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괴 성품을 해결해야 진실로 변화할 수 있다 (제 1 부)

지금 너희는 본분을 이행할 때 의욕이 넘치고 약간의 고통을 겪을 수 있다. 그렇다면 생명 진입 방면에 길이 있느냐? 새로운 깨우침과 빛 비춤이 있느냐? 생명 진입, 이것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가장 중요한 큰일이다. 본분 이행 역시 가장 중요한 큰일이지만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 합격하고 본분 이행에 충성을 다하는 것은 어떤 방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 (진리 추구입니다.) 그렇다.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진리 추구의 방법은 무엇이냐?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이니, 진리를 얻으려면 하나님 말씀을 많이 실행하고 체험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그렇다면 진리를 깨달으려면 하나님 말씀에 공을 들여야 하지 않겠느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그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고 확실히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일이 닥쳤을 때 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진리를 실행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제가 깨닫고 말할 수 있었던 그것들이 어째서 쓸모가 없었을까요? 그때서야 제가 깨달은 것은 모두 글귀와 도리에 불과해 일이 닥쳐도 진리를 실행할 줄 모른다는 것, 제가 이렇게 빈궁하고 가련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평소 교제할 때 말이 청산유수이고 심지어 하나님 말씀을 몇 단락 암송할 수도 있어 자신이 진리를 깨달았으며 영적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자신에게 진리 실제가 조금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날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닥치면 하나님에게 관념이 생기고 때로는 하나님을 원망하기까지 하며 패괴 성품을 드러내는데, 아무리 기도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그와 진리를 교제하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도리는 제가 당신보다 더 잘 압니다. 깨달은 진리를 놓고 말하자면 제가 당신보다 더 많이 깨달았고, 도리도 제가 당신보다 더 잘 말합니다. 설교도 제가 당신보다 더 많이 들었고, 제가 당신보다 공도 더 많이 들였어요. 하나님을 믿은 시간도 제가 더 오래되었고요. 제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니, 당신이 말할 필요 없어요.” 그는 자신이 무엇이든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야심과 욕망이 폭발할 때와 패괴 성품에 통제당할 때는 어찌 해야 할지 모르고, 그가 평소에 호언장담하던 영적 도리도 그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 그의 분량은 도대체 큰 것이냐, 아니면 작은 것이냐? 그 자신은 진리를 깨달았다고 생각하는데, 왜 현실의 어려움은 해결하지 못하느냐? 이는 어떻게 된 일이냐? 너희는 자주 이런 문제에 부딪히지 않느냐? 이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때 생명 진입 방면에서 자주 부딪히는 어려움이자, 사람의 가장 큰 어려움이다. 일이 닥치지 않았을 때, 너는 자신이 하나님을 믿은 지 어느 정도 되었고 분량과 기초도 어느 정도 있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일이 닥치면 좀 꿰뚫어 볼 수 있고, 심지어 본분을 이행하는 동안 적지 않은 고통을 받고 많은 대가도 치를 수도 있고, 육의 질병, 나쁜 버릇, 결점 등 자기에게 있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독 해결하기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사람이 수시로 드러내는 각종 패괴 성품이다. ‘패괴 성품’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말이지만, 도대체 패괴 성품이 무엇인지, 어떤 것이 패괴 성품을 드러내는 것인지, 어떤 생각과 행동이 패괴 성품에서 비롯된 것인지, 이런 것들을 모든 사람이 다 잘 알고 있지는 않다. 만약 사람이 패괴 성품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어떤 행동이 패괴 성품을 드러내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면, 패괴 성품대로 살면서도 죄만 짓지 않으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 않겠느냐? 너희에게 이런 내적 상태가 있느냐? (있습니다.) 만약 네가 패괴 성품이 무엇인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자신을 인식할 수 있겠느냐? 자신의 패괴 본성을 알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 네가 패괴 성품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진리 실행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맞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틀렸는지 알 수 있겠느냐? 