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일꾼의 직책(3) 제 2 부

제4조 수시로 각 사역의 책임자와 중요한 사역 담당자의 상황을 파악하고 제때 조정하거나 교체하여 부적합한 인선으로 인한 손실을 피하거나 경감함으로써 사역이 효과적이고 순조롭게 진전되도록 보장한다

리더 일꾼은 반드시 각 사역의 책임자의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리더 일꾼의 직책 제4조는 무엇이냐? (“수시로 각 사역의 책임자와 중요한 사역 담당자의 상황을 파악하고 제때 조정하거나 교체하여 부적합한 인선으로 인한 손실을 피하거나 경감함으로써 사역이 효과적이고 순조롭게 진전되도록 보장한다.”입니다.) 맞다. 이것이 리더 일꾼이 사역할 때 도달해야 하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이 조항 중 리더 일꾼의 주요 직책에 대해 모두 분명히 알았느냐? 리더 일꾼은 반드시 각 사역의 책임자와 중요한 사역 담당자에 대해 마음속으로 다 알고 있어야 하며, 반드시 각 사역 책임자와 중요한 사역 담당자의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이는 리더 일꾼의 직책 범위에 속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어떤 사람들이 포함되느냐? 가장 기본은 교회 리더이다. 그다음으로는 각 그룹의 책임자와 소그룹 팀장이다. 각 사역의 책임자와 중요한 사역 담당자들이 진리 실제가 있는지, 일을 처리함에 원칙이 있는지, 교회 사역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이런 상황을 알아보고 파악하는 것은 매우 핵심적이고 매우 중요하지 않으냐? 리더 일꾼이 각 사역 주요 책임자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인원들을 제대로 조정한다면 그것은 각 사역의 관문을 잘 지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책임을 다하고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과 같다. 이 인원들을 제대로 조정하지 못해 문제가 생긴다면, 교회의 사역은 큰 영향을 받게 된다. 만약 이 인원들이 인성이 좋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기반이 있고 책임감 있게 일을 처리하고, 또한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 사역을 그들에게 책임지도록 맡기면 많은 번거로움을 덜 수 있다. 주로 사역이 순조롭게 진전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각 팀 책임자가 믿을 만하지 않고, 인성도 나쁘고, 착실하지 않고, 진리를 실행하지도 않는 사람인 데다가 방해하고 교란하는 일들까지 저지를 수 있다면, 그가 맡은 사역과 그가 이끄는 형제자매들의 생명 진입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론 그 영향은 클 수도 작을 수도 있다. 책임자가 단지 직무를 소홀히 하고 본연의 일을 하지 않은 것이라면, 사역이 다소 지체되고, 진도가 약간 더디고, 효율이 좀 낮은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적그리스도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것은 사역 성과나 효율이 다소 낮은 문제가 아니다. 그가 책임진 교회 사역이 교란되거나 파괴되어 심각한 손해를 입게 된다. 그래서 수시로 각 사역의 책임자와 중요한 사역 담당자의 상황을 파악하여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 사람을 발견하면 제때 조정하거나 교체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 사역은 리더 일꾼이 미뤄서는 안 되는 직책이자 매우 엄숙하고 중요한 사역이다. 만약 리더 일꾼이 각 사역의 책임자와 중요한 사역 담당자의 인품, 그들이 진리와 본분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각 시기와 단계별 그들의 내적 상태와 모습을 제때 알아보고, 또한 상황에 따라 제때 조정하거나 처리한다면, 이 사역은 안정적으로 진전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만약 이들이 교회에서 제멋대로 나쁜 짓을 하고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데도 리더 일꾼이 제때 발견하지 못하고, 제때 조정하지 못하고, 여러 심각한 문제가 폭로되어 교회 사역이 심각한 손해를 입은 후에야 건성으로 처리하고 조정하고 바로잡고 만회한다면, 이런 리더 일꾼이 바로 쓸모없는 사람이며 영락없는 거짓 리더이니, 반드시 교체하고 도태시켜야 한다.

