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 [낭송]

말세 그리스도의 말씀 (속편) [낭송]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 [낭송]

카테고리 선택

말세 그리스도의 말씀 (선집) [낭송]
말세 그리스도의 말씀 (선집) [낭송]
대표적인 말씀 (발췌문) [낭송]
대표적인 말씀 (발췌문) [낭송]

하나님의 권능(1)

넷째 날, 하나님이 또 한 번 권능을 행사하자

인류의 계절과 날짜와 연도가 탄생되었다

창조주는 말씀으로 자신의 계획을 이루면서 그렇게 자신이 계획했던 처음 3일을 보냈다. 그 3일 동안, 하나님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기진맥진하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오히려 하나님은 자신이 계획했던 첫 3일을 멋지게 보냈고, 상전벽해처럼 변화무쌍하게 위대한 업적들을 이루었다. 새로운 세상이 하나님의 눈앞에 나타나고, 하나님의 생각 속에만 봉인되어 있던 그림이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조금씩 펼쳐졌다. 모든 새로운 사물의 출현은 마치 신생아가 태어나는 것과도 같았다. 창조주는 그의 생각 속에 있던 것이 막 현실이 된 그 광경을 흐뭇하게 감상하고 있었다. 그 순간, 하나님은 마음에 작은 위안을 얻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창조주의 그 새로운 페이지의 계획은 또 무엇이었을까? 그는 또 무슨 말씀을 하였을까? 그의 권능은 또 어떻게 행사되었을까? 아울러, 또 어떤 새로운 사물이 이 새로운 세상에 왔을까? 창조주의 인도에 따라 우리의 눈은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한 넷째 날에 머무는데, 이 하루는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물론 창조주에게 있어 그것은 틀림없이 또 하나의 멋진 하루이자 현 인류에게도 역시 대단히 중요한 하루이며,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하루였다. 그날이 얼마나 멋지고, 얼마나 중요하며, 또 헤아릴 수 없는 그 가치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먼저 창조주의 말씀을 들어 보자. …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창 1:14~15). 이것은 하나님이 뭍과 그 위의 식물을 만든 후에, 또 하나의 피조물에서 보여진 하나님 권능의 행사이다. 이런 일이 하나님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말씀하면 그대로 지키고, 지키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하늘 궁창에 광명체가 있으라고 명령하니, 그 광명체는 하늘에서 빛을 발해 땅을 비추었을 뿐만 아니라 낮과 밤, 계절과 날짜와 연도를 구분하는 기호가 되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말씀하는 순간, 하나님이 이루고자 한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그의 지정 방식대로 이루어졌다.

‘하늘 궁창의 광명’은 상공에서 빛을 발하는 물체로서, 그것은 하늘도 비추고 땅과 바다도 비춘다. 그것은 하나님이 명한 속도와 빈도로 회전하며, 다른 시간대에 땅을 비춘다. 이와 같이, 동서의 낮과 밤은 이 광명체의 회전 주기로 말미암아 생기게 되었다. 그것은 낮과 밤에 대한 표시일 뿐만 아니라, 다른 회전 주기로 인류의 절기와 각종 날짜에 대한 표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명명한 춘하추동의 사계절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인류에게 계절과 날짜와 연도를 나타내는 규칙적이고 정확한 기호가 된다. 인류는 경작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하나님이 만든 광명체가 구분해 주는 계절, 날짜, 연도를 알아보고 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실 인류가 오늘날 알고 있는 계절, 날짜, 연도는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한 넷째 날부터 있었고, 인류가 경험하는 춘하추동의 교체 주기 역시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한 넷째 날에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이 만든 광명체로 인해 사람들은 낮과 밤을 규칙적이고 정확하고 분명하게 구분하고 날짜를 계산할 수 있게 되었고, 절기와 연도를 아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달이 둥글어지는 날, 즉 달이 차서 한 달이 되는 날에 사람들은 광명체가 비추는 새로운 주기의 시작을 알게 되고, 달이 이지러지는 날, 즉 한 달의 절반이 되는 날이면 사람들은 새로운 절기의 시작을 알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며칠이 하나의 절기를 이루고, 몇 개의 절기가 하나의 계절을 이루며, 몇 개의 계절이 한 해를 이루는지 매우 규칙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인류는 광명체의 운행으로 표시되는 계절, 날짜, 연도를 매우 쉽게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인류와 만물은 자연스럽게 광명체의 운행으로 만들어지는 낮과 밤의 교체, 사계절이 바뀌는 규칙 가운데서 살게 되었다. 이 역시도 창조주가 넷째 날에 광명체를 만든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창조주가 그 일을 통해 이룬 목표와 의의도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떠나서는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든 광명체와 그 광명체들이 장차 인류에게 가져다줄 가치 역시 창조주가 행사한 권능의 또 하나의 걸작인 것이다.

