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6 적그리스도의 인품과 성품 본질에 관한 정리(3) 제 4 부
2) 진리를 싫어한다
이어서 적그리스도의 성품 본질 제2조, ‘진리를 싫어한다’에 관해 교제하겠다. 진리를 싫어하는 조항에 대해서는 예전에 세부 내용을 적잖이 교제한 바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주로 진리를 싫어하는 적그리스도의 성품 본질을 해부함으로써 적그리스도 부류를 규정하도록 하겠다. 진리를 대하는 적그리스도의 주된 성품 특징은 단순히 흥미를 느끼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싫어한다는 것이다.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그저 진리를 대하는 태도 중 정도가 비교적 낮은 것일 뿐, 적대시하고 정죄하고 대항하는 정도는 아니다. 그저 흥미를 느끼지 않고 신경을 안 쓰려 하며, “긍정적인 사물이니, 진리니 하는 게 다 뭐야? 그런 걸 얻으면 어떻게 되는데? 그런 걸 얻으면 잘살고 능력을 키울 수 있나?”라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것에 흥미를 느끼지 않기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지, 싫어한다고는 할 수 없다. 싫어한다는 것은 일종의 태도 표명이다. 어떤 태도겠느냐? 긍정적인 사물이나 진리와 관련된 것이라면 듣는 순간 마음속으로 증오하고 반감을 느끼고 거부하며 듣지 않으려 한다. 심지어는 증거를 찾아 진리를 정죄하고 폄하하려고도 한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싫어하는 성품 본질이다.
적그리스도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이 한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며, 하나님이 한 사역을 체험할 수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 역시 지면상으로는 하나님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 같다. 하나님이 말씀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그 말씀들은 다 사람이 옳은 길에 오르고 좋은 사람이 되게 한다는 것을 알지만, 이론에만 머무른다. 이론에 머무른다는 것은 무슨 의미겠느냐? 예컨대, 어떤 사람은 책에 나온 이론을 보고 좋다고 생각하지만, 실생활과 대조하고는 이 사악한 흐름, 인류의 패괴, 그리고 전 인류의 각종 필요를 보며 그 말들이 비현실적이고 실생활과 동떨어져 있다고, 사람이 이 사악한 흐름과 사악한 사회에 적응하거나 순응하게 해 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그 말들이 좋기는 하지만 그저 입으로 말하는 데 그친다고, 아름다운 사물에 대한 인류의 바람이나 환상을 만족시켜 주는 데 그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만약 사람이 지위를 좋아하여 고위 공무원이 되고 싶고, 사람들 사이에서 떠받들어지고 숭배받고 싶다면, 거짓말을 하고 스스로를 뽐내고 다른 사람을 짓밟는 등 비정상적인 수법으로 그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하지만 진리는 딱 그러한 사물을 정죄하며, 사람의 그런 욕망과 야심을 정죄하고 부정한다. 실생활 속에서 사람은 두각을 드러내는 게 정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요구는 하나님과 진리 앞에서 모두 정죄된다. 그래서 사람의 그런 요구는 하나님 집에서 통하지 않고, 발휘될 여지가 없으며, 실현될 공간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적그리스도 부류가 포기하겠느냐?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 그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이해했어. 이제 보니 진리는 사람이 자기 스스로를 잊고 버리게 하고, 관용과 아량을 갖게 하는 거였어. 자기 자신은 없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진리야.’라고 정의한다. 진리에 대해 이런 정의를 내린 후 그가 진리에 흥미를 보이겠느냐, 아니면 반감을 보이겠느냐? 그는 진리에도, 하나님에게도 반감을 보인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은 늘 진리를 얘기하시고, 사람의 욕망과 야심 등 정결치 않은 것들을 드러내셔. 또 사람의 영혼 깊은 곳에 있는 것들을 드러내시고. 아무래도 하나님이 진리를 교제하시는 목적은 지위와 욕망, 야심에 대한 사람의 추구를 박탈하는 데 있는 것 같아. 처음에는 하나님이 사람의 욕망을 만족시켜 주시고, 사람의 바람과 꿈을 이뤄 주실 수 있다고, 사람이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을 이뤄 주실 수 있다고 생각했지.