방금 각종 사역 책임자의 실제 내적 상태와 그 사역 성과가 어떤지를 알아보고 파악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대략적으로 교제하였다. 이러한 실제 상황을 통해 리더 일꾼이 직책을 다했는지를 가늠하고, 그들이 바로 거짓 리더임을 증명할 수 있는 모습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폭로함으로써 거짓 리더의 본질을 해부하였다. 교회 사역에 심각한 문제가 나타났을 때, 거짓 리더는 책임을 다하지 못하며, 제때 발견하지도 못하고, 제때 처리하고 해결하는 것은 더더욱 하지 못한다. 그래서 문제를 계속 지연시키다가 교회 사역이 지체되거나 파괴되고, 심지어 마비되거나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상황에 처하고 나서야 마지못해 교회 사역 현장에 가서 살펴본다. 하지만 여전히 상응하거나 적절한 문제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고, 결국은 흐지부지하게 끝내 버린다. 이것이 바로 거짓 리더의 주요 모습이다.

각 사역의 책임자를 선발하는 기준

각 사역의 책임자와 각종 중요한 사역의 담당자를 선발하는 기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대략 알고 있지 않으냐? 예를 들어, 미술 디자인 사역의 책임자는 우선 무엇을 갖춰야 하겠느냐? (이 분야의 업무 능력을 갖춰야 하고,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업무 능력을 갖추는 것, 이는 한 측면의 이론이다. 그렇다면 이 업무 능력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겠느냐? 우리가 설명해 보자. 만약 어떤 사람이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미술 디자인에 관심이 있지만, 미술 디자인 전공이 아니고 미술 디자인 지식도 알지 못하며 그저 좋아할 뿐이라면, 이런 사람을 미술 디자인팀 책임자로 선발하는 게 적합하겠느냐? (적합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좋아하면 그 분야의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천천히 배우면 되죠.”라고 하는데, 이 말이 옳겠느냐? (옳지 않습니다.) 한 가지 경우는 제외한다. 즉, 미술 디자인팀의 다른 사람들이 이 분야의 업무를 알지 못하는데, 그가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많이 알고 좀 더 빨리 배운다면, 그를 선발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적합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경우 외에도, 만약 미술 디자인을 하는 모든 사람 중에 그 사람만 업무를 모르는데 그가 진리를 깨달았고 미술 디자인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를 선발한다면, 이것이 적합하겠느냐? (적합하지 않습니다.) 어째서 적합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냐? 그가 첫 번째 혹은 유일한 선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책임자를 선발할 때는 어떻게 선발해야 하겠느냐? 업무에 가장 정통하고 가장 경험이 많은 사람 중에서 선발해야 한다. 즉, 반드시 전문가여야 하고, 업무 능력과 사역 능력이 있어야 한다. 비전문가를 찾아서는 안 된다. 이것이 한 가지 측면이다. 이 외에도 반드시 부담이 있어야 하고, 반드시 영적인 이해력이 있어야 하며, 진리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 데에 적어도 기초가 있어야 한다. 주요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반드시 사역 능력이 있어야 한다. 둘째, 반드시 업무를 알아야 한다. 셋째, 반드시 영적인 이해력이 있어야 하며, 진리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세 항목에 따라 각종 사역의 책임자를 선발해야 한다.

