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일꾼의 직책(26) 제 3 부

드러나 도태된 이 부류가 저지른 갖가지 악행의 모습과 일상생활에서 내뱉은 악독한 말들은 너무도 명백히 드러났다. 하지만 일부 리더 일꾼들은 이 악인들을 분별하지 못하고, 악인의 본성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 마치 이들이 악인이고 불신파임을 알아차리지 못한 양, 교회에서 정리할 생각도 하지 않고 합당한 처분을 내릴 생각도 하지 않으니, 이는 리더 일꾼의 심각한 직무 유기다. 그들은 마귀의 본성을 지닌 이 사람들이 하나님 집의 규칙을 전혀 지키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교회 사역과 교회 생활의 질서를 함부로 교란하고 망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며, 심지어는 이자들이 이렇듯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와 난폭하게 행동하도록 내버려두고, 본분 이행이라는 명목으로 하나님 집의 이익에 해를 주도록 방치한다. 하나님 집의 이익에 해를 주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 집의 기계와 각종 설비, 사무 도구와 용품을 망가뜨리고, 심지어 하나님의 제물을 마음대로 낭비하는 등의 행각이 있다. 더 심각한 경우, 아무 거리낌 없이 각종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을 퍼뜨려 하나님 선민들이 안심하고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소극적이고 연약한 사람들이 본분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따를 믿음을 잃도록 교란한다. 이 악인들이 이토록 많이 나쁜 짓을 하고,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하며 형제자매들을 해치는 악행을 이토록 많이 저지르는데도, 리더 일꾼은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한다. 심지어 어떤 리더 일꾼들은 “저는 몰랐습니다. 들은 적이 없어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짐승, 마귀들이 그렇게 소란을 피우며 교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는데 리더 일꾼이 전혀 상황을 알거나 지각하지 못했다니! 이는 인간 말종 아니겠느냐? 그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 것이냐? 그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 잡담이나 하고 있는 것 아니냐? 본업에 충실하지 않은 것 아니냐? 이런 거짓 리더가 하루라도 직책을 맡고 있으면, 온갖 악인들이 그 하루 동안 마음대로 교회를 교란하고 하나님의 선민들을 해친다. 거짓 리더가 손을 놓고 있으니 그 짐승 같은 무리가 이렇듯 온종일 한가롭게 지내면서 본분을 전혀 이행하지 않고 규칙도 전혀 지키지 않으며, 하나님 집에서 공짜로 먹고 마시면서 하나님 집의 각종 물질적 대우와 혜택을 공짜로 누리는 것이다. 또 일부러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하나님 집의 기계와 기자재를 망가뜨리면서도, 그렇게 하나님 집에서 노후를 보내고 제멋대로 하려고 드는데, 아무도 그를 건드리거나 자극하지 못한다. 이렇게 심각한 문제를 리더 일꾼들은 못 본 척하면서 누가 보고해도 해결하지 않으니, 이는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 폐물 아니겠느냐? 심각한 직무 유기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다른 일로 바빠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바빴거든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 이렇게 심각한 문제조차 해결하지 않는다면, 대체 뭐가 그렇게 바쁘다는 것이냐? 네가 바쁘다는 그 일이 가치가 있느냐? 사역의 경중과 완급을 구분할 줄 모르는 것이냐? 사역이 아무리 바빠도 문제 해결이 우선 아니겠느냐?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하는 각 부류를 제때 파악하고 처분을 내리는 것이 리더 일꾼의 본연의 사역인데, 너는 당면한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다른 일로 바쁘구나. 그것이 실질적인 사역을 하는 것이겠느냐? 문제를 발견했거나 누군가 문제를 보고했다면, 먼저 손에 있던 일을 내려놓고 서둘러 현장에 가서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만약 악인이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하고 있다면 먼저 그 악인을 정리해야 한다. 그 후에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면 쉽다. 문제를 발견하고도 해결하지 않고 바쁘다고만 한다면, 그것은 쓸데없이 바쁜 것 아니겠느냐? 대체 뭐가 그렇게 바쁜 것이냐? 실질적인 사역을 하느라 바쁜 것이냐? 분명히 설명할 수 있느냐? 네 이유와 변명이 말이 되느냐? 왜 문제 해결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냐? 왜 제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냐? 왜 변명거리를 찾아 책임을 회피하면서 너무 바빠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이냐? 그것은 무책임한 것 아니냐? 교회 리더로서 문제 해결을 최우선으로 삼지는 않고 그저 잡다한 일로 바쁘게 지내며, 핵심적인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일의 경중과 완급을 가리지도 못하며, 핵심을 잡지도 못하니, 이는 자질이 매우 형편없는 모습이며, 이런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너는 리더 자리에 몇 년을 있어도 절대 교회 사역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니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 자질이 너무 형편없는 사람이 리더가 되면 아무리 훈련해도 소용이 없다. 