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측면의 말씀 (발췌문 79)

찬양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그분>을 부르고 나니까 속으로 어떤 느낌이 드느냐? 무언가 깨달은 것이 있느냐? 누구든지 살아가면서 많은 고통을 겪지만 사람은 그 이유도 모르고, 사람이 이런 고통을 겪는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도대체 그럴 가치가 있는지, 사람의 이런 삶의 방식이 도대체 옳은 것인지에 대해 아무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는다. 사람은 어릴 때는 항상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살아야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성장한 뒤에는 열심히 공부해야 비로소 출세하여 잘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된 후에는 돈도 많이 벌고, 명예와 이익, 권세를 손에 쥐고 잘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또 늘 관리가 되어 사람들의 우러름과 숭배를 받으려고만 한다. 자식이 생긴 뒤에는 자손이 번창하여 대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며, 계속해서 번영하고 발전하기를 바란다. 사람의 이 한발한발은 무엇을 위한 것이냐? 어째서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느냐? 왜 사람은 모두 이렇게 살아가느냐? 사람의 삶에는 길이 없다. 어째서 길이 없다고 하느냐? 바로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자신이 한평생 무엇을 하러 온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생의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러한 일들을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째서 이렇게 바득바득 명예와 이익, 행복한 삶을 추구하면서 죽을 때까지도 뉘우치지 않을 수 있느냐? 그것은 바로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은 잘못된 생각과 인생관이 생겨 이렇게 사는 것을 옳은 것이라고,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명예와 이익을 얻으면 곧 행복하다고 여기면서 그저 이런 신념으로 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한발한발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길로 미친 듯이 달려가지만, 결국에는 죽을 때까지도 행복을 얻지 못한다. 모든 사람이 다 이렇게 살아가는데, 이 세상에는 달리 갈 길이 없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 돈을 벌어 잘살고 싶어 한다. 돈이 없으면 고통스럽게 살고 돈이 있으면 많은 일을 성사시킬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한다. 생활이 부유해지면 재산을 지키고 자식에게 상속하려고도 한다. 이렇게 사는 것이 공허하다는 것을 그 누구도 명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은 모두 아쉬움과 의혹, 미련을 가지고 인간 세상을 떠난다. 사람은 이 한평생을 살면서 가난한 자도 있고 부유한 자도 있으며, 수명이 긴 사람도 있고 짧은 사람도 있다. 서민도 있고 고관대작도 있는데 온갖 계층의 사람이 다 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하나다. 바로 야심과 욕망, 그리고 사탄 성품에 기대어 명리를 다투고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보고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은 왜 다 이렇게 살아갈까? 갈 수 있는 다른 길은 정말 없는 건가? 사람은 단지 죽을 때까지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살아가는 건가? 죽고 나면 또 어디로 가는 걸까? 대대로 그 많은 사람들은 왜 다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걸까? 이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인류는 스스로 어디에서 왔는지, 이 한평생의 사명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누가 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주재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사람은 한 세대 한 세대 왔다가 또 한 세대 한 세대 가 버린다. 대대로 사람은 모두 이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죽는다. 같은 방식으로 왔다가 같은 방식으로 가 버리며 진정한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과 길을 찾지 못하고 이 일에 관해 진리를 구하는 사람도 없다. 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은 모두 같은 방식으로 살아간다. 모두 탐색하고 기다리며 앞으로의 인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하지만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 것이다. 결국 사람은 이 모든 것을 주재하고 주관하는 그분이 누구인지, 모든 것을 주재하는 그분이 도대체 존재하긴 하는지 알지 못한다. 사람은 이 답을 모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해마다 이렇게 기대하고 날마다 이렇게 견디며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다. 사람이 만약 이 모든 것이 무엇 때문인지 안다면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길이 생긴 것 아니겠느냐? 이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사람의 바람과 갈망에 기대어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겠느냐? 사람이 왜 살아가는지, 또 왜 죽는 건지, 이 세상을 누가 주관하는지 깨닫고 나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주재하는 그분이 바로 창조주라는 답을 얻고 나면 사람은 드디어 행할 길이 생긴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진리를 구하고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며 더 이상 바람과 갈망에 기대어 그렇게 고통스럽게 살지 않아도 된다. 만약 사람이 왜 살아가고 또 왜 죽는 건지 답을 찾았다면 사람의 모든 고통과 어려움은 해결되지 않겠느냐? 그럼 사람은 해탈하지 않겠느냐? 사람은 진정으로 해탈하고 완전히 자유롭고 해방되는 것이다.