각 사역의 책임자를 대하는 거짓 리더의 모습

각종 구체적인 사역의 책임자를 선발한 후에도 리더 일꾼은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 일정 기간 양성하고 훈련하며 선발된 사람이 과연 사역을 감당하여 사역이 정상 궤도에 진입하게 할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이래야 비로소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그때 당시에 너는 이 사람이 업무를 알고 있고, 사역 능력이 있으며, 어느 정도 부담도 있고, 영적인 이해력이 있어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것들이 모두 기준에 맞으니 괜찮다고 생각해 “여러분, 사역을 시작하십시오. 원칙은 모두 여러분에게 알려 드렸습니다. 앞으로 하나님 집에서 어떤 일을 하라고 여러분에게 알려 줄 때 여러분이 알아서 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사역하면 되겠느냐? 책임자를 안배하고 나면, 네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만약 리더가 그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그들과 함께 예배 모임을 갖고 진리를 좀 교제하고는 그것으로 끝이라면, 사람은 모두 자각성이 있고 신뢰할 수 있으며 말을 알아들을 수도 있기 때문에 진리에 따라 실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구체적으로 그들이 어떻게 사역하는지, 조화롭게 협력하는지, 그동안 업무 기술을 파악했는지, 하나님 집에서 그들에게 지시한 사역을 어느 단계까지 완수했는지, 이런 것들을 모두 알아보고 추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이 리더 일꾼이 사역할 때 마땅히 취해야 하는 방식이겠느냐? (아닙니다.) 거짓 리더는 이렇게 사역을 한다. 그는 일을 한 번 처리하면 그 후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책임자를 안배하고 또 몇 명의 팀원으로 팀을 하나 만들고는 “사역을 시작하십시오. 필요한 설비가 있으면 얘기하세요. 하나님 집에서 구매해 드리겠습니다. 어떤 애로 사항이나 생활상의 어려움이 있다면 모두 얘기하세요. 하나님 집에서 언제든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어려움이 없다면 사역에 집중하세요. 방해하거나 교란하지 마시고, 누구도 말만 번지르르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한다. 거짓 리더는 이 몇 사람을 한 곳에 안배하고는 이들이 먹고 마실 것도 있고 묵을 곳도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 상부에서 “그 사역의 책임자를 선발한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사역은 어떻게 진전되고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선발한 지 반년이 되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10번 정도 예배 모임을 가졌는데, 정신 상태도 괜찮아 보였고, 사역도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 책임자의 사역 능력은 어떻습니까?”라고 물으면,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선발 당시에 그가 가장 뛰어났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지금 그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실제적인 사역을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제가 그들과 함께 예배 모임을 가졌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예배 모임을 가졌는지 묻는 게 아니라 사역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묻는 겁니다.”라고 하면, “괜찮을 겁니다. 그가 나쁘다고 보고한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가 나쁘다고 보고한 사람이 없다는 것은 기준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의 사역 능력과 업무 능력이 어떤지를 봐야 하고, 그 사람이 영적인 이해력이 있는지, 실제적인 사역을 했는지를 봐야 합니다.”라고 하면, 그는 “선발 당시에는 괜찮아 보였고, 요즘은 그런 세부 사항을 아직 알아보지 않았습니다. 알아보고 싶으시다면, 저희가 가서 물어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거짓 리더는 이런 식으로 사역한다. 하부를 대할 때는 계속해서 예배를 드리고, 한 번 교제했다 하면 끝도 없이 이야기를 하지만, 상부를 대할 때는 얼버무리고 둘러댄다. 둘러댈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저는 그들과 함께 예배 모임을 가졌습니다. 지난번에 사역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물어봤습니다.”라는 것이다. 바로 이런 식으로 상부에 대응한다. 거짓 리더가 실제적인 사역을 하였느냐? 실제적인 문제를 발견하였느냐? 해결하였느냐? 책임자를 안배한 후, 책임자가 책임을 다했는지, 충성심이 있는지, 사역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성과는 어떤지, 형제자매들이 그에 대해 어떻게 보고하는지, 그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는지, 이런 것들을 거짓 리더는 전혀 알지 못한다. 왜 모르겠느냐? 그가 이런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고, 쓸데없는 일로만 바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사역을 늘 이런 식으로 감독하고 검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믿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예배 모임을 갖는 것으로 책임과 충성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거짓 리더가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 주요 모습이다.