인류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신세계에서, 창조주는 이미 자신이 곧 만들 새 생명을 위해 ‘저녁과 아침’, ‘공기’, ‘땅과 바다’, ‘풀과 채소, 그리고 각종 나무’, ‘광명체와 계절, 날짜, 연도’를 예비하였다. 창조주의 권세와 능력은 그가 창조한 모든 새로운 사물 가운데서 발현되었고, 그의 말씀과 실제가 함께 가니 한 치의 오차도 없고 조금의 간극도 없었다. 그 모든 새로운 사물의 출현과 탄생은 다 창조주의 권세와 능력을 증명하고 있다. 즉, 말씀을 했으면 그대로 지키고, 지키면 반드시 이루어지며, 이루어지면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바뀐 적이 없으며,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지금 다시 성경의 이 말씀을 보면, 너희는 매우 새롭게 느껴지지 않느냐? 너희는 새로운 내용을 보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지 않았느냐? 그것은 창조주의 행사가 너희의 마음을 움직여 그의 권세와 능력을 알도록 인도하고 또한 너희에게 창조주를 알 수 있는 문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며, 그의 행사와 권능이 이런 말씀과 생명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서 사람들은 창조주의 권능이 생생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었고, 창조주의 지고지상함을 보게 되었으며, 창조주의 권세와 능력의 뛰어남을 보게 되었다.

창조주의 권세와 능력은 기적이 연속되게 만들었고, 사람의 이목을 끌었으며,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여 주는 하나하나의 놀라운 행사를 주목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의 비범한 능력은 인류에게 계속 놀라움과 기쁨을 선사하여 사람들이 눈을 어디에 둘지 모를 정도로 기뻐하고, 찬양하며, 갈채를 보내게 만들었다. 더욱이 사람들을 감동시켜 하나님을 사모하고 경외하는 마음과 애틋함이 생기게 했다. 창조주의 권능과 행사는 사람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고,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하였으며, 더욱이 사람의 마음을 흡족게 하였다. 하나님의 모든 생각, 모든 음성, 발현된 하나님의 모든 권능은 다 만물 가운데의 걸작으로서, 피조물인 인류가 가장 깊이 알고 인식할 가치가 있는 놀라운 위업인 것이다. 창조주의 말씀으로 탄생된 모든 피조물을 하나하나 짚어 보면서,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기묘한 능력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창조주의 발자취를 따라 다음날, 즉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한 다섯째 날에 이르렀다.

계속해서 다음 성경 구절을 보면서 창조주가 또 어떤 일들을 했는지 차근차근 살펴보자.

다섯째 날, 다양한 형태의 생명들이

각각의 방식으로 창조주의 권능을 보여 주었다

성경 말씀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20~21). 성경에서는 아주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날에 하나님은 각종 수중 생물들을 만들고, 땅 위에는 각종 새들을 만들었다. 즉, 어류와 날짐승들을 만들고, 아울러 하나님이 그들을 각기 종류대로 되게 하니, 땅 위와 하늘과 물속이 하나님의 창조로 말미암아 풍요로워졌다. …

