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일꾼의 직책(28) 제 2 부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또 어떤 모습이 있느냐? 이런 부류는 언제든 하나님의 이름을 부인하고 저버릴 수 있으며, 언제든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고, 또 언제든 유다가 될 수 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의 치명적인 점이 무엇이냐? (죽음을 두려워하고, 배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부류는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며 죽음을 두려워한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그의 치명적인 점이다. 그는 죽지 않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유다가 되든, 멸망의 자식이 되든, 저주받은 자가 되든 무엇이 되든 상관없다. 살아만 있으면 그만이며, 살아 있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큰 목표이다. 사람의 생사가 모두 하나님 손에 있고,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이 주관하고 주재하고 지배하니 사람은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해야 한다고 아무리 교제해도 그는 이 말을 믿지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는 사람으로 환생하기가 쉽지 않으니 절대 죽으면 안 된다고, 죽으면 이 육체는 끝이고, 이 영혼은 짐승으로 환생하거나 떠도는 혼령이 되어 다시는 사람으로 태어날 기회가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기에 죽음을 특히 두려워한다. 죽음은 그에게 있어 절체절명의 재앙이지, 다음에 윤회할 좋은 기회도, 다시 환생할 새로운 시작도 아니다. 그래서 그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기 목숨을 보전하려 한다. 설령 남을 팔아넘길지라도, 교회 사역에 어떤 손해를 끼칠지라도 마다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저버려도 어떤 결과가 생길지 상관하지 않는다. 그저 살아서 평안하면 그만이다. 이자는 어떤 사람이냐?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는 사람입니다.)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는 천한 인간이다! 존엄도 인격도 없이 살면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다 하고, 최소한 지키는 선이라는 게 아예 없다. 어떤 이들은 위험한 환경을 마주하기도 전에 이미 속으로 계산을 다 해 놓는다. ‘만약 체포되면 나는 다 불 거야. 당신들은 큰 붉은 용이 고문으로 괴롭히고 위협하고 겁박하면서 배신하라고 해도 한마디도 하지 않지만, 난 당신들처럼 바보같이 육체적인 고통을 당하면서 침묵을 지키지는 않을 거라고. 맞기 전에, 겁박당하기 전에 먼저 다 불 거야. 내가 얼마나 똑똑한지 봐! ‘시대의 흐름을 잘 아는 자가 걸출한 인물이다.’라는 말도 있잖아. 교회의 형제자매들을 팔아넘기는 게 뭐가 나빠? 사람은 좀 이기적이어야 하는 거 아냐?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 건 바보 아니냐고.’ 일이 터지기도 전에 벌써 자신을 보전할 방법을 생각해 놓은 것이다. 그는 진작에 이 일을 확실히 생각해 놓았다. 그가 처신하는 신조는 무엇이겠느냐? ‘왜 자기 자신을 못살게 굴면서 살아야 하지? 왜 융통성 없이 구는 거지? 스스로를 아껴야 이번 생이 헛되지 않지!’ 이것이 그가 처신하는 신조로, 어떤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도 없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런 부류를 어떻게 처리해야겠느냐? (이런 사람을 발견하면 지혜롭게 제명해야 합니다. 그는 시한폭탄입니다.) 맞다. 그는 시한폭탄이다. 그는 너무 두려워서 위험이 닥치면 교회를 팔아넘길 수 있다. 정상 인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지혜로운 방식으로 위험한 환경에 대응하고,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을 갖게 될 것이며, 예배와 본분 이행도 게을리하지 않고, 자기 분량과 조건에 맞춰 힘닿는 데까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다. 이것이 정상 인성의 표출이다. 하지만 두려워하는 자들은 목숨을 몹시 아끼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또 목숨을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없으며,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박해받으면 자연히 두려워하는 자임이 드러나는 것이다. 두려워하는 자는 자신을 보전하기 위해 유다가 될 수 있다. 이런 자는 위험인물이자 무서운 사람이다. 교회는 절대 그에게 어떤 사역을 맡겨서도, 어떤 본분을 이행하게 해서도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배신하는 순간 교회 사역에 큰 손해를 끼칠 테니, 이는 득보다 실이 많은 일이다.

