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

목차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7

(2) 하나님은 만물의 생명의 근원다

나는 오늘 너희에게 새로운 내용을 교통해 주려 한다. 그 내용이 무엇이겠는가? 그 내용의 주제는 바로 ‘하나님은 만물의 생명의 근원이다’라는 것이다. 이 화제는 듣기에 좀 커 보이지 않는가? 너희에게는 조금 버겁다는 느낌이 있지 않은가? 이 화제는 사람이 들으면 조금 요원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만물의 생명의 원천이다’라는 이것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마다 반드시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일은 각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고 경외할 수 있는 것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어 서로 떼어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주제를 꺼내 교통하려는 것이다. 이 방면의 화제에 대해 사람에게 아마도 간단한 인식이나 의식적인 인식이 조금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인식이 어떤 사람들의 마음에는 그저 간단하고 얕은 이해가 있을 수도 있고, 또 아마 어떤 사람들의 마음에는 그가 특별한 경력을 하여 그런 특별한 경력으로 인해 이 방면에 대한 깊은 체험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깊은 것이든 얕은 것이든 그것은 너희에게 있어 다 아주 편면적이고 구체적이지도 않다. 그러므로 내가 이 화제를 꺼내 교통하는 목적은 바로 너희에게 더 구체적이고 더 깊이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아주 필요한 것이다. 나는 이 화제를 한 가지 특수한 방식으로 교통하여 알려 주겠다. 이 방식은 우리가 전에 사용한 적이 없는 것이어서 너희가 듣기에 조금 특별하거나 혹은 듣기에 조금 불편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어떤 방식으로 하든, 너희가 듣고 나면 알게 될 것이다. 너희는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가? (좋아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는가? 동화인가? 우화인가? 아니면 공상 과학인가? (우화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이야기가 있는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는 매일 너희 각 사람에게서 일어나는데 더 말할 필요가 있는가? 너희 중에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아라. 나는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보겠다. 보아하니 내가 이야기하는 방식을 택한 것은 옳은 것 같다. 너희는 모두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좋다. 그럼 우리 시작하자! 너희가 적을 필요는 없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가만히 앉아 있거라. 만약 주변 환경이나 다른 사람들이 너에게 방해가 된다면 눈을 감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를 해 주겠다. 이 이야기는 씨앗, 대지(大地), 큰 나무, 햇빛, 새와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졸면 안 된다. 들었지?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씨앗, 대지, 큰 나무, 햇빛, 작은 새, 사람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있는가? (없습니다.) 듣지 못했다, 그렇지? 하지만 이 이야기를 하고 나면 너희는 아주 상쾌하고 만족스러운 느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야기 1. 씨앗, 대지, 큰 나무, 햇빛, 작은 새, 사람

씨앗 하나가 땅에 떨어졌다! 큰비가 지나간 뒤, 씨앗에서 새싹이 돋아났다. 그리고 흙 속에 천천히 뿌리를 내렸다! 어린 새싹은 비를 맞고 바람을 맞으며 조금씩 자라났다. 여름날, 대지는 새싹에게 수분을 공급해 주어 뜨거운 날씨를 이겨 내도록 해 주었고, 새싹은 대지로 인해 뙤약볕의 뜨거움을 느끼지 못한 채 혹독한 더위를 지나게 되었다. 겨울날, 대지는 따스한 품으로 새싹을 꼭 껴안아 주며 새싹에게 난류를 공급해 주었다. 그리하여 새싹은 혹한을 이겨 내고 눈바람이 몰아치는 추운 겨울을 피해 갈 수 있었다. 어린 새싹은 대지의 보호로 용감해지고 즐거워졌으며, 또한 대지의 사심 없는 공급으로 튼튼해지기 시작하였다. 어린 새싹은 밝게 자라면서 빗속에서 즐거이 노래하였고 바람 속에서 기뻐 춤추며 하늘거렸다! 새싹과 대지는 서로 기대며 서로 의지한다……

시간이 흘러 새싹은 하늘에 닿을 듯한 큰 나무로 변했다. 가지와 잎이 무성해졌고 또한 튼실하고 힘이 있었다. 나무는 여전히 흙 속에 뿌리를 박은 채 그 뿌리를 더 깊이 내렸다. 원래 나무를 보호해 주었던 그 땅은 오늘날 나무의 토대가 되었다.

