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일꾼의 직책(21) 제 4 부
4.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된 사람을 나 몰라라 한다
거짓 리더가 보이는 또 다른 모습은 더욱 분노를 자아낸다. 일부 거짓 리더는 적그리스도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적그리스도를 어느 정도 분별하지만 즉시 그를 처리하지는 못한다. 또 형제자매가 적그리스도를 분별하고 내칠 수 있도록 제때 적그리스도의 갖가지 행위에 근거해 적그리스도의 악행과 본질을 폭로하거나 해부하지도 못한다. 이는 이미 리더 일꾼의 직책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일부 형제자매가 미혹되어 적그리스도를 추종할 때도 거짓 리더는 자신과 무관한 일인 듯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 밖에도, 그는 마음속으로 전혀 자책하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하나님께 죄스럽거나 형제자매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늘 이런 ‘전형적’인 말을 한다. “저 사람들은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돼도 싸요! 분별력을 갖췄어야죠. 설사 적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다고 해도 저들은 하나님 집에서 제명되어야 할 대상이에요.” 이 부류의 거짓 리더는 형제자매가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돼도 전혀 자책하지 않고 죄스러운 줄도 모르는 데다가 반성하거나 회개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게다가 형제자매들이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돼도 싸다는 비인간적인 말까지 한다. 이 말에서 무언가를 알아차릴 수 있지 않겠느냐? 이 부류에게 인성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인성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럼 그는 왜 그런 말을 하겠느냐? (책임을 전가하는 것입니다.) 우선 책임을 전가하고 사람들을 미혹하고 마비시키려는 것이다. 그는 ‘그 사람들이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어 끌려간 건 분별력이 없기 때문이야. 나와는 상관없지. 그들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니 미혹되어 끌려가도 싸!’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싸다’는 게 무슨 뜻이냐? 그 사람들은 마땅히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통제되고 심각한 해를 당해야 하며, 그들이 적그리스도에게 어떤 대우를 받든 마땅하고, 그들이 적그리스도를 추종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뜻이다. 그 의미인즉슨, 그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적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그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잘못됐고 하나님이 그들을 택한 것도 잘못됐으며 그들은 하나님 집에 들어오더라도 적그리스도가 데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뜻이 아니겠느냐? 형제자매를 비방할 뿐 아니라 하나님까지 모독하려고 하니, 이 부류가 가증스럽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참으로 가증스럽다! 그는 책임을 전가하고, 그가 형제자매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사실의 실상을 감추는 것 외에도 적반하장으로 그 사람들이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돼도 싸고,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일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은 악랄하기 그지없는 그의 인품을 드러낸다! 그가 적그리스도처럼 직접 형제자매를 교란하거나 미혹하고 억압하지는 않지만, 형제자매, 하나님의 부탁, 하나님 집에서 그에게 맡긴 양 떼를 대하는 태도로 볼 때, 그의 마음이 몹시도 냉혹하고 매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사역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며,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대가를 치르고 협력해야 한다. 