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일꾼의 직책(7) 제 3 부
2) 어려움에 맞닥뜨렸을 때 지녀야 할 올바른 관점과 태도
여기서 내가 너희에게 설명하는 것은 단지 리더 일꾼에게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원칙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너희가 어디서 교회 사역을 이행하든, 혹은 본분을 이행하며 복음을 전하든 모두 순탄하지만은 않으며, 하나님 자신이 사역을 하는 것도 어려움의 연속이다. 이 사실을 모두 알고 있지 않느냐? 비록 너희가 구체적인 일은 모르거나 명확히 알지 못하지만 전체적인 상황은 다들 잘 알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확장하는 일은 순탄하지 않으니 너희는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고, 이런 깨달음도 있어야 한다. 이런 기정사실이 여기 놓여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태도로 이런 일들을 대해야 가장 정당하고, 가장 합리적이고, 또 가장 올바르겠느냐? 속으로 겁내고 두려워하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습니다.) 겁내고 두려워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한다면, 하늘도 땅도 두렵지 않고 전 세계와 적이 되고 전 세계에 끝까지 대항하고 역행하겠다는 이런 태도와 관점을 갖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습니다.) 이것은 정상 인성의 이성이냐, 아니면 혈기이냐? 이런 옳지 않은 관점은 모두 혈기이며 참된 믿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관점과 태도를 지니는 것이 옳은 것이냐? 너희에게 몇 가지를 나열해 보겠다. 사람이 지녀야 할 첫 번째 관점은 다음과 같다. ‘해외에서든 국내에서든 사람이 몸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의 가장 정의로운 사업이다. 우리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떳떳하지 못한 일이 아니라 광명정대한 일이다.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은 인류 가운데서 가장 정의로운 사업이기 때문이다.’ 이 ‘정의’란 무엇을 가리키느냐? 바로 진리이자 하나님의 뜻이다. 창조주의 안배이자 부탁이고, 인간의 도덕, 윤리보다 완전히 높고 인간의 법보다 높다. 그것은 창조주의 인도와 보살핌 아래 펼쳐지는 사업이다. 이것이 가장 올바른 관점이 아니냐? 이 관점은 한편으로는 정말 존재하는 사실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이 이행하는 본분에 대한 사람의 가장 올바른 인식이기도 하다. 사람이 지녀야 할 두 번째 관점은 다음과 같다. ‘만사 만물은 모두 하나님이 주재한다. 세상의 국왕, 세상의 그 어떤 세력, 종교, 단체, 종족을 포함한 모든 것은 하나님 수중에서 주재되고 주관된다. 자기 운명을 스스로 주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의 운명은 하나님 수중에서 주재되고 주관되고 있으며, 누구도 우리 거취의 방향을 바꿀 수 없고, 누구도 우리의 미래와 종착지를 바꿀 수 없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잠21:1)라고 성경에서 말한 바와 같은데, 하물며 우리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의 운명은 어떻겠나!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 국왕의 통치와 제도, 그리고 그 나라의 생존 환경,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과연 위협적인지, 적대적인지, 아니면 우호적인지는 모두 하나님의 주재이기에 우리는 염려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사람이 지녀야 할 관점, 사람이 가져야 할 인식이자 사람이 갖추고 깨달아야 할 진리이다. 세 번째 관점은 당연히 가장 중요한 관점이며 다음과 같다. ‘우리가 어떤 곳에서 생활하든, 어느 나라에서 생활하든, 또 우리의 능력이 크든 작든, 자질이 높든 낮든 우리는 단지 보잘것없는 피조물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다해야 할 유일한 책임과 본분은 창조주의 주재와 안배, 지배에 순종하는 것일 뿐 다른 것은 없다. 이렇게 간단하다. 비록 우리는 지금 자유로운 나라에 있고 자유로운 환경에 놓여 있지만, 어느 날 하나님이 일종의 적대 세력을 일으켜 우리를 박해하고 해한다 해도 어떤 원망도 해서는 안 된다.’ 왜 사람에게 원망이 없어야 하느냐? 우리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으며, 우리의 의무와 책임, 본분은 바로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 하나님이 지배하는 모든 것에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순종이 진리가 아니겠느냐? 사람이 지녀야 할 태도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어느 날 온 인류와 전체 환경이 우리에게 불리해지고 우리가 죽음을 마주해야 할 때 우리가 원망해서야 되겠느냐?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해외로 인도하신 목적은 저희가 사탄의 가혹한 박해를 더 이상 받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까? 저희가 자유롭게 본분을 이행하고 자유의 공기를 마시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째서 또 저희를 죽음에 직면하게 만들려고 하십니까?” 이런 말은 옳지 않다.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는 것은 일종의 태도로, 사람이 하나님을 대하고 하나님의 주재를 대하는 태도, 피조물이 갖춰야 할 태도이다.