한 줄기의 햇살이 큰 나무를 비추니 나무는 몸을 움직이면서 자신의 팔을 펼쳐 햇살 아래의 기운을 깊이 들이마신다. 땅은 나무의 발아래에서 나무의 리듬에 따라 숨을 쉬며 그 기운이 그토록 맑고 신선하다고 느낀다. 순간, 나무는 한 줄기 한 줄기의 신선한 공기를 내뿜으며 원기가 왕성해졌고 활력이 넘쳤다. 큰 나무와 햇살은 서로 기대며 서로 의지한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사람들은 가끔씩 불어오는 맑고 신선한 공기를 느끼고 있다. 그 맑고 신선한 공기는 사람의 심폐를 정화시키고 혈액도 정화시켜 사람의 몸이 더 이상 무겁지 않고 답답하지 않게 해 주었다. 사람과 나무는 서로 기대며 서로 의지한다……

한 무리의 작은 새들이 ‘재잘재잘’ 지저귀며 날아와 큰 나무 위에 내려앉는다. 그것은 아마 천적을 피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아마 자신들의 다음 세대를 위해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으며 아마 잠시 쉬었다 가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작은 새들과 나무는 서로 기대며 서로 의지한다……

나무는 얼기설기 뒤얽힌 자신의 뿌리를 대지에 깊숙이 박아 자리 잡았다. 나무는 자신의 몸으로 대지를 위해 비바람을 막아 주며 자신의 팔을 벌려 발아래에 있는 대지를 지켜 준다. 왜냐하면 대지는 나무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나무와 대지는 서로 의존하며 살아가고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다……

됐다! 이야기를 다했으니 너희는 눈을 떠도 된다. 나는 씨앗과 대지, 나무와 햇빛, 작은 새와 사람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했다. 이 이야기에는 몇 개의 장면밖에 없는데, 너희는 어떤 느낌을 받았는가? 내가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면 너희는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는가?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너희의 느낌을 말해 보아라. 너희는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떤 느낌이 들었는가? (특별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치 하나님과 사람의 이야기 같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인류를 정성껏 키우고 보호해 주시기에 사람은 튼튼하게 성장하게 됩니다. 진정한 사람이 되었을 때, 사람은 또 하나님의 사랑을 인식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데, 하나님과 사람은 서로 의지해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먼저 너희에게 알려 주겠는데, 내가 말한 이 몇 가지는 너희가 다 눈으로 볼 수 있고 또한 만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한 이야기는 비유가 아니라 실제이다. 너희는 내가 이야기한 것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아라! 그 속에는 심오한 것이 없다. 그리고 그 속에 들어 있는 몇 마디는 바로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식물이나 동물 그리고 날짐승이나 사람을 막론하고 생명의 근원은 다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또 있는가? (이 이야기 속의 사물은 비록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우리는 늘 하나님의 주재를 소홀히 합니다. 하나님은 아주 자연스럽게 말씀하셨는데, 이것 역시 우리 주변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일에는 하나님의 주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유를 주재하시고 만유의 생명  근원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아주 간단하고 저희가 소화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보았고 또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만사만물도 역시 하나님이 주재하고 안배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또 있는가? (저희가 들은 이야기 속에는 하나의 아름다운 장면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하나의 씨앗이 자라나면서 1년 사계절, 즉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겪는 과정에 대지는 어머니처럼 씨앗에게 공급하고 씨앗을 키워 주었고, 추운 겨울에는 온기를 주어 추위를 견디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새싹이 큰 나무로 성장했을 때는 또 한 줄기의 햇살이 그 나무를 비추어 매우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대지에게도 생명이 있고 대지와 나무는 서로 기대고 의지한다는 것을 보게 되었으며, 햇빛이 나무에게 많은 온기를 주는 것도 보게 되었고, 작은 새도 비록 매우 평범하지만 인류와 그리고 나무와 어우려져 아주 조화로운 그림이 만들어지는 것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들으면서 마음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은 알고 보니 다 생명이 있구나라는 이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음, 너는 아주 잘 말했다! 더 보충할 사람이 없는가? (한 알의 씨앗이 싹튼 후, 하늘에 닿을 듯한 큰 나무로 자라는 그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은 너무 기묘하고, 하나님께서 만물이 다 서로 의존하며 살아가게 하셨고 만물이 서로 연결되도록 하시고 서로가 *효력하도록 하셨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기묘하심을 보게 되었고 동시에 하나님은 만물의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도 보게 되었습니다.)

