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

목차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

하나님의 진노는 감춰져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람의 범함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무지하고 우매한 전 인류를 주로 긍휼과 관용 위주로 대하고, 하나님의 진노는 대부분의 시간과 일에서 모두 감추어지고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가 드러나는 것을 보기 매우 어렵고, 하나님의 진노를 이해하기도 매우 어렵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사람을 관용하고 사람을 용서하는 하나님의 마지막 한 부분 사역과 마지막 한 절차가 사람에게 임했을 때 즉, 하나님의 마지막 한 번의 긍휼과 마지막 한 번의 경고가 사람에게 임했을 때에도 만약 사람이 여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하나님께 대항하고 전혀 회개치 않고 돌이키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관용과 인내를 더 이상 이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지 않는다. 반대로, 이때는 하나님이 긍휼을 거둘 것이고, 이에 따라 그가 사람에게 발하는 것은 오로지 진노밖에 없다. 그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의 진노를 나타낼 수 있고 사람을 징벌하고 멸할 수도 있다.

하나님이 불사름의 방식으로 소돔 성을 멸하였는데, 이 방식은 하나님께 있어서 한 인류나 한 물체를 철저히 멸하는 가장 빠른 방식이다. 불로 그 인류를 불사른 것은 그들의 육체만 멸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더욱이 그들의 영, 혼, 체를 전부 멸하여 그로부터 그 성의 인류가 물질세계와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도 더는 존재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의 한 가지 방식의 유로와 표현이다. 이런 방식의 유로와 표현은 하나님의 진노의 한 방면의 실질이자 당연히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실질의 유로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발할 때, 하나님은 더 이상 그 어떤 긍휼과 자비도 유로하지 않고, 그의 관용과 인내도 더는 나타내지(원문: 釋放) 않는다.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일도, 그 어떤 이유로도 하나님을 계속 인내하도록 설득시킬 수 없고, 긍휼과 관용을 재차 베풀도록 설득시킬 수 없다. 그 대신 하나님은 일분일초도 늦추지 않고 그의 진노와 위엄을 드러내고 그가 하려는 일을 하는데 깔끔하고 마음에 꼭 들게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범함을 용납치 않는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의 발표 방식이자 또한 공의로운 성품의 한 방면의 표현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염려하고 사랑하는 것을 사람들이 보게 될 때, 하나님의 진노를 발견할 수 없고 하나님의 위엄을 볼 수 없고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음을 느낄 수 없는데, 이런 것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는 오로지 긍휼과 관용 그리고 사랑만 있다고 줄곧 착각하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한 성을 멸하고 한 인류를 증오하는 것을 사람이 보게 될 때, 인류를 멸하는 그의 노기와 위엄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다른 한 측면을 보게 할 것인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의 범함을 용납치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의 범함을 용납치 않는 하나님의 성품은 그 어떤 피조물도 상상할 수 없고, 또한 그 어떤 비피조물도 간섭하거나 영향을 줄 수 없으며, 더욱이 사칭하거나 모방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방면의 성품은 인류가 꼭 인식해야 할 성품의 한 방면이다.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이런 성품이 있고 또한 하나님 자신만이 이런 성품을 구비하고 있다. 하나님이 이런 공의로운 성품을 구비한 것은 그가 사악함과 흑암 그리고 패역을 증오하고 인류를 패괴시키고 인류를 삼키는 사탄의 온갖 악행을 증오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며, 그에게 대항하는 모든 죄악된 행위를 증오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며, 그의 거룩하고 흠 없는 실질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그는 어떤 피조물이든, 비피조물이든 간에 그에게 공개적으로 대항하고 겨루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설령 그가 전에 긍휼히 여겼던 사람일지라도, 설령 그가 택한 사람일지라도 그의 성품을 촉노하고 그의 인내와 관용의 원칙을 거스르기만 하면 그는 가차 없이, 조금도 망설임 없이 사람의 범함을 용납치 않는 그의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내고(원문: 釋放) 유로할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모든 정의의 힘과 긍정적 사물의 보장이다

