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일꾼의 직책(17) 제 3 부
(4) 복받으려는 욕망이 좌절되었을 때 소극성을 퍼뜨린다
소극성을 퍼뜨리는 것에는 또 다른 측면의 모습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하나님을 이렇게 오래 믿었는데 제가 얻은 게 뭐죠?” 이런 부류가 소극성을 퍼뜨릴 때 주로 하는 말이 바로 “제가 얻은 게 뭐죠?”이다. 자신이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 집이나 하나님에게서 이득을 얻거나 축복을 받으려면 특히나 힘들다고, 사람이 지극히 큰 사랑을 바치고 엄청난 인내심을 가져야지 조급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폭로하고 책망하고 연단하며 사람의 패괴를 정결케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그는 모두 표면적이고 틀에 박힌 말이니 절대 믿어선 안 된다고, 만약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면 크게 손해를 본다고, 언제든 이익이나 이득을 얻어 이상과 염원을 실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저 악을 행하지만 않으면 되고 교회에서 도태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다수 사람은 이런 소극적인 말을 듣고 나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마음속으로부터 영합하거나 찬성하겠느냐, 아니면 약간 경멸스러워하며 그가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사악하고 더럽다고 생각하여 그를 분별하고 폭로하고 제재하며 그가 계속해서 소극성이나 죽음을 퍼뜨리지 못하게 하겠느냐? 대다수 사람은 이런 소극적인 말에 반감을 갖거나 그것을 정죄하겠느냐, 아니면 그것에 미혹되어 소극적으로 변하겠느냐?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는 자신의 두 손이 텅 빈 것을 보고 ‘그렇긴 해. 나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잖아. 하나님 집에서는 하루에 세 끼를 먹고 바쁘게 돌아다녔을 뿐 정말이지 다른 건 얻은 게 없어.’라고 생각한다. 너희도 이렇게 생각하느냐? 공감하느냐?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얻은 게 없다니요?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얻은 게 너무나 많아요! 진리는 또 얼마나 많이 깨달았는데요!” 그러나 이렇게 반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얻은 게 아주 많다는 말은 그다지 실제적이지 않은 것 같네요. 은혜를 좀 얻고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좀 얻고 사람됨의 도리를 좀 깨달았을 뿐이죠. 다양한 지역에서 온 형제자매를 많이 접하고 알게 돼서 식견이 많이 넓어진 것도 얻은 거라고 할 수는 있겠네요.” 너희는 어떤 경우이냐? 어떤 경우도 다 있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 일은 두 가지 측면에서 다뤄야 한다. 우선, 하나님을 믿으면서 늘 은혜를 얻으려는 이런 부류는 어찌 된 것인지 말해 보자. 그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진리를 얻는 것을 추구해 구원받으려는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복을 받으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그에게 준 은혜와 보호, 은총, 깨우침과 빛 비춤이 적으냐?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모두 하나님에게 보호받는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에게 보호받는 일은 구체적이지 않으냐? 사실이 있지 않으냐? 사람은 어떤 보호를 받았느냐? (비교적 분명한 것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나면 세상의 사악한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아 타락하지도, 그런 사악한 것들을 추구하지도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클럽에 가거나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등, 최소한 이런 것들에 물들지는 않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꽤 보호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꽤 실재적인 측면이라서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고 몸소 느낄 수 있다. 세상의 사악한 흐름에 영향받거나 미혹되지 않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 정상 인성 안에 살면서 사람다운 모습을 보이는 것, 이것이 보호받는 한 측면의 실제 사례이자 실증이다. 또 있느냐? (악령에게 교란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보호 아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도 한 측면의 실제 사례다. 