하나님이 말씀하자, 순식간에 형태가 각기 다른 살아 숨 쉬는 생명들이 창조주의 말씀 속에서 생생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팔딱팔딱 뛰면서 기쁨에 차 환호하며 이 세상에 왔다. … 물속에서는 각종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각양각색의 패류들이 갯벌에서 자라며, 비늘 달린 생물, 갑각류, 그리고 각종 연체 생물들이 물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경쟁하듯 자라났다. 그들은 크고 작고 길고 짧은 것들로 어우러져 크기도 다양했다. 거기다 각종 해조류들도 마찬가지로 서로 앞다투어 자라났으며, 수중 생물들의 움직임에 따라 하늘거렸다. 그들은 몸을 흔들며 그 고요한 물에 다그치듯 말하는 것 같았다. “힘차게 흘러라! 네 친구들과 함께. 이제 너는 외롭지 않아!” 하나님이 만든 수중 생물들이 물속에 나타난 그 순간부터, 그 살아 숨 쉬는 생명들은 오랜 세월 침묵하던 바다에 생기를 불어넣고 신기원도 열어 주었다. … 그때부터 그들은 서로 의지하고 함께하면서 서로를 구분 짓지 않았다. 물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생물들을 위해 존재하며, 자신이 품고 있는 모든 생명들에게 자양분을 공급하고, 그 각각의 생명들 또한 물이 공급해 주는 자양분으로 말미암아 물을 위해 존재한다. 그들은 서로를 위해 각자의 생명을 바치며, 동시에 같은 방식으로 창조주의 오묘함과 위대함을 증거하고, 넘을 수 없는 창조주의 권능을 증거하고 있다. …

바다가 더 이상 고요하지 않게 되면서 공기 중에도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새들이 땅에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들이 수중 생물과 다른 점은 깃털이 가득 나 있고, 두 날개가 있으며, 우아한 자태와 가벼운 몸놀림을 가졌다는 것이다. 새들은 두 날개를 퍼덕이며 의기양양하게 창조주가 자신들에게 부여한 화려한 겉모습, 특별한 능력과 재주를 한껏 과시하고 있다. 그들은 자유롭고 능숙하게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다니고, 들판과 숲속을 누비고 있다. … 새들은 하늘의 총아이자 만물의 총아로서, 곧 하늘과 땅의 연결체가 되어 만물에게 소식을 전할 것이다. … 그들은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고 날아다니며 휑하니 비어 있던 세상에 기쁨과 웃음소리를 채워 넣었고, 생기와 활력도 불어넣었다. … 그들은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마음의 소리로, 창조주가 자신들에게 부여해 준 생명을 찬미한다. 그들은 즐거운 춤사위로 창조주의 완벽하고 놀라운 창조를 자랑하며, 창조주로부터 받은 특별한 생명으로 창조주의 권능을 증거하기 위해 자신들의 일생을 바친다. …

