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6 적그리스도의 인품과 성품 본질에 관한 정리(3) 제 3 부

⑦ 부정하고 정죄하고 판단하고 모독한다

이어서 ‘부정’, ‘정죄’, ‘판단’, ‘모독’ 등 몇 가지 단어에 관해 교제하겠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에 대한 의혹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선포한 모든 진리에 흥미를 느끼지 않으며, 마음에는 혐오감과 증오로 가득 차 있다. 그리스도가 진리임을 인정한 적이 없으니, 말할 필요도 없이 순종하는 태도가 전혀 없다. 그는 마음속으로 늘 하나님을 의심하고 추측하며, 또 언제나 하나님의 행사에 관념과 갖가지 생각을 품고 있다. 그래서 그는 수시로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저울질한다. ‘하나님은 정말 존재하는 걸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 걸까? 지식의 관점으로, 또 도리적으로 따져 본다면,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나님은 무슨 의미로 이 말씀을 하셨을까? 무슨 의미로 이 단어를 쓰셨을까? 누구를 대상으로 말씀하신 걸까?’ 그는 이렇게 저렇게 수년을 연구하지만, 하나님이 선포한 말씀과 행한 사역 속에서 하나님이 진리이자 생명이자 길이라는 가장 핵심적인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그는 깨닫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사람들이 하나님이 선포한 말씀은 다 진리라고 하면 적그리스도는 궁리한다. ‘다 진리라고? 그냥 평범한 말 아닌가? 흔하게 하는 말 아냐? 별로 심오할 것 없어 보이는데.’ 그리고 다시 하나님의 행사를 보며 생각한다. ‘하나님이 교회와 하나님의 선민들 가운데서 행하신 일에서는 하나님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가 없어. 하나님은 만유를 주재하신다고 하지만, 모르겠는걸. 돋보기나 천체 망원경으로 아무리 봐도 하나님의 모습을 찾을 수 없고, 하나님의 행사를 발견할 수도 없잖아. 그러니 아직은 하나님이 정말 존재하는지 100% 확신할 수 없어. 하지만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자니, 세상에는 기이한 일, 신비로운 사건들도 있다고 하잖아. 그러니 하나님은 분명 존재할 거야. 그렇다면 하나님은 과연 어떻게 생기셨을까? 과연 어떻게 행사하실까? 모르겠어. 가장 간단한 방법은 하나님이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과연 어떤 일을 하시고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보는 거겠지.’ 관찰을 통해, 그는 하나님 집에서 수시로 사람들을 책망하고 훈계하며 자주 사람들을 발탁하고 교체한다는 사실을, 또 수시로 갖가지 본분이나 업무 관련 사역에서 사람들과 교제하고 토론하고 교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럼 그는 생각한다. ‘이런 건 다 사람이 하는 일 아닌가? 초자연적이지 않고 전부 무척 정상적이잖아. 하나님의 영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고. 느낄 수 없다면 성령 역사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런 건 다 사람이 의식 속에서, 머릿속에서 상상해 낸 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성령 역사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영은 과연 존재할까? 의문을 제기해야 할 것 같네. 만약 하나님의 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과연 존재하실까? 말하기 어려워.’ 5년을 체험해도 확신을 못 하고, 10년, 심지어 15년을 체험해도 확신하지 못한다. 이런 자는 어떤 사람이겠느냐? 그들이 불신파임이 드러났다. 이 불신파는 하나님 집에서 이렇게 섞여 지내며 대세를 따른다.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면 그도 전하고, 사람들이 본분을 이행하면 그도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발탁될 기회가 오면 그는 하나님 집에서 ‘관직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지위를 위해 억지로 힘을 좀 들이지만, 이와 동시에 나쁜 짓을 저지르고 방해하고 교란한다. 평범한 일원으로서 지위가 없다면, 그는 몸을 사리면서 체면이 서는 일만 좀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루하루 되는대로 지내는 것이다. 어째서 이렇게 말하겠느냐? 그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의심하고 부정하며, 하나님의 존재와 본질에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 집에서 마지못해 본분을 이행한다. 또 그는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항상 생각한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일해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생계를 꾸려 나가는 것도 아니잖아. 