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이다 (제 2 부)

너희는 욥기를 읽어 보았느냐? 읽을 때 마음속에 감동을 받았느냐? 욥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갈망하는 마음이 생겼느냐? (그랬습니다.) 그런 내적 상태와 마음이 얼마나 지속되더냐? 하루 이틀 가더냐, 한두 달 가더냐, 아니면 일이 년 가더냐? (며칠 정도 지속됐습니다.) 며칠이 지나니 사라지더냐? 감동을 받았을 때는 기도해야 한다. 욥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나님께 말해야 한다. 너에게도 그렇게 해 달라고, 너를 인도해 달라고, 환경을 배치하고 힘을 더해 달라고, 네게 닥친 환경 속에서 굳게 설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언제나 이 목표를 위해서, 네가 속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을 위해서 간구하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이 네 진실한 마음을 보면 행사할 것이다. 하나님이 행사해도 두려워하지 마라. 하나님은 욥에게 시련을 준 것처럼 그렇게 너의 온몸에 악창이 생기게 하거나 네 모든 것을 빼앗아가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며, 네 분량에 맞춰 조금씩 네게 더해 줄 것이다. 너는 진심으로 간구해야지, 오늘 보고 감동받았다고 이틀 구하고, 또 사흘 안 봤다고 뇌리 저편으로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마음속에 이 일이 없으면 문제가 되는 것 아니겠느냐? 네가 욥과 같은 사람을 부러워하고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네 마음속에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될지에 대한 길이 있어야 한다. 너는 하나님 앞에 마음을 드러내야 하며, 그다음에는 늘 그 일에 대해 기도하고 마음속으로 항상 그 일을 되새겨야 한다. 그런 후에 하나님이 욥에 관해 한 말씀들을 먹고 마시면서 끊임없이 묵상하기를 반복하고, 그런 체험과 인식이 있는 사람과 교제해야 한다. 너는 그 목표를 향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노력해야겠느냐? 가만히 앉아서 보기만 하고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노력이 아니다. 실행에 옮겨야 한다. 이 일에 공을 들이는 한편, 고난을 감내하겠다는 마음,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 후에 이 일과 관련해 기도하며 하나님이 행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이 행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다. 하나님은 어떻게 행하겠느냐? 하나님은 네 분량에 맞춰 환경을 배치하고 안배하기 시작한다. 너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어떤 목표를 이루고 싶은지, 어떤 의지를 지니고 있는지 하나님께 말해야 한다. 너는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했느냐? 얼마나 오랫동안 기도하고 간구했느냐? 가끔 두어 번 기도한 다음 하나님이 아무것도 행하지 않은 것을 보면 ‘관두자. 그냥 이대로 살자고. 될 대로 되라지 뭐. 순리에 맡기는 거야. 뭐가 닥치든 그러려니 해야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선 안 되는데, 네 마음이 진실되지 않은 것이다. 네 열정이 작심삼일에 불과하다면, 하나님이 너를 위해 행사하고 네게 환경을 배치해 주겠느냐?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네 진실한 마음을 보며, 네 진심과 의지가 얼마나 오래가는지를, 네 마음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본다. 또한 하나님은 기다린다. 그는 네 기도와 간구, 네 다짐과 소망을 들었다. 그러나 고난을 감내하겠다는 네 의지를 보지는 못했으니 행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는 바로 사라졌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행하겠느냐? 절대 그럴 리 없다. 너는 많이 기도하고 간구해야 하며, 이 일을 위해 공을 들이고 곰곰이 생각한 다음, 하나님이 너를 위해 배치한 환경을 세심하게 음미해야 한다. 그것들이 하나씩 네게 임하면, 하나님이 행하기 시작할 것이다. 진실한 마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너는 “저는 욥이 부럽고 베드로가 부럽습니다!”라고 말할지 모르는데, 부러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 아무리 부러워해도 너는 그들이 아니며, 아무리 부러워해도 하나님 또한 네게 같은 사역을 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너는 그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네게는 그들이 지녔던 의지도, 인성도, 진리를 갈망하고 추구하는 마음도 없다. 언젠가 네가 이러한 것들을 갖추게 되면 하나님은 그제야 네게 더 많은 것을 더해 줄 것이다.