절대 알 수 없다. 그래서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생명 진입이 있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생명 진입이라는 이 길은 많은 내적 상태와 관련이 있다. ‘내적 상태’라는 말을 너희는 당연히 알고 있을 텐데, 내적 상태란 무엇이냐? 너희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 (내적 상태란 바로 일이 닥쳤을 때 사람이 드러내는, 일을 바라보는 관점과 사람의 사상입니다. 이는 사람의 언행이나 선택을 좌우하고 지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내적 상태입니다.) 약간 비슷하다. 누가 또 말해 보겠느냐? (내적 상태는 바로 사람이 한동안 혹은 어떤 일에서, 예를 들어 큰 책망과 훈계 혹은 일부 어려움에 임했을 때 어떤 패괴 성품에 지배를 받아 처해 있는 일종의 소극적이고 비정상적인 내적 상태입니다.) (얼마 전 제가 본분 이행에 약간의 성과가 있었을 때, 자만하고 자족하는 내적 상태가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변화가 생겼고 진리 실제가 생겼으니 분명히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하나님의 요구와 대조해 보면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이제야 이는 일종의 교만하고 방자한 내적 상태란 걸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너희가 이야기한 내적 상태는 모두 소극적인 방면이다. 그렇다면 옳은 내적 상태와 긍정적인 내적 상태는 없느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만족게 하려고 할 때 육을 저버리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습니다. 이는 긍정적인 내적 상태입니다.) 너희는 단지 일부 내적 상태만을 말했을 뿐, 내적 상태가 무엇인지 정의 내리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현재 너희가 말한 것들에 근거해 다시 내적 상태란 도대체 무엇인지 결론을 내 보아라. 도대체 무엇을 가리켜 내적 상태라고 말하는 것이냐? 바로 일이 닥쳤을 때 사람의 관점과 상태,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생기는 생각과 정서, 그리고 입장을 말한다. 예를 들어, 네가 본분 이행 중에 책망과 훈계를 받으면 마음이 매우 괴로워 소극적인 정서가 생기는데, 이때 네가 드러내는 관점과 태도 그리고 너의 입장이 무엇이냐? 이는 내적 상태의 세부 사항과 관련이 있다. 이는 너희가 평소 체험하는 일과 관련이 없느냐?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사람의 생활과 관련이 있다. 모든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매일 관련될 수 있는 것이며, 모두 느끼고, 체험하고, 접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해 보아라. 소극적인 상태에서 사람은 어떤 것들을 드러내겠느냐? (오해와 도피, 자기 규정, 자포자기, 심각할 때는 본분을 팽개치기도 합니다.) 심각할 때 본분을 팽개치고 싶어 하는 것은 태도이냐, 아니면 입장이냐? 그것도 아니면 무엇이겠느냐? (일종의 상태와 정서입니다.) 상태와 정서에 가까운 것이다. 이때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는 태도는 어떤 것이겠느냐? (소극적인 태업, 원동력 부재, 건성으로 대충 하는 것입니다.) 이는 실제 사정과 관련이 있는데, ‘원동력 부재’라는 것은 빈말이니 너는 실제 사정을 이야기해야 한다. 본분을 이행할 때, 원동력이 없으면 사람은 마음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겠느냐? 이때 드러내는 패괴 성품은 무엇이겠느냐? (본분을 건성으로 대충 하고 적당히 얼버무려 버립니다.) 이는 성품이 아니다. 이는 네가 일을 해낸 후에 너에 대해 성질을 규정한 것으로, 일종의 행동 방식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네가 건성으로 대충 하게 하였는지, 이것을 깊이 파헤쳐야 하지 않겠느냐? 깊이 파고들면 패괴 성품을 파헤칠 수 있다. 건성으로 대충 하는 것은 패괴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다. 너의 마음속 생각이 네가 본분 이행을 건성으로 대충 하도록 하였고, 예전처럼 그렇게 의욕이 넘치지 않게 만든 것이다. 너의 그런 생각이 바로 패괴 성품이고, 네가 그런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 바로 너의 본성이다. 어떤 사람은 본분 이행에서 책망과 훈계를 받으면 이렇게 말한다. “저는 이 정도의 능력밖에 안 됩니다. 제가 뭐 얼마나 큰 일을 할 수 있겠어요? 아는 것도 많지 않아 제가 이 일을 잘하려면 당장 배워야 하잖아요? 저라고 쉽겠어요? 하나님도 이해해 주시지 않으니, 할 수 없는 일을 강요하는 게 아니십니까? 많이 아는 사람이 하라고 하세요. 저는 이 정도밖에 못하고, 이만큼밖에 못해요.” 이런 말과 생각은 사람이라면 늘 있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점은 모두 인정한다. 어느 누구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며, 어느 누구도 천사가 아니다. 사람은 모두 진공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러한 생각과 패괴 표출은 모든 사람에게 다 있으며, 모든 사람이 항상 이것들을 드러낼 수 있고, 항상 이러한 내적 상태에서 살아간다. 