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일꾼의 직책(26) 제 4 부

각종 악인을 분별하는 기준과 근거

2. 인성에 근거한다

계속해서 리더 일꾼의 직책 제14조 ‘각종 악인과 적그리스도를 제때 분별하여 제명하거나 출교시키는 것’에 관해 교제하겠다. 각종 악인을 분별하는 기준에는 크게 3가지가 있는데, 앞서 하나님을 믿는 목적에 대해 교제했고, 그다음으로 인성에 대해 교제했다. 인성이라는 항목에서도 우리는 여러 모습으로 구분했는데, 이미 교제한 여러 모습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느냐? 읽어 보아라. (각종 악인을 분별하는 두 번째 항목인 인성. 첫 번째, 시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것. 두 번째, 잇속 차리기를 좋아하는 것. 세 번째, 방탕하고 절제할 줄 모르는 것. 네 번째, 복수심이 강한 것. 다섯 번째, 입조심을 하지 못하는 것.) 다섯 번째 조항인 ‘입조심을 하지 못하는 것’까지 교제했다. 인성 측면을 교제하든, 아니면 다른 측면의 구체적인 모습을 교제하든 내가 할 말은 동일하다. 즉, 각 부류에게 미치는 영향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들은 후에 자신을 돌아보고 대조하는 데 집중하며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진입하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 예를 들어, 힘쓰는 자 부류는 그저 듣고 만다. 마음에 두지 않고 신경 쓰지도 않으며, 간혹 설교를 들으면서도 잠을 잘 때도 있다. 그는 귀담아듣지 않고, 오히려 ‘이런 사소한 일을 듣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시간 낭비일 뿐이야. 내가 해야 할 일도 아직 못 끝냈는데!’라고 생각한다. 그는 늘 몸을 쓰는 일만 생각하고 힘을 들이는 일에 몹시 열중하며 마음을 쏟고, 충성심도 보이지만, 진리와 관련된 일에는 도무지 힘이 나지 않는다. 이는 이 부류가 진리에 관심이 없고 그저 힘만 들이는 데 만족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 집에서 아무리 진리를 교제해도 한결같은 태도를 보인다. ‘나는 반항하고 대항할 거야. 당신이 내 문제점을 지적하고, 내 모습과 표출, 성품을 폭로해도 신경 쓰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거라고. 나를 폭로했다는 걸 남들이 알아도 뭘 어쩌겠어?’ 그는 낯짝도 두껍게 계속 대들고 반항하는데, 이는 구제 불능이다. 어쨌든 각 부류가 보이는 모습에는 차이가 있다. 진리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든, 진리를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힘만 들이고자 하는 사람에게든, 혹은 진리에 반감을 갖고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든 좌우에 날 선 검이자 시금석이 되어 진리를 대하는 사람의 태도를 측정하고 또 사람이 걸어가는 길을 측정할 수 있다.

6) 무리하게 억지를 부려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일전에 각종 악인의 다섯 가지 모습을 분별하는 것에 관해 교제했는데, 오늘은 이어서 여섯 번째 모습을 교제하겠다. 여섯 번째 역시 한 부류 악인의 모습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이 부류를 악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모두가 싫어하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왜 그렇겠느냐? 이 부류는 양심도 이성도 없고, 정상 인성도 없어서 함께하면 무척 골치 아프고 어렵다는 느낌을 받으며 반감이 들기 때문이다. 이 부류의 구체적인 모습은 무엇이냐? 바로 무리하게 억지를 부려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교회에 이런 부류가 있느냐? 많지는 않지만 분명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구체적인 모습에는 어떤 것들이 있느냐? 아무 일도 없는 평소에는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사람들과도 무척 정상적으로 왕래하며, 흉악한 성품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일을 처리하다가 진리 원칙을 거슬러 책망받게 되면 펄쩍 뛰면서 크게 성을 내고,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으며, 자신을 위해 궤변을 늘어놓기까지 하니, 너는 문득 그가 온몸에 가시가 돋은 고슴도치처럼 도저히 건드릴 수 없는 사람임을 깨닫게 되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이 사람과 오래 함께하면서 인성이 괜찮고 사리에 밝아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다고. 