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추구란 무엇인가(9) 제 2 부

“사람을 죽여 보았자 머리가 땅에 떨어질 뿐이니 용서할 수 있을 땐 용서하라.”라는 덕행의 논조에 대해 우리는 총 몇 가지를 이야기했느냐? 정리해 보자. 첫 번째는 다른 덕행의 논조와 본질이 같다. 그것은 모두 인성의 각도에서 출발해 제기한 것이 아니라 통치 계층과 사회 분위기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도덕 경전이 통치 계층과 사회 분위기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 너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해하고 도달해야 하는 범위와는 좀 거리가 있을 것이다. 정치와 사회 과학, 인류의 사상을 약간 아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인성의 각도에서 볼 때, 그러니까 너 자신의 측면에서 볼 때, 이런 일을 어떻게 대해야겠느냐? 예를 들어,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지난날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고, 고문으로 고통받았다고 해 보자. 큰 붉은 용은 너를 몇 날 며칠 재우지 않았고, 죽을 만큼 괴롭혔다. 네가 남자든 여자든 상관하지 않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갖은 능욕과 괴롭힘을 주었으며, 그 마귀들은 더럽고 모독적인 말로 너를 모욕하고 경멸하고 공격했다. 이러한 고통을 겪었다면, 너는 이 나라와 정부에 어떤 생각을 품게 되겠느냐? (증오를 품게 될 것입니다.) 증오가 생겨난다. 이 사회 제도를 증오하고 이 집권당을 증오하며 이 나라를 증오하게 된다. 예전에는 경찰을 보고 존경심이 생겼다면, 그들에게 박해받고 괴롭힘 당하고 유린당한 후에는 예전의 그 존경심이 깡그리 사라지고 마음속에 단 하나, 증오만이 가득하게 되었다. 인간성 없고 부도덕하며 짐승과 마귀, 사탄 같은 그들을 증오하게 된 것이다. 경찰에게 괴롭힘 당하고 유린당하고 모욕받은 후, 너는 온갖 고통을 겪었지만 그들의 민낯을 똑똑히 보게 되었고, 그들이 인두겁을 쓴 짐승이며 진리와 하나님을 증오하는 마귀임을 깨닫게 되어 그들에 대한 증오가 넘쳐나게 되었다. 이는 개인적인 증오나 원한이 아니다. 이는 그들의 사악한 본질을 간파했기에 생겨난 감정이지, 네가 상상하거나 추측하거나 판단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너를 모욕하고 짓밟고 박해하는 모든 장면, 모든 행동과 동작, 말이 네 마음 깊은 곳을 증오로 가득 차게 만든 것이다. 이것이 정상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증오로 가득 찬 너에게 만약 누군가가 “사람을 죽여 보았자 머리가 땅에 떨어질 뿐이니 용서할 수 있을 땐 용서하세요. 증오 속에서 살아가지 마십시오. 증오를 풀어 버리는 것이야말로 증오를 대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라고 말한다면, 너는 그 말을 듣고 어떤 감정을 느끼겠느냐? (역겨울 것입니다.) 역겨움 외에 또 뭐가 있겠느냐? 말해 보아라. 그 증오를 풀어 버릴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풀어지지 않는다. 불구대천의 증오가 어떻게 풀어질 수 있겠느냐? 만약 누가 “사람을 죽여 보았자 머리가 땅에 떨어질 뿐이니 용서할 수 있을 땐 용서하라.”라는 말로 네게 증오를 내려놓으라고 권한다면, 너는 내려놓을 수 있겠느냐? 어떤 반응을 보이겠느냐? 네 첫 번째 반응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사람을 죽여 보았자 머리가 땅에 떨어질 뿐이니 용서할 수 있을 땐 용서하라’니, 그건 사람을 기만하는 헛소리입니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쉽게 말하는군요! 그 전통문화의 사상 관점을 퍼뜨린 사람들은 매일같이 크리스천과 좋은 사람들을 박해합니다. 그들이 그 말에 제약받고 영향을 받습니까? 그들은 우리를 말살하고 뿌리 뽑아 버리려고 합니다! 그들은 가면을 쓴 마귀요, 사탄이라고요. 사람을 산 채로 짓밟아 죽이고도 동정의 말 몇 마디로 미혹하죠. 