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기초이다 (제 3 부)
다음 말씀은 무엇이냐? (“대단히 하나님을 원하고 갈망하며 구하라.”입니다.) 이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다.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구원을 받으려면 이에 대한 동경과 추구하려는 의지, 진실한 갈망을 가져야 한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이 준 실행의 길을 따라 실행하고 진입한다면 하나님은 사람을 차츰 진리 실제로, 올바르고 정상적인 내적 상태로 이끌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에서 깨닫는 진리가 점점 많아질 것이고 갈수록 실제적이 되어 결국 사람의 올바르지 못한 내적 상태와 패괴 표출 그리고 패역이 하나님이 배치한 여러 가지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각종 사역 방식에 의해 점차 해결될 것이다. 그러니 너희가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이겠느냐? 바로 사람이 해야 하고 실행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실행하고 행동하면 하나님이 가리켜 준 올바른 길에 들어서게 된다. 사람이 이런 올바른 길에 들어서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식과 요구 원칙에 따라 정해진 시기에 정해진 양만큼 사람에게 베풀어 줄 것이다. 여기에서 사람이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사람의 협력, 사람의 대가, 사람의 헌신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사람의 뜻이나 상상과 관념에 따라 행동하지 말고 반드시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행동하고 실행해야 한다. 그러면 결국 어떤 결실을 맺게 될지, 사람이 얼마나 변화하고 얼마나 수확하게 될지가 사람의 뜻에 달려 있겠느냐?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소관이지 너와는 관련이 없다. 결국, 하나님이 무엇을 얼마나 줄지, 어느 시기에 어느 연령대에 줄지는 하나님의 일이지 너와 무관한 일이라는 것이다. 내가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겠느냐? 너는 진리를 실행하는 일만 신경 쓰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네게 준 길대로 진입하여 피조물이 해야 하고 협력해야 할 일을 네가 다 하고 나면 마지막에 무엇을 언제 얼마나 수확할지, 하나님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하나님의 시간이 있기 마련이고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제가 이렇게 실행하면 최종적으로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너희가 말해 보아라.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고 공급한 이런 말씀과 진리가 곧 구원받는 길이다. 네가 하나님의 이런 말씀과 진리대로 실행하여 하나님 말씀 실제에 진입했다면 구원받지 못할까 걱정하겠느냐? 하나님에게 버려질까 매일 염려하고 근심하며 걱정할 필요가 있겠느냐? 이는 믿음이 너무 작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해 초래된 것 아니겠느냐? 네가 만약 진정으로 진리 실제에 진입하여 마음이 평안하고 기쁨이 넘친다면, 진실한 체험 간증을 얘기하고 마음속에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형성했다면 구원받지 못할까 걱정하겠느냐?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너는 오로지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진입하는 것에만 집중하여라. 하나님 말씀에는 중요하지 않은 말씀이 없다. 하나님 말씀은 전부 진리이다. 진리는 사람이 얻어야 할 생명이며, 구원을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이고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이런 말씀대로 실행하고도 구원받지 못할까 걱정하다니, 그리도 어리석고 무지하단 말이냐? 너무 과민한 거 아니냐? 쓸데없는 걱정 대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면 얼마나 즐겁겠느냐? 네가 가는 길이 옳다면 마지막에 도착할 목적지도 분명 옳을 것이고, 하나님이 네게 지정해 준 목적지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실행하고 진입하면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을지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너는 오로지 하나님이 알려 준 구원받는 길에 따라 실행하고 추구하는 데만 집중하면 된다. 어떤 사람들은 묻는다. “구원받으면 어떤 느낌인가요? 그때는 지금과는 달리 공중에 떠 있는 기분일까요?” 이런 질문을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정말 구원을 받을 때 알게 될 것이니 지금은 알 필요가 없다. “제가 구원받을 때 하나님은 욥에게 나타나신 것처럼 저에게 나타나 주실까요?”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이성적인 요구이냐? 이런 요구는 하지 마라. 네가 구원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면서 이런 요구를 한들 무슨 소용이냐? 부질없다. 가령 네가 지금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한다면 일단 초등학교 공부를 잘하고 선생님이 요구하는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늘 나중에 어느 대학에 갈지, 어떤 직업을 가질지 고민해선 안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 봤자 소용없다. 너무 먼 미래라 비현실적이다. 네가 올바른 방식과 길에 따라 실행하고 진입하기만 하면 분명 네 최종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인도하는데 무엇이 걱정이냐? 하나님이 네 전능이라는 사실을 믿느냐? (믿습니다.) 하나님이 전능한데 너 같은 인간 하나를 구원하는 게 어렵겠느냐? 하나님이 네게 온 세상을 다 준다 해도 전혀 어려울 게 없는데 패괴된 인간 하나를 구원하는 게 무엇이 어렵겠느냐? 그러니 네가 근심할 필요가 있겠느냐? 하나님이 너를 구원할지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이런 말씀이 너를 구원할지도 염려하지 마라. 마땅히 네가 하나님 말씀을 깨달을 수 있을지, 하나님 말씀에서 실행의 길을 찾아낼 수 있을지, 자신이 지금 하나님 말씀 실제에 진입했는지, 자신의 행동거지나 걷고 있는 길이 하나님이 알려 준 길인지를 걱정하면 얼마나 좋겠느냐? 이런 실제나 현실만 생각하고 다른 것은 근심하지 마라. 다 소용없다.
