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추구란 무엇인가(13) 제 1 부

지난번 예배 때는 전통문화 중 “죽을 때까지 온몸을 바쳐라.”라는 말에 관해 중점적으로 교제하고 해부하였다. 사탄은 사람에게 이러한 전통문화의 말과 이론을 주입함으로써 사람이 이 겉만 번지르르한 말을 지키게 하는데 그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사람을 미혹하고 오도하고 사람의 사상을 옭아매는 작용을 한다. 그 최종 목적은 국민과 대중들에게 전통문화의 잘못된 사상 관점을 교육하고 주입시키고 영향을 줌으로써 그들이 통치 계급의 통치에 순종하고, 또한 나라와 당을 사랑하고 국가를 지키겠다는 충성심을 갖고 통치자를 위해 힘쓰도록 안심시키는 것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와 정부가 전통문화 교육을 보급하는 것은 통치자가 사람들과 각 집단을 통제하고 자신의 정권을 공고히 하는 데 더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함이며, 통치자의 통제 아래에서 사회적 화합과 안정을 이루는 데 더 이롭게 하기 위함이다. 통치 계급이 전통문화 교육을 어떻게 선전하고 확대하고 보급하든, 전반적으로 봤을 때 덕행에 관련된 그 말들은 사람을 미혹하고 오도하는 작용을 하며, 사람이 시비와 선악, 옳고 그름, 긍정적인 사물과 부정적인 사물을 분별하는 데 심각한 교란을 준다. 이 덕행에 관련된 말들은 완전히 흑백을 전도하고 시비를 혼동시키며, 국민과 대중을 미혹시킨다고 할 수 있다. 또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시비인지, 무엇이 긍정적인 사물이고 부정적인 사물인지, 무엇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고 무엇이 사탄에게서 온 것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람이 전통문화의 이 말들에 미혹되게 한다. 각 부류 사물에 대한 정의, 각 부류 사람의 좋고 나쁨과 선악에 대한 정의에 있어 전통문화는 사람을 교란하고 미혹하고 오도하며, 심지어는 사람의 사상을 그것이 제창하는 각종 덕행에 관련된 말 속에 옭아매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한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이 기꺼운 마음으로 마왕에게 충성하고, 끝까지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며, 죽음에 이르러서도 후회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음에도 깨달은 이는 많지 않다. 현재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인정할 수 있지만,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측면에서 숱한 장애물을 마주한다. 이 장애물들은 이미 오래전에 사람의 마음속 깊이 뿌리내린 전통문화의 사상 관점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먼저 자리를 잡아 사람의 사상을 통제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하는 데 큰 장애물과 방해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한 가지 측면이다. 또 다른 측면은 사람에게 패괴 성품이 있기 때문인데, 사람의 패괴 성품 중 일부는 전통문화에 미혹되고 패괴되어 생겨난 것이다. 전통문화는 선악과 시비를 판단하는 관점에 심각한 영향과 간섭을 가해 사람에게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념과 사상 관점이 수도 없이 생겨나게 했다. 이로 인해 사람은 긍정적인 사물과 아름다운 사물, 그리고 하나님이 지은 만물의 규칙과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각종 막연하고 비현실적인 생각과 관념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이는 전부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한 각종 사상 때문에 야기된 결과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전통문화 중 도덕적 측면의 각종 말은 사람의 사상을 패괴시키고 사람의 마음을 교란하며 사람의 정상적인 사유를 망가뜨리는 그릇된 말로, 사람이 긍정적인 사물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 하나님이 지은 만물의 규칙과 법칙을 순수하고 올바르게 이해하고 인식하는 것에 심각한 지장을 주었다.

