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

목차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5

하나님의 거룩 (2)

하나님의 실질이 거룩하다는 것에 관해 우리는 지난번에 어느 정도 교통하였다. 교통한 그 부분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거룩을 인식함에 있어서 깨우침을 좀 주었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그것으로는 사람이 하나님의 거룩을 완전히 인식하기에도, 하나님의 거룩이 유일무이하다는 것을 인식하기에도 충분하지 않고, 거룩의 진정한 함의가 하나님에게서 완전하게 체현된 그 부분을 인식하기에는 더욱 충분하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방면의 화제를 계속해서 교통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 부분에서 우리는 3가지 문제를 교통하였다. 이제 네 번째 문제를 교통할 차례이다. 성경을 읽어 보도록 하자.

4. 사탄의 시험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 4:1~4)

이것은 마귀가 처음으로 주 예수를 시험하면서 한 말이다. 이 말의 내용은 무엇인가? 너희가 읽어 보아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입니다.) 마귀가 한 이 말은 간단하다. 하지만 이 말의 내용에 실질적인 문제가 있지 않은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는가? 마귀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했다. 그럼 마귀는 속으로 주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는가? 그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모르는가? (압니다.) 그렇다면 마귀는 왜 ‘만일’이라고 했겠는가? (하나님을 시험하려는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그럼 마귀가 하나님을 시험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마귀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한 것은 속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속으로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알고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순복하였는가? 경배하였는가? (아닙니다.) 그럼 마귀는 무엇을 하려고 했는가? 그런 방식과 그런 말로 예수에게 화를 유발시킨 다음, 그를 유인해 걸려들고 속아 넘어가게 하여 주 예수가 그것의 뜻대로 하도록 하려고 하였다. 이런 뜻이 아닌가? 마귀는 속으로 그가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것은 사탄의 본성이 아닌가? 사탄의 본성은 무엇인가? (교활하고 사악하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경외가 없다. 사탄에게 있는 그 부정적인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닌가? 사탄은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을 공격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 후, 그것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사탄의 음험한 속셈이 아닌가? (맞습니다.) 그럼 사탄은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였는가? 그것의 뜻은 아주 분명하다. 바로 그런 방식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위와 신분을 부인하려고 한 것이었다. 사탄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 돌들을 떡으로 만들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니 이 사역을 하지 말라.’고 말하려는 것이었다. 이런 뜻이 아닌가? 그것은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을 공격하려 하였고 하나님의 사역을 허물어뜨리고 파괴하려 하였다. 이것이 사탄의 악독함이고 그놈의 궤계이다. 사탄의 악독함은 그 본성의 자연적인 유로이다. 사탄은 설령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 자신이 도성육신한(역주: 성육신) 줄 알고 있었을지라도 자신도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이런 일을 하려고 하였다. 즉, 하나님의 뒤를 따르면서 계속 하나님을 공격하고, 주저하지 않고 계속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파괴하는 일을 저지르며 하나님과 적이 되려고 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사탄이 한 이 말을 더 해부해 보자.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돌을 떡덩이가 되게 하는 일이 의미가 있는가? 의미가 없다. 먹을 것이 있는데도 먹지 않고 왜 꼭 돌을 떡덩이로 되게 해야 하는가? 이 일은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닌가? (맞습니다.) 주 예수가 당시에 비록 금식하고 있었지만 그래 먹을 것이 없었겠는가? 먹을 것이 없었는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사탄이 한 이 말이 얼마나 황당한지 볼 수 있다. 