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이실 줄은 몰랐어. 아무래도 별로인 것 같아. 내 안에 야심과 욕망이 가득한데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하실까? 여태까지 하나님이 하신 말씀과 하나님 말씀의 행간을 보면, 하나님은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 하나님은 나 같은 사람과 맞지 않으셔. 나는 이런 실제 하나님과 맞지 않는 것 같고. 그분이 하신 말씀과 사역, 그분의 일 처리 원칙, 그리고 그분의 성품이 나는 왜 마음에 거슬리는 걸까? 정직한 사람이 되고 양심을 갖추는 것, 일이 닥쳤을 때 구하고 순종하며 하나님께 경외심을 갖는 것, 자신의 야심과 욕망을 내려놓는 것 등 이런 것을 나는 못 해! 하나님의 요구는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지상정도 아니야. 그러니 어떻게 믿겠어?’ 이렇게 생각한 그가 하나님에게 호감을 갖겠느냐, 아니면 거리감을 느끼겠느냐? (거리감을 느낄 것입니다.) 한동안 체험한 적그리스도는 점점 더 자기처럼 야심과 욕망이 있고 포부가 가득한 사람은 하나님 집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쓰일 곳이 없다고, 포부를 펼칠 수 없다고 여긴다. ‘하나님 집에서는 어떻게 해도 두각을 드러낼 수가 없어. 빛 볼 날이 없다고. 그러면서 나더러 영적인 이해력이 없다느니,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느니, 적그리스도 성품이 있다느니 그러잖아. 발탁해서 중용하기는커녕 정죄한다고. 내가 독립 왕국을 세우면 그게 뭐? 사람들을 괴롭히고 못살게 굴면 그게 또 뭐? 나한테는 권력이 있으니 그렇게 해야 한다고! 권력이 있으면서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어? 선거 때 부정행위를 저지르고 속임수를 쓰면 그게 뭐? 이방인들은 다 그러지 않나? 하나님 집에서는 왜 안 되는 거야? 그건 몰염치한 행동이라느니 그러는데, 그게 왜 몰염치한 행동이야? 사람은 높은 곳으로 가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말도 있잖아. 그건 정당한 거라고! 하나님 집은 재미없어. 하지만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너무 흉악해서 함께 지내기가 힘들단 말이지. 하나님 집 사람들은 그래도 솔직하잖아. 여기에 섞여 있는데 하나님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이 없고 사람을 다스리는 진리가 없다면, 내가 하나님 집에서 대장이고 주인이고 왕일 텐데.’ 그는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면서 부단히 갖가지 일을 겪고, 책망과 훈계를 받으며, 여러 본분에서 교체되다가 마지막에 한 가지를 깨닫는다. ‘하나님 집에서는 어떤 일이 닥치든 진리로 판단하고 해결해. 모두 진리를 강조한다고. 하나님도 한결같이 진리를 얘기하시잖아. 나는 여기에서 포부를 펼칠 수 없어!’ 여기까지 체험한 그는 진리, 진리가 권세를 잡는 것, 하나님의 모든 행사는 진리라는 것, 진리를 구하는 것 등을 점점 더 싫어하게 된다. 어느 정도로 싫어하겠느냐? 제일 처음, 자기가 인정한 진리의 도리적인 측면조차 인정하거나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며 마음속으로 극도의 반감을 보인다. 그래서 그는 예배만 했다 하면 졸고 걱정한다. 무엇을 걱정하겠느냐? ‘한 번 자리에 앉으면 서너 시간이야. 언제쯤 끝이 날까? 듣기 싫다!’ 그의 마음을 형용하는 말이 있으니, 바로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다.”라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 집에서 진리가 권세를 잡는 한 자기가 빛 볼 날은 영원히 없을 거라고, 언제까지고 제한받고 정죄되며 사람들에게 버림받는 대상이 될 거라고, 아무리 큰 능력이 있어도 중용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진리와 하나님을 점점 더 혐오하게 된다. 그가 왜 처음에는 혐오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그는 처음에도 혐오했다. 다만 그때는 하나님 집의 모든 것이 낯설고 개념이 없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혐오하지 않고 싫어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실 그는 스스로 깨닫지 못했을 뿐, 그때도 본성 본질 속에서 진리를 싫어했다. 이 사람들의 본성 본질은 의심할 여지 없이 진리를 싫어하는 것이다. 어째서 이렇게 말하겠느냐? 