몇몇 젊은이들은 자신을 바쳐 평생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기까지 하는데, 그래서 뭘 얻을 수 있지? 그러니까 먼저 관찰하자. 정말 그 내막을 알아낼 수 있고 복받을 희망이 보인다면, 힘을 들이고 헌신해도 헛수고는 아닐 거야. 만약 정확한 하나님 말씀을 얻지 못하고 내막을 알아낼 수 없다면, 이렇게 하루하루 때우는 것도 손해는 아니야. 어쨌든 힘들지 않고, 그렇게 많은 걸 바친 것도 아니잖아.’ 이는 되는대로 살아가는 것 아니겠느냐? 무슨 일을 하든 진심을 다하지 않고, 오래 지속하지 못하며, 제대로 해내지도 못하고, 진실로 대가를 치르지도 못하니, 이것이 바로 되는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되는대로 살아간다고는 하나, 그의 머릿속은 쉬지 않고 매우 바쁘게 돌아간다. 그는 하나님이 행하는 많은 일에 대해 관념과 생각으로 가득하며, 자기 관념에 맞지 않는 많은 일을 마음속에서 지식과 법률, 사회도덕, 전통문화 등으로 따져 본다. 이렇게 저렇게 따져 보는데, 진리를 알아내거나 진리 실행의 원칙을 찾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과 하나님이 한 사역에 대해 각종 정죄와 판단, 심지어는 모독까지 한다. 적그리스도는 먼저 무엇을 판단하겠느냐? 그는 “하나님 집의 사역은 전부 사람이 결정하고, 사람이 행해. 뭐가 하나님이 사역하시고 성령이 이끌며 인도하신다는 거야? 나한테는 안 보이는데.”라고 말한다. 이는 불신파의 말 아니겠느냐? 사람이 행한다고 하면 문제가 많아진다. 예를 들어, 하나님 집에서 누군가를 뽑고 양성하는 게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그는 마음속으로 불복한다. 적그리스도가 진실로 순종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럼 그는 어떤 일들을 하겠느냐? 그는 상대를 실각시킬 것이다. 만약 실각시키는 데 실패한다면, 형제자매들이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그를 지지하지 않는다면 그는 정죄할 것이다. ‘하나님 집은 불공평해.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대할 때 원칙이 없고. 세상에 천리마는 많지만 백락은 흔치 않아.’라고 말이다. 이 말은 무슨 의미냐? 자기는 천리마인데, 안타깝게도 하나님 집에 백락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 집에서 자기 관념에 맞지 않게 처리한 그 일을 정죄한 후 뒤에서 이것저것 퍼트린다.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관념을 퍼트리고, 소극적인 기운을 퍼트리는 것이다. 물론 그가 하는 말들은 다 무척이나 귀에 거슬린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람은 문화적 소양이 있고, 외모도 괜찮은 데다가 외모 관리도 할 줄 압니다. 게다가 도시 사람이고요. 우리는 시골 사람이라서 재능이 있어도 표현하지 못하고, 상부와 소통도 하지 못해 발탁되기가 쉽지 않죠. 하나님 집에서 발탁되는 사람은 모두 말재간이 있고 아부할 줄 알고 수완이 좋은 자들입니다. 반면 우리는 말재간이 없죠. 드러나지 않는 재능은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집에서도 세상과 마찬가지로 “천리마는 많지만 백락은 흔치 않다.”라는 말이 성립되는 겁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말은 무슨 뜻이냐? 판단하는 것 아니겠느냐? 하나님 집의 사역을 판단하고, 뒤에서 그것을 퍼트리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의 선포,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성품, 그리고 하나님의 다양한 사역 방식을 지식과 철학의 방식으로 판단하고 연구하고 추리하여 마지막에 잘못된 결론을 도출한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마음속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거나 깨닫거나 묵상하는 법이 없고, 하나님 말씀을 하나의 이론과 좋은 어구로 삼는다. 또 일이 닥쳤을 때,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기초로 삼거나 원칙으로 하여 그 각각의 일을 바라보거나 정의하거나 가늠하는 게 아니라 사람의 시선과 사탄의 철학, 이론으로 판단한다. 이렇게 도출한 결론은 바로 모든 일이 그의 관념에 맞지 않으며, 하나님이 선포한 모든 말씀과 하나님이 행한 모든 일이 그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이 행한 모든 일은 적그리스도의 눈에 정죄되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집에서 늘 권력을 잡고 싶어 하지만, 이렇다 할 자질도 특기도 없어 하나님 집에서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사역만 맡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청소나 물건 전달 등 간단한 사무 일을 하는 것이다. 