사람이라면 모두 이를 어찌할 수 없고,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안 된다. 일이 닥치지 않았을 때, 사람의 내적 상태는 그래도 꽤 정상적이다. 하지만 일이 닥치면 달라지는데, 소극적인 상태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매우 거침없이, 방해와 구속 없이, 다른 사람이 꼬드기거나 선동할 필요도 없다. 닥친 일이 자신의 뜻에 부합하지 않기만 하면, 이런 패괴 성품을 언제 어디서든 바로 드러낸다. 왜 언제 어디서나 드러낼 수 있느냐? 이는 사람에게 이런 패괴 성품이 내재되어 있고, 패괴 본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사람의 패괴 성품은 다른 사람이 강제로 더해 주거나 주입한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가르치거나 꼬드기거나 부추긴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사람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런 패괴 성품을 해결하지 않으면, 사람은 옳고 긍정적인 내적 상태에서 살 수 없다. 이런 패괴 성품을 왜 항상 드러내느냐? 사실 너희는 예전에 이미 이러한 내적 상태가 옳지 않고 비정상이니 마땅히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의식했지만,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런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지 못하고 잘못된 사상과 관점을 포기하지 못해, 내적 상태에 큰 변화가 없다. 십 년 이십 년이 지났어도 전혀 변화가 없으며, 패괴를 드러내는 내적 상태도 별로 줄어들지 않고 예전과 마찬가지로 드러낸다. 이는 무엇이 문제이겠느냐? 이는 무엇을 증명할 수 있겠느냐?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대다수의 사람이 별로 성장하지 못하고, 그저 글귀와 도리만 알 뿐 진리를 실행해 내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너희가 체험 간증을 말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너희가 그동안 진리를 추구하지 않은 탓이다. 패괴 성품이 그다지 변화하지 않은 것은 너희의 생명 체험이 여전히 너무 얕고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지금 너희의 분량이 여전히 너무 작아 진리 실제를 전혀 갖추지 못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너희는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실제 체험이 약간 있는 사람은 당연히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지만,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생명 진입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기 때문에 아마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방금 내가 왜 너희에게 내적 상태란 무엇이냐고 물었겠느냐? 만약 너희가 내적 상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너희는 내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단지 옳은 말이니 들어 두는 정도로 끝내게 된다. 만약 너희가 이런 관점이라면, 이는 너희가 체험이 별로 없어 하나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증거이다. 사람이 진리 실제에 진입하고 진정한 생명 진입이 있으려면, 많은 내적 상태를 파악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문제를 깨닫고 파악해야 한다. 자신이 현실 생활에서 어떤 내적 상태에 처해 있는지를 알고, 그런 내적 상태의 옳고 그름과 사람이 옳지 않은 내적 상태에서 어떤 패괴 성품을 드러내는지, 그 패괴 성품의 본질은 무엇인지, 이러한 것들을 알아야 한다. 만약 이것들을 알아보지도 파악하지도 못한다면, 한편으로 너는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 자신의 패괴 성품을 인식하여 자신을 변화시킬지 알지 못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너는 또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진리에 진입할지도 알지 못한다. 너희는 자주 이런 상황을 만나지 않느냐? 내가 한 가지 사례를 말했는데 너희는 듣고 그 사례만 알 뿐, 그것이 어떤 내적 상태를 가리키는 것인지 몰라 자신을 비춰 보지 못하는 상황 말이다. (그렇습니다.) 이는 너희가 아직 거기까지 체험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만약 너희와 관련이 있고 너희 생활과 가장 밀접한 것을 이야기하면, 예를 들어, 사람이 매일 접촉하는 본분 이행의 일, 본분 이행 과정에서 사람이 드러내는 패괴 성품, 사람의 속셈, 교만한 성품, 건성으로 대충 하는 것과 관련된 것, 그리고 본분 이행의 태도를 이야기하면, 아마 너희는 듣고 자신을 비춰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더 깊은 것을 이야기하면, 너희 중 일부는 아마 자신을 비춰 보지 못할 것이다. 이런 경우가 있느냐? (있습니다.) 비춰 보지 못하는 것을 너희는 그냥 도리라고 생각하고 듣고 지나면 그만인 것이 아니냐? 그럼 비춰 볼 수 있는 것은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느냐? (자신을 인식하고 반성하고 진리를 구해 자신의 패괴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게 체험하는 것이 맞다.