그는 천성적으로 불의와 사악한 것, 권세, 사악한 흐름, 권력을 잡는 것, 남을 통제하는 것 등 모든 부정적인 사물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들을 볼 때, 적그리스도 부류는 의심할 여지 없이 진리를 싫어하는 존재이다. 이 밖에, 그의 추구를 볼 때, 그는 지위를 추구하고, 두각을 드러내기를 추구하고, 자기한테 후광이 나기를 추구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지도자가 되며 위엄과 권세를 갖는 것, 어디에서 말하고 일하든 위신과 힘을 갖고 남들을 통제하는 것을 추구한다. 그는 이런 것들을 추구하는데, 이 또한 진리를 싫어하는 모습이다. 또한, 진리를 대하는 그의 태도를 볼 때, 이런 사람은 아무리 많은 진리를 들어도 소용이 없다. 혹자는 “그건 기억력이 나빠서 그런 걸까요?”라고 묻는데 그렇지 않다. 어떤 적그리스도는 기억력이 좋고 말재간이 뛰어나서 배운 것을 바로 써먹는데,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그 부류가 자질이 좋고 성령 역사가 있다고 생각한다. 분별력이 있는 사람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그것은 전부 도리이고 빈말로, 진리 실제가 전혀 없으며 사람을 미혹하는 말임을 깨닫는다. 적그리스도는 이런 부류로, 높은 도를 말하기 좋아하고, 영적인 이론을 의미 없이 떠들며, 말이 청산유수 같다. 말만 했다 하면 종잡을 수가 없어 많은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데도 그는 “이것은 셋째 하늘의 말입니다. 그러니 당신들이 어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한다. 적그리스도가 진리를 싫어하는 가장 주된 모습은 진리를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물론 그들의 일상생활이나 일 처리, 특히 본분 이행에서도 나타난다. 그들에게는 몇 가지 모습이 있다. 그중 하나는 진리를 구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마음속으로 진리를 구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구하지 않는다. 이 밖에, 진리를 실행하는 법이 없다. 구하지 않는데 어떻게 실행할 수 있겠느냐? 구해야 깨달을 수 있고, 깨달아야 실행할 수 있다. 그는 구하지 않고, 진리 원칙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으며, 심지어는 경멸하고 싫어하고 적대시하기에 결코 진리 실행과 연결되지 않는다. 설령 가끔 깨닫는다고 할지라도 실행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이 닥쳐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게 좋다고 말하면 그는 “뭐가 좋죠? 그렇게 하면 제 생각은 수포가 되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한다. 상대가 “당신 생각대로 따르면 하나님 집에 손해를 끼치게 됩니다. 우리는 원칙대로 일을 처리해야 해요.”라고 말하면 그는 “무슨 원칙이요? 제가 이렇게 하는 게 원칙입니다. 제 생각이 바로 원칙이라고요!”라고 말한다. 이는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들의 가장 주된 모습 중 하나는 바로 하나님 말씀을 읽거나 큐티 생활을 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역으로 정신이 없어 하나님 말씀을 읽을 틈이 나지 않으면 마음속으로 묵상하거나 찬양을 부른다. 또 며칠간 하나님 말씀을 읽지 않으면 마음속이 공허해진 것 같아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서 한 단락 읽음으로써 마음을 충실하게 하고, 묵상하며 하나님의 함께함을 느끼는데, 그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많이 멀어진 게 아니다. 반면 적그리스도 부류는 하나님 말씀을 하루 안 읽어도 괴로워하지 않고, 열흘 안 읽어도 아무 지각이 없으며, 1년 안 읽어도 마찬가지로 잘 살아간다. 심지어 3년 동안 하나님 말씀을 읽지 않아도 지각이 없고 마음속으로 두려워하거나 공허함을 느끼지 않은 채 언제나처럼 편하게 잘 살아간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그의 혐오가 얼마나 심각하냐!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하루 읽지 않았다면 바쁘기 때문이고, 열흘 읽지 않았다면 이 역시 바쁘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한 달 동안 읽지 않았는데 마음속에 아무 느낌이 없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또 1년 동안 읽지 않았다면 이는 하나님 말씀을 갈망하지 않는 것뿐만이 아니라 진리를 싫어하는 것이다.