방금 이야기한 하나하나는 다 너희가 본 적이 있는 것이다. 씨앗은 알고 있겠지? 씨앗이 큰 나무로 되는 그 과정을 네가 자세하게 볼 수는 없겠지만 너는 그것이 사실임은 알고 있다. 그렇지? (네.) 대지, 햇빛 이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 그러면 작은 새가 나무에 앉는 그 장면도 각 사람마다 본 적이 있지 않은가? (네.) 그러면 나무 아래에서 더위를 식히는 사람은 너희가 본 적이 있는가? (있습니다.) 그럼 이 몇 가지를 한 화면에 담아 놓았을 때, 사람은 어떤 느낌을 받겠는가? (화목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런 화면 속에 담겨져 있는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가? (맞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하나님은 그 몇 가지가 땅에서 존재하는 가치와 의의를 알고 계신다. 바로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할 때, 하나님이 하나하나 안배하고 하나하나를 지을 때 거기에는 다 하나님의 의도가 있었고 또한 하나님이 하나씩 창조할 때마다 각기 다 자신의 생명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창조한 이 생존 환경, 즉 방금 전의 이야기에서 했던, 대지와 씨앗이 서로 기대고 서로 의지한다고 한 것과 대지가 씨앗에게 공급하고 그것을 키워 주며 씨앗도 대지를 떠날 수 없다고 한 그것들 사이의 이런 관계는 시초에 하나님이 창조할 때 정해 놓은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그럼 나무와 햇빛 그리고 새와 사람이 있는 이런 화면도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창조한 생존 환경이 아닌가? (맞습니다.) 우선 나무가 대지를 떠날 수 있는가? (떠날 수 없습니다.) 그럼 나무가 햇빛을 떠날 수 있는가? (없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나무를 만든 목적은 무엇인가? 단지 대지만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단지 작은 새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단지 사람만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그럼 그것들 사이는 어떤 관계인가? 서로 의존하며 살아가고 서로 헤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즉, 대지, 나무, 햇빛, 새와 사람의 관계는 서로 의존하며 살아가고 서로 공급해 주고 서로 키워 주는 그런 관계이다. 나무가 대지를 보호함과 동시에 대지도 나무에게 공급해 주고 나무를 키워 준다. 햇빛은 나무에게 공급해 주고 또한 나무는 그와 동시에 햇빛으로부터 신선한 기운을 얻으며, 햇빛이 뜨겁게 달구어 놓은 땅의 열기를 식혀 준다. 그러면 최종 수혜자는 누구인가? 최종의 수혜자는 인류이다, 그렇지? (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류의 생존 환경을 창조한 원칙이고 본래의 뜻이다. 보기에는 하나의 단순한 화면 같지만 여기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있고 하나님의 애쓰는 마음도 깃들어 있다. 사람은 대지를 떠날 수 없고 나무를 떠날 수 없으며 더욱이 햇빛과 새를 떠날 수 없다, 그렇지? 이 한 화면은 비록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여 사람에게 베풀어 준 생존 환경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생존 환경을 만들었다. 우선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말한 핵심은 바로 만물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서로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런 원칙하에서 인류의 생존 환경은 보호를 받고 지속될 수 있으며, 그런 생존 환경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다. 우리가 본 것은 나무, 대지, 햇빛, 작은 새와 사람이 있는 이런 하나의 화면인데, 이 화면 속에 하나님이 있는가?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 겉보기에는 하나님이 없는 것 같지만 이 화면에서 만물이 서로 의존하며 살아가는 그런 법칙을 보았는데, 그 법칙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주재를 보게 된다, 그렇지? 하나님은 바로 그런 원칙과 그런 법칙으로 만물의 생존과 만물의 존재를 이어 놓고 유지한다. 바로 그런 하나의 방식으로 만물과 인류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그럼 이 이야기는 우리가 말한 주제와 관계가 있지 않은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사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한 법칙과 더 나아가 만유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는 하나님이 만물의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과 아주 중대한 관계가 있어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너희가 지금은 조금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지?