다음 구절은 무엇이냐? (“사탄의 구실과 속셈, 간계를 거절하고”입니다.) 이 구절은 방금 교제한 내용이니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이다. ‘사탄의 구실과 속셈, 간계’는 대체로 사람의 패괴 성품에서 생겨난 여러 가지 구실과 핑계, 속셈, 간계이며 접할 수 있는 여러 악인과 불신파가 택하는 수단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만 하면 이를 어떻게 분별하고 거절하며 선택하는가는 네가 개인적으로 추구할 일이다. 다음 구절을 읽어 보아라. (“실망하거나 연약해지지 말고, 마음을 다해 구하고 기다려라.”) 이 구절 역시 방금 자세히 교제하였다. 구구절절 사람에게 경고하고 조언하는 동시에 사람을 붙들어 주고 도와주며 공급하는 내용이다. 물론 이 말씀에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넘치는 희망이 담겨 있다. 하나님은 사람이 연약함과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낙심하고 실망하며 믿음을 잃고 진리와 구원받기를 추구하려는 의지가 꺾이는 것을, 진리를 얻어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이 겁쟁이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고, 사람이 아무리 어렵고 연약해져도, 아무리 많은 패괴를 표출했어도 포기하거나 굴하지 않고 여전히 진리를 추구하며 하나님이 알려 준 실행의 길에 따라 추구하기를, 계속 대단히 하나님을 원하기를 바란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체험할수록, 하나님 말씀을 깨달을수록 커지는 것이지 연약함에 처했다고 위축되거나 어려움에 처했다고 소극적이 되는 것이 아니다. 패괴를 조금 표출했다고 훌쩍이거나 위축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등의 모습은 하나님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한결같은 마음이 시간이나 환경, 지리적 위치나 특정 사건으로 인해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나님께 구하는 네 마음이 변치 않고 하나님께 구하는 끈기가 줄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볼 것이고 네 진심을 이해할 것이니 결국 하나님이 네게 베풀어 줄 것은 분명 네가 구하고 바랐던 것을 초월할 것이다. 욥은 하나님의 주재를 체험한 수십 년 동안 하나님이 그에게 친히 이야기하고 나타날 줄은 감히 생각지도 못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마지막 시련을 넘고 나서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난 것이다. 바람 속에서 그와 친히 대화한 일은 사람이 구하고 바란 것을 초월한 게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사람이 구하고 바라는 것을 초월한 것으로, 사람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사람은 자신의 본래 자리를 지키며 해야 할 일을 하고 가야 할 길을 가며 본분 내의 일을 해야 한다.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은 하지 말고, 하나님이 혐오하는 일은 하지 마라. 언제든 자신이 하나님의 요구에서 벗어나 야심과 욕망에 휩싸인 비이성적인 상태라고 느껴진다면 당장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엎드려 죄를 고백하고 마음 깊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서야 한다. 이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자 하나님을 따르고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거는 하나님의 기대이다.
이 말씀은 여기까지 교제하겠다. 이렇게 많은 내용을 교제하면서 당부할 것은 당부했고, 사람이 깨달아야 할 것은 깨달았을 것이다. 이렇게 교제하는 것은 너희에게 하나님 말씀을 읽는 방법을 알려 주고 하나님 말씀을 읽는 방식을 가르쳐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하나님의 뜻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희망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려 주려는 것이다. 이제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그 깊이를 떠나 모두 인간이 갖추어야 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짧은 말씀 몇 마디에도 사람이 최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실행 원칙이 담겨 있지만 사람은 이르지 못하고, 아무도 이 몇 구절의 하나님 말씀을 주목하거나 눈여겨보지 않았다. 사람이 어느 지경까지 무감각해졌는지 좀 보아라. 좋게 말해 무감각이지 사실상 사람이 한도 끝도 없이 교만한 것이다. 이 말씀을 무시한 채 보려 하지도, 읽으려 하지도 않는다. 사람은 어떤 것을 읽고 싶어 하느냐? 심오하고 고상하며, 철학적이고 체계적인 것을 읽고 싶어 한다. 심오하고 고상한 것은 둘째 치고 이 짧은 말씀 몇 마디라도 깨달으면 다행이다. 이런 말씀은 단순해서 읽는 족족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정말 이렇게 실행하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일이 일어났을 때 정말 하나님 앞으로 가져와 기도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급하게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렇게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느냐? 