그런데 무리하게 억지를 부리는 사람일 줄은 몰랐네. 앞으로는 이 사람과 함께할 때 조심해야겠어. 되도록 왕래를 줄이고 거리를 두며 건드리지 말아야지.’ 무리하게 억지를 부리는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 보통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만만찮다는 것을 알기에, 그에게 무척 예의를 차리면서 조심스럽게 말한다. 특히 말할 때 절대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간 그가 끊임없이 시비를 걸어올 것이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그렇게 무지막지한가요? 저희는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다면 정말로 이야기해 봐야겠구나. 예를 들어, 형제자매들이 체험을 교제하는 과정에서 누가 자신의 패괴된 내적 상태나 어려움을 말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 말에 공감하기 마련인데, 비슷한 체험이 있거나 비슷한 느낌이 있는 것이다. 이는 아주 정상적이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이렇게 생각한다. ‘나도 그런 체험을 한 적이 있으니 우리 함께 이 주제에 대해 교제해 보면 좋겠다. 나는 당신이 어떻게 체험했는지 듣고 싶다. 만약 당신이 교제하는 내용에 빛 비춤이 있고, 그게 나한테 존재하는 문제라면, 나는 받아들여서 당신의 체험과 길을 따라 실행해 보고는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보겠다.’ 그런데 유독 어떤 사람은 남들이 자기 인식에 대해 교제하며, 패괴되고 추한 모습을 털어놓는 것을 들으면, 자기를 돌려서 폭로하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여겨 참지 못하고 책상을 내리치며 화를 낸다. “패괴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진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냐고요. 제가 보기에 당신들은 저보다 더 심각하게 패괴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이 무슨 자격으로 저를 겨냥하고 폭로한단 말입니까? 아무래도 당신들은 저를 궁지에 몰고 배척하려는 것 같네요! 제가 시골 출신이라 듣기 좋은 말로 당신들의 비위를 맞추지 못해서 그러는 거 아닙니까? 제 학력이 당신들보다 낮아서 그러는 거 아니냐고요! 하나님도 저를 무시하지 않으시는데, 당신들이 무슨 자격으로 저를 무시하는 겁니까!” 다른 사람이 “이건 정상적인 교제일 뿐, 당신을 겨냥한 게 아닙니다. 누구나 패괴 성품은 똑같지 않나요? 한 주제로 교제하면서 자신의 패괴된 내적 상태를 말하면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은 내적 상태가 있겠죠. 당신한테도 같은 내적 상태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당신의 체험을 교제해도 됩니다.”라고 말하면 그는 “그렇다고요? 한 사람이 교제할 때는 저도 참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두세 명이나 합세해서 저를 괴롭힐 수 있는 거죠? 제가 호락호락해 보입니까?”라고 말한다. 말이 점점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이 부류의 말에 이성이 있느냐? (없습니다.) 만약 정말로 다른 사람이 교제한 주제가 너를 겨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교제해도 되고, 그에게 직접 너를 겨냥한 거냐고 물어봐도 된다. 시골 출신이니, 학력이 낮다느니, 사람들이 무시한다느니 하는 말을 꺼내지 말고 말이다. 이런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는 시비를 걸고 무리하게 억지를 부리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말해 보아라, 이런 부류가 두렵지 않으냐? (두렵습니다.) 이렇게 소란을 피우니 모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그 후로는 예배 시간에 교제할 때마다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말을 꺼내고, 그의 안색을 살펴야 하며, 그의 얼굴이 어두워지면 말을 꺼내기 힘들어져서 예배 때 교제도 자유롭게 할 수 없게 된다. 이는 그가 무리하게 억지를 부려 가져온 속박이자 교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무리하게 억지를 부리는 사람은 모두 무지막지한 사람이다. 이런 부류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구원받을 수도 없다.