이는 너무도 사악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반응, 이런 심정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네 마음은 분명 이러할 것이다. 용서하라고 권유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증오할 것이며, 심지어는 그를 욕하고 싶어질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것은 사람을 증오하는 것 아닙니까? 흉악한 것 아니냐고요.”라고 말하는데, 이는 남의 일이라고 쉽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너는 다음과 같이 반박할 것이다. “저는 사람입니다. 저한테도 존엄과 인격이 있어요. 그런데 그들은 저를 사람으로 대해 주지 않았습니다. 마치 동물이나 짐승을 대하듯이 취급했죠. 제 인격과 존엄은 크나큰 수모를 당했습니다. 그들의 그런 행동은 흉악하지 않습니까? 그들의 흉악함은 묵과하면서 우리가 그들에게 반항하고 그들을 증오하는 것은 정죄하니, 당신은 대체 어떤 존재란 말입니까? 당신은 사악한 자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우리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고문하며 괴롭혔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더러 사람의 덕행을 지키고 덕으로 원수를 갚으라니, 이는 헛소리 아닙니까? 당신이 정상 인성을 지닌 사람입니까? 당신은 위선자요, 외식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극도로 흉악할 뿐만 아니라 염치도 모르고 사악한 자입니다!” 그러니 누가 “그만하세요. 다 지나간 일이니 따질 필요 없습니다. 계속 그렇게 따져 봤자 마지막에 상처 입는 것은 당신 자신입니다. 사람은 증오를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용서할 수 있을 때는 용서하라는 말을 실행하세요.”라고 말한다면 너는 어떤 생각이 들겠느냐? ‘중국의 전통문화 좋아하시네. 그건 다 통치 계급이 사람을 미혹하고 통제하는 수단일 뿐이야. 막상 그들은 그 사상 관점에 제약받아 본 적이 없어. 매일같이 사람을 미혹하고 해치지. 나는 엄연한 한 명의 사람인데 그들에게 동물이나 짐승처럼 함부로 우롱당하고 학대받았어. 그들 앞에서 수없이 모욕받고 유린당하며, 존엄이나 인격도 없이 괴롭힘 당했다고. 사람답지도 않게 말이야. 그런데 무슨 도덕을 논하는 거야? 무슨 큰소리를 치는 거냐고! 설마 내가 한 번 모욕당한 걸로는 부족하니 한 번 더 당하라는 거야? 나한테 이 증오를 내려놓으라고? 어림도 없는 소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정상 인성의 표출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것이 정상 인성의 발현이다. 혹자는 “그건 정상 인성의 발현 같지 않습니다. 증오를 선동하는 거죠.”라고 말하는데, 그럼 그의 이런 태도와 증오는 누가 만든 것인지 알고 있느냐? 큰 붉은 용에게 그렇게 잔혹하게 박해당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이런 태도를 보였겠느냐? 그가 박해당한 후 마음속 말을 좀 했다고 해서 어찌 증오를 선동하는 게 되겠느냐? 사탄 정권은 그렇게 사람을 박해했는데, 마음속 말을 좀 하는 것도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거냐? 사탄은 사람을 박해하는 건 물론이고, 그 입까지 막아 증오를 품거나 반항하지 못하게 하고자 한다. 이는 어느 나라의 이치더냐? 설마 정상 인성으로 압박과 착취에 반기를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냐? 참고 견디기만 해야 한다는 것이냐? 사탄은 수천 년간 인류를 패괴시키고 해쳤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진리를 깨달았으니 각성하여 사탄에게 대항하고 사탄을 폭로하고 증오하고 저버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상 인성인데, 당연한 이치이다. 또 이는 정상 인성에 마땅히 갖춰져야 할 선행이자 의로운 행위로, 하나님이 인정하는 바이다.