진리를 싫어하는 적그리스도 부류의 또 다른 모습은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측면에 대해서는 예전에 교제한 바 있다. 그럼 그는 그리스도가 뭘 했다고 멸시하겠느냐? 그를 괴롭히고 해쳤느냐, 아니면 그의 뜻에 맞지 않는 무슨 일을 했느냐? 그의 어떤 이익에 손해를 끼쳤느냐? 아니다. 그리스도는 그와 사적인 원한이 없으며, 심지어 아예 일면식도 없다. 그럼 그가 왜 멸시하겠느냐? 근본 원인은 진리를 싫어하는 적그리스도의 본질에 있다. 진리를 싫어하는 적그리스도의 모습 중 또 다른 한 가지는 바로 모든 긍정적인 사물의 실제를 멸시하는 것이다. 모든 긍정적인 사물의 실제가 포괄하는 범위는 무척 넓다. 하나님이 지은 만물과 만물의 법칙, 각종 생명체와 그들의 생활 법칙 같은 것이 있고, 무엇보다도 사람이라는 생명체의 각종 생활 법칙이 있다. 일례로, 사람의 삶과 가장 가까운 생로병사를 들 수 있다. 정상인은 나이가 들면 걸음걸이가 불편해지고 몸이 약해진다. 눈이 침침해지고 귀도 잘 안 들리며 치아도 헐거워져서 노화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주재하며, 그 누구도 이 자연법칙을 어길 수 없다. 정상인은 누구나 이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사람이 몇 살까지 살든, 몸 상태가 어떻든, 사람의 본분 이행 방식이나 태도, 사람이 서야 할 자리 등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그리스도 부류는 불복하며 말한다. “제가 누구입니까? 저는 늙을 수 없습니다. 저는 언제까지고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겁니다. 제가 늙어 보이나요? 당신들이 이 나이가 되면 하지 못할 일도 저는 할 수 있습니다. 당신들은 50살만 돼도 다리를 잘 못 쓰겠지만, 제 다리는 여전히 팔팔하다고요. 저는 담을 뛰어넘고 벽을 타는 훈련도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늘 하나님이 정해 놓은 정상적인 법칙에 도전하려 하고, 그 법칙들을 깨서 자신은 남들과 다르고 비범한 초인적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 주려 한다. 왜 그렇게 하겠느냐? 하나님 말씀에 도전하고, 하나님 말씀이 진리임을 부정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는 진리를 싫어하는 적그리스도의 본질이 드러난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밖에 한 가지가 더 있다. 적그리스도는 사악한 흐름과 흑암 권세를 숭배한다. 이는 그가 진리를 적대한다는 사실을 더더욱 실증한다. 적그리스도는 사탄 정권과 전설 속 각종 악령의 능력, 재주, 소행, 그리고 사악한 흐름과 흑암 권세를 엎드려 절할 정도로 숭배하고 탄복한다. 그는 이런 것들을 굳게 믿으며, 한 번도 의혹을 품은 적이 없다. 마음속으로 싫어하기는커녕 앙모와 숭배, 부러움으로 가득하며, 심지어 내면 깊이 그런 것들을 바짝 뒤따르고 있다. 이 사악하고 어두운 것들에 대해 적그리스도는 마음속 깊이 이런 태도를 보인다. 그러니 그는 진리를 싫어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느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이 사악하고 어두운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 중 진리를 좋아하는 자가 한 명이라도 있겠느냐? 이런 자는 사악한 세력과 사탄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는 사탄의 것들에 대해서도 당연히 굳게 믿는다. 반면, 진리나 긍정적인 사물에 대해서는 마음속에 반감과 멸시가 가득하다. 진리를 싫어하는 항목은 대략 이 정도로 정리하도록 하겠다.
