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일꾼의 직책(24) 제 4 부
2) 잇속 차리기를 좋아한다
두 번째 부류는 잇속 차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분명 잇속 차리기를 교제하는 것에 대해 관념이 있을 것이다. 그는 ‘패괴된 인류 가운데 잇속 차리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건 사람의 본성이야. 악을 행하지만 않는다면, 잇속 좀 차린다고 뭐가 문제겠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교제하는 ‘잇속 차리기를 좋아하는 것’은 정상인이 잇속 차리기를 좋아하는 범주를 넘어 악한 정도에 이른 것을 말한다. 이 부류는 교회에도 적지 않으며, 최소한 어느 정도는 존재할 것이다. 그들은 ‘모두가 형제자매’라는 명목을 내세우며 곳곳에서 잇속을 차리는데, 형제자매들 사이에서나 하나님 집, 교회에서 잇속을 차리는 것이다. 어떤 잇속을 차리겠느냐? 예를 들어, 집을 사려는데 돈이 부족하면 친척이나 친구, 은행을 통해 빌리지는 않고 형제자매들에게 빌린다. 게다가 이자 얘기는 언급하지도 않고, 언제 갚겠다는 얘기도 없이 그저 빌리기만 한다. 빌려 달라는 것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고, 사실상 달라는 것이다. 갚을 생각도, 이자를 줄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왜 형제자매들에게 달라고 하겠느냐? 모두가 형제자매이니 어려움이 있으면 마땅히 도와줘야 한다고, 도와주지 않으면 형제자매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제자매에게 돈을 빌리면서 그들이 당연히 돈을 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게끔 이런저런 이유까지 댄다. 또 어떤 사람은 형제자매 중 집에 차가 있는 사람을 보면 그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며 사흘이 멀다 하고 빌리러 가는데, 빌려서는 돌려주지도 않고 기름도 넣어 주지 않으며, 차를 긁히거나 망가지게도 한다. 이 밖에도 누구 집에 맛있는 것이나 쓸 만한 것, 좋은 물건이 있으면 탐내고 궁리하면서 가로채려고 한다. 누구 집에 가든 도둑처럼 시퍼런 안광을 번뜩이며 이곳저곳 뒤져서 잇속 챙길 만한 것, 가져갈 만한 것이 있는지 살피는데, 작은 꽃 화분 하나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사람들과 외출하거나 식사할 때도 교통비나 밥값을 내지 않고, 좋은 것을 보면 다 사고 싶어 하지만 계산할 때가 되면 다른 사람이 대신 내게 하고, 나중에는 돈 갚겠다는 말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저 잇속을 차리려고만 하며, 한 푼이라도 이익을 얻으려 한다. 좋은 것을 원하면 돈을 내서 사면 된다. 돈을 내기 싫다면 잇속도 차리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큰 탐욕을 부리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존중받을 만한 인격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이 부류는 인격이 없고 잇속만 차리려 하는데, 잇속을 차리면 차릴수록 마음이 즐거워진다. 교회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겠느냐, 아니면 영광스러운 일이겠느냐?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이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말해 보아라, 그가 반드시 그런 식으로 잇속을 차려야겠느냐? 밥을 못 먹거나 끼니를 이을 수 없는 형편이겠느냐? 그 정도는 아니다. 사실 그는 돈도 쓸 만큼 있고 밥도 먹고 다닐 수 있다. 단지 탐욕이 너무 커서 인격이 없고, 사람들에게 혐오와 역겨움을 느끼게 할 정도에 이르렀을 뿐이다. 이런 사람이 좋으냐? (좋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늘 잇속을 차리려 하고,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면 마음이 불편해서 꼭 말을 꺼낸다. 그에게 무슨 일을 처리하도록 안배하든 돈 얘기를 한다. “한 번 나갈 때 교통비가 얼마고, 숙박비는 얼마고, 식비는 얼마가 듭니다….”라고 말이다. 사람들이 “돈 얘기는 하지 마세요. 교회에서 줄 겁니다.”라고 하면, 돈을 받은 뒤에는 곰곰이 생각하다 이렇게 말한다. “부족해요. 200위안으로 밖에서 뭘 할 수 있겠어요? 집에서는 검소하게 살아도 나갈 때는 충분히 노자를 챙겨야 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여윳돈을 더 많이 갖고 가야 해요. 만약 다 쓰지 못하면 나머지는 교회에 돌려줄 거예요.” 