어떤 각도에서 보든, “사람을 죽여 보았자 머리가 땅에 떨어질 뿐이니 용서할 수 있을 땐 용서하라.”라는 덕행의 말은 무척 비인도적이고 역겹다. 그것은 피지배자들이 어떤 불공평한 대우를 받든, 그들의 인격과 존엄, 인권이 어떻게 공격당하고 유린당하고 상처받든 반항하지 말고 끝까지 참고 견디라고, 복수해서는 안 되고 증오하는 일을 생각해서도 안 되며 보복은 더더욱 떠올려서는 안 된다고, 용서할 수 있을 땐 용서하라고 한다. 이는 비인도적인 것 아니겠느냐? 이는 분명 비인도적인 행위이다. 피지배층인 서민들에게 이를 실행하고 이런 덕행을 지니라고 요구한다면, 통치 계층의 덕행은 그보다 더 높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는 더더욱 그 말을 실행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가 그렇게 했겠느냐?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그가 이 말로 자신을 제약하고 판단했느냐? 그가 이 말로 자신의 백성들과 자신이 통치하는 국민들을 대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그렇게 하는 법이 없다. 그는 그저 자신의 백성들에게 이 사회와 국가, 통치 계층을 증오하지 말라고, 사회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불공평한 대우를 받고, 육적, 심적, 영적으로 어떤 상처를 입을지라도 용서할 수 있을 땐 용서하는 법을 배우라고 알려 줄 뿐이다. 반대로 만약 백성들, 그가 민초로 보는 자들이 그에게 ‘아니오’라고 말하거나 그의 지위, 통치, 권위에 대해 다른 주장과 목소리를 제기한다면 강력한 통제를 받을 것이며, 더 심하게는 매서운 징벌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국민들에게 “사람을 죽여 보았자 머리가 땅에 떨어질 뿐이니 용서할 수 있을 땐 용서하라.”라고 제창하는 통치 계층이 마땅히 갖춰야 할 덕행이겠느냐? 국민들 가운데서, 그러니까 피지배층 가운데서 아주 작은 움직임이나 수상한 거동이 보이기만 해도, 그것이 설령 사상적으로 그들에게 아주 약간 반대하는 뜻을 보인 것뿐일지라도, 시작 단계에서 바로 말살당한다. 그들은 사람의 사상과 마음을 통제하며, 사람들에게 에누리 없이 그들에게 복종하라고 강요한다. “임금이 신하에게 죽으라고 하면 신하는 죽어야만 한다.”, “하늘 아래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고, 온 천하에 왕의 신하가 아닌 자가 없다.”라는 말처럼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통치자는 어떻게 하든 옳으니, 백성들은 마땅히 그에게 미혹당하고 통제되고 모욕당하고 우롱당하고 유린당하고 마지막에는 잡아먹혀야 한다는 뜻이 된다. 또 통치 계급이 어떻게 하든 전부 옳으니, 사람은 살아 있는 한 반드시 양민이 되어야지, 왕에게 두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되며, 왕이 아무리 못되고 왕의 통치가 아무리 별로여도 백성들은 ‘아니오’라는 말을 하거나 반항의 뜻을 품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순종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온 천하에 왕의 신하가 아닌 자가 없는’ 이상, 왕이 통치하는 백성들은 모두 그의 신민(臣民)이다. 그렇다면 왕이 백성들을 위해 먼저 “사람을 죽여 보았자 머리가 땅에 떨어질 뿐이니 용서할 수 있을 땐 용서하라.”라는 말을 실행하여 귀감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백성들은 우매하고 무지하며 식견이 없는 데다가 법도 잘 몰라 수시로 법을 어기고 죄를 짓는 행위를 할 수 있다. 그럼 왕이 먼저 “사람을 죽여 보았자 머리가 땅에 떨어질 뿐이니 용서할 수 있을 땐 용서하라.”라는 말을 실행해야 하지 않겠느냐? 백성들을 자식처럼 여겨 용서하는 것 또한 왕이 해야 할 일 아니겠느냐? 왕 역시 이런 도량을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가 자신에게 이렇게 요구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종교와 신앙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내릴 때, 왕이 스스로에게 “사람을 죽여 보았자 머리가 땅에 떨어질 뿐이니 용서할 수 있을 땐 용서하라.”라고 요구했느냐? 그의 군대와 경찰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잔혹하게 박해하고 고문으로 괴롭힐 때, 그가 자신의 정부에 “사람을 죽여 보았자 머리가 땅에 떨어질 뿐이니 용서할 수 있을 땐 용서하라.”라고 요구했느냐? 그는 자신의 정부와 경찰에게 단 한 번도 그렇게 요구한 적이 없다. 