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추구란 무엇인가(5) 제 2 부

사람이 관념적으로 옳고 좋다고 여기는 것들에 관해서는 이미 많이 이야기했다. 내가 반복적으로 이야기한 목적은 이 화제가 진리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고 진리와 같은 선상에 놓을 수도 없지만,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그것을 진리가 아닌 것으로 여기지 말고, 하나의 지식이나 이론으로 생각하지도 마라. 그것은 공허하지 않다. 사람이 관념적으로 옳거나 좋다고 여기는 것들은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서 늘 생각을 통제하고,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시선, 입장을 통제하기에 이러한 것들을 분명히 알려 주어 깨닫게 하고 분별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사람이 관념적으로 좋다고 여기는 행위를 내려놓고 더는 그러한 것들을 긍정적인 것으로도,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행위 원칙으로도 보지 않게 해야 한다. 그것들은 하나님 말씀이 전혀 아니며, 진리는 더더욱 아니다. 너희가 해야 할 일은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관점과 입장을 끊임없이 고쳐 나가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자신의 마음속에 생겨난 각종 관념과 관점이 정말 진리에 부합하는지 부단히 성찰하면서 그릇된 관념과 관점을 제때 바로잡아야 한다. 그 후 올바른 입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고 하나님이 요구한 행위 준칙을 통해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해야 할 것이다. 이는 진리 추구의 가장 기본적인 실행이자 구원받고 정상 인성을 살아 내기 위해 마땅히 갖추어야 할 추구 방향, 추구 목표이다. 너희는 이 말씀들을 지금 막 들었으니 그리 깊이,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체험이 계속 깊어짐에 따라 관념적으로 옳다고 여기는 전통문화에 대해 끊임없이 해부하고 분별하여 결국 전통문화의 각종 논조를 버리고 더는 전통문화에 근거해 사람의 행위를 판단하지 않고 대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근거하여 사람을 판단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전통문화의 관념적인 것들을 철저히 제거하고 포기한 것이다. 만약 네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그저 간단한 도리만 깨달아 전통문화가 요구하는 좋은 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안다면 ‘나는 현대인이고 남들보다 뛰어나고 세속적이지도 않아. 그렇게 전통적이지도 않지. 나는 전통문화를 아주 혐오한다고. 그렇게 번거로운 허례허식 따위는 싫어한단 말이야.’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과 일을 바라볼 때면 아주 자연스럽게 예전 관념으로 바라보고 판단한다. 그때 너는 ‘나는 현대인이야. 옛것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나는 그렇게 전통적이지 않아. 나는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어.’라고 여긴 말들이 거짓되고 잘못되었음을, 자신의 느낌에 속았음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야 네 마음 깊은 곳의 오래된 사상 관점, 오래된 관념이 이미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려 관념이 바뀌고 생각을 버렸다고 해서 바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너는 새 시대의 사람, 현대인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그저 외적인 표지일 뿐이다. 태어난 연도나 시대가 다를 뿐, 인류 공통의 오래된 것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들을 너는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갖고 있다. 네가 사람인 이상 이러한 것을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다. 못 믿겠다면 체험해 보아라. 체험하다 보면 어느 날, 내 말에 아멘 하게 될 것이다.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 거만한 사람,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는 석사고 박사야. 내가 사회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냈는데. 나는 새 시대의 문화와 교육, 특히 서양 교육을 접했어. 그런데 나한테 그런 낡아 빠진 것들이 있으려고? 나는 전통과 낡아 빠진 규율을 가장 싫어해. 가족하고 함께 있을 때 전통이나 규율과 관련된 얘기가 나오면 하나도 듣고 싶지 않다고.’라고 생각한다. 일단 성급하게 부정하지 마라. 언젠가 너는 그러한 생각을 내려놓고, 너 역시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 중 한 명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네 내면에 있는 낡은 관념을 원해서 받아들이고 드러낸 것은 아니지만, 인류의 선조와 전통문화가 오래전부터 너에게 영향을 주고 전염시켰으므로 네 내면세계와 사상 관념 속에는 그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들어 있다. 