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

목차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하나님의 권병 (1)

2. 하나님이 말씀으로 사람과 언약을 세움

(창9:11~13)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만물을 창조한 데 이어 조물주의 권병은 ‘무지개 언약’에서 또 한 번 실증되고 창현되었다

조물주의 권병은 언제 어디서나 모든 피조물 중에서 창현(彰顯)되고 시행된다. 그는 만물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가 손수 만든 인류━서로 다른 생명 구조가 있고, 서로 다른 생명 형식으로 생존하는 특별한 피조물도 주재하고 있다. 만물을 만든 후, 조물주는 결코 그의 권병과 능력의 발표를 멈추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만물을 주재하고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는 그의 권병은 인류가 참으로 그의 손에서 탄생되는 그 순간부터 비로소 정식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는 인류를 경영하고 인류를 주재하려 하고, 인류를 구원하려 하고, 참으로 인류를 얻으려 하였는데, 만물을 관리할 수 있는 인류를 얻으려 하였다. 그는 이런 인류로 하여금 그의 권병 아래에 살면서 그의 권병을 인식하고 그의 권병에 순복하게 하려 하였다. 이리하여 하나님은 정식으로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말씀으로 그의 권병을 발표하고, 그의 권병으로 그의 말씀을 이루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하나님 권병의 창현은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나는 사람들이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일부 특별한 사례만 골라, 너희로 하여금 그중에서 하나님의 유일무이함을 이해하고 인식하게 하고,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권병을 이해하고 인식하게 하겠다.

<창세기> 9장 11절에서 13절, 이 단락의 말씀은 하나님의 창세에 관해 기록한 위의 몇 단락 말씀과 유사한 부분이 있지만 서로 다른 부분도 있다. 유사한 부분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마찬가지로 말씀으로 그가 하려는 일을 한 것이다. 서로 다른 부분은 이 단락의 말씀이 하나님과 사람과의 대화인 것이다. 이 단락의 대화 내용은 사람과 언약을 세우고, 사람에게 언약에 관한 내용을 알려 준 것이다. 하나님의 그때의 권병의 시행은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류가 만들어지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은 한 가지 분부와 한 가지 명령이었고, 그가 만들려는 피조물에게 반포한 것이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대상이 생겼으므로 그의 말씀은 사람과의 대화이기도 하고, 인류에 대한 그의 부탁과 훈계이기도 하며, 더욱이 만물에게 하달한, 권병을 지닌 그의 명령이기도 하다.