두려워하고 의심이 많은 이 부류가 의심이 많은 모습에는 어떤 것이 있겠느냐? 어떤 사람들은 늘 하나님 집의 여러 사역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사역을 하는지, 하나님의 이 말씀들이 진리인지도 알지 못한다. 이런 것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나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 집의 사역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인지, 어떤 성과를 이루려는 것인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맞는지 확신하지 못하고, 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 그는 교회란 무엇인지도 모르고, 설교를 아무리 많이 들어도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하며, 늘 형제자매들의 본분 이행을 의심하면서 속으로 말한다. ‘이 사람들은 매일 들락날락하면서 쉴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데, 도대체 뭘 하는 거지?’ 특히 큰 붉은 용 국가에서 하나님을 믿으며 본분을 이행할 때 리더 일꾼이 교회의 일부 사역, 예를 들어 행정 사역이나 인사 관련 사역, 사무적인 사역, 특히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사역에 대해 교제하고 상의하면서 이를 일반 형제자매들에게 알려 주지 않는 것은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것이지 해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늘 이런 일들을 캐물으려 한다. 예를 들어, 어디서 책을 인쇄하는지, 어디에서 리더 일꾼들을 접대하는지 등을 알고 싶어 하는데, 이런 것들을 안다고 해서 네게 이득이 있겠느냐? (아무 이득도 없습니다.) 그럼 모른다고 해서 네게 무슨 손해가 있겠느냐? (아무 손해도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에도, 진리를 얻는 것에도 영향을 주지 않고, 더욱이 생명 진입이나 성품 변화에 지장을 주지도 않는데, 이런 일들을 캐묻고 알아보는 것은 쓸데없는 일 아니겠느냐? 접대하는 사람 중에도 어떤 이들은 항상 의심이 많아서 리더 일꾼이 교회 사역에 대해 교제하고 의논하면서 관련 내용을 알려 주지 않으면, 이렇게 생각한다. ‘리더 일꾼들은 예배 시간에 교제할 때 왜 항상 나를 빼놓고 하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걸까?’ 또 어떤 리더 일꾼들의 개인 정보를 알려 주지 않으면, ‘왜 나한테는 알려 주지 않지? 나는 그들의 이름도, 집 주소도 모르고, 그들의 실체도 몰라. 그들이 하나님을 믿도록 나를 인도하면서 나를 속이거나 해치지는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이 밖에도 제물과 관련된 사역이나 위험한 사역 같은 민감한 사역은 원래 묻지 말아야 하는데도 늘 캐물으려 하고, 상대방이 말해 주지 않으면 더욱 의심이 많아진다. 특히 어떤 사람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다 할 믿음이 없었는데, 하나님을 믿은 후 집안 사업이 잘되고 가족들도 건강한 것을 보고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라고 생각해 순간 기뻐하며 몇 푼 헌금을 하고는 곧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헌금한 돈이 어디에 쓰였을까? 교회 사역에 쓰였을까? 사업 투자나 불법적인 활동에 쓰인 건 아닐까?’ 그는 늘 이런 일들을 캐물어 알아보려 하고, 진상을 파헤치려 한다. 어떤 이들은 더 심하게 의혹을 가진다. 예를 들어, 교회가 사역상의 필요로 인해 기자재를 구매하거나 본분 이행 인원의 생활을 돕고 보살펴 주면, 이 의심 많은 부류는 늘 이런 의심을 품는다. ‘돈 쓰는 데가 이렇게 많은데, 이 돈들이 다 어디에서 나온 거지? 교회도 무슨 사업을 하는 건 아닐까? 부자들이 후원을 하거나 어떤 뒷배가 있는 건 아닐까? 교회를 지원하는 단체가 있는 건 아닐까?’ 특히 정부 당국으로부터 교회를 비방하는 유언비어나 마귀적인 말을 들으면, 예를 들어 교회의 아무개가 살인을 저질러 법을 어겼다거나 아무개는 국가에서 수배 중인 범죄자라거나 아무개는 거액을 가지고 해외로 도주했다는 등의 말을 들으면 그는 교회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의혹이 더욱 커진다. 이런 부류가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겠느냐? 하나님을 믿으면서 지켜야 할 원칙을 꿰뚫어 볼 수 있겠느냐? 보통 사람은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임을 확신하고 나면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 사라진다. 