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6 적그리스도의 인품과 성품 본질에 관한 정리(3) 제 2 부
⑥ 요구한다
다음 항목은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요구하는 것의 세부 모습은 더욱 다양하다. 적그리스도 부류는 이방인들의 말마따나 ‘이익이 없이 움직이지 않는’ 자들이다. 또 무엇이 있겠느냐? (확실한 이익이 보이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는 모습이 있습니다.) 확실한 이익이 보이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는다. 그는 이익이 있으면 행동하고, 이익이 없으면 행동하지 않는다. 어떤 종류의 일이든 이렇게 가늠할 것이다. ‘이 일을 하면 내가 얼마나 잇속을 차릴 수 있고 얼마나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지? 그 정도의 이익을 얻기 위해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를 가치가 있을까? 만약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아주 큰 대가를 치렀는데,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만 잇속을 차리고 나를 과시하지 못한다면, 절대 이 일을 하지 않을 거야!’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부탁과 요구를 대할 때 이런 태도를 보이지 않느냐? 만약 그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얼마간 대가를 치렀는데 이익을 얻지 못하고, 고생을 좀 했는데 은혜를 얻지 못했다면, 그의 마음속에서는 바로 반응이 올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많은 대가를 치렀는데 왜 이익을 얻지 못한 거지? 우리 집 장사가 과연 이윤을 본 걸까?’ 만약 계산해 봐서 수입이 지난달보다 많다면, 그는 계속 밖에 나가 복음을 전할 것이며, 설령 위험이 있더라도 겁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집 장사에 문제가 생기고 이윤이 지난달보다 눈에 띄게 줄어드는 순간, 그는 그 즉시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며 의혹을 품는다. ‘하나님, 저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게으름 피우거나 교활하게 굴지 않았고, 건성으로 임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번 달에 제가 뛰어다니며 행한 사역은 지난달보다도 많고요. 그런데 왜 저희 집을 축복해 주지 않으시는 겁니까? 저희 집 장사가 왜 잘 안되는 겁니까?’ 하나님과 하나님의 부탁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곧바로 달라진다. ‘당신께서 저희 집을 축복해 주지 않으셨으니, 제가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한다고 탓하지 마십시오. 다음 달에는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지 않을 것입니다. 5시에 일어나야 하면 6시에 일어날 거고, 8시에 집에서 나가야 하면 10시에 나갈 겁니다. 저는 보통 한 달에 5명의 복음 대상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이번에는 2명에게만 전할 거예요. 그 정도면 되겠죠!’ 그가 계산하는 것은 무엇이냐? 그는 자기가 기여하고 지불한 것과 하나님이 그에게 베풀어 준 것이 등가를 이루어야 하며, 심지어는 하나님이 그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 그가 구하고 원하는 것의 몇 배가 되어야 수지가 맞다고, 그것을 위해 고생하고 대가를 치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 하나님 집에서 그에게 어떤 사역과 본분을 맡기든, 그는 한 가지 방식으로 대할 것이다. 바로 대충 건성으로 임하는 것이다. 대충 할 수 있으면 대충 하고, 건성으로 임할 수 있으면 건성으로 임하면서 절대 일말의 진심도 바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태도는 요구하는 것이고 거래하는 것이다. 거래하려는 생각이 있기에 요구하는 것이며, 거래하려는 생각이 없다면 요구하지도 않을 것이다.