사탄은 아주 음험하고 아주 악독한데, 우리는 또 여기에서 사탄의 황당함과 그릇되고 망령된 면도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사탄이 저지른 어떤 일에서 그것의 악독한 본성과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파괴하는 짓을 보면 아주 가증스럽고 화도 나지만 반대로 그것이 그 일을 저지르고 그 말을 한 성질을 보면 아주 유치하고 황당하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 본성의 한 가지 유로이다. 그것에게 그런 본성이 있기에 그런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그 말은 사람이 보기에 아주 황당하고 아주 가소롭다. 하지만 사탄은 그 말을 내뱉을 수 있는데, 그것이 무지하고 그릇되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사탄의 사악함은 언제 어디에서나 늘 유로된다. 주 예수는 그것에게 어떻게 대답하였는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이 말은 힘이 있지 않은가? (힘이 있습니다.) 왜 이 말을 힘이 있다고 하는가? (이 말은 진리입니다.) 맞다! 이 말은 진리이다. 그럼 사람이 떡으로만 살아가는 것인가? 주 예수가 사십 주야를 금식하였어도 굶어 죽었는가? (아닙니다.) 그는 굶어 죽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탄은 다가와 예수에게 돌을 떡이 되게 하라는 이런 말을 하였다. ‘돌을 떡이 되게 하면 먹을 것이 생기잖아요? 그러면 금식할 필요도 없고 굶주리지 않아도 되지 않겠어요?’라는 뜻이다. 하지만 주 예수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라고 말씀하였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비록 육체에서 살고 있지만 사람의 육체가 살아가고 숨을 쉴 수 있게 하는 것은 음식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이다. 한 방면으로는, 사람이 이 말을 진리로 삼으면 이 말은 사람에게 믿음을 주어 하나님은 사람이 의지할 분이고 진리임을 느끼게 한다. 다른 한 방면으로는, 이 말에 실제적인 면이 있지 않은가? (있습니다.) 왜 그런가? 그것은 주 예수가 사십 주야를 금식했어도 여전히 그곳에 서 있지 않았는가? 여전히 살아 있지 않았는가? 그것은 실제 사례가 아닌가? 다시 말하면, 그가 사십 주야나 아무런 음식을 먹지 않았어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 말의 유력한 증거이다. 그 말은 비록 간단하지만 주 예수에게 있어 그가 한 말은 다른 사람이 가르쳐 준 것인가 아니면 사탄의 그 말 때문에 예수가 생각해 낸 것인가? 너희는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은 진리이고 생명이다. 그럼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은 후천적으로 더해진 것인가? 후천적으로 경력한 것인가?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원래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실질은 진리가 있고 생명이 있다. 그에게 어떤 일이 임하든 그가 유로해 내는 것은 진리이다. 이 진리, 이 말씀은 그 내용이 길든 짧든 상관없이 사람을 살게 하고 사람에게 생명을 주며, 그 속에서 진리를 얻게 하고 인생의 길을 알게 하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 말을 하게 된 근원인데, 그 근원은 긍정적인 것이다. 그럼 이 긍정적인 것은 거룩하지 않은가? (거룩합니다.) 사탄이 한 그 말은 사탄의 본성에서 나온 것이다. 사탄은 언제 어디서나 그것의 사악하고 악독한 본성을 드러낸다. 그럼 그렇게 드러내는 것은 그것의 자연적인 유로가 아닌가? (그렇습니다.) 누가 지시한 것인가? 누가 사탄을 도와주었는가? 누가 사탄을 협박했는가? (아닙니다.) 모두 사탄이 스스로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사악한 본성이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든, 어떻게 하든 사탄은 그 뒤를 따르며 말을 하고 일을 저지르는데, 그 일들의 실질과 본모습은 바로 사탄의 실질이다. 즉, 사악하고 악독한 실질이다. 그럼 사탄은 또 뭐라고 말했는가? 우리 계속 읽어 보자.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마 4:5~6)

먼저 사탄이 한 이 말을 살펴보자. 사탄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고 하였고 게다가 성경의 말을 인용하여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라고 하였다. 사탄이 한 이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아주 유치하지 않은가? 유치하고 황당하고 역겹다. 왜 이렇게 말하겠는가? 사탄은 항상 어리석은 짓을 하고는 스스로 아주 총명하다고 여기고 또 항상 성경의 말을 인용하는데, 심지어는 하나님이 하셨던 말씀까지 인용한다. 이런 말씀들을 가지고 역으로 하나님을 공격하고 시험하여 하나님의 사역과 계획을 파괴하려는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하지만 사탄이 한 이런 말 속에서 너는 뭔가 보지 못했는가? (음험한 속셈이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탄은 일을 할 때 일관적으로 사람을 시험한다. 사탄은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시험하고 유혹하고 유인하는 방식으로 빙빙 돌려서 말한다. 사탄은 일반 사람을 시험하듯 하나님을 시험하였다. 사탄은 하나님도 사람처럼 그렇게 우매하고 그렇게 어리석어 사물의 진상을 분명하게 분별하지 못하고, 사탄의 실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그것의 간사함과 음험한 속셈도 꿰뚫어 보지 못한다고 여겼다. 