하나님이 말씀하고 생각하고 행한 이런 사례들을 알아감을 통해 너는 사람의 범함을 용납치 않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인식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이 방면의 성품에 관해 사람이 얼마를 인식할 수 있든지, 어쨌든 모두 하나님 자신만이 갖고 있는 성품의 한 방면이다.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음과 위엄은 하나님 자신만이 갖고 있는 실질이고,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 자신만이 갖고 있는 성품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노를 발하는 원칙은 하나님 자신만이 갖고 있는 신분과 지위를 대표하는데, 말할 필요 없이 그것도 역시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의 실질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하나님 자신의 고유한 실질이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 변화도 있을 리 없고, 지리적 위치가 바뀐다 해서 바뀔 리도 없다. 그의 원래 성품은 그의 고유한 실질이다. 그의 역사 대상이 누구이든지 그의 실질과 공의로운 성품은 바뀔 리가 없다. 사람이 하나님을 촉노했을 때, 하나님이 발하는 것은 그의 원래의 성품인데, 이때 그가 노를 발하는 원칙은 변하지 않고 그의 유일무이한 신분과 지위도 변하지 않는다. 그가 노를 발하는 원인은 그의 실질에 변화가 생겼거나 그의 성품에 다른 요소가 생겨서가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께 대항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범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공개적인 도발은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하나님이 보기에,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도전은 바로 하나님과 겨루고 있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의 노기를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대항할 때, 하나님과 겨룰 때, 부단히 하나님의 노기를 시험하고 있을 때가 바로 죄악이 범람할 때인데, 그때면 하나님의 진노가 자연히 유로되고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진노를 발하는 것은 모든 사악한 세력이 더는 존재하지 않고 모든 적대 세력이 훼멸되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유일무이함이고 하나님 진노의 유일무이함이다. 하나님의 존엄과 하나님의 거룩함이 도전을 받을 때, 정의의 힘이 저지당하고 사람에게 보이지 않을 때가 바로 하나님이 진노를 발할 때이다. 하나님의 실질로 인해 땅 위에서 무릇 하나님과 겨루며 적대하고 맞서는 이런 세력은 다 사악하고 패괴된 것이며 비정의이고 사탄에게서 온 것이며 사탄에게 속한 것이다. 하나님은 정의롭고 광명하며 거룩하고 흠이 없으므로 사악하고 패괴되고 사탄에게 속한 모든 것은 하나님이 진노를 발함에 따라 다 사라질 것이다.