적그리스도 부류는 하나님의 부탁과 하나님 집의 사역을 대하고, 자신의 본분을 대할 때 마음속에 일말의 진심이나 충성심도 생겨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머리와 에너지, 시간, 그리고 육적으로 받은 고통과 치른 대가로 복받으려는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상을 얻어 내고자 한다. 물론, 이번 생에 육적인 평안과 기쁨, 내면의 충실함, 가정의 행복, 나아가 순조로운 주변 환경을 얻어 내고, 이와 동시에 사람들로부터 우러름과 앙망, 좋은 평가를 받고자 한다. 요컨대,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집에서 절대 진심으로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며, 절대 일말의 충성심도 바치지 않는다.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든 대충 건성으로 임하든, 그들의 최종 목적은 하나님에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요구해 욕망을 충족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부류는 일이 안 풀리고 책망과 훈계를 받을 때, 혹은 자기 뜻에 맞지 않는 사람과 일, 사물이 닥칠 때, 바로 생각한다. ‘내게 닥친 이 일들이 내 이익과 뭔가 충돌하지는 않을까? 내 명망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내 앞날과 훗날의 성장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본분 이행 과정에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든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든, 그들은 진리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는 법이 없고, 내면이 거래 심리로 점철되어 있다. 장사꾼의 눈빛으로 자신이 지불하고 바친 것들이 가치가 있는지, 자신이 제공한 자본으로 얼마나 큰 이윤을 얻을 수 있는지 가늠하는 것이다. 혹자는 “저희는 진리와 생명을 얻고 구원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적그리스도 부류는 ‘구원받는 게 얼마나 값어치가 있지? 진리를 깨닫는 건 또 몇 푼이나 된다고? 그런 것들은 값어치가 없어. 정말 값어치가 있는 건 이번 생에 백배를 얻고 내세에는 영생을 얻는 거지. 이번 생에 모든 사람에게 떠받들어지고 우러름을 받으며 하나님 집에서 크게 높임 받고, 내세에는 만국을 다스려야지. 그거야말로 진짜 실속 있는 이윤이라고.’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야심이고, 그들이 본분 이행 이면에, 마음속 깊은 곳에 품고 있는 장부이다. 이 장부는 거래 내역과 요구 사항으로 가득 차 있다. 그가 자신의 본분을 대하고 하나님을 대할 때 보이는 그 알량한 ‘진심’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영생을 얻고 재난을 피하도록 보호받으며, 축복과 은혜를 받고, 그의 모든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적그리스도 부류는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갖가지 바람이 가득하다. 그 바람들을 통틀어 ‘요구’라고 한다.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원하지 않지만, 그 밖의 모든 물질적, 비물질적인 것들은 전부 원한다.
한때 형제자매와 교회를 위해 어느 정도 기여를 한 적그리스도들이 있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위험한 사역을 맡은 적이 있다거나 집에 돌아가기 힘든 형제자매들을 접대한 적이 있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게다가 그들은 하나님을 믿은 햇수도 많은 편이라 대부분 사람에게 공로와 자격이 있는 자로 여겨진다. 그들 자신도 그런 우월감과 우위를 느끼며 나이를 내세워 거만하게 군다. ‘나는 이렇게 오랜 세월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 집을 위해 여러 기여를 했어. 그러니 하나님이 특별 대우를 해 주시지 않을까? 예를 들어, 해외에 가게 해 주시는 게 있지. 그건 복을 누리는 일이잖아. 만약 자격을 논한다면 내가 우선 아니겠어? 나는 하나님 집을 위해 기여를 한 적이 있으니 우선순위에 오르고 특별 대우를 받아야지. 나를 원칙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한때 감옥살이를 해서 출옥 후 돌아갈 집이 없어지자 하나님 집에서 자신을 특별히 보살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돈을 좀 내줘서 집을 사 준다든가, 자신의 남은 삶을 책임져 준다든가, 자신이 제시하는 모든 물질적 수요를 충족해 준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만약 그가 필요로 한다면 하나님 집에서 차를 줘야 하고, 그가 병에 걸리면 하나님 집에서 영양제를 사 줘서 몸보신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나이를 내세워 거만하게 구는 것이고, 자격을 논하는 것 아니겠느냐? 이 사람들은 자기에게 공로가 있다고 생각해서 뻔뻔하게도 공개적으로 하나님에게 요구하고, 집과 차, 사치스러운 삶을 원한다. 심지어 형제자매들이 무상으로 그를 위해 일을 처리하고 뛰어다니게 하는 등 그의 피고용인, 노예가 되게 한다. 이는 교회에 얹혀사는 자가 된 것 아니겠느냐?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사실 너 자신을 위한 것이고, 감옥살이를 하는 것도 너 자신을 위한 것이다. 네가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그것은 전부 네 책임이다. 또 네가 본분을 이행하고 진리를 얻는 것은 모두 너 자신을 위한 것이며, 하나님을 믿는 것 역시 네가 스스로 원한 것이다. 아무도 너에게 강요한 적이 없다. 네가 생명을 얻는 것 또한 너 자신을 위한 것이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다. 