수중 생물이든 공중을 날아다니는 생물이든, 다 창조주의 분부에 따라 구조가 다른 생명체로 살며, 또 창조주의 분부에 따라 무리 지어 그들 각자의 부류 속에서 살아간다. 그 규칙과 법칙은 그 어떤 피조물도 바꿀 수 없다. 그들은 감히 창조주가 정해 준 영역을 벗어날 엄두를 내지 못하며, 또한 그 범위를 벗어날 수도 없다. 그들은 창조주가 정해 준 숙명 속에서 대를 이어 번식하며, 창조주가 그들에게 정해 준 생명의 궤적과 규칙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 또 창조주의 무언의 분부와 창조주가 그들에게 준 천상의 법칙과 계율을 오늘날까지 자발적으로 지키고 있다. 그들은 특별한 방식으로 창조주와 대화하고, 창조주의 뜻을 깨닫고, 창조주의 분부에 순종한다. 그 어떤 피조물도 창조주의 권능을 초월한 적이 없다. 창조주는 생각으로 그들을 주재하고 관장하고 있다. 말씀은 하지 않더라도, 창조주만이 갖고 있는 권능으로 이 인류와는 달리 말하지 못하는 만물을 소리 없이 관장하고 있다. 이렇게 특별한 방식으로 시행하는 권능은 사람들로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권능을 새롭게 인식하고 새로운 해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여기에서, 나는 새날에 창조주가 행사한 권능이 다시 한번 창조주의 유일무이함을 보여 주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계속해서 이 단락의 마지막 구절을 보자.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 말씀을 너희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 이 말씀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다. 하나님이 보기에 그가 창조한 만물이 이미 말씀으로 세워지고 이루어졌으며, 모두 다 점진적인 변화를 겪고 있었다. 그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만들어진 각종 사물과 성취한 갖가지 일들에 대해 아주 흡족해하지 않았겠느냐? 그에 대한 답이 바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이다. 여기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무엇을 의미하느냐? 무엇을 상징하느냐? 말하자면, 하나님은 그가 계획한 일과 정해 놓은 일, 그리고 그의 목표를 성취할 능력과 지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다 마친 후에 후회한 적이 있느냐? 그 답 역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이다. 즉, 하나님은 후회는커녕 아주 흡족해했다는 것이다. 후회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완벽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또한 완전무결하며, 그의 권능이 그의 계획을 완벽하게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근원임을 의미한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나서 하나님이 했던 것처럼 보기에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 사람이 하는 모든 일들이 다 완벽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어떤 일을 한 번에 그리고 영원히 이룰 수 있겠느냐? 사람들이 “더 좋은 것은 있어도 가장 좋은 것은 없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사람이 하는 일은 영원히 완전할 수 없다. 하나님이 자신이 이룬 모든 일들이 보기에 좋았을 때, 하나님이 만든 모든 것은 그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법칙이 생겼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보기에 좋았을’ 때, 그가 창조한 것은 한 번에 그리고 영원히 그 형태가 고정되고 유형이 구분되며 위치와 용도와 기능이 정해졌다. 동시에, 만물 가운데서 하는 역할과 하나님이 만물을 관장하는 기간에 가야 할 여정이 이미 정해져 영원히 바꿀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창조주가 만물에게 정해 준 ‘천상의 법칙’에서 온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 구절은 단순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어렵고, 사람들의 충분한 이목이 쏠리기도 어려운 말씀이다. 그러나 이 구절은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에게 천상의 법칙과 계율을 하달한 말씀이다. 이 말씀에서 창조주의 권능이 또 한 번 더 실제적이고, 더 깊이 있게 구현되었다. 창조주는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가 얻고자 한 모든 것을 얻었고, 그가 이루고자 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가 만든 모든 것을 그의 수중에서 주관할 수 있고, 그가 만든 만물을 그의 권세하에서 질서 정연하게 주재할 수 있었다. 동시에 만물도 그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소멸되며, 그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그가 정한 법칙 안에서 생존한다. 그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법칙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영 계획을 위해 창조주가 그것을 폐기하는 그날까지 존재하고 지속되고 운행될 것이다!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권능은 그가 만물을 창조하는 데에서, 또 세워지라고 명하면 세워지는 데에서만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만물을 관리하고 주재하고 만물에게 생기와 활력을 부여할 수 있는 데에서도 구현되고 있다. 더욱이 창조주가 한 번에 영원히 그가 창조하고자 계획한 만물에게 완벽한 형식, 완벽한 생명의 구조, 완벽한 역할을 갖게 하여, 그가 만든 세계에 나타나고 존재하게 할 수 있는 데에서도 구현된다. 또 창조주의 모든 생각이 그 어떤 조건의 제한이나 시간, 공간, 지리적인 제한도 받지 않는 데에서도 구현된다.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신분은 그의 권능처럼 태고부터 영원까지 변하지 않을 것이며, 그의 권능은 영원히 그의 유일무이한 신분의 대언과 상징으로서, 영원히 그의 신분과 함께할 것이다!