수많은 인력과 물자를 들여야 할 뿐 아니라 거기에는 하나님의 심혈도 담겨 있다. 하나님이 여러 사람, 일, 사물과 환경을 마련하여 사람을 하나님 앞에 데려오는 것이다. 그러나 거짓 리더는 이런 것들을 전혀 개의치 않고 누가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돼 끌려가든 “그래도 싸다!”라는 한 마디로 설명한다. 이렇게 모든 사람의 노고와 하나님의 심혈을 헛수고로 만들고, 그에게서는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 ‘그래도 싸다’는 게 무슨 뜻이겠느냐? 이런 뜻이다. “그러게 누가 당신더러 그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했나요? 그는 하나님을 믿을 자격이 없는데 그런 그에게 복음을 전한 건 당신 잘못이에요. 누가 그더러 적그리스도를 따르라고 했나요? 저는 실질적인 사역은 하지 않았지만 그에게 적그리스도를 따르라고 한 적도 없어요. 그 스스로가 기어코 따르려고 한 거죠. 그는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게 어울려요!” 이는 어떤 인성이냐? 그에게 마음이 있기라도 하냐? 그는 냉혈한이고 집 지키는 개만도 못한데 리더를 하다니, 그는 자격이 없다! 너희는 분별력을 갖춰야 한다. 어떤 사람이 양심과 이성을 가지고 있지 않고 너무 매정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를 리더로 뽑아서는 안 된다. 멍청하게 굴지 마라! 그는 최선을 다해 손실을 만회하거나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된 사람을 되찾아오기는커녕 오히려 그런 악랄한 말을 하니, 참으로 악독하다! 이런 부류의 문제는 일반적인 거짓 리더에 비해 성질이 더 심각하다. 그를 적그리스도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의 모습을 근거로 그는 인성이 없고 리더 일꾼이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는 그야말로 배은망덕한 놈이다! 그는 하나님이 맡긴 부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이 어떤 사역을 해야 하는지도 자각하지 못하며, 양심과 이성에 따라 대하지도 않는다. 그는 하나님 선민의 리더가 될 자격도,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일 자격도 없다. 특히 거짓 리더는 하나님 선민을 사랑하지 않아서 형제자매가 미혹됐을 때 위험에 빠진 그들에게 돌을 던지는 격으로 ‘그래도 싸다’라는 말까지 내뱉는 등 동정심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다. 이런 사람은 누가 재난을 당하거나 곤경에 빠진 것을 봐도 구원의 손길을 내밀기는커녕 오히려 더 몰아붙인다. 그래도 그는 마음속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도 않고 예전에 해 오던 대로 리더 역할을 한다. 파렴치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형제자매는 말할 것도 없고, 이방의 어떤 좋은 사람이 마귀에게 심각한 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자 피조물로서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정심을 가질 것이다. 하물며 형제자매 즉,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해를 입는다면 당연히 더욱 가슴 아파해야 한다. 그러나 이 부류의 거짓 리더는 적그리스도가 악을 행하고 하나님 선민을 해치는 동안 아무런 실질적인 사역도 하지 않는다. 적그리스도의 악행과 본질을 폭로하거나 해부하지도 않으며, 형제자매가 적그리스도를 분별하고 마음속으로부터 적그리스도를 내치도록 하는 것에 부담을 가지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는 이 일에 아무런 책임감도 갖지 않는다. 심지어 일부 사람이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어 끌려간 뒤에도 그는 ‘그래도 싸다’라는 냉혹하고 매정한 말을 내던지니 참으로 분통이 터진다! 책임을 전가하는 데다가 자신을 보전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을 미혹하고 마비시키기 위해, 하나님에게 정죄되지 않기 위해 이런 비인간적인 말을 내뱉으니 가증스럽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네가 어떻게 말하든 너는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이고 네 사역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이게 바로 거짓 리더의 모습이다. 네가 아무리 책임을 전가하려 해도 전가할 수 없다. 너는 거짓 리더이다.