설사 네가 한때 하나님 집과 교회를 위해 위험한 사역을 맡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공로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것은 공로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네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이는 하나님이 너를 높여 준 것이다. 네게 그런 기회를 준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지 교회에 얹혀살 밑천을 준 것이 아니다. 그러니 이런 부류는 적그리스도 아니겠느냐? 특히 이 부류는 어떤 진리 실제도 교제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믿은 기간이 짧고 젊은 형제자매들과 함께 있을 때면 자신의 지난 역사를 교제하고 자격을 내세울 뿐, 가치 있는 생명 체험의 교제나 인식은 하나도 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저 허세를 부리고 거드름을 피울 뿐이다. 그들은 하나님 집에서 어떤 실질적인 사역도 맡지 못하고, 어떤 진정한 본분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교회에 얹혀살고 하나님에게 손을 내밀어 요구하니 이는 후안무치한 것 아니겠느냐? 만약 자격을 논한다면 내가 너희보다 자격이 있지 않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허세를 부리더냐? 내가 너희에게 물건을 요구하더냐? (그러지 않으십니다.) 그럼 적그리스도 부류는 왜 그런 짓을 하겠느냐? 후안무치하기 때문이다. 그는 본분을 받아들일 때 마음속이 거래 심리로 점철되어 있고, 본분을 이행할 때도 올바른 관점이 없으며, 그것을 자신의 본분과 의무, 피조물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얼마간 본분을 이행하며 고생하고 대가를 치른다고 해도 마음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이 사역은 아무도 하지 못해. 그러니 내가 한다면 하나님 집에서 이름이 나고 어디를 가든 우러름을 받겠지. 또 어디를 가든 좋은 것을 누릴 자격이 생길 거야. 하나님 집에서 우두머리가 될 테니까 무엇을 원하든 갖게 되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못할 테지. 나는 자격이 있으니까!’라고 생각한다. 적그리스도 부류의 인품을 고려하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부탁, 하나님 집의 사역을 대할 때, 조금의 진심도, 기꺼운 마음도 품지 않을 것이다. 설령 표면적으로는 기꺼이 원하고 고생하며 대가를 치르는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곧 하나님에게 손을 내밀어 상을 달라고 요구할 것이고, 곳곳에서 교회에 얹혀살며 잇속을 차릴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행동을 볼 때, 그의 적그리스도 성품 본질을 ‘사악함’으로 정의하는 게 가장 적절하다. 본분과 하나님의 부탁을 대하는 그들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상 관점은 사악하고, 진리에 부합하지 않으며, 양심의 기준에는 더더욱 맞지 않는다.
적그리스도 부류는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자기 뜻대로 하고, 자신을 위해 명예와 지위를 도모하며, 진리를 구하거나 스스로를 반성하는 법이 없다. 사역 과정에서 어떤 실수와 문제가 생기든 그는 진리를 구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늘 진상을 덮고 자신의 체면과 허영을 지키며 언제나 스스로를 내세워 사람들에게 우러름 받으려는 태도를 보인다. 요컨대, 그의 마음속은 사악함과 사탄 철학, 사람의 관념과 상상으로 점철되어 있고, 진리에 부합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적그리스도는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진리를 구하는 법이 없고,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에 순종할 생각도 없다. 항상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자기 뜻에 따라 원하는 대로 한다. 어떤 일을 하든, 그는 어떻게 해야 자신에게 이로울지, 어떤 본분을 이행해야 명리와 지위,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고 영예를 손에 넣을 수 있을지 속으로 계산한다. 그는 이런 것들만 가늠한다. 일단 본분을 이행하면 하나님의 기록부에 자신의 공이 기록되기를 바라며, 이와 동시에 자기 마음속에서도 그런 장부를 만든다. 자신의 공로를 절대 한 건도 빼놓지 않고 확실히 적어 두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하는 사역이 많아지고 공로가 커질수록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고 상과 면류관을 받을 희망이 커진다고 생각한다. 본분을 대하는 적그리스도 부류의 태도와 관점은 이러하다. 그의 마음속에는 거래하고 요구하는 심리가 가득하다. 이는 그의 본성 본질이 드러난 것 아니겠느냐? 그의 마음속은 왜 하나님에게 거래하고 요구하는 심리로 점철되어 있겠느냐? 이 부류 사람의 성품 본질이 틀림없이 사악하기 때문이다. 이는 본분을 대하는 적그리스도의 생각과 관점에서 미루어 알 수 있으며, 여기에서 그들의 성품 본질이 사악하다는 사실이 완전히 실증된다. 얼마나 많은 진리를 교제하든, 사람의 패괴 성품을 어떻게 폭로하고 해부하든 적그리스도는 자신의 성품 본질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그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할뿐더러 마음속으로 원한을 품는다. 복과 상을 받을 희망이 사라졌다고 생각되면 하나님이 사람을 속였다고, 하나님이 그렇게 폭로하고 해부하는 것은 상을 주기 싫어서라고, 사람이 공짜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게 해서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할 거라고 여긴다. 