대다수 사람이 그렇게 느끼지 않겠느냐? 너희는 그 안에 담긴 뜻을 깨달을 수 있겠느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방인도 악령에게 교란당하지 않잖아요. 이방인 중 악령에게 교란당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요?” 이 말이 옳겠느냐? 너희는 이 말이 사실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느냐? (제 동창 중에 악령에게 교란당한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가위에 눌린 동창도 있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동창도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지도 못합니다. 여기저기 다니며 치료를 받아도 낫지 않고, 두려움과 공포 속에 살며 고통스러워합니다. 하지만 저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믿어서 그런 교란을 당한 적도, 그런 고통을 겪은 적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마음이 비교적 안정되고 평안합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런 걱정이 없다. 히스테리에 걸리거나 악령에게 교란당하고 악령이 들릴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 또 한 가지 측면은 현실 생활 속에서 이방인은 온종일 관상이나 풍수를 보고 점을 친다는 것이다. 심지어 서양에서는 별자리를 보거나 유명한 보살, 악령, 우상을 숭배하기도 한다. 숭배하지 않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숭배하든 하지 않든 다 어느 정도 그 영향과 제한을 받는다. 예를 들어, 외출할 때 점을 한번 쳐서 어느 방향으로 가면 길하고 어느 방향으로 가면 불길한지 알아본다. 가게를 열 때 계산대를 어느 위치에 설치하면 돈을 잘 벌고, 어느 위치에 설치하면 돈을 못 버는지, 가게 안에 어떤 물건을 두고 어떤 우상을 숭배해야 재물이 들어오는지, 어떤 물건을 어디에 놓아야 풍수적으로 해롭지 않은지 알아본다. 또 이사할 때는 몇 시에 해야 길하고 나중에 집안이 번창하며 사고가 안 나는지, 몇 시에 이사하면 불길한지 알아본다. 심지어 학생이 진학 시험을 볼 때도 이런 영향을 받아서 시험 당일에 하는 말에는 ‘낙방’이라는 뜻이 담겨 있으면 안 되고, ‘승진’, ‘합격’ 같은 말만 해야 한다. 한 가정에서는 아이의 진학에서부터 부모의 살림살이, 돈벌이, 이사, 구직, 그리고 자식의 결혼 등 생활의 다양한 방면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위 풍수나 운세와 같은 여러 측면의 영향을 받는다. 그럼 이런 영향을 받는 것은 어떤 제한을 받는 것이냐? 악령의 제한을 받는 것이다. 이런 것은 모두 악령이 통제한다. 그럼 왜 사람은 이런 것을 숭배하려 하겠느냐? 왜 이런 것들에 영향받겠느냐? 왜 이사라는 간단한 일에서도 사람은 늘 언제 이사하면 길하고 언제 이사하면 불길한지, 무엇을 먼저 옮겨야 길하고 무엇을 옮기지 말아야 길한지 궁리하겠느냐? 왜 늘 이런 것을 고려하겠느냐?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려하지 않으면 악령이 손을 써서 괴롭히고 못살게 굴기 때문이다. 이런 일에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모든 인류가 악한 자의 수하에 살고 있다. 악한 자는 누구를 가리키겠느냐? 큰 것은 사탄과 마귀를 가리키고 작은 것은 각 지역의 악령, 각 인종을 통제하는 악령이다. 사람 생활의 모든 측면이 이런 악령의 제한이나 통제를 받는다. 심지어 집을 지으며 마룻대를 올릴 때도 붉은 천을 걸거나 폭죽을 터뜨려 행운을 빌고, 큰돈을 벌고 뜻밖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건설 노동자들은 빨간 옷을 입는다. 이런 일들에도 다 의미와 이치가 담겨 있고 게다가 금기도 있어서, 그런 이치를 조심하거나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자주 순탄치 못한 일을 겪는데, 실직하고 부인도 도망가고 집안은 거덜 난 데다가 집 때문에 받은 대출도 갚지 못하는 등 잘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다. 그는 딱히 나쁜 일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닥쳤겠느냐? 어쩔 수 없이 거짓 신이나 악령을 숭배하러 가거나 서둘러 사람을 찾아 풍수를 보면서 운수가 트이길 바란다. 그 뒤로 그의 일은 조금씩 순탄해진다. 그는 예전에는 그런 것들을 믿지 않았지만 이제는 일이 생기면 정성을 다해 숭배하고, 무슨 일을 하든 먼저 점괘를 보거나 점을 친다. 너희 생각에 사람이 이렇게 살아가면 피곤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사는 게 피곤하다!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고, 이런 말이나 규칙에 제한받고 싶지 않아도 그럴 수 없다. 그가 이런 규칙을 어기면 악령이 바로 손을 써서 그를 교란하고, 그는 악령에게 강제로 제압당해 매일같이 악령을 숭배해야만 순탄히 살아갈 수 있다. 