일부 거짓 리더는 형제자매가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어 끌려간 뒤에도 냉혹하고 매정하며, 무책임한 태도로 “그들은 미혹되어 끌려가도 싸다”라고 말한다. 심지어 하나님 집 사역지침은 그들 중 인성이 비교적 좋고 돌이킬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책임을 다해 최대한 그들을 되찾아오라고 요구하는데도 실질적인 사역을 전혀 하지 않는다. 설사 일부 사람이 교회로 돌아오겠다고 요구해도 무시한다. 그들은 결코 사람의 생명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겨 아끼지 않고, 미혹된 형제자매들을 최대한 되찾아오지도 못한다. 그들은 이런 책임을 다할 수도 없고, 다하지도 않는다. 하나님 집에서 사역 지침을 통해 그 사역을 제대로 하라고 거듭 요구할지라도 거짓 리더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며 아무 사역도 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지난날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어 격리되거나 제명된 일부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하나님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정상적으로 교회 생활을 하지 못한다. 물론 일부 사람은 분명 여러 측면에서 하나님 집으로 돌아올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나 돌이킬 수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을 사랑으로 도우며 인내심을 갖고 붙들어 주면 진리를 깨닫고 적그리스도를 분별하고 내칠 수 있다. 이들은 돌이킬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리더 일꾼이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않고,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을 시행하지 않으며, 이런 사람들의 생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에,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밖에서 떠돌고 있다. 이런 리더 일꾼들은 갖은 핑계로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을 무시한다. 그들은 심지어 교회로 돌아오고 싶어 하고 교회에서 받아들이는 조건에 부합하는 형제자매들조차 거들떠보지 않고 온갖 핑계를 찾는다. 그들의 인성이 나쁘다는 둥, 안전상 위험 요소가 있다는 둥, 그들은 치장을 좋아한다는 둥, 육을 누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둥, 지위를 좋아한다는 둥 아예 있지도 않은 온갖 핑계와 이유를 대며 그들이 교회로 돌아오는 것을 거절한다. 그들이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통제되어 방향을 잃은 것이 거짓 리더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그 거짓 리더들은 아무런 책임감도, 아무런 양심의 지각도 없다. 어쩌면 거짓 리더들이 그런 사람들을 되찾아오는 것이 어렵고 위험하다고 느끼기 때문일 수도 있고, 마음속으로 그러고 싶지 않고 동의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여러 측면의 원인으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 집의 이 사역지침을 결코 시행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이 부류의 거짓 리더가 보이는 모습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하나님 집에서 맡긴 그 어떤 사역이든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협력하거나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일부 사람들이 그들의 직무 유기를 폭로하면 스스로를 변호하기도 한다. 책임을 전가하고 자신을 변호하는 말들로 책임을 방기한 실상을 감추는 것이다. 이 부류의 거짓 리더는 더욱 가증스럽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요컨대, 이 부류의 거짓 리더는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선민을 심각하게 해치는 일을 대할 때도 책임을 소홀히 하고, 아무런 실질적인 사역도 하지 않고, 하나님 집에서 요구하는 이 사역의 그 어떤 세부 사항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는 고생을 견디고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으며 그저 제멋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려 한다. 하고 싶으면 좀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으며,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과 하나님 집에서 그에게 맡긴 직책과 책임, 나아가 하나님의 뜻과 요구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다. 이 부류는 인성과 양심이 없는 산송장이다. 너희는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기를 추구하는 인생의 중요한 일을 인성이 없는 사람에게 책임지도록 맡길 수 있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설사 너를 적그리스도에게 넘기지 않을지라도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선민을 미혹하고 심각하게 해칠 때 그가 과연 최선을 다해 적그리스도와 싸우겠느냐? 그러지 않을 것이다. 이런 부류는 냉혈한이고 책임감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리더를 한다.