오히려 정부와 경찰에게 종교와 신앙을 반드시 가혹하게 진압할 것을 종용하고 강요했다. 심지어는 “죽여도 상관없다!”, “소리 소문 없이 해치워 버려라!”라는 명령을 내리기까지 했다. 여기에서, 이 사악한 세상의 왕은 곧 마귀이자 마왕, 사탄임을 알 수 있다. 그는 관리가 불을 지르는 것은 허락해도 백성이 등불을 켜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이 전통 도덕의 논조로 국민들을 제약하고 제한하는데, 국민들이 일어나 그에게 반항할까 봐 무척 두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통치 계급이 각종 덕행의 논조로 사람을 미혹하는 목적은 오직 하나, 국민의 수족을 제약하고 결박함으로써 국민들이 그의 통치에 순종하고, 반항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는 이 덕행의 이론들로 국민의 의식을 마비시키고 국민을 기만하며, 국민의 눈을 가려 국민이 그에게 머리를 숙이며 양민이 되도록 한다. 그가 아무리 제멋대로 굴고 백성들을 유린할지라도, 아무리 백성들을 압박하고 착취할지라도, 백성들은 꾹 참고 견뎌야만 하며, 조금도 반항을 할 수 없다. 죽을 지경에 몰려도 선택지는 도망가는 것뿐, 반항은 불가능하다. 반항하겠다는 생각조차 감히 품을 수 없으며, 심지어는 호미나 낫에도 눈길 한 번 주지 못하고 한쪽에 치워 두어야 한다. 주머니칼이나 손톱깎이조차 몸에 지닐 수 없다. 그렇게 자신이 양민이며, 영원히 왕의 통치에 순종하고 충성을 바칠 것임을 보여 주어야 한다. 어느 정도까지 충성을 바쳐야겠느냐? 아무도 감히 “백성으로서 전통문화의 사상 관점으로 우리의 왕을 감독하고 제약해야 합니다.”라고 말하지 못하며, 왕이 악을 행하는 것을 봐도 의견을 내지 못하는 정도이다. 그랬다간 죽음의 화를 자초할 것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통치자는 자신을 백성들의 왕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주재자, 지배자로 여기는 것이 분명하다. 중국 역사에서 황제들은 자신을 ‘천자’라고 불렀다. ‘천자’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늘의 아들을 줄여서 ‘천자’라고 한다. 그는 왜 자신을 ‘지자(地子)’라고 하지 않았겠느냐? 땅에서 태어났으니 ‘지자’가 되어야 마땅하다. 분명 땅에서 태어났으면서 왜 천자라고 한단 말이냐? 천자라고 칭하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중생, 민초들을 내려다보려는 것 아니겠느냐? 그의 통치 방식은 모든 것을 뛰어넘는 권력과 지위로 국민을 통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권력을 손에 넣어 황제가 되었으니 아주 자연스럽게 국민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권세를 부리는 것이다. 반면, 국민들은 조금만 태만하게 굴어도 머리가 떨어질 위험에 처한다. 천자라는 호칭은 이렇게 생겨난 것이다. 만약 그가 자신을 지자라고 한다면, 지위가 낮아 보여 그가 말하는 왕의 위엄이 없을 것이며, 피지배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높여 천자라고 하면서 하늘을 대표하고자 한 것이다. 그가 하늘을 대표할 수 있겠느냐? 그에게 그런 본질이 있겠느냐? 그런 본질이 없는데 대표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사칭이다. 그 통치자들은 하늘과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한편, 그들의 통치에 유리하게 하고자 스스로를 천자, 또는 하늘이 운명적으로 정한 사람이라고 사칭한다. 이는 염치를 모르는 것 아니겠느냐? 이런 사실로 볼 때, 그 덕행 측면의 갖가지 논조를 사람들 사이에 퍼져 나가게 하는 목적은 사람의 정상적인 생각을 제약하고 사람의 손발을 결박하며 사람의 행위를 제한하고, 나아가 정상 인성의 범위 안에 있는 각종 생각, 관점, 태도를 제한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봤을 때, 이는 좋은 사회 분위기와 사회도덕을 형성하기 위함이다. 물론, 이런 성과를 내는 것 또한 통치 계급의 장기적인 통치에 일조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통치하든, 최종적인 피해자는 결국 인류이다. 인류는 그 전통문화의 갖가지 사상 관점에 얽매이고 영향받아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얻을 기회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구해 인생의 바른길을 걸을 기회마저 잃었다. 