결국, 이 부류의 사람은 교회 리더나 설교원 등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부류의 사람은 평범하게 따르는 자가 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못하며, 자기 눈에 평범해 보이는 사역을 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야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야심으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이 어떻게 드러나겠느냐? 하나님 집의 크고 작은 일을 전부 물어보고 알아보고 내막을 알고자 하며, 나아가 개입하려고 한다. 힘쓰는 일을 좀 하라고 하면 그는 늘 이런저런 것을 알아본다. “우리 하나님 집의 서적 인쇄 상황이 어떻습니까? 우리 교회에서 영상 감독으로 뽑힌 사람은 어떤가요? 지금 누가 감독을 하고 있죠? 각본은 누가 쓰나요? 누가 우리 지역 리더인가요? 그 리더는 어떻죠?” 그가 왜 이런 일들을 알아보겠느냐? 그가 이런 일들에 대해 묻고 신경 써야겠느냐? (그렇게 해선 안 됩니다.) 그것들은 전부 사무적인 일로, 진리와는 무관하다. 그럼 이 ‘마음씨 좋은 사람’은 왜 늘 이런 것들을 알아보겠느냐? 걱정하기를 좋아하는 것이겠느냐, 아니면 힘이 남아도는 것이겠느냐? 전부 아니다. 위로 올라가고, 권력을 독점하려는 야심이 있어서이다. 그럼 그는 그것이 야심이고 권력을 독점하려는 것임을 의식하겠느냐? 의식하지 못한다. 그에게는 그런 이성이 없다. 그는 인성이 악랄하고 자질이 부족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가장 간단한 본분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본분 이행 과정에서 늘 나쁜 모습을 보이며,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일하기는 싫어하고 편한 것만 좋아한다. 심지어는 여기저기에서 온갖 정보를 알아내다가 결국 그런 모습 때문에 제명된다. 하나님 집에서 그를 제명한 것은 옳은 일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걱정하기를 좋아하고 온갖 정보를 알아내기를 좋아해서 제명한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바른 일은 하지 않고 하나님 집에서 늘 공밥을 먹기에 여기에서 되는대로 살지 말라고 내보낸 것이다. 무슨 일을 시키든 제대로 하지 못하니, 그를 썼다간 득보다 실이 클 것이다. 이는 불신파 아니겠느냐? 이런 자는 제명해야 하지 않겠느냐? 제명될 위기에 처하자 조급해진 그는 그제야 진리 원칙을 구하며 말한다.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제명하고 출교하는 원칙이 과연 뭔지 찾아야겠습니다. 당신들은 무슨 근거로 저를 제명하는 거죠?” 그럼 너는 이렇게 대답해라. “당신처럼 그렇게 편한 것만 좋아하고 일하기는 싫어하며, 무슨 일을 하든 교란하고 망쳐 놓는 사람은 제명의 원칙에 100% 부합합니다.” 그렇게 많은 악행을 저질러 놓고도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 채 사람을 제명하는 원칙이 무엇인지 찾으려 드니, 참 가소롭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 중 일부는 제명당하고, 일부는 일반 교회로 보내진다. 그들은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기에 어울리지 않으며, 본분 이행의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 그럼 이런 부류의 사람이 하나님의 행사가 진리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의식할 수 있겠느냐? 단언컨대, 적그리스도 부류는 영원히 인식하지 못한다. 그는 불신파이며, 진리에 부합하는 어떤 긍정적인 사물도 적그리스도에게 판단되고 정죄되기 때문이다. 내막을 알아내기를 좋아하고 야심만만해서 늘 위로 올라가려 하고, 자신의 본분에는 전혀 진심과 충성심을 다하지 않던 적그리스도는 쫓겨날 때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하며 말한다. “제 선의와 진실한 충성심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군요. 왜 저를 쫓아내는 겁니까? 억울합니다. 내키지 않아요! 그 누구도 하나님을 위해 저처럼 이렇게 마음을 쓰지 않았을 것이고, 그 누구도 하나님 집에서 저처럼 이렇게 충성을 다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 이 크나큰 열정과 선의가 하등 값어치 없는 것이 되다니, 하나님도 불공평하십니다!” 이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의 이 말에 사람다운 말이 한마디라도 있느냐? 실상에 부합하는 게 한마디라도 있느냐? (없습니다.) 전부 거친 말이고 터무니없는 말이며 불신파의 말이다. 또 전부 불평이고 원망이며 정죄의 말이다. 이것이 바로 드러난 것이다. 만약 그를 쫓아내지 않는다면 그는 계속 위장하면서 하나님 집의 주인이 되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주인 노릇을 하는 자가 있겠느냐? 주인이 이렇게 떼를 쓰며 행패를 부리겠느냐? 이렇게 하나님 집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겠느냐? 