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일꾼의 직책(27) 제 6 부
흔들리는 부류는 사실 아무 탈 없이 편안할 때도 의심을 품고 있고 언제나 관망한다. 그러다가 일단 핍박이나 체포를 직면하면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를 통해 그는 평소에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실한 믿음을 갖고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환경이 닥치면 그의 본모습이 드러나는데, 이는 그가 하나님의 사역을 시종일관 확신하지 못하고 늘 의심하며 관망해 왔다는 의미이다. 그가 교회를 떠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그의 생각은 이러하다. ‘나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고생했는데, 만약 지금 떠나면 아무 이득도 얻지 못하잖아. 그럼 손해 아냐? 헛고생한 거 아니냐고.’ 이것이 그의 생각이다. 너는 그가 확신과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진리를 깨달았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는 여전히 의심하며 관망하고 있다. 그는 마음속으로 하나님 집의 사역이 과연 순조로운지, 각 사역에 성과가 있는지,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특히 각국 교회의 복음 확장 상황이 어떤지, 규모와 세력이 있는지, 국제 사회가 이 흐름을 인정하는지, 유명인이나 큰 인물이 이 단계의 사역을 받아들였는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가 UN의 인정과 승인을 받았는지, 각국 정부가 지지하는지, 형제자매들이 각국에서 신청한 정치적 망명이 승인되었는지 등을 알고 싶어 하며, 늘 이런 일들에 관심을 갖는다. 이것이 바로 흔들리는 부류가 가진 뚜렷한 특징이다. 그는 하나님 집이 번성하고 복음 사역이 확장되는 것을 보면 하나님 집을 떠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에 대해서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 집 사역이 교란되고 방해받고 망가지며, 형제자매들의 본분 이행도 영향을 받고, 교회가 이 세상에서 배척받고 부정당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 집을 떠날 생각을 한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이 정말 이 모든 것을 주재하시는 걸까? 나는 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볼 수 없는 거지?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진리일까?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할 수 있을까?’라고 의심한다. 그가 이런 일들을 줄곧 꿰뚫어 보지 못하고 의심하는 것은 영적인 이해력이 없어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설교를 아무리 들어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늘 여기저기 캐묻고 다니며, 자신에게 초인 같은 눈과 귀가 생겨서 천 리 밖의 일도 알 수 있고 소식도 들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러고는 앞으로 떠날지 머물지 미리 계획하려 한다. 이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부류는 무척 피곤하게 살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는 정상 인성의 사유가 없고 진리도 깨닫지 못한다. 일이 많이 생길수록 더욱 혼란스러워하고 갈피를 못 잡으며, 이런 일들을 어떻게 분별하고 규정해야 할지 모른다. 더욱이 이런 일들 속에서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공과를 배워 하나님 말씀에서 실행 원칙을 찾아내는 법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럼 어떻게 하겠느냐? 예를 들어, 교회에 적그리스도나 악인이 나타나 사람들을 미혹하면 그는 곰곰이 생각한다. ‘도대체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거지? 이 도가 참도일까? 끝까지 믿으면 복을 받을 수 있을까? 본분을 이행한 지 벌써 몇 년이 됐어. 그런데 이 고생이 가치가 있을까? 본분을 계속 이행해야 할까?’ 그는 자기 이익만 생각할 뿐, 눈앞에서 벌어지는 어떤 사람과 일, 사물도 이해하지 못하며, 매우 어리숙해 보이고, 올바른 사상과 관점이 없다. 게다가 방관자의 입장에서 관망하면서 결과가 어떤지 보려고 하니, 그를 보고 있노라면 가엾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아무 일도 없을 때는 정상적으로 행동하다가도 큰일이 생기면 어떤 입장에 서서 일을 바라봐야 할지 몰라 하고, 하는 말도 이방인의 사상 관점과 같으며, 일이 마무리된 후에도 어떤 수확을 거뒀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무척 어리석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이런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면 이 부류를 대하는 처리 원칙은 무엇이겠느냐? 그들의 행태를 보면 극악무도한 악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치명적인 약점을 하나 가지고 있다. 바로 생각도, 영혼도 없어서 어떤 일도 꿰뚫어 보지 못하는 것이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우왕좌왕하며, 누구를 믿고 의지해야 할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어디에서부터 해결해야 할지도 모른 채 그저 혼란스러워한다. 혼란스러워한 후에는 의심을 품을 수도 있고, 일시적으로 안정될 수도 있지만, 흔들리는 상태는 변하지 않는다. 이런 모습을 볼 때, 그들을 악인으로 분류할 수는 없으니, 당장 본분을 좀 이행할 수 있고 기꺼이 힘쓰려고 한다면 본분을 이행하도록 허락해라. 다만, 이는 최소한 본분을 이행하면서 성과를 낸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만약 본분을 이행하면서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건성으로 임하기만 한다면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자신의 잘못을 고치려 한다면 하나님 집에 남아 계속 본분을 이행하도록 허락하고, 이행하기에 적합한 본분을 안배해라. 반면 어떤 본분도 이행하지 못한다면 폐물이니, 적당한 곳으로 보내야 한다. 그가 기꺼이 힘쓰고자 하는지 여부는 더 이상 고려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처리하면 간단하지 않겠느냐? (간단합니다.)
