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일꾼의 직책(29) 제 4 부

3) 사람을 보내 복음을 전할 때 지켜야 하는 원칙

중요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의 안전을 보호할 때 해야 할 사역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외지에 나가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의 안전을 반드시 보호하는 것이다. 사람을 외지로 보내 본분을 이행하게 할 때는 어떤 원칙을 지켜야 하느냐? 우선 나이와 성별, 식견과 경력을 어느 정도 고려해야 하며, 대충대충 아무렇게나 보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복음 전도자를 낯선 곳에 보내 복음을 전하게 한다면 어떤 사람을 보내야 적합하겠느냐? (어느 정도 식견과 지혜가 있는 사람을 보내야 합니다.) 만약 그 교회에 적합한 사람이 별로 없고 대다수가 경력이나 식견이 별로 없는 젊은이라면, 그래서 일이 닥쳤을 때, 특히 골치 아픈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모르고 원칙 없이 말하는 데다가 지혜도 부족하다면, 사역을 할 수가 없다. 이런 사람을 보낸다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사역에 영향을 끼치거나 사역을 지체시키기 쉽다. 따라서 사람을 외지로 보내 본분을 이행하게 할 때는 반드시 인성이 성숙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적합하다. 만약 적합한 사람이 별로 없다면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이 서로 협력하여 함께 나가 본분을 이행하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스물대여섯 살인 젊은 자매가 하나님을 믿은 지도 꽤 되고 믿음과 분량도 있으며 본분을 이행한 시간도 상당히 길지만 낯선 곳에 가서 본분을 이행할 때 어떻게 해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지 모른다면, 사회 경험이 있는 현지의 형제자매를 찾아 협력해서 본분을 이행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익숙한 지역이나 이미 교회가 있는 곳으로 간다면 젊은 형제자매가 가도 된다. 그러나 낯선 곳, 특히 치안이 좋지 않은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거나 다른 사역을 한다면 신변 안전을 고려해야 한다. 어떤 사람을 외부로 보내 사역하게 하든 리더 일꾼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문제는 안전이다. 만약 복음을 전할 대상이 어떤 부류인지 확실하지 않고, 그 사람들이 선 넘는 일을 벌이지 않을지 알 수 없다면 사람을 보내 복음을 전하게 할 때 신중해야 한다. 예전에 일부 리더 일꾼이 걸핏하면 나이가 열여덟, 열아홉, 스무 살 정도밖에 안 되는 젊은 자매를 낯선 곳에 보내 복음을 전하게 했다가 좋지 않은 일들이 발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떤 일이 발생했든 결국 리더 일꾼이 사역할 때 면밀히 고려하지 않은 것과 관련 있다. 리더 일꾼은 사역할 때 이런 것들을 고려해야 한다. 너무 어린 자매나 형제가 낯설고 위험한 곳에 가서 본분을 이행하도록 아무렇게나 안배해서는 안 된다. 어떤 리더가 나이가 열여덟, 열아홉인 자매 둘이 가서 복음을 전하도록 안배하자 누군가가 그 둘은 나이가 너무 어려 가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리더는 이번에는 스물한 살인 자매를 찾아 보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열아홉 살이 어리다고 했으니 스물한 살을 보내면 되겠네. 스물한 살이면 나이가 많은 거잖아?’ 이 리더는 자질이 어떠냐? 치우친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스물한 살은 열아홉 살보다 겨우 두 살 많은데 경력이 있겠느냐? 사회 경험이 있겠느냐? 어려움이나 위험한 일이 닥쳤을 때 울 수도 있지 않겠느냐? 두 살 많긴 하지만 여전히 너무 어린 나이라서 이 사역을 능히 감당하지 못한다. 최소한 나이가 서른이나 마흔, 쉰이나 예순인 형제자매를 찾아야 한다. 그러면 나이가 많고 사회 경험도 있어서 일이 닥쳤을 때 지혜롭게 처리할 줄 알기에 무슨 위험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은 겪어 보지 못한 일이 많고 경력도 없어서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모르는 데다가 위험이 닥쳐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문제가 생기기 쉽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이 사회와 인류의 사악함을 어느 정도 겪어 보았고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더 많기 때문에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어떤 위험이 발생할지, 얼마나 위험할지, 어떤 사람들이 악인이고 어떤 사람들이 무슨 일을 벌일 수 있는지에 대해 자신의 사회 경력과 경험을 근거로 어느 정도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위험한 일이 닥쳤을 때도 지혜롭게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반면 젊은이는 경험이 부족해서 일이 닥쳐도 어떤 위험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지 살피지 못한다. 따라서 안전 문제에 관해서는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보다 좀 더 꼼꼼히 고려한다. 리더 일꾼은 외부에 가서 본분을 이행하도록 사람을 안배할 때 현지의 조건에 맞게 나이가 상대적으로 많고 어느 정도 지혜와 경험이 있는 사람과 나이가 어린 사람이 협력해 본분을 이행하도록 해야 한다. 리더 일꾼은 이런 일들을 면밀히 고려해야 한다.