그에게 청소를 시키면 여기저기 제멋대로 싸돌아다니며 일을 하지 않고, 그에게 주방 일을 시키면 두 사람 몫의 밥도 하기 싫어하면서 힘들어질까 봐 걱정하고, 그것은 천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 리더가 되어 명령을 내릴 줄만 아느냐? 하나님 집에서 이런 사람을 제명하여 내보내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으냐? (합리적입니다.) 이렇게 합리적인데도 그들은 뒤에서 욕하고, 떼쓰고 행패를 부리며, 막돼먹은 여자처럼 행동한다. 이것이 적그리스도 아니겠느냐?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성품 본질이 드러난 것이다. 자신의 이익과 입맛에 맞지 않는 일이 닥치거나 자기 욕망과 바람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일이 닥쳤을 때, 그가 조금이라도 순종하겠느냐? 진리를 구하겠느냐? 마음을 가라앉히고 죄를 인정하며 회개하겠느냐? 그러지 못한다. 그의 첫 번째 반응은 일어나 하나님에게 아우성치는 것이다. 그의 입에서는 정죄하고 판단하고 모독하고 욕하는 말만 나온다. 그는 상황을 보고 ‘하나님 집에서 나를 원하지 않는다면 좋아. 먼저 나한테 각박하게 굴었으니, 내가 너그럽지 않게 굴어도 원망하지 마. 우리 끝장을 보자고. 누가 더 독한지 어디 지켜보잔 말이야!’라고 생각한다. 이런 모습이 진리를 구하는 것이겠느냐? 정상적인 피조물이 지녀야 할 모습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이는 어떤 모습이겠느냐?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어떻게 대해야겠느냐? 반드시 진실로, 무조건 하나님에게 순종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원수인 마귀와 사탄만이 하나님을 부정하고 정죄하고 판단하고 모독하고 욕할 수 있으며, 하나님에게 아우성치고 대항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지금 네가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또 하나님 집에서 네게 억울한 누명을 씌웠다고 주장할 만한 100가지 이유가 있을지라도, 만약 네게 이성과 인성, 하나님에 대해 일말의 경외심이라도 있다면, 하나님을 그렇게 대할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럼 그렇게 행동하는 그에게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겠느냐? 일말의 인성이라도 있겠느냐? 하나님에 대한 일말의 경외심이라도 있겠느냐? (없습니다.) 그는 분명 하나님의 양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여긴 적이 없고,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대한 적도 없다. 그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은 그의 원수지 그의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의 원수는 적그리스도이고 사탄이다. 뒤집어서 말하면 적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의 원수이자 사탄, 마귀이다. 적그리스도는 영원히 하나님이 행한 어떤 일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나님의 어떤 말씀에도 ‘아멘’을 외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의 본질이고, 적그리스도의 타고난 본질이다. 이유 없이 하나님을 적대시하고 정죄하는 것은 사악함 아니겠느냐? 이는 극도로 사악한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이런 성품은 정도는 달라도 모든 사람에게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성품의 표출과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때 선택하는 길을 통해 어떤 부류가 적그리스도이고 어떤 부류가 힘쓰는 자이며 어떤 부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선민인지 판단할 수 있겠느냐? (모두 똑같이 적그리스도의 성품을 표출하지만, 어떤 이는 양심의 지각이 있어 패괴 성품을 표출한 후 죄책감을 느끼고 회개하며 진리를 실행합니다. 이런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양심의 지각이 없어 잘못을 저지르고도 자기가 옳다고 여기며 죽어도 회개하지 않고,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은 적그리스도로, 구원받을 기회가 없습니다.) 이 두 가지가 옳으냐? (옳습니다.) 방금 말한 것은 기본적으로 옳지만, 충분히 구체적이지는 않다. 똑같이 적그리스도 성품을 지니고 있지만, 일이 닥쳤을 때 진리를 구해 육을 저버리고, 자신의 패괴 성품을 인식한 후 후회하는 사람, 죄책감을 느끼고 뉘우칠 수 있는 사람, 진리 원칙대로 실행하고 올바른 길과 진리 실행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 마지막에 진리를 깨닫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여 하나님에게 순종하게 되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는 하나님 선민이다. 