반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런 봉건적인 미신이나 악령 역사에 제한받지 않고, 이사하고 싶을 때 이사하고 가고 싶을 때 간다. 금기랄 게 없다. 중국 본토에서는 중국 공산당이 늘 종교 신앙을 탄압하고 박해해서 한곳에서 살 수 없게 되면 서둘러 이사하니, 날짜나 시간을 따지거나 무엇을 숭배할 필요가 있겠느냐? 그럴 필요 없다. 하나님에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지켜 준다. 모든 것이 하나님 손에 달려 있으니 그런 것들에 제한받을 필요가 없다. 언제 무엇을 먹고 싶거나 외출을 하고 싶을 때 날짜를 따지거나 어떤 금기를 범하는지 살필 필요가 있겠느냐? 그럴 필요 없다. 하나님에게 기도해라. 모든 것은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권세와 주재 아래 살면 하나님이 지켜 주고 인도하며, 크고 작은 악령과 더러운 귀신은 모두 비켜선다. 그것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감히 손을 쓰지 못하니 사람은 보호받는 것 아니겠느냐? 편안하고 자유롭게 살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 은혜가 크지 않으냐? (큽니다.) 네가 지금 진리를 얻든 얻지 못했든,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기만 하면 너는 하나님이 예정하고 택한 사람이다. 네가 하나님 앞에 오면 하나님은 이렇게 너를 지켜 주고 네게 이런 은혜를 누리게 했으니 이 얼마나 큰 은혜냐! 네 신변이나 모든 행적은 다 안전을 보장받고 하나님이 모두 책임지고 보호해 주니 너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아예 기도도 하지 않고 “아무 일 없이 평안할 수 있게 지켜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리자.”라고 말할 의식도 없다. 네가 기도할 필요도 없이 마음속에 ‘나는 하나님을 믿어. 모든 건 하나님 손에 달려 있어.’라는 간단한 신념만 있으면 하나님은 행한다. 사람이 이렇게 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데도 얻은 게 적으냐?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유일무이한 주재자이다. 너 자신과 가족의 목숨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모두 이 주재자의 손에 달려 있으니 네 마음이 평안하고 안정되며 차분한 것이다. 너는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네가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인식하고 진리를 얼마나 깨달았든, 이는 네가 마음속에서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점이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있고 진리를 깨닫는다면 악령은 감히 교란하지도, 망치지도, 접근하지도 못한다. 따라서 그런 불필요한 과정은 피하게 된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데, 너는 어째서 하나님을 믿어서 아무것도 얻은 게 없다고 하느냐? 그건 양심이 없는 것 아니냐? 다른 것은 차치하고 이 점만으로도 사람이 아무것도 얻은 게 없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이 너무도 비양심적이라는 것, 양심이 완전히 썩어 빠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대가 없이 진리 생명을 베풀어 주고 무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한다. 비록 사람은 지금 자신의 분량이 작으며 진리를 별로 많이 깨닫지도 못했고 깨달은 것조차 명확히 말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이런 것들, 하나님의 이런 마음과 사랑만 해도 사람에게는 얼마나 큰 은혜냐! 하나님은 가장 소중한 것을 사람에게 주었고,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것을 얻었다. 네가 몸소 느꼈든 느끼지 못했든, 하나님은 이미 이런 것을 사람에게 주었으니, 사람이 더 할 말이 뭐가 있겠느냐? 사람이 얻을 자격이나 있느냐? 하나님이 택한 이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하나님에게 선택되고 택함 받았으니 너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운 좋은 사람인데도 어째서 자신이 얻은 게 없다고 말하느냐? 네가 가장 행복하고 운 좋은 사람이 된 것은 하나님이 너를 선택하고 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령과 더러운 귀신도 감히 네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제 가치나 신분이 존귀하다는 뜻이 아닐까요?”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이는 모두 하나님의 사랑과 행사로 인한 것이다. 사람은 얻은 게 너무도 많다! 이번 생에 사람은 이렇게나 많이 얻었는데, 사람 스스로 이런 것을 받을 자격이 어디 있겠느냐? 하나님을 믿는 일부 사람들이 진리는 전혀 추구하지 않으면서 늘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어서 제가 얻은 게 뭐죠?”