하지만 돌아와서는 남은 돈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고 지출 보고도 하지 않는다. 그는 교회를 대상으로도 잇속을 차리는데, 하나님의 제물이라고 탐내지 못하겠느냐? (탐낼 것입니다.) 이는 어떤 인간이냐? 그는 인격도 없고 양심과 이성도 없다. 하나님이 이런 자를 인정하겠느냐? 또 어떤 사람은 목욕하고 머리 감고 빨래할 때도 예배 장소나 접대 장소를 이용하면서 교회에서 구입한 세탁기, 온수기, 샴푸, 세제 등을 쓴다. 이렇게까지 잇속을 차리면서 자기 것은 아끼고 교회 것을 쓰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 집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하나님 집의 물건은 전부 자기 것이니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여긴다. 안 쓰면 손해, 안 가져가도 손해, 안 차지해도 손해라고 생각하며, 물건을 망가뜨려도 배상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 물건은 아껴 쓰고 애지중지하면서 하나님 집의 설비와 물품은 마음대로 써 대고 망가뜨려도 배상하지 않는데, 이런 자가 좋은 사람이겠느냐? 절대 좋은 작자가 아니다. 특히 교회에서 물품을 구매해야 할 때가 되면 앞장서서 자원하며 그런 일을 하기 아주 좋아한다. 왜 그렇게 적극적이겠느냐? 이득을 볼 수 있고 잇속을 챙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물건을 사고 남은 돈을 자기 주머니에 챙긴다. 뭐든 잇속을 챙겨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손해라고 여기는 것, 이것이 그의 논리다. 그는 잇속을 챙기지 못하면 형제자매들을 욕하고 하나님 집을 욕하며 누구든 다 욕한다. 그야말로 악귀요, 구걸하는 거지이며, 말 그대로 거지 조직의 일원으로, 밥그릇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부정한 이득을 탐하고 잇속을 차린다. 사람들이 “계속 그렇게 달라고 하는 것은 거지나 다름없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면, 그는 “괜찮습니다. 저를 보고 뭐라고 해도 다 상관없어요. 구두쇠라고 해도 되고, 인색하다고 해도 되고, 거지라고 해도 되고, 거지 조직의 일원이라고 해도 되고, 가난뱅이라고 해도 됩니다. 잇속만 차릴 수 있다면 다 상관없어요.”라고 한다. 이런 부류에게 인격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이런 자는 형제자매들에게 어느 정도 교란을 일으키지 않겠느냐? 특히 집안 사정이 어렵고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교란과 위해를 초래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분량이 작고 매우 연약한 사람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기만 해도 반감이 든다. 또 누구든 그를 보면 싫어하지만 미안해서 거절하지 못하는 탓에 그에게 대놓고 갈취를 당한다. 모두 그의 인성이 좋지 않고 인격이 저열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다 형제자매라고 생각하며, 때로는 본분도 좀 이행하고 믿음도 얼마간 있어 보이고 집에서 접대하면서 조금은 힘을 쓰는 그의 모습을 고려하여 대부분 그가 여기저기서 이득을 취하는 행위를 눈감아 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그가 교회에서 일으키는 교란은 갈수록 커져서 대다수가 불안감을 느낄 정도이니, 골칫거리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부류는 도처에서 사람을 물어 죽게 할 수도 있는 미친개는 아닐지라도 사람을 심란하게 하는 더러운 파리 같은 자이니, 제명하지 않는 한 그 교란이 끝이 없을 것이다. 그가 교회에 남아 있으면 늘 화근이 되어 사람들이 평안을 얻지 못한다. 그에게 교란된 사람들은 화가 나고 항상 그 같은 사람이 지긋지긋하지만, 방법이 없어 참고 또 참는다. 이는 어떤 사람이냐? 사람들 중에 이렇게 뻔뻔한 무뢰한이 있다니, 이런 자가 왜 하나님을 믿는단 말이냐? 그는 그야말로 살아갈 자격도 없는 자다! 어떤 이득이든 다 챙기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냐! 네가 지닌 능력에 따라 그만큼의 물질을 누리되, 그런 능력이 없다면 누리지도, 남의 것을 탐하지도 마라. 다른 사람이 가끔 무언가를 베풀어 주거나 네가 좋아하고 애착이 가는 어떤 물건이 있어 작은 이득을 보는 것은 누구나 용서할 수 있다. 사람이 가난하면 뜻이 초라해진다는 말도 있지 않으냐. 그것은 큰 문제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네가 그렇게 계속 잇속만 차리다가 부끄러움도, 염치도 모르는 거지, 모두의 눈에 미친개나 파리와 같은 존재가 된다면, 즉시 제명해야 한다. 이런 부류는 철저히 해결해야 뒤탈이 없다.