또 하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으로, 해외에서는 비록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자유롭기는 하지만 여전히 큰 붉은 용의 잦은 방해를 피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큰 붉은 용의 방해를 마주한 일부 사람들은 걱정을 한다. ‘큰 붉은 용의 세력은 너무 커서 세계 각국의 중요 인물들을 매수한 다음, 그들을 이용해 자신들을 위해 봉사하고 일하게 하지. 그러면 우리가 해외로 도피해도 여전히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여전히 위태위태하다고! 이를 어쩌지?’ 매번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어떤 사람들은 걱정이 되고 무서운 나머지 타협하거나 도망치고 싶어 하지만 어디로 가서 숨을지 모른다. 이럴 때마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한다. ‘이 넓은 세상에 이 한 몸 둘 곳이 없구나! 큰 붉은 용의 권력 아래서도 박해를 받았는데, 어째서 큰 붉은 용의 세력권 밖에서도 그들의 방해를 받아야 할까? 큰 붉은 용의 세력이 너무나 크구나. 어떻게 땅끝까지 도망쳐도 그들 손아귀를 못 벗어나지?’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두려움에 떨면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여기에 믿음의 모습이 있느냐? 이 안에 담긴 문제가 무엇이냐? (하나님께 믿음이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에게 믿음이 없는 것뿐이겠느냐? 너희는 마음 깊이 자신이 남들보다 한 등급 아래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는 일을 도둑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조금은 떳떳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종교계의 사람들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저 사람들을 보면 세력도 있고, 정식 목사도 있고, 국가가 법으로 정한 큰 교회당도 있고, 얼마나 호화로워! 각 나라마다 성가대도 있고 기업도 있어. 그런데 우리를 보면 늘 멸시나 당하고 어디를 가든 배척당하는 게 저들과는 어쩜 이리 다를까? 왜 어디를 가도 밝히지 못할까? 사는 게 왜 이리 답답하지? 특히 온라인에는 아직도 부정적인 선전들이 돌아다녀. 저들 교회는 이런 일을 안 겪는데 우리는 왜 늘 이런 일을 겪어야 하지? 남들은 하나님을 믿으면 어딜 가든 크리스천이라고 공개적으로 얘기하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해. 나쁜 사람의 신고로 잡혀갈까 봐 두려우니까.’ 얼마 전에 들었는데, 정부 관원이라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이 형제자매 몇 사람에게 질문을 했다고 한다. 형제자매들은 관원이 질문을 하니까 겁이 나서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얘기해 버렸다. 상대의 질문에 곧이곧대로 대답하면서 말이다. 이것은 무슨 문제이냐?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왜 관원을 겁내느냐? 범법 행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면 겁내지 마라. 네게 진리가 있는데도 마귀 사탄이 무서운 것이냐? 네가 생각하기에 하나님을 믿는 일이 바른길이 아니냐? 네 생각에는 네가 불법을 저지른 것 같으냐? 그런데 왜 관원을 무서워하느냐? 이런 사람은 우매하고 무지한 자가 아니냐? 중국 본토에서 수없이 쫓기고 박해받은 후 해외에 와서는 하나님을 믿는 일이 떳떳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으냐? 큰 붉은 용에게 박해받는 일을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느냐? 어쩔 수 없이 해외로 도피해서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조상들에게 면목이 없고 체면도 서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사탄 정권과 종교계가 모두 하나님과 교회를 적대시하고 있으니 너 자신을 남들보다 못한 존재라고 느끼고, 심지어 법을 위반한 것보다 더 부끄럽게 생각하지는 않느냐? 너희는 이런 생각이 있느냐, 없느냐? (없습니다.) 너희는 겉으로는 고개를 저으며 이런 생각과 느낌을 갖고 싶어 하지 않겠지만 일이 닥쳤을 때, 사람의 마음가짐과 태도, 무의식 중에 나오는 행동은 자기도 모르게 사람 내면 깊은 곳에 숨겨진 것을 모조리 드러낸다. 이것은 어찌 된 일이냐? 너는 그런 게 없는데 왜 무서워하느냐? 법을 어기지 않은 사람이 경찰을 무서워하느냐? 법관을 무서워하느냐? 그렇지 않다. 법을 어긴 사람들만이 경찰을 가장 무서워하고, 경찰에게 억압받는 게 습관이 된 중국인들만이 경찰을 가장 무서워한다. 중공 경찰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멋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갓 해외에 왔을 때는 경찰만 보면 속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그건 바로 큰 붉은 용의 통치에 겁을 집어먹은 탓에 잠재의식 속에서 흘러나오는 반응이다. 네가 서방 국가에서 합법적인 신분과 거주권을 가지고 있고, 어떠한 법률도 위반하지 않고, 정부를 공격하지도 않고, 어떤 죄도 저지르지 않는 한, 너의 신앙이 종교계에서 아무리 큰 논란을 일으키더라도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하다. 즉, 네 신앙은 법으로 보호받으며, 합법적이고 자유로우며, 그것은 네가 누려야 할 권리라는 것이다. 네가 어떠한 법도 위반하지 않았는데 경찰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너에게 “당신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까? 신분증 보여 주세요! 어디서 왔습니까? 나이는요? 하나님을 얼마 동안 믿었습니까? 집이 어딥니까? 주소를 말해 보세요!”라고 묻는다면, 너는 어떻게 대답해야 하느냐? “당신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까?”