전통문화 중 덕행 측면의 갖가지 말은 먼저 시비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올바른 사유 방식과 자유 의지를 교란한다. 이 밖에, 사람이 이 덕행 측면의 갖가지 말을 받아들이면 가식적이고 위선적으로 변하며, 위장에 능해진다. 심지어는 사슴을 말이라고 하고, 흑백을 전도하며, 부정적이고 추악한 것을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것으로 대하고,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것은 부정적이고 추악한 사물로 대하는데, 이는 이미 사악한 것을 숭상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전 인류 사회에서 어떤 시기, 어떤 왕조에서든 사람이 제창하고 추앙하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다 전통문화에 속하는 덕행에 관련된 말들이었다. 이 덕행에 관련된 말에 심각하게 영향받는 상황에서, 즉 이런 말들이 한 걸음 한 걸음 더 깊숙하게 침투하고 깊이 주입되는 상황에서 사람은 부지중에 이 전통문화 중 덕행에 관련된 말을 생존의 밑천이자 법칙으로 삼는다. 그저 이 말들을 분별없이 전부 받아들여 긍정적인 사물로 여기는 한편, 처세하고 사람이나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지도 사상이나 준칙으로 여긴다. 또한 사람이 사회에 발을 붙이고 이름을 떨치고 일가를 이루며 존경받고 추앙받을 수 있는 최고의 법칙으로 삼는다. 어떤 시기, 어떤 사회, 어떤 민족의 어떤 사람들 가운데서든 그들이 존경하고 추앙하고 널리 알리는 최고의 인물은 전부 인류가 말하는 도덕적인 모범이다. 그들 이면의 삶이 어떻든, 그들의 일 처리 속셈과 동기, 인성 본질이 어떻든, 그들의 실제 처세 방식과 방법이 어떤 것이든, 아름다운 덕행의 포장지 속에 어떤 본질의 사람이 숨겨져 있든, 이런 것들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깊이 조사하지도 않는다. 그저 충심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통치자에게 충성을 바치기만 하면 민중은 그들을 숭배하고 찬양하며, 심지어는 영웅으로 여겨 본받는다. 모두가 외적인 덕행으로 사람의 선과 악, 좋고 나쁨을 판단하며, 그의 명망이 과연 어떠한지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비록 성경에 노아나 아브라함, 모세, 욥, 베드로와 같은 옛 성현들과 숱한 선지자 등등 사람들의 이야기가 분명히 기록되어 있고, 수많은 사람이 이 옛 성현들의 이야기를 숙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떤 나라나 민족, 집단도 이 옛 성현들의 인성과 품격,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을 경배한 사례와 그들이 드러낸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사회나 민족, 사람들 사이에 널리 보급하지 않는다. 어떤 나라와 민족, 집단도 이렇게 하지 않는다.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국가나 국민 대다수가 종교 신앙을 갖고 있는 국가일지라도 성경에 기록된 이 옛 성현들의 인성과 품성,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종한 이야기를 떠받들지는 않는다. 이는 어떤 문제를 설명해 주느냐? 패괴된 인류는 이미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을 싫어하고 사악한 것을 숭상하는 지경까지 타락했다. 만약 하나님이 친히 사람들 가운데서 음성을 발해 말씀하고 사역하면서 무엇이 긍정적인 사물이고 부정적인 사물인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아름답고 추한 것인지 등등을 분명히 알려 주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영원히 선과 악, 긍정적인 사물과 부정적인 사물을 분별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류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그 발전 과정에서 하나님이 현현하여 사역한 사건과 역사적 기록이 일부 서양 국가와 단체들 사이에 오늘날까지 전해짐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긍정적인 사물과 부정적인 사물, 아름다운 사물과 추한 사물을 여전히 분별하지 못한다. 또한, 분별하지 못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발적으로, 기꺼이 사탄에게서 온 각종 덕행 측면의 말과 각 부류의 사람, 일에 대한 사탄의 잘못된 정의, 개념을 받아들인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느냐? 