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일꾼의 직책(16) 제 3 부

2) 관념을 퍼뜨리는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교회에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불만을 퍼뜨리는 사람이 있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겠느냐? 교회 생활의 효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 정상적인 교회 생활과 교회 사역을 교란하지 않겠느냐? (그럴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에 영향을 주고 사람들의 정상적인 본분 이행에도 지장을 준다. 따라서 관념을 퍼뜨리는 이런 사람은 반드시 제재해야 한다. 간혹 언급할 뿐이더라도 제재하고 분별해야 한다. 그자의 인성이 어떤지, 잠깐 소극적으로 변하고 연약해져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본성 본질에 문제가 있어서 일관되게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서 의도적으로 관념을 퍼뜨려 더 많은 사람을 미혹하며 교회 생활을 교란하고 파괴하려는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 만약 그가 가끔 소극적으로 변하고 연약해져서 그런 거라면 진리를 교제하여 붙들어 주고 도와주면 된다. 만약 충고해도 듣지 않고 계속 관념을 퍼뜨려 교회 생활을 교란하는 것도 모자라 다른 사람을 소극적이고 연약하게 만들어 정상적인 본분 이행에 지장을 주기까지 한다면 그자는 사탄의 종에 속하니 원칙대로 그를 제명해야 한다. 어째서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겠느냐? 대답해 보아라, 이런 사람이 불신파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인성이 어떻든 이런 사람은 불신파이다. 불신파는 알곡 가운데 가라지와 같으니 뽑아내야 한다. 불신파의 모습만 좀 있을 뿐 아직 교회 생활에 교란을 일으키지 않았고 교우로서 교회에서 봉사할 수 있다면 이런 사람은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하지만 늘 관념을 퍼뜨리는 부류는 항상 불신파의 관점과 말들을 쏟아 내며 단지 말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그의 목적은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도록 선동하고 미혹하며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의 생각은 이렇다. ‘복을 받지 못한다면 난 믿지 않겠어. 당신들도 복받을 생각 말고 믿지도 마! 당신들이 끝까지 믿음을 지켜서 언젠가 결국 복을 받으면 내가 난감해지지 않겠어? 내 마음이 편하겠냐고! 그럴 순 없지.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당신들에게 훼방을 놓겠어. 당신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게 말이야. 모두 나랑 같이 교회를 떠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이것이 그의 목적이다. 그렇다면 이런 불신파를 제명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러면 제명해야 한다. 스스로 믿음을 포기한 불신파가 있으면 교회에서는 그의 하나님 말씀 책을 회수하고 그를 제명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일과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교회에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저 교우로서 가끔 도움을 주는 불신파가 있다. 이런 부류는 진리를 추구하거나 교제하지도 않지만 관념을 퍼뜨리지 않고 교회 생활을 교란하지 않으니, 어느 정도 봉사할 수만 있다면 제명할 필요 없이 교회에 남겨 두어야 한다. 하지만 늘 관념을 퍼뜨리는 불신파에게는 사정을 봐주지 마라. 그는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오해를 퍼뜨려 교회 생활을 교란하고 교회 사역을 방해하며 교란한다. 사탄의 종인 이런 불신파는 관념이 있어도 진리를 구해 해결하기는커녕 관념을 퍼뜨려 하나님 선민을 미혹하려 한다. 그는 스스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도 모자라 물귀신처럼 같이 죽을 몇 사람을 물색한다. 그가 이런 심보로 교회 사역을 교란하는데 하나님이 용서할 수 있겠느냐?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이는 제재나 격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를 정리해서 영원히 제명해야 한다. 절대 봐주지 마라!