하나님은 만유의 운행 법칙과 만물의 생존 법칙을 장악하고 있고 또 만유와 만물을 장악하고 있어 그것들이 서로 의지해 살아가면서 멸망하지 않고 사라지지 않게 한다. 그래야만 인류가 지속될 수 있고 하나님의 인도하에 이런 생존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 법칙, 만유가 운행되는 이 법칙은 다 하나님의 주재하에 있으며 아무도 간섭할 수 없고 또 아무도 바꿀 수 없다.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이 운행의 법칙을 알고 계시며,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이 법칙을 관리하고 계신다. 나무는 언제 싹이 나고 비는 언제 내리며 대지는 식물에 수분과 영양을 얼마나 공급하고 큰 나무는 어느 계절에 낙엽이 지고 어느 계절에 열매를 맺고 햇빛은 큰 나무에게 양분을 얼마나 주고 큰 나무가 햇빛에서 양분을 얻은 후에 내뿜는 것은 무엇인지에 관한 이런 것들은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할 때 다 정해 놓았다. 이 법칙을 파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이 창조한 만유, 곧 생명이 있는 것이나 혹 사람이 보기에 생명이 없는 것도 다 하나님의 손에 장악되어 있고 하나님이 주재하고 있으며 이 법칙을 바꾸거나 파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할 때, 이런 것을 다 정해 놓았다는 것이다. 큰 나무는 땅을 떠나 뿌리를 내리거나 싹이 틀 수 없고 자라날 수 없다. 만약 대지에 나무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메마르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또 나무는 작은 새들의 집이 되고 새들이 풍해를 피할 수 있는 곳이 된다. 나무에게 햇빛이 없으면 되겠는가? (안 됩니다.) 땅만 있어도 안 된다. 이 모든 것은 다 인류를 위한 것이고, 인류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인류는 나무에게서 신선한 공기를 얻고 또한 나무가 보호해 주는 땅에서 살고 있으며 동시에 인류는 햇빛과 각종 생물을 떠날 수 없다. 이런 관계는 비록 복잡하지만 사람은 반드시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이 창조한 만유의 이 법칙은 바로 만물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서로 의존하는 것인데, 하나님이 만든 하나하나에는 다 그것의 생존 가치와 의의가 있다. 만약 하나님이 그것을 만든 의의가 없으면 하나님은 그것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이것은 깨달았겠지? (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에게 공급하는 방식 중의 한 가지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공급한다’는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이 매일 큰 나무에게 물을 주는가? 나무가 숨 쉬는 것을 하나님이 도와줘야 하는가? (아닙니다.) 여기에서의 ‘공급한다’는 바로 만물을 만든 뒤에 하나님이 관리하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한 가지 법칙을 만든 후에 관리만 하면 되는 것이다. 바로 큰 나무의 씨앗을 대지에 놓아두면 스스로 알아서 자라나는 것이다. 그것이 자라는 조건은 하나님이 다 만들어 놓았다. 햇빛, 수분, 토양, 공기와 주변의 환경, 바람, 이슬, 눈, 비, 사계절, 이런 것은 나무의 생존에 필요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다 예비해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생존 환경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가? (맞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큰 나무에 잎이 얼마인지 날마다 셀 필요가 있는가? 필요 없겠지? 하나님은 나무가 숨을 쉬도록 도와줄 필요도 없다. 햇빛도 하나님이 매일 가서 깨워 줄 필요가 없다. “나와서 나무를 비춰 주어라.” 이렇게 할 필요도 없다. 햇빛은 그 법칙에 따라 시간이 되면 나와서 나무를 비춰 주고 나무는 햇빛을 흡수하면서 그렇게 법칙 속에서 살아간다. 이런 현상을 너희가 분명하게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이 사실은 각 사람마다 볼 수 있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너희는 오직 만물의 생존 법칙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고 만물의 생장과 존재는 하나님의 주재 아래에 있다는 것만 알면 된다. 이로부터 하나님이 만물의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이 이야기 속에 인류가 말하는 비유가 있는가? (없습니다.) 이것은 의인화 수법을 쓴 것인가? (아닙니다.) 내가 말한 것은 사실이다. 하나하나의 살아 있는 것과 생명이 있는 것들은 다 하나님의 주재 아래에 있으며 하나님이 창조했을 때 생명이 있게 된 것인데, 그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자신의 생명 궤적과 법칙을 지키기에 사람이 바꿔 줄 필요도 없고 도와줄 필요도 없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물에게 공급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이것은 알았겠지? 사람이 이런 것들을 인식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여기에서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생물학과 관계가 있는가? 그 어떤 과학이나 지식과 관계가 있는가?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생물을 논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생물학을 연구하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중점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만물의 생명의 근원이다”입니다.) 그럼 만물 가운데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는가? 나무를 보지 않았는가? 땅을 보지 않았는가? (보았습니다.) 햇빛도 보았다, 그렇지? 작은 새들이 큰 나무에서 쉬고 있는 것도 보지 않았는가? (보았습니다.) 그럼 사람이 이런 환경에서 살면 행복하지 않겠는가? (행복합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통해, 즉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을 통해 인류의 생존 터전을 유지하고 보호하고 계시며 그런 방식으로 인류에게 공급하고 만물에게 공급하고 계신다. 내가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교통하면 너희는 어떤가? 좋다고 느끼는가? (네, 실제적입니다.) 어떻게 좋은가? (알기 쉽고 실제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뜬구름 잡는 식이 아니다. 그렇지? 그럼 이 이야기는 하나님이 만물의 생명의 근원임을 사람이 인식하는 데에 있어서 필요치 않은가? (필요합니다.) 필요하다면 우리 계속해서 다음 이야기를 하자! 다음 이야기는 내용이 조금 다르고 중점도 조금 다르다. 이야기 내용에 포함된 것들은 다 하나님이 창조한 만유 가운데서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나는 여전히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너희에게 서술하겠다. 너희는 조용히 들으면서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생각해 보아라! 이야기를 다하고 나서 너희에게 물어볼 테니 너희가 얼마나 터득하는지 보도록 하자. 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큰 산과 시냇물, 광풍, 거대한 파도이다.