교회에 어떤 문제가 생기든,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나타나든 그는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대할 수 있고, 설령 악인이나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교란할지라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그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결코 의심하지 않고, 교회와 하나님 집도 의심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일부 개인에게 견해를 갖거나 하나님의 사역에 관념을 조금 가질 뿐이지만, 교회 생활을 하면서 점차 해결된다. 그러나 의심 많은 부류는 다르다. 그는 처음 하나님을 믿을 때부터 의심과 여러 가지 관념을 갖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이 말씀들을 선포한 것이 하나님의 사역인지도 확신하지 못하며, 형제자매들이 함께 모인 장소가 하나님의 교회인지는 더더욱 확신하지 못한다. 그저 늘 의심을 품은 채 자신의 의심이 옳다는 것을 입증할 사실적 근거를 끊임없이 찾을 뿐이다. 이는 어떤 태도냐? 이런 태도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깨달을 수 없습니다.) 영원히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 그가 마음속으로 가장 신경 쓰는 일은 무엇이겠느냐? 그는 늘 이렇게 생각한다. ‘이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사회단체 같은 것 아닐까? 하나님 집에서 대 주는 생활비로 그들을 접대하고는 있지만, 나도 위험을 무릅쓰고 있으니 하나님이 내 선행을 기억해 주실까? 하나님이 기억해 주시지 않으면 내 접대는 헛된 것 아냐?’ 그는 마음속으로 늘 이런 의심을 품고 있다. 그가 기꺼이 원해서 형제자매를 접대하는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복을 받기 위한 것이며,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의심이 가득하다. 특히 자신이 꿰뚫어 보지 못하거나 관념 속에서 부정적인 사물이라고 여기는 것을 들으면 그의 마음속 의심은 더욱 커진다. 예를 들어, 예배 시간에 어떤 사람은 큰 붉은 용 정권의 소행과 마왕의 추악한 몰골에 관한 주제를 언급한다. 또는 때때로 큰 붉은 용의 탄압과 체포, 그리고 그것의 본성 본질과 관련된 진리 등의 주제를 교제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이런 주제들은 정치와 관련이 없다. 이는 단지 사람들이 큰 붉은 용을 분별하게 하고, 큰 붉은 용의 몰골을 간파하게 하여 큰 붉은 용을 증오하고 내치며 사탄 권세에 속박되거나 결박되지 않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이 의심 많은 자는 그런 말을 듣고 겁에 질려 두려워한다. ‘이 사람들은 정치 얘기까지 하고 있네. 이건 정치범 아닌가? 반혁명 아냐? 이런 주제는 너무 민감해! 얼른 창문을 꼭 닫고 대문을 잠그고 인터넷 선과 전화선도 뽑아야겠어. 정부에 도청이라도 당하면 큰일이잖아. 무기징역을 받게 될 거라고!’ 그는 듣기 싫어서 어떻게든 이야기를 중단시켜 이런 주제를 언급하지 못하게 하려 한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이 사람들은 대체 뭘 하는 사람들이지? 다들 하나님은 인류의 정치에 관여하지 않으신다고 하던데, 이 사람들은 왜 또 정치 얘기를 하는 거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면 하나님 믿는 일만 얘기하면 되지 않나? 왜 이런 얘기까지 하지? 이건 스스로 골칫거리를 만드는 것 아냐? 어디 가서 얘기하든 상관없지만 우리 집에서는 하지 말란 말이야. 난 절대 ‘이런 덕’을 보고 싶지 않다고!’ 그는 아무것도 꿰뚫어 보지 못한 채, 정부가 꾸며낸 유언비어를 듣고는 분별하기는커녕 의심과 염려만 더 깊어진다. 집권층 악마 집단이나 종교의 적그리스도 세력, 악령 파벌을 마주하는 거라면 늘 의심하고 의문을 품는 것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데 정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역사하는 교회에서 하나님이 이토록 많은 진리를 선포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알아듣지 못하고, 이것이 참도임을 확신하지 못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설교를 들었고, 하나님이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하는 것을 보았음에도 그의 의심은 해결되지 않았으며, 그의 관념과 상상도 뿌리 뽑히지 않았다. 