그는 마음속으로 진리와 하나님의 사역을 긍정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관념과 오해를 품고 하나님에게 더더욱 반발한다. 그래서 패괴된 인류의 사탄 성품과 본질을 해부하면 할수록, 사탄의 간계와 속셈, 목적을 폭로하면 할수록 적그리스도 부류는 더더욱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그는 진리를 교제하면 할수록 자기가 복받을 희망이 요원해진다고, 진리를 교제하면 할수록 고생하고 대가를 치름으로써 상과 면류관을 얻어 내는 방법이 통하지 않고 복받을 희망이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또 그렇게 진리를 교제할수록, 그렇게 폭로할수록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믿는 것에 점점 더 흥미를 잃는다. 그는 하나님의 이런 말씀에 사람이 얼마나 고통받고 대가를 치르면 어느 정도의 상을 얻을 수 있는지가 한마디도 나와 있지 않으며, 고생하며 사역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그런 말씀도 전혀 없다는 것을 보고는 하나님과 거래하는 길이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느낀다. 이와 동시에 그와 같은 부류는 하나님이 징벌할 대상임을 느끼고 마음이 두렵고 불안해진다. 자신의 날이 끝에 이르렀다고, 마지막 날이 온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너희는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는 설교를 한 편 또 한 편 들을 때마다 어떤 느낌이 드느냐? 너희가 모두 머리를 푹 숙인 것을 보았는데,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 드느냐? 너희가 걸어온 길 역시 적그리스도의 길이었음을 의식한 것이냐? 너희의 머릿속에도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사악한 생각이 가득한 것이냐? 이제 지각했느냐? 얼른 바로잡을 수 있겠느냐? (얼른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속 이렇게 적그리스도 성품으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비록 너희가 모두 적그리스도 성품을 지니고, 하나님과 거래하며 복받으려는 속셈이 있다고는 하나 아직 적그리스도는 아니다. 그러니 얼른 진리를 구해 해결하고, 낭떠러지 앞에서 멈춰서서 진리를 추구하는 길에 올라야 한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느냐? 적그리스도 성품을 지니고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문제는 사실 해결하기 쉽다. 진리를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반성하며 자신의 패괴 성품을 인식하고 명리와 지위를 추구하는 문제의 본질을 인식한 후 그 잘못된 추구 방식과 하나님을 믿는 그릇된 관점, 복받으려는 속셈을 버린다면, 오직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하나님을 믿고, 새사람이 되기 위해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사람이 되고자 추구하고, 사람을 숭배하거나 따르지 않고 하나님만을 경배한다면 너는 내적 상태가 점차 정상이 되고, 진리를 추구하는 길에 오르게 된다.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다. 두려운 것은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를 싫어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이 옳지 않고 명리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이 잘못되었음을 분명히 알면서도 고집을 부리며 한사코 회개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너는 적그리스도 본성 본질을 가졌으니 도태될 수밖에 없다. 만약 많은 악을 행한다면 징벌까지 받게 될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평범한 패괴된 사람과 다른 점은 명리와 지위, 복받기를 추구하며 하나님과 거래하는 모습이 어쩌다 한 번, 가끔 나타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그런 것들로 살아가며, 그가 걷는 길에는 오직 한 가지 선택만 존재한다. 즉,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고 적그리스도의 본성과 사탄 철학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평범한 패괴된 인류는 두 번째 선택을 할 수 있고,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걸을 수 있지만,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좋아하지 않으며 내면에 그런 필요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본성이 사탄 철학으로 점철되어 있고, 그는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한다. 적그리스도는 영원히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한 번 잘못하면 끝까지 잘못하며, 영원히 바로잡지도, 회개하지도 못한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에 대한 거래 심리로 가득하며, 언제나 하나님을 시험하고 적대시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는 ‘그게 뭐 어때서? 하나님에게 물질적인 축복을 요구하고 지위의 복을 누리는 것쯤은 부끄러운 일 아니야. 사람을 죽이거나 불을 지른 것도 아니잖아.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한 것도 아니고. 독립 왕국을 세우고 내 멋대로 결단을 내리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못살게 굴지도 않았어. 