게다가 국민들은 통치자의 통제 아래에서 어쩔 수 없이 사탄에게서 비롯된 수많은 각종 독소와 사설, 궤변 등 부정적인 것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인류의 수천 년 역사에서 사탄은 지식과 각종 사상 이론을 전파함으로써 오늘날까지 인류를 가르치고 물들이고 미혹해 왔다. 사람은 한 세대, 또 한 세대 그 사상 관점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또한 깊이 얽매이게 되었다. 물론, 사탄에게서 비롯된 사상 관점의 영향 속에서 사람의 패괴 성품은 갈수록 악화하고 심해졌다. 다시 말해, 사람의 패괴 성품은 그것을 기초로 심해지고 ‘업그레이드’되어 사람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렸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대적하게 되었으며, 죄 속에 깊이 빠져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사람을 죽여 보았자 머리가 땅에 떨어질 뿐이니 용서할 수 있을 땐 용서하라.”라는 덕행의 논조의 형성, 사람이 제기한 이 요구의 배후에 숨겨진 목적, 그리고 이 덕행의 논조가 생겨난 후 그것이 사람에게 가져다준 피해 등 다양한 측면에 대해 교제하였다. 추후 다시 천천히 묵상하도록 하여라.

전통문화 중 덕행과 관련된 말은 중국인에게 낯설지 않다. 그것들이 사람에게 준 영향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너는 이런 사회 환경 속에서 살아가면서 이 전통문화에 속하는 도덕 측면의 사상 교육을 받았고, 이러한 것들이 매우 익숙하다. 하지만 너는 그것들의 부정적인 역할이 몹시 크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그것들이 네가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며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데 얼마나 큰 방해가 되는지, 또는 네가 앞으로 걸어갈 길에 얼마나 큰 영향과 방해를 가져다주는지 등의 문제를 의식할 수 있겠느냐? 오늘 교제한 주제에 대해 많이 묵상하고 분별하며, 전통문화가 인류를 교육하는 데 과연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것들은 과연 어떤 것들인지, 사람은 그것들을 어떻게 올바로 대할 수 있는지 간파하도록 해야 한다. 앞에서 교제한 말들은 너희가 전통문화에 속하는 것들을 인식하는 데 도움과 유익이 될 것이다. 물론, 그 인식은 전통문화를 인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류에 대한 사탄의 패괴, 사탄이 인류를 패괴시키는 갖가지 방식과 방법, 심지어 구체적으로는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하는 각종 관점, 세상과 인류를 대하는 사탄의 각종 방식, 방법, 관점, 각도, 입장 등까지 아우른다. 전통문화에 속하는 이런 것들을 간파한 후, 너희가 해야 할 일은 전통문화의 갖가지 논조와 관점을 회피하고 거부하는 것만이 아니다. 자신이 지키고 신봉하는 덕행의 논조가 너에게 어떤 위해와 속박, 결박을 가져다주는지, 처신의 사상 관점, 네가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진리를 추구하는 데 어떤 영향과 방해, 교란 작용을 하는지 등을 더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해부해야 한다. 또한, 그것이 너로 하여금 계속 진리를 받아들이거나 깨닫거나 실행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께 완전히, 절대적으로 순종하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에 관해서도 인식하고 해부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이 바로 사람이 반성하고 인식해야 할 내용이다. 그저 회피하고 거부하는 것만으로 끝내서는 안 되고 반드시 분별하고 간파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전통문화 중 옳은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닌 것, 사람을 미혹하는 것들을 마음속에서 철저히 버릴 수 있다. 설령 어떤 덕행의 논조가 네게 깊이 뿌리내리지 않았고, 그저 네 사상 관점 안에서 가끔 드러날 뿐이라고 해도, 그것 역시 한 번쯤은 너를 교란할 수 있다. 그러니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다면 어떤 논조나 관점을 꽤 긍정적인 것, 혹은 진리에 가까운 것으로 여길 수 있다. 이는 무척 골치 아픈 일이다. 