이야기 2. 큰 산과 시냇물, 광풍, 거대한 파도

한 줄기 시냇물이 천천히 흐르고 있다. 굽이굽이 돌아 큰 산의 발아래에 이르자 큰 산이 시냇물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시냇물은 가냘픈 목소리로 큰 산을 향해 말했다. “비켜 줘! 내 길 막지마! 내 앞길 가로막았잖아!” 큰 산이 물었다. “어디로 가려고?” 시냇물이 대답했다. “내 고향을 찾아가고 있어!” 큰 산이 또 말했다. “그래 좋아! 내 몸 타고 지나가!” 하지만 시냇물은 너무 나약하고 여린 탓에 아무리 해도 큰 산을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시냇물은 하는 수 없이 큰 산의 발 아래로 계속 흘러가야 했다……

한 줄기 광풍이 모래, 자갈과 잡동사니를 휘몰아 와 큰 산 앞에 이르러 성내며 소리 질렀다. “비켜!” 큰 산이 물었다. “넌 어디로 가려고?” 광풍이 성을 내며 말했다. “난 산 너머로 갈 거야!” 큰 산이 말했다. “좋아! 내 허리를 부러뜨릴 수 있으면 넘어가 봐!” 광풍은 성이 나서 한 번 또 한 번 휘몰아쳤다. 하지만 아무리 고함치고 아무리 애써도 큰 산의 허리를 부러뜨릴 수 없었다. 광풍은 지쳐서 발걸음을 멈추고 쉬었다. 그리하여 산 너머에는 미풍이 이따금씩 불어와 사람들이 아주 흡족해 하고 있었다. 그것은 큰 산이 사람들에게 보내는 문안 인사였다……