어째서겠느냐? 전통문화의 그런 것들은 단순한 말이 아니고, 어떤 논조나 행동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의 사상과 이론으로서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 논조와 행동을 만들어 낸 근원은 패괴된 인류가 아니라 사탄이다.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아가는 한, 너는 어쩔 수 없이 그러한 것들에 물들고 미혹되고 패괴될 수밖에 없다. 지금 너는 내 말이 전부 사실이고 진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말들을 체험할 때 깨닫게 될 것이다. 너는 전통문화와 번잡한 허례허식, 낡아 빠진 규율을 싫어하지만,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할 때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진리를 준칙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너도 모르게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을 근거로 삼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은 전통문화에 속하는 것으로, 전통문화의 정수이다. 그때가 되면 너는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도 진리를 깨닫지도 못하고 진리를 얻지도 못했다면 가장 기본적인 정상 인성의 살아 냄에조차 사탄의 독소와 성분, 사탄의 간계가 들어간다는 것을, 그것은 전부 부정적인 것이고, 하나님이 혐오하여 버리는 것이며 육에 속하는 것임을, 하나님이 제기한 것, 좋아하는 것,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긍정적인 사물과는 어떤 관계도, 조금의 연관성이나 유사성조차도 없음을 알게 되고 똑똑히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 문제들을 똑똑히 확인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은 진리 실행이란 무엇인지 모를 것이고, 언제까지나 사람이 긍정적인 사물이라고 여기는 좋은 행위들을 지킬 것이다. 그럼 사람의 행위와 태도는 영원히 하나님에게서 통과되지 못한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진리를 받아들이고 추구할 수 있을 것이며,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진리를 준칙으로 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명확히 알려 준 인생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진리를 준칙으로 하는 것’, 이 진리 원칙은 사람에게 더없이 중요하고 필수적이다. 이는 구원받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진리 원칙이니,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받아들여야 한다. 이 일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며,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만약 네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이 진리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네 나이가 많든 적든, 지식이 있든 없든, 믿음이 크든 보잘것없든, 어떤 사회 계층이나 집단에 속하든 상관없이 하나님이 요구한 기준과 전혀 관계가 없을 것이다. 네가 해야 할 일은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진리를 준칙으로 하는 것이다. 이는 네가 추구해야 할 유일한 길이니 까탈스럽게 따지고 고르면서 “내 관념에 맞는 거라면 진리로 여겨 받아들이겠지만, 내 관념에 맞지 않는 거라면 거부할 거야. 나는 내 뜻대로 할 거라고. 진리를 추구할 필요는 없어. 하나님 말씀의 입장에 서서 사람과 일을 바라볼 필요도 없지. 나한테는 내 관점이 있으니까. 내 관점도 꽤 고상하고 객관적이고 긍정적이거든. 하나님 말씀과 별로 차이가 없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이나 진리를 대신할 수도 있는 거야. 이 부분에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거나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하지 않아도 돼.”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이런 관점과 추구 방식은 잘못되었다. 사람의 관점이 아무리 좋고 옳아도 잘못된 것으로, 결코 진리를 대신할 수 없다.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무엇을 추구하든 다 잘못된 것이다. 그렇기에 말하는데,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진리를 준칙으로 하는 것’에 있어 너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너는 그저 착실하게 이 말대로 행동하고 실천하고 체험하며, 조금씩 이 말을 인식하고, 네 패괴 성품을 알고 이 말의 실제에 진입하면 된다. 그렇게 해야 마지막에 진리 추구로 도달해야 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네 노력과 버린 것, 네가 지불한 대가는 전부 물거품이 되고, 모두 헛수고가 될 것이다. 이해했느냐?