너희는 지금 진리를 추구하고 얻어서 구원받고 온전케 되겠다는 뜻을 품고 있느냐? (그렇습니다.) 그 뜻이 얼마나 큰 것이냐?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느냐? (내적 상태가 좋을 때는 뜻이 있지만, 자신의 육적인 이익과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일이 닥쳐서 마음이 연단받거나 어려움이 있으면 소극적인 내적 상태에 빠져 처음에 가졌던 믿음도 뜻도 조금씩 사라집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너무 연약한 것이다. 어떤 환경이 닥치든 네 뜻을 바꿔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참으로 진리를 사랑하고 추구하는 사람이다. 일에서 조금 어려운 점을 맞닥뜨리면 금세 움츠러들고 소극적이고 우울해져서 자신의 뜻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너는 목숨을 내걸 듯이 힘을 내고 “무슨 일이 닥치든, 저를 죽게 하더라도 진리를 포기하지 않고, 진리 추구라는 목표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어려움도 네 발목을 잡지 못할 것이다. 정말 어려움이 닥쳐서 사람이 막다른 길에 몰리면 하나님이 행사할 것이다. 너는 또 이런 인식을 가져야 한다. ‘어떤 일이 닥쳐도 모두 내가 진리를 추구하면서 배워야 하는 공과이고 하나님께서 배치하신 것이야. 나는 연약하지만 소극적이 되지는 않을 거야. 내게 공과를 배울 기회를 주시고 이런 환경을 배치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려. 하나님을 따르고 진리를 얻겠다는 뜻을 포기할 수 없어. 포기한다면 그건 사탄과 타협하는 거고, 나를 망치고 하나님을 배신하는 거야.’ 네게 이런 마음이 있어야 한다. 어떤 작은 일이 닥쳐도 그것은 생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는 작은 해프닝이니 그것이 네가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을 가로막게 해서는 안 된다. 어려움이 있다면 구할 수도 있고 기다릴 수도 있지만, 네가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은 바뀔 수 없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남이 뭐라고 하든, 널 어떻게 대하든, 하나님이 널 어떻게 대하든, 네 뜻은 변치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나는 진리를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는 너를 혐오한다.”라고 말할 때, 네가 “하나님도 저를 혐오하시는데 제가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차라리 죽어 버리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오해한 것이다. 하나님이 너를 혐오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너는 분발해야 하고 진리를 받아들이고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무능하고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도 너를 혐오하여 버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 너희는 분량이 너무 작아서 아직 하나님이 시련을 줄 만한 요구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너희가 그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느냐?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제가 당신의 뜻을 깨닫도록 인도하고 깨우쳐 주소서. 진리 추구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믿음과 의지를 제게 주시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게 해 주소서. 제가 비록 연약하고 분량이 보잘것없지만 제게 힘을 더해 주시어 제가 당신을 끝까지 따를 수 있도록 지켜 주소서.’ 너는 항상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남들은 세속을 그리워하고 육을 방종하며 세상의 조류를 따르더라도 너는 따르지 말고 오로지 자기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 남들은 소극적이 되면 본분을 이행하지 않지만, 너는 구속받지 말고 진리를 구하고 남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남들이 안일함을 누려도 부러워하지 말고 오로지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 남들이 명리와 지위를 추구해도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를 도와주며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하게 하여 이런 일에 영향받지 말아야 한다.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진리를 구하여 자신을 단속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면서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시시각각 사람을 감찰하며, 성령은 바로 그런 사람의 내면에 역사한다. 하나님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겠느냐? 하나님은 눈으로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환경을 배치해 손으로 네 마음을 어루만진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하나님이 네게 어떤 환경을 배치할 때, 네가 마음속으로 반감이나 증오를 품는지 아니면 좋아하고 순종하는지, 수동적으로 기다리는지 아니면 자발적으로 진리를 구하는지를 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네 마음과 생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는지를 본다. 네 내적 상태는 긍정적일 때도 있고 부정적일 때도 있다. 만약 네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하나님이 네게 배치한 사람과 일, 사물, 각종 환경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고 올바르게 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님 말씀을 읽고 마음으로 곰곰이 되새기는 것을 통해 네 마음과 뜻, 생각, 기분 하나하나가 하나님 말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너는 이러한 것들을 잘 알고 있고, 하나님 또한 감찰하고 있다. 