이것이 사탄의 미련한 면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게다가 사탄은 버젓이 성경의 말을 인용하여 자신이 한 말에 도리도, 근거도 있으니 어떻게 흠을 잡아낼 수 있겠냐, 어떻게 속임수에 걸려들지 않을 수 있겠냐고 여겼다. 이것은 사탄의 황당하고 유치한 면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을 증거할 때, 불신자들도 이와 유사한 말을 하지 않는가? 너희도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지 않은가? (네.) 네가 이런 말을 들을 때, 역겹지 않겠는가? (역겹습니다.) 네가 역겹다고 느낄 때, 마음속으로 혐오하지 않겠는가? 증오하지 않겠는가? (혐오하고 증오합니다.) 너에게 이런 느낌이 들 때, 너는 사탄과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켜 생긴 성정이 바로 사악한 것임을 의식하였는가? 너에게 이런 느낌이 있을 때, 너는 마음속에 ‘하나님은 전혀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아. 사탄의 말은 공격성과 유혹을 띠고 있고 황당하고 가소롭고 유치하고 역겨워.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시는 일에서 하나님은 전혀 이런 방식으로 말씀하시거나 역사하시지 않았고 지금까지 이런 방식은 없었어.’라는 이런 의식이 있는가? 물론 이때에 사람에게는 이 정도의 느낌만 있을 뿐, 여전히 하나님의 거룩함은 의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만 인정할 뿐, 진리 그 자체가 바로 거룩한 것임은 모른다. 지금 너희의 이 분량으로는 단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다 진리이고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어서 다 받아들여야 돼.’라고 느낄 뿐이다.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 모두가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다 진리이고 하나님은 진리라고 말할 뿐, 진리 그 자체가 거룩하고 하나님이 곧 거룩하다는 것은 모른다. 그럼 예수는 사탄이 방금 한 그 말에 또 어떻게 답하며 상대하였는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마 4:7)

예수가 한 이 말에 진리가 있지 않은가? (있습니다.) 진리가 있다. 보기에 이 한 마디는 사람에게 명령하는 말이고 아주 간단한 말이지만 사람이나 사탄은 이를 항상 범한다. 그래서 주 예수는 사탄에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한 것이다. 사탄은 항상 그렇게 해 왔고 또 주저하지 않고 그렇게 하기에 정말 파렴치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사탄의 본성 실질에서 보면 사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없다. 그러므로 비록 그것이 하나님의 곁에서 하나님을 보았을지라도 자신도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 예수는 사탄에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말한 것이다. 이 한 마디는 하나님이 사탄에게 늘 하는 말씀이다. 오늘날에도 이 말씀은 적용되지 않겠는가? (적용됩니다.) 왜 그런가? (우리도 항상 하나님을 시험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항상 하나님을 시험하는데, 왜 항상 하나님을 시험하는가? 사탄에게 패괴된 성정이 사람에게 가득하기 때문이 아닌가? (맞습니다.) 그럼 사탄이 위에서 한 그런 말은 사람도 항상 하지 않는가? (그렇습니다.) 그럼 어떤 상황에서 하는가? 사람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항상 그렇게 말하고 또 자연적으로 유로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의 성정이 사탄의 패괴된 성정과 차이가 조금도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주 예수는 아주 간단한 한 마디 말씀을 하였는데, 그 말은 진리를 대표하고 또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주 예수는 사탄과 논쟁하는 말을 하였는가? 사탄과 대치하는 말을 하였는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마음속으로 사탄의 시험을 어떻게 보았겠는가? 역겨워하고 혐오스러워하지 않았겠는가? (맞습니다.) 혐오하고 역겨워하였다. 하지만 주 예수는 사탄과 논쟁하지 않았고 더욱이 그것과 그 어떤 이치도 말하지 않았다. 그렇지? (네.) 왜 그랬겠는가? (주 예수께서 그것을 상대하기 싫어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상대하기 싫어했겠는가? (사탄은 항상 그 모양이어서 변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이치가 통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진리라는 것을 알 수 있겠는가? 영원히 하나님이 진리임을 모르고 영원히 하나님이 진리라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사탄의 본성이다. 또한 사탄의 본성에 사람을 역겹게 하는 것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무엇인가? 사탄은 주 예수를 시험할 때, 속으로 어떻게 생각했는가? 시험해서 설령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설령 징벌받게 되더라도 그렇게 하려고 했으며, 설령 시험해서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렇게 하려고 하였고 기어코 그렇게 하여 하나님과 끝까지 대항하려고 하였다. 