바닷가에서 파도가 찰싹거리며 해변에 있는 암초를 가볍게 때리고 있다. 갑자기 한 줄기 거대한 파도가 포효하면서 세차게 밀려와 큰 산 앞에 이르러 소리 질렀다. “비켜!” 큰 산이 물었다. “넌 어디로 가려고?” 거대한 파도는 자신의 발걸음을 멈출 수 없어 계속 포효하면서 대답했다. “난 내 땅을 넓히고 내 팔을 펼칠 거야!” 큰 산이 말했다. “좋아! 내 머리 위를 넘어갈 수 있으면 길을 내줄게.” 그리하여 거대한 파도는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큰 산을 향해 돌진하였다. 하지만 파도는 아무리 애를 써도 큰 산을 넘어갈 수가 없어 천천히 물러가야만 했다……

수천 년 동안 시냇물은 큰 산의 발아래에서 그렇게 조용히 흘러가고 있다. 시냇물은 큰 산이 가리켜 주는 방향을 따라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서로 만나 강이 되고 서로 모여 바다가 되었다. 큰 산의 보호로 인해 시냇물은 방향을 잃은 적이 없었다. 시냇물과 큰 산은 함께 살아가며 함께 숨 쉬고, 함께 살아가며 서로 부딪치고 또 서로 의존한다……

수천 년 동안, 광풍은 자신의 포효하는 버릇을 바꾼 적이 없다. 광풍은 여전히 모래와 자갈을 휘몰아 와 큰 산에게 ‘문안’하면서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광풍은 큰 산의 허리를 부러뜨려 본 적이 없다. 큰 산과 광풍은 함께 살아가며 함께 숨 쉬고, 함께 살아가며 서로 부딪치고 또 서로 의존한다……

수천 년 동안, 거대한 파도도 쉰 적이 없고 자신의 땅을 넓혀 가려는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다. 파도는 한 번 또 한 번 반복하며 큰 산을 향해 포효하고 있다. 하지만 큰 산도 파도의 포효 때문에 자신의 몸을 옮긴 적이 없다. 큰 산이 바다를 지켜 주고 있기에 바닷속의 만물은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었다. 큰 산과 거대한 파도는 함께 살아가며 함께 숨 쉬고, 함께 살아가며 서로 부딪치고 또 서로 의존한다……

이야기는 끝났다. 우선 너희가 말해 보아라. 내가 한 이야기의 주요 내용은 무엇인가? 우선 큰 산이 있다. 그리고 또 뭐가 있는가? (시냇물과 광풍과 거대한 파도입니다.) 첫 부분에서 시냇물과 큰 산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가? 기억하는가? (시냇물이 큰 산의 발 아래에서 흘러가는 것입니다.) 시냇물이 큰 산의 발 아래로 흘러가는 것이 그 둘 사이에 일어난 이야기인가? 시냇물은 어디로 흘러갔는가? 왜 시냇물과 큰 산의 이야기를 하겠는가? (큰 산이 시냇물을 보호해 주어 시냇물이 방향을 잃은 적이 없고 그것들은 서로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큰 산이 시냇물에게 있어서는 보호인가 아니면 장애물인가? (보호입니다.) 그럼 장애물은 아니란 말인가? 큰 산과 시냇물은 서로 지켜 주면서 큰 산은 시냇물의 보호가 되기도 하고 또 시냇물의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큰 산은 시냇물이 모여 강이 되도록 보호해 주며 동시에 시냇물을 가로막아 시냇물이 여기저기 흐르거나 넘치지 못하게 하였다. 그로 인해 그 물은 인류에게 재해를 가져다주지 못하였다. 이것이 이 단락의 주요 내용이 아닌가? (맞습니다.) 바로 큰 산이 보호가 되었고 큰 산의 그런 행위가 시냇물의 장벽이 되어 인류의 터전도 보호를 받게 되었다. 그렇지만 시냇물은 큰 산의 발아래에서 서로 만나 강이 되었고 서로 모여 바다가 되었다. 이것이 시냇물이 생존하는 법칙이 아닌가? (맞습니다.) 시냇물은 무엇을 통해 서로 모여 강이 되고 바다가 되었는가? 큰 산을 통해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큰 산이 보호했기 때문이고 또한 큰 산이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중점이 아닌가? (맞습니다.) 여기서 너는 물에 대한 큰 산의 중요성을 보았는가? (보았습니다.) 중요하지 않은가? (중요합니다.) 이렇게 높고 낮은 산들을 하나님이 만든 데에는 목적이 있지 않은가? (있습니다.) 목적이 있다! 이것은 작은 한 장면이다. 단지 한 줄기 시냇물과 하나의 큰 산이 우리에게 하나님이 창조한 이 둘의 존재 가치와 의의를 보게 하였고 또한 하나님이 이 둘을 주관하는 지혜와 본의도 보게 하였다. 그렇지 않은가?