어느 국가에서 교회 사역을 하든 본분을 이행하는 인원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리더 일꾼이 중시해야 하는 한 가지 사역이다. 누구를 보내 어떤 사역을 시키든 그는 반드시 어느 정도 자질과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만 능히 사역을 감당할 수 있고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 특히 일부 치안이 좋지 않은 지역이나 국가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리더 일꾼은 본분을 이행하는 인원의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로 삼아야지 소홀히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괜찮아요.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는 거잖아요.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테니 죽지 않을 거예요. 설마 무슨 일이 생기겠어요?” 이 말이 옳으냐? (옳지 않습니다.) 왜 옳지 않다고 하느냐? (그건 무책임한 말입니다. 그런 관점은 너무 막연합니다.) 사람은 다할 수 있는 책임은 최대한 다해야 하고, 고려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고려해야 한다. 하나님을 시험하거나 형제자매의 안전을 걸고 도박을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켜 줄 수 있지만, 네가 고려할 수 있는 문제도 고려하지 않고 형제자매의 안전을 걸고 도박을 하며 하나님을 시험한다면 하나님은 너를 드러낼 것이다. 누가 너더러 미련하기 이를 데 없이 어리석은 짓만 저지르라고 하더냐! 그러니 리더 일꾼은 이런 말을 핑계로 대며 무책임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본분을 이행하는 인원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네 책임이니 너는 마땅히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사람이 고려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나면, 사람이 고려하지 못한 일을 하나님이 어떻게 할지는 하나님의 일이지 너와는 무관하다. 어떤 사람은 무턱대고 어떤 책임이든 다 하나님에게 미루며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안전을 책임지시니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 없어요. 전하고 싶은 대로 전하면 돼요. 하나님에게는 뭐든 자유롭고 그야말로 해방이죠. 우리는 그런 일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이런 말이 옳겠느냐? (옳지 않습니다.) 이런 말대로라면 사람은 일이 닥쳐도 원칙을 구할 필요가 없는데, 그럼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 아무 소용없다. 하나님이 이 수년 동안 입이 닳도록 거듭 충고하며 수많은 말씀으로 사람들을 가르친 목적은 바로 하나님 선민이 이 사악한 세상과 사악한 인류 사이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어떻게 진리를 추구하고 어떻게 처신할지를 알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도록 하려는 것이지, 하나님을 시험하거나 글귀와 도리에 기대어 원칙 없이 제멋대로 행동하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다. 리더 일꾼이 복음 전도 사역을 잘하려면 우선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본분을 이행하는 인원의 구체적인 상황을 알아보고 파악하여 적합한 사람을 보내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만약 어느 곳이 특히나 혼란스럽고 지인도 없는 곳이라서 복음을 전할 때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면 당분간은 그곳에 사람을 보내서는 안 된다. 그런 위험을 무릅써서는 안 되고, 의미 없는 희생을 해서도 안 된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고 어떤 사역을 하든 너는 세상에 맞설 필요도, 목숨을 내걸 필요도 없다. 네 안전과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라는 것도 아니다. 물론, 중국이라는 환경에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본분을 이행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박해하기 때문에 위험한 줄 뻔히 알면서도 너는 하나님을 믿고 따라야 하고 본분도 이행해야 한다. 본분을 포기해서는 안 되고 어느 사역도 멈춰서는 안 된다. 해외 각국의 상황은 다 다르다. 중국과 비슷한 독재 국가도 있고 민주 제도를 실시하는 국가도 있다. 민주 제도를 실시하는 국가에서는 복음 전도 사역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고, 각각의 사역도 더 원활히 이루어진다. 