여태껏 이 하나님 말씀을 준수하고 실행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이 말씀에 매료되어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하고 아끼며 사랑하는 사람도 본 적이 없다. 내가 방금 너희가 틀어 놓은 찬양을 듣고 그 하나님 말씀을 너희는 어떻게 먹고 마시는지, 이 평이하고 단순 명료한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읽어 냈는지, 사람이 깨닫고 진입해야 할 실행의 길을 읽어 냈는지, 그 어떤 진리를 깨달았는지, 다시 말해 이 진리 몇 마디가 사람에게 성과를 보이거나 효력을 발휘했는지 물어보았다. 하지만 교제를 통해 정말 이런 사람은 없다는 것을, 너희의 분량이 형편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아하니 최근 하나님이 한 말씀 중 대부분이 너희 마음속에 진정으로 뿌리내리지 못했고, 너희가 이를 진리로 삼아 아끼는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 같다. 이는 좋은 징조가 아니고 좋은 현상도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희는 하루하루 본분을 이행하느라 바빠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할 시간이 없어요.” 사실은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마음을 쓰지 않고 신경 쓰지 않은 것이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그것이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데 지장을 주겠느냐? 식사 시간, 휴식 시간에 하나님 말씀을 묵상할 수 있지 않겠느냐? 사람이 마음을 두는지에 달려 있다. 사람은 이렇게 분주히 보내면 충실한 줄로 생각하지만 사실 한가할 때 생각해 보면 하나님 말씀 중 어느 한 구절도 진지하게 묵상해 보지 않았고 마음에 새기지 않아 그 말씀이 인생의 나침반이나 실행의 준칙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때는 부끄러울 것이다. 네 분주함은 그저 가상일 뿐이다. 네 믿음이 공허하지 않고 하나님을 충실하게 믿고 있다고 착각하게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세상의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가장 정의로운 사람들 편에 서서 하나님 사역에 협력하며, 정의로운 일을 하고 있으니 이미 구원을 받았거나 구원받는 길에 들어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자신이 이미 이긴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전제하에 이렇게 단순한 찬양이나 짧은 하나님 말씀, 그것도 최초에 하나님이 선포한 말씀에 대해 너희가 이런 태도를 가지고 아무도 이 말씀에서 아무런 수확이나 깨우침을 얻지 못하고, 실행하지도 않으며 아무에게서도 그 어떤 수확이나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면 이것이 좋은 일이겠느냐, 아니면 나쁜 일이겠느냐? (나쁜 일입니다.) 최근 몇 년간 너희가 본분을 이행하느라 바쁘고 특히 복음 사역으로 바빴는데 성과가 있으니 마음에 만족감을 느낀다. 어찌 되었든 하나님 말씀, 복음 사역이 확장되어 하나님 말씀이 각국 각 지역의 사람들에게 공급되었으니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게 되었다. 겉으로는 성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긴 하나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평생의 대업에 갈피가 잡혔느냐? 이런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에서 보면 갈피는 아직 잡히지 않았다. 세상 말로 갈 길이 구만리라는 말이다. 이런 너희의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이 어떻겠느냐? 이렇게 단순한 말도 너희에게 자세히 설명해 줘야 하니 말이다. 사소한 것까지 너무 상세히 말해 주면 너희가 듣고 싶겠느냐? 내가 잔소리 너무 심하다고 말하지 않겠느냐? 나도 이렇게 잔소리하고 싶지는 않다. 너희는 저마다 당당하고 머리를 굴릴 줄 알고 지식이 있으며 많은 사람이 자기만의 특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찬양 속 짧은 말씀 몇 마디를 눈여겨보지 않았고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지금껏 아무도 이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지 못했으니 정말이지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그러면 도대체 너희는 무엇 때문에 교회의 여러 사역을 하는 것이냐? 설마 바울이 말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라는 것을 위해서이냐? 만약 정말 이런 목표를 위해서라면 너희는 모두 바울이고, 나중의 결과 역시 낙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데 힘쓰지 않으면 언젠가는 도태되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도태되는 그 순간 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얻은 게 뭘까?” 너는 정말 아무것도 얻지 못했으니 너무나도 부끄러워 죽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이러면 너무 불쌍하지 않으냐. 하나님은 부족함 없이 다방면으로 말씀했는데 네가 전혀 마음을 다해 추구하지 않았고, 하나님 말씀을 진지하게 보지 않았으며, 이렇게 많은 하나님 말씀 중에 한 마디도 네 마음속에 자리 잡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깝다. 이러니 네가 도태되지 않으면 누가 도태되겠느냐?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셔서 하나님 말씀이 네 실제가 되게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는 사람이 번성하여 후대를 잇는 것, 본분을 이행하는 것, 업무를 배우는 것, 복음 사역을 확장하는 것 등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지 않았다면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얼마나 열심히 뛰어다니든 그것은 다 부질없는 짓이다. 