그는 분명 아무 사역도 하지 못하는 거짓 리더일 테니 반드시 교체하고 조정해야 한다. 거짓 리더가 사역을 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객관적으로 볼 때, 거짓 리더가 하는 모든 일은 교회에 다방면적인 손실을 끼친다. 먼저 교회의 실질적인 사역을 제대로 하지 못해 각종 사역의 성과에 직접적인 지장을 주고, 이와 동시에 하나님 선민들의 생명 진입에 해악과 영향을 끼치며, 무엇보다도 하나님나라 복음의 확장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런 결과는 모두 거짓 리더가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않은 것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이 모든 것은 거짓 리더가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않아서 야기된 일이다. 만약 다른 리더 일꾼들이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실질적인 사역을 하고, 진행 속도에 박차를 가하며, 좀 더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한다면, 거짓 리더가 하나님 집에 끼치는 각종 손실이 좀 줄어들지 않겠느냐? 최소한 손실을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하나님 집에서는 네게 문제가 발생하자마자 바로 처리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누군가가 문제점을 보고한 후에는 즉시 착수하여 처리해야 하고, 형제자매들에게 상황을 물어봐서 파악해야 하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 다른 리더 일꾼들과 의논하고 교제해야 한다. 만약 문제가 심각한데 해결하지 못하겠다면 즉시 윗선에 보고하여 해결책을 구해야 한다. 이는 리더 일꾼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현재 문제는 이 리더 일꾼들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윗선에 보고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윗선에 보고했다가 자신이 무능하고 자질이 부족해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날까 봐 매우 두려워하고, 교체될까 봐 걱정한다. 하지만 주동적으로 사역하지는 않으며, 어리석고 무감각하고 행동이 굼뜨다. 문제 해결의 방법이 없으면 그냥 대충 넘어가고, 이로 인해 문제가 너무 많이 쌓여 악인들에게 빌미를 주게 된다. 이때 그 악인들과 야심가들은 거짓 리더가 못난 인간임을 깨닫고 기회를 틈타 제멋대로 악을 행하기 시작하며, 교회를 뒤죽박죽 난장판으로 만들어 각종 사역을 마비시킨다. 거짓 리더가 이 사태의 주요 책임자겠지만, 다른 리더 일꾼들도 책임을 다하지 않았으니, 이는 리더 일꾼의 심각한 직무 유기 아니겠느냐? 사실 교회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의 대부분은 악인이나 불신파의 교란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만약 리더 일꾼이 제때 문제의 근원을 발견하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킨 주범을 찾지 못하며, 늘 다른 쪽에서만 원인을 찾는다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앞으로도 끊임없이 문제가 생길 것이다. 사고를 일으킨 자나 문제를 야기한 범인을 잡아서 대놓고 책임을 추궁하는 식의 문제 처리가 가장 효과적이다. 최소한 그 불신파와 악인들이 다시는 제멋대로 굴며 방해하고 교란하지 못하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것이 바로 리더 일꾼이 해야 할 일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확실한 것은, 교회에 문제가 점점 더 많이 발생하고 제때 해결되지 않는 주된 원인이 리더 일꾼이 책임감이 보이지 않거나 진리 실제가 없는 거짓 리더가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못해서라는 사실이다. 리더 일꾼으로서 교회에 발생한 각종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분명 리더 본연의 사역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몇 가지 상황과 원인을 반드시 분명히 해야 한다. 만약 리더 일꾼이 신참이어서 경험이 없다면 인내심을 갖고 도우며, 그를 이끌어 문제를 해결하게 하고, 그가 문제 해결 과정에서 배우고 진리 원칙을 파악하게 해야 한다. 그러면 그는 점차 문제 해결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한편, 리더 일꾼이 올바른 사람이 아니고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데다가 이방인의 관점과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이는 진리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며, 이런 사람은 리더 일꾼이 되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러니 제때 교체하고 도태시켜 새로 적합한 리더 일꾼을 선출해야 한다. 그래야 문제를 철저히 해결할 수 있다. 교회 리더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불가피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문제들도 있다. 하지만 사람에게 이성이 있다면,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숨기거나 묻어 둔 채 방치하지 말고, 진리를 깨달은 사람 몇 명과 함께 의논하며 해결해야 한다. 그러면 문제를 70~80% 정도 해결할 수도 있다. 최소한 당장은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테니, 이 또한 실행 가능한 방법이다. 