사람에게는 자주적으로 긍정적인 사물을 받아들일 본능도, 긍정적인 사물과 부정적인 사물을 분별할 본능, 선악, 옳고 그름, 시비를 분별할 본능도 전혀 없음을 의미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동시에 두 가지가 유행한다. 한 가지는 사탄에게서 온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 하지만 결국 전 인류 사회와 인류 발전사를 통틀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사람에게 가르쳐 주고 분명하게 알려 준 모든 긍정적인 사물은 인류에게 추앙받지 못했다. 심지어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류가 되어 올바른 사상을 가져다주고, 사람이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 가운데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가도록 하지도 못했다. 모든 사람은 부지중에 사탄의 각종 말과 사상, 관념에 이끌려 생존하며, 이 그릇된 관점에 이끌리며 살아간다. 그런데 이런 방식의 삶이 수동적인 게 아니라 주동적인 것이다. 하나님이 행한 것, 만물을 창조하고 주재하는 행사, 그리고 하나님이 지난날 어떤 국가에서 사역하며 남긴 수많은 말씀과 각종 사람과 일, 사물에 대한 정의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지만, 인류는 여전히 자기도 모르게 사탄이 주입한 각종 사상 관점 속에서 살아간다. 사탄이 주입하고 제창한 각종 사상 관점은 전 인류 사회에서, 심지어는 기독교가 성행하는 국가에서도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이 사역하면서 남긴 긍정적인 가르침과 사상 관점, 사람과 일, 사물에 대한 정의는 그게 얼마나 되든 한 모퉁이에만 남아 존재할 뿐이며, 심지어는 소수의 집단 속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남아 있다. 그것도 몇몇 사람들의 입에만 머무를 뿐, 인류가 자발적으로 그것을 긍정적인 사물이라고 여겨 자신들의 삶을 인도하고 이끌게 하지는 못한다. 이 두 가지의 대비를 볼 때, 또 사탄에게서 비롯된 부정적인 사물과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각종 긍정적인 사물을 대하는 서로 다른 태도로 볼 때, 인류 전체는 악한 자의 손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주로 사람의 사상과 사유 방식, 사람과 일, 사물을 대하는 방식 등 몇 가지 측면이 전부 사탄의 각종 사상 관점에 통제되고 조종되고 지배되고 있으며, 심지어는 거기에 얽매여 있음을 의미한다. 인류의 발전사에서 어느 단계 어느 시기든, 낙후한 시대든 경제가 발달한 요즘이든, 어떤 지역 어떤 민족 어떤 사람들 사이에서든 인류가 생존하는 방식과 근간, 그리고 사람과 일을 대하는 관점은 전부 사탄이 주입한 갖가지 사상을 근거로 하지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하지 않는다. 이는 무척 슬픈 일이다. 하나님은 와서 사역하고 인류를 구원하는데, 사람이 사탄에게 심각하게 패괴되고, 사람의 사상 관점, 그리고 각 측면의 사람과 일, 사물에 대한 견해, 생존 방식, 처세 방식이 완전히 사탄의 사상에 얽매인 상황에서 사역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쉽지 않을지 알 수 있다. 어떤 배경이겠느냐? 사람의 마음과 사상이 이미 오래전에 사탄의 철학과 독소에 물들고 얽매인 배경 속에서 사역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어떤 사상 의식, 사람과 일, 사물에 대한 관점이 없는 상황에서 사역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각종 사람과 일, 사물에 견해를 갖고 있고, 그 견해와 사유 방식, 그리고 생존 방식이 전부 사탄에게 심각하게 미혹되고 오도된 상황에서 사역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류가 전반적으로 사탄의 사상 관점을 받아들이고, 사탄의 사상에 점철되고 물들고 결박되고 통제된 배경에서 하나님이 와서 사역하고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구원하는 대상은 이런 사람들이다. 여기에서 사역의 난이도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이렇게 사탄의 사상으로 물들고 얽매인 사람들이 다시금 긍정적인 사물과 부정적인 사물, 아름다움과 추함, 시비, 진리와 사설, 궤변을 인식하고 분별하게 함으로써 마음속 깊이 사탄이 주입한 각종 사상과 궤변을 증오하고 버리게 하려 한다. 이를 통해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모든 올바른 관점과 생존 방식을 받아들이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는 구체적인 의의이다.

