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0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 (4)

2.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1)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에 관한 그 화제는 일단락을 지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이라는 그 화제도 잠시 일단락을 지었다. 일단락을 지은 후 우리는 총결을 지어야 한다. 어떤 총결을 지어야 할까? 여전히 하나님 자신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 자신에 관한 것인 만큼, 하나님의 여러 방면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믿음법과 필연적인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우선 너희에게 묻겠다. 너희가 이런 말씀(원문: 道)을 들은 후, 너희 마음속의 하나님은 누구냐? (조물주이십니다.) 너희 마음속의 하나님은 조물주이다. 또 다른 것은 없느냐? 만물의 주재자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주재하는 그분이고, 하나님은 만물을 관리하는 그분이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였고, 만유를 관리하는 동시에 또 만유를 주재하고 만유에게 공급을 해 주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위이고, 하나님의 신분이다. 만유에게 있어서, 만물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진실한 신분은 조물주이자, 또한 만물의 주재자이다. 하나님은 그런 신분을 가지고 있는데, 만물 가운데서 유일무이한 것이다. 인류 가운데 있는 것이든, 영계에 있는 것이든, 그 어떤 피조물도, 그 어떤 방식이나 혹은 그 어떤 핑계로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를 모방하거나 대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신분과 그런 능력, 그런 권병을 지니고 만물을 주재할 수 있는 분은 만물 가운데 오직 한 분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분이 곧 우리의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이다. 그분은 만물 가운데서 살고 만물 가운데서 거닌다. 그분은 지극히 높이 올라 만물 위에 계실 수도 있고, 낮추어 사람이 되고 피와 살이 있는 사람 중의 일원이 되어 사람들과 대면하고, 사람들과 동고동락할 수 있다. 동시에 그분은 만유를 주관하고 있고, 만유의 운명을 결정하며, 만유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결정한다. 그분은 더욱더 전 인류의 운명을 인도하고 있고, 전 인류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도 인도하고 있다. 그런 하나뿐인 하나님은 생명이 있는 그 어떤 사람이든 다 마땅히 경배하고 순복해야 할 분이고, 또한 마땅히 알아야 할 분이다. 그러므로 네가 인류 가운데 어느 부분에 속한 사람이든, 인류 가운데 어느 부류의 사람이든,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주재를 받아들이며, 너의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안배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 어떤 사람이든, 생명이 있는 사람이라면 유일하게 선택해야 할 것이고, 또한 필수적으로 선택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유일무이함은 사람에게 그분의 권병, 그분의 공의 성품, 그분의 실질, 만물에게 공급하는 그분의 방식이 다 유일무이하다는 것을 보게 하였다. 하나님의 유일무이함은 하나님 자신의 진실한 신분을 결정하였고, 하나님 자신의 지위도 결정하였다. 그러므로 피조물 가운데서 영계에 있거나 혹은 인류 가운데 있는 그 어떤 생명체라도, 하나님을 대신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고, 하나님을 모방하려고 한다면 그것 역시 불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능력이 있고, 하나님 자신의 지위가 있는 그런 조물주와 주재자가 인류에게 요구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 자리에 있는 각 사람마다 분명히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에게도, 사람에게도 다 아주 중요하다!

(2) 하나님을 대하는 인류의 여러 가지 태도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하는지가 사람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고, 또한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처리하는지도 결정한다. 여기서 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하는 방식들을 열거할 테니, 너희들은 하나님을 대하는 그런 방식과 태도가 올바른지, 틀리는지 들어 보아라. 우리 다음 7가지 부류 사람들의 표현을 보도록 하자.

1. 한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황당하다. 그들은 하나님이 마치 세상의 전설 속에서 전해 들은 보살이나 성자와 같아, 만나면 고개를 세 번 숙이고 식후에는 향을 피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매우 감사할 때, 하나님에게 감사할 때, 항상 그런 충동이 생긴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금 믿고 있는 하나님은, 자신들 마음속에서 동경하는 거룩한 자와 마찬가지로 ‘만나면 고개를 세 번 숙이고, 식후에는 향을 피우는’ 그들의 그런 대우법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얼마나 바라는지 모른다.

2. 한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중생을 제도하고, 중생을 구원할 수 있는 ‘생불’로 여기고, 자신을 고해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생불’로 여긴다. 그 부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부처로 여겨 섬긴다. 비록 향을 피우지 않고 절을 하지 않으며 제물을 바치지는 않지만 그런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그들의 하나님은 바로 그런 ‘부처’이다. 단지 그 사람에게 선을 행하게 만들고, 베풀 수 있게 하며, 살생하지 않고, 남을 욕하지 않게 하며, 겉으로 착실하게 살고,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게 하는 정도이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이다.