이 단락에 하나님이 한 어떤 일이 기록되었는가? 홍수로 세상을 멸한 후, 하나님이 사람과 세운 언약의 내용이 기록되었는데, 그것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아울러 하나님은 이를 위해 하나의 증거를 만들려 하였다. 이 증거는 무엇인가? 원문에는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고 했다. 이는 인류에게 한 조물주의 본래 말씀이다. 그가 말씀한 동시에 그 무지개가 지금까지 사람의 시선에 나타나고 있다. 무지개를 너희는 다 보았다. 사람이 무지개를 볼 때, 이 무지개가 어떻게 나타난 것인지를 알고 있었는가? 과학은 이 일을 논증할 수 없다. 과학은 그것의 근원을 찾을 수 없고, 그것의 종적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조물주가 사람과 언약을 세운 증거이며, 그것은 과학적 근거가 필요 없고 인위적인 것이 아니고,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조물주가 말씀을 발한 후의 권병의 계속이기 때문이다. 조물주는 사람과 세운 그의 언약과 그의 승낙을 그만이 갖고 있는 방식으로 지키고 있다. 그러므로 무지개의 나타남을 하나님이 언약을 세운 증거로 한 것이다. 이것은 조물주에게 있어서든 아니면 피조된 인류에게 있어서든 모두 영원히 바뀔 수 없는 천상의 계율이고 법칙이다. 지속적으로 변함없는 이 법칙은 조물주가 만물을 만든 후의 권병의 또 한 번의 진실한 체현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고, 조물주의 권병과 능력이 무한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무지개’를 증거로 한 것은 바로 조물주의 권병의 계속과 연신(延伸)이다. 이 일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한 또 한 가지 일이고, 하나님이 말씀으로 사람과 언약을 세운 하나의 증거이다. 그는 사람에게 그가 무엇을 이루려고 뜻을 정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응하게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이루는지를 알려 주었는데, 일은 이렇게 하나님 입의 말씀대로 응했다. 오직 하나님께만이 이 능력이 있다. 그가 이런 말씀을 한 지 몇천 년이 된 오늘날에도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 입으로 말씀한 무지개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한 마디 말씀으로 말미암아 이 일은 줄곧 지금까지 바뀌지 않았고 변화되지 않았다. 아무도 이 무지개를 옮겨 갈 수 없고, 아무도 그것의 규칙을 바꿀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위해 존재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권병이다. “하나님은 말씀하면 꼭 그대로 하고, 그대로 하면 꼭 이루며, 이루면 꼭 영원까지이다.”라는 이 말씀이 여기에서 매우 뚜렷하게 체현되었는데, 이것은 하나님 권병과 하나님 능력의 아주 뚜렷한 증거와 특징이다. 이런 증거와 특징은 어떠한 피조물에게도 구비되지 않았고 볼 수 없으며 어떠한 비피조물 가운데에서도 볼 수 없다. 이런 증거와 특징은 유일무이한 하나님이 특별히 소유한 것인데 그것은 조물주만이 갖고 있는 신분과 실질을 피조물과 구분해 놓았고, 동시에 그것은 하나님 자신을 제외한 모든 피조물과 비피조물이 영원히 초월할 수 없는 증거와 특징이기도 하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사람과 언약을 세운 것은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는 이를 통해 사람에게 하나의 사실을 알려 주고, 그의 뜻도 알려 주려고 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혼자만 갖고 있는 한 가지 방식을 썼는데, 하나의 특별한 증거로 사람과 언약을 세웠고 이런 증거로 사람과 세운 그의 언약을 약속하였다. 그렇다면 이 ‘언약’을 세운 것은 매우 큰 일이 아닌가? 이 일은 어느 정도로 큰가? 이것이 바로 이 ‘언약’의 특이한 점이다. 즉, 그것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과 세운 언약이 아니고, 한 단체가 다른 한 단체와 세운 언약이 아니며, 한 국가가 다른 한 국가와 세운 언약도 아니라 조물주가 전 인류와 세운 하나의 언약이며, 이 ‘언약’의 유효기한은 조물주가 만물을 폐하는 그날까지이며, 이 ‘언약’의 집행자는 조물주이고 그것의 수호자도 역시 조물주이다. 어쨌든, 인류와 세운 ‘무지개 언약’의 모든 것은 다 오늘까지 조물주와 사람과의 대화대로 응하고 이루어지고 있다. 피조물은 조물주의 권병에 대해 순복하고 복종하고 믿고 체득하고 목격하고 칭송하는 것 외에 또 다른 것이 있을 수 있는가? 그것은 유일무이한 하나님 외에 능히 이런 언약을 세울 이러한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무지개가 한 번씩 나타나는 중에서 그것은 인류와 세운 조물주의 ‘언약’을 인류에게 알려 주고 인류에게 제시해 주며, 인류와 세운 조물주의 언약이 부단히 나타나는 중에서 그것이 인류에게 보여 주는 것은 ‘무지개’와 ‘언약’ 자체가 아니라 조물주의 그 영원히 변하지 않는 권병이다. 무지개가 한 번씩 나타나 보여 주는 것은 은밀한 곳에서 경천동지하는 조물주의 기묘한 행사이고, 아울러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조물주의 권병의 활력의 체현이기도 하다. 이런 것은 조물주의 다른 한 방면의 유일무이한 권병의 창현이 아닌가?

3. 하나님의 축복

1) (창17:4~6)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2) (창18:18~19)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3) (창22:16~18)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4) (욥42:12)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조물주만이 갖고 있는 말씀 방식과 특징은

조물주의 유일무이한 신분과 권병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축복은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고 싶어하고 얻고 싶어하는 것이지만 각 사람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원칙이 있고, 그는 그의 방식대로 사람에게 복을 베풀어 주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떤 약속을 주고 사람에게 얼마만한 은혜를 주는가는 다 사람의 모든 생각과 사람의 모든 행위에 근거하여 분배하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의 축복은 무엇을 설명하는가? 또 사람으로 하여금 그 가운데서 무엇을 보게 하는가? 여기서 우리 잠시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복을 베풀어 주는지를 논하지 말고 하나님이 사람을 축복해 주는 원칙도 논하지 말고, 그래도 하나님의 권병을 인식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을 보고, 하나님의 권병을 인식하는 이 각도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보자.