여기에서 그는 자질이 너무나 형편없고 이해 능력이 전혀 없으며, 게다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을 믿기 시작할 때부터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진리라는 것도 믿지 않았으며, 하나님 집의 사역은 모두 성령이 인도하고 있다는 것은 더더욱 믿지 않았다. 그래서 무슨 일에든 의혹을 가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배 시간에 각종 사람을 분별하는 것에 대해 교제하면서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했다거나, 몇몇 사람들이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않은 채 하나님의 제물을 먹고 마시고 누리기만 하는 것은 교회에 얹혀사는 것이라거나, 어떤 이들이 제물을 훔쳐 먹고 제물을 낭비했다거나, 교회 중 몇몇 사람이 음란한 짓을 저질렀다거나, 어떤 이들이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짓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우리가 이런 일을 말하는 목적은 사람을 분별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 말씀과 진리 원칙에 근거하여 사람과 일을 바라보며, 이런 일들 속에서 공과를 배우고 교훈을 얻어 사람에게 미혹되거나 속박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의심 많은 사람은 이런 말을 듣고 나서 이렇게 말한다. “아이고, 여기는 하나님 집이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곳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여태까지 내가 의심한 게 맞았나 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겠어. 사람들이 너무 믿음이 안 가고 하나님 집도 마찬가지인데, 하나님은 믿을 만할까? 누가 알겠어? 아마 하나님도 믿을 만하지 못할 거야.” 보아라, 그는 진리를 깨닫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하나님 집에서 어떤 측면의 진리를 교제하든 결국 그가 내린 결론은 다 무엇이냐? 그가 그렇게 오랫동안 의심해 온 것이 불필요한 게 아니라 옳았다는 것이다. 만약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정상 인성의 사유가 있는 사람이 이런 일에 대해 듣는다면 올바르게 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식견과 분별력을 키우는 한편, 공과를 배우고 교훈을 얻을 수 있으며, 사람을 따라서는 안 되고 사람을 분별하고 진리를 더 많이 깨달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언제 어디서나 다른 사람에게 미혹될 수 있지만, 진리를 깨닫고 분량이 생기면 다른 사람에게 속박되거나 미혹되거나 통제받지 않게 된다. 하지만 의심 많은 사람은 절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 집에서 각종 사람과 일을 분별하는 법에 대해 교제하면 할수록 그는 자신의 의심이 옳았다고, 입증되었다고 생각한다. ‘봐, 역시 내가 똑똑했지! 경계를 늦추지 않은 게 다행이지. 사람들은 늘 나보고 의심이 많고 속셈이 많다고 했지만, 내 의심이 옳다는 게 사실로 증명됐잖아. 당신들이 얼마나 바보스러운지 봐. 하나님을 믿으면서 본분을 이행하고 체험적 인식을 말할 줄만 아는데, 그게 무슨 쓸모가 있어? 그게 당신들을 지켜 주기라도 하나? 쓸모없어! 무슨 일이든 의문을 품고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거야. 누구든 경계해야 해. 자기 자신만큼 믿음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친부모도 마찬가지고!’ 이런 자는 어떤 사람이냐? 이런 자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겠느냐? (아닙니다.) 하나님 집에서 어떤 측면의 사역을 교제하고 어떤 부류의 사람을 분별하든, 혹은 하나님이 어떤 환경을 마련해 주든 그 목적은 하나님의 선민이 그 가운데서 공과를 배우고, 더 실제적으로 하나님나라에서 훈련받게 하는 데 있다. 사람은 이 실제적인 공과들 속에서 진리를 깨달아 사람을 분별할 줄 알게 되고, 사람과 각종 일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며, 그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말씀한 진리가 도대체 어떤 실질적인 사람과 일, 사물을 가리키는지 더 잘 알게 된다. 하지만 의심 많은 사람은 그 속에서 공과를 배우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의심이 많아지고 교활해진다.