잇속 차리기를 좋아하는 이 부류를 너희는 어느 정도까지 용인해 줄 수 있느냐? 너희가 정말 못 견딜 정도라면, 그에게 당하고 난 뒤 죽은 파리를 삼킨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이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모였다 하면 불평하는 정도라면 일찌감치 그를 제명했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용인해 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한계에 도달했을 때는 모두가 힘을 합쳐 그를 제명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 집을 위해 해악을 제거하는 일이며, 모두를 통쾌하게 해 주는 일이다. 이런 자는 건달이다. 많은 사람을 불안하게 하며, 교회 생활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악성 사건을 만들기에,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함께 그의 문제를 교제하고 해결해야 한다. 이렇게 실행하는 것은 정당하다. 악인의 교란이 이미 몇몇 사람에게 해를 끼쳤기 때문이다. 악인이 계속 악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교회 생활의 정상적인 질서를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선민들이 더는 해를 입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이 악인을 속히 처리하고 제명해야 한다. 만약 그가 제명된 후 교회를 고발한다면, 지혜로운 방식으로 그에게 이렇게 말해라. “당신은 제명되거나 출교된 것이 아닙니다. 집으로 돌아가 격리된 채로 반성하세요. 반성한 후에 반성문을 써 오면 다시 교회에서 받아 주겠습니다. 지금은 돈을 많이 벌고 삶을 즐기세요. 그러면서 하나님을 믿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면 되죠. 이렇게 하면 둘 다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겠느냐? (좋습니다.) 그를 제명하거나 출교시킨다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지만, 오늘부터 교회에 그 사람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이렇게 처리하는 게 어떠냐? (좋습니다.) 얼마나 좋으냐! 소란을 피울 필요도 없고, 그와 결판을 낼 필요도 없다. 간단하고 분명하게, 그가 속세에 돌아가 돈을 벌며 자기 삶을 살게 하면 된다. 요컨대 잇속 차리기를 좋아하는 이 부류의 인성은 그다지 좋지 않다. 악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잇속 차리기를 좋아하는 그의 인격은 사람을 꽤나 짜증 나게 하고 혐오스럽게 한다. 그는 빈틈만 보이면 그 기회를 이용하려 한다! 이 부류가 법을 어긴다거나 범죄 행위를 저지르지는 않을지 몰라도, 그의 행실이 교회 생활에 초래하는 장기간의 방해와 교란의 결과는 어떤 악행보다도 심각하니, 그를 불신파나 악인으로 규정하여 교회에서 제명하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하면 불신파가 교회를 교란하고 형제자매들을 괴롭히는 행위를 완전히 제지할 수 있다.