너희는 흔들리는 부류의 사람을 분별할 줄 아느냐? 너희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지는 않으냐? 예전에 교회에서 정리된 사람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해 보자. “저는 이제 나아졌어요. 더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제가 예전에 참도에 대해 늘 흔들렸던 것은 하나님 집이 해외에서 막 사역을 펼치기 시작했을 때 너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복음을 전하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해외에서는 참도를 받아들이는 사람도 적었고, 복음 사역 확장도 앞날이 보이지 않았죠. 그래서 저는 그때 늘 하나님의 사역을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님 집의 복음 사역이 확장되었고, 각종 사역도 점점 더 잘 이루어지고 있으며 성과를 거둔 데다가 각국 교회도 갈수록 번성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더 이상 의심하거나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본분을 이행하게 해 주세요. 제명하거나 출교시킬 사람들에 저를 포함시키지 말아 주십시오!” 이런 사람에게 기회를 주어도 되겠느냐? (안 됩니다.) 왜 안 되느냐? (그의 말은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저 하나님 집 사역이 확장되는 추세를 보고, 하나님 집에 세력이 생긴 것을 보고 기대려는 것뿐입니다. 언젠가 그의 관념에 맞지 않는 일이 생기면 또다시 흔들릴 것입니다.) 이 일을 꿰뚫어 보았느냐?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천성적으로 흔들리는 자로, 오늘은 이 바람을 따르고 내일은 저 바람을 따르며, 심지어는 바람도 없는데 스스로 흔들리기도 한다. 이런 부류는 정상인의 사유 능력을 갖추지 못했으니, 사람의 기준에 이르지 못한다. 이 말이 맞지 않느냐? (맞습니다.) 만약 정상인의 사유 능력을 갖추고 있고 이해 능력도 있다면, 하나님이 이토록 많은 진리를 선포한 것을 보고 그것이 하나님의 사역임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토록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있고 날마다 하나님의 사역과 성령 역사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볼 수 있으니 믿음이 점점 커지고 본분도 더욱 힘차게 이행하게 된다. 사람의 사역으로 이런 것을 이룰 수 있겠느냐? 사유 능력이 없는 자들은 아무리 분명히 말해 줘도 이런 일들이 하나님의 사역임을 확신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그런 판단력이 없다. 하나님이 지금 얼마나 큰 사역을 하든, 얼마나 많은 말씀을 하든,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고, 그것이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인정하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인류의 운명은 하나님이 주재하고 안배하며 하나님은 창조주라고 인정하든 이런 것들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럼 무엇이 가장 중요하겠느냐? 그는 하늘의 하나님이 나타나는 것을 직접 보아야 하고, 하나님이 친히 음성을 발하고 말씀하며 직접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는 것을 보아야 하며, 또 천둥 같은 음성으로 말씀해야만 하나님을 믿을 것이다. 그는 도마와 같다. 예수가 세상에 있을 때 얼마나 많은 말씀을 했든, 얼마나 많은 진리를 선포했든, 얼마나 많은 이적과 기사를 나타냈든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가 죽은 후에 부활한 일이 사실인지 거짓인지였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확인했느냐? 예수에게 “당신의 손을 내밀어 못 자국을 보여 주십시오. 만약 당신이 정말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이라면 손에 못 자국이 있겠지요. 그럼 당신이 예수님임을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당신 손바닥에 못 자국이 만져지지 않는다면 저는 당신이 예수님이라는 것도, 하나님이라는 것도 인정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요구했다. 