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

목차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9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 (3)

그동안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화제를 가지고 많이 이야기했다. 최근에 우리는 또 하나님을 알아가는 아주 중요한 화제를 하나 교통했는데, 그 화제는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다’이다. 지난번에는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창조한 생존 환경에 관한 몇 가지 내용과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예비한, 생활에 필요한 각양각색의 양식에 관해 교통했다. 사실, 하나님이 행한 것은 사람을 위해 생존 환경만 예비한 것이 아니고, 일용할 양식만 예비한 것도 아니라, 사람의 생존을 위해, 인류의 생활을 위해, 아주 많고 기묘하고 필수적인 각 방면의 사역을 했다. 그런 사역은 다 하나님의 행사이다. 하나님의 그런 행사는 사람을 위해 생존 환경과 일용할 양식을 예비한 것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범위는 더 넓다. 즉, 하나님이 그 두 가지 사역을 한 것 외에, 또 사람의 생존에 반드시 있어야 할 많은 환경과 생존 조건을 예비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 교통할 또 다른 화제이다. 이 화제도 다 하나님의 행사와 관련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여기에서 말할 의의가 없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이란 이 글자와 단어, 혹은 하나님의 각 방면 *소유소시에 대해 글자 그대로 도리적으로만 인식한다면, 그것은 참된 인식이 아니다. 그럼 하나님을 알아가는 경로는 어떤 것일까? 하나님의 행사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의 각 방면을 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할 때에 있었던 행사에 대해 교통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만물을 만든 후, 만물은 하나님이 정한 법칙에 따라 운행되고 있고, 규칙 있게 앞을 향해 발전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의 눈 아래에서, 하나님의 주재 아래에서, 사람의 생존과 함께 규칙적으로 앞을 향해 발전하고 있는데, 그 어떤 것도 그 법칙을 바꿀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그 법칙을 파괴할 수 없다. 만물이 번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주재로 인한 것이고, 만물이 생존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주재와 하나님의 관리로 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은 하나님의 주재하에서 규칙적으로 생겨나고 사라지고 윤회하기까지 한다고 하는 것이다. 봄이 올 때면, 끝없이 내리는 보슬비가 봄 기운을 가져오고 대지를 촉촉하게 적셔 주어 토양이 녹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작은 떡잎이 흙을 비집고 나와 싹이 트기 시작하고, 나무도 점차 푸르게 변해 간다. 그 모든 생물들은 대지에 새로운 생기를 가져다주는데, 그것이 만물이 생겨나고 발전하는 광경이다. 각종 동물들도 굴에서 나와 봄날의 따스함을 느끼며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 여름이 되면, 만물은 무더위를 즐기고 있고, 또한 여름철이 가져다준 따스함도 즐기고 있다. 만물은 신속히 자란다. 나무와 풀, 각종 식물들은 다 신속히 자라면서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는다. 인류를 포함하여 만물도 여름철을 분주히 보내고 있다. 가을이 되면, 가랑비가 가을철의 상쾌함을 가져다주고, 각종 생물들은 추수의 계절을 느끼기 시작하며, 만물도 결실을 맺어 열매가 있게 된다. 인류 또한 가을철에 맺는 만물의 그 주렁주렁한 열매를 수확하여 겨울을 위해 먹을 것을 예비한다. 겨울철, 만물은 추위 속에서 점차 휴식에 들어가고 조용해지기 시작하며, 사람들도 겨울철에는 한가해진다. 이렇게 춘하추동이 교체되고 바뀌는 것은 모두 하나님이 정해 놓은 법칙에 따라 운행되고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법칙으로 만물을 이끌고 또 인류를 인도하며, 인류에게 풍부하고 다채로운 생활 방식을 제정해 주었고, 인류를 위해 각기 다른 온도와 서로 다른 계절의 생존 환경을 예비해 주었다. 그리하여 규칙적인 그런 생존 환경하에서 인류도 규칙적으로 생존하고 번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 법칙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또한 그 법칙을 깨뜨릴 수 있는 일인일물(一人一物)도 없다. 벽해상전이든 아니면 상전벽해이든 그 법칙은 계속 존재하고 있는데, 그것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로 말미암은 것이고, 또한 하나님의 주재와 관리로 말미암은 것이다. 법칙이 있는 이런 큰 환경이 있기에, 인류의 생활도 그런 법칙과 규칙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런 법칙은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들을 양육하였고,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들을 그런 법칙 속에서 생존하도록 하였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들을 위해 창조한 만물과 법칙이 있는 그런 생존 환경을 누리고 있다. 설령 사람이 그런 법칙은 원래부터 있는 것이라고 여길지라도, 설령 사람이 그런 법칙을 거들떠보지 않을지라도, 설령 사람이 그런 법칙은 하나님이 지배하고 하나님이 주재하고 있음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지라도, 어쨌든 하나님은 계속 그런 불변의 사역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런 불변의 사역을 하는 목적은 인류의 생존을 위한 것이고, 인류가 지속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1. 하나님은 만물의 경계를 정해 전 인류를 양육하고 있다

나는 오늘 ‘하나님이 인류와 만물에게 이런 법칙을 정해 주어 전 인류를 어떻게 양육하고 있는지’에 관한 화제를 가지고 말하겠다. 화제가 무엇이라고 했지? ‘하나님이 만물에게 이런 법칙을 정해 어떻게 전 인류를 양육하고 있는가’이다. 이 화제는 좀 크다. 그래서 너희가 인식하기 쉽도록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하나하나 이야기하면서 뚜렷한 윤곽을 주도록 하겠다. 그러면 너희는 점차 깨닫게 될 것이다.