교회에는 한결같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이 어떻게 사역해서 사람을 구원하는지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일련의 일들을 체험하고 나서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하며 하나님에게 맞서면서 하는 일부 말이나 행동은 모두 관념을 퍼뜨리는 것이다. 그들이 퍼뜨리는 관념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에 대한 잘못된 이해나 하나님에 대한 오해에서 그치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부정하고, 하나님을 철저하게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도 모자라 하나님을 공개적으로 공격하고 모독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피조물이나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의 관점에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패괴와 패역을 해부하고 인식하지 않으며, 진리를 받아들이지도,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자신의 인식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교제하지도 않는다. 그가 말하는 관념은 이런 긍정적인 인식과는 정반대여서 다른 사람이 들으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생기지 않을 것이고, 진실한 믿음이 생기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커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흐려지고 약해지며 심지어 사라질 것이고, 이와 함께 하나님 사역에 대한 이상(異象) 역시 희미해질 것이다. 사람은 그가 퍼뜨리는 관념을 들을수록 마음속이 흐리멍덩해질 것이고 심지어 자기가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조차 분명히 알지 못하게 되며, 하나님의 존재 여부도 의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지,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이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흐려지고 의구심을 가질 것이다. 사람이 그가 퍼뜨리는 관념과 오해의 말을 들으면 하나님을 의심하고 경계하게 되어 속으로 하나님을 규정하기 시작하니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하는 것도 모자라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멀리하게 된다. 이러면 골치 아프다. 이런 부정적이고 그릇된 생각과 관점, 그리고 구상과 계획이 생긴다면 분명히 사람이 받아들인 정보와 발언은 정상 인성에 필요하지 않은 것이고 진리에 부합한다고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이는 100퍼센트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이 확실하다. 관념을 퍼뜨리는 사람이 어떤 속셈과 동기를 가졌든, 그가 유언비어나 황당한 이론을 퍼뜨리는 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교회에 악영향을 일으키면 제재해야 한다. 물론 교회 생활 이외의 다른 측면에서 사람이 발견하고 분별한다면 그 또한 제때 저지하고 제재해야 한다. 만약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이나 자신의 인식으로 그를 반박하고 폭로해서 형제자매가 그를 분별하게 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이것은 사탄과의 전쟁이다. 네게 그런 분량이 없다면 그를 분별하고 멀리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네게 분량이 있다면 그를 폭로해야 한다. 너희는 그렇게 할 용기가 있느냐?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사람에게 진리 실제가 있는지 없는지는 여기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일부 새 신자들은 이런 부류가 퍼뜨리는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오해를 들으면 “하나님을 믿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죠?”라며 놀랄 것이다. 기초가 없는 사람이 이런 관념과 황당한 이론을 들으면 소극적으로 변하고 연약해지지 않겠느냐? 이런 황당한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겠느냐? 미혹되어 교회를 떠나지 않겠느냐? 전부 가능한 일이다. 관념을 퍼뜨리는 사람이 “전 더 이상 하나님에 대해 믿지 못하겠어요.”라고 한다면 어떤 내적 상태에서 이런 말을 했든 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은 불신파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어떤 목적으로 이런 말을 퍼뜨리든 네가 들으면 도움이 되겠느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연약해졌을 때 이런 말을 들으면 너는 ‘나랑 동병상련인 사람이네. 저 사람이 한 말은 자기의 관념이자 내 마음의 소리야.’라고 생각할 것이다. 반면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말을 듣고 ‘이건 대역무도한 짓이야! 어떻게 그런 말을 내뱉을 수 있지? 그건 하나님을 모독하는 거잖아? 난 그런 말을 감히 못 해. 그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짓이라고!’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관념을 퍼뜨릴 수 있다는 것은 그런 것들이 진작에 그의 마음속에 생겨나 이미 뿌리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것들이 마음속에 생긴 지 얼마 안 된 초기 상태라 관념이 완전히 형성되지 않았다면, 말을 하지 않아 다른 사람을 미혹하거나 교란하지 않는 한 그나마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입조심함으로써 제명되는 결과를 피할 수 있다. 하지만 말을 입 밖으로 꺼내어 교회 생활을 교란한다면 가차 없이 폭로하고 제명해야 한다.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에 대한 이해 능력이 없으면 관념을 가지기 일쑤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읽고 이해 능력도 있다면 관념이 생겨도 진리를 구해 해결할 것이다. 늘 관념을 퍼뜨리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으로 드러나 도태되는 사람이자, 진리를 전혀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며,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사람이다.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확실한 사실이다.

