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황제가 왕정승이 오늘 한 가지 일을 얘기했다면서 뭐라 뭐라 말한다면, 그 말을 들은 대신들은 모두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황제의 의도는 왕정승을 중용하겠다는 것이군. 그런데 황제께서 가장 걱정하시는 게 작당 모의이고 역모이니 대놓고 왕정승 쪽에 붙을 순 없지. 중립을 지키면서 왕정승을 반대하지도, 지지하지도 말아야 해. 황제가 내 속내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되 황제의 뜻에 반대하지는 말아야겠군.’ 그들이 말 한마디 하면서 속으로 얼마나 고심하며 구불구불 꼬는지 좀 보아라. 뱀이 지나간 길보다 더 굽었다. 그들이 하는 말의 요점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죄다 모호해서 오랜 세월 쌓아 올린 경험으로 어떤 말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분석하고, 그의 평소 언행을 바탕으로 그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분석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그들의 말 속엔 진실이 하나도 없다. 저마다 거짓말만 늘어놓는 것이다. 아랫사람이 하는 말이든, 윗사람이 하는 말이든 그들의 대화는 각자의 역할과 말로서, 전부 자기 입장에서 하는 말들이다. 하지만 그 말의 뜻이 네가 듣는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절대 아니다. 이것이 바로 거짓말이다. 거짓말은 어떻게 생겨나느냐? 사람의 언행에는 일정한 속셈과 목적, 동기가 있기 때문에 말할 때 그 말의 속뜻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게 되고, 돌려 말하게 되며, 자기만의 방식이 생기게 된다. 방식이 생기면 그것이 진실한 말이겠느냐? 아니다. 그 말속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허와 실이 혼재하여 실제도 있고, 허구도 있으며, 기만도 있다. 결론적으로 전부 진실한 말이 아닌 것이다. 방금 말한 왕정승의 예시처럼 조정에서 공개적으로 왕정승을 반대하는 자의 그 반대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짐작할 수 없다. 그러니 이어지는 내용을 봐야 한다. 다음 장면은 그가 왕정승 집의 밀실에서 술자리를 갖는 것이다. 그 둘은 원래부터 한패였던 것이다. 그가 왕정승을 반대하는 장면만 보고서 어떻게 그 둘이 한패라는 것을 간파할 수 있겠느냐? 그가 왜 반대하겠느냐? 의심받지 않으려고 이런 식으로 황제를 둔감하게 만들어 그 둘이 한패라는 의심을 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수단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테두리 안에 사는 이들은 진실한 말은 한마디도 못 하고 매일 거짓말을 하느라 피곤한데도 왜 벗어나지 않겠느냐? 적수가 죽으면 참배까지 하는 것은 어찌 된 영문이냐? 그는 남들과 싸우길 좋아한다. 싸우지 않으면 무료하다고 생각하고 인생이 무미건조하다고 느낀다. 그의 대단한 음모와 계략을 선보일 곳이 없으면 적수를 찾아 그와 우열을 가려야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 내게 된다는 것이다. 적수가 죽으면 인생의 의미가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 부류의 사람이 교화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본성이다. 적그리스도의 본성은 이렇다. 매일 남들과 싸우며 리더 일꾼과 싸우는 것도 모자라 하나님과도 싸우려 한다. 날마다 거짓말하고 기만하며 하나님 집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니 당최 쉴 틈이 없다. 아무리 진리를 교제해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큰 붉은 용처럼 하루라도 멸망시키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적그리스도는 사실대로 말하는 사람이나 정직한 사람을 싫어하고, 기만과 거짓말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그는 하나님에게 어떤 태도를 지니겠느냐? 예를 들어, 하나님이 사람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것에 대해 적그리스도는 어떤 태도를 지니느냐? 먼저, 그는 이 진리를 멸시한다. 그가 긍정적인 사물을 멸시한다는 점이 그의 문제를 잘 말해 주고, 그의 본성이 사악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완전하지도, 철저하지도 않다. 한발 더 나아가 적그리스도는 사람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하는 하나님의 요구를 어떻게 이해하느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정직한 사람이 되면 무슨 일이든 하나님께 고하여 알리고, 무슨 일이든 형제자매에게 털어놔야 하는데 이래서 존엄성이 생기겠어요? 이러면 존엄성이나 자아는 고사하고 프라이버시도 없어질 텐데요. 이거 끔찍하군요. 이게 무슨 진리예요?” 그가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느냐?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이 하는 말씀과 정직한 사람이 되라는 요구를 속으로 멸시하는 것도 모자라 정죄하기까지 한다. 그가 정죄하는데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느냐? 결코 그럴 리 없다. 그는 절대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없다. 거짓말하고 나서 시인하는 사람을 보면 적그리스도는 어떤 반응을 보이겠느냐? 그는 이런 행동을 속으로 멸시하고 비웃는다. 