결국, 그 어떤 성과도 이루지 못한 채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네가 지금 얼마나 열심히 뛰어다니는지, 어떤 직위에서 어떤 사역을 하고 성과를 얼마나 거두었는지는 상관없다. 그것은 금방 사라질 것으로, 언젠가는 지나가 버린다. 오직 사람이 하나님 말씀 실제에 진입해서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를 얻고, 하나님 말씀에서 실행의 원칙과 길, 방향을 찾는 것만큼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 이런 진리 실제에 진입하고 사람이 지금 이행하고 있는 본분과 치르고 있는 모든 대가만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으며, 하나님이 열납한다. 네가 하나님 말씀 실제에 진입하고 매사에 하나님 말씀의 요구 원칙과 요구 기준에 따라 실행한다면 네가 이행하는 본분은 헛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이 열납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네가 만약 자신의 자제력이나 끈기, 사고력, 은사에만 의지하고, 사람의 방식이나 방법으로 고생하며 대가를 치른다면 네가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 말씀과 무관하니 최종 결과가 어떨지는 너 자신이 잘 알 것이다. 많은 사람이 경제적으로나 수지 타산적으로는 계산기를 두드릴 줄 알지만, 이런 면으로는 계산한 적이 없다. 너희가 외부의 일을 처리할 때는 머리가 참 잘 돌아가고 노하우도 가지고 있으며 무척 영리한 것 같은데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는 일,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일은 간과하여 중시하지 않았다. 네가 중시하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이 요구하는 이 법칙을 피해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네가 힘 좀 썼다고 해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요행히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스스로를 기만하지 마라! 사람이 정한 법칙은 사람의 지식과 식견에서 생긴 것으로, 사람의 잔꾀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서 생겨난 법칙이 아니다. 구원받는 일에 대해 절대로 요행을 바라지 마라. 그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일 뿐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구원받기 위해 해야 할 가장 큰 일이 무엇이냐?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셔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진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본분 이행이 아무리 바빠도, 사역이 아무리 쌓여 있어도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에서 다방면의 진리의 실행 원칙과 길을 찾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것이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유일한 근본 취지이다. 네가 진리 실제에 진입하여 실행 원칙이 생기면 네가 하는 모든 일이 합격한 본분 이행이니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네가 하는 모든 일은 힘만 쓰는 것이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다. 네가 힘을 쓰는 것도 네가 구원받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고, 실행하지도, 체험하지도 않으며,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저 힘써 일하는 것에만 만족할 뿐 진리를 실행하는 것을 소홀히 한다면 이는 어리석은 짓 아니겠느냐? 사람은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듬직하게 일을 처리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있는 한 이 사역은 틀림없이 제대로 굴러갈 거야. 내가 여기서 책임을 지고 있는 한 교회 사역이 교란을 당할 리 없어. 내가 숨 돌릴 틈 없이 하나님 집에서 계속 본분을 이행하기만 하면 구원받겠지.’ 자신을 속이지 마라. 하나님은 사람이 계속 본분을 이행하기만 하면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한 적이 없다. 그것은 자기만의 상상이자 일방적인 바람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자신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사람이 사탄에게 깊이 패괴된 본질과 진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에 이런 어리석은 말을 내뱉는 것이다. 여태껏 하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모두 본분을 이행하지 않았느냐? 그들이 구원받았더냐? 아니다. 그들에게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느냐? 없다. 말세에 하나님이 심판 사역을 하여 인간이 패괴된 진상을 낱낱이 폭로해서 사람이 인식하고 바로잡게 하고 진리를 얻고 실제에 진입하게 하였으며 진정한 변화가 생기게 한다. 이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다. 네가 계속 본분만 이행한다면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겠느냐?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에게 순종할 수 있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다. 핵심은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에 순종하며 진리를 얻어야만 하나님 마음에 합할 수 있다.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은 인간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대가를 치르고 그의 생명을 바치는 것인데 네가 이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늘 간과하고 경시하며 하나님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니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마지막에 좋은 결과가 있겠느냐? 