인류가 어떤 시기에 있든, 사회가 어느 단계까지 발전했든, 통치자의 통치 방식이 어떠하든, 봉건 독재 통치든 아니면 민주 사회 제도든, 이러한 것들은 사탄이 제창하는 각종 사상과 이론, 그리고 덕행에 관련된 말이 인류 사회에서 성행하는 상황을 바꿔 놓지 못했다. 봉건사회에서부터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통치자의 통치 범위나 통치 강령, 통치 모델에는 계속 변화가 있었고, 각 집단과 종족,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 역시 어느 정도 계속 변화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탄이 주입한 전통문화의 말들이 가져온 해악은 여전히 성행하고 만연하며, 사람의 사상과 영혼 깊은 곳에 깊이 뿌리내린 채 생존 방식, 사람과 일, 사물을 대하는 사상 관점을 조종하고 있다. 물론, 하나님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에도 심각하게 영향을 주고 있으며, 창조주의 구원과 진리를 받아들이려는 사람들의 바람과 동경 또한 심각하게 좀먹고 있다. 그리하여 전통문화에서 비롯된 대표적인 덕행에 관련된 말은 인류 가운데서 시종일관 사람의 사상을 통제하고 있다. 어떤 시기, 어떤 사회 배경에서도 사람들 사이에서 그것의 통치 지위와 작용은 변한 적이 없다. 어떤 통치자가 통치하는 시기든, 통치자가 정무에 힘쓰든 그렇지 않든, 통치 방식이 민주적이든 독재적이든, 이런 것들은 다 전통문화의 사상 관점이 인류를 미혹하고 통제하는 것을 가로막거나 근절하지 못했다. 역사적으로 어떤 시기 어떤 집단에서든, 인류의 신앙에 어떤 발전이나 변화가 생기든, 삶과 사회 흐름에 대한 인류의 사상에 어떤 발전이나 변모가 생기든, 전통문화 중 덕행 측면의 말이 인류의 사상에 미치는 영향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으며, 사람에 대한 작용 또한 효력을 상실한 적이 없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덕행에 관련된 말은 매우 심각하게 사람의 사상을 옭아맸다. 그것은 사람들 간의 관계와 진리를 대하는 사람의 태도에 심각한 영향을 주며, 지음 받은 인류와 창조주의 관계에도 심각한 영향을 주고 망쳐 놓았다. 물론, 사탄은 전통문화의 사상으로 하나님이 지은 인류를 유혹하고 미혹하고 마비시키고 옭아매며, 그런 방식으로 인류를 하나님 곁에서 빼앗아 간다고도 할 수 있다. 전통문화의 덕행 사상이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더 널리 전파되고 사람의 마음에 점점 더 깊이 뿌리내릴수록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고, 구원받을 희망도 점점 더 요원해지게 된다. 보아라. 아담과 하와가 뱀에게 넘어가지 않고 선악과를 먹지 않았을 때,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의 주이자 아버지라는 사실을 인정했었다. 하지만 뱀이 하와를 유혹하며 “하나님께서 정말 너희에게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너희가 죽지 않을 수도 있노라 너희가 그 열매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되어 선악을 분별할 것을 하나님이 아셨기 때문이니라”(창 3:1, 4~5, 중국어성경 직역)라고 말하자 아담과 하와는 그 유혹에 넘어갔고, 그들과 하나님의 관계에는 금세 변화가 생겼다. 어떤 변화가 생겼느냐? 그들은 더 이상 발가벗고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게 되었으며, 몸을 숨기고 가릴 곳을 찾았고 하나님의 얼굴빛을 피했다. 하나님이 그들을 찾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피했고, 다시는 예전처럼 그렇게 하나님과 얼굴빛을 마주하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담, 하와와 하나님의 관계에는 이런 변화가 생겼다. 그 원인은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이 아니다. 사탄인 뱀이 한 말이 사람에게 그릇된 사상을 주입했으며, 사람이 하나님을 의심하고 멀리하고 피하도록 유혹하고 오도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의 얼굴빛을 직시하는 것도, 아무것도 가리지 않은 채로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도 원치 않게 됐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거리가 생긴 것이다. 이 거리는 어떻게 생긴 것이냐? 환경의 변화나 시간의 흐름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변해서 생긴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변했느냐? 사람이 주동적으로 변한 게 아니라 뱀의 말 한마디가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이간질해서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하나님의 얼굴빛과 보살핌을 피하게 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의혹을 품게 했다. 이런 변화가 어떤 결과를 야기했느냐? 사람은 더 이상 과거의 그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사람의 사상과 마음은 더 이상 그렇게 깨끗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을 하나님으로도, 가장 친한 사람으로도 여기지 않고 의심하고 두려워하게 됐으며, 그리하여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을 피하고 멀리하려는 심리가 생겨났다. 이것이 바로 인류 타락의 시작이다. 인류가 타락하기 시작한 것은 독이 있고, 유혹하고, 오도하는 사탄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그 말이 주입한 사상은 사람이 하나님을 의심하고 오해하고 추측하며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였고, 그로 인해 더는 하나님을 마주하기를 원치 않게 하였다. 하나님을 마주하는 것만 원치 않은 게 아니라 하나님을 피하고자 했으며, 심지어는 더 이상 하나님이 하는 말씀을 믿지 않게 되었다.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했느냐? 