진리 추구란 무엇이냐?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진리를 준칙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착실하게, 온전히, 절대적으로 그 말대로 실행하는 것이다. 그 말을 네가 추구하는 목표이자 생명의 실제가 되게 한다면 너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어떤 불순물도, 사람의 뜻도 들어가서는 안 되며, 요행 심리를 가져서도 안 된다. 그래야 옳다. 그렇게 한다면 진리를 얻을 희망이 있을 것이다. 그럼 사람의 관념 속 좋은 행위를 교제하고 해부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너희에게 어떤 긍정적인 지도와 도움을 가져다주겠느냐? 이 말들이 너희가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근거와 준칙이 될 수 있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예배 때나 영 생활 때 이 두 번의 교제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읽어 보아라. 이 말씀들을 확실히 소화한다면,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할 때, 정확히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네 언행에 근거와 준칙이 생기고,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정확해지며, 일을 바라보는 입장과 시선 또한 올발라진다. 더는 정서나 감정으로, 또 전통문화나 사탄의 철학으로 사람과 일을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네 근거가 옳으면, 사람과 일을 바라보는 결과 역시 상대적으로 정확할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들은 너희에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화제를 교제해 주는 이유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도, 무료해서 너희를 심심풀이 상대로 여기려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는 문제이자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받는 길에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이러한 문제들을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해 얽매이고 결박되며 그런 문제로 가로막히고 시달린다. 물론, 사람은 구원받는 길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소극적인 측면에서든 적극적인 측면에서든, 혹은 부정적인 면에서든 긍정적인 면에서든, 이러한 문제들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 실생활 속에서 비슷한 문제가 임해 선택을 마주해야 할 때 진리를 구할 수 있으며, 올바른 시선과 입장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고, 원칙을 지킬 수 있다. 그렇게 한다면 네 결정과 선택은 근거가 있을 것이고, 하나님 뜻에 부합할 것이다. 또 더 이상 사탄의 철학이나 궤변에 미혹되지 않고, 사탄의 독소나 황당무계한 논리에 혼란을 겪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면 가장 기본적인 측면에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사람과 일을 대할 수 있으며, 감정이나 사탄의 철학에 영향을 받거나 통제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의 관념 속 좋은 행위를 인식하고 분별하는 것은 진리 추구의 과정에서 큰일은 아니지만,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사람은 일상생활 속에서 수시로 이런 일들을 접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이 임해서 어떻게 하겠다고 생각했을 때, 다른 견해를 제시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 보자. 너는 평소 그 사람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이 경우, 그의 견해를 어떻게 대해야겠느냐?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겠느냐? 모른 척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너는 마음속으로 그에 대한 견해와 평가, 정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이 네 생각과 판단을 조종하며, 또 그 일에 대한 네 결론을 조종하기가 쉽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제시한 다른 견해에 대해 반드시 침착한 태도로 진리에 근거하여 분별하고 꿰뚫어 보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만약 그의 말이 진리 원칙에 부합한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이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비슷한 일과 사람이 다시 한번 임했을 때 또 막막해지고 어쩔 줄 몰라 하고 마음이 복잡해질 것이다. 