방금 우리는 잇속 차리기를 좋아하는 부류를 대상으로 특별한 처리 방법을 교제했는데, 이는 중국 본토의 박해받는 특수 환경에 근거한 것이다. 해외 각국의 교회라면 바로 제명하면 된다. 단, 어떤 사람에게든 처분을 내릴 때는 반드시 원칙이 있어야 하고 지혜로워야 한다. 교회에는 행정 법령과 규칙이 있고, 그 모든 규칙과 행정 법령은 형제자매들의 정상적인 교회 생활과 본분 이행의 정상적인 질서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 누구든 형제자매들의 교회 생활과 본분 이행을 교란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으며, 그런 자는 하나님에게 버림받을 것이다. 물론, 형제자매들의 일상생활을 교란하고 방해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는 리더 일꾼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다. 형제자매의 일부 친척이나 친구, 지인들도 ‘형제자매’라는 명목으로 형제자매들을 끌어들이고 미혹하여 본분 이행을 가로막을 수 있다. 리더 일꾼이나 형제자매들은 이런 사람에게 처분을 내릴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들의 이런 행위와 행동은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가로막고 교회 사역까지 교란하니, 리더 일꾼이 나서서 해결하고 제재해야 한다. 물론, 이 부류를 처리하고 해결하는 데도 적절한 방법이 있다. 싸우거나 욕할 필요 없이, 그에게 그의 문제의 본질과 많은 하나님 선민이 그를 참소하고 질책한 내용을 분명히 말해 주고, 마지막에 이렇게 알려 주어라. “당신을 제명하는 것은 다수가 결정하고 서명으로 인증한 것입니다. 당신이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교회에서는 이렇게 결정하고 처리할 권한이 있으니 당신은 순종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일이 해결된다. 이런 처리는 완전히 원칙에 부합한다. 잇속 차리기를 좋아하는 부류는 원칙대로 대하고 처분을 내려야 한다. 그가 네 것을 빌려 잇속을 차리려 할 경우, 빌려주고 싶으면 빌려주고, 빌려주기 싫으면 빌려주지 않아도 된다. 결정권은 네게 있다. 빌려주는 것은 네 인정(人情)이고, 빌려주지 않는 것은 네 권리다. 만약 그가 “다들 형제자매인데 정말 인색하군요. 물건 좀 빌리자는데 거절하고!”라고 하면 이렇게 말해라. “이건 제 물건이니, 저에게는 빌려주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원칙에 부합하는 일이죠. ‘모두가 형제자매’라는 말로 저를 압박하지 마세요. 당신의 그 말은 진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빌려줘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면 그때 빌려주겠습니다.” 누구든 교회라는 명목으로, 또는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 형제자매’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사유 재산을 강탈하거나 빌릴 자격은 없다. 이것은 진리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다. 사람이 이것을 지켜야 모두가 공평해지고 모두가 진정한 권리를 누릴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누가 “하나님 집 사역에 필요하다.”, “교회 사역에 필요하다.”, “형제자매들에게 필요하다.”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물건을 강탈하거나 빌리려 한다면, 이것이 진리에 부합하겠느냐? (진리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요구는 거절할 권리가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누가 네게 인색하고 쩨쩨하다는 누명을 씌울까 봐 두렵지 않으냐? (두렵지 않습니다.) 누가 그 일을 빌미로 크게 떠들어 대고, 너를 가리켜 교회 사역을 지키지 않고 형제자매에게 사랑이 없다고 하며, 형제자매들이 모두 일어나 너를 버리고 고립시키게 할까 봐 두렵지 않으냐? 그럼 너는 위축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차 한 번 빌려주는 게 뭐가 어때서? 교회에든 하나님 집에든 형제자매에게든 다 빌려주면 되지. 되도록 형제자매들의 미움을 사지 않는 게 좋아. 한 사람의 미움을 사는 건 두렵지 않지만, 모든 형제자매의 미움을 사서 냉대받고 고립되면 어떡해?’라고 생각할 것이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데 무엇이 두렵단 말이냐? 그가 너를 고립시킨다고 해서 그에게 진리가 있다는 의미는 아니며, 그가 하는 일이 진리에 부합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진리는 언제나 진리다. 소수가 찬성하든 다수가 찬성하든 진리는 진리이며, 진리가 없다면 소수가 다수에게 복종할지라도 그것이 진리가 되지는 않는다. 