두 번째 부분에서는 무엇에 대해 말했는가? (광풍과 큰 산입니다.) 바람이 있으면 좋은 일인가? (네.)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바람이 너무 세면 재난이 된다. 만약 너를 바람 속에 있으라고 한다면 너는 어떤 느낌이겠는가? 우선 그 바람의 등급이 얼마인지 봐야 한다. 그렇지? 만약 미풍이거나 혹은 2~3급이나 3~4급 정도면 그나마 괜찮다. 기껏해야 눈을 뜨기 힘들 뿐이다. 하지만 광풍이 어느 정도로 거세져 회오리바람이 된다면 견딜 수 있겠는가? 견딜 수 없다. 그래서 바람이 사람에게 완전히 좋다는 것도 잘못된 것이고 완전히 나쁘다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센 바람인지 봐야 한다. 그럼 큰 산은 여기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 바람을 여과하는 역할을 하지 않았는가? (그렇습니다.) 큰 산은 한 번씩 불어오는 광풍을 무엇으로 바꿔 놓았는가? (미풍입니다.) 미풍으로 바꿔 놓았다. 그럼 사람의 생존 환경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접촉하고 느끼는 바람은 광풍인가 아니면 미풍인가? (미풍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큰 산을 창조한 목적과 본의가 아닌가? 만약 광풍이 늘 모래와 자갈을 휘몰며 막히는 곳도 없고 여과되지도 않은 채 사람에게 불어 닥친다면 사람의 생존 환경은 어떻게 되겠는가? 여기저기 모래와 자갈이 날려 사람이 땅에서 지낼 수 없게 되지 않겠는가? 사람이 돌에 맞을 수도 있고 또 모래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사람이 공중으로 휘말려 올라갈 수도 있고, 또 바람 때문에 사람이 서 있지 못할 수도 있고 집이 훼손될 수도 있다. 각종 재난이 다 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광풍은 그것의 존재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있습니다.) 어떤 가치가 있는가? 광풍이 나쁘다고 하니 사람은 또 가치가 없다고 느낀다. 도대체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미풍으로 변하면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사람이 무더위를 느낄 때, 질식할 것 같을 때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가장 필요한 것은 미풍이다. 미풍은 살랑살랑 솔솔 불어와 머리를 맑게 해 주고 기분을 상쾌하게 해 주며 사람의 기분을 전환시켜 주고 좋아지게 해 준다. 예를 들면, 너희가 지금 방 안에 앉아 있는데, 사람들이 아주 많아 공기가 매우 탁하다고 하자.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미풍입니다.) 사람이 공기가 아주 혼탁한 곳에 있으면 공기 속에 더러운 이물질이 있어서 사람의 사유가 느려지고 혈액순환도 느려지면서 머리도 맑지 않게 된다. 만약 환기를 좀 시켜 공기가 순환되면 바로 신선해지면서 사람의 느낌은 확 달라진다. 비록 시냇물도 재난이 될 수 있고 광풍도 재난이 될 수 있겠지만 큰 산의 존재로 인해 그러한 재난들은 다 사람에게 유익한 것으로 되었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세 번째 부분에서는 무엇에 대해 이야기했는가? (큰 산과 거대한 파도입니다.) 큰 산과 거대한 파도, 이것은 큰 산의 발 아래에 있는 해안가의 장면이다. 우리는 큰 산을 보았고 찰싹거리는 파도도 보았으며 거대한 파도도 보았다. 거대한 파도에게 있어 큰 산은 무엇인가? (보호와 장벽입니다.) 이중적이다, 그렇지? 보호이기도 하고 장벽이기도 하다. 보호하는 목적은 그 바다가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바다가 사라지지 않게 되면 그 바닷속에서 사는 만물이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게 된다. 장벽으로서의 큰 산은 바닷물이 범람해 재난이 되지도, 여기저기 흐르지도 못하게 하여 인류의 터전에 피해를 주거나 파괴를 가져다주지 못하게 한다, 그렇지? 