그는 정직한 사람이 되는 이들이 너무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그가 정직한 사람을 어리석다고 정의하는 것은 사악함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것이 사악함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사실대로 말하는 사람이 어딨어? 하나님께서 정직한 사람이 되랬다고 정말 정직한 사람이 돼서 이런 일도 곧이곧대로 말하다니,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어!’ 그가 속으로 정직한 사람을 멸시하는 것은 그가 이 진리를 정죄하고 혐오하며 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순종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사악함이 아니겠느냐? 긍정적인 사물이 분명하고 처신할 때 갖춰야 할 정상 인성 측면의 살아 냄이 분명한데, 적그리스도는 오히려 이를 정죄한다. 이것이 바로 사악함이다. 교회에는 언제나 일부 문제를 상부에 보고했다거나 실상을 말했다는 이유로 리더로부터 ‘책망과 훈계’를 받는 사람, 즉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이 있다. 때로 상부에서 교회 상황을 물으면 어떤 리더는 안 좋은 일은 빼고 좋은 일만 보고한다. 그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이실직고하라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사실을 발설하지 못하게 그 사람을 한쪽으로 제쳐 둔다. 어떤 사람이 적그리스도의 수법에 넘어가지 않고 ‘당신이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리더로 인정하지 않고 상부에 사실대로 말씀 드리겠어. 상부에서 책망한다고 해도 두렵지 않아.’라고 생각하고는 상부에 실상을 사실대로 보고하였다. 이 사람이 실상을 말하자 교회가 발칵 뒤집혔다. 왜 발칵 뒤집혔겠느냐? 이 사람이 적그리스도에 대한 사실을 폭로하여 실상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가 동의하겠느냐? 그가 용인하겠느냐? 그는 문제를 보고한 사람을 절대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곧 그 일로 회의를 소집해 함께 논의하게 해서 다들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폈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부화뇌동하며 이렇게 생각했다. ‘누군가 실상을 보고해서 리더가 지금 위험해졌어. 우리가 보고하지 않았으니 상부에서 리더를 처리하면 우리도 연루되는 거 아냐?’ 따라서 이들은 그 리더를 지킬 궁리를 하게 되고 결국 실상을 보고한 사람만 고립되었다. 이렇게 해서 적그리스도는 제멋대로 할 수 있게 되었고, 아무리 악을 저질러도 그 사실을 감히 상부에 보고할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그는 목적을 달성하게 되었다. 그러니 어떤 사람들은 상부에 상황을 보고하고 싶어도 실제적인 어려움이 많았다. 실상을 알지만 적그리스도가 늘 그의 입을 틀어막으려 하니 그는 겁이 나고 두려워서 타협했다. 이는 적그리스도에게 협박을 당한 게 아니겠느냐? 끝에 가서 이 적그리스도가 드러나 교체된다면 타협한 사람은 어떤 심정이겠느냐? 후회하지 않겠느냐? (후회할 것입니다.) 그는 기쁘면서도 후회할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포기하지 말고 그가 교체될 때까지 계속 그를 폭로하고 그의 문제를 보고할걸.’ 하지만 너무 나약해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적그리스도가 기만과 거짓말을 좋아하고 정직함을 혐오하는 것은 그의 사악한 본성이 가장 먼저 뚜렷하게 드러나는 모습이다. 생각해 보아라.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은 때로 시작은 있으나 끝이 없고, 또 어떨 때는 끝은 있으나 시작이 없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아챌 수가 없으며, 아무리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사람한테 분명하게 말하라고 하면 말하지 않는다. 그는 말을 할 때 대명사를 즐겨 사용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을 보고한다고 하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 말이에요. 그러니까 말이죠. 그가 그렇게 생각했대요. 나중에 형제자매들은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았죠….” 한참을 얘기해도 확실한 게 없고 횡설수설한다. 온전한 문장 없이 전부 단어의 나열이며, 서로 연결이 되지 않아 끝까지 들어도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지 않고 속이 답답하다. 사실, 그는 가방끈도 길고 문화적 소양도 높은 편이다. 그런데 왜 제대로 된 문장 하나 말하지 못하겠느냐? 이는 성품 문제이다. 사람은 너무나도 교활하여 진실을 좀 얘기하는 것도 힘들다. 적그리스도는 하는 말마다 핵심이 없어서 이야기를 하면 항상 결론이 없고, 뱉은 말을 주워 담거나 늘 떠보는 식이다. 자신의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상대가 알아채지 못하게 해서 추측하게 하기 위함이다.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그의 뜻을 바로 이해하고 알아채지 않겠느냐? 이는 그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는 무엇을 원하겠느냐? 그는 너 스스로 추측하게 하려는 것이다. 네가 추측한 게 곧 사실이라고 믿게 말이다. 어쨌든 그는 확실히 말하지 않았으니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다. 이 밖에, 네 추측을 말하는 게 그에게 어떤 이로움이 있겠느냐? 네가 말한 추측은 바로 그가 이끌어 내고 싶었던 말이다. 네 말을 통해 그는 그 일에 대한 네 생각과 관점을 알게 된다. 그러면 그는 무엇을 말해야 하고 무엇을 말하지 말아야 하는지, 어떻게 너에게 말해야 하는지 선택적으로 말할 것이며, 다음 행동을 취할 것이다. 