1. 거짓 리더는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 책임자를 어떻게 대하는가

교회 내 각종 사역 책임자의 다양한 상황에 대해 거짓 리더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파악하거나 알아보거나 처리하거나 해결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책임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 있겠느냐? 첫 번째 상황은 책임자가 부담이 없으며,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기만 하며 본연의 일을 하지 않고,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심각한 문제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사역 능력이 있고, 업무에도 정통하며,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고, 말도 매우 잘하는 사람이 있었다. 게다가 머리도 좋아서 그에게 일을 지시한 후 다시 반복해 보라고 하면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을 정도로 매우 총명했다. 그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도 좋고, 그가 하나님을 믿은 햇수도 적지 않아서 그를 책임자로 선발했지만, 이 사람이 실무적인 일을 하는지, 대가를 치를 수 있는지, 실제적인 사역을 할 수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모두가 그를 선발했으니, 우선 그를 발탁해 양성하고 시험 삼아 써 보았다. 그런데 얼마간 사역하고 난 후, 이 사람은 비록 업무 능력이 있고 경험도 있지만 먹는 것만 밝히고 게으르며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고, 사역이 조금만 힘들어도 하지 않으며, 누군가에게 문제나 어려움이 있어 그의 지도가 필요해도 신경 쓰기 싫어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은 뭘 먹을까? 주방에서 오랫동안 홍사오러우(紅燒肉)를 해 주지 않았네.’라는 생각부터 했다. 평소에도 늘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희 고향의 먹거리는 정말 맛있습니다. 명절 때마다 거리에 나가 먹거리를 먹었어요. 학교 다닐 때는 주말만 되면 저절로 깰 때까지 자다가 머리도 안 빗고 세수도 안 한 채로 바로 밥을 먹었지요. 오후에는 잠옷을 입은 채 방에서 게임을 했는데, 때로는 다음 날 아침 5시에야 잠자리에 들기도 했습니다. 지금 하나님 집의 사역이 여기까지 몰고 와서, 책임자인 제가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편한지 좀 보세요. 이런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잖아요. 책임자가 되었으니, 저는 고생을 견딜 수 있어야 해요.” 입으로는 이렇게 말했지만, 그가 육을 저버렸느냐? 대가를 치렀느냐? 그는 마음속에 불만이 가득했고, 실제적인 사역은 조금도 하려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등 떠밀어야 겨우 움직였는데, 그것조차 감독하는 사람이 없으면 건성으로 대충 했다. 그는 자유롭고 방만하게 본분을 이행했다. 항상 몸을 사리고 농간을 부렸으며, 전혀 책임을 지지 않았고, 업무 측면에서 자신이 발견할 수 있는 문제도 바로잡아 주지 않았다. 모두가 자기처럼 건성으로 해야 기뻐했고, 누군가가 사역을 진지하게 하면 오히려 싫어했다. 어떤 책임자는 손에 있는 약간의 일거리를 아무렇게나 건성으로 대충 하고 나서 드라마를 정주행 했는데, 끝도 없이 봤다. 그가 드라마를 정주행 한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내 손에 있는 일을 다 했으니, 하나님 집의 밥을 거저먹는 건 아니야. 나는 그저 기분 전환 삼아 보면서 머리를 식히는 것뿐이야. 이렇게 하지 않으면 너무 피곤해서 사역 효율이 낮아져. 사역 효율을 더 높이기 위해서라도 날 좀 쉬게 해 줘.’라는 생각인 것이다. 그는 새벽 2~3시까지 계속 보고는 아침 8시에 다른 사람들은 다 밥을 먹고 본분 이행을 시작했는데도 여전히 자고 있었으며,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중에 간신히 일어났는데, 게으른 몸을 이끌고 하품하며 기지개를 켜다가 모두가 일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게으르게 볼까 봐 이렇게 변명했다. “어제 너무 늦게 잤어요. 일거리와 사역량이 너무 많아서 좀 피곤하더라고요. 밤에 꿈속에서도 어떤 사역을 제대로 못 한 꿈을 꿨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손이 여전히 컴퓨터 자판을 치고 있는 상태더라고요. 머리가 정말 멍해서 오후에 좀 더 자야겠어요.” 이렇게 늦게 일어나 놓고 오후에 또 자려고 하다니, 돼지나 다름없지 않으냐? 꾀를 부리는 게 분명한데도 핑계를 대며 자신을 위해 변명하고 해명했다. 본분을 이행하느라 밤을 새워서 피곤하다고 말했지만, 분명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육적인 편안함을 즐기며 아무 의미 없이 살고, 나중에 또 그럴싸한 핑계를 대며 다른 사람을 속이려 하다니, 이는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사역 능력과 업무 능력은 있지만, 이런 사람이 기준에 맞는 책임자이겠느냐? 분명 그렇지 않다. 그는 책임자로 적합하지 않다. 너무 게으르고, 육적인 편안함을 즐기며, 먹고 자고 노는 것을 탐하기 때문이다. 그는 책임자의 직책을 감당할 수도, 다할 수도 없다.