첫 번째,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할 때 산천, 평원, 사막, 구릉, 강과 호수에 경계를 나누었다. 지구상에는 산천, 평원, 사막, 구릉이 있고, 또한 각종 수원(水源)도 있다. 그런 것들은 다 어떤 것들이냐? 각종 지리 형세가 아니냐? 하나님은 그런 여러 가지 지리 형세에 경계를 분명하게 그어 놓았다. 경계를 분명하게 그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산은 산의 경계가 있고, 평원은 평원의 경계가 있으며, 사막은 사막의 범위가 있고, 구릉은 구릉의 고정된 면적이 있으며, 강과 호수, 이런 수원도 다 고정된 양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만물을 만들 때, 그것들을 아주 분명하게 나누어 놓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느 산의 둘레가 몇 백km이고 그 산의 범위가 얼마나 되는지 이미 정해 놓았고, 어느 평원의 둘레는 몇 백km가 되는지, 그 범위도 정해 놓았으며, 사막의 범위도 만물을 만들 때 정해 놓았다. 또한 구릉의 범위와 그것의 면적, 그리고 그것이 무엇과 인접하는지도 하나님은 모두 정해 놓았고, 강과 호수의 범위도 하나님은 그것들을 만들 때 다 정해 놓았는데, 모두 경계가 있다. 그 ‘경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방금 우리는 하나님이 만물에게 법칙을 제정해 만물을 주재한다고 말했다. 즉, 산천의 경계가 어디까지이면, 그것은 지구의 회전에 따라, 또한 연대가 오래됨에 따라 자신의 면적을 줄이거나 확장할 리가 없다는 것인데, 그것은 고정된 것이다. 그 ‘고정’된 것은 하나님이 주재하고 있다. 하나님이 평원의 면적, 평원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그것이 무엇과 인접하는지에 대해서도 이미 고정해 두었다. 평원에는 경계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 갑자기 작은 언덕 하나도 제멋대로 생기지 않을 것이고, 평원이 갑자기 또 산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방금 말한 법칙은 바로 이런 것들을 가리키고, 경계도 이런 것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사막에 대해 그것의 경계만 말하고 여기에서 사막이나 그 어떤 지리 형세, 지리 위치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언급하지 않겠다. 사막도 하나님의 주재하에서 마음대로 확장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것에게 법칙과 범위를 주었는데, 그것의 면적이 얼마이고, 역할이 무엇이고, 무엇과 인접하고,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를 이미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막은 자신의 범위를 초월할 수 없고, 자신의 위치를 옮길 수 없으며, 또한 제멋대로 자신의 면적을 넓힐 수도 없다. 강과 호수, 이런 물(원문: 水域)은 비록 모두 질서 있게 흐르고 있고, 또한 끊임없이 흐르고 있지만, 지금까지 자신들의 범위와 경계를 벗어난 적이 없고, 또한 규칙 있게 한 방향을 따라, 자신들이 가야 할 방향을 따라 흘러가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재하는 법칙 속에서 그 어떤 강과 호수도 지구의 회전으로 인해, 또한 연대가 오래됨으로 인해 제멋대로 마르지 않고, 또한 흐르는 방향도 제멋대로 바꾸지 않으며, 물의 유동량도 제멋대로 바꾸지 않는다. 그것은 다 하나님이 장악하고 있고, 주재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이 인류 가운데 만들어 놓은 만물은 다 정해진 방향과 위치가 있고, 정해진 면적과 범위가 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만물을 만들 때, 이미 그것들의 경계를 세워 두었으므로 그 모든 것들은 다 제멋대로 바뀌고 갱신되거나 변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제멋대로’란 무엇을 가리킬까? 그것들은 날씨와 온도로 인해, 또 지구의 회전 속도로 인해 함부로 옮기지도, 확장하지도 못하고, 임의로 자신들의 원래 모양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산의 높이가 얼마이고, 산기슭의 면적이 얼마이며, 해발이 얼마이고, 그 산의 식생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하나님에게는 모두 계획이 있고 계산된 것이기 때문에, 그 산은 마음대로 높이를 바꾸거나 면적을 바꾸지 못한다. 평원을 놓고 말하면, 인류는 대부분이 평원에서 살고 있다. 그 어떤 기후의 변천도 평원의 면적에 영향을 주거나 평원의 존재 가치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심지어 하나님이 만든 그런 각종 지형이나 여러 가지 지리 환경도 마음대로 자신들이 갖고 있는 것을 바꾸지 못한다. 