너희는 찬양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그분>을 듣고 나서 마음속으로 무엇을 사색해야 하겠느냐? 인류가 왜 살아가고 왜 죽는 건지 알게 되면, 이 세상 만물의 주재자, 즉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그분이 도대체 누구이며 어디에 있고 인류에게 그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안다면, 이런 일들을 모두 깨닫는다면 인류는 창조주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게 된다. 창조주에게 어떻게 경배하고 순종해야 하는지 알게 되고 마음속에 의지할 곳이 생겨 평안하고 행복해지며 이렇게 괴롭고 고통스럽게 살아갈 필요가 없어진다. 결국 사람은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살아가는 방식도 매우 중요하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길을 걷는지가 사람이 이 한평생 행복할지, 아니면 비통할지를 결정한다. 사람은 이를 깨달아야 한다. 이 찬양을 듣고 나서 사람은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인류는 모두 이런 규칙 속에서 살아가는구나. 고대의 사람도 예외 없고, 현재의 사람도 예전대로 여전히 이러한 방식들을 바꾸지 않았구나. 그럼 이 인류 가운데 한 분의 주재자, 전설 속의 한 분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는 것 아닐까? 만약 하나님을 찾고 나면,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그분을 찾고 나면 인류는 마음속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중요한 건 인류의 뿌리를 찾는 거야. 이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뿌리를 찾고 나면 사람은 다른 경지의 삶을 살 수도 있어. 만약 이 뿌리를 찾지 못하고 인류가 계속 이대로 살아간다면 인류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사람이 만약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인류가 깊이 패괴되었다는 것을 알더라도 뭘 어찌할 수 있겠느냐? 패괴의 실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구원받을 길이 있겠느냐? 네가 좋게 변하고 싶고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고 싶다고 한들 가능하겠느냐? 너는 행할 길이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식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네가 자식을 위해 살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들 그럴 수 있겠느냐? 금전과 명리를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바쁘게 지내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네가 이러한 것들을 위해 분주히 지내고 싶지 않다고 말해도 그럴 수 있겠느냐? 너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길을 걷고 있고 삶의 방식을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가 없다. 네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지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문제의 근원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사람이 참하나님을 믿지 않고 진리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 사람의 정신적 지주는 무엇이겠느냐? 사람은 정신을 어느 곳에 의지하겠느냐? 단란한 가정, 행복한 혼인, 물질적 향락, 금전, 명리, 지위, 감정, 사업, 그리고 후손의 행복, 이런 일들에 의지한다. 모든 사람의 정신적 지주는 다 이러한 것들 아니겠느냐? 자식이 있는 사람은 자식에게 의지하고 자식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사업과 혼인, 사회적 지위와 명리에 의지한다. 그래서 생겨나는 삶의 방식이 모두 같은 것이다. 모두 사탄의 권력과 통제 아래에서 자기도 모르게 명리를 얻기 위해, 자신의 앞날, 사업, 혼인, 가정, 후손, 육적 향락, 이 모든 것을 얻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바쁘게 지내는 것이다. 이것이 올바른 길이겠느냐? 인류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바쁘게 지내고 사업이 아무리 성공했다 한들, 가정이 아무리 행복하고 가족이 아무리 대가족이라 한들, 지위가 아무리 높다 한들 인생의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겠느냐? 인류가 명리와 세상을 좇고 사업을 추구함으로써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하고 인류 운명을 주재한다는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겠느냐? 이는 불가능하다.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든, 어떤 길을 걷든 만약 그가 하나님이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가 걷는 길은 잘못된 길이고 올바른 길이 아니며 비뚤어진 길이자 사악한 길이다. 