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1 무엇이 진리인가 (제 6 부)

실패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이 사탄 성품의 지시를 받아 하는 말이고, 사탄 세상에서 창도하는 정신이다. 이런 정신은 우리가 보기에는 무엇이냐? (정신병입니다.) 정신병자가 창도하는 일종의 생각이자 사람이 생활하고 일을 처리하는 일종의 원칙이다. 그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야심과 욕망을 충족하라고, 어떤 상황에서든 전혀 기죽지 않고 ‘청산에 단단히 자리 잡은 대나무’와 같은 원칙으로 추구하면서 자신의 욕망과 야심이 정당한지 여부는 분석할 필요 없이 그런 정신만 있으면 제창할 만한 일이라고 사람을 부추기고 선동한다. 만약 누군가 인류에게 이로운 것을 연구하면서 자신은 실패를 입에 올리지 않을 것이며 실패해도 기죽지 않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계속 연구할 것이라고, 그 목적은 앞으로 인류가 더 잘 살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여기에는 그래도 취할 만한 점이 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인류가 추구하는 목표가 그것이겠느냐? 누가 그렇게 사심 없이 인류를 위하겠느냐? 그런 사람은 없다. 설사 누군가 겉으로 인류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한들 그 이면의 목적은 자신의 명성을 드높이고 자신의 사업을 이루는 것, 그리고 인류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는 것이다. 이런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 것들은 다 정당하지 않다. 이런 것들 외에 실패를 입에 올리지 않는 정신은 사람에게 또 무엇을 하도록 지시하겠느냐? 우선, 실패를 입에 올리지 않는 정신은 사람의 한계와 본능에 도전한다. 예를 들어, 체육 경기장에서 사람이 공중회전을 연달아 세 번 하면 심장이 견디지 못하는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실패를 입에 올리지 않아요. 저는 한계에 도전할 거예요. 기네스 세계 기록에 도전할 거라고요. 저는 공중회전을 연달아 열 번 할 거예요!” 결국 여덟 번째 공중회전을 할 때 숨이 끊어진다. 만약 이런 정신이 그렇게 하도록 그를 선동하지 않았다면 어땠겠느냐? (그는 능력껏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어떻게 하도록 하느냐? 하나님은 사람에게 정상 인성 안에 살도록 하고, 사람에게 연약함이 있음을 용납한다. 사람 육체의 본능과 오장육부의 수용 능력에는 한계가 있어서 어느 정도까지 견딜 수 있는지는 사람이 스스로 정확히 알아야 한다. 공중회전을 연달아 열 번 하면 어떤 결과가 있을지 너 스스로 정확히 알고 있느냐?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무턱대고 행동하고 한계에 도전한 결과 목숨을 잃었으니 누구를 탓하겠느냐? (자기를 탓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는 “실패를 입에 올리면 안 돼. 다섯 번 회전하고 나서 포기하는 건 너무 나약하잖아. 여덟 번은 해야지!”라고 사탄이 늘 그를 선동한 것이고, 그가 고민하다가 ‘여덟 번도 너무 적어. 열 번은 해야지!’라고 생각해 결국 여덟 번째 회전할 때 심장이 멈춰 숨이 끊어진 것이다. 이는 사탄에게 조롱당한 것 아니겠느냐? 물론 우리는 예를 든 것뿐이다. 공중회전을 연달아 스무 번 해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사람이 실패를 입에 올리지 않는 투지를 가지고 이리저리 싸우다가 결국 자신의 목숨까지 잃은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목숨만 잃었을 뿐 악은 행하지 않아서 내세에 사람으로 환생하여 다시 사람이 되는 기분을 느낄 기회가 아직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큰 악을 행하고 큰 화를 초래하여 몇 번의 생애 동안 그 일 때문에 참혹한 대가를 치르고 계속 빚을 갚으며 모든 생에서 다 고통을 겪어야 한다. 이번 생에 다 갚지 못하면 다음 생으로 이어지며, 몇 평생을 살아야 다 갚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바로 이런 결과이다.