또 어떤 의심 많은 자들은 하나님 집에서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일을 하든 늘 조심조심하면서 형제자매나 리더 일꾼이 자기를 책망하고 훈계할까 봐, 심지어 괴롭힐까 봐 두려워한다. 그는 “만약 제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교회를 떠나면 교회에서 저를 보복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하는데, 이 일에 대해서는 완전히 안심해도 된다. 불신파가 교회를 떠나는 것은 모두가 기뻐할 일이고, 어느 쪽에도 유익한 일이다. 그러니 교회를 떠나거나 본분 이행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 생활하고 싶다면 마음 놓고 말해야 한다. 또한 “몇 년, 몇 월, 며칠부터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탈퇴하고, 본분 이행을 그만둔다.”라는 성명서를 써도 좋다. 이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하나님 집의 문은 열려 있으니 담대하게 떠나도 된다. 누가 보복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고, 두려워하지도, 의심하지도 마라. 네가 보기에 교회 사람 중에 악인이 있더냐? 절대 없다. 설령 악인이 있다고 해도 제명될 것이다. 대부분은 비교적 순박하며, 인생의 바른길을 가는 걸 좋아한다. 보복하고 해치는 것은 진리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니 그들은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의심 많은 자들은 처신하는 데 어떤 문제가 있겠느냐? 속만 좁을 뿐 지능은 낮다. 그는 자신의 교활하고 간사한 옹졸함이 처신을 위한 최고의 지혜라고 여기며, 진리 원칙과 하나님의 사역,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이해도 못 하고 구하지도 않으며, 오직 사탄 철학대로 살아갈 뿐이다. 그는 ‘어떤 일이 닥치든 여러 가지 의문을 가져야 해. 그리고 내 생각엔 누구를 의심하든 그건 합리적인 거야. 내 의심이 사실에 부합하든 말든 모두 당연한 거고. 어쨌든 일이 닥쳤을 때 많이 의심하는 것은 나 자신에게 도움이 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얼마나 오래 믿든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구하지 않고, 각종 문제와 의혹을 해결할 답을 찾지 않으며, 자신의 머리와 좁은 속내로, 처세 철학이나 경험으로 이런 일을 분석하고 대한다. 결국 그가 각종 일을 더 많이 접하고 각종 정보를 더 많이 들을수록, 의심 많은 본성이 변하기는커녕 오히려 의혹이 더욱 많아진다. 예를 들어, 이 의심 많은 자들은 하나님을 믿은 지 1, 2년쯤 되었을 때 중국 공산당이 하나님 집을 비방하려고 조작한 ‘자오위안(招遠) 사건’에 대해 듣고는 ‘하나님 집에서 한 일일 수도 있어. 하나님 집에서 지시하지 않았더라도 아래에 있는 형제자매들이 한 일이겠지. 당신들이 인정하지 않을 뿐이라고.’라고 생각한다. 그는 하나님을 믿은 지 3~5년이 되어도 여전히 큰 붉은 용의 주장을 믿고, 8~10년을 믿어도 하나님 집에 대한 마음속 의심을 떨치지 못한다. 그는 큰 붉은 용이 교회를 모함하고 음해하고 비방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집의 사람들이 한 일이라고만 생각한다. 보아라, 그는 어떤 일을 대할 때 하나님 말씀과 진리 원칙에 근거하는 법이 없다. 그는 큰 붉은 용의 주장을 믿으며, 마귀 사탄의 입장에 서서 일을 바라본다. 그는 사탄이 하나님 선민들을 어떻게 탄압하고 해치든 다 이해한다고 하면서, 하나님 집이 결백하다는 사실은 결코 믿지 않고,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박해를 받는 것이 억울한 일이라는 것도 믿지 않는다. 그가 하나님 집의 형제자매들이 모두 순박하고 분수를 지키는 사람임을 직접 보았음에도 마음속으로는 큰 붉은 용이 교회를 비방한 일을 시종일관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고생도 하고 대가도 치르며 심지어 헌금도 하지만, 결국에는 여전히 불신파이다. 사실, 의심 많은 자는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자보다 더 골칫거리다. 어떤 점이 그렇겠느냐? 진리에 관심이 없는 자들은 교회 사역과 본분 이행에 전혀 관심도, 흥미도 없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따르고 본분을 이행하든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일에 대해 의심도 없고 교회 일을 거의 알아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의심이 많은 이 부류는 정반대로 뜬소문 캐기를 좋아한다. 왜 캐물으려 하겠느냐? 그 목적 중 하나는 분명 ‘정보를 많이 캐내고 알아내서 미리 뒷일을 준비하고, 떠날 것인지 남을 것인지 언제든 결정할 수 있도록 하자.’라는 것이다. 그는 또 어느 리더 일꾼의 본명이 무엇인지, 어디에 사는지,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왜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는지와 같은 일들에 관해 캐묻는 데 집중한다. 혹은 복음 전파 인원이 누구에게 복음을 전했는지, 가족 중 누가 하나님을 믿는지, 복음을 전한 지 몇 년이나 됐고 몇 명을 얻었는지 등의 일을 샅샅이 알아낸다. 