만약 정말 해결하지 못하겠다면 상부에 해결책을 구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체면 깎이는 것이 두렵고 상부에서 너의 무능함을 책망할 것이 두려워 숨기고 묻어 둔 채 문제를 보고하지 않는다면, 이는 완전히 수동적인 것이다. 그런 너는 바보처럼 무감각하고 우둔하며 아무 대책이 없어 일을 그르칠 것이다. 또 이런 상황에서는 악인과 적그리스도에게 쉽게 기회를 주어 그들이 혼란을 틈타 일을 꾸미게 할 수 있다. 왜 혼란을 틈타 일을 꾸민다고 하겠느냐? 그들은 바로 그런 기회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리더 일꾼이 어떤 문제도 처리하지 못하고 하나님 선민들이 불안해하며 리더 일꾼을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할 때 악인과 적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틈을 노리려고 한다. 그들은 그 교회가 이끄는 사람도, 관리하는 사람도 없는 상태라고 생각하며, 이 기회를 틈타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 주어 하나님 선민들에게 우러름과 지지를 얻어 내려고 한다. 그들이 리더 일꾼보다 자질이 좋아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으며, 혼란 속에서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고 믿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악인과 적그리스도가 가장 원하는 일 아니겠느냐? 리더 일꾼이 무능력할 때, 악인과 적그리스도는 일어나 문제를 해결하고 돌파구까지 마련해 준다. 이렇게 비교하면 하나님의 선민들이 누구를 믿겠느냐? 당연히 악인과 적그리스도 세력을 믿을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해 주느냐? 리더 일꾼이 못난이로, 아무 일도 해내지 못하고 중요한 시기에 잘못을 저지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사람에게 리더 일꾼이 될 자격이 있겠느냐? 적그리스도는 진리 실제도 없고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도 못하지만, 다소 은사가 있고 외부적인 일에 상대적으로 머리가 잘 돌아간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장점이며 사람을 미혹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들이 리더 일꾼이 된다면 정말 진리로 하나님 선민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선민들을 이끌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진리를 깨닫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게 할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들은 얼마간 은사가 있어 말을 잘하긴 하지만 진리 실제가 전혀 없는데, 교회의 리더 일꾼이 될 자격이 있겠느냐? 자격이 전혀 없다! 이는 하나님의 선민들이 꿰뚫어 봐야 할 일이니, 절대 악인과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어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말해 보아라, 불신파, 악인,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전혀 추구하지 않고 진리 실제가 조금도 없는데, 양심과 이성이 있는 말을 할 수 있겠느냐? 예를 들어 “지금 교회에는 책임자가 없지만, 우리는 자각해야 합니다. 하나님 집의 규정을 어겨서는 안 되고, 하나님 집에서 요구하는 원칙을 바꿔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하고, 각자 이행해야 할 본분을 지키며, 맡은 바 직책을 다해야지, 질서를 어지럽혀서는 안 됩니다.”와 같은 말을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럼 이 불신파, 악인들은 어떤 일을 하겠느냐? 지켜보는 사람도, 통제하는 사람도 없으니 본분도 이행하지 않고 먹고 마시고 즐기기만 하며, 쓸데없는 잡담과 농담, 심지어 남녀가 서로 시시덕거리며 장난친다. 또 어떤 이들은 밤새도록 이방인의 영상을 보다가 낮에는 밤새워 본분을 이행했다는 핑계로 게으름을 피우며 늦잠을 잔다. 이 악인들, 마귀에 속한 자들은 이런 짓을 한다. 그들이 이런 나쁜 짓을 할 때 마음에 가책을 느끼겠느냐? 양심에 깨닫는 바가 있어 주동적으로 사람의 책임을 다하고, 하나님 집과 교회, 형제자매에게 이로운 일을 하겠느냐?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 누가 지켜볼 때면 밥이나 얻어먹기 위해 마지못해 보여 주기식으로 일하는데, 이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로, 이 외에는 취할 만한 점이 전혀 없다. 그러니 이들을 하나님 집에 남겨 두는 것이 의미가 있겠느냐? 아무 의미가 없다. 이런 자들은 쓸모없는 존재이니 반드시 정리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는지 여부를 어떻게 가늠할 수 있겠느냐?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한 직종에 종사하면서 배우고 깊이 연구하고 이해할수록 더더욱 그 일이 하고 싶어지고 그 직종을 떠나고 싶지 않아진다면, 이는 어떤 의미겠느냐? 그가 진정으로 그 직종을 좋아한다는 의미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얼마나 고생하고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든, 얼마나 많은 정력을 쏟아붓든 망설임 없이 계속 그 직종에 종사하며 후회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마음속 깊이 좋아하는 것이다. 반면, 만약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업무를 배울 때는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기를 꺼리고, 업무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해도 해결 방법을 찾으려 하지 않으며 마음속으로 귀찮아한다면, 심지어 그 직종에 종사하는 것이 번거롭고 부담스럽다고 느끼지만 전직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로, 또 그 직종이 자신에게 물질적인 수확을 가져다준다는 이유로 마지못해 그 직종에 종사하지만 결코 그 직종의 뛰어난 인재가 되지 못한다면 그가 진정으로 그 직종을 좋아하는 것이겠느냐? (아닙니다.) 