이는 사실이니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어떤 사람에게 진리 실제가 있는지 여부는 그가 말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그가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지, 원칙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 예를 들어, 네가 본분을 이행하려고 새 컴퓨터를 샀는데 누가 교회 사역에 필요하다며 빌리려 한다. 네가 빌려주지 않자 그는 “당신은 사랑이 없군요. 당신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버리지도 못하고요. 당신은 이 정도도 포기하지 못하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이 옳으냐? 진리에 부합하느냐? (부합하지 않습니다.) 너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컴퓨터는 본분을 이행할 때 쓰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본분을 이행하는 중이라 컴퓨터가 없으면 안 돼요. 그런데 당신이 제 컴퓨터를 빌려 가면 제 본분 이행에 지장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이게 진리에 부합할까요? 대체 컴퓨터를 빌려서 어디에 쓰려고 하나요? 교회 사역에 쓴다고 하는데, 그럼 증명해 줄 사람이 있어야죠. 게다가 교회 사역에 쓴다고 할지라도 제 컴퓨터를 빌려 갈 순 없습니다. 제 컴퓨터를 빌려 가면 저는 무엇으로 본분을 이행하나요? 당신은 정말 이기적이군요! 교회 사역에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잇속을 차리려 하지 마십시오. 저는 당신의 수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저를 분별력도 없는 바보로 보지 마세요. 잇속을 차리겠다고요? 꿈 깨시죠!” 이런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해야 사탄의 올무에 걸리지 않는다. 이 문제는 해결하기 쉽지 않으냐? 네가 진리를 깨달았다면, 네가 하는 일은 원칙에 부합할 테니,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그가 함부로 모함하는 말을 들어 줄 필요도 없다. 그가 늘어놓는 그 정도의 도리로는 절대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 없다. 잇속 차리기를 좋아하는 부류가 지닌 인성의 모습과 그들에 대한 처리 원칙은 간단히 이 정도만 교제하겠다.
교회에 나타나는 잇속 차리기를 좋아하는 부류에 대해서 한편으로는 더욱 정확하고 실제적으로 분별할 줄 알아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가져야 할 입장, 해야 할 사역, 지켜야 할 원칙, 사람과 일, 사물을 대할 때 지녀야 할 태도를 마음속으로 반드시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 대세를 따르지 말고, 사람들의 미움을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마라. 더욱이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려다 자신이 지켜야 할 원칙과 입장을 잃어버리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사람의 비위는 맞출 수 있어도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 하나님에게 혐오받게 된다. 원칙에 맞는 일이라면 네가 그것을 하면서 사람들의 미움을 사고 뒤에서 욕을 먹을지라도 개의치 마라. 반면, 원칙에 맞지 않는 일이라면 모두가 너를 인정하고 옹호하며 너와 잘 지낸다고 해도 다만 한 가지, 하나님 앞에서 설명하지 못할 것이니, 너는 손해를 볼 것이다. 네가 만약 많은 사람과의 관계를 지켜서 사람들이 기뻐하고 만족스러워하며 다들 너를 좋다고 해도 하나님, 창조주에게 죄를 짓는다면 너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바보다. 그러니 무슨 일을 하든 반드시 그 일이 원칙에 맞는지, 하나님이 기뻐할지, 하나님이 그 일을 어떤 태도로 볼지, 사람이 가져야 할 입장과 지켜야 할 원칙은 무엇인지, 하나님은 어떻게 당부했는지, 네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반드시 분명히 알아야 한다. 너는 먼저 이런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너와 사람들 간의 교류나 물질적인 교환, 왕래가 원칙을 지키는 것을 기초로 하고 있느냐?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을 기초로 하고 있느냐? 만약 이런 것을 기초로 하고 있지 않다면, 네가 모든 일을 아무리 잘 지켜내고 완벽하게 하며 사람들에게 칭찬받을지라도 하나님에게는 전혀 기억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네가 누구와 교류하고 함께 지내든 그 원칙은 상대가 네게서 잇속을 차리는지, 네가 상대에게서 잇속을 차리는지에 있지 않다. 