3. 한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신이 숭배하는 위인이나 유명인으로 여긴다. 예를 들면, 위인은 어떤 방식으로 말하기 좋아하는지, 어떤 어조로 말을 하는지, 말할 때 어떤 단어를 쓰는지, 어떻게 어휘를 사용하는지, 어떤 말투인지, 어떤 몸짓을 취하는지, 어떤 언행들이 있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그런 것은 전부 다 그가 모방하고 싶어 하는 것이고, 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 과정에서 완벽하게 부각시키려는 것이다.

4. 한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통치자로 여기며, 그분은 지고지상하고 아무도 감히 거스르지 못하는 분이므로, 누군가 어기면 그분의 제재를 받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이 그런 통치자를 숭배하는 것은 그 통치자들이 그들의 마음속에 일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통치자의 사상과 일 처리 하는 방식, 통치자의 그 권세와 본성, 심지어 통치자의 취미와 사생활까지도 그들에게는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되었고, 그들이 관심을 두는 문제와 일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도 통치자로 여겨 숭배하는 것이다. 그것은 매우 황당한 믿음법이다.

5. 한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특별히 믿고 있다. 그리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인식은 너무 얕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도 경력(역주: 체험)이 그다지 많지 않음으로 인해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우상으로 여겨 경배한다. 그 우상이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그의 하나님인 것이다. 즉, 그가 무릎 꿇고 엎드려 절하려는 대상이고, 그가 경외하려는 대상이며, 또한 그가 따르고 모방하려는 대상이다. 그 사람은 하나님을 자신의 우상으로 여기고, 그 우상을 자신이 일생 동안 따르고자 하는 대상으로 여긴다. 그는 하나님이 말씀하는 어조를 모방하고, 겉으로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을 모방하여 매우 유치해 보이는 일들과 매우 단순하고 성실한 것 같이 보이는 일들을 자주 한다. 심지어 그 사람은 그 우상을 자신과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나 친구로 여겨 따른다. 그 사람은 그렇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6. 한 부류의 사람들은 설령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도를 많이 들었을지라도 그들이 하나님을 대하는 유일한 취지는, 비위를 맞추거나 아첨하는 것 혹은 실제에 맞지 않는 자랑과 찬미를 떠나서는 안 되는 것으로 여긴다. 그들은 하나님은 그런 대우법이 필요한 하나님이라고 여긴다. 또한 하나님을 그렇게 대하지 않는다면 수시로 하나님을 거스려 노하게 할 것이고, 수시로 하나님께 득죄할 것이며, 그들의 ‘득죄’로 인해 하나님이 자신들을 처벌할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 마음속의 하나님은 바로 이런 하나님이다.

7. 그리고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정신적 의탁으로 여긴다. 왜냐하면 사람은 이 인간 세상에 살면서 평안과 기쁨이 없고 위로받을 곳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찾은 후,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들은 후, 남몰래 속으로 기뻐하고 다행스러워한다. 왜 그럴까? 그들은 마침내 자신들의 정신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곳을 찾았고, 마침내 자신들의 정신을 의탁할 수 있는 하나님을 찾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하나님을 받아들인 후, 하나님을 따른 후, 그들의 정신은 즐겁기 시작하였고, 생활이 충실해지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더 이상 이방인들처럼 매일 취생몽사하지 않고, 짐승처럼 살지 않으며, 자신의 인생에 희망이 있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런 하나님이 자신들의 정신적 필요를 아주 잘 만족시키고, 자신들의 심령과 정신에 매우 큰 기쁨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여긴다. 부지중에 그들은 자신의 정신을 의탁할 수 있는 하나님, 자신의 정신과 온 가족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그런 하나님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으면, 단지 정신적 의탁만 만족시키면 된다고 여긴다.