분명 그렇지 않다. 또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입으로는 그 직종을 좋아한다고 하고 그 직종에 종사하지만, 업무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는 법이 없고, 심지어 배우는 과정에서 그 직종에 반감과 혐오감을 갖게 되어 점점 더 배우기 싫어하다가 어느 정도로 반감이 들면 전직해 버리며, 그 후에는 그 직종에 종사했던 과정이나 이야기 등을 다시 언급하는 것조차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부류가 그 직종을 정말 좋아하겠느냐?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그 직종을 마음대로 포기할 수 있고, 혐오감을 느끼며, 심지어 전직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은 진정으로 그 직종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가 그 직종을 포기할 수 있는 것은 많은 시간과 정력, 대가를 지불한 후에도 그 직종이 그가 바라던 대로 부자의 삶, 좋은 물질적 대우를 누리게 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마음속으로 그 직종을 싫어하고 저주하며, 심지어 다른 사람이 그 직종을 언급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도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이 과거 그 직종에 종사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이상이나 인생 최고의 추구 목표로 삼았던 것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그 직종을 이 정도로 싫어할 수 있다면, 그가 처음에 보여 준 모습이 진정으로 그 직종을 좋아하는 것이었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오직 한 부류의 사람만이 그 직종을 진정으로 좋아한다. 즉, 그 직종이 자신에게 좋은 물질적 삶이나 풍족한 이익을 가져다주는지와 무관하게, 또 그 직종에 종사하면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는지와 무관하게, 망설이지 않고 그 직종에 계속 종사하며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는지 여부도 이와 같다. 만약 네가 진정으로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고,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는 데서 점차 진리를 사랑하는 데로 나아간다면, 어떤 일을 마주하든 한결같이 진리를 구하고 추구할 수 있을 것이며, 네 인생 목표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하나님을 믿는 것과 구원받는 길을 쉽게 포기할 수 있다면, 이는 진정으로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진리를 추구하지는 않지만, 또 포기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는 단 한 가지 이유가 있다. 바로 좋은 결말과 종착지, 미래를 얻을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한번 도전해 볼 만하다고, 끝까지 견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버틸 필요가 있다고, 마침 재난이 커져서 갈 곳도 없으니 여기에서 버티며 한번 운을 시험해 보자고 생각한다. 그럼 이 부류의 마음속에 진리를 사랑하는 성분이 조금이라도 있겠느냐? (없습니다.) 없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기 시작할 때는 이 세상을 증오하고, 사탄을 증오하고, 부정적인 사물을 증오하며,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고, 광명을 동경한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 집과 교회에 들어오면 어떤 모습을 보이겠느냐? 자신이 힘쓰는 자임을 깨달았을 때, 자신의 행위와 본성을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어떤 태도를 보이겠느냐? 어떤 모습을 드러내겠느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스스로 하나님 집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도태될 대상이라고 의식하거나 느끼거나 생각할 때, 어떤 이는 떠나기를 선택하고, 어떤 이는 마지못해 교회에 남아 있으면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행동하다가 결국에는 어쩔 수 없이 떠난다. 이 부류는 진리를 전혀 사랑하지 않으며, 복받으려는 욕망이 물거품이 될 때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날 수 있다. 이런 몇 가지 모습을 통해 각 부류 사람들이 진리를 대하는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4. 세 부류의 서로 다른 결말