그런 것이 아니라 너희의 행동이 진리 원칙에 부합하는지를 기초로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믿는다는 점을 봐서”라고 할 수 있고,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형제자매다.”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것을 전제로 삼을 수 있다. 생명 진입 측면의 일과 본분 이행의 일, 그리고 교회 사역과 관련된 일 외에는 어떤 교류도 ‘형제자매’라는 전제하에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본분이나 생명 진입,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상적인 교류와 관련이 없는데도 늘 ‘형제자매’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그것을 핑계로 모종의 목적을 달성하려고만 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 그런 말과 방식, 유리한 조건을 이용해 잇속을 차리고 개인적인 이익을 꾀할 것이다. 하나님의 선민들은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이를 경계하고, 이런 문제를 지혜롭게 대해야 한다. 교회의 많은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한 데다가, 심지어는 불신파까지 있어 아무 원칙 없이 일하고 제멋대로 나쁜 짓을 일삼기 때문이다. 그들은 ‘형제자매’라는 명분을 내세워 일을 하면 교회 사역에 누구보다 쉽게 지장을 주고 교란한다. 오늘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든 교류이든 모두 진리 원칙을 토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함이다. 그러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부적절한 왕래를 피할 수 있고, 잇속 차리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기회를 틈타는 것도 물론 막을 수 있으며, 체면 차리기를 좋아하고 나약한 인성을 지닌 사람들이 늘 이용당하고 속아 넘어가 손해 보는 일 역시 피할 수 있다. 자기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은 게 뻔한데도 잇속 차리기를 좋아하는 어떤 자들이 손을 벌리며 이렇게 하는 게 그를 존중하는 거라고 하면 그는 별거 아니라는 척 자신이 힘들게 번 돈을 그자에게 빌려준다. 빌려준 후에는 어떻게 되겠느냐? 그 사람은 종적을 감춘다. 그래 놓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보호해 주지 않았다고 원망하니, 이것이 이성적이냐? 하나님을 믿으면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해도 되는 줄 아는데, 모든 일을 하나님이 챙겨 주면 너는 폐인이 되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진리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라고 요구하는데, 이런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냐? 이 진리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으니 자꾸 손해 보고 속아 넘어가는 게 당연하다. 결국 살길이 막막해지면 누구를 원망하겠느냐? 자업자득이다. 네 그런 행동은 사랑이 아니라 어리석음이다! 남의 비위를 맞추려고 사기꾼에게 돈을 빌려주고는, 정작 돈이 필요할 때 하나님 집에 손을 벌릴 수 있겠느냐? 하나님 집에서 그 책임을 져야 하느냐? 하나님 집에서 그 돈을 부담하길 바란다면 그것은 하나님에게 죄스럽지 않겠느냐? 살길이 막막한데 본분은 어떻게 이행하겠느냐? 하나님에게 기도해도 하나님이 반드시 너를 만족시켜 준다는 법은 없다. 이것을 자업자득이며, 그래도 마땅하다고 하는 것이다. 누가 너더러 그렇게 어리석게 굴라더냐! 하나님이 너더러 그를 믿으라고 했느냐? 하나님이 너더러 그에게 돈을 빌려주라고 했느냐? 하나님은 그런 적이 없다. 그것은 네 개인적인 행동일 뿐 하나님의 뜻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네 개인적인 행동에 문제가 있어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다면 네가 스스로 책임질 수밖에 없는데 왜 하나님 집과 하나님에게 책임을 지라고 하느냐? 왜 하나님이 보호해 주지 않는다고 원망하느냐? 너는 성인이면서 왜 성인이 갖춰야 할 판단력조차 갖추지 못했느냐? 사회에서 아무나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빌려주겠느냐? 곰곰이 따져 보지 않겠느냐? 왜 ‘형제자매’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는 이유로 돈을 빌려주는 것이냐? 이는 네가 어리석다는 의미가 아니겠느냐? 너는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미련하다. 