반면 독재와 비슷한 성질을 띠는 국가의 사람들은 야만적이고 후진적이어서 참도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알아보지도 않을 뿐 아니라 무작정 정죄하고 심지어 경찰에 신고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사람을 보내 복음을 전하게 하지 말고,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해 사역을 펼치면 된다. 리더 일꾼은 이런 것들을 다 깊이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혹은 인도 같은 국가는 종교적 배경이 매우 복잡한데, 이런 국가에서는 특정한 종파의 세력이 몹시 커서 사회 전체를 통제하고 있다. 심지어 정부도 종교 세력을 추종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국가에는 별도로 사람을 보내 복음을 전하게 해서는 안 되고, 현지의 교회에서만 복음을 전하면 된다. 일부 국가는 주(洲)나 성(省)마다 상황이 다 다르고, 현지의 법률이나 규정도 국가의 법률이나 규정과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종교적 배경이 다소 특수한 지역이 있는데, 그 지역에서는 정교일치가 이루어지고 심지어 종교 지도자가 현지의 정부 관리보다 권력이 더 커서 공개적으로 국가의 일부 정책을 위배할 수도 있다. 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면 안전상 위험이 생길 수 있다. 이런 위험은 단지 유언비어를 날조하거나 내쫓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너를 체포해 제멋대로 감옥에 가둘 수도 있다. 심지어 너에게 고문을 가하고 때려죽이거나 불구로 만들어도 정부는 개입하지 않는다. 사실 대다수 종파의 지도자는 모두 외래 종교를 증오하는데, 그들은 세력이 너무 커서 결코 법의 구속을 받지 않기 때문에 복음 전도자를 어떻게 해치든 누구도 감히 그들을 벌할 수 없다. 현지 정부의 관리조차도 그들에게 미움을 사려 하지 않는다. 네가 복음을 전할 때 그의 세력권에 들어가는 순간 그는 자기 마음대로 너를 처리한다. 따라서 리더 일꾼은 사람을 보내 복음을 전하게 할 때 특히 신중해야 한다. 우선 그곳이 어떤 상황인지 반드시 조사하고 파악해야 한다. 즉, 신앙의 자유가 있는지, 종교 세력이 큰지, 복음을 전하다 신고당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와 같은 일들을 모두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런 다음 비로소 사람을 보내야 할지 말지 확신할 수 있다. 만약 파악한 결과 복음을 전하기에 부적합한 곳이라는 것이 확실하다면 어느 누구도 그곳에 사람을 보내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 역시 복음 전도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해야 하는 한 측면의 사역이다. 일부 리더 일꾼은 치우치게 이해하고는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요.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잖아요. 어려운 일일수록 더 열심히 해 봐야죠. 주님을 믿는 사람이 그렇게나 많은데, 왜 그런 곳에 복음을 전하러 가지 않아요?” 누군가가 말한다. “그곳에는 민간 교도소가 있어요. 복음을 전하러 가면 거기에 갇힐 뿐 아니라 자칫하다가 거기에서 죽을 수도 있으니 가면 안 돼요!” 그러면 그 어리석은 거짓 리더는 이렇게 곰곰이 생각한다. ‘큰 붉은 용의 그 많은 감옥도 겁내지 않았는데 그런 민간 교도소 하나를 두려워할 필요가 있겠어? 감옥은 우리의 몸을 가둘 수는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가두지 못해! 두렵지 않아. 그냥 가!’ 사람들을 한 무리씩 보내지만 결국 모두 돌아오지 못하고 붙잡히자 거짓 리더도 어쩔 줄 몰라 한다. 이는 무슨 문제이냐? (그 거짓 리더는 얼간이입니다.) 머저리에다가 무책임한 그 거짓 리더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다. 그 자신은 왜 가지 않느냐? 위험이 두렵지 않다고 하니 그 자신이 먼저 가야 한다. 만약 그가 갔다가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고 사람을 얻을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가도 된다. 어쨌든 복음을 전할 때는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 복음을 전하기에 부적합하고 위험한 지역이라면 절대 위험을 무릅쓰고 가서는 안 된다. 중국 본토를 벗어나면 어느 곳이든 다 안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건 착각이고 치우친 인식이다. 무지한 사람이나 그렇게 생각한다. 너는 이 세상을 너무도 모른다! 서양의 대다수 국가에는 신앙의 자유가 있고 주님을 믿는 사람이 비교적 많으니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공개적으로 각종 발언을 하며 종교계가 얼마나 어둡고 사악한지 폭로해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는 순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결과가 초래된다. 