방금 우리는 힘쓰는 자, 피고용인, 백성이라는 세 부류의 특징을 교제했다. 그들의 특징을 보면, 이들이 최종적으로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는 객관적인 환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추구와 본성 본질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지만, 하나님 역시 그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는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근거로 결정한다. 힘쓰는 자도 진리를 사랑하고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마지막에 하나님의 사역이 끝날 때도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관념과 상상, 과분한 요구와 배반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하나님이 사역하는 동안, 그들은 하나님을 따르며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패괴 성품을 전혀 해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패괴 성품을 해결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바람은 있지만, 그들이 실제로 드러내는 모습은, 버리고 기꺼이 대가를 치르는 데 그칠 뿐, 진리 원칙이나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길을 전혀 구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결국 많은 힘을 쏟지만 하나님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사람들과 사탄 앞에서 하나님을 배반하며,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상상,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결과가 야기된다. 하나님의 사역이 끝날 때도 그들은 여전히 ‘인성이 좋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데다가, 기꺼이 버리고 고생할 수 있으니까 분명 구원받을 수 있을 거야.’라고 자처하며 마음을 편히 먹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시종일관 힘쓰는 자의 길을 걸어왔으며, 진리를 전혀 추구하지 않기에 힘쓰는 자라는 신분은 변함이 없다. 피고용인에 속하는 다른 부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이 밖에 또 한 가지 부류가 있으니 바로 방금 말한 백성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힘쓰는 자처럼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시간과 정력을 들이고 청춘까지 바치며, 숱한 고생을 하고 대가를 치른다. 이는 힘쓰는 자와 같은 점이다. 그렇다면 다른 점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하나님의 사역이 끝날 때면 그들이 하나님에게 가지고 있던 많은 관념과 상상, 과분한 요구가 모두 해결되고, 패괴 성품 중 하나님을 명백히 대적하는 내적 상태와 모습, 그리고 패괴 표출을 벗어 버리며, 해결되지 않은 부분도 체험 과정에서 점차 진리를 깨달아 해소된다는 것이다. 비록 그들이 패괴 성품을 완전히 벗어 버리지는 않았지만, 생명 성품에 어느 정도 변화가 생겼고, 대부분의 경우 자신이 깨달은 진리 원칙에 따라 실행할 수 있게 되었으며, 패괴 성품의 표출도 눈에 띄게 줄게 되었다. 모든 환경에서 패괴 성품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요구 하나는 충족했는데, 바로 하나님이 요구한, 정직한 사람이 된 것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정직한 사람이다. 또한 이들은 어떤 환경에서 패괴 성품을 드러내거나 과오를 저지르거나 하나님에 대해 관념을 가지거나 거역할지라도 늘 회개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와 동시에, 가장 중요한 점은 말세 심판 사역에서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든, 어떻게 하든, 미래에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앞으로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안배하든, 자신이 앞으로 하나님이 안배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든 상관없이 순종하는 마음과 태도를 가지고 있고, 더 이상 개인적인 선택이나 계획, 타산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여러 가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인해 그는 이미 하나님이 요구한 대로,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 사람, 즉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 된 것이다. 비록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완전한 사람’이라는 하나님 말씀의 진정한 기준과는 아직 거리가 한참 멀겠지만, 하나님의 시련이 닥칠 때 그에게 구하고 순종하는 마음이 있으며, 그것으로 충분하다. 원망하지 않고 오직 기다리며 순종하는 것이다. 너희의 현실적인 상황이 이런 결과에 도달하기까지는 아직 거리가 있고, 어떤 이들에게는 아득히 멀어 이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 말씀을 자신의 생존 원칙과 생존 토대로 삼을 수 있다면, 너 혹은 너희가 하나님이 사랑하는 진정한 백성이 되는 날은 그리 멀지 않을 것이며, 언젠가는 그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것이 예언이라고 해도 좋고,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 해도 좋다. 어쨌든 이 마지막 결과는 허상이 아니라 곧 성취되고 이루어질 사실이다. 이 사실이 과연 누구에게서 이루어질지, 어떤 사람들에게서 이루어질지는 너희가 어떻게 진리를 추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서, 네가 정말 진리를 어느 정도로 사랑하여 진리를 추구하고 실행할 수 있는지, 아니면 단지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만 조금 있을 뿐 진리를 완전히 받아들이고 실행하지는 못하는지, 마지막 결과가 너 자신에게 답을 줄 것이다. 그럼 이 주제는 여기까지 교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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