하나님 집 사역에 어떤 영향이나 손실을 준 것도 아니고.’라고 생각한다. 이는 구제 불능 아니겠느냐? 하나님 집에서 아무리 진리를 교제하고 아무리 폭로하고 책망해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니, 구제 불능이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본질이다. 네가 그에게 사악하다고 해도 그는 개의치 않고 계속 그 사악함을 고집한다. 여기에서 적그리스도는 죽어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너는 이 부류의 사람과 진리를 교제하겠느냐? 무엇이 긍정적인 사물이고 무엇이 부정적인 사물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그와 무슨 말을 하겠느냐? 할 말이 없다. 적그리스도 부류는 사악한 성품 본질로 점철되어 사악한 성품 속에서 살아간다. 하나님을 시험하고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은 그의 천성으로, 누구도 그를 바꿔 놓지 못한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어째서 변하지 않겠느냐? 얼마나 많은 진리를 교제하든, 얼마나 분명히 이야기하고 확실히 폭로하든 그는 도대체 문제가 무엇인지 의식하지 못하며, 진리를 깨닫지도 못하고,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부정적인 사물인지 모른다.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적그리스도는 많은 일에서 하나님과 거래하고 하나님에게 요구한다. 물론, 그들이 하나님에게 요구하는 것들 또한 무척 많다. 형체가 있는 것과 형체가 없는 것,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 현재의 것과 미래의 것 등 그들이 머릿속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것이라면, 자신이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욕망 안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전혀 사양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요구하며, 하나님이 자신에게 베풀어 주기를 바란다. 예를 들어, 그가 어떤 본분을 이행한다고 해 보자. 사람들 사이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뛰어난 인물이 되기 위해서, 얼굴을 알릴 기회를 얻고 자기가 원하는 지위를 손에 넣기 위해서, 또 더 많은 사람에게 우러름을 받기 위해서 그는 하나님에게서 특별한 기술을 얻기를 바라며 기도한다. ‘하나님, 저는 충심으로 본분을 이행하고자 합니다. 당신에게서 이 본분을 받아들인 후 매일 어떻게 해야 이 본분을 잘 이행할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본분을 위해 제 필생의 정력을 바치고자 합니다. 또한, 당신을 위해 제 청춘과 전부를 바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고난을 겪으려 합니다. 그러니 제가 해야 할 말을 알려 주시고, 제게 총명과 재지를 주십시오. 제가 이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업무 수준을 끌어올리게 하시고, 제 기술을 더욱 높여 주십시오.’ 적그리스도는 충심을 드러내고 자신의 관점을 표명한 후 하나님에게 손을 내밀어 요구한다. 이러한 것들은 형태가 없고, 사람은 하나님에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게 상식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거래나 요구로 볼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거래의 초점은 무엇이냐? 우리가 해부하는 본질은 무엇이냐?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부탁한 본분에 전혀 진심을 다하지 않고, 그 일을 위해 충심을 다할 계획도 없다. 그가 그 일을 하기 전에 생각한 것은 어떻게 해야 그 기회를 잡아 사람들 사이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명성을 날리고 얼굴을 알리느냐 하는 것이지, 그 기회를 통해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그 본분을 이행하는 기간에 자기가 깨달아야 할 진리와 구해야 할 원칙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자마자 먼저 하나님에게 손을 내밀어 자신의 명망과 지위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요구하는 것이다. 총명과 재지니, 독특한 견해니, 남들보다 뛰어난 기술이니, 영적 눈을 뜨는 것이니 등을 말이다. 그가 이런 것들을 원하는 이유는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도, 진심을 바치고 본분을 잘 이행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분명히 그 안에는 거래 심리와 요구 사항이 가득하다. 그러고도 사람 스스로는 그것이 이치에 어긋나지 않아 마음 편안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설령 사람이 본분 이행 과정에서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며 얼마간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고 할지라도 사람의 이런 기도, 이런 거래를 하나님이 열납하겠느냐?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절대 그런 본분 이행을 열납하지 않는다. 네 내면에 진심과 충심이 없으며, 진실한 순종은 더더욱 없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네가 주관적 바람으로 추구한 것은 지위와 명망이고, 너에 대한 사람들의 우러름과 앙망이다. 하지만 그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네 생명 진입과 성품 변화는 어떤 개선도 이뤄지지 않았다.