자신의 패괴 성품을 반성하고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애매한 말이다. 그렇다면 마땅히 어떻게 반성하고 인식해야 하겠느냐? 여기 길이 있다. 바로 일이 닥치면 너의 관점과 태도가 무엇인지, 너는 어떤 생각을 갖는지, 그 문제를 네가 어떤 입장에서 바라보고 처리하고 대하는지 살펴보고, 이를 통해 자신을 반성하고 자신의 패괴 성품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자신의 패괴된 내적 상태를 더 잘 인식한 후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하여 성품을 변화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지금 너희는 어느 단계에 처해 있느냐? 자신을 얼마나 많이, 얼마나 깊이 인식하고 있느냐? 서로 다른 시기 혹은 서로 다른 일이 임했을 때, 자신이 어떤 내적 상태에 처하는지 너희는 얼마나 알고 있느냐? 이 방면으로 공을 들이고 사전 준비를 한 적이 있느냐? 조금이라도 진입했느냐? (비교적 분명한 일 혹은 큰일이 임할 때, 자신이 드러내는 것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지엽적이고 사소한 일은 매우 쉽게 소홀히 넘어가고, 때로는 옳지 않은 내적 상태에서 살면서도 자각하지 못합니다.) 깨닫지 못할 때는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느냐? 어떤 상황에서 자각하지 못하게 되겠느냐? (단순히 일을 하듯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말씀의 진리에 닿으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패괴 성품을 드러내도 자신조차 모릅니다.) 본분을 일하는 것으로 여긴다. 일종의 업무, 임무, 책임으로 생각하고 매우 무감각하게 이행할 뿐, 생명 진입과 연결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내적 상태로, 본분을 단지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행할 뿐, 생명 진입의 길 혹은 방식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이다. 마치 일하는 것처럼, 어떤 사람은 직장 일을 사업이라 여기고 목숨과 연결시키고, 자신의 흥미, 취미, 그리고 그의 인생의 이상과 목표와 함께 연결시킨다. 반면 어떤 사람은 일을 책임이라 생각한다. 즉, 일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곳으로 가는데,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것으로, 어떤 인생의 목표나 이상은 없다. 지금 너희 대다수의 내적 상태가 이렇지 않으냐? 본분 이행이 하나님의 말씀과 괴리되며 진리와 괴리되니, 설령 자신의 오류를 인식해도 진실한 변화가 없다. 그저 마음속에 약간의 가책을 느낄 때 되돌아보고 생명 진입의 일을 생각해 볼 뿐, 평소에는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한다. 기쁠 때나 기분이 특히 좋을 때는 좀 잘하지만, 만약 어느 날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닥치거나 악몽을 꿔서 기분이 좋지 않으면, 8일이나 10일 동안 너의 기분이 영향을 받기도 하고, 또 네 본분 이행의 성과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너는 마음속으로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멍청하게 보낸다. 그 열흘이나 보름의 시간이 그렇게 지체되고 바로 그렇게 건성으로 대충대충 지나가 버린다. 사람이 이런 내적 상태에서 살면, 생명 진입은 정체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느냐? 생명 진입이 제자리걸음하면, 사람이 한 일과 이행한 본분이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왜 그럴 수 없느냐? 바로 사람이 행한 것과 사람이 이행한 본분이 진리와 무관하여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본분 이행은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때로는 일정 기간 동안 본분에 실수가 없으면 너는 그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완전히 적합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본분 이행으로 줄곧 바쁘고, 손의 일도 내팽개치지 않고, 마음속으로도 다른 일을 궁리하지 않기만 하면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태도가 건성으로 대충 하는 모습 아니겠느냐? 그저 일만 하는 것에 만족할 뿐 진리 원칙과는 괴리되니, 이런 본분 이행이 성과를 얻을 수 있겠느냐? 만약 하나님의 사역이 끝나면, 너는 하나님께 어떻게 설명하겠느냐? 본분 이행에 무책임하고, 진리를 구해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지도 않는 이런 본분 이행이 합격이겠느냐?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겠느냐? 만약 갑자기 시련 혹은 책망과 훈계에 임했다고 하자. 네가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렀기 때문에 형벌과 심판이 임한 것으로 생각했기에 꿈에서 놀라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이틀간 분발한다면, 이것이 생명 진입의 정상적인 내적 상태이겠느냐? (아닙니다.) 책망과 훈계를 받은 후에는 겉으로 약간의 변화가 있다. 마치 채찍으로 한 대 맞은 것처럼 약간 아픈 느낌이 있고 자신을 조금 인식하게 된다. 