각국 각지의 교회 생활에서 관념을 퍼뜨리는 일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보편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자, 진리를 싫어하는 자, 육적인 즐거움을 탐내는 자, 불신파, 악인 등의 부류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과 성육신에 대한 관념을 품고 있다. 그들은 마음이 온통 관념으로 점철되어 있고, 하나님에 대한 상상과 요구로 가득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순수하고 올바르게 깨닫거나 이해하지 못하며, 오로지 자신의 관념과 취향 심지어 자신의 이해득실에 따라 이해할 뿐이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각종 관념과 상상, 무리한 요구로 가득하고 하나님에 대한 각종 오해와 판단 등으로 꽉 차 있다. 따라서 이들이 관념을 퍼뜨리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고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런 부류가 존재하는 한 관념을 퍼뜨리는 일은 자주 발생할 것이고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하나님이 한 말씀 한 마디, 일 하나가 자기 관념이나 바람에 어긋나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기라도 하면 그는 분해서 화를 내고, 이익을 얻고자 자기를 위해 목소리를 내며,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사역과 힘겨루기를 한다. 이들은 항상 진리와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품 그리고 하나님의 사역을 분석하고 연구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이 올바른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검토하며 성육신이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에 부합하는지 확인하려 한다. 확인하는 과정에서 정확한 답을 찾기 어렵고, 심지어 그들의 눈에 하나님의 말씀이 실현되기 어렵고, 이루어지기도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그들이 관념을 퍼뜨릴 때 할 말이 더 많아진다. 그들은 시간과 장소, 환경과 상황을 불문하고 관념을 퍼뜨린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어떤 불만이라도 품으면 자신의 관념으로 판단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이 그들의 관념에 어긋나면 재빨리 자신의 관념을 쏟아 낸다. 이렇게 쏟아 내는 것을 우리는 퍼뜨리는 것으로 규정한다. 어째서 ‘퍼뜨린다’고 하겠느냐? 그들이 쏟아 내는 것들이 하나님의 선민, 교회 생활, 하나님 집의 사역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저 교란하고 방해하며 망치기만 할 뿐이다. 따라서 이렇게 발언하는 것을 ‘퍼뜨린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관념을 퍼뜨리는 일을 기본적으로 분별하고 나면 사람의 여러 잘못된 관념과 말을 진리에 따라 해부하고 분별한 다음 하나님 집의 규정대로 처리하고 해결해야 한다. 이런 유형의 문제를 해결할 때 당연히 리더 일꾼에게는 피할 수 없는 책임이 있다. 동시에 하나님의 모든 선민 역시 이런 교제를 듣고 나면 관념을 퍼뜨리는 사람과 그들의 언행을 폭로하고 해부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만약 그를 저지하고 제재할 용기가 없다면 하나님의 말씀과 네가 깨달은 진리를 근거로 그와 교제하고 변론해도 된다. 변론의 목적이 무엇이겠느냐? 분량이 작고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이 변론을 듣고 나서 흐리멍덩한 상태로 남들이 퍼뜨리는 관념이나 황당한 논리에 미혹되지 않고 누구의 말이 진리에 부합하는지 알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선민에게도, 교회 생활에도 모두 도움이 된다. 진리에 맞지 않게 말하는 것을 보면 그것이 사람의 관념이든 황당한 논리이든 상관없이 변론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그러면 최소한 제삼자가 듣고는 관념을 퍼뜨리는 사람이 하는 말이 관념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고 그 관념이 진리에 어긋나는 부분이 무엇인지, 관념의 본질이 무엇인지, 왜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지, 왜 관념으로 규정되는지, 어째서 제재해야 하는지 등을 깨달을 수 있다. 흐리멍덩하게 미혹되거나 농락당하지 않으며 이런 것들에 대해 정확한 깨달음이 생기게 된다. 