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

목차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

하나님의 시련에 대해 어떤 고려도 하지 말라

욥을 시련하고 욥의 몸에서 간증을 얻은 후 하나님은 욥과 같은 이런 한 무리 또는 더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뜻을 정하였다. 그러나 그는 더는 사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내기해 욥을 시험하고 욥을 공격하고 욥을 참해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해하지 못하게 하기로 작정하였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연약하고 무지하고 우매한 사람의 몸에 다시 똑같은 일을 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욥의 몸에서의 한차례 시험으로 이미 충분했다! 하나님은 사탄이 함부로 사람을 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이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이다. 욥, 한 사람이 사탄의 시험과 참해를 겪은 것은 하나님이 보기에 이미 충분했다. 하나님은 사탄이 다시 이런 일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의 목숨과 사람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주재하고 하나님이 지배하며 사탄은 제멋대로 하나님의 선민을 지배할 권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을 너희는 반드시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연약함을 염려하고 사람의 무지몽매함도 요해하고 있다. 비록 하나님이 사람이 철저히 구원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사람을 반드시 사탄에게 넘겨야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사람이 늘 사탄에게 우롱당하고 사탄에게 해를 입는 것을 보기 원치 않고 사람이 늘 고통받는 것을 보기 원치 않는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니 하나님이 사람의 모든 것을 주재하고 안배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는 하나님의 책임이고 만유를 주재하는 하나님의 권병이다! 하나님은 사탄이 함부로 사람을 해하고 함부로 사람을 학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사탄이 각종 방식으로 사람을 유도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으며, 더욱이 사탄이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에 개입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고, 사탄이 하나님이 만유를 주재하는 법칙을 짓밟고 파괴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인류를 경영하고 구원하는 이렇게 큰 사역이랴! 하나님이 구원하려는 사람, 하나님을 위해 간증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6천년 경영 계획 사역의 핵심과 결정체이자 역시 하나님의 6천년 역사의 심혈 대가인데, 하나님이 어찌 이 사람들을 아무렇게나 사탄에게 넘길 수 있겠는가?

사람은 늘 하나님의 시련이 임할까봐 걱정하고 두려워한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사탄의 올무 속에서 살고 사탄의 공격과 참해의 위험한 경지에서 살고 있으면서 두려운 줄도 모르고 걱정하지도 않는데, 이것은 어찌 된 일인가?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믿음은 단지 눈에 보이는 사물에만 국한되어 있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아낌과 이해해줌에 대해 사람은 조금도 터득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시련과 하나님의 심판 형벌과 하나님의 위엄 진노에 대해 약간의 무서움과 두려움이 있는 것 외에 사람은 하나님의 고심에 대해 조금의 이해도 없다. 시련을 언급하기만 하면 사람은 마치 하나님께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다고 여기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속마음을 헤아리기 어렵다고 여기며 하나님이 도대체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모른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리라’는 구호를 외치는 동시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극력 저촉하고 반대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람이 만약 조금만 조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오도(誤導)’될 것이고 사람이 만약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장악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빼앗기고 심지어 목숨까지 경각에 달릴지도 모른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탄의 진영에 있으면서도 전혀 사탄이 사람을 참해할 것이라고 걱정하지 않고, 사탄에게 해를 입으면서도 전혀 사탄에게 노략당할까봐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은 말끝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인다고 말하면서도 오히려 하나님에 대해 전혀 신임하지 않고 하나님이 진심으로 사람을 사탄의 마수에서 구원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사람이 만약 욥처럼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할 수 있고 전인(全人)을 하나님의 손에 맡길 수 있다면 사람의 결국도 다 욥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않겠는가? 사람이 만약 하나님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순복할 수 있다면 사람에게 어떤 손해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너희가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너희의 신변에서 일어나는 매사를 신중하게 대하며 무례한 짓을 하지 말고 흥분하지 말며 혈기, 천성, 상상과 관념에 의해 하나님과 하나님이 너를 위해 안배한 인사물을 대하지 말고 하나님을 촉노해 하나님이 노하지 않도록 꼭 조심스럽게 일을 처리하고 많이 기도하고 많이 찾고 구하라고 권한다. 기억했겠지!