사막을 예로 들면, 사막의 성분은 무엇인지, 사막 밑에는 모두 어떤 지하자원이 함유되어 있는지, 사막의 모래 함량은 얼마나 되는지, 사막의 모래 색상은 어떠한지, 사막의 두께는 얼마인지, 그런 것은 다 마음대로 바꾸지 못한다. 왜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는 것이겠느냐? 그것은 하나님이 주재하고 있고, 또한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서로 다르게 만든 모든 지형과 지리 환경에서도 하나님은 계획 있게, 규칙 있게 그 모든 것을 관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지리 환경은 하나님이 창조한 지 몇천 년, 몇만 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여전히 각자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설령 어느 시기에 화산이 분출하고, 어느 시기에 지진이 일어나 땅이 크게 움직이더라도, 하나님은 절대로 그 어떤 지리 형세도 그 고유의 기능을 잃어버리게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렇게 관리하고 있고 그런 법칙을 주재하고 장악하고 있기에, 이 모든 것, 즉 사람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과 사람이 보고 있는 모든 것들은 규칙 있게 지구상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은 왜 그런 방식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각종 지리 형세를 모두 관리할까? 그 목적은 각종 지리 환경에서 생존하는 생물들에게 안정된 환경이 있게 하고, 그런 안정된 환경에서 번식하고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움직일 수 있거나 움직일 수 없는 모든 만물, 즉 콧구멍으로 숨을 쉴 수 있거나 그럴 수 없는 만물이 인류의 생존을 위해 특유한 환경을 구성하였는데, 그런 환경만이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들을 양육할 수 있고,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들을 평안히 생존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방금 내가 말해 준 이런 것에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다시 말해,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그 법칙은 아주아주 중요한 것이다! 만물이 그런 법칙에서 생장할 수 있는 전제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주재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주재로 인해 만물은 모두 하나님의 주재 가운데서 자신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산천을 예로 들어보자. 산천은 삼림을 양육하고 있고, 삼림은 또 어떠하느냐? 그 속에 있는 각종 날짐승과 길짐승들을 양육하고 보호해 주고 있다. 평원은 어떠하느냐? 인류의 경작을 위해, 각종 날짐승과 길짐승을 위해 예비한 장소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을 다 평탄한 땅에서 살 수 있게 하여 생활에 편리함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평원에는 또 넓은 초원도 포함되어 있다. 초원은 지구의 식생인데, 그것은 토지를 보호해 주고 있고, 또한 초원에서 성장하는 소와 양, 그리고 말들도 기르고 있다. 사막도 자신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데, 사막은 사람에게 거주하라고 있는 곳이 아니다. 사막의 기능은 습한 기후를 건조해지게 하는 것이다. 여러 호수와 강이 흐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편리하게 식수를 얻을 수 있게 되었고, 물이 필요한 만물에게도 편리를 가져다주었는데, 그것이 어디로 흘러가면 그곳의 사람들에게는 마실 물이 있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이 여러 가지 지리 형세를 나누어 놓은 경계이다. 하나님이 나눈 그런 경계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지리 형세에도 각기 다른 생존 환경이 생기게 되었다. 그런 생존 환경은 각종 날짐승과 길짐승들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주었고, 생존 공간도 가져다주었다. 그리하여 각종 생물이 생존하는 환경에 경계가 생기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다음으로 얘기할 내용이다.