그가 하는 모든 말의 뒤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네가 그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늘 뒷말을 잇는다면 그의 함정에 완전히 빠지게 될 것이다. 그가 늘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 피곤하지 않겠느냐? 그는 사악한 성품을 갖고 있어 피곤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 이런 건 너무도 손쉬운 일이다. 그가 왜 함정을 파 놓겠느냐? 그는 네가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고, 네가 그를 간파할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는 네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을 싫어하는 동시에 너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며, 네 관점과 생각, 행동 방식을 끌어내려 든다. 만약 끌어낸다면 그가 꾸민 함정이 제 역할을 한 것이다. 혹자는 말할 때 ‘흠’, ‘아’와 같은 간투사로 시간을 끌며 구체적인 관점을 말하지 않고, 또 혹자는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등의 단어로 시간을 끌면서 자신의 진실한 뜻을 숨기고 하려는 말을 대신한다. 말할 때마다 쓸데없는 조사나 부사, 보조동사가 특히 많다. 만약 그가 한 말들을 녹음해서 정리하면, 그 일에 대한 그의 관점과 태도를 드러내는 말이 한마디도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가 하는 모든 말에는 함정과 시험, 유인이 도사리고 있다. 이는 어떤 성품이겠느냐? (사악한 성품입니다.) 너무도 사악하다! 이는 기만 아니겠느냐? 함정을 파고 시험하고 유인하는 것은 전부 기만이다. 이는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본질을 지닌 이 부류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이 공통된 특징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겠느냐? 좋은 일은 알리고 나쁜 일은 알리지 않으며, 듣기 좋은 말만 하고, 늘 우물쭈물하면서 반은 숨기고 반만 드러낸다. 또 애매모호하거나 두리뭉실하게 말하며 남을 시험하려 든다. 이러한 것이 전부 함정이자 기만의 수단이다.
이런 모습, 이런 언행을 보이는 적그리스도가 많은데, 너희가 만약 오랫동안 그들과 접촉한다면 분별할 수 있겠느냐? 꿰뚫어 볼 수 있겠느냐? 먼저 그가 정직한 사람인지 살펴봐야 한다. 그가 아무리 남들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고 정직하게 말하라고 해도 너는 그가 정직한 사람인지, 정직한 사람이 되고자 추구하는지, 정직한 사람에 대해 어떤 관점과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가 정직한 사람에 대해 속으로 반감을 품고 혐오하고 업신여기는지, 아니면 속으로 정직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 단지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게 어렵고 쉽지 않아서 못하는 건지 등 어떤 상황인지 확실히 알아야 한다. 이를 분별할 수 있겠느냐? 짧은 시간 안에 분별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가 기만하는 수단이 교묘하다면 알아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알아볼 수 있게 되어 그의 정체는 탄로 날 수밖에 없다. 큰 붉은 용처럼 말이다. 늘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습니다.”, “국민 모두의 종이 되겠습니다.”라고 떠들지만 지금 아직도 그것이 국민의 당이라고 믿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그것이 국민을 위해 책임을 진다고 믿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아무도 없지 않으냐? 처음엔 서민들도 공산당 덕분에 신세를 고쳐 주인이 되었다고, 공산당이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국민의 종이라며 좋은 쪽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도 그 마귀의 소리를 믿는 사람이 있느냐? 사람들은 이제 그것을 어떻게 평가하느냐? 그것은 공공의 적이 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 국민의 종에서 공공의 적으로 바뀐 것이냐? 그것이 하는 짓들을 통해, 또 그것의 말에 대조해 보고, 전부 사람을 속이는 허언이자 거짓말이고 자기를 미화시키는 말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말만 번지르르하지 하는 짓은 최악임을 알게 된 것이다. 적그리스도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형제자매에게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해야 합니다. 개인적인 불순물이 있어서는 안 돼요.”라고 말하면서 그가 이렇게 하더냐? 네가 그에게 의견을 제시하면서 의사를 조금만 내비쳐도 그는 동의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본분이나 하나님 집의 이익이 자신의 이익과 충돌하면 사소한 이익도 필사적으로 다투며 양보하지 않는다. 그의 행동을 보고 나서 그의 말에 대조해 보면 무엇을 알게 되느냐? 그의 말은 듣기에는 좋지만 전부 사람을 속이는 거짓말이다. 그런데 자신의 이익을 꾀하고 다툴 때 그가 취하는 행동이나 일 처리의 속셈과 방식, 방법은 모두 거짓이 아닌 진짜다. 이런 것을 바탕으로 적그리스도를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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