꿈도 꾸지 마라. 하나님을 믿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겠느냐?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셔서 진리를 깨닫고 하루빨리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것이다. 먼저 자기 주변에 일어난 일부터 시작하고,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여 하나님 말씀에 따라 자신을 반성하고 진리를 구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진정한 변화에 이르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고 하나님 말씀 실제에 진입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기회는 없다. 네가 구원받을 기회를 완전히 끊어 버린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사역이 끝났을 때 네가 “그 당시 하나님의 복음 사역이 확장될 때 제 공이 있었습니다. 당시 복음 확장 사역의 중요한 단계마다 제가 대가를 치르고 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었어요.”라고 말한다고 해도 그때까지 여전히 진리를 얻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먹고 마시지도 못하며, 본분을 정상적으로 이행하지도 못한다면 너는 전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때서야 구원받을 기회를 스스로 끊어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너무 늦은 것 아니겠느냐? 그렇게 되면 기회는 사라지고 이미 재난 속에 떨어진 것이다. 즉,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것이다. 그래서 구원받을 그 기회는 무척 소중하다고 하는 것이다. 반드시 매일의 시간과 1분 1초의 순간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먼저 주변의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서 차츰 많은 일, 큰일을 해 나가면서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 말씀과 진리 실제에 진입해야 한다. 마음속으로 항상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한다. 절대 육적인 취향, 세상의 시류와 같은 사탄에게 속하는 것들에 마음을 뺏겨서는 안 되고, 하나님 말씀과 진리가 마음속에서 권세를 잡게 해야 한다. 그러면 네 마음은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 말씀과 진리가 네 마음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네 삶을 주도하면 네 삶은 목표가 생기고 빛의 인도를 받게 되어 마음이 즐거울 것이다. 네가 깨달은 하나님 말씀이 서너 마디에서 열 마디, 백 마디까지 쌓여 가면서 차츰차츰 하나님 말씀이 네 마음을 차지하고 네 생각과 행동, 삶을 주도하여 점점 더 많은 하나님 말씀 실제에 진입하고 점점 더 많은 진리 원칙을 파악하게 되면 더 이상 네 뜻이나 취향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을 것이고, 네 본분 이행에 불순물도 점점 줄어들 것이며, 점점 진심으로 하나님을 대할 것이고, 네가 이해한 도리는 차츰 진리 실제가 될 것이다. 그러면 네 생명 성품에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네가 구원받을 희망은 더 이상 보이지 않거나 막연한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느낄 수 있고, 갈수록 희망이 보일 것이다. 네가 이 빛을 보게 되는 때가 사실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구원받는 이 일에 크나큰 희망을 걸게 되는 때이다. 그럴 때 하나님은 네가 점점 더 많이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에 진입하게 할 것이며, 네가 시험이나 사탄의 굴레, 사탄의 흑암 권세에 빠지지 않도록, 사람 간의 갈등, 다툼, 질투, 분쟁 등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 줄 것이고, 빛 속에서, 하나님 말씀의 인도 속에서 살아가게 할 것이다. 이는 행복이고 기쁨이며 평안이다. 사람이 이 모든 것을 해내려면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고 실행하고 체험하여 진리를 깨닫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는 사실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항상 설교를 듣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한다면 차츰 진리를 깨닫게 된다. 이렇게 차근차근 넘어가고 나아가면 어렵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는지에 달려 있다. 만약 진리를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믿으면서 정당한 일을 하고 진리에 공을 들이며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데에 집중할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할 줄 알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을 줄 알면 하나님 말씀의 뜻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 말씀에서 실행의 길을 찾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진리를 깨닫기 시작하게 된다. 그럼 다시 깨달은 진리를 토대로 자신의 패괴 성품을 반성하고 인식하여 패괴 성품의 본질을 해부한 다음 진리로 해결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실행하고 진입하면 자신을 진실로 인식하게 되고 패괴 성품을 쉽게 벗어 버릴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차근차근 인식하고 체험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패괴를 벗어 버리면 자기도 모르게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명 체험의 과정이다. 