두 번째, 각종 날짐승과 길짐승 그리고 곤충은 어떤 환경에서 사느냐? 하나님은 각종 지리 환경에 경계를 정한 것 외에 또 각종 날짐승과 길짐승, 어류, 곤충 및 각종 식물에 대해 경계를 나누고 규칙도 정하였다. 여러 가지 지리 환경이 다름으로 인해,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지리 환경의 존재로 인해, 각종 날짐승과 길짐승, 어류, 곤충 및 각종 식물에게도 각기 다른 생존 환경이 생겼다. 날짐승과 길짐승, 곤충들은 각종 식물들 가운데서 생활하고, 각종 어류는 물속에서 살아가고, 각종 식물은 땅에서 자라고 있다. 그 땅은 어떤 것들을 포함하고 있느냐? 큰 산이나 평원 혹은 구릉 등의 각종 지대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하여 날짐승과 길짐승들은 자신들의 정해진 서식지가 있게 되어 제멋대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지 않게 되었는데, 그것들의 서식지는 숲이고, 큰 산이다. 만일 어느 날, 그것들의 서식지가 파괴되면 그 질서는 혼란해진다. 질서가 혼란해진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겠느냐? 무엇이 가장 먼저 피해를 입겠느냐? (인류입니다.) 인류가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다! 너희는 하나님이 제정한 그런 법칙과 범위에서 일부 기이하고 특이한 현상들을 본 적이 있느냐? 예를 들면, 코끼리가 사막에서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정말로 있다면 그것은 아주 기이한 현상이다. 왜냐하면 코끼리의 생활 환경은 숲 속이기 때문이다. 그 숲은 하나님이 코끼리에게 예비해 준 생활 환경이고, 생존 환경이다. 코끼리에게는 자신의 생존 환경이 있고, 자신의 정해진 집이 있는데, 제멋대로 여기저기 옮겨 다닐 수 있겠느냐? 사자나 호랑이가 바닷가에서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것을 본 사람이 있느냐? 사자나 호랑이의 서식지는 숲 속이고, 큰 산속이다. 바닷속의 고래나 상어가 사막에서 제멋대로 다니는 것을 본 사람이 있느냐? 고래와 상어의 집은 바닷속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육지에서 살 수 없다. 사람의 생활 환경에서 큰 불곰과 함께 사는 사람이 있느냐? 집 안이나 집 밖에 항상 공작새나 각종 조류들이 둘러싸고 있는 집이 있느냐? 삼림 속에서 소나 양을 본 적이 있느냐? 독수리나 기러기가 원숭이와 함께 장난치는 것을 본 사람이 있느냐? 정말 있다면 그런 것은 모두 특이한 현상이다. 내가 너희들이 보기에 특이하다고 여기는 그런 현상들을 말하는 까닭은, 너희에게 하나님이 만든 만물은 움직일 수 없는 것이든, 콧구멍으로 숨을 쉬는 것이든, 아니면 걸어 다니는 것이든, 다 그것들의 생존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생물들을 만들기 전에 일찍이 그것들을 위해 각자의 서식지와 생존 환경을 예비해 놓았다. 그런 생물들은 자신만의 정해진 생존 환경이 있고, 자신만의 먹이가 있고, 자신만의 정해진 서식지가 있고, 그것들이 생존하기에 적합한 생존 장소나 적합한 온도가 있는 자신들만의 정해진 곳이 있으면, 그것들은 제멋대로 다른 곳에 가지 않을 것이고, 인류의 생존을 파괴하거나 인류의 생활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만물을 관리하면서 사람에게 가장 좋은 생존 환경을 제공해 준다. 만물 가운데 있는 그런 생물들은 각자의 생존 환경에서 모두 자기의 생명을 유지할 먹이가 있는데, 그런 먹이가 있기 때문에 고유의 생존 환경에 정해져 있고, 그런 생존 환경에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그런 생존 환경에서 여전히 하나님이 제정해 준 법칙에 따라 생존하고 번식하고 이어가고 있다. 그런 법칙이 있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명정(역주: 명하여 정함)으로 인해, 만물은 인류와 화목하게 지내고, 인류도 만물과 서로 의존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만들고, 만물의 경계를 정하고, 만물 속에서 각종 생물들을 양육하고 있다. 만물이 각종 생물들을 양육하고 있는 동시에, 하나님도 인류를 위해 여러 가지 다른 생존 방식을 예비하고 있다. 그러므로 네가 본 인류의 생존 방식은 한 가지만이 아니고, 생존 환경도 한 가지만이 아니다.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예비한 각종 먹거리와 수원(水源)에 대해 말했다. 그런 먹거리와 수원은 사람의 육체 생명이 지속되도록 유지하는 데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인류 중 모든 사람이 다 잡곡을 먹으며 생계를 이어 가는 것은 아니다. 