심지어 극단적인 수단으로 대처하거나 대충 건성으로 넘어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로 인해 상상하기 힘든 결과가 생길 것이다. 하나님이 요구한 판단 기준으로 사람을 바라본다면, 마지막 결과 또한 긍정적이고 좋은 것이며, 사람과 사람 간에 어떤 충돌도 없이 화목할 것이다. 반면 사탄의 논리와 사람의 관념 속 좋은 행위를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본다면 두 사람 사이에 분쟁이 일고 싸움이 벌어져 화목하게 지낼 수 없을 것이다. 그에 따른 결과는 다양하다. 서로 헐뜯거나 깎아내리거나 판단할 수도 있고, 심각할 경우 치고받고 싸울 수도 있다. 결국 둘 다 손상을 입게 되는데, 이는 사람이 원치 않는 바이다. 그러므로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한 것은 종종 사람이 객관적이고 공정하고 이성적으로 사람과 일을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요구하고 알려 준 행위 준칙에 근거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로 사람과 일을 바라보며 판단하면 마지막에 분명 객관적인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거기에는 혈기나 사람의 정서, 감정이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에게 이로우면 이로웠지, 해로운 점은 하나도 없다. 이러한 면에서 봤을 때, 사람이 받아들여야 할 것은 사람의 관념 속 좋은 행위겠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요구한 행위 준칙이겠느냐?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행위 준칙입니다.) 너희는 모두 그 답을 알고 맞힐 수 있구나. 좋다. 이 화제는 여기까지 교제하도록 하자. 이제 너희가 해야 할 일은 관련 내용을 계속 묵상하고 교제하여 이 문제들을 체계화하고, 몇 가지 실행의 원칙과 길을 종합해 내는 것이다. 그 후, 일상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체험하고 경험하여 이 말씀들의 실제에 진입해야 한다. 물론, 이 말씀들의 실제에 진입하는 것은 사람이 초보적으로 추구하고 진입해야 하는 진리 실제이기도 하다. 이렇게 조금씩, 사람은 체험 과정에서 내가 교제한 내용의 면면에 서로 다른 정도의 깨달음과 인식이 생길 것이고, 서로 다른 각도에서 점차 수확을 거둘 것이다. 네 수확이 많을수록 이 말씀들에 대한 깨달음과 진입도 깊어질 것이며, 네 체험과 진입이 깊어질수록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에 관한 진입과 깨달음도 깊어질 것이다. 반대로, 만약 네가 전혀 진입하지 않고, 이러한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훑어보거나 대충 이해하고 넘어가면서 자기가 늘 살던 대로 살아간다면, 문제가 나타나도 진리를 구하지 않으며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스스로에게 대입하고 해결하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할 수 없다. 영원히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없다는 것은 무슨 의미겠느냐? 다시 말해, 너는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며, 영원히 진리를 실행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네가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할 때 영원히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진리를 준칙으로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저는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진리를 준칙으로 한 적이 없지만 꽤 괜찮게 살아왔습니다.”라고 말하는데, ‘꽤 괜찮게 살아왔다.’라는 게 어떤 것이더냐? 죽지 않으면 괜찮은 것이냐? 네 추구 목표는 구원받는 것이 아니며, 너는 진리를 받아들이지도 깨닫지도 못한다. 그런데도 꽤 괜찮게 살아왔다고 한다면, 네 삶의 질은 매우 떨어지고, 네가 살아 낸 인성의 품질은 더없이 낮을 것이다. 관용적 표현으로 이야기하자면 너는 사람답지 않게 살아온 것이다. 너는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며, 사탄의 성품과 사탄 철학으로 살기 때문이다. 너는 인두겁을 쓴 존재이지, 인간이 아니다. 그런 사람의 삶의 질이 어떨 것이며, 그런 사람의 삶이 어떤 가치가 있겠느냐? 자신과 타인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런 삶은 질이 무척 떨어지고, 어떤 가치도 없다.