어떤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것에 실패하면 수긍하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저는 실패를 입에 올리지 않아요. 이번에는 사람을 얻지 못해 실패했지만 다음번에는 실패해선 안 돼요. 반드시 하나님의 증인이 될 거예요. 이기는 사내아이가 될 거라고요!” 사람이 이런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좋지만, 실패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떠냐? 이는 어떤 성품이냐? 이는 천사장의 성품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이 네게 그렇게 증거하라고 했느냐? 네가 진리를 깨달았느냐? 그게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냐? 그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너희가 보기에 이런 자는 어떤 사람이냐? (얼간이입니다.) 이런 자가 바로 얼간이다. 진리를 깨닫지도 못했으면서 하나님을 증거한다고 말하다니,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실패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는 말은 어떠냐? 이 말은 무슨 뜻이냐? 영원히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실패했지만, 그는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정신 승리라고 생각한다. 이방인은 몇 번을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 싸우고 좌절할수록 용감해지는 이런 정신에 탄복한다. 만약 네가 예전에 이런 정신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정신에 기대 분투하여 목적을 이루었다면 그것은 치욕이 아니겠느냐? 실패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는 말은 주로 사람의 어느 측면의 패괴 성품을 표출하겠느냐? 사람의 어느 측면의 본질을 나타낼 수 있겠느냐? 이렇게 죽을지언정 굽히지 않고 죽어도 굴복하지 않는 사람은 교만하고 비이성적인 자 아니겠느냐? 사람이 이렇게나 교만한 데다가 죽을지언정 굽히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순히 비이성적인 문제가 아니라 마치 목숨을 내던진 사람처럼 좀 모자란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젊고 혈기왕성해서 그렇지 않을까요?” 그런 측면과도 관련이 있다. 사회에서는 “목숨을 내걸어야 이길 수 있다.”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그게 바로 젊은이를 대표하는 필사의 정신이다. 마치 “이 한 몸 갈기갈기 찢기더라도 황제를 끌어내리자.”라고 하는 성난 젊은이들처럼 말이다. 이게 바로 실패를 입에 올리지 않는 정신이다. 그럼 나이가 많은 사람도 이런 정신력과 체력을 가지고 있지 않겠느냐? 가지고 있다. 관료 사회를 보면 대체로 다 어른이나 노인인데 싸움이 얼마나 치열하냐! 사람은 패괴 성품을 가지고 있고 패괴 성품에 기대 살아가며 다들 어느 정도 이런 정신을 가지고 있다. 이는 나이의 많고 적음과는 별로 큰 관련이 없지만 성품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깨달으면 이 일을 꿰뚫어 볼 수 있고, 이런 정신이 진리 원칙에 부합하지 않고 패괴 성품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네가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면, 이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투지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고 정당한 거야. 사람이 살면서 약간의 투지조차 없으면 되겠어? 투지가 없으면 삶에 활력이 없어지지. 그럼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무슨 일이든 꾹꾹 참고 견디기만 한다면 얼마나 유약하고 무능하겠냐고!’ 사람은 모두 살아가면서 승부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그 ‘욕구’는 어떻게 충족할 수 있겠느냐? 여기에서 ‘싸우다’라는 글자가 두드러진다. 어떤 일이 닥치든 싸워서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실패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는 말은 ‘싸우다’에 기원을 둔다. 무신론자가 가장 숭배하는 것이 바로 싸움 정신이다. 그들은 하늘과 싸우고, 땅과 싸우고, 사람과 싸우는데 그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잘 싸우는 사람일수록 영웅이고 영웅은 투지가 가득하다고 생각한다. 실패를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생겨난다. 이게 바로 싸움의 핵심이다. 사탄에 속하는 온갖 마귀는 진리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데, 그들은 무엇에 기대 살아가겠느냐? 사탄의 싸움 철학에 기대 살아간다. 그들은 하루를 살면 하루를 싸운다. 어떤 일을 하든 싸워서 이기려고 하고, 승리를 통해 자신을 뽐내려고 한다. 무슨 일을 하든 승부욕을 드러내는데, 그런다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겠느냐? 그들은 대체 무엇을 두고 다투며 싸우겠느냐? 명리와 지위를 위해서, 또 이익을 위해서 싸운다. 싸우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영웅 행세를 하고 호걸이라고 불리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렇게 다투다 보면 결국 마지막에는 모두 죽어야 하고, 징벌을 받아야 한다.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사탄 마귀가 있는 곳에 싸움이 있으며, 마지막에 멸망에 이르러야 싸움도 끝이 난다. 이것이 바로 사탄 마귀의 결말이다.