적그리스도 부류는 일이 닥쳤을 때 마음속으로 수판을 놓기 시작하고, 계획하고 계산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회계사처럼 어디에서나 하나님과 거래하는데, 원하는 것도 많고 하나님에게 요구하는 것도 많다. 어쨌든 이러한 것은 하나님 눈에 전부 무리한 요구로 보일 뿐,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려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얻어야 할 것도 아니다. 그런 것들은 사람이 성품 변화를 이루고 구원받고자 추구하는 데 어떤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하나님이 네 본분 이행 과정에서 네게 빛 비춤을 주고, 업무 측면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준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에게 요구하는 네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도 아니고, 네 인지도를 높여 주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네 명망을 높여 주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하나님으로부터 빛 비춤과 깨우침을 받아들인 후 그것을 본분에 활용해서 본분을 더 잘 이행하고, 원칙을 더 정확하게 파악하며, 이와 동시에 본분 이행 과정에서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온 깨우침과 빛 비춤, 은총을 많이 얻었음을,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행사임을 점차 깨닫게 된다. 또 사람은 체험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행사가 더없이 좋다고, 사람이 내세울 것은 하나도 없으며 전부 하나님의 은총이자 인도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정상적인 사람이 느끼고 의식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그에게 얼마나 많은 깨우침과 빛 비춤을 주든 그는 그 공을 스스로에게 돌린다. 그러다가 언젠가 자기 공로를 계산해서 하나님에게 손을 내밀어 상을 요구할 때, 하나님에게 정산하려고 할 때, 하나님이 깨우침과 빛 비춤을 철회하면 적그리스도는 드러날 것이다. 여태까지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성령 역사이자 하나님의 인도이며, 그는 다른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하나님이 깨우침과 빛 비춤을 주지 않으면 그의 은사와 총명함, 지혜는 사라지고, 좋은 아이디어와 생각도 사라진다. 그러면 그는 한 명의 바보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적그리스도 부류는 이런 일이 닥쳐 이 지경에 이르러도 자기가 걸어온 길이 잘못되었음을, 자신은 줄곧 하나님과 거래를 하고 무리하게 하나님에게 요구해 왔음을 의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가 괜찮다고, 뭐든 할 수 있다고, 사람들 사이에서 우러름 받고 앙망받아야 한다고, 사람들의 존중과 옹호를 얻어야 한다고, 사람들 사이에서 높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 모든 것을 얻지 못하면 자포자기하면서 하나님과 형제자매들에게 원한을 가득 품고,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욕하고 원망하면서 하나님이 공의롭지 못하다고 할 것이다. 또 형제자매들을 가리켜 양심이 없고 배은망덕하다고 욕할 것이며, 심지어는 하나님 집이 토사구팽한다고 원망할 것이다. 이는 어떤 존재겠느냐? 몰염치한 작자이다! 적그리스도는 모두 이런 부류 아니겠느냐? 그들이 자주 하는 말은 이런 것 아니겠느냐? “내가 쓸모 있을 때, 중용될 때는 모두 나를 위주로 돌아가더니 이제 중용되지 않으니까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고 무시하는군요. 나랑 얘기할 때는 표정도 좋지 않고요.” 이 말은 어떻게 나온 것이냐? 그 근원은 적그리스도 부류의 사악한 성품 아니겠느냐? 그의 사악한 성품 속에는 사람들과 하나님에 대한 거래 심리로 가득하다. 그는 하나님에게도 사람에게도 요구를 한다. 그 뜻인즉슨, ‘내가 당신들을 위해 일하고 헌신하고 대가를 치르고 마음을 졸였으니까 당신들은 공손한 태도로 내 앞에 와서 예의를 갖춰 말해야 해. 내게 지위가 있든 없든 당신들은 모두 내가 훌륭하다고 기리며 영원히 마음속으로 나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고. 나를 잊는 건 양심이 없는 거야. 당신들이 어떤 맛있는 것을 먹고 어떤 좋은 것을 쓰든 다 나를 생각해야 해. 내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라는 것이다. 적그리스도 부류는 늘 이런 요구를 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당신들이 보는 하나님 말씀 서적은 누가 인쇄한 겁니까? 