그러므로 큰 산은 거대한 파도에게 있어 보호이면서 장벽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큰 산과 시냇물, 큰 산과 광풍, 큰 산과 거대한 파도가 함께 살아가며 함께 숨 쉬고, 함께 살아가며 서로 부딪치고 또 서로 의존하는 의의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이 몇 가지 창조물에는 다 그것들이 생존하는 하나의 법칙과 규칙이 있다.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의 어떤 행사를 보았는가?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하고는 상관치 않았는가? 어차피 그것들에게 법칙도 다 정해 주고 각자의 기능도 다 정해 줬으니 상관치 않겠다는 것인가? (아닙니다.) 그럼 무엇인가? (하나님이 관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여전히 관리하고 계신다. 물과 바람 그리고 파도를 관리하여 그것들이 함부로 아무 데나 가지 못하게 하고, 그것들이 인류가 생존하는 터전에 피해와 파괴를 가져다주지 못하게 한다. 그래야 인류가 이 땅에서 계속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할 때, 그 만유의 생존 법칙을 이미 정해 놓았으며, 하나님이 그것들을 만들 때, 그것들이 인류에게 유익함을 가져다주도록 보장함과 동시에 그것들을 관리하여 인류에게 번거로움과 재난을 가져다주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말한다. 만약 하나님이 관리하지 않는다면 물은 마구 흐르지 않겠는가? 바람도 마구 불지 않겠는가? 만약 하나님이 관리하지 않으면 그것들에게 법칙이 없게 되어 바람도 제멋대로 불고 물도 제멋대로 흘러 여기저기에 넘칠 것이다. 그럼 거대한 파도가 큰 산보다 높이 친다면 그 바다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그 바다는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 만약 큰 산이 거대한 파도보다 높지 않다면 바다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고 큰 산도 그것의 존재 가치와 의의를 잃게 될 것이다.

이 두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보았는가?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만유를 창조하고 만유를 주재하고 관리하며 또 만유에게 공급하면서 만유 가운데서 만유의 일거일동과 일언일행을 감찰하고 계시며 또한 인류가 살고 있는 구석구석을 감찰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만유, 즉 매 창조물에 대해 그것의 성능과 성질, 그것의 생존 법칙, 그것의 생존 의의와 존재 가치를 손금 보듯 환하게 알고 계신다. 그럼 말해 보아라,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인데, 하나님이 그것의 법칙을 연구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류의 지식과 과학을 배워 그것을 연구하고 알아야 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럼 인류 가운데 학식이 넓고 지식이 풍부하여 하나님처럼 만물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없지? 그러면 만물의 생장 법칙을 정말로 알 수 있는 천문학자나 생물학자가 있을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만물이 각기 존재하는 가치를 알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왜 그런가? 만물은 하나님이 지으셨기 때문이다. 사람이 지식을 아무리 많이, 아무리 깊이, 아무리 오래 배운다 해도 하나님이 만물을 지은 오묘한 비밀과 그 목적은 영원히 측량할 수 없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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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력(效力):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힘이나 기능만 다하는 것을 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