실패를 입에 올리지 않는 투지와 같은 정신을 더욱더 고양해야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그것을 어떻게 대해야겠느냐? (내쳐야 합니다.) 그것을 분별하고 정죄하고 내쳐야 한다. 이 말은 진리도 아니고 사람이 준수해야 할 준칙도 아니며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더더욱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도 아무 관련이 없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은 네게 실패를 입에 올리지 않는 투지를 가지라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신의 패괴 본질을 인식하라고 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자신의 자질이 높은지 낮은지, 이해 능력이 어떤지, 자신이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라고 한다. 하나님은 네게 자신을 정확하게 인식한 다음 자신의 분량과 자신이 갖춘 자질에 근거해 능력껏 행동하며 자신의 최선을 다하라고 한다. 여기에 싸우라는 뜻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네가 싸울 필요 없다. 누군가 말한다. “자신의 패괴 성품과 싸우면 안 되나요?” 패괴 성품이 싸워서 없앨 수 있는 것이냐? 싸움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변화시킬 수 없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탄의 사악한 세력과 싸우면 안 되나요? 적그리스도와 싸우면 안 되나요? 악인이나 사악한 성품을 가진 사람, 방해하고 교란하는 사람과 싸우면 안 되나요?” 이건 절대 안 된다. 왜 안 되겠느냐? 싸움이라는 행위 자체가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언제 “적그리스도와 싸워라.”, “바리새인과 싸워라.”, “외식하는 사람과 싸워라.”, “너의 패괴 성품과 싸워라.”라고 말씀했느냐? 하나님이 그런 말씀을 한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반면 사회의 사탄에 속하는 세상에서는 지주나 집권파, 혹은 지식인과 싸우고, 군중끼리도 싸우며, 닭과 개, 소 등과도 싸우는데, 어쨌든 다 좋은 일은 아니다. 싸움은 사탄이 사람에게 해를 입히고 생물에게 화를 입히는 수단이다. 그것은 인류가 화목하게 어울리지 못하게 하고 사람 간에 갈등과 증오를 일으켜 서로 다투고 죽이게 하고는 옆에서 비웃으며 구경한다. 이런 행위는 사탄에게 속하는 행위인데, 교회나 하나님 집에서 싸움과 관련된 행위나 현상, 일이 발생한다면 너희는 어떻게 바라보겠느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지지하고 찬성하겠느냐, 아니면 제지하겠느냐? (제지할 것입니다.) 제지하고 그가 깨닫도록 명확히 얘기해야 한다. 일을 처리할 때는 진리에 기대고 원칙에 따라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 한다고 그에게 알려 줘야 한다. 또한, 그를 책망하고 훈계해도 된다. 하지만 책망과 훈계, 지적, 나아가 징계는 모두 싸움이 아니다. 싸움이란 무엇을 가리키겠느냐? 싸움은 혈기에 기대 다른 사람과 시비를 다투고, 이치를 따지며 억지를 쓰고, 떼를 쓰며 행패를 부리는 것, 심지어 음모와 계략을 쓰거나 인간의 여러 수단과 방식, 방법을 동원하여 한 사람을 굴복시키고 쓰러뜨리고 괴롭혀서 고분고분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게 싸움이다. 싸움은 순전히 혈기에 속하는 행위나 동작이고, 완전히 사탄에게 속하는 행위이자 일 처리 방식과 방법으로, 진리와 아무 관련이 없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 선민이 떨치고 일어나 거짓 리더, 적그리스도, 바리새인, 그리고 악인 같은 사람들과 싸우는 게 어째서 옳지 않죠? 싸워서 그들을 고분고분하게 만들거나 쫓아내면 좋은 일 아닌가요? 하나님 집이 평온해지지 않나요? 형제자매가 조용히 교회 생활을 할 수 있지 않나요? 왜 그런 사람들과 싸우지 못하게 하는 거죠?” 그런 사람들과 싸우는 게 옳겠느냐? 우선,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싸움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왜 옳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악인을 징벌하고 정죄하는데, 사람이 그들과 싸우는 건 왜 문제가 되겠느냐? 그를 부끄럽게 하고 골탕 먹이거나 괴롭히고 호되게 꾸짖는 것, 나아가 그를 바닥에 눌러 놓고 비난하고 그와 싸우는 건 어째서 옳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행정 법령을 제정했는데, 행정 법령에는 싸움이라는 조항이 없다. 하나님은 행정 법령을 규정했을 뿐이다. 행정 법령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에 대한 처리 방식과 원칙이 있어서 어떤 부류의 사람을 출교하고 어떤 부류의 사람을 제명해야 하는지, 어떤 부류의 사람을 교체하고 어떤 부류의 사람을 양성해야 하는지, 어떤 부류의 사람을 쓰고 어떤 부류의 사람을 쓰지 말아야 하는지, 어떤 부류의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고 어떤 부류의 사람이 구원받을 수 없는지 알려 준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원칙을 알려 줄 뿐이다. 