비록 사람이 퍼뜨리는 관념은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과 교회 생활을 교란하고 망칠 수 있지만 이런 일을 체험하는 사람에게는 나쁜 일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최소한 분별력을 키워 주고, 관념을 퍼뜨리는 사람의 본색이 어떤지, 그들이 관념을 퍼뜨릴 때 표출하는 성품은 무엇인지, 그들이 퍼뜨리는 관념이 진리와 어떻게 구별되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이런 말에 대해 분별력과 면역력이 생기는 한편, 이런 부류에 대해서도 분별력이 생겨서 어떤 말을 하는 사람이 불신파이고 진리는 전혀 없이 항상 하나님에게 관념만 품는 사람인지 알게 되며, 그들의 믿음이 진실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적어도 이 정도의 분별력은 생긴다. 물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함부로 ‘하나님, 사람이 퍼뜨리는 관념이 무엇인지 볼 수 있게 제게 환경을 마련해 주세요.’라고 기도하지는 마라. 관념을 퍼뜨리는 것을 보는 것은 결코 장난이 아니며 미혹되기 쉽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너는 올바르게 대해야 한다. 그것을 방치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올바르게 마주하면서 하나님이 네게 배치한 모든 환경을 진지하고 신중한 태도로 대해야 한다. 이것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진리를 얻기 위해 지녀야 할 태도이다. 관념을 퍼뜨리는 사람이 나타나면 너는 이렇게 기도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 저와 함께 하시고 제가 이런 말들과 이 부류를 분별할 수 있도록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인도해 주세요.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관념이 제 안에 있지는 않은지 인식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기도하고 나서 이 일을 체험해 보아라. 물론 이는 네가 과연 진리를 얼마나 깨달았는지, 분량은 얼마나 되는지 검증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 관념을 퍼뜨릴 때 네가 그 말을 들으면서 마음속에 아무런 반응이나 생각도 없이 그가 어떤 관념을 쏟아 내고 퍼뜨리든 그저 수신기처럼 전부 받아들인다면, 아무런 저항력이 없고, 거부할 능력도 없으며, 더군다나 분별할 능력마저 없다면 골치 아프지 않겠느냐? 또 어떤 사람은 남이 쏟아 내는 관념을 들으면 속으로는 그 사람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해서 그와 교제하고 변론하고 싶지만 어떻게 말해야 적절할지, 어떻게 폭로하고 해부해야 할지 모르고, 말로는 그를 당해내지 못해 얼굴이 붉어지고, 결국 패배하여 체면을 구기고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될까 걱정한다. 그렇다고 변론하지 않자니 그것도 달갑지 않다. ‘평소에 설교도 많이 듣고 깨달은 것도 적지 않은데 어째서 그에게 한 마디도 반박하지 못할까? 나는 하나님께 관념을 품고 있지 않고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왜 황당한 이론을 반박할 땐 분명하게 말하지 못할까?’ 관념을 퍼뜨리는 사람의 말이 갈수록 많아지고, 갈수록 터무니없으며, 갈수록 다른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보면서도 반박하거나 해부하지 못하고, 나서서 그를 폭로하지 못하며, 더욱이 그를 저지하지도 못하니 특히 조바심이 난다. 그제야 자신의 분량이 너무 작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기가 깨달은 진리가 아직 완전하고 정확한 관점으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것을, 그저 단편적인 말, 흩어져 있는 보잘것없는 빛 비춤이나 생각일 뿐, 결코 진리에 대한 진실한 인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가 관념을 퍼뜨리고 사람을 미혹하는 불신파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그를 폭로하고 그의 관점에 반박하고 싶지만 적절하고 강력한 말이 없어 간신히 이렇게 말할 뿐이다. “하나님의 행사는 모두 좋은 것이니 받아들여야 해요.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고 완벽하세요. 결코 당신이 말하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주재하세요. 피조물인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해야 해요. 하나님께 순종하면 손해 볼 일이 없어요.” 정곡을 찌르지 못하는 피상적인 이론만 펼치는 것이다. 이런 특수한 사건을 체험하고 나면 자신의 분량이 너무 작다는 것을 알고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난 왜 이렇게 무능할까? 평소에 중요한 도리에 대해서는 유창하게 말할 수 있고 예배 때 한 시간 동안 얘기하는 건 일도 아닌데 말이야. 설교 원고도 3~5페이지 정도는 거뜬하게 쓸 수 있어. 자신 있다고. 그런데 저렇게 관념을 퍼뜨리고 하나님을 판단하며 모독하는 사람 앞에서는 왜 경각심이 없고 반응하지 못하는 거지? 어째서 강력하게 폭로하고 반박하지 못하는 걸까?’ 이를 통해 무엇을 알게 되었느냐? 자기가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았느냐?