진리를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람이 일단 진리를 깨달으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왜 그렇게 말씀하는지, 어떤 성과를 거두려 하는지를 알게 되고, 사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은 사람이 도달할 수 있고, 사람의 양심과 이성으로 충분히 이를 수 있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이런 과정이 모두 생명 진입에 관한 일이다. 생명 진입을 위해서는 본분 이행과 진리를 구하고 실행하는 데 마음을 다해야 하며,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의지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 이렇게 실행하고 체험하면 점점 성과가 나타날 것이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이런 일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들은 생명 진입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관심도 없으므로 몇 년간 하나님을 믿어도 체험 간증을 얘기하지 못한다. 반면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다르다. 하나의 일을 체험할 때마다, 한 시기를 체험할 때마다 체험 간증 글을 쓸 수 있고 진실한 수확이 생긴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10년, 20년을 체험하면 커다란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때가 되면 체험 간증 글을 쓰는 것이 힘들지 않고 진리를 교제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느껴지며 본분 이행도 완전히 정상이 된다.
너희는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냐? 대단히 하나님을 원하는 마음이 있느냐? 진실한 마음이 있느냐? 선뜻 대답하기가 곤란하다. 그렇지 않으냐? 사실 너희 스스로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본분을 대충 이행하고 싶어질 때, 교활하게 자기 잇속을 챙기고 싶을 때, 제멋대로 하고 싶을 때 스스로 의식할 수 있겠느냐? 육을 저버릴 수 있겠느냐?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 너는 진리 실행을 택하겠느냐, 아니면 육의 즐거움을 택하겠느냐? 긍정적인 것을 택하겠느냐, 아니면 부정적인 것을 택하겠느냐? 진리를 얻기 위해 고생하며 대가를 치르는 것을 택하겠느냐, 아니면 육적 안락을 탐하는 것을 택하겠느냐? 이를 통해 네게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에게 진실하게 순종하는 마음이 있는지 판단하고, 네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지를 가늠하는 것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에게 진심이 아니고 제멋대로 하기를 좋아하며 자기만 만족하면 기뻐하고 그러지 못하면 화를 내고 심술을 부리며, 자기 책무를 내팽개치려 한다면 그것이 정상적인 마음가짐이겠느냐? 여기에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마음이 있겠느냐? 이것이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겠느냐? 너는 왜 진리를 실행하지 않느냐? 설마 하나님 말씀을 못 알아듣는 것이냐? 아니면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하지만 실행하려고 보면 너무 어려워. 하나님 집에서 항상 진리를 실행하라고 하는데 이건 사람을 괴롭히고 난제를 던져 주는 거야. 기분 나빠 실행 안 할래. 교회에서 날 제명하거나 도태시키지 않는 한 난 자유자재로, 하고 싶은 대로 할 테야.’ 이런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냐? 이는 불신파가 아니냐? 불신파가 바로 이런 태도로 본분을 이행한다. 그들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제멋대로 굴면서 대충 건성으로 하기를 좋아한다. 아무리 책망하고 훈계해도 소용없고, 진리를 교제해도 듣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그저 내치고 도태시킬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 이방인이며,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구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설령 패괴 성품을 표출하더라도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일 수 있고, 진리를 구해서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할 수 있으며, 회개할 줄 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이 구원할 사람이다.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으면 진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가장 큰 위험이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다.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가장 쉽게 하나님을 배반하고,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다. 자기 뜻에 맞지 않는 사소한 일 하나 때문에 하나님을 배반하고, 책망과 훈계를 한 번 한 것 때문에 용납할 수 없다며 하나님을 배반한다. 이러니 재난이라도 당하면 더 쉽게 원망하며 하나님을 배반할 것이다. 어찌 되었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다 가장 위험한 사람이다.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는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을 어느 정도로 사랑하는지,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하는지에 달려 있다. 