너의 정신적 지주가 만족스럽든 그렇지 않든, 너의 정신적 지주가 어디에 있든 그건 모두 진정한 신앙이 아니고 인생의 올바른 길이 아니다. 진정한 신앙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선포한 모든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진리들이 바로 인생의 올바른 길이며 사람이 추구해야 할 진리이자 생명이다. 인생의 올바른 길을 걷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 말씀의 인도하에 진리를 깨닫고, 선악을 분별할 줄 알고, 무엇이 긍정적인 사물이고 무엇이 부정적인 사물인지 알고, 하나님의 주재와 전능을 인식하는 것이다. 사람이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했을 뿐 아니라 우주 만유의 주재자라는 것을 진정으로 깨닫는다면 하나님의 모든 지배와 안배에 순종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다. 그러면 인생의 올바른 길에 들어선 것이다. 사람이 인생의 올바른 길에 들어서면 사람이 왜 살아가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빛 속에서 사는 것이고 비로소 하나님의 인정과 축복을 받을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다.

너희는 지금 왜 살아가고 있느냐? 너희는 알고 있느냐?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맡기신 부탁을 완수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고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려는 것은 너의 주관적인 염원이자 네가 선택한 인생의 길이다. 이는 옳은 것이다. 그러나 깨달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사람이 인간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안배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사람은 다 사명을 가지고 인간 세상에 온 것이지 그냥 온 것이 아니다. 모두 하나님이 주재하고 안배하며 지배한 것으로, 조금도 틀림이 없다. 모든 사람은 인간 세상에 와서 그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하든 다 이 세상에서 하나의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다. 이 역할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그가 이 세상에서 한 가지 임무를 완수하고 어떤 일들을 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결혼하여 아이를 하나 낳으면 이 세 사람은 하나의 완전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이 가정에서 아내는 그녀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살아간다. 즉, 아이와 남편을 잘 보살피고 이 집을 잘 보살피는 것이다. 그럼 아이는 왜 살아가겠느냐? 그는 무슨 역할을 하겠느냐? 그는 한 가정의 후손으로서 이 가정의 대를 이은 것이며 이 가정의 다음 세대에 속한다. 아이가 등장함으로써 이 가정은 완전해졌다. 이는 그가 우선적으로 하는 역할이다. 이 아이는 아들이든 딸이든 자신만의 사명이 있다. 앞으로 그의 운명이 어떨지, 성장한 뒤 어떤 학력과 기술, 특기를 가질지, 어떤 일을 하고 언제 하나님을 믿을지, 하나님을 믿은 후 어떤 본분을 이행할지 이 한 걸음 한 걸음이 하나님이 안배하고 계획해 놓은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한 가정에서 태어난 순간부터 그의 운명 속의 모든 발걸음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미리 안배해 놓은 것이다. 모두 하나님이 미리 안배해 놓은 것이니 이 속에 진리가 있다. 이는 사람이 왜 살아가는지와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네가 음악을 공부하는데 그럴 조건과 가정 환경을 갖추고 있다면 음악을 공부하는 것은 네가 선택한 것이겠느냐? (아닙니다.) 네가 이 환경에서 태어나 환경의 영향을 받아 하나의 특기를 배운 것이다. 네가 이런 사명 하나를 완수한 것은 무엇으로 인한 것이겠느냐? 하나님의 예정으로 인해 완수한 것이지 너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럼 이 일을 완수한 것은 창조주가 지배한 결과가 아니겠느냐? 지금까지 너는 본분을 이행했고 네가 배우고 아는 것을 본분을 이행하는 데 활용했는데 이는 누가 결정한 것이겠느냐?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결정한 것이지 너 스스로 결정한 것이 아니다. 그럼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지금 너는 누구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겠느냐?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실 모든 사람은 다 마찬가지다.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네가 자각하고 있든 자각하지 못하고 있든, 의식이 있든 의식이 없든지 간에 말이다. 사람은 마치 바둑돌과 같다. 