또 한 부류는 자신에게 적그리스도 성품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일이 닥쳐도 성찰하지 않고, 자기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도 이렇다 할 진실한 인식이 없으며, 마음속으로 강렬한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회개니 뉘우침이니 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진리나 구원받는 일에 관해서도 흐리멍덩하다. 그는 하나님 집에서 기꺼이 힘을 쓰고자 하고, 뭘 시키든 하지만, 일을 참답게 대하지 않고 때로는 방해하고 교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악인은 아니다. 그는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지만, 일을 처리할 때면 주동적으로 진리를 구하는 법이 없고, 진리 원칙대로 처리하지도 않는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이나 진리에도 흥미가 없다. 본분을 이행하고 힘쓰는 일은 그래도 넘어갈 수 있지만, 진리 추구에 대해 말하면 바로 힘을 잃고,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본분 이행에 충성을 보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원하는 편이고 얼마간 진심을 보인다. 또한, 각종 패괴 성품에 대해 인식할 수 있지만, 일이 닥쳤을 때 반성하는 법이 없으며, 진리를 깨닫고 실행하는 사람이 되고자 추구하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은 힘쓰는 자이다. 마지막 한 가지 부류는 바로 적그리스도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적대시하고 진리나 긍정적인 사물을 적대시하며, 마음속이 사악함으로 가득하고, 늘 하나님에게 아우성치고 대항한다. 또 정의와 긍정적인 사물, 진리에 대한 정죄, 판단, 모독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고,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며, 나아가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 밖에도 스스로를 인식하는 법이 없고, 아무리 많은 잘못과 과오를 저질러도 인정하거나 회개하거나 뉘우치지 않고, 마음속에 어떤 죄책감도 갖지 않으며,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런 자가 바로 적그리스도이다. 진리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있는지 여부로 어떤 부류에 속하는지 판단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확하다. 너희는 어떤 부류에 속하느냐? 구원받을 수 있는 하나님 선민이냐, 아니면 적그리스도냐, 그것도 아니면 힘쓰는 자 부류냐? 지금 첫 번째 부류를 향해 가는 과도기를 겪고 있느냐, 아니면 어떤 부류에도 속하지 않느냐? 어떤 부류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은 이 세 가지 부류 중 하나에 속한다. 인성이 없는 악인은 적그리스도 본질을 지닌 사람이고, 얼마간 인성이 있고 양심과 이성이 있으며, 인품이 상대적으로 좋은 사람, 진리를 추구할 수 있고 긍정적인 사물과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는 부류로, 하나님의 선민이다. 한편, 인품이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쁜 것도 아닌 평범한 사람, 진리에 아무 흥미도 없고 진리 추구를 전혀 원하지 않지만, 본분을 이행할 때 얼마간 진심을 보이는 부류는 힘쓰는 자이다. 이것이 바로 판단 기준이다. 적그리스도가 힘쓰는 자가 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럼 힘쓰는 자 부류에 하나님의 선민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겠느냐? (있습니다.) 여기에서 변화의 여지는 어디에 있느냐?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어쩌면 그는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은 후 경험과 체험, 깨달은 진리가 많아지면 조금씩 힘쓰는 자 단계에서 하나님의 선민 단계로 옮겨갈지도 모른다. 지금은 깨닫는 진리가 적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매우 작기 때문에 본분 이행과 진리 실행에 대한 흥미가 크지 않다. 또 진리를 추구하고, 자신의 야심과 욕망을 내려놓는 등 육적인 각종 필요를 내려놓을 만한 분량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은 힘쓰는 자 단계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부류는 상대적으로 양심이 있고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한다. 