늘 인터넷에서 옷, 신발, 화장품, 맛있는 음식을 보고, 이런 것들을 다 보고 나서는 드라마를 정주행 하기 시작하는 여자가 있었다. 어떤 사람이 “당신은 사역도 아직 다 못 해 놓고 무슨 드라마를 봅니까? 게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아직 그렇게 많은 문제가 있으니, 책임자인 당신이 지도해 줘야 하는데, 당신은 어째서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겁니까?”라고 하자 그녀는 “제가 드라마를 보는 것도 사역입니다. 하나님 집의 영상과 영화 모두 발전해야 해서 제가 드라마에서 영감을 찾아야 합니다!”라고 했다. 이는 사람을 속이는 말 아니겠느냐? 만약 네가 이 업무를 하는 사람이라면, 영감을 얻기 위해 가끔 보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네가 이렇게 밤낮없이 드라마를 보는 것이 영감을 찾는 것이겠느냐? 이는 사람을 속이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마음속으로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있다. 그러니 네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신의 인격과 존엄을 팔아먹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원래 게임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것이 이미 일상적인 생활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책임자로 선발되었으니 이런 나쁜 습관과 나쁜 버릇은 고쳐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네가 저버리지 못한다면, 책임자로 선발되었을 때 이렇게 말해야 했다. “저는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저는 게임 중독이라 게임을 했다 하면 무아지경에 빠집니다. 아무도 간섭하거나 설득할 수 없어요. 여러분이 저를 선발한다면 분명 사역이 지체될 겁니다. 그러니 아예 저를 책임자로 선발하지 마십시오.” 네가 미리 이렇게 말하지 않고 책임자로 선발되었을 때 속으로 기뻐하고 득의양양했다면, 게다가 이 지위를 매우 소중히 여겼다면, 하지만 책임자가 된 후에도 여전히 놀고 싶은 만큼 놀았다면 그것은 부적합하다. 분명 사역을 지체할 것이다.