오늘 왜 전통 관념과 전통문화에 관해 교제하고 해부하는지 너희는 알고 있느냐?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겠느냐? (아닙니다.) 그럼 이런 화제를 교제하는 의의는 무엇이겠느냐? 최종적으로 이루려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저희의 어떤 행위와 태도가 전통문화에 지배되고 있는지, 저희가 사탄의 철학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성찰하는 데 도움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진리를 깨달아 분별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요구와 준칙대로 정상 인성을 살아 낼 수 있으며, 진리 추구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 그런데 답변이 좀 장황하구나. 가장 간단하고 직접적인 답은 무엇이겠느냐? 이 화제를 교제하는 최종 목적은 딱 하나다.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진리 실행인지 알게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질문을 알면 전통문화가 제창하는 좋은 행위를 분별할 수 있고, 더 이상은 그런 좋은 행위들을 진리 실행이나 사람다운 모습을 살아 내는 기준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진리를 깨달아야만 전통문화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고, 진리 실행이나 사람이 갖추어야 할 좋은 행위에 대한 잘못된 이해, 잘못된 관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면 정확하게 진리를 실행하고 추구할 수 있다. 만약 무엇이 진리인지 모른 채 전통문화를 진리로 여긴다면, 사람의 추구 방향과 목표, 길은 전부 틀릴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말씀에 위배될 것이며, 진리와 어긋나고 참도에서 벗어날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이고, 길을 잘못 든 것이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이 진리를 구하지 않고 실행하지도 않는다면 마지막에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진리를 얻지 못한다. 진리를 얻지 못하면 사람은 하나님을 믿어 봤자 헛수고이다. 그러므로 오늘 이러한 전통 관념과 전통문화의 논조를 교제하고 해부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가장 의미 있고 아주 중요한 화제이다. 너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무엇이 진리인지 정말 이해하고 있느냐?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지 알고 있느냐? 목표를 정했느냐? 길을 정했느냐? 만약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다면 진리를 어떻게 추구할 수 있겠느냐? 잘못 추구할 수 있지 않겠느냐? 옆길로 빠지지 않겠느냐? 그럴 공산이 크다. 그러므로 오늘 교제하는 이런 말들이 표면적으로는 깊이가 없어 보이고 한 번에 이해가 되는 것 같아서 너희 입장에서는 언급할 가치도 없어 보이겠지만, 이런 내용, 이런 화제는 진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고 하나님의 요구와 관계가 있다. 너희 대부분은 이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너희는 모두 이치상으로 전통문화나 인류의 사회과학이 진리가 아니며, 민족의 풍습은 더더욱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너희는 정말 이러한 것들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느냐? 정말 이러한 것들의 속박에서 벗어났느냐?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 집에서는 사람에게 민족 문화나 풍습을 열심히 익히라고 요구한 적이 없고, 전통문화의 어떤 부분이라도 받아들이라고 한 적은 더더욱 없다. 이러한 일을 하나님 집에서는 언급한 적이 없다. 하지만 오늘 교제한 이 내용들은 무척 중요하다. 이는 너희에게 분명히 알려 줄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말을 하는 목적은 전부 너희가 진리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너희가 이해할 수 있겠느냐? 너희가 공을 들이고 대가를 치르고 정력을 들인다면, 이 측면에서 최종적으로 수확을 얻고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진리를 깨달은 후 진리 실제에 진입하기 위해 추구하면 성과를 내기가 쉽다.

일전에 우리가 교제한, 사람이 관념적으로 옳고 좋다고 여기는 것들 중 한 가지는 좋은 행위였다. 그러면 다른 한 가지는 무엇이었느냐? (인성 품격과 도덕입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사람의 덕행이다. 패괴된 인류는 모두 사탄 성품으로 살아가지만, 위장에 매우 능하다. 표면적인 행동이나 행위에 대한 특정한 논조 외에 사람의 덕행 측면에도 각양각색의 논조와 요구가 있다. 그럼 덕행 측면에서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에는 어떤 것들이 있느냐? 너희가 알고 있는 것, 익숙한 것들을 예로 들어 보아라. 그다음 자주 보이는 말 몇 개를 찾아 해부하고 교제하도록 하자. (재물을 주워도 갖지 마라. 기꺼이 남을 도우라.)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 (남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라.) (원한을 덕으로 갚으라.) (현명함과 정숙함을 갖춰라.)