라고 한다. 너는 스스로 셀 줄을 모르느냐? 진리를 깨달았는지 아닌지, 악을 얼마나 덜 행했는지는 너 스스로가 마음속으로 알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은혜를 누렸는지는 더더욱 잘 알 것이다. 마음속으로 이런 것에 대해 확실히 안다면 너는 그런 비양심적인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집에서는 제게 먹을 것과 입을 것, 살 곳도 제공해 줬어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에 비하면 훨씬 보잘것없지 않으냐? 언급할 가치조차 없지 않으냐? 그러나 양심적인 사람은 그것이 언급할 가치는 없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셀 수 없이 많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것은 너무도 많다! 물질적인 것들에 관해,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사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따지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을 보호하려 할 뿐 아니라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 구원받을 수 있게 하려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이런 마음과 사랑을 누렸으며,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푼 은혜는 몹시도 많다! 이외에도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바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진리로, 인류 역사상 그 어느 시대의 사람도 들어 보거나 얻어 본 적 없는 이런 말씀들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몇 번 창조했든 하나님은 이런 사역을 한 적도 없고, 이런 말씀을 한 적도 없다. 인류의 모든 비밀과 사람이 감당할 수 있고 이를 수 있는 것, 사람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을 하나님은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다. 이런 비밀이나 진리를 양적으로 가늠할 수 있겠느냐? 가늠할 수 없다. 사람은 몇 번의 생애 동안에도 다 누릴 수 없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런 말씀은 사람이 의지해 생존하는 근간이고 영원히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네가 정말 운 좋게도 살아남아 영원히 살 수 있다면 하나님의 이런 말씀이나 이런 진리는 영원히 너에게 공급할 수 있다. 영원이란 무슨 뜻이겠느냐? 시간제한이 없고 무한하다는 뜻이다. 문자 그대로 이해하자면 끝이 없고 하나님처럼 영원히 생존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이런 말씀이나 이런 진리는 그때까지 존재할 수 있다. ‘그때’라는 것은 사람의 언어로 표현한 일종의 시간적 개념이나 정의이지만, 사실상 무기한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하나님의 이런 말씀은 가치가 크지 않겠느냐? 몹시도 크다!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건 네 손실이고 네가 어리석은 것이다. 추구한다면 네게 이런 말씀의 가치는 이 한평생에 그치지 않고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이런 말씀은 네게 영원히 효과가 있고 영원히 유용할 것이며, 영원히 가치와 의미가 있을 것이고, 영원히 너에게 공급해 줄 것이다. 이런 말씀을 깨닫고 얻으며 이런 말씀에 따라 살아간다면 너는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이다. 쉬운 말로 하면 불로장생하여 죽음을 맛볼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자나 깨나 바라는 바가 아니더냐? 시대가 얼마나 흐르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나든 너는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다. 너는 무엇을 통해 살아 있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통해 너는 그렇게 계속 살아 있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계속 살아 있으면서 무엇을 하겠느냐? 하나님의 부탁과 인도가 있고, 또한 네 사명도 있을 것이다. 네 사명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은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냄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증거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게 바로 하나님 말씀의 가치다. 사람이 이 시대에 듣고 접하고 체험한 이런 진리나 말씀의 가치와 의미는 영원히 존재한다. 