무리하게 억지를 부리는 이 부류에게는 또 다른 모습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예배 때마다 “저는 더 이상 건성으로 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진리 실행에 집중하고, 완벽을 추구할 거예요. 저는 천성적으로 승부욕이 강해서 무슨 일이든 제대로 해야 하거든요.”라고 말한다. 말은 그럴듯하게 하지만 실제로 본분을 이행할 때는 여전히 건성으로 대하며, 그가 이행한 본분에는 문제가 무척 많아 하나님을 증거하는 성과를 전혀 내지 못한다. 리더가 그의 본분 이행에 존재하는 문제를 지적하고 책망 훈계하면 그는 바로 화를 내며 말한다. “당신들이 뒤에서 저를 판단하고, 제 업무 수준이 낮다고 하는 걸 압니다. 그건 저를 무시하는 것 아닙니까? 작은 실수 좀 했다고 이렇게까지 책망할 필요가 있습니까? 게다가 실수 안 하는 사람이 있나요? 제가 건성으로 대했다고 하는데, 당신도 예전에 사역할 때 건성으로 대하지 않았어요? 당신에게 저를 책망할 자격이 있나요? 만약 제가 협력하지 않았다면 당신들 중 누가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겠어요?” 이 부류가 어떠하냐? 무슨 일을 하든 다른 사람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거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정당한 책망과 훈계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와 맞서고 대항하며,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고, 또한 누가 자신을 무시한다느니, 자신이 힘이 없다고 괴롭힌다느니 하는 말까지 한다. 이는 횡포를 부리고 무리하게 억지를 부리는 것 아니겠느냐? 심지어 어떤 이는 책망과 훈계를 받은 후에 본분을 팽개치며, “저는 더 이상 이 사역을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들 중 할 수 있는 사람이 하세요. 제가 없어도 이 사역을 해낼 수 있는지 지켜보겠습니다!”라고 한다. 그러고는 형제자매들이 타일러도 듣지 않고, 리더 일꾼이 진리를 교제해 줘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거들먹거리고 본분을 내팽개치기 시작한다. 예배 때는 입을 삐죽거리면서 하나님 말씀을 읽거나 교제하지 않으며, 가장 늦게 와서 가장 먼저 가 버린다. 또 나갈 때는 발을 구르며 문을 쾅 닫고 나가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어찌하지 못한다. 이 부류는 일이 닥치면 억지를 부리고 허튼소리를 하며, 횡포를 부리거나 심지어는 물건을 집어 던지기까지 하니, 그야말로 무지막지하다. 더 심각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는데, 형제자매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에게 안부를 묻지 않으면 불쾌해하며, 예배 시간을 이용해 하소연한다. “당신들이 모두 저를 무시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예배 때 당신들은 하나님 말씀만 교제하고, 자신의 체험적 인식만 이야기할 뿐, 아무도 저를 신경 써 주지 않고, 웃는 얼굴 한 번 보여 주지 않죠. 제가 갈 때도 아무도 배웅해 주지 않고요. 이게 무슨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인가요? 당신들은 정말 인성이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교회에서 억지를 부린다. 작은 일 하나에도 화를 내고, 쌓아 왔던 모든 원망을 쏟아내는 것이다. 분명히 패괴 성품을 드러냈으면서도 반성하거나 인식하지 않으며, 변화를 추구하지도 않고 진리를 추구할 생각도 없다. 그러면서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서 허물을 찾고 각종 변명거리를 찾아 자신의 마음을 안정시키려 하고, 이와 동시에 기회를 잡아 원망을 쏟아 낸다. 더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사람이 그를 주목하고 두려워하게 해서 사람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명성과 관심을 얻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너무나 골치 아프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누구도 ‘아니요’라는 말 한 마디 못 하고, 아무도 쉽게 그를 평가하지 못하며, 아무도 그에게 마음을 활짝 열고 교제하지 못한다. 설령 그에게서 몇 가지 결점과 패괴 성품을 발견할지라도 아무도 감히 지적하지 못한다. 