여섯째 날, 창조주가 말씀하니

그의 생각 속 각종 생물들이 속속 등장하였다

부지불식간에, 창조주가 만물을 창조하는 사역이 벌써 닷새 동안이나 계속되었고, 곧이어 그 여섯째 날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이날은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자 또 하나의 평범하지 않은 날이었다. 새날이 왔을 때, 창조주는 또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었을까? 또 어떤 새로운 피조물이 생기고 만들어졌을까? 들으라. 이것은 창조주의 음성이다. …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24~25). 이들 생물에는 어떤 것들이 포함되느냐?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말하자면, 이날 땅 위에는 각종 생물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모두 그 종류대로 분류되었는데,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앞의 다섯 날과 마찬가지로, 창조주는 여섯째 날에도 똑같은 어조로 그가 원하는 생물이 생겨나라 명하니 그들이 땅 위에 나타났으며, 각기 종류대로 되었다. 창조주의 권능이 행사되자, 그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여섯째 날에 창조주가 만들고자 계획한 모든 생물들이 예정대로 생겨났다.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라는 창조주의 이 말씀이 있자, 뭍은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고, 땅 위는 순식간에 각종 생물들이 내뿜는 기운으로 가득 찼다. … 초록 풀빛을 잔뜩 머금은 들판에는 튼실하게 살찐 소들이 꼬리를 흔들며 속속 등장하고, 양들이 메에 하는 울음소리와 함께 무리를 짓고, 말들이 울부짖으며 질주해 왔다. … 순식간에, 고요하던 광활한 들판이 시끌벅적해졌다. … 각종 가축들의 출현으로 조용하기만 하던 들판에 아름다운 볼거리가 더해졌고 더없는 활기가 넘쳤다. … 그들은 들판을 벗 삼고, 들판의 주인이 되어 서로 의지하며 살 것이고, 들판의 파수꾼이 될 것이다. 들판 역시 그들의 영원한 서식지가 되어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며, 그들이 영원히 생존하게끔 자양분을 공급해 줄 것이다. …

이들 가축들과 같은 날에 태어난 각종 곤충들도 창조주의 말씀에 따라 잇따라 나타났다. 비록 그들이 피조물 중 가장 작은 생명체일지라도 그들의 생명력 역시 창조주의 오묘한 창조에서 온 것이다. 그들은 결코 늦게 온 것이 아니다. … 참으로 다양한 것이,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는 것도 있고, 천천히 기어 다니는 것도 있으며, 또 어떤 것은 폴짝폴짝 뛰어다니기도 한다. 비틀거리며 걷는 것도 있고, 힘 있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재빠르게 뒷걸음질 치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옆으로 걷고, 어떤 것은 위로 뛰어오른다. … 그들은 각자 바쁘게 자신의 집을 찾고 있는 중이다. 어떤 것은 풀숲에 들어가고, 어떤 것은 땅에 굴을 파느라 분주하고, 어떤 것은 큰 나무에 날아올라 숲속에 몸을 감춘다. … 몸집은 작아도 그들 모두 배고픔을 참지 못하니, 각자 집을 마련하고는 배를 채울 먹이를 급하게 찾아 나선다. 어떤 것은 여린 풀잎에 기어올라 먹고, 어떤 것은 흙을 물어 한 입씩 삼키는데, 아주 맛있게 먹으면서 정말 즐거워한다(흙은 오히려 그들의 맛있는 먹이가 되었다). 어떤 것은 숲속에 숨어서도 결코 쉬지 않는데, 나무 위 진초록 잎사귀의 진액은 그들 입맛에 맞는 아주 좋은 음식이 되었다. … 배를 실컷 채운 후에도 그들의 활동은 계속된다. 그들은 작지만 에너지도 활력도 아주 넘쳐난다. 그러므로 그들은 만물 가운데 가장 많이 활동하고 가장 부지런한 피조물이다. 그들은 게으름 피우거나 편안함을 탐하는 일이 없다. 그들은 배를 채운 후에도 여전히 앞으로 살날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고, 그들의 내일과 생존을 위해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다. … 그들은 다양한 선율과 다채로운 박자의 노래들을 조용히 흥얼거리며 스스로에게 힘찬 기운을 북돋아 준다. 또한 온 풀숲, 숲속, 모든 토양에도 즐거움울 선사하며, 언제나 특별한 하루, 남다른 한 해를 만들어 준다. … 그들은 각자의 언어와 각자의 방식으로 땅 위의 각종 생물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또한 각자 특별한 생존의 궤적으로 다른 만물에게 이정표가 되어 주며 족적을 남긴다. … 그들은 흙과 풀과 숲과 매우 친밀하여 이들에게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기도 하고, 창조주가 각각의 생물에게 한 당부와 안부를 전해 주기도 한다. …