우리 계속해서 시련을 받은 후의 욥이 어떠한지를 보자.

5. 시련을 받은 후의 욥

(욥 42:7~9)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욥 42: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욥 42:12)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욥 42:17)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은 하나님께 귀하게 보이고 우매하고 거만한 사람은 하나님께 비천하게 보인다

≪욥기≫ 42장 7절에서 9절에 하나님은 욥을 그의 종이라고 언급하였다. ‘종’이란 이런 호칭으로 욥을 칭했는데, 하나님 마음속에서의 욥의 가치를 뜻한다. 비록 하나님이 그에 대해 더 높은 호칭은 없었지만 이 호칭은 결코 하나님 마음속에서의 욥의 가치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여기의 ‘종’은 욥에 대한 하나님의 ‘애칭’이다. 하나님이 여러 번 “내 종 욥”이라고 언급한 것에서 욥에 대한 하나님의 기쁜 심정을 알 수 있다. 비록 하나님이 ‘종’이란 단어의 함의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이 경문에서 한 말씀에서 하나님이 ‘종’이란 이 단어에 대해 내린 정의(定義)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이 먼저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말씀하였다.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욥을 시련한 후에 처음 공개적으로 사람에게 하나님이 욥이 한 것과 말한 것을 열납한다고 알려준 것이며 처음 공개적으로 욥이 전에 한 것과 말한 것의 확실성과 정확성을 인정한 것이다. 하나님은 엘리바스 등의 사람들의 부정확하고 황당한 의논으로 인해 그들에게 노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욥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배경에서 살면서도 욥은 하나님에 대해 이토록 정확한 인식이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제멋대로 추측하고 곳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겨 하나님으로 하여금 마음에 화가 나게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욥이 한 것과 말한 것을 열납한 동시에 다른 사람에 대해 분노가 생겼다. 하나님은 그들의 몸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실제를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말도 듣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들에게 요구하였다.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 구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엘리바스 등의 사람들에게 한가지 일을 함으로 그들의 죄를 씻으라고 알려주었다. 그들의 우매함과 거만함이 여호와 하나님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에 그들은 반드시 번제를 드림으로 그들의 과오를 만회해야 했다. 일반 번제는 모두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었지만 이번의 번제는 욥에게 드리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이번 번제의 특이한 점이다. 욥은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 간증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열납되었고 동시에 욥의 친구 몇몇은 오히려 욥이 시련을 받는 기간에 드러났다. 그들은 우매하고 거만한 탓에 하나님께 정죄받고 하나님의 노기를 건드려 당연히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야 했는데, 이 ‘징벌’이 바로 욥의 앞에서 번제를 드린 것이다. 그런 후에 또 욥이 그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과 노기를 푸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 조치는 그들을 부끄럽게 하는 데에 뜻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결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고 또한 그들이 욥의 온전함을 정죄했기 때문이다. 한 방면으로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그들의 모든 행위를 열납하지 않고 욥을 크게 열납하고 기뻐한다고 알려주었으며, 다른 한 방면으로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사람은 하나님께 열납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높아지고, 우매하고 거만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증오를 받고, 우매하고 거만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고 하나님의 눈에 비천하게 보인다고 알려주었다. 이 두 방면은 하나님이 두 부류의 사람에게 내린 정의(定義)이고 이 두 부류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이자 이 두 부류 사람의 신분과 지위에 대한 하나님의 논법이다. 비록 하나님이 욥을 종으로 호칭했을지라도 이 ‘종’은 하나님 눈에 사랑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이 권세를 부여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과오를 사해줄 수 있게 한 사람이며 직접 하나님과 대화하고 직접 하나님 앞에 올 수 있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보다 지위가 높고 다른 사람보다 존귀한 사람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말씀한 ‘종’의 진정한 함의이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남’으로 말미암아 이 ‘영광스러운 칭호’를 얻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하나님께 ‘종’으로 칭함받지 못한 까닭은 그들이 결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 2가지 분명히 다른 태도가 바로 두 부류의 사람을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인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은 하나님께 열납되고 하나님 눈에 귀하게 보이며, 우매하고 거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악에서 떠날 수 없기에 하나님의 기쁨을 얻지 못하고 늘 하나님께 증오를 받고 하나님께 정죄받으며 하나님 눈에 비천하게 보이는 것이다.