그럼 사람으로서 너희는 하나님의 그런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겠느냐? 하나님의 그런 말씀은 전부 다 진리다. 무엇이 진리겠느냐? 하나님이 모든 일을 하고 모든 부류의 사람을 대할 때, 설사 그가 악인이고 악행을 저질러서 하나님 집의 사역과 이익에 엄청난 손실을 가져왔다 한들,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의 방식으로 그를 처리하지 절대 사탄이나 혈기에 속하는 방식으로 그를 처리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두고 무엇이라고 하겠느냐? 공평하게 사람을 대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공평 안에 싸움이 있겠느냐? 없다. 이게 진리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혈기나 사탄에 속하고 아무리 악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최고의 지시이자 정확한 원칙으로 삼아 그를 처리하지, 혈기에 기대 그를 비난하고 공격하거나 둘러싸고 공격하지 않는다. 절대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이게 바로 공평하게 사람을 대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맡긴 원칙이다.

동양에 실패를 입에 올리지 않는 투지라는 확실한 말이 있으면 서양에도 같은 뜻을 가진 말이 있을 수 있다. 사탄의 패괴를 겪고 사탄의 권력 아래에서 살고 있는 한 모든 사람은 사탄 성품을 가지고 있고, 특히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는다. 이런 성품이 부추기면 사람에게는 분명 실패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는 이런 정신과 사상이 생겨난다. 인류가 퍼뜨리는 이런 사상과 정신을 사람들은 모두 정당하고 긍정적인 것, 인류가 계속 나아가고 살아가도록 지탱하기에 충분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들이 이런 소위 정신과 사상을 얼마나 정당하게 바라보고 얼마나 정당하게 말하든 우리는 그것을 분별해야 한다. 인류 전체에서 어떤 인종에서든 진리가 권세를 잡고 있지 않다. 그 인종에서 생겨난 사상과 전통문화, 그들이 받아들이는 교육과 가지고 있는 지식이 얼마나 뛰어나고 오래되고 신비롭든,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그런 것들은 다 진리가 아니고 진리와 아무 관계도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일부 전통문화 속의 도덕관이나 시비, 잘잘못, 선악을 판단하는 관념은 진리와 비교적 비슷한 것 같아요.” 견해가 비슷하다고 해서 뜻이 비슷한 것은 아니다. 패괴된 인류의 견해는 사탄에게서 비롯됐기에 영원히 진리가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다. 따라서 사람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과 아무리 비슷해도 진리가 아니고 진리가 될 수도 없다.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하다. 비슷하다고 해도 그저 견해와 언어의 표현 방식이 비슷한 것이지, 사실상 그런 전통 관념은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비록 일부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비슷할지 몰라도 그 근원은 다르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주에게서 비롯됐고 전통문화의 그런 말이나 사상 관점은 사탄 마귀에게서 비롯됐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전통문화의 그런 사상 관점이나 명언은 인류가 공인하는 긍정적인 것이에요. 설사 거짓말이나 허튼소리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몇 백 년, 몇 천 년을 굳게 지킨다면 진리가 되지 않을까요?” 절대 그럴 리 없다. 이런 관점은 마치 원숭이가 사람으로 변했다는 말처럼 황당하다. 전통문화는 영원히 진리가 될 수 없다. 문화는 문화일 뿐이고, 아무리 고상하더라도 그저 패괴된 인류 사이에서 생겨난 일종의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것일 뿐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것이라고 해서 진리나 준칙인 것은 아니고, 그저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것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알 수 있다. 이 긍정적인 것의 이면에서 전통문화가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은 긍정적이겠느냐, 아니면 부정적이겠느냐? 그것이 인류에게 가져오는 영향은 소극적이고 부정적이다.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하다.