그것도 미련하기 그지없다! 형제자매라고 해서 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적어도 3분의 1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이고 불신파인데, 설마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냐? 형제자매라고 해서 모두 하나님에게 구원받을 대상이고 진정 하나님에게 속한 자라고 생각하느냐?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라는 말씀을 모르느냐? 형제자매는 누구를 대표하느냐? 패괴된 인류를 대표한다! 그러니 그를 믿는 것은 어리석지 않겠느냐? 네 개인적인 행동이 어떤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든 하나님 집이나 형제자매를 찾지 마라. 아무도 너 대신 값을 치러 줄 수 없고, 아무도 너 대신 그 책임을 질 의무가 없다. 네가 자초한 결과는 네가 받아들이고 책임져라. 또 이런 일을 가지고 교회 생활에서 교제하거나 토론해서는 안 된다.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너의 그 무의미한 일에 관여할 의무가 없다. 정말로 너를 도와주려는 사람이 있다면 너희끼리 해결하면 된다. 알겠느냐?
이런 일을 교제하는 이유는 사람들을 일깨우고, 식견을 키우며, 또 경종을 울려서 하나님을 믿는 이들 가운데도 온갖 부류가 있음을 알도록 하려는 것이다. 내가 몇 번 말한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모두 패괴된 인류 가운데서 선택받은 자들이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느냐? 모든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되어 패괴 성품을 갖고 있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악을 행할 수 있으며, 여건만 갖춰지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방금 교제한, 시비를 일으키고 잇속 차리기를 좋아하는 것은 전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행위이다. 이방인은 우리와 관계가 없으니 언급하지 않겠다. 우리가 교제한 이 인성의 모습은 영락없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러니 ‘형제자매’라는 호칭을 그렇게 위대하고 고상하며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보지 마라. 그렇게 본다면 너는 미련한 것이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형제자매는 귀하다. 일단 형제자매가 되면 성결해지고 하나님의 지기(知己)가 된다. 형제자매는 절대적으로 신뢰할 만하니 완전히 믿어도 되며,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은 모두 진리다.”라고 말씀한 적이 없다. 그런 일은 없었으니, 그것은 네 관념과 상상이다. 지금까지도 ‘형제자매’라는 호칭의 실제 함의를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너는 너무나 미련하며, 그동안 들은 설교가 다 헛된 것이다.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분명히 모르면서 어떻게 그렇게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 있단 말이냐? 다른 사람, 즉 형제자매를 그토록 신성하고 위대하게 보면서 입만 열었다 하면 “형제자매가 싫어해요.”, “형제자매가 화났어요.”, “형제자매가 고생했어요.”, “형제자매가 이러저러해요.”라며 형제자매들에 대해 이렇게 다정하게 얘기하는데, 하나님 말씀에 형제자매가 얼마나 존귀하고 신성하며 신뢰할 만한지 언급된 구절이 한마디라도 있더냐? 한마디도 없지 않으냐? 그런데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냐? 이러면 바보인 것이다. 그러니 네가 형제자매로부터 얼마나 손해를 보고 얼마나 피해를 입었든 다 네가 자초한 일이다. 결국 네가 입은 손해와 피해는 수업료인 셈이며, 그것은 교훈이다. 영원히 기억해라. 형제자매는 진리를 대변하지 않고, 더욱이 하나님을 대변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기도, 증인도 아니며,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도 아니다. 형제자매가 누구냐? 너와 마찬가지로 패괴된 인간으로, 하나님에게 관념을 품고 있으며,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싫어한다. 또 교만한 성품, 흉악하고 사악한 성품을 지녀서 곳곳에서 하나님과 대적하고 본분도 건성으로 이행하며,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다는 명목하에 형제자매를 등쳐 먹을 수도 있는 자들이다. 이런 말을 하는 의도가 무엇이겠느냐? 너와 형제자매의 관계를 이간질하려는 것이 아니다. 