하나님은 욥에게 권세를 주었다

욥은 그의 친구를 위해 기도했다. 기도한 후, 하나님은 욥의 기도로 인해 그들의 우매함과 거만함에 따라 그들을 처리하지 않았다. 즉 그들을 징벌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그 어떤 보응도 내리지 않았다.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종, 욥이 그들을 위해 한 기도가 하나님의 귀에 상달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욥의 기도를 열납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용서하였다. 여기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하나님이 한 사람을 축복할 때 그에게 상을 많이 줄 것인데, 이 상은 물질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게 권세도 주어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자격이 있게 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줌으로 말미암아 그 몇 사람의 과오를 마음에 두지 않았고 따지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욥에게 준 권세이다. ‘욥의 기도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이 하나님께 정죄받지 않는’ 이런 방식으로써 그 우매하고 거만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였는데, 물론 이것도 엘리바스 등의 사람들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한 징벌이다.

욥은 재차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고 더는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았다

여호와 하나님이 한 말씀 중에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고 언급되었는데, 욥은 어떤 말들을 했는가? 바로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 것과 ≪욥기≫에 기록된, 욥이 말한 그 큰 편폭의 말이다. 이 큰 편폭의 모든 말 속에 하나님에 대한 그의 어떠한 원망도 없고 어떠한 추측도 없다. 그는 결과만 기다렸을 뿐이다. 그의 기다림은 바로 순복하는 태도였다. 그의 태도로 인하여, 그가 하나님께 한 말로 인하여 하나님이 그를 열납하였다. 그가 시련을 겪을 때, 고통을 겪을 때 하나님은 바로 그의 곁에 있었다. 비록 그의 고통이 하나님이 그의 곁에 있었다 하여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이 보고자 했던 것을 보았고 듣고자 했던 것을 들었다. 욥의 모든 행위의 한 장면 한 장면과 그가 말한 구절구절마다 하나님의 눈에, 하나님의 귀에 상달되어 하나님이 듣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사실이다. 그때에, 그 시기에 하나님에 대한 욥의 인식과 하나님에 대한 마음속의 생각은 사실 현재의 사람처럼 이렇게 구체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의 배경에 근거해 하나님은 여전히 그가 말한 것에 대해 인정하였다. 그것은 그의 마음속 생각과 그의 행위 때문이고 그가 표현한 것과 유로한 것이 이미 하나님의 요구에 달했기 때문이다. 욥이 시련을 겪는 기간에 그가 속으로 생각한 것과 해야 한다고 작정한 것은 하나님에게 하나의 결과를 보게 하였는데, 이 결과는 하나님이 만족해하는 것이었다. 그 뒤로 하나님이 시련을 거두었고 그다음 욥이 역경 속에서 나왔는데, 욥의 시련은 그때부터 사라지고 더는 없었다. 그가 이미 시련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시련 속에서 굳게 서고 철저히 사탄을 이겼기 때문에 하나님은 명정언순(名正言順)하게 그에게 복을 베풀어주려 하였다. ≪욥기≫ 42장 10절과 12절에 기술된 바와 같이 욥은 또 한번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더 많아졌다. 이때 사탄이 물러갔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더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로부터 욥은 더는 사탄의 방해와 공격을 받지 않았으며 욥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도 더는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았다.