거짓 리더도 때로는 형제자매에게 관심을 갖고 어떤 물건이 부족한지, 먹고 사는 것은 어떤지 등을 물으며 생활적인 측면에서 꽤나 세심하게 챙긴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탁과 형제자매의 생사존망, 진리 원칙에 관한 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누가 그에게 요구해도 하지 않는다. 사람의 육적인 누림과 의식주, 혜택에만 관심을 갖고 그런 일들을 좀 처리할 뿐이다. 혹자는 “모순된 말이네요. 그 사람은 매정하다고 하지 않았나요? 매정한 사람이 남을 위해 그런 일들을 처리하려고 할까요?”라고 말하는데, 매정한 사람이 선의를 품고 사람들을 위해 그런 일들을 처리할 수 있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일부 매정한 사람들도 정말로 그런 일들을 처리하곤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한 가지 이유는 모두를 위해 일을 처리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의 일도 처리하므로 그 자신도 이득을 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처리하면서 아무런 이득을 얻지 못한다면 그래도 그가 일을 처리하는지 한번 살펴보아라. 그는 곧장 태도가 돌변해 일을 처리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의 일을 처리해 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때 누구의 돈을 쓰겠느냐? 하나님 집의 돈을 쓴다. 하나님 집의 돈을 아낌없이 쓰는 게 그의 특기이다. 그 자신이 이득을 얻는데 어찌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동시에 사실은 자기 자신을 위해 일을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혜택을 주려는 그런 선의를 품고 있을 리 없다! 만약 정말로 다른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려는 것이라면 사심이 없어야 하고 하나님 집의 원칙대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늘 자신을 위해 이익을 챙길 뿐,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은 고려하지 않는다. 그가 사람들을 위해 일을 처리하는 또 다른 이유는 모두가 그를 우러러보며 “이 사람은 우리에게 혜택을 줘요. 있는 힘을 다해 우리의 이익을 지켜 준다고요. 부족한 게 있으면 그에게 해 달라고 부탁하면 돼요. 그가 있으면 우리는 그 어떤 억울한 일도 당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고 그에게 감사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명예도 얻고 이익도 얻는데, 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느냐?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었지만 아무도 그가 한 일인지 모르고 다들 하나님에게 감사할 뿐 어느 누구도 결코 그에게 고마워하거나 감격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가 그 일을 처리하겠느냐? 그는 분명 그렇게 할 생각이 없고 본색을 드러낼 것이다. 이 부류는 어떤 일을 하든 본성 본질이 남김없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가 교회를 교란할 때 그들은 하나님 선민을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인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
방금 우리는 하나님 선민이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통제되고 해를 당한 뒤에도 거짓 리더가 여전히 나 몰라라 하고 하나님 선민을 되찾는 방법은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자신의 의무와 책임도 다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느낌과 기분, 이익만 고려하는 것에 대해 교제했다. 그는 책임을 다하거나 짊어지는 게 아니라 미루고 회피한다. 심지어 하나님 선민이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통제되면, 그 사람들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자신의 책임을 전가하고는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이런 부류의 거짓 리더는 가장 가증스럽다. 우리가 다룬 거짓 리더의 몇 가지 모습은 무척 역겹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언급한 이 부류는 그야말로 인성이 없는 냉혈한이자 사람 탈을 쓴 짐승이니, 인간이 아닌 짐승으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왜 책임을 다하지 않겠느냐? 이 부류는 인성과 양심, 이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책임과 의무도, 사랑이나 인내심도, 동정심이나 형제자매를 보호하려는 생각도 없다. 그는 이런 것들을 갖추고 있지 않다. 인성에 이런 것들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인성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는 네 번째 부류의 거짓 리더가 보이는 모습이다.
거짓 리더의 직책 제13조에서 폭로하려는 거짓 리더의 네 가지 모습은 기본적으로 이런 것들이다. 물론 이 네 가지와 비슷한 다른 모습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네 가지만으로도 거짓 리더가 이 사역을 할 때 보이는 갖가지 모습과 그들의 인성 본질을 보여 줄 수 있다. 우리가 몇 항목으로 나누든 결국 거짓 리더의 두 가지 두드러진 모습은 이 네 항목에 해당된다. 즉, 하나는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거짓 리더의 가장 두드러진 두 가지 모습이다. 거짓 리더의 인성과 자질이 어떻든, 그가 진리를 어떻게 대하든 결국 이 두 가지 모습은 위의 네 항목을 통해 드러난다. 오늘 리더 일꾼의 직책 제13조에 대해 교제했다. 거짓 리더를 폭로하는 내용은 여기까지 교제하겠다.