왜 영원히 존재하겠느냐? 하나님의 이런 말씀은 일종의 신학이나 이론, 구호나 지식이 아니라 생명의 말씀이다. 네가 이런 말씀을 얻고 이런 말씀에 따라 살아가거나 생존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네가 죽지 않고 계속 살아가도록 허락할 것이다. 즉, 하나님은 너를 멸하거나 네 목숨을 앗아가지 않고 너를 계속 살아가게 할 것이다. 이는 큰 복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통해 네가 이번 생에 이런 복을 미리 맛보고 다음 생에 이런 복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토록 큰 약속을 주는 것으로 보아 사람은 많은 것을 얻는 게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토록 큰 약속을 주고 모든 이에게 공표하고 네게 알려 주어 네가 아무 대가 없이 취하도록 한다. 너는 자신의 목숨을 희생할 필요도, 모든 재산을 내놓을 필요도 없고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요구와 뜻대로 행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이런 약속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는 게 많지 않으냐? 너는 지금 이 약속을 얻는 과정에 있다. 비록 완전히 얻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네가 얻은 게 적으냐?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는 이 약속으로 보아 사람이 얻은 것은 아주 많다. 사람은 큰 이득을 얻었지 손해를 보지도 않았고, 아무 손실도 없다. 사람은 그저 시간이라는 대가를 좀 치렀고 육적으로 고생을 좀 했을 수도 있으며 개인적인 가정의 즐거움과 개인의 육적인 기호나 욕망을 희생하고 자신의 이상과 지향, 염원 등을 일부 포기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이 진리를 깨달아 구원받고 하나님의 약속을 얻는 것에 비해 개인의 그런 앞길이나 목표, 이상은 다 언급할 가치도 없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너를 지옥으로 데려갈 뿐이고, 하나님이 그런 것들로 인해 네게 약속을 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사람이 유한한 시간을 좀 쏟고 자신이 원하거나 이를 수 있는 대가를 좀 치르면 결국 진리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이 창세한 이래 모든 인류가 깨닫지 못한 일부 비밀과 처신 원칙, 그리고 만사 만물의 본질과 근원 등을 깨닫게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것을 얻게 되는데, 그런 대가를 치르는 것이 가치가 있지 않겠느냐? 사람이 억울할 게 뭐가 있느냐? 왜 하나님을 믿었지만 아무것도 얻은 게 없다고 말하는 것이냐? 이는 양심이 완전히 썩어 빠진 것 아니겠느냐? 너는 이토록 많이 얻고도 만족할 줄을 모르니 무엇을 더 얻으려는 것이냐? 대통령이나 억만장자가 되면 만족하겠느냐? 하나님이 만약 네게 그런 것들을 준다면 너는 하나님에게 속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 얻으려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늘 하나님을 믿었지만 아무것도 얻은 게 없다고 말하는데 그게 바로 비양심적이고 진리에 대한 이해 능력이 전혀 없으며 진리를 추구하지도 않고 인격이 몹시 저속한 것이다. 이런 부류는 하나님이 행한 것과 사람에게 요구한 것,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것 등을 조금도 순수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조금만 뜻대로 되지 않아도 잔뜩 참았던 울분을 한순간에 터뜨린다. “제가 하나님을 믿고 나서 얻은 게 뭐죠? 저는 육적으로 고생을 아주 많이 했어요. 교회에서 제게 안배한 본분도 다 이행했다고요.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불평한 적 없고, 아무리 큰 어려움이 닥쳐도 별말 안 했어요. 하나님 집에 그 어떤 요구도 한 적 없고요. 이렇게 큰 사랑과 충성심을 바쳤는데 제가 얻은 게 뭐죠? 만약 제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은 더더욱 얻을 수 없을 거예요!” 이 말은즉슨 이런 뜻이다. “당신들은 저만큼 많이 바치지도, 대가를 많이 치르지도 않았잖아요. 저도 얻지 못했는데 당신들이 뭘 얻을 수 있겠어요? 다들 조심해요. 바보같이 굴지 말라고요!” 이는 양심이 없는 것 아니겠느냐? 비양심적인 사람은 늘 우매하고 완고한 말을 한다. 하나님이 말씀하는 수많은 진리와 순수하고 긍정적인 사물과 가르침을 그는 한마디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관점만 한사코 고집한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고생하며 대가를 치르니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해 주셔야 하고 내가 남보다 더 많이 얻게 해 주셔야 해. 그러지 않으면 나는 화풀이하고 폭발할 거야. 욕도 할 거라고! 하나님께서는 내가 원하는 걸 베풀어 주셔야 해. 내가 얻지 못한다면 그건 하나님께서 공의롭지 못하신 거야.