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좋은 일이냐, 나쁜 일이냐? (좋은 일입니다.) 마침내 자신의 실제 분량을 알게 된 것이다. 만약 누군가 관념을 퍼뜨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사람은 자기가 분량이 있고 진리를 깨달아 분별력이 있으며 무슨 일이든 간파할 수 있다고, 막힘없이 각종 영적인 도리를 말하고 여러 진리를 교제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결과 누군가 관념을 퍼뜨리는 일이 생겼을 때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별수 없이 지고 만다. 창피한 일이 아니냐? 이것이 자랑스러운 일이겠느냐? (아닙니다.) 그러면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 그와 논쟁할 적절한 말은 없지만 창피당하지 않고, 굳게 서서 증거하여 사탄이 철저하게 수치를 당하고 실패하게 만들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한 가지 묘수를 알려 주겠다. 누군가 한도 끝도 없이 관념을 퍼뜨리는데 많은 사람이 분별하지 못해 그에게 영향받는 것을 발견했지만 네가 그를 말로 당해 내지 못한다면 책상을 내리치며 좀 강하게 나와야 한다. “닥쳐! 지금 뭐라고 떠드는 겁니까? 제가 말로는 당신을 못 이겨도 당신이 불신파라는 건 알아요! 잘 보세요! 당신 말 중에 진리에 부합하는 말이 한 마디라도 있습니까? 오랫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누려 왔으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거나 증거하는 말을 한 마디라도 한 적이 있나요? 하나님께 불만이 있으면 여기서 교란하지 말고 재주껏 셋째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께 직접 고하세요. 지금 정식으로 당신에게 명합니다. 꺼져요!” 너희는 이렇게 말할 용기가 있느냐? 이것이 혈기겠느냐? (아닙니다.) 이것은 사탄에게 내리는 선고이다. 너는 이렇게 한 다음 그에게 일러라. “당신 같은 불신파는 꺼져요! 그토록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저 누렸는데, 양심도 없는 작자군요. 당신은 사람이 될 자격도 없어요!” 그에게 세 글자로 “꺼져요!”라고 하면 어떠냐? 이 말은 강력하지만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진리를 깨닫지 못한 형제자매에게는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되지만 불신파나 사탄의 종에게는 이렇게 가차 없이 명령을 내려도 된다. “이곳은 하나님 집이자 진정한 형제자매의 집이며,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의 집이지, 마귀 사탄의 집이 아닙니다. 이곳에 마귀 사탄은 필요 없습니다. 당신은 마귀 사탄이니 썩 꺼져요!” 이것이 합당하지 않겠느냐? (합당합니다.) 이것이 최선책은 아니다. 단지 너희는 분량이 작고 아직 사탄과 싸울 충분한 분량이 없으니 이 방법을 알려 주는 것뿐이다. 사실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아니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너희가 수많은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과 진실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그가 만신창이가 되도록 반박하는 것이다. 그래서 철저하게 수치를 당한 그가 결국 모든 사람 앞에서 “저는 더 이상 믿음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정말 면목이 없군요. 저는 마귀 사탄이니 제 발로 교회에서 나가겠습니다.”라고 말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 너희에게는 이런 능력이 없으니, 내가 말한 방법대로 늘 관념을 퍼뜨리는 부류를 대해야 한다.

교회에서 늘 관념을 퍼뜨리는 사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게 되지 않았느냐? 관념을 퍼뜨려 사람을 미혹하는 자를 분별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관념을 퍼뜨리는 말에는 주로 몇 가지 측면이 있느냐? 첫 번째 측면은 하나님 말씀을 겨냥하는 것이고, 두 번째 측면은 하나님의 사역을 겨냥하는 것이며, 세 번째 측면은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을 겨냥하는 것이다. 이 몇 가지 측면의 말은 경미한 경우에는 하나님에 대한 상상과 그릇된 이해이고, 심각한 경우에는 하나님에 대한 판단과 정죄, 모독이다. 그 밖에 사람이 품는 원망과 불복, 불만 등 소극적이고 반항하는 말도 있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관념을 퍼뜨리는 말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판단하며 정죄하고 모독하는 성질을 띠고 있다. 그로 인해 결국 사람은 하나님을 추측하고 경계하며 오해하고 멀리하게 되고, 심지어 저버리게 된다. 이를 분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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