창조주가 자신이 만든 만물을 두루 살피고 있던 그 시각, 그의 두 눈은 숲에, 큰 산 사이에 머물렀으나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말씀이 있고 난 후, 무성한 숲속에, 그리고 산속에는 이전의 피조물과는 다른 부류의 피조물들이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말씀한 ‘들짐승’이다. 그들은 예사롭지 않은 얼굴을 하고서 머리와 꼬리를 흔들며 어슬렁어슬렁 걸어온다. 보라, 털이 난 것이 있는가 하면 딱딱한 껍질이 있는 것이 있고, 어떤 것은 이를 드러내고 어떤 것은 입을 벌리고 있다. 또 목이 긴 것이 있는가 하면 꼬리가 짧은 것이 있고, 어떤 것은 두 눈에 살기를 띠고 있고, 어떤 것은 두려워하는 눈빛을 띠고 있다. 몸을 굽히고 풀을 뜯고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입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두 발로 뛰어다니는 것이 있는가 하면 네 발로 움직이는 것이 있고, 또 나무에 기어 올라가 멀리 바라보는 것도 있다. 어떤 것은 숲속에 숨어 기다리고 있고, 어떤 것은 쉴 만한 동굴을 찾는가 하면 어떤 것은 또 평원을 내달리며 장난치고, 어떤 것은 수풀을 헤치며 다닌다. … 포효하는 것도, 으르렁대는 것도 있고, 미친 듯이 짖어 대는 것도, 울부짖는 것도 있다. … 그들이 내는 소리는 높은 것도, 나지막한 것도 있고, 우렁찬 것도, 맑고 청아한 것도 있다. … 어떤 것은 무섭게 생겼고, 어떤 것은 예쁘장하고, 어떤 것은 역겹게 생겼는가 하면 어떤 것은 아름다워 호감 가게 생겼고, 어떤 것은 그 생김새가 공포감을 주고, 어떤 것은 귀여움이 철철 넘친다. … 그들이 하나하나 속속 걸어 나온다. 보라. 그들 모두 의기양양하고 아무런 거리낌이 없으며, 누구를 상대하려 하지도 않고 누구에게도 눈길 한 번 주려 하지 않는다. … 그들은 각자 창조주가 자신들에게 부여한 특별한 생명을 받아, 거친 야수성과 난폭성을 지니고 숲과 산속에 나타났다. 그들이 그렇게 ‘안하무인’ 격으로 기세가 등등해도 그들이 산과 숲의 진정한 주인인 것을 어쩌겠느냐? 창조주가 그들에게 나타나라 명령한 그 순간부터, 그들은 숲과 산을 ‘강점’했다. 창조주가 이미 그들의 경계를 정하고 그들의 생존 범위를 정해 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산과 숲의 진정한 제왕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처럼 야수성을 지니고 ‘기고만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야수’로 불리는 까닭은, 만물 가운데 그들만이 진정으로 야수성과 난폭성을 지니고 있는 길들이기 어려운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길들여질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사육될 수 없고, 인류와 화목하게 살 수 없으며, 인류를 위해 일할 수 없다. 그들이 사육될 수 없고 인류를 위해 일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반드시 인류를 멀리해야 하고, 인류도 그들을 가까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이 인류를 멀리하고 인류가 그들과 가까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창조주가 부여한 책임, 산과 숲을 지키는 일을 완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야수성은 산과 숲을 지키는 것이며, 그들의 번식을 위한 최적의 보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그들의 야수성은 또 만물의 균형을 보장하고 유지하게 만들 것이다. 그들의 출현은 산과 숲에 의지처를 제공했으며, 적적하고 쓸쓸하던 산과 숲에 생기와 활력이 넘치게 하였다. 그때부터 산과 숲은 그들의 영원한 서식지가 되었고, 그들은 영원히 자신들의 집을 잃지 않게 되었다. 산과 숲은 그들을 위해 생기고 존재하며, 그들은 장차 산과 숲을 지키기 위해 맡은 책임을 다하고, 최선을 다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창조주가 자신들에게 당부한 것, 그들의 영토를 지키고 그들의 야수성을 유지함으로 창조주가 정한 만물의 균형을 유지하고, 창조주의 권세와 능력을 나타내는 것을 엄격하게 준수할 것이기 때문이다!