이것은 무슨 본성인가? 사악이 아닌가? (맞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란 말만 꺼내면 눈에 핏발을 세우는데, 그가 하나님을 본 적이 있는가? 그 사람은 하나님이란 말만 꺼내면 화가 치민다. 그가 하나님이 누구인지 아는가? 그가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하나님을 믿지도 않거니와 하나님도 그에게 말을 건넨 적이 없고, 그의 심기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그는 왜 화를 내는가? 이 사람을 사악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네.) 이것은 사람의 사악한 본성이 아닌가? 세상의 풍조나 먹고 노는 것, 스타나 미인, 이런 것에 대해서는 화를 내지 않지만 ‘하나님’이란 이 단어만 나오면 화가 치민다. 이것은 사악한 본성이 아닌가? 사람의 사악한 본성임을 충분히 증명한다. 그럼 너희는 진리를 언급하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는 시련과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는 말씀에 대해 언급하면 반감을 가지고 혐오하면서 듣기 싫어할 때가 있지 않은가? 마음속으로 ‘이게 어디 진리야? 하나님은 다 진리라고 하지 않았나? 이건 진리가 아니라 사람을 훈계하는 말씀이잖아!’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마음속으로 반감을 가진다. ‘날마다 이런 일들을 언급하고 날마다 시련을 언급하고 늘 심판을 언급하는데, 언제 끝날까? 언제면 좋은 귀숙이 있을까?’라며 알 수 없는 화가 나오는데, 그것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모른다. 이것은 어떤 본성인가? (사악한 본성입니다.) 바로 사탄의 사악한 본성이 그렇게 하게 한 것이다.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은 사탄의 사악한 본성에 대해, 인류의 패괴된 성정에 대해 전혀 사람과 논쟁하거나 따지지 않고 또 사람의 우매한 행실로 인해 문제를 크게 만들지도 않는다. 하나님에게서는 인류가 어떤 사물을 대하는 것과 비슷한 그 어떤 관점도 볼 수 없고 더욱이 인류의 관점, 또는 지식이나 과학, 또는 철학이나 상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도 볼 수 없다. 하나님이 한 것과 유로한 것은 모두 진리와 관련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하는 말씀마다, 하나님이 하는 매사마다 모두 진리와 관련된다. 이 진리는 근거 없이 상상해 낸 것이 아니다. 이 진리와 이런 말씀은 하나님의 실질과 생명으로 말미암아 유로된 것이다. 이런 말씀의 실질과 이런 일들의 실질은 다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실질이 거룩하다고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하신 한 가지 일이나 한 마디 말씀은 사람에게 생기와 광명을 가져다주었으며, 긍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의 실제를 보게 하였고, 사람에게 광명의 길을 가리켜 주어 바른길을 걷게 하였다. 이런 것은 다 하나님의 실질, 곧 하나님의 거룩한 실질로 말미암아 결정된 것이다. 너희는 보았겠지? 우리 계속 성경을 보도록 하자.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마 4:8~11)

마귀 사탄은 앞에 사용했던 두 방법으로 안 되니 또 한 가지 수단을 들이댔다. 즉, 만국과 만국의 영화를 모두 주 예수께 보여 주면서 자신에게 경배하라고 하였다. 이 일에서 마귀의 어떤 정체를 보았는가? 마귀 사탄은 아주 파렴치하지 않은가? (파렴치합니다.) 어떻게 파렴치한가? 만물은 하나님이 창조한 것인데, 사탄은 도리어 만물을 하나님께 보여 주면서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객이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 아닌가? 파렴치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였지만 이것을 누리려고 하였는가? 하나님이 만물을 인류에게 베풀어 주자 사탄은 집어삼키려 하였고 집어삼킨 다음 또 하나님께 “나에게 경배하라, 나에게 경배하면 내가 이런 것들을 다 당신에게 주리라”고 말하였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추악한 몰골이다. 정말 수치를 모른다. 그렇지? 사탄은 ‘수치’라는 이 단어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또 사탄의 사악함을 볼 수 있다. 사탄은 무엇을 ‘수치’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사탄은 하나님이 만물을 만들었고 또 만물을 관리하고 주재한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다. 이 만물은 다 하나님의 소유이고 사람에게 속하지 않으며 더욱이 사탄에게도 속하지 않지만 마귀 사탄은 낯가죽이 두꺼워 파렴치하게 이 만물을 하나님께 주겠다고 말하였다. 사탄은 또 한 번 황당하고 파렴치한 짓을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하나님은 사탄을 더 혐오하게 되었다. 그렇지? 하지만 사탄이 어떻게 했든, 주 예수가 그것의 속임수에 빠졌는가? (아닙니다.) 주 예수는 어떻게 말씀했는가?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실제 의의가 있는가? (있습니다.) 어떤 실제의 의의가 있는가? 사탄의 말에서 그것이 사악하고 파렴치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럼 인류가 사탄에게 경배한다면 어떤 결말을 얻겠는가? 