하나님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6~17)라고 했다. 하지만 사탄은 사람에게 선악과를 먹어도 죽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사람을 미혹하는 사탄의 그 말 한마디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부정하게 되었다. 즉,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견해가 생겨나서 예전의 순수함이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런 견해와 의심이 생겨났기에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았고, 또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것과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필연적 관계를 믿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하나님이 사람을 보호하고 보살펴 준다는 사실도 믿지 않게 되었다. 또 이런 것들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면서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게 되었고, 당연히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어떤 말씀도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게 되었다. 인류의 타락은 사탄의 입에서 나온 유혹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되었고, 또한 사람에게 주입한 사상 관점에서 시작되었으며, 당연히 사람을 유혹하고 오도하고 미혹하는 사탄에게서 시작되었다.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한 이 사상 관점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으며, 또한 하나님을 의심하고 오해하고 추측하고 피하고 멀리하고 하나님 입에서 나온 말씀과 하나님의 신분을 부정하고 나아가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사실까지도 부정하게 되었다. 사탄은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사람을 유혹하고 패괴시켰으며,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를 교란하고 망가뜨렸다. 또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과 하나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간섭했다. 사탄은 사람이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려는 바람을 끊임없이 교란했으며, 사람은 사탄의 각종 말에 반항할 힘이 없어 부지중에 그 말에 좀먹고 침투당해 결국 하나님을 적대시하고 하나님의 반대편에 설 정도로 타락했다. 이것이 바로 덕행에 관련된 말이 사람에게 미친 근원적인 영향이자 해악이다. 물론, 이러한 내용들을 교제하는 것도 근원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사탄이 사람을 어떻게 패괴시켰는지, 어떤 방식을 이용해 패괴시켰는지를 근원적으로 알게 하기 위함이다.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주된 수법은 사람의 사상 관점에 손을 써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망가뜨리고, 사람을 하나님 곁에서 조금씩 조금씩 빼앗아 가는 것이다. 처음에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 그 말씀이 옳다고 믿었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동하고 실행하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탄은 갖가지 사상과 말로 사람에게 그나마 남아 있던 믿음과 의지, 동경, 그리고 얼마 안 되는 긍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바람을 조금씩 좀먹고 무너뜨렸다. 그리고 그 자리를 사탄에게서 온 갖가지 말과 각종 사물에 대한 정의, 관점, 관념이 대신했다. 그리하여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사탄의 사상에 통제되어 사탄의 포로가 되었으며, 사탄의 노예로 전락했다. 이런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사람이 사탄의 사상을 깊이, 세부적으로 받아들일수록 하나님과의 관계는 더욱 소원해지고, “사람은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창조주이다.”라는 정보는 사람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더 이상 많은 사람이 이 정보를 믿고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 반대로 사람들은 이 정보를 신화 전설, 존재하지 않는 사실, 사설이나 궤변으로 여겼으며, 심지어 현대 사회의 일부 사람들은 이를 이단으로 정죄하기도 한다. 이는 다 사탄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전파한 갖가지 사설과 궤변으로 인한 결과이자 영향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또한, 사탄은 인류의 발전사에서 사람을 가르치고 언행을 규범화한다는 등의 긍정적인 기치를 들고 사람을 한 걸음 한 걸음 죄악과 죽음의 심연으로 끌고 갔으며, 그럼으로써 사람이 하나님의 얼굴빛과 보살핌, 보호, 구원의 은혜에서 멀어지게 했다고밖에 할 수 없다.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사자들이 사람들 사이에 와서 사람과 대화하고 함께 생활한 일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은 근 2천 년 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성경에 기록된 노아나 아브라함, 모세, 욥, 베드로와 같은 옛 성현이 더 이상 사람들 가운데 없기 때문이다. 인류는 모두 사탄의 사상과 말에 침투되고 결박되었다. 이것이 바로 사실의 진상이다.