비록 하나님이 진노를 발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한 방면의 표현이지만 하나님이 노를 발하는 것에 원칙이 없거나 대상을 구별하지 않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절대로 쉽게 노하지 않을 것이고, 그의 진노와 위엄도 절대로 쉽게 유로하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진노는 매우 적당한 한도와 척도가 있는데, 그것은 사람이 화를 내거나 울분을 토로하는 것과는 절대로 같지 않다. 성경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대화한 것이 기록되었는데, 어떤 사람이 한 말은 깊이가 없고 아주 우매하여 영아와 같다. 이런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은 결코 격살하지 않았고 그들의 죄를 정하지도 않았다. 특히, 욥이 시련을 받는 기간에 욥의 세 친구와 다른 사람들도 욥에게 약간의 말을 했는데, 여호와 하나님이 이런 말을 들은 후 그들을 어떻게 대하였는가? 그들을 정죄하였는가? 그들에게 노를 발하였는가? 그러지 않았다! 하나님은 욥에게 그들을 위해 간구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알려 주고 그들의 과실을 기억하지 않았다. 이런 것은 모두 패괴된 무지한 인류를 대하는 하나님의 주요한 태도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진노를 발하는 것은 절대로 하나의 정서적인 표현이나 발산이 아니며, 하나님의 진노는 사람이 이해하는 노기의 전체 폭발이 아니며, 그가 진노를 발하는 것은 정서를 스스로 억제하기 어려워서가 아니고, 또한 울분이 극도에 달해 쏟아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아니다. 반대로, 그의 진노는 그의 공의로운 성품의 드러남이고 또한 공의로운 성품의 참된 표현이며 그의 거룩한 실질의 상징적인 유로이다. 하나님이 진노여서 사람의 범함을 용납치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노하는 데에 원인을 따지지 않거나 원칙이 없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원인을 따지지 않고 원칙이 없이 함부로 화를 내는 것은 패괴된 인류의 특허이다. 사람은 일단 지위가 있으면 정서를 종종 자제할 수 없어 걸핏하면 트집을 잡아 분풀이하고 불만을 털어놓고, 기분을 풀기를 좋아하고 항상 공연히 화를 내며, 자기의 능력을 자랑하여 사람들에게 그의 신분과 지위가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물론 지위가 없는 패괴된 인류의 정서도 항상 통제력을 잃는데, 그들이 화를 내는 것은 항상 개인의 이익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자기의 지위와 존엄을 지키기 위해 패괴된 인류는 자주 정서를 쏟아 내고 오만한 본성을 유로한다. 사람이 화를 내는 것과 분풀이하는 것은 모두 죄악의 존재를 수호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불만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인데, 여기에는 뒤섞임과 음모 그리고 간계로 가득 차 있고 또한 사람의 패괴와 사악함도 가득 차 있으며, 더욱이 사람의 야심과 욕망도 가득 차 있다. 정(正)과 사(邪)의 겨룸에서 사람은 정의의 존재를 수호하기 위해 화를 내지는 않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정의의 힘이 위협을 받고 박해당하고 공격을 받을 때, 사람의 태도는 멸시하고 피하거나 뒤로 물러서는 것이지만, 사악한 세력을 대함에 있어서는 비위를 맞추고 굴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분풀이는 사악한 세력의 출구이고, 혈기에 속한 사람의 악행이 범람하고 억제하기 어려운 것에 대한 표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가 발할 때는 모든 사악한 세력과 사람을 해하는 모든 죄악이 제지당하며, 하나님의 사역을 가로막는 모든 적대 세력이 드러나 분리되고 저주를 받으며, 하나님과 적대하는 사탄의 모든 공범자들이 징벌을 받고 진멸될 것이다. 그 대신에 하나님의 사역은 막힘없고 하나님의 경영 계획은 한 단계 한 단계씩 예정대로 앞을 향해 전개되며, 하나님의 선민은 사탄의 방해와 미혹을 받지 않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모두 안정되고 평온한 환경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공급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의 진노는 모든 사악한 세력이 퍼지거나 범람할 수 없는 보장이 되고, 또한 모든 정의와 긍정적인 사물이 존재하고 전해지고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전복되지 않는 보장이 된다.

하나님이 소돔을 멸한 이 일에서 너희는 하나님 진노의 실질을 보았는가? 하나님의 노기에 뒤섞임이 있는가, 없는가? 하나님의 노기는 순결한 것인가, 아닌가? 사람의 말로 하면, 하나님의 진노는 순수하지 않은가? 하나님의 진노 뒤에 간계와 음모 그리고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는가? 나는 너희에게 당당하게 알려 줄 수 있다. “하나님의 진노에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심하게 하는 그 어떤 요소도 없다. 그가 노를 발하는 것은 순수한 것이지 그 어떤 다른 속셈이나 목적도 없는 것이다. 그가 노하는 원인은 순결하고 나무랄 데가 없고 흠 잡을 수 없으며, 그의 거룩한 실질의 자연적 유로와 발표이고 그 어떤 피조물도 구비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공의로운 성품의 일부분이고, 또한 조물주와 피조물의 실질상에서 확연히 다른 점이다.”