예배 자리에서 개인의 체험을 교제하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인식을 나눌 때도 모두 이 ‘말벌집’을 조심스럽게 피해 가며, 그를 건드려 문제가 생길까 봐 두려워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가정이나 직장에서 기분 나쁜 일,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생기면 예배 자리에 와서 발산하는데, 이는 분명 형제자매들을 그의 분풀이나 화풀이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기분이 안 좋을 때면 생억지를 쓰며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는데, 누가 그와 진리를 교제할 엄두를 내겠느냐? 교제하려고 해도 어떤 말이 그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목을 매고 자살하겠다고 할 테니, 그러면 더 문제가 될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정상적으로 교제하려고 해도 안 되고, 정상적으로 대화를 나누려고 해도 안 되며, 너무 다정하게 대해도, 너무 냉담하게 대해도 안 된다. 또 피해도 안 되고, 너무 가까이해도 안 된다. 그가 기뻐할 때 형제자매들이 함께 기뻐해 주지 않아도 안 되고, 그가 난관에 봉착했을 때 형제자매들이 함께 걱정해 주지 않아도 안 된다. 어떻게 해도 안 되고, 어떻게 해도 그를 성나게 하고 화나게 만들며, 어떻게 대해도 그는 만족하지 않는다. 내가 설교하면서 어떤 사람들의 내적 상태를 교제하는 것조차 그를 화나게 할 수 있다. 어떻게 그렇겠느냐?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건 나를 폭로하는 것 아닌가? 나랑 접촉한 적도 없고, 내가 뒤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해 준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알게 된 거지? 분명 누군가가 일러바쳤을 거야. 누가 연락하고, 누가 일러바쳤는지, 누가 고발했는지 조사해 봐야겠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무리하게 억지를 부리는 이 부류는 무슨 일이든 비뚤게 생각하고, 바르게 대하지 못하니, 이것이 바로 생억지이다! 이 부류는 막무가내이며 더욱이 진리를 받아들이지도 못하니, 교회에 남겨 두면 백해무익하다. 그저 짐이고 골칫거리일 뿐이니, 일찍 차 버리고 한시바삐 정리해야 한다!

중국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큰 붉은 용의 탄압과 박해를 받고 있다. 쫓기고 있어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무척 많은데, 어떤 이들은 박해를 받아 집에 못 가는 것을 자신에게 공로와 자격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접대 가정에서 살면서 사람들에게 시중받는 것도 모자라 조금만 마음에 안 들거나 집이 그리워지면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를 달래고 참아 주어야 한다. 이는 무리하게 억지를 부리는 사람 아니겠느냐? 박해받는 사람은 너무 많은데 접대 가정은 또 너무 적다. 형제자매들에게 사랑의 마음이 있어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맞아들여 그들이 거리를 떠돌지 않게 했다. 형제자매 집에서 살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 아니겠느냐?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고 형제자매들의 사랑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답답하다고 생각하면서 불평하고 횡포를 부린다. 사실 형제자매 집에서 사는 것이 자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생활 여건이 더 낫다. 특히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측면에서 보면 자기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는 것보다 낫고, 형제자매들과 조화롭게 협력하는 것이 외롭게 혼자 있는 것보다 훨씬 낫다. 설령 어떤 지역의 생활 여건이 조금 나쁘다고 해도 일반적인 수준은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형제자매들과 함께 살면서 자주 모여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진리를 좀 더 많이 깨닫고 자신의 추구 목표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이런 대가를 치르고 고난을 겪을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일을 대할 때 올바른 태도를 보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일 수 있다. 