진리의 요구로 자신의 진실한 분량을 가늠하고 자신을 분별하여 자신의 패괴 진상과 자신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인식하여라. 이렇게 분별하면 한편으로는 자신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되어 진실한 회개에 이를 수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모습이다. 이 문제를 꿰뚫어 보면 사람이 구원받는 길을 가는 데 도움이 된다. 사람이 진심으로 진리를 사랑하면 하나님을 대단히 원하는 마음과 진실한 마음을 갖게 되고,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께 순종할 힘이 생긴다. 이런 진실한 힘이 생기면 대가를 치르고 에너지와 시간을 쏟을 수 있게 되며, 이익을 버리고 육의 모든 짐을 내려놓음으로써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는 것을 우선시하게 된다. 하나님 말씀 실제에 진입하기 위해 자신의 관념, 육적인 이익, 체면, 지위, 명성, 육의 즐거움 등을 내려놓을 수 있다. 네가 이런 것을 다 내려놓을 수 있다면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진리 실제에 진입할 것이고, 그 어떤 어려움이나 난제들도 쉽게 풀려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는 것도 수월해질 것이다. 진리 실제에 진입하려면 진실한 마음과 대단히 하나님을 원하는 마음, 이 두 가지는 필수 불가결이다. 만약 진실한 마음만 있을 뿐 늘 나약하고 대단히 하나님을 원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려움에 봉착할 때 위축될 것이다. 이러면 안 된다. 만약 대단히 하나님을 원하는 마음만 있어 다소 충동적으로 의욕만 앞설 뿐 일이 일어났을 때 진실한 마음이 없다면 주춤하게 될 것이고 자신의 이익을 택할 것이다. 이 또한 안 될 일이다. 진실한 마음과 대단히 하나님을 원하는 마음은 겸비해야 하는 것이다. 네가 진실한 마음과 대단히 하나님을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만큼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네가 진실한 마음과 대단히 하나님을 원하는 마음이 없다면 하나님 말씀을 깨달을 수 없고, 진리 실행에 힘이 빠질 것이다. 그러면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없으며 구원받기도 어려울 것이다.
구원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 꿰뚫어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혹자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받을 거라고 생각하고, 혹자는 영적 도리를 많이 이해하면 구원받을 거라고 생각하며, 또 혹자는 리더 일꾼이 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전부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다. 핵심은 구원받는 것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구원받는 것은 주로 죄악과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진실로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죄악에서 벗어나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무엇을 갖춰야겠느냐? 진리를 갖춰야 한다. 사람이 진리를 얻으려면 수많은 하나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하고,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고 실행할 줄 알아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진리를 깨달아 실제에 진입해야 한다. 그래야 구원에 이른 것이다.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을 얼마나 오래 믿었는지, 얼마나 많은 지식을 쌓았는지, 은사와 재능이 있는지, 얼마나 고생했는지 등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구원받는 것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오직 진리를 얻었는지 여부이다. 그렇다면 지금 너는 마음속으로 얼마나 많은 진리를 깨달았느냐? 하나님 말씀 중 네 생명이 된 것은 몇 구절이나 되느냐? 하나님의 모든 요구 중 어떤 것에 진입했느냐? 하나님을 그렇게 오래 믿었는데,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얼마나 진입했느냐? 만약 네가 모르거나 하나님 말씀 실제 중 그 어떤 것에도 진입하지 못했다면 내가 솔직히 알려 주겠다. 네가 구원받을 희망은 없으며, 너는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네가 지식이 많고, 하나님을 오래 믿었으며, 외모가 봐 줄 만하고 말재간이 좀 있고, 또한 몇 년 동안 리더 일꾼을 했다고 해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실행하지도 체험하지도 않아 참된 체험 간증이 없다면 네가 구원받을 희망은 여전히 없다. 네가 어떻게 생겼는지, 과학적 지식을 얼마나 쌓았는지, 얼마나 고생하며 대가를 치렀는지는 상관없다. 잘 들어라. 네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지 못한다면 너는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이건 확실하다. 내게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얼마나 진입했는지 얘기해 준다면 네가 구원받을 희망이 얼마나 되는지 알려 주겠다. 그 판단 기준을 너희에게 알려 주면 너희 스스로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을 통해 너희는 어떤 사실을 알 수 있느냐?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했고, 말씀으로 여러 가지 사실, 하나님이 하고자 하는 모든 사실을 성취하였다. 또한, 하나님은 말씀으로 두 단계 사역을 하였고, 이제 세 번째 단계 사역을 하고 있다. 이번 단계 사역에서 가장 많은 말씀을 하고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사역 중 유사 이래 가장 많은 말씀을 한 시기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고 말씀으로 모든 사실을 성취하며, 모든 사실을 무에서 유로, 유에서 무로 바꾼다. 