한 사람이 사람 앞에서나 사람 뒤에서 화를 내든지 모두 서로 다른 속셈과 목적이 있는데, 아마 자신의 위신을 세우거나 이익을 지키고 자신의 이미지와 체면을 지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화를 내는 것에 기준이 있지만 어떤 사람은 함부로 화내고 기준도 없다. 화내고 싶으면 화를 내는데 아주 제멋대로이고 제약을 조금도 받지 않는다. 어쨌든 사람이 내는 화는 다 사람의 패괴 성품에서 온 것이다.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든 다 혈기와 천연적인 것에 속하므로 정의와 비정의를 논할 여지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본성 실질 안에는 진리와 합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패괴된 인류의 화를 하나님의 진노와 함께 논할 수 없다.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의 모든 행동의 출발점은 패괴를 지키지 않기 위한 것이 하나도 없고 패괴에 근거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이 이론상으로 얼마나 정당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노함과 함께 논할 수 없다. 하나님이 노를 발할 때, 사악한 세력이 제지당하고 사악한 것이 훼멸되며, 정의롭고 긍정적인 사물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아 유지될 수 있다. 하나님이 진노를 발하는 까닭은 비정의이고 부정적이고 사악한 사물이 정의롭고 긍정적인 사물의 정상적인 진행과 발전을 가로막고 방해하거나 파괴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노를 발하는 목적은 하나님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의롭고 긍정적이고 아름답고 선한 사물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서이고, 인류의 정상적인 생존 규칙과 법칙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진노를 발하는 근원이다. 하나님의 노기는 하나님 성품의 매우 정당하고 매우 자연스럽고 매우 진실한 유로이다. 그의 노기의 뒤에는 속셈이나 교활함, 음모가 없고 더군다나 패괴된 인류에게 공존하는 욕망, 간사함, 악독, 폭력과 사악함 등등의 요소가 그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나님은 진노를 발하기 전에 이미 매 한 가지 일의 실질을 다 분명하고 뚜렷하게 보았고, 매 한 가지 일에 대해 이미 정확하고 분명한 정의와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매 한 가지 일을 하는 목표는 다 아주 명확하고 그의 태도도 아주 명확하다. 그는 흐리멍덩하거나 맹목적이지 않고, 일시적인 충동이 아니며, 아무렇게나 하지 않고, 원칙이 없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것도 역시 하나님 진노의 실제적인 면인데, 인류는 바로 하나님 진노의 실제적인 면으로 말미암아 정상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를 잃으면 인류는 곧 정상적이지 못한 생활의 경지로 빠져들고, 모든 정의롭고 아름답고 선한 사물은 훼멸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를 잃으면 피조물의 생존 법칙과 규칙이 파괴될 것이고 심지어 철저히 전복될 것이다. 인류가 피조된 이래, 하나님은 그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인류의 정상적인 생존을 부단히 지키고 유지해 왔다. 그의 공의로운 성품에 진노와 위엄이 있기 때문에 사악한 모든 인ㆍ사ㆍ물, 인류의 정상적인 생존을 방해하고 파괴하는 모든 것은 다 그의 진노로 인해 징벌받고 통제되고 훼멸된다. 몇천 년 이래 하나님은 인류를 경영하는 사역 가운데서 그에게 대항하고 사탄의 공범자와 사탄의 심부름꾼의 역을 맡은 각 부류의 더러운 귀신과 악령들을 그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끊임없이 격살하고 멸하였다. 이에 따라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역도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줄곧 앞을 향해 매진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인류 가운데서 가장 정의로운 사업이 하나님 진노의 존재로 말미암아 여태껏 파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 진노의 실질에 대해 이해가 있게 된 후에 너희는 사탄의 사악함에 대해서도 더 높아진 분별이 틀림없이 생겼을 것이다!