겉으로는 마치 너희가 한 걸음 성장했고, 책망과 훈계, 심판과 형벌에 대한 체험도 약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람의 주관적인 입장에서 말하자면, 만약 사람이 자신의 패괴 성품과 자신이 처해 있는 각종 패괴된 내적 상태를 전혀 알지도 파악하지도 못한다면, 또 전혀 세심하게 파고들지 않는다면, 게다가 이런 문제들을 전혀 해결하지 않는다면, 생명 진입의 정상적인 내적 상태에 도달할 수 있겠느냐?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겠느냐? 내가 보기에 도달하기 쉽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저는 본분을 이행하는 일에서 원칙을 파악할 수 있는데, 이것이 진리를 깨닫고 진리 실제에 진입한 것 아닐까요?”라고 말한다. 규례와 겉면의 행동 방식을 지키기는 쉽지만, 그것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은 아니며,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너에게 매일 아침 다섯 시에 기상하고 저녁 열 시에 취침하라며 일과 시간을 이 원칙에 따르라고 한다면, 너는 이대로 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아침 다섯 시 기상, 저녁 열 시 취침이라는 이 일과 시간 규칙은 매우 좋다. 사람 신체의 자연 규칙에도 부합되어 건강에도 좋다. 그런데 사람은 어째서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겠느냐? 여기에 문제가 하나 있다. 사람은 이 방면의 도리와 상식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사람이 받아들이지 못하겠느냐? 왜 사람은 이 일과 시간을 지키기 싫어하고, 이런 방식과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 싫어하겠느냐? 이는 사람의 육적인 이익과 연관이 있다. 일찍 일어나기 싫어하는 것은 좀 더 자고 싶고, 육적 취향과 느낌을 따르고 싶다는 것 아니겠느냐? 일찍 일어나라는 것이 육적인 편안함과 충돌하기 때문에, 사람이 마음속으로 싫고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찍 일어나면 건강에 좋다’라는 사실을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정도의 이익도 포기하지 못한다. 자기 몸을 쳐 복종시켜야 하고, 기도도 해야 하며, 자신을 설득해야 하고, 환경의 영향도 있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이 모두 일어나는 것을 보면 자기가 아무리 더 자고 싶어도 민망해서라도 억지로 일어나기는 하지만, 매일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일어나니 기분이 매우 좋지 않다. 이런 생각과 내적 상태는 어떻게 초래된 것이겠느냐? 사람이 육적인 편안함을 즐기고 제멋대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데다 또한 일종의 나태와 방종이라는 사상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신체의 정상적인 규칙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이행하는 본분도 고려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육적인 이익을 채우는 것을 우선시한다. 결론적으로, 사람의 패괴 성품 속에는 무언가가 하나 있는데, 바로 사람은 늘 육을 방종하고 싶어 하며 단속받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만약 책망을 받을 때 이치를 따지며 늘 자신을 위해 변호한다면, 말이 안 통하는 것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이 사소한 일은 결코 사람의 득실과는 관계없으며, 단지 자제하여 늦잠만 자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육체가 조금 더 휴식하는 이 작은 이익조차 사람은 모두 포기하기 힘들어한다. 너의 늦잠이 일에 영향을 미칠 때 너는 그것이 진리 원칙에 부합하지 않음을 인식하지만, 자기반성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또 불만이 있고 기분이 언짢아 늘 이렇게 생각한다. ‘어째서 줄곧 한 번이라도 방종하지 못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번 하지 못하는 걸까?’ 일부 사람들은 항상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내적 상태는 어떻게 해결해야겠느냐? 너는 기도해야 하고 자기 육적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자신이 성숙하게 변하고, 편안함을 즐기지 않고 고통을 받을 수 있으며 본분에 충성심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고, 자신을 단속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기 단속이 쉽겠느냐? (쉽지 않습니다.) 왜 쉽지 않으냐? (사람은 단속받는 것을 싫어하고, 통제받는 것을 싫어하며, 자신을 방종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신을 단속할 줄 모르고 자신을 단속하지도 못하면, 자기 단속 능력이 떨어져 늘 제멋대로 함부로 행동하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없이 이것이 바로 인성이 성숙되지 못한 것이다. 이런 사소한 일에도 사람의 이익과 관련이 있을 때는 바로 패괴 성품을 드러낸다. 패괴 성품을 드러낼 때는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하고, 자기 인식을 해야 하며, 진리를 깨달아 패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패괴 성품이 정결함을 얻을 때,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진리 실제에 진입하여 생명 또한 성장하고 성숙해지고 생명 성품에 변화가 생긴다.