라는 첫 번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느냐? (‘예’입니다.) 왜 ‘예’라고 답해야 하느냐? 사실에 근거하기 때문이냐? 아니면 네가 국민으로서 책임을 다하려면 누가 물어봤을 때 반드시 ‘예’라고 해야 하는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이 너에게 반드시 ‘예’라고 대답하라고 지시했느냐? 너희의 근거는 무엇이냐? “신분증 보여 주세요!”라는 두 번째 질문에 너희는 신분증을 보여 주겠느냐? (보여 주지 않겠습니다.) “집이 어디입니까? 주소를 적어 보세요.”라는 세 번째 질문에 주소를 적겠느냐? (적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을 얼마 동안 믿었습니까? 누구를 따라 믿은 겁니까? 왜 믿습니까? 언제 출국했습니까?”라는 네 번째 질문에는 대답하겠느냐?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여기서 어떤 본분을 이행하고 있습니까? 리더가 누구입니까?”라는 다섯 번째 질문에 대답하겠느냐? (답하지 않겠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냐? (알려 줄 의무가 없습니다.) 다시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서 너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느냐고 물으면 너희는 이구동성으로 ‘예’라고 대답하겠다고 했다. 이것이 옳으냐? (옳지 않습니다.) 왜 옳지 않으냐? (신앙은 사람의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간섭할 권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그에게 알려 주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알려 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냐? (먼저 그가 저에게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무슨 자격으로 저에게 질문하는지, 그의 질문이 과연 합법적인지를 분명히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질문하는 목적이 불분명하고 신분도 불분명하면 저는 그의 질문에 답변할 의무가 없습니다.) 그 말이 옳다. 처음에 너희는 모두 ‘예’라고 대답했지만 나중에 내가 질문을 계속하니까 너희는 점점 맞지 않다고 느끼고 잘못 대답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너희는 문제가 어디에 있다는 걸 발견했느냐? 이 일에서 너희는 이런 인식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어떤 법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우리는 범인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인권과 자유가 있다. 누구나 마음대로 우리를 취조하거나 질문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묻는다고 해서 꼭 사실대로 대답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의무가 없다.’라는 인식 말이다. 이 말이 맞느냐? (그렇습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마음대로 우리를 심문한다면 전부 위법이다. 우리는 반드시 법을 알고 법으로 자신을 보호할 줄 알아야 하며, 이것도 하나님 선민이 지녀야 할 지혜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만약 이런 일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누군가 너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느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고 어떻게 대응하겠느냐? 첫 마디는 이렇게 해라. “누구세요? 왜 나에게 그런 걸 물어보죠? 나랑 친하세요?” 만약 그가 자기는 모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그에게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해라. 만약 보여 주지 않으면 이렇게 말해라. “당신은 나와 대화할 자격이 없고 나도 당신에게 답변할 의무가 없습니다.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일일이 대답해야 합니까? 정부 특수 업무는 전담자가 관리하는데, 당신이 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도 되나요? 설령 당신이 담당자라고 해도 나는 법을 어긴 것도 없는데 왜 답변해야 합니까? 왜 무슨 일이든 다 당신에게 얘기해야 합니까? 내가 어떤 부분에서 잘못을 저질렀고 법을 어겼다면 증거를 제시하면 됩니다. 하지만 내가 당신의 어떤 질문에든 답해 주길 원한다면 내 변호사를 찾아가세요. 나는 답변할 의무가 없습니다. 당신은 물어볼 자격도 없고요!” 이런 대응 방식은 어떠냐? 존엄성이 있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조금 전 너희 태도는 어땠느냐? 존엄성이 있었느냐? (없습니다.) 너희가 그렇게 대답하는 것은 법에 대해 문외한이라는 뜻이다. 묻는 말에 곧이곧대로 대답한다면 결국 어떻게 되겠느냐? 유다가 될 것이다. 너희가 함부로 대답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한 가지 원인이 있다. 사람이 큰 붉은 용 국가에서 교육받고 세뇌되다 보니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모두 무지한 사람, 하층민, 국가로부터 박해받는 사람이고, 이 나라에서 인권도 존엄성도 없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본인 스스로를 열등한 사람 안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서방 국가에 와서도 너희는 인권이 무엇이고 존엄성이 무엇이고 국민의 의무가 무엇인지 등을 알지 못했다. 따라서 누군가 너에게 하나님을 믿는지 물어보면 겁이 나서 얼른 인정하고 무슨 말이든 다 해 버리는데 분량이 조금도 없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다 누가 초래한 것이냐? 바로 큰 붉은 용의 교육, 큰 붉은 용의 통치로 초래된 것이다. 