사탄이 겉으로는 선량하고 도덕적이지만 실질은 흉악하고 사악하다

사탄은 세상 사람을 속이고 명예를 훔치면서 늘 정의의 선봉자나 본보기로 자신을 수립한다. 그것은 정의를 수호한다는 깃발을 내걸고 사람을 해하고 영혼을 삼키며, 각종 수단으로 사람을 마비시키고 미혹하고 부추기고 있는데,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의 악행을 인정하고 따르게 하여 그것과 함께 하나님의 권병과 주재에 대항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그것의 음모와 간계 그리고 추악한 몰골을 간파하여 그것에게 계속 짓밟히거나 우롱당하는 것을 원치 않고, 그것을 위해 계속 목숨을 바치거나 그것과 함께 징벌받고 훼멸되는 것을 원치 않을 때, 사탄은 지난날의 보살의 몰골을 완전히 바꾸어 거짓 가면을 벗고 사악하고 악랄하고 추하고 흉악하고 잔인한 원형을 드러내고, 그것에게 순종하지 않고 사악한 세력에 반항하는 모든 사람을 소멸하지 못해 안달한다. 그때의 사탄은 더 이상 사람에게 신뢰받을 만한 정인군자의 모습으로 가장하지 못하고, 그 대신 양가죽 뒤에 숨겨져 있던 추한 악마의 원형을 드러낸다. 사탄의 음모가 일단 드러나고 원형이 폭로되면, 바로 노발대발하고 야수의 본성을 드러내면서 사람을 해하고 삼키려는 욕망이 더 강해진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람의 각성으로 인해 격노하고, 자유와 광명을 바라며 사탄의 농락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의 염원으로 인해 사람에 대하여 강렬한 보복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것이 노발대발하는 것은 그것의 사악을 지키기 위한 것이고, 또한 그것의 흉악하고 잔인한 본성의 진실된 유로이다.

사탄의 행위는 곳곳에서 그것의 사악한 본성을 유로한다. 그것이 사람을 미혹하여 그것을 따르게 해서부터 사람을 이용해 그것과 한패가 되게 하기까지, 또 그것의 원형이 폭로되어 사람에게 간파되고 버림당한 후 사람에 대해 생긴 사탄의 보복까지 등등 사탄이 사람에게 행한 갖가지 모든 악행은 사탄의 사악한 실질을 폭로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고, 사탄이 긍정적인 사물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실증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으며, 사탄이 모든 사악한 사물의 근원임을 실증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것의 모든 행위는 다 그것의 사악을 지키고 그것의 악행이 계속되는 것을 유지하는 것이며, 다 정의롭고 긍정적인 사물과 어긋나고, 인류의 정상적인 생존 법칙과 규칙을 파괴하고 하나님과 적대하는 것이며, 다 하나님의 진노에 의해 훼멸되어야 하는 것이다. 비록 사탄도 분노가 있지만 그것의 분노는 그것의 사악한 본성을 쏟아 내는 방식이다. 사탄이 악에 받치고 노발대발하는 원인은 바로 그것의 어두운 음모가 밝혀지고, 그것의 간계가 목적 달성이 어렵게 되고, 하나님을 대신하고 하나님이 되려는 야심과 욕망이 타격을 받고 저지를 당해 이로부터 전 인류를 통제하려는 그것의 목적이 물거품이 되어 영원히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한 차례 또 한 차례 내린 진노가 사탄의 음모가 실현되는 것을 저지했고, 사탄의 사악함이 번식하고 범람하는 것을 중단시켰다. 이로 인해 사탄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증오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매번 임할 때마다 사탄의 추악한 원형을 폭로했을 뿐만 아니라 사탄의 사악한 욕망도 빛 가운데 드러나게 했고, 동시에 사탄이 인류에게 분노를 폭발하는 원인도 남김없이 드러냈다. 사탄이 분노를 폭발하는 것은 그것의 사악한 본성의 진실한 유로이고, 그것의 음모의 폭로인 것이다. 물론, 사탄이 매번 분노하는 것은 모두 사악한 사물이 파괴되고 긍정적인 사물이 보호받고 계속될 수 있음을 예시하고, 또한 하나님 진노의 범할 수 없음을 예시하고 있다!