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말하고야 말겠어. 이건 사실대로 말하는 거야!’ 이는 인성이 없는 것 아니겠느냐? 인성이 없는 사람이 하는 말은 분명 타당할 리도 없고 더욱이 진리에 부합할 리도 없다. 그건 그에게 살짝 무리한 요구다. 네가 하는 말은 모두 정당한 요구나 정당한 주장이어야지 억지 논리여서는 안 되고, 누구에게 들려주고 누구에게 시비를 가리게 하든 다 타당해야 한다. 그러나 인성이 나쁜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은 타당하지 않다. 그가 떼를 쓰며 뒹굴고 분노를 표출할 때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왜 저 사람은 자신이 아무것도 얻은 게 없다고 할까? 하나님 집에서 그에게 잘못한 부분이 있나? 하나님 집에서 하는 일 중에도 원칙에 부합하지 않거나 떳떳하지 못한 일이 있는 게 아닐까? 저 사람은 평소에 꽤나 고생하며 대가도 치를 줄 아는 사람처럼 보였는데 오늘 저렇게 크게 화를 내면서 아무것도 얻은 게 없다고 말하는 걸 보면 정말로 아무것도 얻은 게 없나 봐. 착실한 사람을 화나게 한 거 아니야? 그럼 나도 조심해야겠다. 본분을 이행할 때 예전처럼 그렇게 고생하며 대가를 치르면 안 되겠어!’ 분별력 없는 일부 바보는 이렇게 영향을 받는다.
자주 소극성을 퍼뜨리는 사람이 정말로 관점이나 생각을 말하고 싶어 한다면 우선 그가 말하게, 관점을 드러내게 해라. 다 드러내고 나면 사람들은 알게 될 것이다. “저 사람은 자신이 치른 대가가 자신이 얻은 것과 비례하지 않고 자신이 이득을 얻기는커녕 손해를 봤다고 생각해서 언짢은 거예요. 저건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과 흥정하는 거죠. 은혜와 이득을 바라는 거라고요!” 보통 사람은 이 말을 듣고 나면 그를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지 않겠느냐? 다들 분별력이 생기면 그에게 이렇게 말해라. “할 말 다 했나요?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면 잠자코 있어요. 계속 말하다간 망신당할 거예요. 당신의 사악한 본성이 사람들 앞에 드러났을 때 곧장 억누르지 않으면 사람들을 분노하게 할 거예요. 사람들이 당신을 폭로하고 버리게 되면 후회해도 늦는다고요.” 이런 방식으로 그에게 경고하면 그를 제재할 수 있게 된다. 혹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손해 보는 것 같으면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돼요. 당신은 아무것도 얻은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럼 대체 뭘 얻고 싶은 거죠? 만약 집안을 일으켜 부유하게 하고 부호가 되거나 고위직에 오르고 싶은 거라면 미안하지만 그것은 사람이 원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이는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일이에요. 하나님께서 나타나 사역하시며 사람을 구원하시는 건 사람에게 그런 것들을 주시는 게 아니에요. 그런 것들을 주는 곳으로 가세요. 하나님 집은 세상이 아니니 마귀 사탄을 만족시킬 수는 없어요. 하나님 집이나 형제자매에게는 요구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감히 하나님께 그런 것들을 요구한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서 하나님의 노를 일으키게 될 거예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베푸신 은혜는 너무도 많고, 생명이 되도록 베푸신 진리는 더더욱 많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진리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건 당신이 무지몽매해서 그런 거예요.” 다들 이렇게 그를 꾸짖고 책망한다면, 이렇게 실행한다면 어떻겠느냐? 혹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하나님 집에서는 당신에게 빚진 게 없어요. 당신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본분을 이행한 건 다 자원한 거죠.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한 후로 당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많이 누렸는지 알긴 하나요? 당신에게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하나님께 자신이 얻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해서는 안 돼요. 당신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문제를 인식해야 해요. 당신이 정말로 하나님이 진리라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것이 진리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진리라고 믿는다면 그런 말을 해서도, 불평을 늘어놓아서도 안 돼요. 지금 당신의 태도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도,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도 아니에요. 