모든 사람의 깊은 잠재의식 속에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 이 사회와 인류 가운데서 지위가 가장 낮은 사람, 사회, 인류와 괴리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있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은 존엄성과 인권이 없고, 자기 보호라는 의식이 없다. 우매하고, 무지하고, 식견도 없고, 다른 사람이 아무리 괴롭히고 놀려도 된다는 것이다. 너희가 바로 이런 마음가짐이다.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기는커녕 순식간에 하나님을 팔아넘기고 순식간에 유다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존엄성이 있는 것이냐? 낯선 이가 너에게 질문을 할 때 너는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 우선 그가 누구인지 물어보고, 그런 다음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해라. 이것은 정당한 법적 절차이다. 서방 국가에서는 경찰 혹은 정부를 대표해서 일하러 나온 직원이라면 누구라도 다른 사람과 교류할 때 항상 신분증을 먼저 제시한다. 너는 그의 신분증을 근거로 그의 신분을 확인한 후 그의 질문에 어떻게 답변할지, 그가 너에게 하는 요구를 어떻게 대할지 판단하도록 해라. 물론, 이런 일에서 너는 절대적으로 선택의 여지가 있고 자주권이 있다. 너는 꼭두각시가 아니다. 비록 너는 중국인이고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일원이지만 동시에 네가 거주하는 국가의 합법적인 일원, 신분을 가진 일원이기도 하다. 너에게는 자주권이 있으며, 너는 어떤 나라에서도 노예나 범인이 아닌, 그 나라의 법과 인권, 제도를 누릴 수 있는 일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교제한 이 내용을 근거로 할 때, 너희는 일부 갑작스러운 환경과 돌발 사건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느냐? 이것이 바로 우리가 네 번째로 교제하려는 사항인 ‘겁내지 마라’ 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겁내지 않는 것은 무모한 것이 아닙니까?” 아니다. 겁내지 않는 것은 어떤 세력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범인이나 노예가 아니라 당당한 하나님의 선민, 창조주의 주재 아래 있는 당당한 피조된 인류이기 때문이다. 이 일을 대할 때는 우선 겁내지 말아야 한다. 또한 우리의 본분과 본분을 이행할 때 처한 환경을 적극적으로 지켜야 하고, 동시에 적극적인 태도로 각종 환경에 마주하고 우리에 대한 각종 세력의 말, 행동 등에 마주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마주하고 겁내지 않는 이런 태도는 어떠냐? (좋습니다.) 이것이 존엄성 있고 사람답게 사는 것이지 구차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해외로 나온 것은 본분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지 밥을 빌어먹으러 온 것도 아니고 되는대로 살려고 온 것도 아니다. 우리는 법을 어기지 않았으며 어느 나라에도 폐를 끼치지 않았다. 우리는 어느 나라의 노예도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 집에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고 자기 힘으로 생활하기에 남들이 먹여 살려 줄 필요가 없다. 이것은 완전히 합법적이다.
방금 우리가 얘기한 네 가지 모두 매우 중요하다. 첫 번째는 무엇이었느냐? (‘해외에서든 국내에서든 사람이 몸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의 가장 정의로운 사업이다. 우리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떳떳하지 못한 일이 아니라 광명정대한 일이다.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은 인류 가운데서 가장 정의로운 사업이기 때문이다.’입니다.) 두 번째는 무엇이냐? (‘만사 만물은 모두 하나님이 주재한다. 세상의 국왕과 세상의 그 어떤 세력까지 포함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안에서 주재되고 주관된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주관할 수 없으며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안에서 주재되고 주관된다. 아무도 우리의 거취 방향을 바꿀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 국왕의 통치와 제도가 어떻든, 이 나라의 생존 환경이 어떻든,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위협적이든, 적대적이든, 우호적이든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주재이기에 우리는 염려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입니다.) 세 번째는 무엇이냐? (‘우리가 어떤 곳에서 지내든, 또 우리 능력이 크든 작든, 자질이 높든 낮든 우리는 단지 보잘것없는 피조물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다해야 할 유일한 책임과 본분은 창조주의 주재와 안배, 지배에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자유로운 나라에 살고 있지만, 만약 어느 날 하나님이 일종의 적대 세력을 일으켜 우리를 박해하고 해하더라도 어떤 원망도 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의무와 책임, 본분은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에 순종하고 하나님이 지배하는 모든 것에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입니다.) 네 번째는 외부 세계의 어떤 사람과 일, 사물에도 적극적으로 마주하고 겁내지 않는 것이다. 이 네 가지는 본분을 이행하는 모든 사람이 마땅히 지녀야 할 태도와 인식이자 마땅히 깨달아야 할 진리이다. 비록 이 네 가지는 오늘 교제하는 리더 일꾼의 직책 제8조와 연관성이 크지 않지만 사역에서의 어려움을 얘기하고 있는 만큼 이런 것도 좀 다룰 필요가 있다. 무의미한 말이 아니다.
