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하나님 말씀 ― 하나님 알아 가기 | 발췌문 129

2020.07.14

여섯 번째 관문, 죽음

수많은 번잡한 일들, 좌절과 실망, 기쁨과 슬픔, 좋은 시절과 나쁜 시절, 잊을 수 없는 시간들을 경험하고 계절이 흐르고 또 흐르는 것을 보며 사람은 미처 알지 못한 채 삶의 중요한 시기를 보낸다. 그리고 눈 깜짝할 새 인생이 저물어 가는 시점에 와 있음을 깨닫는다. 시간은 온몸에 흔적을 남겨 놓았다. 이제는 똑바로 서 있을 수도 없고, 검은 머리가 흰색으로 변했으며, 초롱초롱 빛나던 눈은 흐릿해졌다. 부드럽고 탄력 있던 피부는 주름지고 얼룩졌다. 청력이 약해지고, 치아는 흔들리고 빠지며, 반응과 움직임이 느려진다…. 이 시점에서 사람은 열정적이었던 젊은 시절과 작별하고 생의 황혼, 노년에 들어선다. 앞으로 남은 것은 한 가지, 삶의 마지막 관문인 죽음이다.

1. 오직 창조주만이 사람의 삶과 죽음을 주관할 수 있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이 전생의 인연으로 시작된 것이라면, 죽음은 전생 인연의 끝인 것이다. 태어나는 것이 금생에서 해야 할 사명의 시작점이라면 죽음은 그 사명의 끝인 것이다. 창조주가 사람이 태어날 때 그 상황을 정해 놓았으므로 그의 죽음의 상황 또한 이미 계획되어 있다. 다시 말해, 우연히 태어나거나 예기치 못하게 죽는 이는 아무도 없으며, 태어남과 죽음은 모두 그 사람의 전생 및 금생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태어남과 죽음의 상황 모두 창조주가 예정해 놓았다. 이것이 그의 타고난 운명이다. 모두가 다른 상황에서 태어나듯 모두가 다른 상황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그래서 사람의 수명, 죽음의 방식과 시점이 모두 다른 것이다. 어떤 사람은 튼튼하고 건강하지만 일찍 죽는다. 어떤 이는 몸이 약하고 자주 아프지만 장수하며 편안히 눈을 감는다. 비명횡사하는 사람도, 천수를 다하는 사람도 있다. 타지에서 마지막을 맞는 이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눈을 감는 이도 있다. 하늘에서 죽는 사람도, 지하에서 죽는 사람도 있다. 누구는 익사하고 누구는 재난에서 죽는다. 누구는 아침에, 누구는 밤에 죽는다…. 누구나 주목받고 태어나 아주 멋진 삶을 살고 명예롭게 죽기를 바라지만 운명을 넘어서고, 창조주의 주재에서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것이 사람의 운명이다. 사람은 미래를 위해 어떤 계획이든 세울 수 있어도 어떻게 태어나고 죽을지 계획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죽음이 닥치는 것을 피하고 막으려 애쓰지만 알지 못하는 사이 죽음은 조용히 다가온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더 나아가 어디서 죽을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삶과 죽음을 주관하는 존재는 사람도, 자연계의 어떤 생명체도 아닌 창조주이다. 그의 권능은 유일무이하다. 인류의 삶과 죽음은 자연법칙의 산물이 아니라 창조주의 권능과 주재로 생긴 결과이다.

2. 창조주의 주재를 모르는 사람은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노년에 접어든 이가 맞이하는 도전은 가족을 부양하거나 인생의 원대한 꿈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삶과 어떻게 작별할까, 어떻게 죽음을 맞을까, 어떻게 삶에 마침표를 찍을까 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사람들이 죽음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도 죽음에 대해 탐구하게 된다. 사람이 모르는 또 다른 세상이 죽음의 저편에 존재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과 정면으로 마주하기를 두려워하고, 죽음을 직면해야 함에도 겁을 내며,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애써 외면한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고,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은 수수께끼가 되고, 모든 이의 마음에 걷히지 않는 그늘이 생긴다.

사람은 몸 상태가 악화됨을 느낄 때, 죽음이 다가옴을 감지할 때, 은은한 공포와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외로움과 무력함을 더욱 느끼게 될 때 사람은 스스로 묻게 된다. ‘사람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디로 가는 것일까? 삶이 이렇게 빨리 끝나는 것인가? 이것이 삶의 마지막 시간인가? 결국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삶은 궁극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가? 명성과 부를 얻기 위한 것인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것인가? …’ 사람이 이 구체적인 질문에 대해 생각해 봤든 그렇지 않았든, 죽음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크든, 마음 깊은 곳에는 이 수수께끼에 깊숙이 파고들려는 욕망과 삶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느낌이 있다. 세상에 대한 그리움과 떠나기 싫은 마음도 섞여 있다.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죽음이 두렵기 때문에 사람들은 걱정을 너무 많이 한다. 죽음이 두렵기 때문에 마음 놓을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 어떤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이것저것 걱정을 한다. 마치 걱정거리가 있으면 죽음의 고통과 두려움을 지울 수 있기라도 한 듯, 산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이어가면 죽음이 가져오는 무력함과 외로움을 피할 수 있기라도 한 듯, 아이들과 사랑하는 사람과 재산을 걱정한다. 사람은 마음속 깊이 어렴풋한 공포를 느낀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 파란 하늘과 이 세상을 다시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공포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있는 것에 익숙해진 외로운 영혼은 낯선 미지의 세계로 혼자 떠나기 싫어한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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