또 이런 고난을 겪는 것이 가치 있다는 것을, 이는 자신이 마땅히 겪어야 할 고난이라는 것을 알며, 올바르게 대할 수 있다. 하지만 무리하게 억지를 부리는 고집불통들은 이렇게 이해하지 못한다. 일주일 집에 못 가는 것은 간신히 견디지만, 2주가 되면 짜증을 내기 시작하며, 한두 달이 지나면 횡포를 부리기 시작한다. “당신들은 온 가족이 한데 모여 단란히 지내는데 왜 저는 집에 돌아갈 수 없는 거죠? 왜 저는 자유가 없는데 당신들은 마음대로 나다닐 수 있는 겁니까?” 그럼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것은 큰 붉은 용이 우리를 박해한 결과 아닙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면서 이런 고난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요? 이 정도 고난이 뭐 대단하다고요. 이런 상황에서 무슨 트집을 잡는 겁니까? 다른 사람도 다 견딜 수 있는 고난을 당신은 왜 견디지 못하는 거죠?” 무리하게 억지를 부리는 사람은 어떤 고난도 겪기 싫어하니, 감옥에 잡혀 들어가면 틀림없이 유다가 될 것이다. 접대 가정에서 고생한다고 해 봤자 얼마나 고생하겠느냐? 첫째로 그래도 사람이 먹는 음식을 먹고, 둘째로 너를 불쾌하게 하는 사람도 없으며, 셋째로 너를 괴롭히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단지 집에 돌아가 가족들과 만나지 못할 뿐인데, 무리하게 억지를 부리는 사람은 이 정도의 고난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는 다른 사람이 진리를 교제해 줘도 듣지 않고 이런 말을 한다. “저한테 그런 거창한 도리를 늘어놓을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당신보다 많은 걸 알고 있으니까요. 이런 일들도 다 알고 있다고요! 그냥 말해 보세요. 제가 언제 집에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언제쯤 큰 붉은 용이 저희 집을 감시하지 않을까요? 언제쯤이면 집에 가도 큰 붉은 용이 저를 체포하지 않을까요? 언제 집에 돌아갈 수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면, 그냥 죽어 버릴래요!” 그러고는 또 난동을 부리는데, 땅바닥에 주저앉아 발길질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더 화가 나 억지를 부리면서 울고불고 난리를 친다. 사람들이 “목소리 좀 낮추세요. 이렇게 난동을 부리다가 이웃들이 듣기라도 하면 외부인이 있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그럼 들키는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하면 그는 “제가 알 바예요? 저는 난동 부릴 겁니다! 당신들은 다 집에 갈 수 있는데 저만 집에 못 가잖아요. 이건 불공평하다고요! 당신들도 집에 못 가게, 저처럼 되게 할 거라고요!”라고 말한다. 억지 부리기를 그만두기는커녕 악의까지 드러내는데, 누가 말해도 듣지 않고 누가 달래도 소용이 없다. 그러다 기분이 좀 나아지면 그제야 좀 조용해진다. 하지만 언제 또 횡포를 부리고 난동을 부리면서 산책을 가려 할지, 자유를 원한다고 할지, 실내에서 큰 소리로 떠들려고 할지 모른다. 집에 갈 계획만 세울 것이다. 형제자매들이 그에게 “집에 가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경찰이 잠복해서 감시하고 있어요.”라고 말해도 그는 “상관없습니다. 저는 집에 갈 거예요! 잡히면 잡히는 거죠. 잡힌다고 뭐가 어떻게 되겠어요? 그래 봤자 유다가 되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한다. 이는 제정신이 아닌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공개적으로 유다가 되겠다고 하는 그를 누가 감히 접대하겠느냐? 유다를 접대하고 싶은 사람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이런 자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겠느냐? 형제자매들은 너를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여겨 접대했다. 네 인성이 좀 부족해도, 네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네가 교회를 배반하고 유다가 되어 형제자매들을 해침으로써 많은 이가 집에 돌아가지도,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지도 못하게 한다면, 그 결과를 누가 책임질 수 있겠느냐? 그런 원수를 접대할 엄두가 나겠느냐? 그를 접대하는 것은 스스로 골칫거리를 만드는 것 아니겠느냐?