이상의 4단락 경문은 모두 하나님이 사람에게 복을 베풀어 준 것에 관한 기록인데, 하나님이 축복하려는 대상, 예컨대 아브라함과 욥을 상세하게 기술했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복을 베풀어 준 원인도 상세하게 기술했으며 동시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복을 베풀어 준 내용도 상세하게 기술했다. 하나님이 말씀하는 말씨와 방식, 하나님이 선 각도와 위치에서 사람으로 하여금 복을 베푸는 자와 받는 자는 분명히 다른 신분, 지위와 실질이 있음을 느끼게 할 수 있다. 말씀하는 이런 말씨, 방식과 선 위치는 조물주의 신분을 지닌 하나님만이 갖고 있는 것이다. 그는 권병과 위력을 지니고 있고, 조물주의 존귀와 그 누구도 의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위엄도 지니고 있다.

먼저 창세기 17장 4절에서 6절을 보자.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이 몇 구절 말씀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세운 약속이자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다. 즉, 하나님이 그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고, 그의 후대를 심히 번성하게 하려 하였으며, 또한 그에게서 나라가 세워지고, 그에게로부터 왕들이 나오리라고 말씀한 것이다. 너는 이 몇 마디 말씀에서 하나님의 권병을 보았는가? 너는 어떻게 하나님의 권병을 본 것인가? 너는 하나님 권병의 어떤 방면의 실질을 보았는가? 이 몇 마디 말씀을 자세히 읽어 보면 발견하기 쉬운데, 하나님의 권병과 하나님의 신분은 하나님 말씀의 단어 사용에서 매우 뚜렷이 유로되었다. 예컨대, 하나님이 말씀한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될지라 ……내가 너로……하리니” 중의 “너는……될지라”, “내가……하리니” 등등 하나님 신분과 권병을 지닌 이런 확실성이 있는 어휘 사용은 한 방면은 조물주의 신실함이고, 다른 한 방면은 그것들이 다 조물주의 신분을 지닌 하나님의 전용어이자 관용어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의 후대가 심히 번성하고 그에게서 나라가 세워지고 왕들이 나오리라고 축복한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한가지 소원일 뿐이지 결코 한 가지 약속이나 축복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감히 “내가 너로 어떻게 어떻게 되게 하리라, 내가 너를 어떻게 어떻게 하리라……”고 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제 자신이 이 권력을 구비하지 못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말해도 결정할 수 없고, 설령 이렇게 말했다 해도 한 마디 빈말이고, 한 마디 쓸데없는 말이며 사람의 욕망과 야심이 부추긴 것이다. 사람이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여길 때, 감히 이렇게 호언장담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모두 좋은 소원이 있고, 후대가 모두 벼락출세하고 남보다 뛰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만약 황제가 될 후대가 하나 생길 수 있다면 정말 가장 큰 행운이다! 성장감이 나와도 괜찮고 사람 위의 사람이 되기만 하면 된다!’ 이런 것은 다 사람의 소원이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의 후대를 위해 축복을 서원할 뿐 어떤 사람에게 준 약속이나 승낙을 이행하거나 이룰 수 없다. 사람은 모두 속으로 사람에게 이런 것에 달할 이 권력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있다. 사람은 제 자신의 모든 것도 다 자기 생각대로 할 수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할 수 있는 까닭은 하나님께 이런 권병이 있으며 그가 사람에게 준 모든 약속을 성취할 수 있고, 실현시킬 수 있으며, 사람에게 주는 모든 축복을 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니 하나님이 한 사람의 후대를 심히 번성하게 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며, 그가 한 사람의 후대를 흥성하게 하는 것도 단 한 마디 말로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전혀 이를 위해 수고하지 않고, 이를 위해 골머리를 앓거나 마음 아파하며 걱정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권병이다.