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 그런 것들이 있다. 그 밖에도 “물을 마실 때는 우물을 판 사람을 기억하라.”, “얼굴은 때리지 말고 단점은 들추지 말라.”, “사람을 죽여 보았자 머리가 땅에 떨어질 뿐이니 용서할 수 있을 땐 용서하라.” 등이 있다. 이는 전부 사람의 덕행에 대한 요구이다. 또 뭐가 있느냐? (물 한 방울의 은혜라도 넘치는 샘물로 보답하라.) 그것 또한 사람의 덕행에 대한 전통문화의 요구이자 덕행을 판단하는 기준 중 하나이다. 또 있느냐?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 깊이가 얕기는 하나 그것 역시 해당한다. 이 밖에도 “벗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하라.”,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 “부귀에도 미혹되지 않고 가난에도 그 뜻이 흔들리지 않으며 위세나 무력에도 그 뜻이 꺾이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쳐라.” 등이 있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또 “봄날의 누에는 실을 다 뽑아내야 죽고, 초는 다 타 버려야 눈물이 마른다.” 같은 것도 있다. 보아라. 사람의 품행과 처신에 대한 요구가 얼마나 높으냐! 사람이 일생을 양초처럼 태워 재로 만들어 버리라는 것인데 그렇게 처신해야 품행이 고상하다는 것이다. 이 요구가 높지 않으냐? (높습니다.) 인류는 몇천 년 동안 전통문화에 영향받고 속박되어 왔다. 그 결과가 어떠하냐? 사람다운 모습을 살아 냈더냐?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 냈더냐? 사람은 전통문화가 요구하는 것들을 위해 살아가며, 자신의 청춘, 심지어는 일생을 바치면서 빛나고 영광스럽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죽음이 임했을 때에도 자기가 왜 죽는지, 그 죽음이 가치가 있는지, 의미가 있는지, 창조주의 요구에 부합하는 것인지 등은 전혀 모른다. 사람의 덕행에 관한 전통문화의 논조와 요구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더냐? “국가의 흥망에는 민초도 책임이 있다.”,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등이 있다. 이 밖에도 “군자의 말 한마디는 천금과 같다.”라는 말도 있다. 이는 사람의 신용에 대한 요구이다. 또 무엇이 있느냐? (진흙에서 자라도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다.) 그 말도 비슷하기는 하구나. 예는 여기까지만 들도록 하자. 방금 그 논조들은 사람의 봉헌, 애국심, 신용, 정조 등에 대한 요구였고, 이 밖에도 남들과 함께할 때의 원칙, 은인을 대하거나 은혜를 갚는 방법 등이 있었다. 어떤 것은 깊이가 얕고, 어떤 것은 깊이가 있다. 이 중 가장 이해하기 쉬운 것은 “기꺼이 남을 도우라.”, “재물을 주워도 갖지 마라.”, “부귀에도 미혹되지 않고 가난에도 그 뜻이 흔들리지 않으며 위세나 무력에도 그 뜻이 꺾이지 않는다.”로, 이는 처신 측면의 요구이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는 사람의 절개와 정조에 관한 요구로서 기본적으로 중국 전통문화의 인의예지신의 범위 안에 있다. 지금까지 전부 몇 가지를 종합했더냐? (21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읽어 보아라. (재물을 주워도 갖지 마라. 기꺼이 남을 도우라.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해라. 원한을 덕으로 갚으라.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 남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라. 현명함과 정숙함을 갖춰라. 물을 마실 때는 우물을 판 사람을 기억하라. 얼굴은 때리지 말고 단점은 들추지 말라. 사람을 죽여 보았자 머리가 땅에 떨어질 뿐이니 용서할 수 있을 땐 용서하라. 물 한 방울의 은혜라도 넘치는 샘물로 보답하라.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 벗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하라.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 부귀에도 미혹되지 않고 가난에도 그 뜻이 흔들리지 않으며 위세나 무력에도 그 뜻이 꺾이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쳐라. 봄날의 누에는 실을 다 뽑아내야 죽고, 초는 다 타 버려야 눈물이 마른다. 국가의 흥망에는 민초도 책임이 있다.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군자의 말 한마디는 천금과 같다. 진흙에서 자라도 오염되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다.) 오늘은 먼저 인류가 덕행 측면에서 종합한 갖가지 좋은 인품에 대해 예습해 보자. 덕행 측면에 대한 전통문화의 각종 논조는 사람의 인성과 덕행에 다양한 요구를 했다. 그중에는 은혜를 갚으라는 것도 있고, 기꺼이 남을 도우라는 것도 있으며,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나 방법에 대한 것도 있고, 사람의 문제나 결점 또는 문제가 있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방법에 관한 것도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람에게 선을 그어 주고 요구 기준을 제기한 것이다. 