네가 복음을 전하는 대상이 종교인이든 이방인이든 마주하는 것은 모두 패괴된 인류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일을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리더 일꾼은 복음 전도자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 여러 방면의 문제를 모두 면밀히 고려해야 하고, 문제가 발생하는 순간 제때 처리해야 하며, 처리한 뒤에는 경험과 교훈을 정리하고 실행의 원칙과 길을 찾아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 확정해야 한다. 이것도 해야 할 한 가지 중요한 사역이다. 이전에는 고려해 본 적 없거나 겪어 본 적 없는 일이 있다면 문제가 발생한 뒤에 정리해야 한다. ‘저런 곳에 과연 가야 할까? 이렇게 사람을 보내는 방식이 옳을까? 다음에 복음을 전하거나 어떤 중요한 사역을 할 때 배치와 전략, 방향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계속해서 정리하는 과정에서 사역의 방식과 원칙을 점차 확정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점점 더 구체적이고 점점 더 제대로 진행될 것이고, 문제가 덜 발생하거나 아예 발생하지 않게 될 것이며, 나아가 중요한 사역 인원이 아무런 위험도 부담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런 성과를 이루려면 리더 일꾼이 경험을 많이 정리해야 하고, 각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 직면하는 다양한 환경과 여러 상황을 많이 파악해야 한다. 얻는 정보가 많고 정확할수록 처리하는 원칙과 방안도 더 정확해져서 최종적으로 안전을 보장하는 성과에 이를 수 있다. 그러면 복음 전도 사역이 질서 있게 진행되도록 보장할 수 있다.

3. 안전에 관한 사역을 중시하지 않는 리더 일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일부 리더 일꾼은 자질도 부족하고 책임감도 없어서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도 못하고 하기도 귀찮아한다. 그가 책임지는 지역에서는 중요한 본분을 이행하는 인원들이 걸핏하면 안전상의 위험에 직면하여 이사 가거나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본분을 이행할 때도 안심하지 못한다. 심지어 발생해서는 안 되는 일들도 자주 발생한다. 예를 들면, 그가 찾은 접대집의 지대가 낮아서 현지에 폭우가 내려 홍수가 발생하면 집이 침수될까 봐 미리 이사 가야 한다. 사역 장비며 주방 도구며 이틀 연속으로 옮기는 바람에 다들 힘이 들어 기진맥진해지고 의기소침해져서 이렇게 말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사를 다니느라 늘 ‘유격전’을 벌이는 이런 생활이 언제쯤 끝날까요? 안전하고 믿을 만한 집을 찾아서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는 없을까요?” 리더 일꾼이 이 정도 사역도 감당하지 못하다 보니 그를 따르는 형제자매는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거주할 곳도 마땅치 않다. 거주 환경이 늘 임시적이어서 언제든 피난 갈 준비를 하고, 생활용품은 쓰고 나면 서둘러 가방 안에 다시 넣어 둔다. 언제 위험한 환경이 닥쳐 호구 조사를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조사하는 것임을 다 알고 있다. 그러니 수시로 옮겨다녀야 한다. 그래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은 늘 안절부절못하고 안전감을 느끼지 못한다. 이는 본분 이행의 성과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느냐? 이는 리더 일꾼이 하는 사역과 관련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사역을 어떻게 한 것이냐? (잘 하지 못한 것입니다.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입니다.) 일부 리더 일꾼은 무책임하고 마음을 다하지 않는다. 본인이 거주 환경에 대한 요구가 높지 않고 비바람을 피할 곳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형제자매에게 안전하고 믿을 만한 거주지를 찾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는다. 일부 리더 일꾼은 자질이 부족해서 어떤 환경이 조용하여 사람이 거주하고 형제자매가 본분을 이행하기에 적절한지 알지 못하고, 지대가 낮아서 아무도 세 들지 않는 셋집을 얻는다. 결국 형제자매는 입주한 지 이틀도 되지 않아 몸에 습진이 생기고 온몸이 가려워진다. 어떻게 된 일이겠느냐? 집 안이 너무 습해서 바닥에 물이 스며 나온 것이다. 이런 집에서 살 수 있겠느냐? 리더 일꾼이 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본분을 이행하기에 적절한 집도 하나 못 찾으니 이는 어떤 자질이냐? 