무리하게 억지를 부리는 사람은 일을 할 때 자기 이익만 생각하고 제멋대로 행동한다. 궤변과 사설만을 늘어놓고, 사리 분별이 되지 않고, 흉악한 성품으로 가득 차 있다. 아무도 그와 교류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아무도 그와 진리를 교제하고 싶어 하지 않는데, 화를 자초할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속마음을 터놓으려 해도 조심스럽고 겁이 난다. 그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그의 뜻에 맞지 않는 말을 해서 그에게 덜미가 잡히고 무지막지하게 질책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런 자는 악인 아니겠느냐? 살아 있는 귀신 아니겠느냐? 성품이 흉악하고 이성이 건전하지 못한 자는 전부 살아 있는 귀신이다. 살아 있는 귀신과 교류하다 한순간 방심하면 화를 자초하게 된다. 교회에 이런 살아 있는 귀신이 있다는 것은 큰 골칫거리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악을 쓰며 난리를 치고 분풀이를 한 뒤에는 사람다운 말을 하고 사과도 하지만, 그 후에도 변하지는 않는다. 언제 또 기분이 나빠져 악을 쓰고 난리를 치며 궤변을 늘어놓을지 모른다. 그가 악을 쓰고 분풀이할 때마다 그 대상이 다르고 게다가 분풀이의 근원이나 배경도 다르다. 즉, 그는 어떤 일에서든 분풀이할 수 있고, 어떤 일에서든 불만을 느낄 수 있으며, 어떤 일이든 악을 쓰고 횡포를 부리는 방식으로 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무섭고 골치 아픈 일이다! 이런 정신병자 같은 악인은 언제 미쳐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나는 이런 사람을 가장 증오한다. 이런 사람은 있는 대로 다 정리하고 전부 제명해야 한다. 나는 이런 사람을 상대하고 싶지 않다. 이런 사람은 생각이 흐리멍덩하고 성품도 사나우며 머릿속에 온통 궤변과 마귀적인 말만 들어 있고, 일이 닥치면 혈기로 분풀이한다. 분풀이할 때 어떤 이는 울고, 어떤 이는 소리 지르고, 어떤 이는 발을 구르고, 심지어 어떤 이는 머리를 흔들며 손짓발짓하는데, 그야말로 사람이 아닌 짐승이다. 주방에서 일하는 어떤 사람은 화가 날 때 냄비와 그릇을 집어 던지고, 돼지나 개를 기르는 어떤 사람은 화가 날 때 돼지나 개를 때리고 발로 차며 동물에게 다 분풀이한다. 이들은 무슨 일이 닥치든 화를 내며, 차분히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또 기도하거나 진리를 구하지도 않으며, 누군가와 교제하지도 않는다. 어쩔 수 없을 때는 참는데, 참기 싫으면 미친 듯이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남을 질책하고 정죄한다. 그들은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당신들이 교양을 갖췄다는 걸 압니다. 당신들 모두 저를 업신여기죠.” “나는 당신들 집이 부자라는 걸 압니다. 당신들은 제가 가난하다고 싫어하죠.” “당신들은 내가 하나님을 믿는 데 토대가 없고 추구하지 않는다고 싫어하죠. 저는 다 압니다.” 자신에게 적잖은 문제가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진리를 구해 해결하는 법이 없고, 누구와 교제해도 자신에 대한 인식을 말하지 않는다. 또 자신의 문제와 관련될 때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시선을 돌려 남을 비난하고, 모든 문제와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미룬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잘해 주지 않아서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된 거라고 원망하기도 한다. 마치 자신이 악을 쓰고 난리를 피우고 트집 잡는 것은 다 다른 사람이 야기하고 초래한 것인 양, 전부 다른 사람의 잘못인 양, 자기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것이고 정당방위라는 양 말이다. 그는 불만이 생기면 원망을 터뜨리고 헛소리를 하며, 궤변만 늘어놓는다. 마치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의 잘못인 것처럼, 오직 자신만이 선한 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모두 나쁜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그가 아무리 악을 쓰고 난리를 피우고 궤변을 늘어놓아도 사람들은 그가 좋다고 말해야 한다. 또 그는 악행을 저지른 후에도 다른 사람이 폭로하고 질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만약 네가 그의 문제를 조금이라도 지적한다면 그가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이니, 너는 편히 지낼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는 어떤 사람이냐? 무리하게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다. 무리하게 억지를 부리는 사람은 모두 악인에 속한다.