하나님이 너를 어디에 두고 네게 무엇을 하도록 하며 네가 어디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도록 하든 그것은 모두 하나님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배라는 방면에서 보면 사람은 사실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위해, 하나님의 경영을 위해 살아가는 것인데 자기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네 능력이 아무리 크고 은사가 아무리 많다 한들 너는 하나님이 너에게 예정한 운명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누구든 살아가며 이 범위를 뛰어넘을 수 없고 창조주가 사람에게 설정하고 안배해 놓은 운명과 일생을 뛰어넘을 수 없다. 이 모든 것을 사람 자신은 사실 전혀 알지 못한다. 사람은 모두 저절로,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의 지배와 주재하에 지금까지 걸어온 것이다. 객관적으로 이 일을 볼 때 사람은 무엇을 인식했느냐? (사람의 삶과 죽음은 스스로에게 결정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재하고 지배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주관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렇게 인식할 수 있다면 성장하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순종하려면 어떤 진리들을 깨달아야 하겠느냐? 네가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든, 너의 자질, 사고 능력, 사상 각 방면이 어떻든 결국 너의 운명, 너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지배 속에 있는 것이다. 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사람이 선택해야 하는 길은 바로 자신의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어떻게 안배했는지, 어떻게 인도했는지, 앞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할 것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의도와 뜻을 깨닫고자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창조주가 주재하고 지배한 운명의 궤적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다투거나 가로채거나 빼앗는 것이 아니고, 창조주의 의도, 하나님이 너에게 안배한 이 모든 것을 연구하고 그에 대항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떳떳하지 않겠느냐? 이로써 ‘사람은 왜 살아가고 왜 죽는 걸까’라는 의혹에서 벗어나고 ‘산 사람은 또 죽은 사람의 역사적 비극을 재연하며 살아간다’라는 고통에서 벗어난다. 사람은 이 한평생 이렇게 살아가는 것에 별로 어려움이 없고 생명의 원천을 찾았다고 느끼며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게 되고 사람이 창조주의 안배에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어 더 이상 반항하지 않는다. 이렇게 살면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의 머리에 기대 상상하거나 자신의 힘에 기대 분투하지 않으며 행복을 쟁취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모두 우매하고 완고한 방법이라는 걸 알고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으며 창조주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할 줄 알게 된다. 이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줄인 것이냐! 너희는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느냐? 자신이 지금 아주 억울하게 재능을 썩히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스스로의 특기와 본분은 하나님이 주고 안배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자신이 아주 억울하고 고작 이 정도의 본분을 이행해 봤자 자신의 포부를 펼치지 못한다고 느끼느냐? 사실 자신의 목표는 꽤 원대한데 지금 본분을 이행하는 이 장소에서는 그 목표를 다 펼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야심과 욕망은 사라졌고 사치스러운 요구도 사라졌으며 버려야 할 것도 버릴 수 있게 됐으니 이제 진리를 깨닫고 패괴 성품을 해결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사람이 걷는 길, 나아가는 방향이 점점 더 명확해지고 ‘사람은 왜 살아가고 또 왜 죽는 걸까?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그분은 도대체 누구일까?’와 같은 질문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어진다. 사람이 추구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오직 창조주 앞으로 돌아와 성실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과 이행해야 할 본분을 제대로 완수해야 한다. 이렇게 살아야만 만족스럽고 떳떳하며 별다른 고통이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삶의 의미이고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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