이는 전부 전통문화가 사람의 덕행에 대해 제기한 요구 기준이자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것들이다. 중국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주 들어 보았으며, 심지어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익숙할 것이다. 전통문화 중 덕행과 관련된 이런 논조는 기본적으로 다 인의예지신이라는 범위에 포함된다. 물론 이 범위 밖에도 여러 논조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인의예지신의 범위 안에 있다. 이 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

오늘 우리는 어떤 한 덕행의 가르침이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구체적으로 교제하지 않을 것이며, 또 그런 가르침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구체적으로 해부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먼저 전통문화의 덕행과 관련된 논조와 하나님이 사람에게 살아 내라고 요구한 정상 인성의 기준이 어떻게 다른지 예습해 보아라. 전통문화 속 어떤 논조가 하나님의 말씀이나 진리와 확연하게 충돌하더냐? 어떤 논조의 사전적 의미가 하나님 말씀이나 진리와 유사성 혹은 관련성이 약간 있더냐? 그런 논조 중 어떤 것이 네가 생각하는 긍정적인 사물이고, 혹은 어떤 것이 네가 하나님을 믿은 후 한때 그 논조를 스스로에게 엄격히 요구하고 자신이 진리 추구의 준칙으로 삼아 실행하고 지킨 것이냐? 예를 들어, ‘남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라.’는 말이 너희에게는 익숙하지 않으냐? 하나님을 믿은 후로 그런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 ‘남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는’ 행동을 하면 인성이 좋은 거라고, 하나님도 분명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느냐? 어쩌면 하나님을 믿기 전에 너는 원한을 덕으로 갚는 품행을 갖춘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다만 너 스스로는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았거나 그렇게 하지 못하거나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은 후로 그 기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하고, 너에게 상처 준 사람이나 한때 너와 원한이 있던 사람들에게 더 이상 따지고 들지 않으며 용서해 주었을 것이다. 너는 원한을 덕으로 갚으라는 덕행의 논조가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하라는 예수의 말과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한을 덕으로 갚으라는 말로 스스로를 단속하고자 하고, 심지어는 그것을 진리로 여겨 실행하고 지키면서 원한을 덕으로 갚는 사람은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너희는 이런 생각과 태도를 갖고 있느냐? 너희는 어떤 논조의 정수가 진리나 하나님 말씀과 비슷하며, 심지어 진리를 대신할 수 있고, 진리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물론, “국가의 흥망에는 민초도 책임이 있다.”라는 덕행에 관련된 말은 분별하기 쉬워서 대부분의 사람이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을 미혹하는 번지르르한 구호일 뿐이다. “국가의 흥망에는 민초도 책임이 있다.”라는 말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에 대한 말이다. 자국민에 대한 국가와 정부의 요구로, 국민들에게 마땅히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고 교육하는 것이다. 이 말은 진리와 부합하지 않고, 근거가 되는 하나님 말씀도 없다. 그러니 결코 진리가 아니며 진리를 대신하지도 못한다고 할 수 있다. 그 말은 100% 사탄에게서 나오고 사탄에게서 비롯된 관점이며, 통치 계급을 위해 복무하는 것으로, 하나님 말씀이나 진리와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국가의 흥망에는 민초도 책임이 있다.”라는 말은 절대 진리가 아니고, 정상 인성에 갖춰져야 할 요소도 아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이 말을 진리로 여기겠느냐? 명리와 지위를 꾀하고 관직을 얻고자 하는 사람, 통치 계급에 아첨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사람만이 이 말을 진리로 여겨 실행한다. 이 밖에도 사람이 분별하기 쉽지 않은 말들이 있다. 사람은 그것이 진리가 아님을 알지만, 마음속으로는 옳고 이치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며 그것에 기대 살고 그 방식으로 처신함으로써 자신의 도덕 수준과 인격적 매력을 높이는 한편,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은 인성을 갖췄으며, 비인간이 아니다는 인상을 주려고 한다. 