오늘은 “일단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고 의심 가는 사람은 쓰지 마라.”라는 속담을 분석했다. 이는 일종의 처세 철학이다. 전고가 있는 ‘와신상담’이라는 유명한 성어도 분석했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너희가 인류의 전통문화와 처세 철학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전통문화와 처세 철학의 본질은 대체 무엇이냐? 우선, 이런 것들은 절대 긍정적이지 않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의 패괴 성품에서 생겨났고 사탄에게서 비롯됐다. 그것이 인류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이냐? 미혹과 패괴, 결박과 속박을 가져다준다.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하다. 그것이 인류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모두 부정적인 영향이나 부정적인 작용이다. 그럼 그것이 진리겠느냐? (아닙니다.) 그것은 진리도 아닌데 인류는 그것을 진리로 받든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겠느냐? 미혹된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을 거치지 못했고 진리를 깨닫지 못했으며 이런 말이나 일에 대한 하나님의 정확한 말씀을 들어 본 적이 없어서 결국 관념 속에서 상대적으로 올바르고 훌륭하며 자기 뜻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사상 관점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런 것들은 선입견이 되었고, 사람은 이런 것들을 몇 백 년, 몇 천 년 동안 계속 굳게 지켜 온 것이다. 이런 전통문화와 사탄 철학에 속하는 것들이 일찍이 사람 마음속에 뿌리내려 대대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영향을 끼쳤다. 너희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계속 그것에 미혹되고 영향받을 것이다. 오늘 교제하고 분석한 “일단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고 의심 가는 사람은 쓰지 마라.”와 ‘와신상담’은 하나는 속담이고 하나는 성어인데, 이 두 가지 말을 통해 세상 전체에서 사탄에게 속하는 문화가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것은 모두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시키고 짓밟고 해치는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이다. 인류가 사탄의 이런 철학을 받든다면 사람은 살아가면서 점점 더 패괴되고 사악해져서 서로 싸우고 죽이고, 끝없이 싸울 것이며 사람들 사이에 신뢰가 사라지고 화목하게 어울리지도 못하고 서로 사랑하지도 못하게 될 수밖에 없다. 어쨌든, 그것이 인류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나쁜 결말로, 인류가 이런 사상이나 정신의 지배를 받아 끊임없이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의 도덕적 최저선에 도전하게 할 것이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결국 멸망의 길을 향해 걸어가 징벌받게 할 것이다. 이게 바로 인류 문화의 본질이다. 너희는 속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건 인류가 창도하는 진정한 사상이라고 할 수 없어요. 상류층 사회의 비교적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그걸 받들지 않아요.” 그럼 방금 분석한 상류층 인사가 인정하는 ‘와신상담’이라는 성어는 고급스러우냐? (그렇지 않습니다.)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그 성어나 그런 사상과 정신은 확실히 여러 대학이나 인류 사회의 다양한 고위급 자리에서 모든 사람에게 떠받들어지고 창도된다. 이게 바로 인류의 문화다. 인류는 이런 전통문화에 의해 영향받고 마비되고 패괴되고 있는데 결국 어떤 결과를 불러오겠느냐? 인류가 전통문화에 의해 미혹되고 속박되고 얽매여 자연스레 학설이나 정신이 만들어지고, 인류는 그것을 창도하고 퍼뜨리고 널리 전파하여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한다. 결국, 그것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모두가 이런 사상과 정신을 인정하고 이런 사상에 의해 패괴되도록 한다. 일정한 수준까지 패괴되면 사람은 더 이상 시비를 구별하는 관념을 가지지 않게 되고,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사악함인지 분별하려 하지 않게 되며, 무엇이 긍정적인 사물이고 무엇이 부정적인 사물인지도 분별하려 하지 않게 된다. 심지어 어느 순간에는 자신이 과연 사람인지 아닌지도 명확히 알지 못하게 된다.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지 못하는 변태적인 사람도 많아진다. 이런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겠느냐? 이런 인류는 노아 시대의 사람에 비해 어떻겠느냐? 더 사악하지 않겠느냐? 이미 사악하기 그지없다. 