무리하게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뭔가 큰 악행을 저지르지 않을지 몰라도, 자신의 이익이나 명예, 존엄과 관련된 일이 닥치면 즉시 폭발해서 난리를 치고 횡포를 부리며 목을 매 죽겠다고 생떼를 쓴다. 말해 보아라, 집에 이런 인간 말종, 터무니없이 무례한 사람이 있으면 온 가족이 고통받지 않겠느냐? 집안이 온종일 아비규환이 되고 울부짖고 아우성치는 소리로 가득 차서 살 수가 없게 된다. 일부 교회에는 이런 부류가 있다. 아무 일 없는 평소에는 알아챌 수 없지만, 언제 증세가 도져서 본색을 드러낼지 모른다. 이런 부류는 주로 생떼를 쓰고 억지를 부리며 고래고래 욕지거리를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이런 행동이 한 달이나 반년에 한 번씩만 일어나도 사람들을 매우 곤혹스럽고 힘들어지게 하며, 많은 이의 교회 생활에 각기 다른 정도로 교란을 초래하게 된다. 만약 누군가가 이런 부류에 속한다는 것이 확실히 밝혀진다면 즉시 처분을 내려 교회에서 제명해야 한다. “이 부류는 무슨 악행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악인이라 할 수도 없으니 포용하고 인내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말해 보아라, 이런 부류를 처리하지 않아도 되겠느냐? (안 됩니다.) 왜 안 되겠느냐? (그가 그런 짓을 하면 많은 사람이 무척 곤란하고 힘들어지며, 교회 생활에도 교란이 초래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결과를 볼 때, 교회 생활을 교란하는 자는 설령 악인이나 적그리스도가 아닐지라도 교회에 남겨 둬서는 안 된다. 이런 부류는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싫어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몇 년을 믿든, 얼마나 많은 설교를 듣든 절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잘못을 저질러 책망과 훈계를 받는 순간, 그는 바로 생떼를 쓰며 헛소리를 지껄일 것이다. 진리를 교제해 줘도 받아들이지 않고 누가 얘기해도 통하지 않는다. 내가 그에게 진리를 교제해 준다고 해도, 그는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으며, 일이 닥치면 또 똑같이 행동한다. 내 말도 듣지 않으니 너희가 타이르면 더더욱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 부류는 큰 악을 저지르지는 않지만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본성 본질을 볼 때, 그는 양심과 이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무리하게 억지를 부리고 사리 분별이 되지 않는 자다. 이런 자가 하나님에게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절대 불가능하다!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불신파에 속하며, 사탄의 종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닥치면 생떼를 쓰고 계속 억지를 부리며 아무리 진리를 교제해 줘도 듣지 않는다. 이런 부류는 무리하게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요, 그야말로 마귀, 악령에 속하니 짐승만도 못하다! 그들은 이성이 건전하지 못한 정신병자여서 영원히 진실로 회개할 수 없다. 그들은 교회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하나님에 대한 관념이 많아지고, 하나님 집에 대한 무리한 요구도 많아지며, 교회 생활에 끼치는 교란과 해악도 더욱 커져서 하나님 선민들의 생명 진입과 교회 사역의 정상적인 진행에 지장을 주게 된다. 그들이 교회 사역에 끼치는 해악은 악인 못지않으니 한시바삐 교회에서 제명해야 한다. “소란 좀 피운다고 해서 악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요? 사랑으로 대하면 되지 않을까요? 교회에 남겨 두면 혹시 변화해서 구원받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말해 주겠는데, 그것은 불가능하다! ‘혹시’란 없다. 이 부류는 절대 구원받지 못한다. 그들은 진리를 깨닫지도, 더욱이 받아들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양심과 이성이 없고, 두뇌 사고가 비정상적이어서 사람으로서 처신하는 최소한의 상식조차 갖추지 못한, 이성이 건전하지 못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절대 이런 사람을 구원하지 않는다. 그들보다 사고가 정상적이고 자질이 좋은 사람도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는데, 하물며 이렇게 이성이 건전하지 못한 자는 어떻겠느냐? 더더욱 구원받을 수 없다. 이런 자를 사랑으로 대하며 기대를 걸다니, 이는 너무나 어리석고 무지한 것 아니겠느냐? 지금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무리하게 억지를 부리며 사리 분별이 되지 않는 사람을 교회에서 정리하는 것은 100% 옳은 일이다. 그가 교회와 하나님 선민들을 교란하지 못하도록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리더 일꾼의 직책이다. 어느 교회든 이렇게 사리 분별이 되지 않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 선민들은 마땅히 고발해야 하고, 리더 일꾼은 신고를 받는 즉시 처리해야 한다. 이것이 여섯 번째 부류인 무리하게 억지를 부리는 자들을 처리하는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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