또 어떤 리더 일꾼이 얻은 셋집은 늘 비가 새고 바람이 들어오며 혹은 방음이 안 되거나 인터넷과 수도, 전기가 없다. 이런 데서 어떻게 사느냐? 좋은 집은 놔두고 하필이면 이렇게 온전하지 않은 셋집을 얻었으니 이는 일을 그르친 것 아니냐? 비록 거리에 나앉지는 않았지만 집 안에 기본적인 시설도 많이 없어서 차라리 텐트에서 사는 게 나을 정도다. 대다수 형제자매가 고생하는 데 익숙해져서 그 정도 고생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견딜 수는 있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이렇게 고생하면 본분 이행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느냐? 따라서 리더 일꾼이 자질이 부족한 데다가 책임감도 없다면 이 사역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서둘러 사직한 뒤 이 사역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을 추천해 사역을 담당하게 해야지, 중요한 사역 인원 대다수의 생활과 본분 이행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 중요한 본분을 이행하는 인원을 배치하는 사역을 할 때 모든 면을 빈틈없이 고려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의 생활 환경은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측면이 보장되어야 교회 사역이 영향받지 않는다. 이 사역은 하기 쉽지 않겠느냐? (쉽습니다.) ‘하기 쉽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리더 일꾼이 자질이 부족한 머저리에다가 책임감도 별로 없다면 할 수 없다. 리더 일꾼이 이 사역을 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못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덩달아 피해를 입는다. 온종일 기근으로 인해 피난 가듯 하면 어떻게 본분을 이행하겠느냐? 어떤 거짓 리더는 진리 원칙도 깨닫지 못했으면서 남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고, 사역도 제대로 못 하면서 물러나지 않고 자리에 눌러앉은 채 떠나지 않는다. 이런 리더는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 (교체해야 합니다.) 그를 교체하는 것은 쉽지만 문제는 그보다 나은 사람이 그의 사역을 대신할 수 있는가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를 교체한 뒤 너희가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중요한 사역 인원에게 안정적인 거주 환경을 보장해 줄 수 있겠느냐? 혼자서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세 명이나 다섯 명이 협력해서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만약 너희도 이 사역을 능히 감당하지 못한다면, 이렇게 간단한 일도 하지 못하고 기본적인 생활 환경도 보장하지 못한다면 너희는 잠시 더 애를 먹고 고생을 겪어야 한다. 그러고도 계속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고생을 견디려는 너희의 굳건한 의지를 보고 너희에게 믿음직스럽게 일을 처리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내 사역하게 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의 고생스러운 날은 끝날 것이고, 고생 끝에 낙이 올 것이다. 만약 이렇게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이 없다면 너희는 운명으로 여기고 받아들여야 한다. 너희는 고생할 운명이니 그런 고생을 견뎌야 한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런 고생을 견뎌야 한다. 사실 이 정도 고생은 견딜 만한 가치가 있다. 감옥살이를 하며 혹형을 당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적어도 고문에 시달리지는 않고 심문하는 사람도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본분을 이행할 수도 있다. 형제자매들은 함께 교회 생활도 할 수 있다. 조금 놀라고 겁먹거나 고난과 어려움을 좀 겪으며 자주 이사해야 하더라도 그것 또한 인생에서 특별한 체험이 될 것이다. 공과를 좀 배우고 수확을 좀 얻는다면 꽤 좋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사람은 마땅히 고생을 견디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지배에 맡길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이런 고통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다면 속으로 하나님에게 간절히 구해도 된다. ‘하나님, 고생하는 저희를 좀 봐 주세요. 저희가 얼마나 불쌍합니까. 저희는 하나님을 따르면서 원망도 후회도 하지 않아요! 저희의 변함없는 충성심을 봐서라도 이 고통스러운 생활을 끝내게 해 주세요! 