사악해서 어떤 일은 듣고 나면 역겨워서 도저히 들어 줄 수 없을 정도다. 사람들이 모두 일정 수준까지 변태스러워져서, 겉으로 보기에 육체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람이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미 변태가 되어 돌이킬 수 없다.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이겠느냐? 100~200년 전쯤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음성을 들으려는 사람이 더 많았을 수도 있고, 이 세상에 정의와 공의, 공평이 존재한다고 믿었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고 동경하기도 하며 나아가 언젠가는 구세주가 강림하여 이 어둡고 사악한 권세에서 벗어나도록 인류를 구원해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100~200년이 지난 지금 그런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나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 설사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얻었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진실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갈수록 줄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인류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난 뒤 격려를 받아 긍정적인 사물을 사랑하게 되고 광명과 정의,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공평과 공의의 강림을 동경하게 되는 사람이 갈수록 줄고 있다. 이는 무엇을 증명하겠느냐? 사탄의 철학 법칙, 사탄의 사상과 소위 정신이 인류 전체를 다 미혹시키고 패괴시켰다는 것을 증명한다. 미혹과 패괴가 어느 정도에 이르렀느냐? 사람들이 모두 사탄의 황당한 이론과 헛소리를 진리로 받아들이고 사탄을 받들고 따르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나 창조주의 말씀은 알아듣지 못한다. 창조주가 어떤 말씀을 하든, 얼마나 많은 말씀을 하든, 얼마나 명백하고 실제적으로 말씀하든 사람은 알아듣지 못하고 듣고도 이해하지 못한다. 모두 무감각하고 우둔해졌고 생각과 정신이 다 혼란스러워졌다. 왜 혼란스러워졌겠느냐? 사탄이 교란한 것이다. 사탄이 사람을 철저히 패괴시킨 것이다. 오늘날 사회에는 다양한 사상과 주의, 주장이 존재하는데 사람은 믿고 싶은 것을 믿고 따르고 싶은 것을 따른다. 아무도 참견할 수 없고 관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따라서 너희가 하나님을 믿기로 선택한 것은 복 있는 일이다. 오늘날 너희는 하나님이 하는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고 조금이나마 양심이 있으며 하나님이 하는 말씀을 믿고 하나님 나라의 강림을 갈망한다. 또한, 광명과 정의, 공평과 공의가 있는 하나님나라에서 생활하길 간절히 바란다. 너희가 이런 진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얻기 어려운 일이 아니겠느냐? 그것은 어떻게 얻은 것이냐? 하나님이 지키고 성령이 네게 역사하여 너를 깨우쳤기 때문에 네가 하나님을 믿고 따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았다면 너희가 여기에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었겠느냐? 오늘날과 같은 변화가 있을 수 있었겠느냐? 보아라, 오늘날 저 이방인들에게 사람다운 모습이 있느냐? 너도 지금은 깨달은 진리가 많지 않고, 많은 일에서 이방인과 관점이 완전히 같으며,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 비록 그들의 일부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 너는 분별력이 없고 걸을 수 있는 다른 길도 없다. 언젠가 네가 진리를 깨달으면 그들의 관점이 잘못됐고 사악하다는 것을 분별할 수 있고 마음속으로 거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는 그들의 마귀 몰골을 똑똑히 볼 수 있을 것이다. 너는 그것이 사람이 아닌 살아 있는 마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인두겁을 쓰고 있지만 인간다운 일을 하지 않는다. 이를 어디에서 알아차릴 수 있겠느냐? 그들이 대외적으로 퍼뜨리는 말은 모두 특히나 듣기 좋고 사람을 잘 미혹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극도로 사악하고 추하며 그야말로 후안무치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들이 굳건히 지키는 소위 사상이나 정신은 어찌나 사악하고 반동적인지, 하나님의 말씀이나 진리와 배치되거나 첨예하게 대립한다. 그들은 이런 억지 논리와 그릇된 주장을 진리로 여겨 멋대로 퍼뜨리고, 공개적으로 분위기를 조성해 인류를 미혹하고 패괴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온갖 비열하고 파렴치한 죄행과 추악한 몰골을 가린다. 