너는 어떤 덕행의 논조들을 마음속으로 꽤 좋아하여 동조할 뿐만 아니라 공개적인 자리에 갖고 가도 모두가 듣고 흥미를 보일 것이라고, 긍정적인 것으로 여겨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것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네가 가장 내려놓기 어려운 논조일 것이다. 네가 그것을 진리라고 인정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은 네 마음속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인정되며, 너도 모르는 새에 네 마음속에 뿌리를 내려 네 생명이 된다. 그리하여 네가 하나님을 믿은 후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를 받아들일 때, 그것들은 자연스럽게 튀어나와 너를 교란하고, 네가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할 것이다. 그것들은 다 사람의 진리 추구를 방해하니,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다면 진리와 혼동하거나 진리와 같은 선상에 놓기 쉽다. 이는 모두 사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어쩌면 너는 “재물을 주워도 갖지 마라.”, “기꺼이 남을 도우라.”,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 등의 논조를 진리로 여기거나 자신의 덕행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거나 처신하고 추구하는 목표로 삼은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전통문화에 영향받지 않고 패괴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또 어쩌면 너는 비교적 사소한 것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다. 너는 자신이 재물을 주워도 갖지 않는 사람인지, 기꺼이 남을 돕는 사람인지 신경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가 이해하고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너는 이런 사회 환경 속에서, 전통문화의 사상 교육에 물들어 가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사람이 떠받드는 그 논조들을 신봉하게 될 것이며, 적어도 그중 몇 가지를 덕행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 것이다. 이는 네가 성찰해야 할 부분이다. 어쩌면 너는 ‘재물을 주워도 갖지 마라’, ‘기꺼이 남을 도우라’를 덕행 판단의 기준으로 삼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벗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하라.”와 같이 네가 마음 깊이 무척 고상하다고 여기는 논조가 네 일생에 영향을 미치는 신조가 되었고, 혹은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최고의 법칙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겠느냐? 네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의식적으로 전통문화를 떠받들고 좇지는 않았을지라도 네 처신의 신조와 방식, 방법, 네 인생의 목표, 네가 추구하는 인생 목표의 원칙, 마지노선, 신조는 그 전통문화에서도, 인류가 신봉하는 인의예지신, 또는 인류가 떠받드는 덕행의 신조 중 어떤 한 가지에서도 전혀 벗어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즉, 너는 그 범위를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 패괴된 사람,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세상의 음식을 먹는 이상, 네가 신봉하는 처신과 삶의 원칙은 전통문화에서 비롯된 덕행 측면의 원칙, 신조일 수밖에 없다. 내가 한 이 말들과 내가 폭로한 문제들을 너희는 이해해야 한다. 어쩌면 네게는 그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서 내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사람은 정도만 다를 뿐 누구나 이런 문제를 갖고 있다. 네가 인식했든 인식하지 못했든, 이는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마땅히 성찰하고 이해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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