3)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실행해야 할 원칙
어떤 리더 일꾼들은 외부 업무에서 비교적 처리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속수무책이 된다. 문제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간파하지 못하고 그 일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방치해 두었다가 결국 일을 지체시키고 만다. 이것은 어떤 문제이냐? 이것은 거짓 리더가 사역을 하지 못해서 일을 지체시키기만 한다는 것이다. 거짓 리더에게는 정상인의 이성이 없다. 문제를 처리하지 못하는데 왜 상부에 보고하지 않는 것이냐? 네가 상부에 보고하면 우리가 함께 마주할 것이고, 그러면 결국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너희가 간파하지 못하는 일이 있으면 내가 너희를 도와서 분석할 것이다. 우리가 법을 위반하지 않고 정부 규정을 위반하지만 않는다면 별로 심각한 문제는 없을 것이다. 진리 원칙에 관계된 문제에 맞닥뜨리면 우리 스스로 해결하고, 법에 관계된 문제라면 변호사에게 자문하고 도움을 얻을 수 있고 법적 수단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어떤 사악한 세력이 의도적으로 하나님 집의 사역을 교란하고 파괴한다면 이 한 가지를 기억해 두어라. 우리가 법을 어기지 않고 정부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우리를 어쩌지 못한다. 해외의 많은 국가들이 민주 국가이고 법치 국가이므로, 사악한 세력이 법을 어기고 행동할 수는 있지만, 그도 역시 노출되어 법에 의해 제재받는 일을 겁내는 것이 사실이다. 큰 붉은 용의 검은 손이 하나님 집의 사역을 어떻게 교란하고 파괴하든, 우리의 정상적인 생활을 어떻게 방해하든, 어떤 사람을 매수해서 나쁜 짓을 시키든 우리는 사진을 찍고 실제 녹화 영상을 남겨야 하고, 세심하게 제대로 기록해야 하며, 시간과 장소, 인물을 모두 정확하게 적어 놓아야 한다. 때가 무르익으면 법적 수단을 통해 해결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겁낼 필요가 없다. 큰 붉은 용이 그토록 미친 듯이 탄압해도 우리는 두렵지 않다.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고, 언젠가는 재난을 내려 그것을 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직접 큰 붉은 용에게 대가를 치르도록 할 것이기에 우리는 뭔가를 할 필요가 없다. 이따금 너희가 간파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있을 때는 서둘러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 상부에서 길을 제시하면 큰 문제는 축소되고 작은 문제는 사라질 수 있다. 사실 너희는 많은 일에서 분석하지 못하고 문제의 본질을 간파하지 못해 사안이 크고 심각하다고만 느낀다. 하지만 상부의 분석을 거치면 너희는 그 일이 겁낼 필요가 없는 사소한 일, 대수롭지 않은 일임을 알게 되고, 그냥 내버려두면 얼마 후 저절로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악한 세력의 교란은 큰 물결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들은 여론에 노출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에 선을 넘지 못한다. 만약 소수의 모자란 인간들이 선을 넘는다면 우리는 법적으로 해결하면 되고, 법적 수단을 선택해서 처리하면 된다. 이것은 모든 리더 일꾼이 간파해야 하는 일이다. 어떤 일이 닥치든 절대 어리석게 행동하지 말고 미련하게 굴지 마라. 만약 본인이 일을 간파하지 못하거나 처리할 수 없으면 서둘러 상부에 보고해서 상부에서 너에게 방법을 마련해 주도록 해야 한다. 다만 거짓 리더가 본인도 일을 간파하지 못하거나 처리할 줄 모르면서 보고하지도 않고 알리지도 않다가 결국 일이 커져서 사역을 그르친 다음에야 상부에 보고할까 봐 걱정이다. 그러면 문제를 처리할 최적의 시기를 놓치기 십상이다. 이건 마치 암에 걸린 사람이 제때 검사받고 치료받지 않다가 말기가 되어서야 어쩔 수 없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지만, 그때는 이미 소용이 없고 죽는 날만 기다려야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거짓 리더가 사역을 하면 지체하기 십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거짓 리더는 책임감도 없고 하나님 집 사역을 지키지도 못하는 저능아, 머저리다. 왜 거짓 리더를 인간 말종, 재수 없는 인간, 누구보다 비이성적인 얼간이라고 하겠느냐?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자질이 형편없어 외부의 일조차 처리할 줄 모르는 거짓 리더는 그가 하나님 집 사역을 더는 지체하지 않도록 얼른 교체하고 도태시키고 절대 다시 쓰면 안 된다. 거짓 리더가 사역을 하면 가장 심하게 일을 지체시킨다. 흔히 문제가 생길 때는 다 같이 제때 협의하면 그래도 해결할 방법이 있지만, 거짓 리더가 지능이 떨어져 자기가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의사 결정팀과도 상의하지 않고, 상부에도 보고하지 않은 채 방치하는 태도를 취해 은폐하고, 내버려둘까 걱정이다. 이것이 가장 심하게 일을 그르치는 것이다. 만약 문제가 지연되어 변고가 발생하면 문제를 처리하는 주도권을 잃을 수도 있고, 그러면 아주 수동적인 입장에 놓일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설명하느냐? 어떤 일은 지체하면 안 되고 반드시 재빨리 제때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거짓 리더는 이 부분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질이 형편없는 사람은 절대 리더가 되어서는 안 된다. 거짓 리더는 글귀와 도리만 좀 얘기할 줄 알고 실제적인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데 사람에게 해를 입히거나 일을 그르칠 뿐이다. 거짓 리더를 교체하고 부담감과 책임감이 있는 사람을 리더 일꾼으로 뽑아야만 교회 사역이 정상적으로 진전될 수 있다. 어떤 문제가 닥치든 진리를 구할 수만 있다면 해결할 방법이 있다. 외부의 일, 큰 붉은 용이 교란하는 일은 필요한 경우 법적인 수단을 통해 해결할 수 있으며, 이는 별로 큰 일이 아니다. 우리가 법을 어기지 않고 정부 규정을 위반하지만 않는 한 누구도 우리를 어쩌지 못한다는 이런 믿음만 있으면 사탄 마귀의 그 어떤 교란도 두렵지 않다.