당신은 반란을 일으키고 하나님께 과거의 일을 따지려는 거예요!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오고 하나님과 마지막으로 계산을 하려는 거라고요! 하나님은 물론이고 하나님 집도 당신에게 빚진 게 없어요. 하나님 집과 계산을 하려거든 서둘러 하나님 집을 떠나세요. 절대 하나님 집을 성가시게 하지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노하셔서 당신을 치실 거예요. 그건 별로 좋은 결과가 아니죠.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양심과 이성이 있다면 진정하여 기도하고 구하며 자신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추구하는 관점에 어떤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자신이 하나님께서 걸으라고 요구하신 길을 걷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해요. 하나님께 무리한 요구를 그렇게나 많이 하고 그토록 큰 분노를 품는다면 그건 당신의 추구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당신이 이토록 깊은 원한을 쌓은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고 아주 오래됐어요. 당신이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릇된 관점을 품은 채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수도 있죠.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든 당신은 지각하지 못해서 전혀 통회하지도, 죄책감을 느끼지도 못하다 보니 오늘 같은 상황이 초래된 거예요. 어서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세요. 지금 회개해도 늦지 않아요. 회개하지 않고 계속 악을 행하며 소극성을 퍼뜨린다면 당신은 마귀나 적그리스도가 될 거예요. 하나님 집에서 당신을 제명하면 앞으로 다시는 구원받을 기회가 없을 거라고요. 하나님 집에서 정죄한 사람은 하나님께서도 정죄하시거든요. 저희는 당신이 하나님을 이토록 오랫동안 믿으며 고생하고 대가를 치를 줄도 아는 걸 봐서 이렇게 경고하고 기회를 한 번 주는 거예요. 당신이 자기 고집만 내세우며 충고를 듣지 않아서 하나님 집에서 당신을 제명하기로 결정한다면 당신은 더 이상 형제자매가 아니게 되죠. 그럼 당신이 구원받을 희망은 아예 사라져요. 그때가 되면 정말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될 텐데 후회하지 마세요. 지금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사상 관점과 추구 방향을 바로잡는 거예요. 늘 무언가를 얻으려고 더 이상 추구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보고 하나님께서 사람의 패괴 성품을 폭로하실 때 당신이 얼마나 반성하고 인식할 수 있는지 살펴보세요. 대조할 수 있거나 확실히 알 수 있는 문제는 해결했나요?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패역을 인식했나요? 해결했나요? 당신이 지금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늘 하나님과 철저하게 계산하려는 거예요. 이게 무슨 문제일까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어요? 당신은 하나님을 믿을 때 늘 속셈이나 거래하는 마음을 품고 있고, 늘 복을 받으려 안달해요. 힘을 들이고 헌신하고 육적으로 고생하여 천국의 복을 얻으려고 하죠. 이는 강도의 논리가 아니겠어요? 당신은 어째서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지,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사람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하나님의 약속을 얻을 수 있는지 살펴보지 않죠? 당신이 정말로 하나님을 믿고 진심으로 구원받고 싶어 한다면 늘 하나님에게서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지 말고,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실행했는지,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사람인지 살펴봐야 해요.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건 하나님의 요구나 진리 원칙대로 실행하고 살아가는 것이지 단지 육적으로 좀 고생하고 대가를 좀 치르는 것에서 그치지 않아요. 당신의 패괴 성품은 해결되지 않았고, 당신이 치르는 대가나 겪는 고생에 다 목적이 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이를 칭찬하시지 않고 그런 대가를 원하시지 않아요. 기어코 하나님과 계산하고 하나님께 이치를 따지고 하나님과 겨루려 한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를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지옥에 가서 징벌받게 하실 거예요. 그건 악을 행한 응보죠. 