점차 진리를 깨달음에 따라, 환경이 바뀌고 하나님을 믿는 햇수가 늘어나고 체험이 점점 깊어짐에 따라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생겨난 후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에 대해서도 조금씩 분명히 알게 될 것이며, 자신이 추구해야 할 길 역시 점점 더 명확해질 것이다. 또 진리에 흥미가 생기고, 갈수록 진리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이런 사람은 차츰 구원받는 길에 오를 수 있고, 하나님의 선민이 될 수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진보하고 변화할 여지가 있다. 반면, 적그리스도 본질을 지닌 사람이 하나님의 선민이 되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적그리스도의 본질은 마귀이자 하나님의 원수이며, 그는 영원히 변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방금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 사역에 대해 적그리스도가 표출하는 사악한 성품과 본질 속 부정, 정죄, 판단, 모독에 관해 교제하였다. 적그리스도는 자기 관념에 맞지 않고 자기 이익에 해가 되는 일이 닥치면 즉시 일어나 반항하며, 이와 동시에 정죄한다. ‘그것은 옳지 않아. 그것은 사람이 한 일이니, 나는 인정하지 않을 거야. 고발해야겠어. 증거를 찾아 그 일을 명백히 밝힐 거라고. 나는 해명하고 변호할 거고, 그 일의 전말을 정리할 거야. 대체 누가 중간에서 농간을 부리고 내 명성에 먹칠을 하였는지, 내 일을 망쳐 놓았는지 보겠어.’ ‘닥친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다’는 말은 적그리스도 부류의 마음속에서 빈말이 되며, 그의 일 처리 방식과 방법, 원칙을 지도하거나 바꿔 놓지 못한다. 반대로 그는 자신에게 닥친 모든 일에서 천연적인 것에 의존하고, 온갖 방법을 생각해 내며, 자신의 모든 능력과 수법을 이용해 행동한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가 행하는 일들은 하나님에 대한 정죄이고 판단이고 모독이다. 사람의 사상을 채우고 있는 것은 사탄의 논리와 사상으로, 진리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이런 일이 닥쳤을 때, 적그리스도가 보여 주는 모습이 사탄과 같은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사탄이 하나님을 대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대하고, 또 사탄이 하나님을 대하는 방식과 어투로 하나님을 대한다. 그러니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적그리스도 부류의 사악한 본질은 말하지 않아도 알 만하다. 하나님을 믿은 지 하루 이틀밖에 안 된 사람이라고 해서 정상 인성의 사유와 이성을 통해 사람과 하나님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느냐? (알 것입니다.) 그럼 정상 인성을 지닌 성인이 하나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마음속으로 모르겠느냐? (알 것입니다.) 사람들이 숭배하는 자를 어떻게 대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고 좋은지, 사람의 이성 안에 기준이 없겠느냐?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굽실거리고 비위를 맞추며 아부할 줄 안다. 설령 상대가 너를 때리고 욕할지라도 온갖 방법을 생각해 그에게 맞추고 순종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부모를 어떻게 대하는 것이 존중이고 사랑인지, 어떻게 대하는 것이 상처이고 증오인지 사람이 모르겠느냐? 판단 기준이 없겠느냐? (있을 것입니다.) 이는 사람, 그러니까 인두겁을 뒤집어쓴 이 생명체가 동물과는 차이가 있고 동물보다 뛰어나다는 방증이다. 부모를 어떻게 대하는 것이 존중이고 사랑인지 아는 네가 하나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왜 모르느냐? 하나님을 어떻게 그렇게 대할 수 있단 말이냐? 입만 열었다 하면 정죄하고 판단하고 감히 모독하고 욕하는데, 이것이 정상인이 할 일이겠느냐? (아닙니다.) 동물도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사람이 동물을 키울 때, 설사 그것이 야생동물일지라도 한동안 함께 살면서 주인이 누구인지 인식시켜 주면, 그 녀석은 주인을 영원히 공경하며, 가족이나 일족의 구성원처럼 대한다. 다른 동물이나 사람을 대할 때와는 다르다. 네가 한때 그 녀석의 주인이었다면, 그 녀석이 두세 집을 전전했다고 할지라도 다시 너를 만났을 때, 네 냄새만 맡아도 즉시 정이 들 것이다. 또한, 그 녀석이 사나운 동물이라고 할지라도 너를 잡아먹지는 않을 것이다. 그 동물의 사나움은 천성이다. 그 천성은 하나님이 창조하고 정한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하나님이 그에게 준 생존 본능이지, 흉악한 성품도, 사악한 성품도 아니다. 그것은 적그리스도의 악함과 차이가 있다. 새끼 사자를 데려다 기른 두 사람이 있었다. 얼마 후 사자가 점점 커지자 그들은 계속 먹이를 주기가 힘들어졌고, 녀석이 1살이 됐을 때 다시 자연으로 방생했다. 