각 부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하는 이 모든 태도가 너희 가운데도 존재하느냐? (존재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마음에 이런 태도 중의 어느 한 가지라도 갖고 있다면, 진실로 하나님 앞에 올 수 있을까? 사람이 마음속에 이런 태도 중의 어느 한 가지라도 갖고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일까? 유일무이한 그 하나님 자신을 믿고 있는 것일까? 네가 믿는 분이 유일무이한 그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면 네가 믿는 분은 누구겠느냐? 네가 믿는 분이 유일무이한 그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면, 네가 믿는 것은 아마 우상일 것이고, 아마 위인일 것이며, 아마 보살일 것이고, 네가 섬기는 것은 네 마음속의 그 부처일 것이며, 네가 믿는 것은 더욱이 평범한 사람일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람의 각종 믿음법과 태도로 인해 사람은 자신의 생각 속의 하나님을 자기 마음속에 가져와 자신의 상상을 억지로 하나님에게 가져다 붙이고,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태도와 상상을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과 함께 병렬한 후, 스스로 공양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이런 부당한 태도가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사람이 진실한 하나님 자신을 버리고 거짓 신을 공양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또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동시에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참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계속 이런 믿음법을 지킨다면, 사람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까? 사람이 이런 방법으로 믿는다면, 하나님의 요구와 점점 더 가까워질 수 있겠느냐? 그와 반대로 사람은 자신의 관념과 상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도와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추구하는 방향이 하나님이 요구하는 방향과 반대되기 때문이다. 너희는 ‘남원북철(南轅北轍)’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느냐? 그렇게 간다면 아마 남원북철 할 가능성이 있다. 사람이 그렇게 황당하게 하나님을 믿으면, 힘을 들일수록 하나님과 더욱 멀리 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경계(警戒)를 주겠다. 너희가 힘을 쓰기 전에 반드시 먼저 방향의 옳고 그름을 확실히 파악하고, 힘을 함부로 쓰지 말고 꼭 자신에게 ‘내가 믿는 하나님은 만물의 주재자이실까? 내가 믿는 하나님은 단지 나의 정신적 의탁일까? 그럼 그분이 나의 우상은 아닐까? 내가 믿는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행한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칭찬하실까? 내가 행한 이 모든 것과 내가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는 것일까? 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 따르고 있는 것일까? 내가 걸어온 길이 하나님께서 인정하고 칭찬하시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나의 이런 믿음에 흡족해하실까?’라고 물어봐야 한다. 너는 항상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고 자신에게 반복적으로 물어봐야 한다. 하나님 알기를 추구함에 있어서 반드시 분명한 의식과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만 하나님을 흡족케 할 수 있다.

위에서 내가 말한 하나님에 대한 그런 부당한 태도들에 대해, 하나님은 자신의 관용으로 말미암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겠느냐? 하나님은 그 사람들의 태도를 칭찬하겠느냐?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에 대한 요구는 도대체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은 사람에게 어떤 태도가 있기를 원하는지, 그것을 분명히 알고 있느냐? 지금 이렇게 많은 말을 하고, 하나님 자신에 관한 화제를 가지고 많은 얘기를 하고, 하나님의 행사와 하나님의 소유소시에 관해서도 많이 말했는데, 지금에 이르러 너희는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알고 있느냐? 하나님이 너에게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너희가 태도를 표시할 차례이다. 너희가 경력하고 실행하는 방면의 인식이 아직도 적거나 매우 얕다면 너희는 이런 말씀에 대해 인식한 것을 말해도 된다. 너희는 종합적인 인식이 있느냐? 하나님은 사람에게서 도대체 무엇을 요구하느냐? (충성과 순복입니다.) 충성과 순복을 제외하고 또 무엇이 있느냐? 다른 형제자매들도 말해 보아라. (하나님께서 여러 번 교통해 주신 가운데서 특별히 저희에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행사를 인식하고,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라고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지위와 신분을 알고 피조물로서 저희에게 있어야 할 본분을 인식하게 하는 것입니다. 저희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은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좋아하시고 어떤 사람을 증오하시는지, 그분께 명확한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라고 요구하는데, 나중에 도달하는 효과는 무엇이냐? (사람에게 하나님은 조물주이시고 사람은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그런 인식이 있게 해 주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태도나 사람의 행위, 그리고 행위의 방식이나 사람의 생명 성정에는 어떤 변화가 있겠느냐? 너희는 이런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사람이 하나님을 인식하고 알게 된 후에는, 착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느냐? (하나님을 믿는 것은 착한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 (합격된 피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 다른 것이 있느냐? (하나님의 지배에 맡기는 사람, 진정으로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양심과 이지(理智)를 갖추고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해야 합니다.) 또 있느냐? (진실하고 정확하게 하나님을 알게 된 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할 수 있고, 영원히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하나님께 경배하는 피조물임을 알고 자신의 위치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아주 좋다! 다른 사람들도 더 말해 보아라. (하나님의 교통을 통해` 만물을 주재하시는 하나님의 권병을 인식할 수 있었고, 그분이 만물의 주재자이심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매일 배치하신 환경에 순복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본분에서 진실한 순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고, 마지막에는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인식하는 것이 맞다!