창조주 권능하의 만물은 다 완전무결하다

새와 어류, 나무와 화초처럼 움직일 수 있는 것과 움직일 수 없는 것, 그리고 여섯째 날에 만들어진 집짐승, 곤충, 들짐승을 포함하여 하나님이 만든 만물은 하나님이 보기에 다 좋았던 것이다. 게다가 하나님이 보기에 그 모든 일들은 그의 계획에 따라 가장 완벽하고 아름답게 이루어졌고, 그의 기준에 도달하였다. 창조주는 그의 계획에 따라 하고자 한 사역을 순서대로 하나씩 이루었다. 그가 창조하고자 한 것들이 한 가지씩 나타났고, 나타난 것마다 모두 창조주 권능의 구현이자 그의 권능이 가져온 결정체였다. 이 결정체는 모든 피조물들로 창조주의 은혜와 공급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하나님의 놀라운 행사가 나타남으로 이 세계는 점차 하나님이 만든 만물로 풍요로워졌다. 혼돈하고 캄캄했던 세계가 맑고 깨끗하게 변화되었고, 적막하던 세계가 생기와 활력이 넘치는 세계로 변화되었다. 창조된 만물은 큰 것에서 작은 것까지, 작은 것에서 미세한 것까지, 창조주의 권세와 능력으로 창조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또한 모든 피조물은 그것만이 갖는 정해진 존재의 필요성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 형식이나 구조가 어떻게 다르든지 간에, 창조주의 창조에서 온 것이면, 그것은 모두 창조주의 권능하에 생존하게 된다. 간혹 사람은 못생긴 곤충을 보면 “왜 이리도 못생겼어? 하나님이 절대 이렇게 못생긴 것을 만드셨을 리 없으니 이건 절대 하나님이 만드신 게 아니야.”라고 한다. 그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생각이다! 마땅히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이 곤충은 유난히 못생기긴 했지만, 이것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니 분명히 이것만의 특별한 쓰임새가 있을 거야.” 하나님은 그가 만들려는 모든 생물들이 다양한 생김새를 가지고 각양각색의 기능과 용도가 있도록 다 생각해 두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든 만물은 천편일률적이지 않으며, 외형부터 내면의 구조까지, 생활 습관부터 각자 차지하고 있는 위치까지 다 다르다. 소는 소의 생김새가 있고, 나귀는 나귀의 생김새가 있으며, 사슴은 사슴의 생김새가 있고, 코끼리는 코끼리의 생김새가 있다. 누가 제일 예쁘고 누가 제일 못생겼다고 하겠느냐? 누가 가장 쓸모가 있고, 누가 가장 불필요한 존재라고 하겠느냐? 어떤 이는 코끼리의 모습을 좋아하지만 코끼리를 이용해 밭을 가는 자는 없다. 어떤 사람은 만물 가운데 가장 위엄 있게 생겼다며 사자, 호랑이의 모습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사자와 호랑이를 애완동물로 키울 수 있느냐? 요컨대, 만물을 대함에 있어, 사람은 창조주의 권세에 순종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즉, 창조주가 만물에게 정해 준 규칙에 순응하는 이런 태도야말로 가장 현명한 것이다. 또한, 창조주의 초심을 찾고 순종하는 태도야말로 창조주의 권능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기에 좋았기 때문에 사람은 그것에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지 않으냐?

이때에 이르러, 창조주 권능하의 만물은 창조주의 주재에 새 악장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창조주의 새날의 사역에 눈부신 서막을 열 것이며, 창조주도 그 순간 자신의 경영 사역에 새로운 장을 열 것이다! 만물은 창조주가 정한 ‘봄에 싹트고 여름에 무성해지고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저장하는’ 이 법칙과 창조주의 경영 계획에 따라 서로 함께 호응할 것이다. 그들은 각자 새로운 날과 새로운 시작, 그리고 새로운 생명 여정을 맞이할 것이고, 또한 창조주 권능의 주재 아래에서의 하루하루를 맞이하기 위해 쉼 없이 성장하고 번성할 것이다. …