저희에게 적절한 곳을 찾아 줄 합당한 리더 일꾼을 보내 주세요! 저희는 온종일 풍찬노숙하며 떠돌아다니고 있어요.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알 수 없어요. 저희는 정처 없이 헤매고 싶지 않아요. 저희에게 안정된 거처를 찾아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면 적절하지 않겠느냐? 이렇게 기도해도 된다. 환경에 대한 요구에 따라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고생을 겪는 일이 다른 관점에서 보면 나쁜 일도 아니다. 고생을 좀 겪으면 네 의지를 단련할 수 있다. 의지를 단련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늘 고생을 겪다 보니 무감각해지고 무엇이 고생인지 모르게 되며 아무리 고생해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이 닥쳤을 때 공과를 좀 배우고 식견을 좀 키우고 사람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리더 일꾼이 자질이 너무 형편없어서 배치 사역도 제대로 못 한다면 어떻게 하나님 선민에게 공급하고 인도할 수 있겠느냐? 이런 사람은 리더 일꾼이 되기에 적합하지 않다. 하나님 집은 셋집을 얻을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형제자매가 온종일 정처 없이 떠도는 것도 바라지 않으며, 사람이 늘 고생하며 매일 힘들게 사는 것도 권장하지 않는다. 물론 사람이 겪는 어떤 고생도 외면하지 않는다. 그러나 리더 일꾼이 배치 사역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좀 할 때도 그렇게 애를 먹는다면 자랑할 만한 게 뭐가 있겠느냐? 한 사람 한 사람 다 외모도 그럴듯하고 학력도 높고 사회적 신분도 있지만 이 정도 일을 처리하는 것조차 이토록 힘들어한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이는 사람이 견뎌야 하는 고생이다. 하나님의 지배에 맡기는 것이 옳다. 어쩌면 언젠가 고생 끝에 낙이 와서 더 이상 이런 생활을 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환경에 있든 사람은 순종하는 태도를 가져야지 원망해서는 안 된다. 그 리더 일꾼이 믿음직스럽지 않고 사역을 제대로 못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너의 진심과 충성심, 하나님에 대한 너의 순종과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태도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 그러면 이 일에서 너는 굳게 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리더 일꾼도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그가 자질이 부족해 사역을 하지 못하거나 거짓 리더라서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은 그 개인의 문제이지 하나님 집과는 관련이 없다. 하나님 집에서 그에게 그렇게 하도록 시킨 것이 아니라 단지 그의 무책임함 때문에 드러났을 뿐이다. 그는 하나님 집에서 맡긴 사역을 완수할 수 없으므로 교체되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 선민이 덩달아 고생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지배에 맡겨야 한다. 설사 리더 일꾼이 사역을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어떤 문제가 존재하더라도 하나님이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라는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네가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영원히 변해서는 안 된다. 이는 영원한 진리이다. 본분을 이행할 때 뜻대로 되지 않는 어떤 일이 발생하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공과를 배워야 하며,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고 하나님에게 기도해야 한다. 외부 환경에 영향받아서는 안 되고 각종 환경에 적응하는 법과 각종 환경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만 생명 진입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분량이 작아서 고생스러운 일이 닥치면 원망하고 걱정하고 속으로 괴로워하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잃는다. 참으로 어리석고 무지하다! 리더 일꾼이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않아서 드러나고 도태되는 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 왜 너는 그가 부적절하게 안배했다는 이유로 소극적으로 변하고 하나님을 멀리하느냐? 