네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기도하지도 않았으며, 마음속으로 자신만의 세계에서 생각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매우 분명하고 일목요연하게 알고 있다. 사람은 눈으로 너를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으로 네 마음을 어루만진다. 너와 이렇게 가까이 있다. 만약 네가 하나님의 감찰을 느낄 수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감찰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고 자기 세계 안에 살면서 자기 느낌과 패괴 성품에 따라 산다면 너는 곤란하다. 네가 하나님 앞에서 살지도 않고,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고,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며, 하나님의 감찰을 받지도 않는다면, 이런 것들을 하나님도 알고 있다. 하나님은 너무도 잘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온전케 되겠다는 의지와 목표가 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네게 그런 의지가 있다면, 늘 그 일을 위해 기도하고 간구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며, 하나님을 멀리하거나 떠나지 말아야 한다. 이 일은 너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며, 하나님 역시 알고 있다. 어떤 이는 “제가 잘 알고 있다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정말 아실까요?”라고 말하는데, 그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네가 하나님과 교류해 본 적이 없으며, 하나님과 아무 관계도 없다는 의미이다. 어째서 아무 관계도 없다고 하겠느냐? 너는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았기에 하나님이 정말 너와 함께하는지, 너를 인도하고 지켜 주는지, 네가 그릇된 일을 저질렀을 때 하나님이 질책하는지 느끼지 못한다. 이러한 느낌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혼자 상상하고 혼자 도취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만의 세계에서 사는 것이지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 아니고, 너는 하나님과 아무 관계도 없다.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겠느냐? 무엇을 통해 유지할 수 있겠느냐?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하고 교류함으로써 유지해야 한다. 이런 관계는 사람이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으려면 우선적으로 평온한 사람이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항상 표면적으로 행동하고 겉면의 사무적인 일을 처리하느라 바빠서 하루 이틀 영 생활을 하지 않아도 자각하지 못하고, 3~5일, 심지어 한두 달이 흘러도 자각하지 못한다. 이것은 기도하지도 않고, 간구하지도 않고, 하나님과 교제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간구란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에게 너를 돕고 인도하고 공급하고 깨우쳐 달라고, 네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진리가 무엇이고 진리 원칙이 무엇인지, 진리를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 알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간구해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할 수 있다. 기도는 범위가 매우 넓다. 가끔은 그저 속마음을 얘기할 수 있는데, 어려운 문제가 있거나 소극적이고 연약해질 때 하나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이다. 또한 자신에게 패역이 있을 때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 혹은 매일 맞닥뜨리는 일들 가운데 스스로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이나 꿰뚫어 볼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 얘기하는 것 등이 있다. 이것을 기도라고 한다. 기도는 바로 하나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하나님에게 진리를 구하는 것이다. 정기적일 때도 있고 비정기적일 때도 있고,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다. 영적으로 교제하는 것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 일이 있을 때도 없을 때도 있고, 할 말이 있을 때도 없을 때도 있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저 그 일을 하나님에게 얘기하고 기도하여라.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사랑하고 걱정하는지 평소에 많이 묵상하고, 하나님이 어째서 사람을 책망하고 훈계하는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이란 무엇인지 등등 이런 문제에 대해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과 교류하고, 하나님에게 기도하며 구하여라. 이것이 바로 영적인 교제이며, 이를 줄여서 ‘영교(靈交)’라고 한다. 가끔 네가 길을 가다가 문득 한 가지 일이 떠올라 마음이 괴로워질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무릎을 꿇거나 눈을 감을 필요 없이 마음속으로 하나님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하나님, 제 앞에 닥친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합당한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인도해 주소서.’ 네 마음이 움직여 속마음을 좀 말하면 하나님은 곧 알 수 있다. 가끔 집 생각이 나면 ‘하나님, 집이 그립습니다.’라고 말하고, 구체적으로 누가 그리운지 말하지 않고 그저 기분이 좋지 않다고 하나님에게 얘기할 수도 있다. 