3) 흉악하다
적그리스도의 성품 본질에는 ‘흉악함’도 있다. 적그리스도 부류는 한마디로 악인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 부류의 사람이 지위를 가지면 적그리스도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다. 그럼 지위가 없을 때는 그들이 적그리스도인지 어떻게 판단해야겠느냐? 인성이 어떤지를 보면 된다. 인성이 악독하고 음험하고 악랄하다면 100% 적그리스도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한 번도 지위를 가져 본 적이 없고, 리더를 해 본 적도 없는데, 인성이 그다지 좋지 않아 보인다면, 그가 적그리스도인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겠느냐? 악랄한 인성을 지녔는지, 악인인지를 보면 된다. 만약 그가 악인이라면 지위를 가질 필요도 없이 100% 적그리스도일 것이다. 따라서 적그리스도 부류의 다른 한 가지 전형적인 성품 본질은 바로 흉악함이다. 적그리스도의 흉악한 성품이 사자나 호랑이 등 먹이 사냥을 하는 맹수의 흉악함과 같겠느냐? (같지 않습니다.) 육식동물이 먹이 사냥을 하는 것은 배가 고파서이다. 그것은 육체의 필요이자 본능이다. 하지만 그 동물들은 배가 고프지 않으면 사냥하지 않는다. 그럼 적그리스도의 흉악함은 이 동물들과 어떤 차이가 있겠느냐? 적그리스도는 네가 건드리지 않으면 사납게 굴지 않고, 꼭 건드려야만 사납게 굴더냐? 또는 네가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면 너를 통제하지 않고, 그의 말을 들으면 통제하더냐? 네가 그의 말을 들으면 너를 괴롭히지 않고,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면 괴롭히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적그리스도의 흉악함은 일종의 성품이자 본질이다. 그것은 영락없는 사탄의 본질로, 본능도, 육체의 필요도 아니다. 그것은 적그리스도 성품의 한 가지 모습이자 특징이다. 그럼 적그리스도의 흉악한 성품은 어떤 모습과 표출, 행동으로 드러나겠느냐? 그가 하는 어떤 일이 그의 흉악한 성품과 악인의 본질을 대표하겠느냐? 말해 보아라. (사람을 혼내고 괴롭히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를 공격하고 배척하는 것이 있습니다.) (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모함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밖에도, 패거리를 짓고 이간질하는 것이 있습니다.) 패거리를 짓고 이간질하는 것은 좀 음험하다. 그것은 사악한 성품에 속하는 모습으로, 아직 흉악한 수준은 아니다. 관념을 퍼뜨리고 독립 왕국을 세우는 것은 흉악함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사역지침에 대항하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교란하며 하나님의 제물을 강점하고 하나님에게 직접 대항하는 것은 흉악함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제물을 강점하는 것은 탐욕일 뿐 아니라 흉악한 성품의 모습이기도 하다. 제물을 강점할 수 있는 자는 성품이 너무도 흉악해서 비적과 같다. 방금 종합한 그 몇 가지를 다시 한번 말해 보아라. (사람을 혼내고 괴롭히는 것,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를 공격하고 배척하는 것, 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모함하는 것, 사람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것, 관념을 퍼뜨리는 것, 독립 왕국을 세우는 것, 사역지침에 대항하는 것, 하나님을 공격하는 것, 제물을 강점하는 것입니다.) 총 아홉 가지다. 적그리스도의 흉악한 성품의 모습에는 기본적으로 이런 것들이 있다. 사실 구체적인 모습들은 더 있지만, 앞서 말한 것들과 유사하니 더 이상 구체적으로 열거하지는 않겠다. 어쨌든 이런 행동과 수법을 보이는 부류가 바로 악인이다. 그의 행동이 음험한 것이 한 측면이다. 예를 들어, 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모함하는 것, 관념을 퍼뜨리는 것 등은 비교적 음험한 행동이다. 이 밖에, 그는 수법이 악랄하고 흉악한 편이다. 이는 성품이 흉악한 수준에 이른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이 세 가지 측면의 성품 본질로 볼 때, 적그리스도 부류가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가 기꺼이 하나님 집에서 힘을 쓰겠느냐?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진리를 추구하거나 좋아하지 않으며, 마음속에 하나님과 긍정적인 사물에 대한 적대감이 가득하다. 하나님 집에서 힘쓰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그는 달가워하지 않는다. 적그리스도는 사람이 정상적으로 해야 하는 일도 하지 못한다. 또 적그리스도는 그것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의 정상적인 본분 이행의 질서와 교회 생활을 교란하고 방해하고 망치려 들며, 이와 동시에 하나님 집 사역과 사람들의 정상적인 생명 진입,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정상적인 사역을 교란하려 든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또 하나님 집에서 왕권을 잡고자 하고, 사람들을 미혹하고 회유하고 통제하려 하며, 하나님 집에서 자신의 독립 왕국을 세우고 자기 파벌을 만들려고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철저히 그의 추종자로 바꿔 놓음으로써 권력을 잡고 하나님의 선민들을 통제하여 하나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야심과 욕망을 충족하려는 것이다. 그럼 적그리스도 부류가 하나님 집에서 조금이라도 쓸모가 있겠느냐? 조금이라도 좋은 역할을 하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들의 인성에서 추구까지, 그들의 야심과 욕망에서 그들이 걷는 길, 그리고 진리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까지 보면 이 부류는 하나님 집에서 그저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고 망치는 역할만 할 뿐, 조금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들은 진리를 추구하는 법이 없고, 그들의 본성 본질은 진리를 싫어하며, 진리와 하나님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본질이다.