이는 대역무도한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사람을 분별하고 버리는 것은 괜찮지만 하나님과 진리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진리는 틀릴 리 없고, 하나님은 틀릴 리 없다. 하나님의 본뜻은 사람이 그런 고생을 겪지 않길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패괴된 인류는 고생을 좀 겪지 않으면 안 된다. 고생을 좀 겪는 게 너에게는 도움이 된다. 그 도움은 바로 공과를 배우고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다. 다양한 고생을 견딜 줄 알면 어느 정도 인내력이 생기고 다양한 환경에서 굳게 설 수 있다. 고생을 견딜 줄 아는 것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네 의지를 단련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본뜻이고 하나님이 네게서 보고자 하는 성과이다. 네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하고 실행할 수 있다면, 어떤 사람과 어떤 환경을 맞닥뜨리든 하나님을 버리지 않을 수 있다면, 육체가 얼마나 고생하든 진리를 실행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올바른 이해와 태도를 갖추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변하지 않는 것은 물론 속으로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고 떠나지도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분량이 있는 것이다.

리더 일꾼은 중요한 본분을 이행하는 인원의 안전을 잘 보호하고 외부 환경에 방해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사역에는 세세한 내용이 아주 많다. 리더 일꾼은 한편으로는 이런 세세한 사역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행해야 할지 파악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부 특수한 환경이 닥쳤을 때 정확하게 판단하여 적절한 원칙을 찾고 구체적인 처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최종적인 목적은 각각의 중요한 사역 인원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복음 전도 사역이 질서 있게 진행되도록 보장할 수 있다. 이 원칙을 지키면 된다. 이게 바로 리더 일꾼이 이 사역을 하는 목표와 원칙이다. 만약 이 목표와 원칙이 정확하다면 리더 일꾼은 이 사역을 할 때 기본적으로 기준에 맞는 것이다. 이 사역에 관한 문제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느냐? 어떤 사람은 말한다. “저는 예전에 리더 일꾼이 되어 본 적이 없어요. 이런 일을 접해 본 적도 없고요. 이 사역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하는지도 몰라요. 그러니 저는 하지 않아도 되죠. 안전하든 말든 상관없어요. 당신들의 안전 문제는 당신들이 알아서 처리하세요.” 자리만 차지한 채 아무 일도 안 해서야 되겠느냐? (안 됩니다.) 이런 리더 일꾼은 파면해야 한다. 네가 실질적인 사역도 하지 않는데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외모가 뛰어나니 장식품으로 쓰겠느냐? 이런 리더 일꾼은 해임하고 도태시켜야지, 사역도 안 하면서 자리만 차지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 거짓 리더는 양심과 이성이 없는 것 아니냐? 정말 양심과 이성이 있다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왜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겠느냐? 태어날 때부터 뭐든지 할 줄 아는 사람은 없다. 모두 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진리를 구할 줄 안다면 제대로 사역할 방법을 찾을 수 있고, 책임감이 있다면 제대로 사역할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다. 리더 사역을 하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진리를 구할 수만 있다면 제대로 사역하는 것은 쉽다. 그 밖에, 리더 일꾼은 모두 파트너가 있다. 두세 사람이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하기만 하면 어떤 사역이든 쉽게 할 수 있다. 지금 수많은 리더 일꾼이 다 훈련을 하고 있는데, 다들 어떤 일이든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훈련하고 있다. 이제 적어도 일부 리더 일꾼은 리더의 사역을 능히 감당할 수 있고, 완전히 복음 확장 사역을 잘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럼 오늘 교제는 여기에서 마치겠다. 또 보자!

2024년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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