이것이 하나님 말씀의 권병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는 이 사실도 말씀으로 성취할 것이다. 이 사실은 지금 너희 모두가 보았다. 하나님은 말세에 말씀과 무관한 그 어떤 사역도 하지 않았다. 즉, 계속 말씀하면서 오늘날까지 말씀으로 사람을 이끌고 있다. 물론, 이렇게 말씀하는 동안 말씀으로써 그를 따르는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그를 따르는 사람을 인도한다. 이런 말씀은 구원받기를 원하거나 하나님이 구원하려는 인류에게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통해 그가 인류를 구원하는 그 사실을 성취할 것이다. 이런 말씀은 내용으로 보나 양적으로 보나, 어떤 유형의 말씀이든, 어느 부분의 말씀이든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통해 그의 6천 년 경륜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려는 성과를 성취할 것이다. 이런 말씀은 이 인류에게, 현재의 인류에게도 미래의 인류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하나님의 태도이고,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하는 목적과 의의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해야겠느냐?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모른 체하지 말고 협력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이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든 마치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듯이 말이다. 여전히 자신이 추구할 것을 추구하고 자신이 할 것을 하면서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구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다. 그 밖에 하나님이 뭐라 말씀하든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겠어. 하나님께서 동쪽을 가리키시면 동쪽으로 가고 서쪽을 가리키시면 서쪽으로 가는 거야. 하나님이 죽으라면 그분 눈앞에서 죽겠어.’ 그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이런 신념뿐 하나님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는 생각한다. ‘하나님 말씀이 너무 많아. 그냥 단순하게 내가 할 일을 바로 말씀해 주시면 될 것을. 그럼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할 텐데 말이야.’ 하나님이 얼마나 말씀하든 그는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문외한처럼 결국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체험 인식도 이야기하지 못할 것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좋아하겠느냐?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싶겠느냐? (그러고 싶지 않으실 것입니다.) 결코 그러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내가 수없이 얘기했거늘 너는 어찌하여 소경과 귀머거리처럼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것이냐?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보아하니 오로지 복받을 생각과 아름다운 종착지로 들어갈 생각밖에 없구나. 너는 그저 바울의 목표에만 열중하고 있는 것이다.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나의 도를 준행하려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은 왜 믿느냐? 너는 구원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종착지를 얻고 복을 받겠다는 욕망을 채우러 왔구나. 이런 계산이 있으니 너는 힘쓰는 자가 제격이다.”라고 말한다. 사실, 충성스럽게 힘쓰는 자도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모습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사람이 이방인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는 것보다는 충성스럽게 힘쓰는 자로 살아남는 것이 훨씬 낫다. 특히 하나님 집 사역에는 힘쓰는 자가 필요하기에 하나님을 위해 힘쓰는 것도 하나의 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왕의 종노릇보다야 훨씬 낫고,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위해 힘쓰는 것으로는 하나님을 온전히 흡족하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이 심판 사역을 하는 것은 사람을 구원하고 정결케 하며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힘쓰는 것에만 만족한다면 이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역사하면서 이루려는 목표도 아니고, 하나님이 보려는 결과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욕망의 불길에 휩싸여 어리석고 눈멀면 사소한 이익에도 미혹되고 마음을 빼앗긴다. 반면 하나님의 이토록 귀한 생명의 말씀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직시하지도 않으며, 중시하지 않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 말씀을 읽지 않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과연 슬기로우냐, 아니면 어리석으냐? 구원에 이를 수 있겠느냐? 사람의 관념과 상상을 모두 내려놓고 진리 추구에 집중해야만 구원받을 희망이 있다는 것을 사람은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성경은 개역한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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