이를 통해 너는 그들이 모두 마귀이고 말이 통하지 않는 짐승이자 더러운 귀신이므로 그들과 시비를 논할 수 없고 그들에게는 좋은 말이나 진실한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다. 언젠가 이 정도까지 꿰뚫어 본다면 너는 인류가 너무 깊이 패괴되었고, 자신도 남들과 똑같이 패괴됐지만 이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좀 깨달아 비로소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게 됐다는 것, 마귀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서 그들을 분별하고 증오하고 내칠 수 있게 됐다는 것, 만약 하나님의 구원이 없었다면 자신도 그들과 똑같고 별다른 차이가 없으며 어떤 악행이나 사악한 일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 너는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향해 힘쓰고 공들이며 실행을 중시하고 진리를 자신의 실제로 만들고 있다. 진리를 깨달아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살아 내어 진실한 체험 간증이 있게 되면, 마음속에는 기쁨과 평안이 생길 것이고, 마음가짐과 내적 상태는 점점 더 정상화될 것이며, 하나님과의 관계도 점점 더 가까워지고 정상화될 것이고, 생활도 갈수록 나아질 것이다.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늘 사탄 철학에 기대 살아가며 늘 하나님을 오해하고 의심한다면 네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을 믿어도 소용이 없고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설사 네가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었고 수많은 글귀와 도리를 이해하고 이방인의 온갖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소용없다. 너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글귀와 도리만 좀 이야기할 수 있을 뿐 여전히 진리를 실행해 낼 수 없다. 네 마음속에는 선입견이 된 것들이 여전히 권세를 잡고 있어서 너는 그런 것들에 기대 살아갈 수밖에 없다. 무엇을 하려고 하든, 어떤 일이 닥치든 너는 저도 모르게 사탄 철학에 속하는 것들의 지배를 받을 것이다. 따라서 마음속에서 사탄 철학과 같은 것들이 권세를 잡고 있으면 진리를 실행할 수 없게 된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저는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사탄을 따르지도 않아요.” 그게 가능하겠느냐? 중간 길은 없다. 진리를 받아들이고 깨달은 다음 선입견이 된 사탄에게 속하는 것들을 제거해야만 진리에 기대 행동할 수 있다. 마음속에서 진리가 권세를 잡고 하나님의 말씀이 권세를 잡으면 네가 말하고 행동할 때 자연스레 진리를 실행할 수 있다.

사탄의 이러한 논리와 사상, 그리고 사람의 삶을 지배하는 이 정신적 지주들을 인류는 무엇이라 여기느냐? 마음의 양식? 영혼의 닭고기 수프? 사실 이것은 사람을 패괴시키는 것으로, 이를 ‘먹으면’ 사람은 끝나는 것이다. 사람이 만약 끊임없이 이러한 것들을 받아들이고 사탄의 것들을 내면에 쌓아 둔다면, 이는 무엇을 의미하느냐? 원래의 패괴 성품을 아직 벗어 버리지 못한 데다 또 사탄의 새로운 패괴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러면 끝난 것이다. 구원받지 못할 운명이다. 너는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그것을 분별하고 거부해야 하고, 또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그것을 벗어 버려야 한다. 그것에 기대어 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저는 이런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저절로 제 내면에 들어올 거예요.”라고 말하는 자가 있다. 이것은 불가능하다. 너는 주동적으로 진리를 구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진리를 깨닫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그런 억지 논리와 그릇된 주장에 대해 분별력이 생기게 되고, 점차 이를 포기하게 된다. 이러면 하나님의 말씀은 점차 네가 일하는 원칙이 되고, 네가 일을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할지 알게 돼 자연스럽게 진리를 실천하게 되고, 이 방면의 패괴 성품에 다소 변화가 생기게 된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게 어렵겠느냐? 이는 사실 어렵지 않다. 어려운 점은 사람이 실행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건 정말 어려워. 하늘에 오르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이건 불가능한 일을 강요하는 거 아닌가? 날 난처하게 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다. 너는 이 일을 올바르게 대해야 하고, 이런 일을 정확히 분별해야 한다. 오늘 사탄의 황당한 이론 몇 가지를 교제하고 분석하는 데만 해도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사람 안에 고작 그 몇 가지만 존재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훨씬 많다! 