만국의 부귀영화를 얻을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사람도 사탄처럼 파렴치하고 가소롭게 되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사탄과 똑같이 된다. 그러므로 주 예수가 한 이 말씀은 각 사람에게 있어 매우 중요하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다시 말하면, 주님 외에, 하나님 외에, 네가 다른 것을 섬기고 마귀 사탄을 섬긴다면, 너는 사탄과 한 패거리가 되고 그것과 마찬가지로 파렴치하고 사악하게 되며, 하나님을 시험하고 공격하게 된다. 이러면 너의 결말은 무엇이겠는가? 하나님께 혐오받고 격살(擊殺)되고 훼멸된다. 그렇지 않은가? 사탄이 주 예수를 여러 번 시험하여 성공하지 못했을 때, 또 시험했는가? 더 이상 시험하지 않고 물러갔다. 이것은 무엇을 증명하는가? 사탄의 사악한 본성과 악독, 그리고 그것의 그릇됨과 황당함은 하나님 앞에서 언급할 가치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 예수가 단 세 마디로 사탄을 이겨 사탄을 몸 둘 바 모르게 하였고 기가 죽어 물러가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더 이상 예수를 시험하지 못하였다. 주 예수는 이미 사탄의 그 시험을 이겼기 때문에 자신이 하려는 사역을 순조롭게 계속할 수 있었고 그가 담당하려는 사역을 계속할 수 있었다. 주 예수가 한 그런 말과 일들은 지금에 와서도 각 사람에게 실제적 의의가 있지 않은가? (있습니다.) 어떤 실제적 의의가 있는가? 사탄을 이기는 것은 쉬운 일인가? (아닙니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사람은 사탄의 사악한 본성에 대해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탄의 시험에 대해 정확한 인식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있어야 합니다.) 네가 사탄의 시험을 경력할 때, 그것의 사악한 본성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사탄을 이길 수 있지 않겠는가? 네가 사탄의 그릇됨과 황당함을 알게 되면 또 그놈의 편에 서서 함께 하나님을 공격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습니다.) 네가 사탄의 파렴치함과 악독함이 자신에게서 유로되는 것을 알고 분명히 의식하고 인식하게 되면 또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을 공격하고 시험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하겠는가? (사탄을 배반하고 그것과 단절할 것입니다.) 그건 해내기 쉬운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사람은 항상 기도하고 항상 하나님 앞에 와서 자신을 성찰해야 하고,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 형벌을 받아야만 점차적으로 사탄의 지배와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탄이 한 이런 말에서 사탄의 실질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우리가 총결해 보도록 하자. 우선 사탄의 실질은 총체적으로 말하면 사악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과 서로 대비된다. 왜 사악하다고 하는가? 그것은 사탄이 사람에게서 일하여 도달하는 결과에 근거해 보아야 한다.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고 또 지배하고 있으며, 사람은 사탄의 패괴된 성정 가운데서 살면서 일을 저지르고, 사탄이 패괴시킨 세상과 사람들 가운데서 살고 있어서 부지중에 사탄에게 점유되고 동화되어 그것의 사악한 본성을 갖게 되었다. 사탄의 모든 언행에서 사탄이 교만하고 궤사하고 악독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사탄의 교만은 주로 어떻게 드러나는가? 사탄은 늘 하나님의 지위를 차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사탄은 늘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지위를 없애고 자신이 그 지위를 차지하여 사람들이 그것을 따르고 옹호하고 경배하게 하려 한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교만한 본성이다. 하지만 사탄이 인류를 패괴시킬 때에는 궤사하고 음험하였다. 사탄은 사람에게 일할 때 직접 어떻게 하나님을 거절하고 대적하는지 알려 주지 않았고 하나님을 시험할 때에도 “내가 당신을 시험하고 공격하리라”고 말하지 않았다. 사탄은 어떤 방식을 썼는가? (유인하는 방식을 썼습니다.) 유인하고, 시험하고, 공격하고, 덫을 놓고, 심지어 성경의 말까지 인용하였다. 그렇게 각종 방식으로 말하고 일을 저질러 그것의 음험하고 사악한 목적을 달성하려 하였다. 사탄이 이렇게 하고 난 후, 사람에게서 어떤 것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었는가? 사람도 교만하지 않은가? 사람은 사탄에게 수천 년 동안 패괴되어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간교하고 악독하며, 이치가 통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 이것은 다 사탄의 본성이 사람에게 가져다준 것이다. 사탄의 본성이 사악한 연고로, 그것이 사람에게 가져다준 것도 바로 이런 사악한 본성과 사악한 패괴 성정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사탄의 패괴된 성정에서 살게 되었고, 사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공격하고 시험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