그리고 3년 후, 그들은 다시 그 사자를 만났다. 사자는 멀리서 그들 둘을 보고 미친 듯이 달려왔다. 처음에는 그들도 걱정했다. ‘우리를 잡아먹지 말았으면. 저건 사자잖아.’ 하지만 사자는 그들을 형제처럼 끌어안았고, 그들은 사자를 끌어안고 쓰다듬어 주었다. 사자는 그들에게 자기 가족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또 헤어질 때가 되자 매우 아쉬워했다. 보아라, 사자는 야생동물 중 가장 사나운 동물이다. 육식동물이 사람과 함께하는데 이런 장면을 보여 준다. 무척 감동적이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사나운 동물에게서도 정과 의리를 찾아볼 수 있지만, 적그리스도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적그리스도는 사탄 성품을 지니고 있으며, 사탄의 성품 본질을 가진 부류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판단하고 정죄하거나 모독할 수 있다. 그런 태도가 있으면 그런 모습이 생기고, 나아가 그런 행동 방식이 생긴다. 이는 동물보다 못한 것 아니겠느냐? 사람은 자기가 숭배하는 사람, 자신의 육친이나 부모를 대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존중이고 사랑과 보호인지,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상처와 고통을 가져다주게 되는지 알고 있다. 이런 것을 전부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적그리스도 부류는 하나님을 대할 때 이런 행동을 보여 치가 떨리게 한다. 그러니 이 부류의 사람은 천성적으로 적그리스도의 본질을 지녔다고 할 수밖에 없다. 정확히 말해서, 이 부류의 사람은 사탄의 화신이고 살아 있는 사탄이며, 마귀에 속하지, 하나님의 양이 아니다. 하나님의 양이 하나님을 욕하겠느냐? 하나님의 양이 하나님을 정죄하겠느냐?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어째서 그렇겠느냐? (그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말을 듣고 순종하는 것은 한 가지 측면이다. 핵심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 본질을 진실로 믿는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고 무엇을 하든, 심지어 그것이 네게 상처가 된다고 할지라도 너는 정죄하지 않을 것이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자기 자신을 피조물의 위치에 놓고 언제까지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할 수 있다. 이것이 사실이다.

하나님에 대한 적그리스도의 경멸, 대항, 아우성에 관해서는 예전에 교제한 바 있다. 어떤 자는 공개적으로 대항하고, 따로 자기 근거지를 만들며, 패거리를 짓고, 독립 왕국을 세운다. 또 어떤 자는 뒤에서 몰래 욕하고, 어떤 자는 마음속으로 욕하며 대항하고 아우성친다. 공개적으로 욕하든, 몰래 욕하든 전부 적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양이 아니라 사탄에게 속하는 부류이다. 그들은 분명 정상인이 아니며,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도 아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 관념에 맞지 않는 일이나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닥칠 때 마음속으로만 괴로워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또 받아들이지 못하며 원망하고, 강퍅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소극적으로 변해 태만하게 굴기도 하지만, 대항하거나 아우성치는 수준까지 가지는 못한다. 또 한동안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 형제자매들의 도움을 받고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 징계를 받으면 조금씩 뉘우치게 된다. 이는 평범한, 패괴된 인류가 일이 닥쳤을 때 보이는 모습이다. 반면, 적그리스도는 이렇게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뉘우치지도 않는다. 어떤 일이 그의 뜻에 맞지 않으면 그 일로 욕하고, 다음 일이 그의 뜻에 맞지 않으면 또 욕한다. 욕하는 동시에 대항하고 아우성친다. 심지어 어떤 적그리스도는 “저 같은 사람이 구원을 얻지 못한다면, 누가 구원을 얻겠습니까?”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큰소리치는 것 아니겠느냐? 대항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항하는 것이다. 전혀 순종하지 않고, 감히 하나님에게 아우성치고 대항하는 이런 존재가 바로 사탄이다. 사악한 성품의 갖가지 모습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교제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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