이제 거짓 리더의 문제를 모두 해부하고 인식해야 하며, 이것은 교회 사역을 제대로 하는 데 너무나 중요하다! 지금부터 거짓 리더가 일에 부닥쳤을 때 본인이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왜 상부에 보고하지 않는지 교제해 보자. 이런 일은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 너희 모두 이 일을 분석해 보아라. 그러면 거기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거짓 리더가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 것도 이미 심각한 문제지만 그들에게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교회에서 악인이나 적그리스도가 교란하는 일이 발생했을 때 이를 처리하지 않는 것은 물론 상부에 전혀 보고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거짓 리더는 이렇게 악인이나 적그리스도가 교회를 교란하도록 내버려두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면서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는다. 교회 사역이 얼마나 교란되든 거짓 리더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이것은 무슨 문제이냐? 이런 거짓 리더는 너무나 부도덕하지 않으냐?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거짓 리더는 출교될 이유가 충분하다. 거짓 리더가 악인이나 적그리스도가 제멋대로 교회를 교란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교회와 하나님 선민을 악인이나 적그리스도에게 넘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악인이나 적그리스도의 보호막 역할을 한 것으로, 이런 행동이 교회 사역에 초래하는 손실은 너무나 크다! 이 점 하나만으로도 거짓 리더는 교체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제명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거짓 리더가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 것과, 악인이나 적그리스도가 교회를 교란하도록 방치하는 것 중 어느 것의 성질이 더 심각하냐?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과 교회 사역의 진전에 영향을 미친 것만 해도 이미 큰일을 그르쳤다. 하지만 거짓 리더가 악인이나 적그리스도가 제멋대로 교회를 교란하도록 방치한 채 해결할 방법을 구하지도 않고, 상부에 보고하지도 않는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최소한 교회 생활이 악인이나 적그리스도에게 교란받아 엉망진창에다 난장판이 될 것이고 그리고 교회 사역도 망치고 마비될 것이다. 이는 복음 사역의 확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냐? 그 결과는 무척 심각하다! 그러니 거짓 리더가 이런 잘못을 저지른다면 반드시 출교해야 한다. 상부에 문제를 보고하는 일에 대해 다른 생각과 관념을 품고 있는 리더 일꾼이 적지 않다. 누군가는 말한다. “상부에 보고한다고 해서 문제를 반드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반드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 무슨 뜻이냐? 네가 해결할 수 없다고 해서 상부에서도 해결할 수 없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상부에서 너에게 길을 알려 주면 실제로 문제가 거의 해결되지만, 상부에서 길을 알려 주지 않으면 너 혼자서는 길이 없다. 이런 일도 간파하지 못하다니 너는 너무나 교만하고 독선적이다! 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려움이나 문제가 닥쳤을 때는 며칠 고민부터 해 보고 정말 방법이 없으면 그때 보고해야죠.” 이 말은 듣기에는 어느 정도 이성을 갖춘 듯하다. 그런데 며칠 고민하다 보면 일이 쉽게 지체되지 않겠느냐? 며칠 고민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확신할 수 있느냐? 일을 그르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느냐? 이런 사람도 있다. “바로 보고하면 상부에서 저희가 이만한 일도 간파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우매하고 무지하다고 하면서 저희를 책망하고 훈계하지 않을까요?” 이 말은 틀렸다. 네가 문제를 보고하고 말고를 떠나 네 자질이 어느 정도인지는 이미 뻔하고 상부에서 다 알고 있는데 보고하지 않는다고 너를 높이 평가해 주겠느냐? 네가 만약 보고해서 큰일을 그르치지 않으면 하나님 집에서는 네 책임을 추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네가 보고하지 않아서 일을 그르친다면 곧바로 책임을 추궁할 것이고, 즉시 너를 교체한 다음 영원히 쓰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선민들도 네가 무지하고, 어리석고, 지능이 떨어지고, 정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것이고, 너를 미워하고 영원히 멸시할 것이다. 