경험과 상상에 의해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인식하지 말라

하나님의 심판 형벌이 너에게 임할 때, 너는 하나님이 한 말씀에 뒤섞임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나님 노기의 뒤에도 사연이 있고 뒤섞임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또 하나님을 비방하면서 하나님의 성품도 다 공의로운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한 매 한 가지 일을 대함에 있어서 너는 먼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격살과 징벌 그리고 훼멸을 포함하여,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는 어떠한 뒤섞임도 없고 거룩하고 흠이 없는 것을 확정해야 한다. 하나님이 한 매 한 가지 일은 다 하나님의 고유한 성품과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있는 그대로 발표해 낸 것이다. 이 가운데는 인류의 지식, 전통, 철학이 포함되어 있지 않고, 전적으로 다 하나님의 성품과 실질의 발표로써 패괴된 인류의 그 어떤 것과도 관련이 없다. 사람의 관념에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그리고 관용만 흠과 뒤섞임이 없고 거룩하다고 여길 뿐, 하나님의 노기와 진노에도 뒤섞임이 없다는 것을 인식한 사람이 없고, 심지어 하나님이 왜 사람의 범함을 용납치 않고, 왜 이렇게 크게 노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본 사람도 없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패괴된 인류의 성깔로 잘못 여겨 하나님이 노하는 것을 패괴된 인류가 성질을 부리는 것으로 터득하고, 심지어 하나님이 노하는 것이 사람의 패괴 성품의 자연적 유로와 같다고 착각하고, 하나님이 진노를 발하는 것이 패괴된 인류가 어떤 불쾌한 일을 만나 화를 내는 것과 같다고 착각하며, 심지어 하나님이 진노를 발하는 것도 정서적인 표현의 하나라고 착각한다. 이번의 교통으로 나는 이 자리에 있는 너희 각 사람마다 더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대해 그 어떤 오해나 상상 그리고 추측이 없기를 바라고, 나의 이런 말을 들은 후에 너희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 가운데의 진노에 대해 마음속에 참된 확신이 있고,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이전의 그릇된 터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진노의 실질에 대한 자신의 잘못된 인식과 견해를 바꿀 수 있기를 바란다. 동시에 나는 또 너희 마음속에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하나의 정확한 정의가 있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대해 더는 그 어떤 의심을 갖지 말고, 또한 그 어떤 인위적인 추리나 상상을 하나님의 진실한 성품에 억지로 더하지 말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은 하나님 자신의 진실한 실질이지 사람이 만들어 내거나 창작한 것이 아니다. 그의 공의로운 성품은 곧 그의 공의로운 성품이지 피조물과 어떠한 관계나 관련도 없다. 하나님 자신은 곧 하나님 자신이지 영원히 피조물로 변할 리가 없다. 설사 그가 피조물 중의 일원이 될지라도 그의 고유한 성품과 그의 실질은 바뀔 리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하나의 사물을 인식하거나 물건을 해부하는 것이 아니며 한 사람을 알아보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만약 하나의 사물을 인식하거나 한 사람을 알아보는 관점이나 방식으로 하나님을 알아간다면 하나님을 아는 데에 영원히 도달할 수 없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을 경험이나 상상에 근거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너는 자기의 경험과 상상을 하나님에게 절대로 더하지 말아야 한다. 너의 경험과 상상이 아무리 풍부해도 다 유한한 것이다. 게다가 너의 상상은 사실에 부합되지 않고, 더욱이 진리에도 부합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진실된 성품과 실질에도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너의 상상에 근거하면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는 데에 영원히 도달할 수 없다. 유일한 경로는 바로 하나님에게서 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인 다음 천천히 체험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너의 협력과 진리에 대한 갈급함으로 말미암아 언젠가는 하나님이 깨우쳐 주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을 참되게 알고 깨닫게 할 것이다. 이런 말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