각종 지리 환경이 서로 다름으로 인해, 각종 지리 형세가 서로 다름으로 인해, 인류에게도 서로 다른 생존 방식이 있게 되었는데, 그런 생존 방식은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예비한 것이다. 그러기에 모든 인류가 다 경작을 위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사람이 다 농작하여 먹거리를 얻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얘기할 세 번째 내용이다. 즉, 인류는 서로 다른 생활 방식으로 인해 경계가 생긴 것이다. 그럼 인류의 서로 다른 생활 방식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인류의 서로 다른 먹거리의 근원은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부류는 바로 사냥을 생업으로 하는 것이다. 사냥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너희 중에 사냥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느냐? 너희는 모두 현대인이어서 어떻게 사냥을 하는지도 모르고, 또한 어떻게 총을 잡는지도 모른다. 너희는 모두 땅에서 생산되어 나오는 양식을 먹거리의 근원으로 한다. 사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엇을 먹느냐? (야생동물 요리입니다.) 먹는 것은 삼림 속의 날짐승과 길짐승이다. 그 ‘야생동물 요리’는 현대어이다. 사냥꾼들은 그것을 야생동물 요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먹거리로 여기고, 일용할 양식으로 여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사슴 한 마리를 사냥하고는 기뻐서 “좋았어, 이 사슴 한 마리면 온 식구가 며칠 먹기에 충분해.”라고 말한다. 그 사람이 사슴을 잡았을 때는 농민이 땅에서 식량을 얻은 것과 같다. 농민은 땅에서 식량을 얻는데, 식량을 보면 기쁘고 마음이 든든하여 “이제는 먹을 것이 있어서 굶을 걱정은 없네”라고 한다. 먹을 식량이 있어 온 가족이 배를 곯지 않아도 되기에 마음이 든든해지고 만족감을 느낀다. 사냥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포획물을 보고는 마음이 든든해지고 만족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끼니를 근심할 필요가 없고, 먹을 것이 있어 다음 끼니에 배를 곯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냥으로 사는 사람이다. 사냥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늘 어떤 환경에서 사느냐? 깊은 산속에서 산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지 않고, 농작물도 심지 않고, 숲 속에서 산다. 숲 속에서 경작지를 얻을 수 있느냐? 경작지를 얻기 쉽지 않다. 그러므로 그들은 각종 생물과 각종 사냥물로 생계를 이어 가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인들과 다른 일종의 생활 방식이다.

두 번째 부류는 방목을 생업으로 하는 것이다. 방목하며 사는 사람들은 농사를 짓지 않는다. 그럼, 무엇을 하느냐? 방목만 하느냐? 너희 중에 누가 몽골족이냐? 너희들의 유목 생활을 말해 보아라. (주로 소나 양을 방목하고, 농사짓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소나 양을 잡아먹는데, 소고기나 양고기를 주식으로 하고, 밀크 티를 마시고, 볶은 쌀을 먹고, 야채는 아주 적게 먹습니다. 지금은 각 방면으로 교통이 다 편리해져 각종 야채나 주식도 있습니다. 몽골인은 밀크 티를 마시고, 티베트인은 수유차를 마십니다. 유목민은 1년 사계절 매우 분주하게 보내지만 그래도 잘 먹습니다. 유제품과 우유 식품, 육류 식품이 부족하지는 않습니다. 이전에는 천막집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다 집을 짓고 삽니다.) 몽골인은 주로 소고기나 양고기를 먹고, 우유를 마시고 말을 타고 방목하러 다닌다. 그것이 바로 유목민의 생활 방식이다. 그런 방목 생활은 좋다. 소나 말을 타고 들에서 바람을 쐬고 햇볕을 쬐며 현대인들의 삶의 스트레스도 없다. 매일 보는 것은 아주 넓은 푸른 하늘과 초원이다. 방목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은 초원에서 생활하면서 조상 대대로 자신들의 유목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비록 초원에서 살면 조금 외롭기는 하지만 그런 생활도 아주 행복한 것이다. 그런 생활 방식도 괜찮다!