의심이 많은 부류는 이런 정보를 수집하기를 좋아하고, 수집을 마친 후에는 마음이 편안해지며, 이런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이고, 결정적인 순간에 쓸모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의심이 많은 이 부류는 아는 것이 너무 많아서 ‘정보 데이터베이스’나 다름이 없는데, 심지어는 리더 일꾼조차 모르는 일들까지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누가 해외에 나가서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지, 어느 나라에 갔는지와 같은 국제적인 일까지도 다 알고 있다. 하지만 현재 설교집이 몇 집까지 내려왔는지 물어보면 대답을 못 한다. 그는 생명 진입의 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형제자매들의 개인 정보와 교회의 여러 상황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이런 일을 자주 캐묻는 목적 중 하나는 각 측면의 상황을 더 많이 알아내서 언제든 뒷일을 준비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뒷일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너무 어리석다고, 이방인들의 말처럼 ‘팔려 간 것도 모르고 돈까지 세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는 아무 가치도 없는 인간쓰레기건만, 자신을 너무 귀하게 여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런 부류는 의심이 많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의심 많은 자다. 의심 많은 자의 인성은 몹시 간사하고 교활하다. 간사하고 교활한 것을 지능이 높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사실 간사하고 교활한 이 부류의 사람은 몹시 어리석고 전혀 자질이 없다. 자질이 그렇게 형편없는 것 자체도 이미 개선하기 매우 힘든데, 거기에다 교활하기까지 하니 더욱 고치기가 어렵다. 만약 자질만 부족할 뿐 비교적 정직하고 교활하지 않으며 진심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면, 구원받을 희망이 한 줄기 있을 것이다. 또 자질이 부족하고 약간 간사하더라도 진리를 받아들여 자신을 인식할 수 있다면, 간사한 성품을 벗어 버릴 희망이 한 가닥은 있을 것이다. 또한, 진리를 깨닫고 점차 인식하여 진리에 진입할 수 있다면 의심도 조금씩 풀릴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부류는 자질이 부족하고 간사하며 교활할 뿐만 아니라 몹시 어리석기까지 하니, 장님이 눈병까지 앓는 것처럼 아예 고칠 방도가 없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는 구제 불능이다. 이 부류는 구제 불능일 정도로 의심이 많으니, 어떻게 대해야겠느냐? (그런 부류를 발견하면 경계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을 보전하기 위해서라면 교회를 팔아넘길 수도 있는 위험인물이니, 기회가 되면 폭로하고 제명해야 합니다. 만약 기회가 없다면 지혜로운 방식으로 떠나도록 권고해야 합니다.) 그가 의심 많은 사람인 것이 확실하다면 상대하지 마라. 상대하면 골치가 아파진다. 그를 상대하면 그는 늘 네 뒤를 캐려고 할 것이다. 네가 밖에 나가기라도 하면 그는 바짝 주시하며 계속 묻는다. “어디 가십니까? 며칠이나 가시나요? 무슨 일 보러 가시는 거예요?” 돌아오면 또 묻는다. “누구를 만났나요? 일은 잘됐어요? 무슨 얘기를 나눴나요?” 설명해 주지 않으면 그는 또 불평한다. “나한테는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는구나. 나를 믿지 못하는 거잖아? 나를 하나님 집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거지! 이 사람들은 교회 사역을 하러 간다고 하면서 왜 항상 나한테 숨기는 걸까? 불법적인 일을 하러 간 게 분명해.” 그러면서 늘 뒤에서 네 동태를 살핀다. 이 부류는 아주 골치 아프다. 그들은 많은 정보를 캐묻고 무슨 일이든 다 알고 싶어 한다. 알고 난 후에도 순수하고 올바르게 이해하거나 올바르게 대하지 못한다. 또한 그 일들에서 의심스러운 점을 찾아내어 자신의 의혹을 더욱 키우려 한다. 네가 “하나님에 대해 그렇게 의심이 많이 들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고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할 수 있다는 것도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믿지 마세요!”라고 권유해도 그는 그렇게 하길 원하지 않고 계속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고 복을 받고 싶어 한다. 이런 부류는 골치 아프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런 부류는 처리하기 쉽다. 만약 그가 교회에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면 속히 떠나도록 권고해야 한다. 이 부류는 믿을 만하지 않으며, 진리에 대한 이해 능력도 없다. 설령 본분을 좀 이행할 수 있다고 해도 하나님 집에 큰 골칫거리를 가져다줄 것이고 득보다 실이 더 클 테니, 떠나도록 권고할 필요가 있다.

