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하나님 말씀 ― 하나님 알아 가기 | 발췌문 32

2020.06.19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약속하다

(창 17:15~17)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창 17:21~22)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하나님이 하고자 결정한 사역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아브라함에 관한 이야기를 방금 다 들었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한 후에 택한 인물로, 이름은 아브라함이다. 그가 100세, 그의 아내 사라가 9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약속이 그에게 임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어떠한 약속을 주려고 했느냐? 바로 성경에서 언급한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라는 약속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약속했을 때 아브라함의 당시 상황은 어떠했느냐? 성경에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라는 기록이 있다. 다시 말해, 이 노부부의 나이에는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아브라함은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 그는 땅에 엎드려 웃으며 속으로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라고 했다. 아브라함은 그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말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그에게 한 약속을 단지 농담으로 여긴 것이다. 사람이 보기에 그것은 인간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고, 하나님이라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마도 아브라함에게는 그것이 아주 웃긴 일이었는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으면서 이렇게 나이 많은 사람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시다니. 게다가 내게 아이를 낳아 기르라며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시다니, 이건 불가능한 일이야!’ 그래서 아브라함은 땅에 엎드려 웃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불가능해. 하나님께서 사람한테 농담하시는 거야. 이게 진짜일 리 없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짜로 여기지 않았다. 그럼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눈에 어떤 사람이었느냐? (의인이었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를 의인이라고 하느냐? 너희는 하나님이 부른 사람이면 다 의인이고, 완전한 사람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참으로 교조적이구나! 이 일은 너희가 제대로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쉽게 정의하지 않는다. 여기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의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모든 사람에 대한 평가 기준이 있다. 비록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브라함이 이 일에서 보여 준 태도를 보면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이 어떠하냐? 막연한 면이 있지 않으냐? 그의 믿음이 크냐? 크지 않다! 아브라함의 웃음과 그의 마음속 생각이 아브라함 본인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를 의인으로 여기는 것은 순전히 상상에 불과하고, 아무렇게나 끼워 맞추는 것으로, 무책임한 평가인 것이다. 아브라함의 웃음과 몸짓을 하나님이 보지 않았느냐? 하나님이 알지 않았느냐? 하나님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자신이 정한 일을 바꾸겠느냐? 그럴 리가 없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기로 마음먹고 계획했을 때, 그 일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사람이 어떤 태도를 보이든, 하나님은 어떤 영향도, 방해도 받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쉽게 바꾸지 않을 것이며, 사람의 태도 때문에, 심지어 무지한 태도일지라도 자신의 계획을 함부로 바꾸거나 무너뜨리지 않을 것이다. 창세기 17장 21~22절에 뭐라고 되어 있느냐?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라고 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말했는지 하나님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하나님이 신경 쓰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때 하나님은 사람에게 믿음이 얼마나 커야 하는지, 하나님을 얼마나 알아야 하는지 요구하지 않은 것은 물론, 하나님이 행한 일과 말씀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을 택하기로 뜻을 정했는지, 어떤 원칙에 따라 일을 하는지에 대해 사람에게 완전히 이해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사람의 분량이 그 정도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때 아브라함이 무엇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하나님이 볼 때는 모두 정상이었다. 하나님은 결코 정죄하지도 훈계하지도 않았다. 그저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라는 말씀만 남겼다. 하나님이 보기에 그 일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됨에 따라 점차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눈에 자신이 이루고자 계획한 일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그 일을 다 예비하고 바로 떠났다. 사람이 뭘 하고 무슨 생각을 하든지, 사람이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계획하든지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정한 시간과 절차에 따라,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발전되어 간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역 원칙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든, 어떻게 인식하든 간섭하지 않지만, 사람이 믿지 않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거나 자신의 사역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일은 이렇게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생각대로 이루어졌다. 바로 우리가 성경에서 봤듯 하나님은 자신이 정한 시간에 이삭을 태어나게 했다. 실제로 사람의 행위와 태도가 하나님의 사역을 막았느냐?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보잘것없는 믿음이나 관념, 상상이 하나님의 사역에 영향을 준 것이 있느냐? 없다! 전혀 없다! 하나님의 경륜은 그 어떤 사람에게도, 그 어떤 일에도, 그 어떤 환경에도 영향받지 않는다. 그가 하고자 뜻을 정한 모든 일은 그의 계획에 따라 제때에 완성되고 이루어지며, 그의 사역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람의 우매함과 무지함은 물론, 하나님에 대한 거부감과 관념조차 개의치 않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사역을 거침없이 해 나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이며, 전능함의 발현이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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