피조물과 비피조물 모두 창조주의 신분을 대체할 수 없다

만물을 창조하면서부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유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만유를 창조했든, 그가 왜 만유를 창조했든, 요컨대 만유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기고 세워지고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권능이다. 인류가 이 세상에 아직 출현하지 않았을 때, 창조주는 그의 능력과 권세로 인류를 위해 만유를 창조했고, 그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인류를 위해 적합한 생존 환경을 예비했다. 그가 이룬 그 모든 것은 다 장래에 자신의 생기를 얻게 될 인류를 위해 예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류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 하나님의 권능은 인류와는 다른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나타났는데, 크게는 천체, 광명체, 바다, 육지가 있고, 작게는 날짐승과 길짐승 및 각종 곤충과 미생물이 있다. 또한 사람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각종 균류까지 그 어느 것도 창조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 어느 것 하나 창조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번식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또 어느 것 하나 창조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창조주의 주재하에 살지 않는 것이 없다. 그들은 비록 창조주의 생기를 얻지 못했지만, 다양한 형식과 구조로 창조주가 자신들에게 부여한 생명력을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은 창조주가 인류에게 부여한 언어 능력을 받지 못했지만, 그들 각자는 창조주가 자신들에게 베풀어 준 인류의 언어와는 또 다른, 생명을 표현하는 방식을 얻었다. 창조주의 권능은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사물에 생명의 활력을 불어넣어 그들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각종 살아 있는 존재에게 번식 능력을 주어 영원히 자취를 감추지 않고 대를 이어 창조주가 부여해 준 생존 법칙과 규칙을 전하게 할 수 있다. 창조주가 권능을 행사하는 방식은 거시적, 미시적인 것에 구애받지 않고, 어떠한 형식에도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우주의 운행을 주관하고 만물의 존망을 주재하며, 더욱이 만물을 움직여 자신을 위해 기여하게 한다. 그는 산천, 호수의 운행을 관장하고, 그 가운데의 만물도 주재하며, 만물이 필요로 하는 바를 공급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인류 이외의 만물 가운데서 나타나는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권능이다. 이는 일생에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멈추지 않고 쉬지 않는다. 또한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그것을 바꾸거나 파괴할 수 없고, 더하거나 제할 수도 없다. 창조주의 신분은 아무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피조물도 창조주의 권능을 대체할 수 없고, 그 어떤 비피조물도 그 권능에 이를 수 없다. 예컨대, 하나님의 사자나 천사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갖지 못했고, 더욱이 창조주의 권세도 갖지 못했다.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갖지 못한 까닭은 그들이 창조주의 본질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피조물 가운데, 예컨대 하나님의 사자와 천사들은 하나님을 대신해 어떤 일들을 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을 대표할 수는 없다. 그들이 인류에게는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권능은 갖지 못하였고, 하나님처럼 만유를 창조하고 만유를 주관하고 주재하는 권능은 갖지 못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유일무이함은 그 어떤 비피조물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 역시 어떤 비피조물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어떤 사자가 만물을 창조했다는 것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왜 그의 사자와 천사를 파견해 만물을 창조하게 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권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권세를 행사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모든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창조주의 주재 아래에 있고, 창조주의 권능 아래에 있으며, 창조주는 그들의 하나님이자 그들의 주재자이다. 신분의 높고 낮음, 귀하고 천함, 능력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그들 가운데 그 어떤 자도 창조주의 권능을 초월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 그 누구도 창조주의 신분을 대체할 수 없으며, 그들은 영원히 하나님이라고 불릴 수 없고, 영원히 창조주가 될 수도 없다. 이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이며 사실이다!

이상의 교통을 통해, 다음과 같이 정의 내리면 어떻겠느냐? ‘오직 유일무이한 권세와 능력을 갖춘 만물의 창조자와 주재자만이 유일한 하나님 자신이라고 불릴 수 있다.’ 여기에서 너희는 나의 질문이 너무 심오하다고 여길 것이고, 이해하지 못하고 그 안의 본질도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지금 이 질문이 대답하기 어렵다고 여길 것이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교통하겠다. 이어서 나는 너희에게 하나님 자신만이 갖고 있는 권세와 능력이 나타나는 여러 측면의 실제적 행사를 보게 하여 하나님의 유일무이함이란 어떤 것인지,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권능이란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알게 하고 깨닫게 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 [낭송]

0검색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