오늘까지, 적그리스도의 갖가지 모습에 대해 완전히 교제를 마쳤다. 너희는 오늘 교제한 내용을 통해 적그리스도 부류를 분별할 수 있겠느냐? 가장 간단한 한마디 말로 종합하자면, 악인이 바로 적그리스도이고, 적그리스도가 바로 악인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니 너희는 훨씬 더 명확해졌느냐? 이해하기가 쉬워졌느냐? 최근 몇 년간 계속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을 해부했고, 너희도 숱한 연단을 겪으며 자신이 적그리스도인지 아닌지 걱정하다가 오늘 마침내 결과가 나왔다. 그 과정은 무척 힘들었지만, 마지막 결과는 좋은 것이었다. 즉, 너희가 적그리스도 성품을 지녔지만 적그리스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어떻게 이해한 것이냐? 내가 교제한 어떤 말이 너희를 일깨워 주었느냐? (지난번에 하나님께서 적그리스도의 인품과 성품 본질의 차이를 교제해 주셔서 얼마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은 악을 행해도 회개하고 변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그리스도 성품 본질을 지닌 사람은 죽어도 회개하지 않고, 아무리 많은 악을 행해도 전혀 지각이 없습니다.) 사람이 얼마간 적그리스도 성품을 표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며, 그것은 자신의 주관적인 바람으로 생긴 일이 아니다. 발견한 후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고통받고 후회하고 죄책감을 느끼면 조금씩 뉘우칠 수 있다. 이 점을 인식하면 마음이 한결 놓일 것이며, 자신은 아직 만회할 여지가 있고, 적그리스도는 아니고, 적그리스도 성품과 관계가 있기는 하지만 다행히도 적그리스도의 성품 본질과는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네가 악인만 아니라면 적그리스도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너에게 적그리스도 성품이 없다는 의미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사람은 누구나 적그리스도 성품을 지니고 있다고 하면 마음속으로 거부감이 드느냐? (거부감이 들지 않습니다.)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는 것은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적그리스도 성품 본질의 모습에 대해 너희가 종합해 보아라.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며, 영원히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본질을 짚었구나. 적그리스도는 영원히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며, 진리를 싫어하고 적대시한다.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지만, 적대시하지는 않는다. 또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옳고 좋다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앙모하고 추구하려고 한다. 다만 자질이 떨어져서 길이 없다. 또 어떤 사람은 진리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지만, 적대시하지도 않는다. 이는 미지근한 부류이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다르다. 그는 진리를 싫어하고 적대시한다. 진리와 하나님에 대해 말하기만 하면 증오심을 느끼고, 진리를 받아들이게 하면 태도를 바꿔 마음속으로 반감을 느끼며,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본질이다. 또 무엇이 있겠느냐? (적그리스도는 어떤 잘못을 저지르든 죽어도 회개하지 않으며, 영원히 진리를 실행하지 못합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고, 죽어도 회개하지 않으며, 몇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진리이고 하나님 말씀이 진리임을 인정하지도 않는데 무슨 진리 실행을 말할 나위가 있겠느냐? 그는 절대 진리를 실행하지 못한다. 그는 인성이 없으며, 사람이 아니라 마귀 사탄이자 하나님의 원수이기 때문이다.
2020년 12월 26일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