(3) 하나님이 인류에게 요구한, 하나님을 향해 마땅히 갖춰야 할 태도

사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높지 않다. 최소한 사람이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높지 않다. 만약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고, 하나님의 그 어떤 성품도 발표하지 않고, 하나님의 그 어떤 행사도 발표하지 않고, 어떤 말씀도 발표하지 않는다면, 너희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야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는 그런 것은 다 사람에게 있어서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이 단계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은 많은 말씀을 하였고, 많은 사역도 했으며, 사람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이 행한 많은 사역에서 사람에게 하나님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증오하는지, 하나님은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 되라고 하는지를 알게 하였다. 사람이 그런 것을 알게 된 후,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요구에 대해 정확한 규정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막연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더 이상 막연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며, 막연한 가운데서, 허무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도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요구 기준도 알아들을 수 있고 닿을 수 있으며, 하나님은 사람이 알아야 하고 깨달아야 할 모든 일을 인류의 언어로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모르고,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며, 왜 하나님을 믿는지도 모르고,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대해야 하는지도 모른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다. 방금 너희 각 사람은 다 한 방면씩 말했다. 너희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데, 구체적이거나 혹은 대략적으로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너희에게 인류에 대한 정확하고 전면적이고 구체적인 하나님의 요구를 알려 주고 싶다. 몇 마디밖에 안 된다. 매우 간단하다. 그런 말들을 너희들은 아마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에 대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에 대해 정확한 요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에게 그에 대한 참된 믿음, 충실한 따름, 절대적인 순복, 진실한 인식과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경외가 있기를 요구한다. 바로 이 5가지이다.