두려워하는 사람도 골치 아프고 의심 많은 사람도 골치 아프지만, 두려워하고 의심도 많은 사람은 더욱 골치 아프다. 이런 부류는 담이 몹시 작고 죽음을 몹시 두려워하는 데다가 무슨 일이든 의심한다. 하나님을 믿다가 사기를 당하지는 않을지 늘 의심하고, 자기 앞날에 지장이 생길까 봐 걱정하며, 체포되거나 박해를 받아 목숨을 잃으면 너무 억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정도로 의심하는데 하나님을 믿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이는 자신을 괴롭히는 것 아니겠느냐? 그는 사기꾼이나 큰 붉은 용, 마귀 사탄을 경계하듯 형제자매를 경계하고, 하나님 집의 모든 사역지침을 경계한다. “하나님을 잘 믿고 진리를 추구하며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인정해 주실 겁니다.”라고 자주 권면해 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는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당신은 나한테 열심히 본분을 이행하라고 하지만, 이름이 알려져서 큰 붉은 용에게 잡혀가기라도 하면 목숨이 위태로워지지 않겠어?’라고 생각한다. 그가 만약 정말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면 권면해서는 안 된다. 그는 담이 몹시 작고 늘 죽음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체포되었다는 소리만 들어도 겁에 질려 오줌을 지리지만, 사업할 때는 사기 치고 속이다가 아무리 큰일이 생겨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대담한 모습을 보인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 관련된 일에만 죽도록 겁을 낸다. 그는 형제자매와 하나님 집에 대해, 특히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사역에 대해 갖가지 의혹으로 가득 차 있는데, 아무리 교제해도 그것이 해결되지 않고, 몇 년을 믿어도 하나님을 믿는 게 어떤 것인지, 왜 예배를 드리고 본분을 이행해야 하는지 모른다. 이런 부류는 지능이 떨어지는 데다가 매우 간사하고 교활한 게 분명하다. 그러니 한시바삐 떠나도록 권고해야 한다. 두려워하거나 다른 어떤 이유로 그가 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본분도 이행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침 잘된 일이다. 따로 제명하지 않아도 되고 골치 아픈 일도 덜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가 하나님을 믿는 일에 다시 관심이 생겨 하나님을 믿으려 한다면 너는 그에게 “하나님을 믿으면 언제든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거나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에서 사업해서 큰돈을 벌면 편안한 나날을 좀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라고 말해 주어라. 그럼 그는 마음이 완전히 편안해져서 더는 하나님 믿는 일을 생각하지 않고, ‘이제야 그동안의 걱정과 두려움에서 벗어났어. 더는 교회와 형제자매들을 의심할 필요도 없고, 하나님 집을 의심할 필요도 없어. 드디어 벗어났다고!’라고 여길 것이다. 이렇게 하면 두려워하고 의심 많은 사람이 나가게 된다. 그럼 큰 골칫거리가 해결된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렇게 해결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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