부록 문답
질문이 더 있느냐? (하나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예배가 시작될 때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와 적그리스도의 차이가 무엇인지, 적그리스도 본질의 전형적인 특징이 무엇인지 물어보셨는데요. 그때 저희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고, 잠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간단한 글귀와 도리들밖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는 측면의 진리에 대해 교제하신 지도 벌써 1년이 넘었지만, 저희가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적습니다. 한 측면에서 보면 저희 스스로가 그 진리들에 공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고,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적그리스도를 많이 접해 본 적이 없다 보니 실제로 대조해 가며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 진리들에 별로 진입하지 못했고, 적그리스도에 대해서도 그다지 분별력이 없으며, 자신에게 있는 적그리스도의 성품의 표출을 대조해 보지 못한 것도 많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어느 측면의 진리든, 어느 정도 진실한 체험과 체득을 통해 참된 인식이 있어야 진리의 말씀을 마음에 새길 수 있다. 진리를 얻는 과정은 이런 것이다. 네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경험 속에서 느낀 것으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래서 오늘 적그리스도에 관한 주제를 교제할 때 나는 먼저 너희에게 그 내용을 복습하도록 했고, 너희는 몇 가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너희가 떠올릴 수 있는 부분 중 일부는 너희에게 이론에 불과하다. 물론, 적그리스도의 몇 가지 모습은 많이 혹은 적게 자신과 대조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모두 이렇게 체험해야 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설교를 들을 때 아무리 잘 이해한 것 같아도 그저 이론이나 도리적인 면에서 이해한 것일 뿐 진리를 인식한 것은 아니다. 그럼 언제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반드시 그런 일들을 체험해야만 어느 정도 실제로 인식할 수 있다. 실제적인 환경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늘도 적그리스도에 관한 주제를 교제하기 전에 한 번 복습하고 간단하게 힌트를 준 다음, 리더 일꾼의 직책이든 거짓 리더의 여러 모습이든 교제하는 것이다. 최소한 너무 추상적으로 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단지 그 이유이다. 그러나 적그리스도의 여러 모습에 대해서는 너희가 어느 정도 겪어 봐야 한다. “하나님께서 실제로 사람, 일, 사물을 어느 정도 마련해 주시지 않으면 저희가 어디 가서 겪어 보죠? 저희가 직접 찾아 나설 수는 없지 않나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따로 찾을 필요는 없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바로 적그리스도를 맞닥뜨렸을 때 최대한 하나님 말씀과 대조해 보는 것이다. 그의 외적인 표출과 주장, 행동 방식과 성품, 그리고 그의 사상 관점, 나아가 처신 방식과 생활 방식 등을 앞서 다룬 적그리스도의 열다섯 가지 모습과 대조해 볼 수 있는 만큼 대조해 보아라. 사람이 이해하는 바는 이 정도며, 기억력에 의존해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사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진정으로 직접 체득해 낸 것들에 대해서는 완전하게 말할 수 있는데, 얼마나 많이 말하든 기억이 아닌 경험과 경력, 체험에 의존한다. 그 부분이 가장 진리에 가깝고 사실의 실상에 가까운데, 그것은 네가 직접 체험해 낸 것이다. 이 밖에,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부합하거나 지식에 해당하는 것들은 마음속에 고정관념으로 몇 년을 자리잡고 있든 진리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진리를 깨달을 때, 그런 것들은 도태되고 버려진다. 그러나 진리에 가깝거나 진리에 부합하는 것들은 네가 직접 체험해 낸 것이기 때문에 그것들이야말로 가치가 있다. 오늘 제기한 문제들을 너희가 분명히 이해했든 이해하지 못했든, 적그리스도를 분별하는 주제에서는 분명 너희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너희 모두 적그리스도의 미혹과 교란을 어느 정도 겪어 봤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느 정도 분별력을 갖추었을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악을 행하고 교회 사역을 교란하는 일을 맞닥뜨렸을 때, 그 진리들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런 말들은 환경이 닥쳤을 때만 효과를 발휘하며, 적그리스도의 미혹을 겪어 보지 않고 단지 머리로만 적그리스도의 일부 행동 방식을 상상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아무리 상상력이 좋다 한들 분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환경을 마주했을 때 비로소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자신의 사상 관점, 자신이 과거에 접했던 이론들, 예전에 알던 몇몇 도리나 방법으로 그런 일들을 직면하고 처리하며, 최종적으로 다양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았을 때는 여러 이론을 순수하고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에 대한 인상을 가지고 있기만 해도 괜찮다. 