<창세기> 18장 18절에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라는 이 말씀을 본 후, 너희는 하나님의 권병을 느낄 수 있는가? 조물주의 비범함을 느낄 수 있는가? 조물주의 지고지상함을 느낄 수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확실하다.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한 것은 하나님께 필승의 확신, 이런 신심이 있어서가 아니고 또는 하나님께 필승의 확신, 이런 신심이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권병의 실증이고, 그의 말씀이 응할 수 있는 한 가지 명령이다. 여기에 너희의 주의를 끌 두 단어가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라고 한 이 말씀에 애매모호한 요소가 있는가? 근심의 요소가 있는가? 두려움의 요소가 있는가? 인류의 몸에서 자주 표현되는 사람의 이런 특유한 요소는 하나님 말씀 중의 “必要(반드시……되고)”와 “必因(반드시……말미암아)”, 이 두 단어로 인해 조물주와 전혀 조금의 관련도 없다. 감히 이런 어휘를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데에 쓰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또 감히 확실하게 다른 사람에게 하나의 강대한 나라를 축복해 주거나 천하 만민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는 사람도 하나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확실할수록 무엇을 실증하는가? 하나님께 이런 권병이 구비되고 하나님의 권병이 이런 일을 이룰 수 있음을 실증하며, 하나님이 반드시 이런 일을 이룰 것임을 실증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한 이 모든 것은 하나님 마음속에서는 확실한 것이고 단호한 것이다. 또한 그가 그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이룰 것이니 어떠한 세력도 이 일의 응함을 바꿀 수 없고, 가로막을 수 없고 파괴할 수 없고 방해할 수 없다. 어떤 일이 발생하든지 하나님 말씀의 응함과 성취를 중지할 수 없고, 하나님 말씀의 응함과 성취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조물주의 입에서 나온 말씀의 위력이자 역시 사람이 부인해서는 안 되는 조물주의 권병이다! 네가 이 말씀을 다 읽을 때는 마음에 또 의심이 있겠는가? 이런 말씀은 하나님 입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을 띠고 있고 위엄을 띠고 있으며 권병을 띠고 있다. 이런 위력과 이런 권병 그리고 사실이 이루어지는 필연성은 그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도 달할 수 없는 것이고, 그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도 초월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조물주만이 이런 말씨와 이런 어조로 인류와 대화할 수 있다. 사실에서 그의 약속이 빈말이 아니고 큰소리가 아니라 모든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이 초월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권병의 발표임을 증명한다.