누가 당신들에게 갖다준 겁니까? 만약 제가 위험을 무릅쓰지 않았더라면, 옥살이하고 사형당할 위험을 무릅쓰지 않았더라면 당신들이 책을 볼 수 있었을까요? 만약 제가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면서 양육해 주지 않았더라면 당신들이 교회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요? 만약 제가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면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더라면 교회가 이렇게 많은 사람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만약 제가 온종일 하나님 말씀을 교제하지 않았더라면 당신들이 그렇게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만약 제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당신들을 뒤에서 지원해 주지 않았더라면 지금 당신들이 마음 편히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을까요? 만약 제가 앞장서서 노력하지 않았더라면 교회 사역이 지금 이 정도까지 발전할 수 있었을까요?” 너희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느냐? 이런 말을 들으면 하나님 집이 그들 없이는 사역의 진전을 이룰 수 없는 것 같고, 그들 없이는 지구가 돌지 않는 것 같다. 적그리스도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그가 이 말을 외치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공을 가로채려는 것이겠느냐, 아니면 억울함과 괴로움을 호소하려는 것이겠느냐? 그는 하나님 집에서 지금 자기를 쓰지 않고 형제자매들이 자기를 냉대한다고, 하나님 집은 사람을 불공평하게 대한다고, 하나님 집은 그를 공경하지 않고 그의 노후를 보장해 주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가 외치는 이 말에는 사람들을 욕하는 의미도 있지 않겠느냐? 그는 사람들이 양심이 없다고 욕하고 있다. 적그리스도가 과연 어떤 봉사를 하겠느냐? 적그리스도의 행동은 전부 교란하고 방해하는 짓이고, 적그리스도의 말은 전부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다. 그는 인성이 없는 마귀인데, 무슨 근거로 그에게 양심을 논하겠느냐? 그에게 양심을 논하는 것이 소용이 있겠느냐? (소용없습니다.) 어째서 그렇겠느냐? 그를 따르면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적그리스도를 숭배하고 따르는 사람들은 모두 무엇을 얻겠느냐? 그와 함께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에 의해 지옥으로 끌려가게 된다. 적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 (스스로를 하나님으로 여깁니다.) 그것은 몰염치한 생각이다.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양심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양심을 가지라는 요구를 한 적이 없다. 그저 진리를 깨닫고 실행하여 구원받으라고, 합격한 피조물이 되면 그만이라고 요구할 뿐이다. 내가 언제 너희에게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나를 생각해 남겨 놓으라고, 좋은 곳에 머물면 나를 생각하라고 요구한 적이 있더냐? 너희가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곳에 머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언제 질투를 하더냐? 내가 언제 너희에게 양심이 없다고 하더냐?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양심이 없다고 사람들을 욕한다. 이는 후안무치한 것 아니겠느냐? 하나님 집에서 그를 교체할 때, 형제자매들이 더는 그를 예전처럼 그렇게 따뜻하게 대하지 않을 때 그는 이런 말을 내뱉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사람들과 하나님을 욕하고, 무슨 말이든 다 지껄이는 등 마귀의 성품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성품이 드러내는 갖가지 모습이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거래 심리로 가득하기에 하나님에 대한 갖가지 요구와 바람이 생겨나는 것이다. 발탁되거나 교체될 때, 하나님 집에서 중용되거나 중용되지 않을 때, 적그리스도 부류에게 생겨나는 갖가지 모습은 전부 사악한 본질로 귀결해야 한다. 이는 조금의 오차도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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