세 번째 부류는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하는 것이다. 즉, 인류 중에 소수의 사람들은 해변가나 작은 섬에서 살고 있는데, 사면이 물에 둘러싸여 있고 바다를 마주하고 있다. 그 사람들은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한다. 고기잡이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존하는 먹거리는 무엇이냐? 그들의 먹거리는 어디에서 오느냐? 각종 어류, 해산물, 해물 요리이다. 예전에 홍콩이 작은 어촌이었을 때, 거기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은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했었다. 그들은 농사를 짓지 않고, 날마다 고기잡이를 했다. 그들의 주식은 바로 각종 어류, 생선과 해산물인데, 간혹 어류로 쌀이나 밀가루, 생필품들을 바꾸기도 했었다. 고기잡이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해변가에서 살고, 또 어떤 사람들은 배 위에서 산다. 그런 것이 물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생활 방식이다. 물가에 살면서 고기잡이로 살아가며, 고기잡이를 생활의 근원으로 하고 또한 먹거리의 근원으로 한다.

인류는 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것 외에 주로 위의 세 가지 각기 다른 생활 방식이 있다. 방목을 생업으로 하고,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하며, 사냥을 생업으로 하는 몇 가지 부류의 사람 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땅을 경작하여 생계를 이어 간다. 땅을 경작하여 생계를 이어 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 필요한 것은 땅이다. 땅을 경작해 생계를 이어 가는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농사짓는 것을 위주로 하는데, 땅에서 먹거리를 얻는다. 야채를 심든, 과일나무를 심든, 잡곡을 심든, 땅에서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얻는 것이다.

인류가 각기 다른 이런 생활 방식들을 갖추려면 기본적으로 어떤 조건이 있어야 할까? 반드시 각종 생존 환경이 기본적으로 유지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즉, 사냥꾼이 숲을 잃고 날짐승과 길짐승을 잃게 된다면, 그의 생활 밑천이 없어지는 것이다. 사냥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에게 숲이 없어지고, 날짐승과 길짐승이 없어지면, 생활 밑천이 없어진다. 그럼 그런 민족과 그런 인류는 어디로 나아가겠느냐? 계속 생존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심지어 사라질 수도 있다. 그리고 방목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의존하는 것은 초원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의존하는 것은 소와 양이 아니라 소와 양의 생존 환경인 초원이다. 초원이 없다면 그들이 소와 양을 어디서 방목하겠느냐? 소와 양은 뭘 먹겠느냐? 소와 양이 없어지면 유목 민족의 생활 밑천은 무엇이겠느냐? 다 없어진다. 생활 밑천이 없는 그런 민족은 어디로 가게 되겠느냐? 생존하기가 매우 힘들고, 미래가 없다! 만일 수원이 없고, 강과 호수도 다 말라 버린다면 물에 의존해 사는 각종 물고기들이 존재할 수 있겠느냐? 물고기들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면 물과 어류에 의존해 생활하는 사람들이 계속 생존해 나갈 수 있겠느냐? 그들에게 먹거리가 없고, 생활 밑천이 없게 된다면, 그런 민족은 생존해 나갈 수 없다. 그들의 생활이 일단 문제가 되고, 생존이 문제가 되면, 그런 종족은 계속될 수 없고, 생존할 수 없으며,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멸망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땅을 잃게 된다면, 그 결말은 어떻겠느냐? 그들이 각종 식물을 재배하지 못하고, 각종 식물에서 먹거리를 얻지 못한다면, 그 결말은 어떻겠느냐? 양식이 없으면 사람들이 굶어 죽지 않겠느냐? 사람들이 굶어 죽게 된다면 그런 인류는 모두 멸망되지 않겠느냐? 그 까닭에 하나님은 각종 생태 환경을 유지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각종 환경과 각종 생태를 유지시키고, 각종 환경에서 생활하는 여러 가지 생물을 보호하는 목적은 하나밖에 없다. 즉, 여러 부류의 인류를 양육하기 위한 것이고, 서로 다른 지리 환경에서 생활하는 인류를 양육하기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