늘 문제를 보고했다가 책망과 훈계를 받을까 봐 겁내고 상부에서 무시할까 봐 겁내는 사람은 자질이 부족하고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반드시 교체하고, 영원히 쓰지 말아야 한다. 그 정도로 자질이 형편없는데 체면까지 챙기다니, 정말 뻔뻔하지 않으냐? 말해 보아라, 거짓 리더는 사역도 제대로 못 할 뿐만 아니라 큰일을 그르칠 수도 있으니 정말 가증스럽지 않으냐? 교체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큰일이 닥쳤을 때 제때 보고해서 일을 그르치지 않고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다면, 이런 리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적어도 이성이 있는 편이고, 교회 사역도 지킬 수 있다. 이런 리더는 계속 남겨두고 써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야 한다. 지능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리더만이 문제를 보고했다가 책망받을까 두려워서 보고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리더를 앞으로 쓰면 되겠느냐? 내가 볼 때는 쓸 수 없다. 그를 썼다가는 일이 너무 지체되기 때문이다. 이제 이런 문제는 다들 간파할 수 있지 않겠느냐? 자기가 처리할 수 없는 문제에 맞닥뜨리면 서둘러 의사 결정팀에 보고해 해결책을 교제해야 하며, 의사 결정팀에서 처리할 수 없으면 얼른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 이것저것 재지 마라. 문제를 제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방금 언급한 예시는 분명 어느 교회에나 다 있을 것이고, 어느 교회에서나 이런 어려움과 문제가 나타날 것이다. 교회 내부의 어려움과 비교하자면 외부 업무에 관련된 이런 문제는 그 결과가 더 심각할 수 있다. 그래서 교회 내부의 문제와 외부 업무에 관련된 문제를 서로 비교하면 역시 외부 업무에 관련된 문제가 더 어렵다. 만약 외부 업무에 관련된 문제가 발생한다면 너희는 얼른 협의를 통해 해결하거나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이렇게 실행해야만 교회 사역이 정상적으로 진전될 수 있고, 하나님나라 복음의 확장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보장할 수 있다. 교회 외부 업무에 관련된 문제에 대한 처리 원칙은 여기까지 교제하도록 하겠다.
교회마다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들이 본분을 이행할 때는 늘 어려움이 따르며, 진리를 아무리 교제해도 실행 원칙을 찾지 못하고 무턱대고 규례에만 맞추다 보니 실제 성과가 없다. 이런 경우에는 본분을 조정해야 하며, 그것은 인사이동에 해당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중요한 사역을 맡았는데 그가 하는 사역에 문제가 있다. 하지만 네가 아무리 그와 교제를 해도 해결되지 않는다. 너는 문제의 본질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이 사람을 과연 쓸 수 있는지 간파하지 못하고, 관찰하고 교제해도 결과가 없다. 이 사람은 사역을 그렇게 크게 지체하지는 않았지만 핵심 문제가 언제나 해결되지 않아 너는 늘 마음이 조금 불안하다. 이런 일이 닥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너 혼자 해결할 수 없으면 리더 일꾼 예배 시간에 꺼내놓고 교제하고, 해부하고, 분석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합의에 이르면 문제는 해결된다. 만약 이렇게 실행해도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아서 시간이 더 지연되면 큰일을 그르치지 않겠느냐? 만약 큰일을 그르칠 수 있다면 한시라도 빨리 상부에 보고해 해결 방법을 구해야 한다. 요컨대 네가 사역을 하면서 맞닥뜨린 곤혹스러운 점이나 어려움이 무엇이든 그것이 하나님 선민들의 본분 이행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교회 사역의 정상적인 진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면 제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만약 본인이 해결할 수 없으면 몇몇 진리를 깨달은 사람과 함께 협력하여 해결해야 하고,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반드시 그 문제를 가져다 상부에 보고해서 해결 방법을 구해야 한다. 이것이 리더 일꾼의 책임과 의무이다. 리더 일꾼은 어떤 어려움, 어떤 곤혹스러운 일을 맞닥뜨리든 항상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 문제나 어려움을 발견한 다음 멋대로 글귀와 도리를 읊고 구호를 외치면서 형제자매들을 좀 독려하거나 책망하고 훈계하면 끝인 것이 아니다. 때로는 글귀와 도리를 좀 얘기해서 표면적인 문제는 조금 해결할 수 있겠지만, 근원적인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근원에 관계된 문제, 패괴 성품에 관계된 문제,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관계된 문제는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진리를 교제해 해결해야 한다. 또 사람 본인의 어려움, 환경적인 문제, 본분 이행과 관련된 업무 지식 문제와 같은 이런 실제 문제는 모두 리더 일꾼이 해결해야 한다. 이런 문제 중에 리더 일꾼이 해결하지 못하는 곤혹스러운 점과 어려움의 경우, 한편으로는 리더 일꾼 예배에 가져가서 해부하고 분석해서 해결해도 되고, 또 한편으로는 직접 상부에 보고하여 진리를 구해 해결해도 된다. 