하나님에게 기도하며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사람에게 말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만난다면 그나마 괜찮을 것인데, 문제를 해결하고 이로움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을 만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네가 하나님에게 말하면 하나님은 너를 위로하고 감동시킬 것이다. 네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은 뒤 묵상하고 기도할 수 있다면, 진리를 깨달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길을 찾아 난관을 극복하고 이 작은 고비를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 고비가 너를 넘어뜨리거나 통제할 수 없고, 네 본분 이행에 영향을 줄 수도 없을 것이다. 가끔 네가 갑자기 영적으로 다운되고 약간 어둡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는 서둘러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한다. 다시 말해,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마음을 나누면 네 내적 상태가 곧 되돌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너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바로 ‘하나님은 언제나 내 곁에 계셔. 한 번도 나를 떠난 적이 없으시지. 나는 그걸 느낄 수 있어. 내가 어디에 있든 무얼 하든, 예배할 때도, 또는 본분을 이행할 때도 나는 하나님이 내 손을 잡아 이끌어 주신다는 걸, 나를 떠나신 적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어.’라는 것이다. 때로는 이렇게 하루하루 걸어온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자신의 분량이 이미 자란 것 같고, 그것은 전부 하나님이 인도해 준 덕분이고, 하나님의 사랑이 늘 지켜 준 덕분이라고 느끼기도 할 것이다. 그럴 때는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라.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라는 사람은 너무도 연약하고 나약하며 깊이 패괴되었습니다. 당신께서 이렇게 저를 인도해 주지 않으셨다면 저 혼자서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라고 말이다. 이것이 영교 아니겠느냐? 사람이 늘 이렇게 하나님과 교류한다면 하나님께 할 말이 많지 않겠느냐? 며칠 동안 할 말이 한마디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 할 말이 없다는 것은 네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다는 뜻이다. 만약 네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네 마음속 모든 말,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들까지 포함하여 전부 하나님께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하나님은 네 마음을 가장 잘 아는 분이다. 네가 하나님을 네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존재, 가장 의지할 수 있고 기댈 수 있으며, 믿을 수 있고 마음이 맞는 가까운 사람으로 생각한다면 하나님께 할 말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 늘 할 말이 있다면, 늘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지 않겠느냐? 네가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다면, 너는 하나님이 너를 어떻게 깨우쳐 주고 인도하는지, 어떻게 돌보고 지켜 줌으로써 네게 평안과 기쁨을 주는지, 하나님이 너를 어떻게 축복하고, 또 어떻게 꾸짖고 징계하고 처벌하고 심판하고 형벌하는지 매 순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네 마음속으로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네가 날마다 흐리멍덩하고 입으로만 하나님을 믿을 뿐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다면,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하고 예배하며 매일 하나님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서 과정만 거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네가 지키는 그런 종교 의식은 진리와 무관하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날마다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 말씀 안에서 기도하고 교제하며, 하나님 말씀 안에서 빛 비춤을 얻고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특히 본분 이행에 있어서 진리를 구해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하고, 날마다 생명 체험이 있고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그런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믿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문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마음에 하나님이 없고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고, 하나님을 가장 친하고 가깝고 신뢰할 수 있는 가족이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네 하나님이 아니다. 한동안 내가 말한 대로 실행하면서 너희 내적 상태에 변화가 있는지 살펴보아라. 내가 말한 대로 실행하면 너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고 정상적인 상황과 내적 상태가 있을 수 있다. 사람이 내적 상태가 정상적이고, 생명 체험의 각 단계에서 그 어떤 사람과 일, 사물을 만나고 그 어떤 환경을 마주하든,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면, 이런 사람이야말로 실제 분량이 있는 것이며, 진리 실제에 진입한 사람이다.

2017년 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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