바보 같은 놈 아니냐? (그렇습니다.) 이 부류는 오직 자기 눈으로 본 사실과 자신의 상상, 추리만 믿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사역이 일어나고 번성하고 발전하는 것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역임을 믿지 않는다. 또 그는 하나님의 큰 능력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권병을 보지 못하며, 하나님 말씀의 능력, 그리고 사람에게서 이루는 성과도 분별하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을 알아보지도, 분별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의 유일한 바람은 이것이다. ‘당신이 하늘에서 천둥 치며 말씀하면서 스스로 창조주라고 하고, 이적과 기사도 보여 주고, 직접 천지 만물을 창조하여 큰 능력을 나타내시면, 그때 저는 당신이 하나님임을 믿고, 당신이 하나님임을 인정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인정과 믿음을 귀하게 여기겠느냐? (귀하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인지 아닌지가 네 인정을 필요로 하는 일이겠느냐? 네가 허락해야 하는 일이겠느냐? 하나님이 이토록 많은 진리를 선포했고, 이토록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였으며, 이토록 많은 체험 간증이 역대의 증거들을 넘어섰는데도, 이것이 하나님의 현현 사역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이미 이룬 사실과 약속조차 믿지 않으며 인정하지 않는다면 너는 도대체 뭐 하는 인간이겠느냐? 너는 사람이 아니고 바보 같은 놈이다! 그러고도 하나님에게서 복을 받으려 하는구나. 턱도 없는 소리니, 꿈도 꾸지 마라! 너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의심하고 부인하며, 늘 하나님 집이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보려 한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거나 믿어 본 적도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인정하거나 믿은 적도, 받아들인 적도 없다. 그러니 하나님의 약속은 너와 무관하며, 너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저 사람은 본분도 이행하는데 왜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본분을 이행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누구를 위해 이행하는지, 어떤 원칙에 따라 이행하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본분을 이행해 봤자 힘만 쓰는 것일 뿐 진정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네가 본분을 이행하고 있다고 인정하지 않으며, 하나님 눈에 너는 영이 없는 죽은 사람이다. 죽은 사람이 복을 받으려 한다면, 이는 허황된 망상 아니겠느냐? 네가 얼마간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복받으려는 속셈에 지배당한 것이다. 너는 계속 의심하고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부인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마저 판단하고 부인하니, 하나님을 적대하는 자다. 하나님을 적대하는 자가 기준에 맞는 피조물이겠느냐? (아닙니다.)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적대하고, 암암리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관찰하며, 마음속으로 몰래 하나님에게 대들고, 하나님을 판단하고 정죄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판단하고 정죄하니, 이것이 하나님을 적대하는 게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이는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적대하는 것이다. 게다가 너는 이방 세계에서 하나님을 적대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 집에서 하나님을 적대하니, 더더욱 용서할 수 없다!