실제적인 사역을 한다는 것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런 식으로 실제적인 사역을 하는 것을 훈련해야 분량을 키울 수 있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다. 리더 일꾼은 책임감이 있는 한 언제 어디서든 문제를 발견할 것이고 매일같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을 것이다. 조금 전 내가 했던 얘기를 예로 들어 보자.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느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너희는 다들 얼떨떨해져서 처음에는 ‘예’라고 대답했다가 나중에는 그렇게 대답하는 게 옳지 않다는 사람도 있었고, 또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결국에는 리더 일꾼도 얼떨떨해졌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하자니 그건 남들 앞에서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도 우리를 인정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자니 그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어서 어떻게 대답해도 옳지 않은 것 같았다. 리더 일꾼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고 결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러니 형제자매가 다시 이런 일을 마주하더라도 여전히 올바른 관점과 태도를 가지지 못할 것이고,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일 것이다. 그렇다면 리더 일꾼은 직책을 다하지 않은 것이고 직무를 유기한 것이다. 직무 유기는 능력과 자질의 문제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되지 않았음을 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나 몰라라 할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잠잠해지도록 덮어두거나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둘 것이 아니라 상부에 보고해서 이런 일을 마주할 때 사람이 갖춰야 할 행동 방식과 실행의 길을 구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이런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이 무엇인지,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와 입장이 무엇인지를 모든 사람이 깨닫게 해야 한다. 그러면 앞으로 또다시 이런 일을 마주했을 때 진리 원칙을 깨닫고 실행의 길을 얻게 된다. 그렇게 되면 리더 일꾼은 직책을 다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전에 너희에게 물었을 때 왜 다들 ‘예’라고 대답했느냐? 여기에는 한 가지 원인이 있다. 리더 일꾼이 지금까지 너희에게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교제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것이 사소한 일로, 사람마다 다르게 이해하며, 각자 받아들이고 싶은 대로 받아들이고, 실행하고 싶은 대로 실행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너희에게 질문했을 때 대답이 제각각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 일에 대해 결론이 나지 않았느냐? 누가 너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느냐고 물으면 너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첫째, 먼저 그가 누구인지 묻는다. 둘째,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요구한다. 셋째, 그가 다른 개인 정보를 물어보면 답변하지 마라. 그건 너의 프라이버시이기 때문에 설령 그가 신분증을 제시하더라도 알려 주지 마라. 하나님을 몇 년 믿었는지, 누가 전도했는지, 어디 어디서 본분을 이행했는지, 믿음이 어떠한지, 앞으로 어떻게 길을 선택할 것인지, 어떻게 추구하고 진리를 얻을 것인지, 이런 일은 우리 입장에서는 너무나 소중해서 어떤 낯선 사람에게도 함부로 알려 줄 수 없다. 그에게는 이런 중요한 정보를 알아볼 자격이 없다. 이런 문제를 리더 일꾼이 해결할 수 없다면 즉시 상부에 보고해서 해결 방법을 구하고 적절한 답변을 가르쳐 달라고 해야 한다. 상부에서는 너를 비웃지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네가 너무 우매하다고 할 뿐이다. 어찌 되었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그것이 최고다.
오늘은 리더 일꾼의 직책 제8조에 해당하는 ‘사역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곤혹과 어려움을 제때 보고해 해결 방법을 구한다’는 내용을 다루면서 곤혹과 어려움이란 무엇인지, 리더 일꾼이 이런 곤혹스러운 점과 어려움을 마주하면 어떻게 처리하고 해결해야 하는지, 이런 일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주로 교제해 보았다. 거짓 리더가 이런 일을 마주했을 때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에 관한 내용은 다음 교제 때 다루기로 하자.
2021년 3월 27일
성경은 ‘개역한글’을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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