혹자는 “그럼 적그리스도를 맞닥뜨리기 전에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시는 게 무슨 소용이 있죠?”라고 말하는데, 소용이 있다.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는 말씀들이 책으로 발간되지 않았느냐? 그런 말씀들을 하루 이틀 만에 다 체험하고 밝히 알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 책으로 발간하는 목적은 너희를 구원하는 데 있다. 즉, 너희가 그런 말씀을 자주 읽고 진리를 깨달아 나중에 다양한 일을 맞닥뜨렸을 때, 적그리스도에 관한 사건이든, 자신의 성품 변화에 관한 고충이든 하나님 말씀을 읽고 생명을 공급받도록 하는 것이다. 이 책에 담긴 하나님 말씀은 바로 네가 그런 일들을 체험하고 처리하며, 그런 측면의 진리에 진입하는 원천이다. 사람이 설교를 들을 때의 이해 정도는 실제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를 뜻하지 않는다. 당시에 이해하지 못하거나 기억하지 못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영원히 체험하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너희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체험해 낸 것과 인식한 것이야말로 진리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이 기억하는 것이나 머릿속으로 이해하는 것은 대부분 진리와 무관한 도리적인 것들에 불과하다. 진리는 무엇에 중점을 두느냐? 체험과 진입에 중점을 둔다. 어느 측면의 진리이든 사람이 실제로 경험하고 체험하면 결국 진리가 맺은 열매를 수확할 수 있고, 생존의 길을 얻을 수 있다. 그러니 기억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만약 내가 예배를 시작하자마자 본론으로 들어간다면 너희는 미처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래서 나는 질문하는 방식을 택한다. 너희에게 먼저 적그리스도 본질을 가진 자와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의 차이가 무엇인지 기억나느냐고 묻는 것이다. 먼저 이렇게 질문하는 목적은 너희를 당황하게 하거나 너희의 단점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너희에게 힌트를 준 다음 돌이켜 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저번에는 적그리스도가 진리를 어떻게 대하는지, 적그리스도의 인성이 어떤지 교제했었지.’라며 조금씩 떠올린다. 일부 내용은 이미 기억에 깊이 새겨졌을 것이다. 그런 내용은 네가 그런 일을 겪을 때 활용해야 하고, 실행의 지침과 방향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당시에 듣기는 했어도 네게 아무런 인상도 남지 않은 내용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런 것들도 체험해야 하는데, 네가 체험할 때 그런 말씀을 다시 먹고 마시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는다면 수확이 더 클 것이다. 인상이 남았든 그렇지 않든, 그런 일들을 체험하고 나면 모든 내용이 하나로 합쳐질 것이다. 그럼 당시에 기억한 도리들은 체험을 통해 실제 인식으로 변하고 네 수확이 된다. 당시에 아무 인상도 남지 않았던 것들은 한 번 체험한 후 인상을 조금 남길 수 있겠지만 그것은 감성적인 인식에 불과하다. 그 감성적인 인식은 도리의 수준에 머물 뿐이지만, 네가 다음에 다시 비슷한 일을 겪을 때 너를 지도해 주고 방향을 제시해 주고 실행의 길을 줄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고 진리를 체험하는 것은 바로 이런 과정이다. 내 질문을 들을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른다면 그게 창피한 일이냐? 창피한 일이 아니다. 너희가 갑자기 내게 어떤 질문을 하면 나도 그 질문이 무슨 뜻인지, 어느 측면의 진리에 관한 것인지 그 자리에서 고민해 봐야 한다. 이렇게 사람의 머리와 생각은 반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무리 익숙한 것일지라도 오랫동안 접하지 않다가 갑자기 접하면 반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깊이 있게 체험한 것이라도 며칠이나 몇 년 만에 다시 접하면 반응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하물며 적그리스도의 주제에 대해 너희는 글귀와 도리를 이해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 현실 체험 속 적그리스도와 대조할 줄 모른다. 즉, 기본적으로 적그리스도를 분별할 줄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너희는 그 진리들을 실제적으로 체험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한 이런 말씀의 진실성과 정확성에 확증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예전에 적그리스도 부류는 죽어도 회개하지 않는다고 교제한 바 있다. 