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하나님 말씀 ― 하나님 알아 가기 | 발췌문 33
2020.06.05
하나님은 사람의 어리석음을 보지 않고, 사람의 진심만을 원한다
창세기 22장 2절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였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의 뜻은 아주 분명했다. 즉, 아브라함에게 그의 독자를 ― 그가 사랑하는 이삭을 ― 번제로 바치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행한 이 일은 지금에 와서 봐도 여전히 사람의 관념과는 어긋나지 않느냐? 그렇다! 하나님이 이때 행한 일은 사람의 관념에 매우 맞지 않는 것이며,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람은 이런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믿지 못하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아들을 주셨다가 아들을 얻은 후에는 또 그 아들을 바치라고 하시다니,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야! 하나님이 대체 뭘 하시려는 거지? 하나님의 뜻은 대체 무엇일까?’ 하나님은 아무런 조건 없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었다. 그러고는 또 그에게 조건 없이 아들을 바치라고 했다. 이것은 지나친 것이냐? 제3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너무 지나칠 뿐만 아니라 조금은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작 아브라함 본인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대해 다른 생각이나 자그마한 추측은 있었지만 그래도 아들 이삭을 바칠 준비를 하였다. 여기서 너는 어떤 일에서 아브라함이 기꺼이 아들을 바치려고 했다는 것을 볼 수 있느냐? 원문에서 뭐라고 했느냐? 이같이 기록되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창 22:3),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창 22:9~10). 아브라함이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의 아들을 죽이려고 할 때, 그 모든 행동을 하나님은 보았느냐, 보지 못했느냐? 하나님은 보았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한 때부터,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정말로 그의 아들을 죽이려고 했던 그 전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마음을 보았다. 이전에 아브라함이 어리석었고 무지했으며 하나님을 오해했다 할지라도, 이때만큼은 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진짜였으며 진실했다. 아브라함은 진심으로 하나님이 그에게 준 이삭을 ― 그의 아들을 ― 하나님께 돌려 드리려고 하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서 그의 순종을 보았으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한 것이었다.
사람이 봤을 때, 하나님이 행하는 많은 일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심지어는 기이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하나님이 누군가를 지배하고자 할 때, 이 ‘지배’는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으며, 또한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이자 하나님의 검증인 것이다. 아브라함에게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것이다. 이때,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요구에 ― 이삭을 바치라는 것에 ―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인류에 대해, 즉 자신이 선택한 아브라함이란 사람에 대해 참으로 안심하였고, 그를 진정으로 인정하였다.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그 사람이 자신의 약속과 앞으로의 경륜을 맡아서 실행해 나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주된 인물이라고 확신하였다. 비록 그 일이 시련이고 검증일 뿐일지라도 하나님은 이미 위안을 받았고, 사람이 그에게 바친 사랑을 느꼈으며, 또한 사상 처음 사람으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을 죽이려고 하던 그 찰나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행동을 저지하지 않았느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애초에 이삭의 생명을 가져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행동을 바로 저지했다. 하나님이 보기에, 아브라함의 복종은 이미 시험을 이긴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가 보인 행동으로 이미 충분했으며, 자신이 하고자 한 일에서 이미 결과를 얻었다. 그 결과에 하나님은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느냐? 그 결과에 하나님은 만족하였고, 그것은 하나님이 원한 것이며 하나님이 보고자 기대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냐? 비록 하나님이 다양한 배경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각 사람을 검증한다 할지라도, 아브라함에게서 하나님은 자신이 원했던 것을 보았고, 아브라함의 마음이 진심인 것을 보았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무조건적인 것이었고, 이 ‘무조건’이 바로 하나님이 원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이미 이것을 바쳤어. 나는 이미 그것을 포기했어. 그런데 하나님은 왜 나에게 만족을 못 하시는 걸까? 왜 계속 나에게 시련을 주시는 거지? 왜 계속해서 나를 검증하시지?’ 이것은 한 가지 사실을 설명해 준다. 하나님은 너의 마음을 보지 못했고, 너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너에게서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을 죽여 하나님께 바치려고 칼을 들었던 것과 같은 그런 진심과 하나님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종을 보지 못했고, 너에게서 위안을 얻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너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이 계속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냐?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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