이 5가지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더 이상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고, 더 이상 상상과 막연한 관점으로 하나님을 따르지 말며, 그 어떤 상상과 관념을 품고 하나님을 따르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을 따르는 각 사람에게 하나님을 충실하게 따라야지 우유부단하지 말고 양다리를 걸치지 말라고 요구한다. 하나님이 너에게 그 어떤 요구가 있을 때, 하나님이 너를 시련할 때, 너를 심판할 때, 너를 책망하고 훈계할 때, 너를 징계하고 때릴 때, 너는 하나님을 향해 마땅히 절대적인 순복이 있어야 한다. 이유를 묻지 말고, 조건을 따지지도 말며, 더욱이 원인을 말하지도 말고, 반드시 절대적으로 순복해야 한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방면에 관한 것은 각 사람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다. 사람들은 늘 하나님과 무관한 말들과 논조, 해석들을 하나님에게 억지로 가져다 붙인다. 그들은 그런 말들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가장 정확한 정의라고 여기는데, 사람의 상상과 추리에서, 지식에서 얻어 온 논법들은 다 하나님의 실질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임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알려 주고 싶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의 인식은 단지 네가 하나님을 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아볼 수 있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너에게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설령 네가 한 마디밖에 말할 줄 모르고 조금밖에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조금밖에 안 되는 인식이 정확하고 진실하며 하나님 자신의 실질과 부합되는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실제에 맞지 않게 아무렇게나 찬미하고 칭찬하는 것을 혐오하고, 사람이 하나님을 공기처럼 대하는 것을 더욱 혐오하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과 관련된 화제를 나눌 때, 제멋대로 함부로 지껄이고, 거침없이 아무렇게나 말하고 논의하는 것을 혐오하기 때문이고, 자신은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여기면서 하나님을 아는 일에서 방담을 늘어놓고, 하나님과 관련된 화제를 자제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토론하는 그런 사람들을 더욱 혐오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한 가지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경외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따르는 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요구이다. 한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정확하고 진실하게 인식할 때면, 그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다. 그 경외는 그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또한 그 경외는 그 사람이 달게 원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요구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께 어떠한 좋은 태도, 어떠한 좋은 표현, 어떠한 겉면의 좋은 행위를 베푸는 것이 필요 없고,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두려움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 경외는 너의 생명 성정의 변화로 인해, 하나님에 대한 너의 인식으로 인해, 네가 하나님의 행사와 하나님의 실질을 알게 된 것으로 인해, 네가 자신이 피조물 가운데 일원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이러한 사실로 인해 도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여기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경외를 정의한 그 목적은, 인류에게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 너희는 이 5가지 요구를 보아라, 너희 가운데 그중 앞의 3가지에 도달한 사람이 있느냐? 너희 가운데 참된 믿음, 충실한 따름, 절대적인 순복에 도달한 사람이 있느냐? 만약 5가지 범위로 말하면, 너희 가운데는 확실히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이것을 3가지 범위로 줄여 줄 테니, 너희는 자신이 도달했는지 가늠해 보아라. ‘참된 믿음’, 이 요구에 너희는 쉽게 도달할 수 있느냐? (쉽지 않습니다.) 이것도 도달하기 쉽지 않다. 그것은 사람이 늘 하나님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충실한 따름’은 쉽게 도달할 수 있느냐? (쉽지 않습니다.) ‘충실’이란 무엇을 가리키느냐? (두 마음이 없고 한마음 한 뜻입니다.) 바로 두 마음이 없고 한마음 한 뜻이다. 그 말을 참 잘했다! 그럼 너희는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느냐? 노력해야 한다. 아직은 도달하지 못했다! 그럼 ‘절대적인 순복’은 도달했느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역시 도달하지 못했다. 항상 불순복하고, 항상 거역하며, 항상 말을 듣지 않고, 순복하려고 하지도 않으며,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 3가지는 사람 생명이 진입한 후 도달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너희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그럼 지금 너희의 잠재력은 매우 크지 않으냐? 너희는 지금 내가 한 이 말을 들으니 조급하지 않으냐? (조급합니다!) 조급하면 맞는 것이다. 나도 너희 때문에 조급하다! 남은 두 가지 요구는 말하지 않겠다. 틀림없이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너희가 조급해하는데, 그럼 확정된 목표가 있느냐? 마땅히 어떤 목표와 방향을 향해 추구하고 노력해야 하느냐? 목표가 있느냐? (있습니다.) 어떤 목표이냐? 말해 보아라.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여 마지막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복하기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사실대로 알려 주겠다. 너희가 언제 이 5가지에 도달하면 하나님은 만족해한다! 한 가지마다 하나의 목표인데, 사람의 생명 진입이 성숙하게 되는 데의 목표이고 또한 최종 목표이다. 그중의 어느 한 가지를 따로 빼 자세하게 말하면서 너희에게 요구한다면 다 도달하기 쉽지 않다. 사람은 모두 고난을 받아야 하고 공을 들여야 한다! 너희는 모두 어떤 마음 상태를 가져야 할까? 다 수술대에 오르는 암 환자의 마음 상태를 가져야 한다. 왜 이렇게 말할까? 네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얻고, 하나님을 흡족케 하려면 고난을 받지 않고, 공을 들이지 않으면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너희는 그렇게 많은 도를 들었지만, 들었다고 해서 그 도가 너의 것임을 뜻하지는 않는다. 너는 그 도를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네 개인의 생명 가운데로 가져가고 네 개인의 삶 가운데로 가져가서, 이런 말들과 이런 도가 너의 생존 방향을 가리킬 수 있게 하고, 너의 생명에 생존의 가치를 가져오고 삶의 의의를 가져오게 해야 한다. 그러면 너는 이런 말들을 들은 보람이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했던 이런 말들이 너의 삶에 어떠한 전환점도 가져다주지 못하고, 너의 생명에 존재의 가치도 가져다주지 못한다면, 너는 이런 말들을 헛들은 것이 된다. 너희는 깨달았겠지? 깨달은 후, 나머지 일은 너희 자신의 일이다. 너희는 공을 들여야 한다! 어떤 일이든 다 참답게 대해야 한다! 시간은 정말 빨리 흘러가기 때문에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사실, 너희 가운데의 많은 사람들은 믿은 지 이미 10년이 넘었다. 그럼 너희가 회상해 보아라, 그 10여 년간 믿어 온 가운데서, 너희가 얻은 것이 얼마나 되느냐? 사람의 이 일생에 10년이란 시간이 몇 번이나 있느냐? 시간은 길지 않다. 절대로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너를 기다리고 있고, 너에게 기회를 준다고 말하지 말라. 하나님은 절대로 되돌아와서 똑같은 사역을 하지 않는다. 너는 자신의 지나간 그 10년을 다시 거꾸로 되돌릴 수 있느냐? 매 하루를 보내고 네가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남은 시간은 하루하루 줄어들고 적어진다. 그렇지 않으냐?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이 일을 일생의 대사로 여겨야 한다. 네가 먹고 입는 것보다, 너의 일생 가운데 있는 그 어느 한 가지보다 더 중요하게 대한다면, 너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네가 계속 여가 시간에만 믿고, 전심으로 믿지 못하고 항상 그럭저럭 지내면서 소홀히 한다면, 너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너희는 알았겠지? 오늘은 여기까지 교통하도록 하자! 짜이찌엔(再見)! (하나님, 감사합니다!)

2014년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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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

②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모든 진리를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