어떤 책임자는 나쁜 습관이 있었다. 형제자매들이 그를 선발할 때, 어떤 형제자매들은 그의 상황을 잘 몰랐으며, 또 어떤 형제자매들은 그가 하나님을 위해 풀타임으로 헌신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많은 사람이 젊은이의 그런 나쁜 버릇이나 나쁜 습관은 나이가 들어 가면서, 끊임없이 진리를 깨달아 가면서 점차 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이런 태도와 견해를 갖고 그를 책임자로 선발한 것이다. 이런 사람은 책임자로 선발되고 나서 사역을 조금 하기도 했지만,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변했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책임자 노릇을 하는 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네. 일찍 일어나고 늦게까지 일해야 하고, 모든 일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하고 더 많이 살펴봐야 해. 게다가 마음도 많이 써야 하고 시간과 에너지도 많이 써야 해. 이 사역은 쉽지 않아. 너무 피곤해!’ 그는 본분을 내팽개치고 싶었다. 너에게 부담이 없으면 책임자의 사역을 할 수 없다. 네 마음속에 부담이 있으면 기꺼이 마음을 쓰게 된다. 설령 다른 사람보다 더 힘들어도 고생이라고 느끼지 않게 되고, 쉴 때도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오늘 사역은 잘했나?’라고 생각하게 되며, 갑자기 어떤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않은 게 생각나면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네 마음속에 부담이 있으면 늘 사역을 생각하느라 뭘 먹는지, 휴식은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게 된다. 만약 책임자가 되고도 부담이 너무 작으면, 그런 열정은 단지 며칠만 지속될 뿐이다. 시간이 길어지면 어떤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이 사역이 이렇게 힘드니, 뭔가 좀 재미있고 기분 전환할 방법이 없을까? 게임이나 좀 하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동안은 그런대로 괜찮은 모습을 보였지만, 갑자기 손이 근질근질해서 게임을 하고 싶었다. 게임을 하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었다. 예전에 갖고 있던 얼마 없던 부담마저 게임을 하느라 사라져 버렸고, 열정적으로 헌신하려던 의욕도 사라졌으며, 의지도 사라졌고,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태도도 사라졌다. 누가 무엇을 물어보기만 해도 짜증이 나서 다른 사람을 책망하거나 꾸짖고 비꼬았으며, 그것도 아니면 건성으로 대충 대하다가 본분을 내팽개치기도 했다. 이 책임자에게 문제가 생긴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낮에는 간신히 비몽사몽 대충 사역을 했고, 저녁에는 남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틈을 타 몰래 게임을 하느라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래도 마음 편하게 ‘어쨌든 낮에 사역을 지체하지도 않았어. 내가 해야 할 사역은 다 했고, 다른 사람이 질문한 문제도 다 해결해 줬어. 저녁에 잠을 안 자고 시간을 내서 게임을 하는 것뿐이야. 이 또한 충성을 다한 것 아니겠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게임을 하다 보니 멈출 수가 없었고,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다. 비록 다른 사람들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았고 사역 환경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지만, 이런 책임자가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사역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왜 그럴 수 없겠느냐? 밤새도록 잠도 안 자고 게임을 하다니, 낮에 사역도 해야 하는데 사람의 에너지가 얼마나 되겠느냐? 그가 이렇게 게임에 빠져 있는데 그의 사역 효율이 좋을 수 있겠느냐? 분명 좋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책임자는 결코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으며 사역을 감당할 수 없다. 그가 업무 능력이 있고 자질도 좀 있다 하더라도 놀기를 좋아해서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다면, 이런 책임자는 교체해야 하지 않겠느냐? 교체하지 않으면 사역이 지체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교체해도 다른 사람의 업무 능력이 그 사람보다 못해서 결국은 그에게 시켜야 합니다. 그 사람은 게임을 해도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데, 이 말이 옳겠느냐? (옳지 않습니다.) 사람은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으며, 사람의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네가 주요 에너지를 노는 데에 사용한다면, 본분을 이행하는 마음이 영향을 받게 되고, 본분 이행의 성과가 크게 줄어들게 된다. 이는 무책임하게 본분을 대하는 태도이다. 사람이 온 마음과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전부 본분에 쏟아부어도 성과가 반드시 100% 합격에 이른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하물며 마음과 주요 에너지를 모두 노는 데에 쓴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본분 이행에 쓸 수 있는 네 에너지와 마음이 얼마 남지 않아 본분 이행 성과에 영향을 주게 된다. 여기에서 영향은 그저 보수적으로 말한 것일 뿐이고, 실제로는 본분 이행 성과가 심각한 손실을 보게 된다. 이런 책임자를 발견하면 제때 조정하거나 교체해야 한다. 이는 그가 이미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단순히 본분 이행이 불합격인 것만이 아니라 이미 사역을 담당하기에 역부족이고, 사역에 아무런 긍정적인 역할도 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업무 능력은 다소 부족하더라도 진지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을 찾아 사역을 담당하게 하면 그보다 낫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