네가 그 말을 기억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적그리스도 부류가 죽어도 회개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께 끝까지 대항하려 하며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아요.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 말씀이 진리임을 인정하지 않죠. 그는 진리를 싫어합니다.” 너는 이 말을 그저 도리적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이거나 이 말에 대한 인상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 정도의 감성적 인식만 있는 것이다. 너는 무의식적으로 이 말이 옳다고 느낀다. 하지만 적그리스도가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하는지, 어떤 패괴 성품을 표출하는지, 어떤 본성에 지배받는지 등을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는 하나님 말씀과 대조하고 맞춰 볼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폭로한 내용이 사실임을 설명할 수 있겠느냐? 그러려면 네가 적그리스도 본인을 직접 보거나 혹은 그를 관찰한 사람이 적그리스도의 언행에 대해 네게 얘기해 줘야 한다. 그러면 결국 너는 깨닫는다. ‘하나님 말씀은 정말 실제적이고 한 치의 오차도 없구나. 저 사람은 몇 번이나 적그리스도로 규정되어 교체됐어. 지금은 출교되거나 제명되지 않았지만 그의 모습과 표출로 보면 그는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죽어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야. 적그리스도 성품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도 가지고 있다고. 그야말로 영락없는 적그리스도야!’ 어느 날 그가 출교되면 너는 속으로 확신한다. ‘하나님 말씀은 너무도 정확하구나!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사람은 변화할 수 있지만 적그리스도 본질을 가진 사람은 변화할 수 없어.’ 그렇게 이 말이 네 마음속에 뿌리내린다. 단지 기억해서 어렴풋한 인상을 가지게 되거나 감성적으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변화할 수 없어. 그는 하나님에게 끝까지 대항하려 한다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시지 않고 그런 사람에게 사역하지 않으시는 거였어. 어쩐지, 그는 본분을 이행해도 좀처럼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지 못하고 전혀 진보하지도 않는 데다가 자기 고집만 내세우려고 하더라. 그야말로 적그리스도가 틀림없어!’ 하나님 말씀의 정확성에 확증을 얻으면 너는 속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정말이지 진리가 분명해. 이 말은 옳다고. 아멘!’ 아멘을 외칠 수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나님 말씀이 모든 사물을 판단하는 준칙이자 진리이며, 이 시대와 이 인류가 사라져도 하나님 말씀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인식했다는 뜻이다. 왜 사라지지 않겠느냐?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적그리스도의 본질은 영영 변하지 않고, 적그리스도의 본질을 폭로한 하나님 말씀도 영원히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대가 끝나고 패괴된 인류가 사라진다 해도 하나님의 이런 말씀은 영원히 사실의 진상이며,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이다! 하나님 말씀이 네가 보고 접하는 사실에 부합하고 들어맞는다고 느껴지고 마음속으로 확증을 얻었다면, 단순히 하나님 말씀이 분명히 옳고 틀리지 않다고 느낄 뿐만 아니라 이미 보았고 직접 경험하고 체득했다면, 너는 하나님의 말씀에 분명 아멘이라고 외칠 것이다. 그때 내가 다시 “적그리스도 본질을 가진 자는 어떤 모습을 보이겠느냐?”라고 물으면 네 마음속의 인식이 곧장 튀어나올 것이다. 그것은 인상도 아니고 기억한 말도 아니고 뭔가 의식하거나 감성적으로 인식한 것도 아니다. 너는 곧바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결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죽어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논리성이 좀 떨어져서 갑자기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무슨 뜻인지 모를 것이다. 하지만 너는 그 의미를 안다. 적그리스도 부류는 그런 존재이고 영원히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을 체험해 봤고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런 말들은 다 체험하고 경험해야 한다. 경험하지 않으면 누구든지 수확을 얻을 수 없다.
2021년10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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