흔들리는 이런 부류는 인성 본질을 보든, 드러내는 모습을 보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복을 받을 수 있을지에만 관심을 갖는데,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늘 확신하지 못하며, 줄곧 뒤에서 관망하고 끊임없이 흔들리고 의심한다. 관망하는 태도로 하나님을 따르니 가다가 서고 섰다가 가기를 반복한다. 이런 자들도 참 골치 아프다! 특히 지금 교회에서 계속 사람들을 정리하니 그들도 전전긍긍한다. ‘나는 늘 흔들리니까 어느 날 발각되면 교회에서 제명될 수도 있어. 내가 하나님을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 들켜선 안 돼. 누구에게도 이 일을 말하면 안 된다고.’라고 생각하며 몰래 뒤에서 지켜보기만 한다. 그는 하나님이 드러낼까 봐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기에 하나님의 감찰은 더더욱 믿지 않는 것이다. 이 부류는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인도하는지, 어떻게 징계하는지,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어떻게 구원하는지, 어떻게 그들에게 은혜와 축복을 베푸는지, 또 하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어떻게 체험했는지, 느끼고 본 것, 또는 체험한 것이 무엇인지 등에 관해 형제자매들이 교제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그는 형제자매들이 이런 체험적 인식을 교제하는 것을 들으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당신들이 말하는 그 체험들은 당신들 상상 아니야? 그건 사람의 느낌 아니냐고. 나는 왜 그런 느낌이 없지? 특히 체험 간증 글을 쓴 사람들 말이야. 나는 그들을 몰라. 그들이 어떻게 체험했는지도 못 봤고, 그들에게 진리 실제가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어떤 바보 같은 놈들은 아직도 하나님 집 사역을 관찰하고 의심하며, 하나님 선민들의 체험 간증 글에 어떤 진리 실제가 있는지는 보지도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흔들리고 믿음을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이유와 근거를 찾는다. 그는 자신이 흔들리니 분명 다른 사람도 다 흔들릴 것이라 여긴다. 그래서 전혀 흔들리지도 의심하지도 않으며, 평소 진리를 교제할 때도 무척 실제적이고, 어떤 문제가 닥쳐도 진리를 구해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고 괴로워진다. 그 괴로움을 어떻게 해소하겠느냐?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 누군지 살피고 공감해 줄 사람을 찾으려 한다. 소극적이고 연약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의 생각을 조금 털어놓으며 눈치를 살피고 “저도 가끔 소극적인 상태에 빠집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때로는 하나님이 정말 존재하시는지 의심이 들어요.”라고 말한다. 만약 상대가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저 소극적이고 연약할 뿐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 그는 또 마음에도 없는 말로 상대를 시험한다. “저도 참, 하나님을 잘 믿고 있으면서 왜 자꾸 하나님을 의심하게 될까요? 이건 패역 아닐까요? 이러면 안 되는데 말이죠!”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전적으로 남의 환심을 사고 남을 시험하기 위함이며,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하나님을 의심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늘 하나님에게 의심과 관념을 품는 사람을 발견하면 그는 마음이 통하는 벗을 찾았다고 기뻐할 것이고, 둘은 쿵짝이 맞아 수시로 함께 속마음을 털어놓을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본분을 이행하기 싫어지며, 하나님 말씀을 읽기 싫어지고, 심지어 교회 생활도 하기 싫어진다. 그렇게 이 둘은 조금씩 세상에 나가 일하게 되는데, 서로 어깨나 허리를 감싸 안고 꼭 붙어 함께 나간다. 게다가 하나님 말씀 책도 가져가지 않는다. 사람들이 “당신, 이제 하나님을 안 믿는 겁니까?”라고 물으면 억지로 우기면서 “아니요. 믿습니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그럼 하나님 말씀 책은 왜 안 가져갑니까?”라고 물으면 “너무 무겁고, 둘 데가 없습니다.”라고 한다. 그의 말은 전부 대충 둘러대는 것일 뿐이고 그는 사실 세상으로 돌아가 일자리를 찾고 살림을 꾸릴 준비를 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 이런 부류는 불신파로, 결국 이런 결말을 맞이하게 되며, 이것이 바로 그들의 실체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어도 오래가지 못한다. 또 자기가 좋아하고 속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드디어 기댈 곳을 찾았고 의지처가 생겼으니 이제 나가자! 하나님을 믿는 건 너무 재미없어.