방금 전 간단한 예를 하나 들었다. 정상적인 일과라는 사소한 일을 통해 사람의 패괴 성품을 보았으며, 사람의 사상 내면에 있는 것을 보았고, 이것들을 모두 파헤쳤다. 이러한 패괴 성품을 파헤쳐서, 너 자신이 확실히 사탄에 의해 너무 깊이 패괴되었고, 비록 몇 년 동안 하나님을 믿어 약간의 도리는 알았지만 아직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지 못해 어떤 본분을 이행해도 모두 불합격이고, 무슨 일을 해도 원칙이 없으며, 하나님께 진실로 순종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지 않으냐? 그렇다면 사람의 현재 내적 상태에 따르면, 진정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렀느냐? 아직은 아니다. 사람의 패괴 성품이 아직 완전히 벗겨지지 않았고 진리 실행에 여전히 너무 많은 한계가 있어 하나님께 진실로 순종하기에는 아직 멀었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사탄을 따르고 사람을 따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사람이 가진 분량이 진실로 구원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모든 사람이 마땅히 자신의 진실한 내적 상태에 따라 자신을 분류하여 자신이 어느 유형에 속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패괴 성품을 반성해, 자기 안의 각기 다른 내적 상태를 인식하고, 또 자신이 각기 다른 일에 임할 때 마음속에 나타나는 생각, 관점, 태도를 인식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교만하고 방자하며, 자신을 드러내기 좋아하고, 높은 곳에서 남을 내려다보고 군림하기를 좋아하는 것을 본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교활하고 간사하며, 일을 할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독한 사람임을 보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이익만을 좇는, 잇속 차리기를 좋아하는 사람, 이기적이고 비열한 소인배임을 본다. 어떤 사람들은 일정 시간 반성하고 나서 자신이 위선적인 사람임을 발견한다. 어떤 사람들은 예전에는 자신이 재능과 자질이 있으며 업무에 정통하다고 생각했지만, 일정 시간 반성 후에는 자신이 조금도 쓸모가 없으며 별다른 재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어리석어서 일을 해도 원칙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어떤 사람들은 일정 시간 반성한 후 자신이 속이 좁고 시시콜콜 따지는 사람으로, 다른 사람의 말이 자신의 이익을 건드리면 안 되는, 인내와 양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자기 인식에 이런 성과를 거두면 생명 진입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도움이 됩니다.) 어떤 도움이 되겠느냐? (진리를 구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만약 이 문제들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자신이 항상 패괴 성품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 수 없으며, 진리를 구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리는 더더욱 없습니다.) (만약 이것들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자신이 매우 불쌍한 처지인 것을 모르지만, 인식한 후에는 마음속으로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고, 패괴 성품에 의해 속박된 처지에서 벗어나려 하며, 진리를 구해 하나님 말씀대로 처신하려 합니다.) 말해 보아라. 만약 사람이 자신이 매우 위대하고, 정의감이 있으며, 너그럽고, 재능이 있고, 다른 사람을 잘 포용하고, 선량하며, 정직하고, 다른 사람에게 매우 충실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패괴 성품 또한 보통 사람이라면 다 갖고 있는 교만과 독선, 미움과 질투라는 소소한 결점일 뿐이니, 이런 아주 작은 흠을 제외하면 자신은 매우 완벽해 다른 사람보다 존귀하고, 고상하며,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사람이 늘 이런 내적 상태라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진실로 회개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자신을 인식하고, 진실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 저는 사탄에 의해 깊이 패괴된 사람입니다. 저는 자신의 이익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것은 모두 내려놓기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이며, 쓸모가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진실로 회개하여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 내고자 하니,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말하겠느냐? 언젠가 사람이 이렇게 진실로 회개하는 의지가 있으면 좋아질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해 구원받기 쉬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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