하나님이 한 말씀과 사람이 한 말은 어떤 구별이 있는가? 네가 하나님이 한 이런 말씀을 볼 때는 하나님 말씀의 위력과 하나님의 권병을 느끼게 된다. 만약 네가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듣게 된다면 어떤 느낌이 들겠는가? 너는 이 사람이 너무 오만하다고 느껴지고 그가 큰소리치고 있고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겠는가? 그는 이런 능력이 없고 이런 권병을 구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전혀 이룰 수 없다. 그가 이렇게 확실하게 약속하면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만약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틀림없이 오만한 것이고 주제를 모르는 것이며, 전형적인 천사장 성정의 유로이다. 이 말은 하나님 입에서 나온 것인데 너는 여기에 오만의 요소가 있다고 느낄 수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어린애 장난이라고 느낄 수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곧 권병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곧 사실이다. 그의 말씀이 입에서 나오기 전에, 즉 그가 이 일을 이루기로 작정했을 때, 이 일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가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한 말씀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세운 약속이자 역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이다. 이 약속은 이미 정해진 사실이자 이미 이루어진 사실이다. 이런 사실들은 하나님의 생각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점차 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하였다 하여 결코 하나님께 오만한 성정이 있음을 뜻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런 일을 이룰 수 있고 그에게 이런 능력이 있고, 그에게 이런 일을 완전히 이룰 수 있는 이런 권병이 있으며, 이런 일을 이루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능력 범위의 일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말이라 해도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진실한 성품의 유로와 발표이고, 하나님 실질과 하나님 권병의 완벽한 유로와 표현이자 역시 조물주 신분의 가장 합당하고 가장 적합한 증명이다. 이런 말씀의 방식, 말투, 단어 사용은 바로 조물주 신분의 상징이고, 하나님 자신의 신분에 완전히 부합되는 나타냄이다. 이 가운데는 가식이 없고 뒤섞임이 없는데 완전히 조물주의 실질과 권병의 완벽한 나타냄이다. 피조물에게는 이런 권병도 없고 이런 실질도 없으며, 더욱이 하나님이 부여한 능력도 없다. 사람에게 만약 이런 유로가 있다면 의심할 바 없이 패괴 성정의 폭발이고 사람의 오만과 야심이 작용한 것이며, 사람을 미혹하고 사람을 유혹하여 하나님을 배반하게 하려는 전형적인 마귀 사탄의 악독한 존심의 폭로이다. 하나님은 이런 말의 유로를 어떻게 대하는가? 하나님은 네가 하나님과 지위를 다투려 하고 하나님으로 사칭하려 하고 하나님을 대체하려 한다고 말씀할 것이다. 네가 하나님이 말씀하는 말씨를 모방하는 존심은 바로 사람 마음속에서의 하나님의 지위를 대체하고 본래 하나님께 속해야 할 인류를 강점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사탄이고, 천사장의 후예가 하는 것이며, 천리(天理)로써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너희들 가운데 누가 전에 어떤 한 가지 방식으로 하나님을 모방해 얼마간의 말을 하여 일부러 사람을 잘못 이끌고 미혹시켜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말하고 일하는 데에 하나님의 권병과 위력을 띠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실질과 신분이 남다른 것 같이 느껴지게 하고, 심지어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말하는 말투가 하나님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느껴지게 한 적이 있는가? 너희는 이런 일을 한 적이 있는가? 전에 하나님의 말씨를 모방해 말하고, 소위 하나님 성품을 대표하는 손동작을 하고, 소위 위력과 소위 권병을 띤 적이 있다면, 이런 표현은 너희 대다수 사람들이 늘 해 오던 것이나 하려고 생각했던 일이 아닌가? 이제 너희가 조물주의 권병에 대해 진정 보고 견식을 넓히고 인식했을 때, 다시 그때 너희가 한 것, 유로한 것을 회상해 본다면 메스껍지 않겠는가? 너희의 비열함과 파렴치함이 인식되지 않겠는가? 이런 부류 사람의 성정과 실질을 해부하면, 그들을 저주스러운 지옥의 자식들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무릇 이런 일을 한 사람은 다 굴욕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너희는 이 성질의 심각성을 인식했는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 사람이 이렇게 하는 존심은 바로 하나님을 모방하려 하고, 자기가 하나님이 되려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하나님으로 경배하게 하려 하고, 사람 마음속에서의 하나님의 지위를 없애려 하고,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하나님을 쫓아내어 자기가 사람을 통제하고 삼키고 점유하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다. 사람의 잠재의식 속에는 다 이런 욕망과 야심이 있다. 사람마다 모두 사탄이 패괴시킨 이런 실질 안에서 살고 있고, 모두 하나님과 적대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이 되려는 이런 사탄 본성 안에서 살고 있다. 하나님의 권병, 이 방면에 관한 화제를 교통하였는데, 너희에게 아직도 하나님으로 사칭하고 하나님을 모방하려는 욕망과 야심이 있는가, 없는가? 아직도 하나님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는가, 없는가? 아직도 하나님이 될 욕망이 있는가, 없는가? 하나님의 권병은 사람이 모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는 사람이 사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비록 하나님이 말씀하는 말투는 모방할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실질은 모방할 수 없다. 네가 비록 하나님의 지위에 서서 하나님으로 사칭할 수 있을지라도 영원히 하나님이 하려는 일을 할 수 없고, 영원히 만물을 주재하거나 주관할 수 없다. 하나님의 안중에서 너는 영원히 작디작은 피조물에 불과하다. 너의 능력과 재능이 얼마나 많든지, 네가 얼마나 많은 은사를 갖고 있든지, 너의 모든 것은 다 조물주의 권세 아래에 있다. 설사 네가 몇 마디 준엄한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너에게 조물주의 실질이 있음을 설명할 수 없고, 너에게 조물주의 권병이 있음을 대표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은 하나님 자신의 실질이지 배운 것이 아니고 외부에서 더해 준 것이 아니며, 하나님 자신의 고유한 실질이다. 그러므로 조물주와 피조물의 관계는 영원히 바뀔 수 없는 것이다. 피조물 중의 일원으로서 사람은 반드시 자기의 본위를 지키고 참답게 살며 조물주가 너에게 준 부탁을 충실하게 지켜야지 분수에 넘치는 일을 하지 말고 자기 ‘능력 범위’ 외의 일을 하지 말고 하나님이 증오하는 일을 하지 말고 위대한 사람, 뛰어난 사람, 높고 큰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지 말고 하나님이 되기를 추구하지도 말아야 한다. 이런 것은 모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안 되는 ‘소망’이다. 위대한 사람이나 뛰어난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는 것은 황당한 일이고, 하나님이 되기를 추구하는 것은 더욱 파렴치한 일이고 사람을 메스껍게 하고 사람에게 버림받는 일이다. 진정한 피조물이 되는 것이야말로 대견한 일이고 피조물이 철저히 지켜야 할 바이며 모든 사람이 다 추구해야 할 유일한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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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경천동지(驚天動地):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뒤흔든다는 뜻.

②성장(省長): 한국의 도지사에 해당함.

③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