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없다고. 실체도 없는 일을 진짜라고 믿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야. 지난 몇 년간 정말 힘들었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스스로 믿음을 포기하고 물러나며, 형제자매들이 자신을 찾지 못하도록 “우리 둘은 일하러 가니, 앞으로는 전화하지 마세요. 또 전화하면 신고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두 바보, 멍청이는 이렇게 떠나간다. 내가 보기에는 이것도 꽤 좋은 일이다. 하나님 집에서 그들을 출교시키고 제명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말해 보아라, 이런 부류에게 계속 진리를 교제하며 붙들고 도와줘야겠느냐? 도리를 설명하며 권면할 필요가 있겠느냐? (그럴 필요 없습니다.) 권한다면 너무 어리석은 것이다. 이 부류는 뼛속까지 불신파이고 산송장이며, 머리가 없는 바보 같은 놈이니, 권한다면 너 역시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서둘러 보내 주어라. 찾을 필요도 없다. 앞으로는 하나님을 안 믿을 거라고, 또 전화하면 신고하겠다고 이미 분명히 말했는데 그를 또 찾아간다면 문제를 자초하는 것 아니겠느냐? 만약 네가 괴롭혔다며 정말 신고라도 한다면 그런 소문이 나도는 게 듣기 좋겠느냐? (좋지 않습니다.) 절대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마라. 그가 알아서 조용히 떠나게 하면 얼마나 좋으냐! 사람은 각자 갈 길을 가고 자기에게 맞는 길을 간다. 그는 복이 없다. 하찮고 비천한 목숨을 부지할 뿐 이렇게 큰 복을 감당하지도, 누리지도 못한다. 복받을 자격이 없다. 하나님 말씀의 공급을 받아들이고 진리를 받아들여 생명으로 삼는 것이야말로 온 우주와 모든 인류에게 가장 복된 일이다.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는 것이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이 복이 없는 것이다. 언젠가 진리를 받아들인 사람은 대재난 속에서 살아남아 큰 복을 받을 것이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은 재난 속에서 죽어 화를 당하게 될 것이다. 그때 가면 후회해도 늦다. 네가 지금 하나님 말씀은 진리이고 하나님 사역은 하나님이 한 것이라고 인정할지라도, 진리를 추구하거나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에 진입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이 복을 그렇게 쉽게 받을 수 있겠느냐? 이는 오랜 옛날부터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복인데, 네가 그리 쉽게 받을 리 있겠느냐? 하나님이 사람에게 약속한 복, 이 복은 보통 사람이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택한 사람이어야만 이 복을 받을 수 있다. 멍청이나 산송장, 인간쓰레기나 망나니 등은 선택받을 수 없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세 단계 사역을 했으며, 마지막에는 이긴 자들을 만들어 이들이 만물의 주인이자 새로운 인류가 되게 할 것이다. 이것이 인류에게 얼마나 큰 복이냐! 말세의 이 심판 사역은 시작된 지 몇 년이나 되었느냐? (삼십여 년 되었습니다.) 이 삼십여 년의 세월을 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고 얼마나 많은 사역을 했는지, 마침내 얻게 되는 이 인류가 그 얼마나 가치 있고 그 얼마나 고귀한지, 하나님 눈에 얼마나 귀하고 중요하게 보이는지 알 수 있다! 이것이 너희에게 얼마나 큰 행운이고, 얼마나 큰 복이냐! 그러니 아직도 흔들리는 사람들은 참으로 복이 없는 것이다! 네가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따른다고 해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이 복을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이 복을 받는 사람은 모두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고 또 택하며 엄선한 자들, 최종적으로 얻게 되는 자들이다.
흔들리는 부류의 주된 문제는 이런 것들이다. 마지막에 그들의 결말이 어찌 되든, 교회에서 이런 부류를 발견하면 원칙대로 처리해야지, 그들을 형제자매로 대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가 하나님을 믿는 것에 호감을 가지고 있거나 좀 힘을 보태고 기꺼이 힘을 쓸 수 있다고 해도 기껏해야 교우일 뿐, 형제자매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설령 그의 새 이름이 ‘순종’이나 ‘진심’이라고 할지라도 형제자매라고는 부르지 마라. 그의 새 이름을 부르는 걸로 충분하다. 왜 그렇겠느냐? 이런 사람은 형제자매라고 불릴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이제 이런 부류를 처리하는 데도 원칙이 생기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교제하겠다. 다음에 보자!
2024년 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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