당신은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많이 누렸고, 하나님께서는 물질적으로도 당신을 어느 정도 특별하게 대우해 주셨어요. 당신은 얻어야 할 걸 이미 얻었는데 하나님께 뭘 더 바라는 거죠?” 이런 말을 교제하면 어느 정도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은 듣고 나서 원망의 정서가 조금 줄어들지 않겠느냐? 이런 말들은 순수하고 올바르게 이해한 말이고 진리에 부합하는 말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사람이 만약 인성과 이성을 갖추고 있다면 알아들을 수 있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인성이 없고 양심과 이성을 상실한 사람만이 이런 말들이 자신을 속이는 형식적인 말이며 믿을 가치가 없다고, 눈에 보이는 은혜나 물질적인 축복만큼 실속 있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그가 그런 실속 있는 것들을 보기 전까지는 네가 뭐라고 말하든 소용없다. 그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앞에서는 반항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뒤에서는 속으로 여전히 반발하며 수시로 소극성을 퍼뜨리려 한다. 게다가 자신의 공로를 드러내려 하고 자신이 겪었던 고생을 세어 보기도 한다. 지금 하나님 집에서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 자신이 하나님 집을 어떻게 인내했는지, 그는 마음속으로 늘 이런 것들을 품고 있다. 어떤 일에 직면하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그는 야수의 본성을 드러내고 길길이 날뛰고 추태를 드러내며 소극성을 퍼뜨리려 한다. 그럼 이런 사람도 타일러야겠느냐? 간단하게 타이른 다음 그가 여전히 그 모양이고, 고질병이 도지거나 마귀의 본성이 또 격발하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이번에는 제재해야지 회개할 기회를 남겨 주어선 안 된다. 그는 쓸모없고 우매하고 완고한 작자이다. 우매하고 완고한 작자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겠느냐? 순수한 도나 긍정적인 사물은 받아들이지 않고 억지 논리나 그릇된 주장, 황당한 이론만 받아들인다. 그는 자신이 실리를 얻거나 덕을 보고 손해를 보지 않는 관점만 고집한다. 하나님 집에서 어떻게 진리를 교제하든 그는 “그런 말은 다 듣기 좋은 말이에요. 듣기 좋은 말은 누가 못 하겠어요? 당신도 손해를 보면 그런 말은 못 할 거예요.”라고 말한다. 그는 이런 관점을 고집한 채 내려놓지 않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닥치거나 어떤 손실을 입으면 자신은 하나님을 믿었는데 아무것도 얻은 게 없다고 생각하며 또 소극성을 퍼뜨리려 한다. 그래도 그에게 기회를 줘야겠느냐? 주면 안 된다. 그는 본분은 제대로 이행하지도 않으면서 남을 교란하려 하니 서둘러 저지하고 제재하여 그가 제멋대로 지껄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도 그가 계속 소극성을 퍼뜨리며 사람들을 교란하려 한다면 봐주지 말고 서둘러 그를 정리해서 내보내야 한다. 이게 사랑이 없는 건 아니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여러모로 자세하게 설명하며 진리를 교제했는데 아무리 교제해도 그가 귀담아듣지 않는다면 그건 무슨 뜻이겠느냐? 그 사람은 겉보기에는 불신파이지만 본질은 마귀이다. 그가 하나님 집에 온 것은 하나님에게서 은혜와 축복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는 이익을 얻으러 온 것이고, 이익을 얻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만약 한동안 믿었는데도 여전히 이익을 얻지 못하면 그의 사탄 성품이 폭발하게 되고, 그는 하나님에 대한 불만을 쏟아 내며 악을 행하고 교란하려 한다. 이게 바로 마귀이다. 그가 그깟 고생을 겪고 헌신하는 건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게 아니라 순전히 거래하기 위한 것이고 자신이 이익을 얻고 복을 받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늘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일이 닥쳐서 소극적이고 연약해지면 항상 “저는 하나님을 믿었지만 아무것도 얻은 게 없어요.”라고 말하며 자포자기하고 복수한다. 자주 소극성을 퍼뜨리고 자신의 불만스러운 정서를 쏟아 내기도 한다. 이런 부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이미 교제를 마쳤다. 즉, 원칙대로 처리해야 한다. 만약 그가 진리를 받아들이며 앞으로 다시는 교란하지 않겠다고 보증한다면 다시 기회를 주어 교회에 남게 해도 되지만, 그가 계속 교회 사역과 교회 생활을 교란하고 망치려 하면 그를 정리해 내보내야 한다. 이는 교회의 사역을 보호하고 하나님 선민이 교회 생활을 할 때 교란당하지 않도록 보장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원칙에 따라 내린 결정이고 채택한 방법이니 이는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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