네가 모든 사람의 실상을 똑똑히 보고, ‘형제자매’라는 호칭과 주변 사람들을 올바르게 대해서 모두와 정당한 인간관계를 맺게 하려는 것이다. 상호 교류, 물질적 왕래, 아부나 아첨, 적당히 타협하는 등의 방식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유지하여 모든 형제자매 사이에 융화되려고 하지 마라. 그럴 필요 없다. 네 그 모든 행동은 하나님의 눈에 역겹고 혐오스럽게 보인다. 그렇다면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바람직한 생존 방식과 생존 태도, 원칙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뭐라고 했느냐? 정당하고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으라고 한다. 이런 인간관계는 어떻게 맺느냐? 사람들과 어울리고 대화하며 왕래할 때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가 이사하면서 네게 도와줄 시간이 있는지 물어볼 경우 네가 원한다면 가도 되지만, 원치 않거나 본분에 지장이 생길까 봐 걱정된다면 가지 않아도 된다. 이는 네 권리임은 물론 네가 지켜야 할 원칙이기도 하다. 상대에게 원망을 살까 봐, 형제자매들 간의 화목한 분위기를 해칠까 봐 억지로 타협하면서 마음에도 없는 승낙을 했다가, 승낙한 뒤에 내키지 않아 하며 본분까지 지장을 받을 필요가 없다.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다른 사람을 만족게 하고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상대가 자기를 착취하고 노예처럼 부리게 한다. 다른 사람을 만족시켰다고 해서 그것이 선행은 아니며, 하나님은 그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네 행동은 단지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일 뿐, 교회 사역을 위한 것도, 본분 이행을 위한 것도 아니다. 더욱이 그것은 네 책임과 의무도 아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을 결코 기억하지 않을 테니, 그렇게 해 봤자 헛수고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떤 선택을 내릴지 진지하고 신중하게 고려해야 하지 않겠느냐? 어떤 사람들은 남이 도움을 요청하면, 사실 본분 이행만으로도 바빠서 예배하고 묵상할 시간도 겨우 갖다 보니 분명 가기 싫고 원칙상 가면 안 되는데도, 체면 때문에 거절의 의사를 밝히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느냐? 소인배와 잇속 차리기를 좋아하는 자들에게 틈을 내주어 생명 진입을 위해 바쳐야 할 시간을 날려 버리게 된다. 이는 손해가 아니겠느냐? 손해를 봐도 싸다! 조금도 동정하거나 불쌍히 여길 가치가 없다. 왜 손해를 봐도 싸다고 하겠느냐? 누가 너더러 하나님 말씀을 듣지 말라더냐? 누가 너더러 남의 원망을 사는 것을 두려워하라더냐? 남에게 원망을 사지 않으려고 차라리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을 선택했으니, 그래도 싸다! 혹자는 “사람이 진공 속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왕래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네가 어떻게 왕래하는지에 달렸다. 원칙 있게 왕래하는 것과 원칙 없이 무골호인처럼 왕래하는 것 중 어떤 것이 진리 원칙과 하나님 뜻에 부합하며, 네 생명 진입에 더 도움이 되겠느냐?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 않느냐?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수렁에 빠져든다면 최후의 결과는 네가 혼자 감당해야 한다. 이는 분명한 사실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악인이 지닌 인성의 모습은 이외에도 많지만, 오늘은 많이 교제하지 않고 시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것과 잇속 차리기를 좋아하는 것 두 가지만 교제하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두 가지 측면에 대해 들은 후에야 그나마 느끼고 분별하면서 “인성이 좋지 않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 실제로 존재하는데 어떻게 해야겠느냐? 그들이 존재한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교회에는 원칙과 규정이 있으니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 처리하면 된다. 오늘 이 내용을 교제한 목적은 많은 사람이 이 두 부류의 악인을 확실히 알고 분별하여 한마음으로 그들을 제명하는 데 있다.
2021년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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