너희는 어떤 말을 분별하기가 힘드느냐? (저는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말을 분별하기가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긍정적인 사물로 생각해 은혜에 보답하는 사람을 양심 있는 사람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또 “남에게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받았으면 최선을 다해 그 일을 해 줘야 한다는 의미인데, 긍정적인 사물 같습니다.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가 또 말해 보겠느냐? (이 밖에도 “물 한 방울의 은혜라도 넘치는 샘물로 보답하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 인성과 도덕을 갖춘 사람 같습니다.) 또 있느냐? (“군자의 말 한마디는 천금과 같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자기가 한 말을 지키고 신용이 있는 것은 좋은 덕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여태까지 그것을 좋은 덕행이라고 여겼다면 지금은 어떠하냐? (그 ‘말 한마디’가 과연 어떤 성질인지를 보아야 합니다. 옳은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 긍정적인 것인지 아니면 부정적인 것인지 말입니다. 만약 그가 악인이나 적그리스도에게 “저는 반드시 당신을 지켜 줄 것입니다. ‘군자의 말 한마디는 천금과 같다.’고 했으니까요.”라고 하면서 하나님 집에서 그들의 상황을 알아보고 조사할 때, 악인이나 적그리스도를 비호해 준다면 이는 악을 행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분별하는 것이 옳다. 그 ‘말 한마디’가 어떤 성질의 말인지, 긍정적인 것인지 부정적인 것인지를 보아야 한다. 만약 나쁜 일을 저지르고 악을 행하면서 “군자의 말 한마디는 천금과 같다.”라는 말을 실행한다면, 악을 행하는 그의 발걸음은 한 필의 준마처럼 내달려 곧장 지옥으로 치달아 끝도 없는 심연에 빠질 것이다. 반면, 그 ‘말 한마디’가 진리에 부합하고 정의감이 있으며 하나님 집의 사역을 지키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라면, “군자의 말 한마디는 천금과 같다.”라는 말을 실행하는 것은 옳다. 이러한 일들을 볼 때 전통문화의 말을 반드시 분별할 줄 알아야 하며, 상황과 배경을 보아야지,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어떤 말들은 분명히 현실에 부합하지 않으며, 잘못된 것이다. 이런 말들은 특히 신중하게 대하되, 사설이나 궤변으로 보아야 한다. 반면 어떤 말들은 특정 배경이나 범위에서만 옳다. 만약 환경과 배경을 바꾼다면 성립하지 않고 틀릴 것이며, 사람에게 해가 될 것이다. 이런 것을 분별하지 못한다면 중독되거나 해를 입기 쉽다. 전통문화의 말이 사람 눈에 옳게 보이든 틀리게 보이든, 성립하든 성립하지 않든, 그것은 진리가 아니고 하나님 말씀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사람이 보기에 옳아도 하나님이 보기에 꼭 옳으리란 법은 없다. 또 사람의 눈에 좋은 말로 보여도 실행하면 사람에게 꼭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요컨대, 진리에 부합하지 않고 진리가 아닌 것은 사람이 실행하든 하지 않든, 쓸 수 있든 없든 모두 사람에게 해가 되니 받아들여서도 사용해서도 안 된다. 많은 사람이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사람의 눈에 옳게 보이는 것, 혹은 패괴된 인류가 옳다고 공인한 것들을 다 진리로 여겨 대하며, 진리로 여겨 지키고 실행한다. 이것이 적절하겠느냐? 이렇게 거짓 진리, 가짜 진리를 실행해서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겠느냐? 인류가 옳다고 공인하는 것, 진리라고 공인하는 것은 모두 거짓되고 꾸며 낸 것들이며, 영원히 버려야 하는 것들이다. 그럼 너희가 마음속으로 옳고 긍정적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정말 진리가 맞겠느냐? 수천 년간 누구도 그 말들을 부정하지 않았으며, 모두가 옳고 긍정적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진리가 될 수 있겠느냐? (불가능합니다.) 진리가 될 수 없다면 그것이 진리겠느냐? (아닙니다.) 진리가 아니다. 만약 사람이 그런 말들을 진리로 보고 하나님 말씀에 섞어 함께 실행한다면 그런 말과 논조들이 진리의 경지에 오를 수 있겠느냐? 절대 불가능하다. 사람이 어떻게 추구하고 지키든, 하나님은 영원히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패괴된 인류가 사탄에게 속하는 것을 진리나 하나님의 말씀과 한데 섞는 행위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사람의 사상과 관점에서 생긴 것들은 모두 사탄에게서 비롯되었기에 아무리 좋아도 진리가 아니고, 사람의 생명이 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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