위에서 교제한 내용은 전통문화 중 덕행에 속하는 말의 한 가지 본질이며, 사탄이 인류를 패괴시킨 하나의 표지이자 증거이고, 상징이다. 이 문제들의 본질을 볼 때,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어린이든 연로한 노인이든, 어떤 사회 계층이나 사회 배경에서 살아가든, 인류는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사탄의 갖가지 말에 얽매여 있으며, 심지어는 정도의 차이 없이 100% 사탄의 사상이 침투된 생활 방식으로 살고 있다. 물론, 한 가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무엇이겠느냐? 사탄이 인류를 패괴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탄이 패괴시키는 것은 사람의 각종 기관이 아니라 사상이다. 사람의 사상을 패괴시킴으로써 전 인류가 하나님과 대립하게 하고, 그로 인해 하나님이 지은 인류가 하나님을 경배하기는커녕 사탄에게서 비롯된 각종 사상 관점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고 배반하고 저버리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야심이자 간계이며, 당연하게도 사탄의 민낯이다. 사탄은 이렇게 사람을 패괴시킨다. 하지만 사탄이 사람을 몇천 년 동안 패괴시켰든, 사탄이 인류를 패괴시킨 사실이 얼마나 되든, 사탄이 인류를 패괴시킨 각종 사상 관점이 얼마나 치우치고 황당하든, 인류의 사상이 사탄에게 얼마나 단단히 얽매였든 상관없이, 어쨌든 하나님이 와서 사역하여 사람을 구원할 때, 진리를 선포할 때 사람이 이런 배경 속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하나님은 사탄의 권력 아래에서 사람을 되찾고 정복할 수 있다. 물론, 하나님은 사람이 형벌과 심판 속에서 진리를 깨닫고 사람의 패괴 본질과 패괴 진상을 인식해 사탄 성품을 벗어 버리며, 하나님께 순종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게 할 수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이룰 최종 성과이자 하나님의 6천 년 경륜이 반드시 대업을 이루고 하나님이 영광을 지니고 만국 만민에게 나타날 하나의 흐름이다. “하나님은 말씀하면 반드시 책임지고, 책임지는 이상 반드시 이루며, 이루어진 것은 반드시 영원까지 지속된다.”라는 하나님 말씀처럼 말이다. 이 말씀은 진실하다. 너희는 이것을 믿느냐? (믿습니다.) 이는 반드시 이루어질 사실이다. 하나님의 마지막 단계 사역은 사람에게 진리 생명을 공급하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30여 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미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께 정복되었으며, 마음을 굳게 먹고 하나님을 따르고 있다. 그들은 사탄이 어떤 이점을 주든 거부하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고, 피조물의 본래 자리로 돌아와 창조주의 주재와 안배를 받아들이고자 한다. 이는 하나님의 대업이 이루어졌다는 표징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필연적인 사실이며, 이미 이룬 사실이다. 물론 지금 발생하고 있는 일이며, 이미 발생한 일이기도 하다. 사탄이 사람을 어떻게 패괴시키든, 어떤 방식으로 패괴시키든, 하나님에게는 항상 인류를 사탄의 권력 아래에서 되찾아 옴으로써 인류가 구원받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고 인류와 창조주의 관계를 회복할 방법이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전능이자 권병이다. 네가 믿든 안 믿든 그날은 언젠가 올 것이다.

일부 성경은 개역한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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