앞으로 이 측면의 주제를 계속 이어서 교제하겠다. 예전에는 이런 측면을 교제한 적이 없는데, 너희는 이런 측면의 주제에 대해 스스로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없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결과를 얻지 않겠느냐? 너희가 진리에 공을 좀 들일 수 있다면 사탄의 이런 황당한 이론도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아무것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오늘 이런 주제를 교제하는 것이 갑작스러우냐? “적그리스도를 분별하는 것에 대해 교제하는 것 아니었나요? 왜 갑자기 이런 주제를 교제하시는 거죠?”라고 묻는 사람도 있지 않겠느냐? 이런 일들은 모두 사탄의 패괴 성품과 관련이 있다. 그 밖에, 이런 일들은 사람이 사탄의 패괴 성품을 분별하는 것과도 관련돼 있고 더욱이 사람이 진리를 정확히 깨닫는 데도 이롭다. 교제하고 나면 사람은 최소한 ‘이렇게 좋은 말이 알고 보니 진리가 아니었구나.’라고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면 ‘와신상담’과 “일단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고 의심 가는 사람은 쓰지 마라.”라는 황당한 이론은 너의 마음속에서 제거될 수도 있다. 아마 어떤 사람은 곧장 제거하지는 못할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을 때 그 말이 사람을 미혹한다는 것을 알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비록 네가 마음속으로는 그런 말들이 어느 정도 옳고 그렇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겠지만 ‘하나님께서 이 말은 진리가 아니라고 하셨어. 난 이 말대로 행동해선 안 돼.’라는 생각도 들 것이다. 이는 네게 이롭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왜 이런 말을 이렇게 분석하겠느냐?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온종일 “진리를 실행해야 해요.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진리이고 긍정적인 사물이에요. 모두 우리가 실행해야 하는 거라고요.”라고 말한다. 어느 날 책망과 훈계가 닥쳤을 때 ‘와신상담’, “하늘이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괴롭게 한다.” 같은 말이 네 마음속에서 흘러나온다면 그게 진리겠느냐? 그건 웃음거리가 된 것 아니겠느냐? 만약 하나님을 증거하라고 한다면 너는 어떻게 증거하겠느냐? 네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수모를 참아 가며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와신상담해야 해요. 실패를 입에 올리지 않는 투지와 정신도 있어야 하죠.”라고 말한다면 그게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사탄의 논리를 하나님의 말씀이나 진리로 여겨 사람에게 증거해 주는 것으로, 하나님을 제대로 증거하기는커녕 오히려 사탄의 웃음거리가 되고 하나님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다. 너는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이겠느냐? 만약 하나님이 이 일로 인해 너를 정죄한다면 너는 억울하다고 생각하며 “저는 무지하고 아무것도 몰라요. 하나님께서도 제게 교제하지 않으셨어요.”라고 말할 것이다.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면 그 성질은 꽤나 심각한데, 그럼 하나님은 어떻게 해야겠느냐? 내버려둬도 되겠느냐? (안 됩니다.) 딱히 무언가를 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너희가 최대한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의 이해 정도와 내가 너희에게 알려 줄 수 있는 것에 근거해 대체 무엇이 진리인지, 너희가 좋고 옳다고 생각하는 그런 말들이 진리와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 그게 진리인지 아닌지 최대한 너희에게 알려 주려는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알려 줘야 한다. 네가 알고 나서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고집한다면 하나님은 너를 내버려두거나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정죄돼야 한다. 하나님이 행동할 것이다. 하나님은 왜 그렇게 하겠느냐? 네가 깨닫지 못했을 때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은 네가 무지몽매하다고 생각하고 너를 대하겠지만 네가 알고도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뻔히 알면서도 죄를 저지르는 것이니 하나님은 원칙대로 처리할 것이다.

2019년 1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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