욥은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여생을 보냈다

비록 그때의 축복은 일부 소나 양, 낙타, 가산 등등에만 국한되었지만 하나님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이 욥에게 복을 베풀어주려는 것은 전혀 이런 것만이 아니었다. 당시에 하나님이 욥에게 어떤 영원한 약속을 주겠다고 기록된 것이 있는가? 욥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 중에는 결국을 언급하지 않았고 결국에 관련되지도 않았다. 욥이 하나님 마음속에서 어떤 가치이든지, 어떤 지위가 있든지, 총체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축복은 아주 적당하다. 그가 결국을 선포하지 않은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나님의 계획이 아직 사람의 결국을 선포하는 데까지 진행되지 않은 그때에 사역이 끝나는 단계까지 하지 않았으니 하나님은 결코 결국을 언급하지 않았고 단지 사람에게 일부 물질적인 축복만 주었다. 즉 욥의 여생은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보낸 것이다. 이것은 그와 다른 사람의 서로 다른 점이다. 같은 점은 그도 늙어가고 정상 사람처럼 어느 날엔가 인간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경에 이렇게 기록되었다. (욥 42:17)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 여기의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는 무슨 뜻인가? 하나님이 결국을 선포하지 않은 시대에 하나님은 욥에게도 나이를 정해주고 수한이 찬 후 그로 하여금 이렇게 자연히 세상을 하직하게 하였다. 그가 두 번째로 축복을 받아서부터 죽기까지의 시간 동안 하나님은 그에게 그 어떤 고통도 더하지 않았다. 그의 죽음은 하나님이 보기에 자연스러운 것이자 역시 필연적인 것이고 아주 정상적인 일이지 판결을 선고한 것이 아니고 정죄한 것도 아니다. 욥은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을 경외한 사람이었다. 그가 죽은 후 어떤 결국이 있었는지에 관해 하나님은 그 어떤 논법도 제시하지 않았고 그 어떤 평론도 내리지 않았다. 하나님이 말씀하고 일하는 것은 아주 합당하다. 그가 말씀하고 일하는 내용과 원칙은 그의 역사 단계에 근거하고 그의 역사 시기에 근거하는 것이다. 욥과 같은 이런 사람이 하나님 마음속에서는 어떤 결국이 있겠는가? 하나님 마음속에 하나의 정론이 있지 않겠는가? 확실히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인데, 하나님은 사람에게 알려주기를 원치 않고 사람에게 알려줄 생각도 없다. 그러므로 겉으로 보기에 욥은 이렇게 나이가 차서 죽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욥의 일생이다.

욥이 일생 동안 살아낸 가치

욥이 이 일생 동안 살아온 것은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그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왜 그가 살아온 것이 가치가 있다고 하는가? 사람이 보기에 그의 가치는 무엇인가? 사람의 각도에서 말하자면 그는 하나님이 구원하려는 인류를 대표하여 사탄 앞에서,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위해 한차례의 드높은 간증을 하였으며 그는 한 피조물이 다해야 할 본분을 하였고 하나님이 구원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본보기가 되고 모본이 되어 인류로 하여금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면 완전히 사탄을 이길 수 있음을 보게 하였다. 하나님이 보기에 그의 가치가 어디에 있겠는가? 하나님이 보기에 욥의 삶의 가치는 바로 그가 살면서 능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의 행사를 간증하고 찬송하여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에게서 위로를 얻게 하고 누릴 것이 있게 한 데에 있다. 하나님이 보기에 그의 삶의 가치는 또한 그가 살아있는 동안 겪은 이번 시련에서 사탄을 이기고 하나님을 위해 사탄 앞에서, 세상 사람들 앞에서 드높은 간증을 하고 하나님에게 인류 가운데서 영광을 얻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위로를 얻게 하고 하나님의 절박한 마음에 결과가 보이게 하고 희망도 보이게 한 데에 있다. 그의 간증은 인류를 경영하는 하나님의 사역 중에서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설 수 있고 하나님을 위해 사탄을 욕되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선례를 열어놓았다. 이런 것이 욥의 삶의 가치가 아닌가?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위로를 얻게 하였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영광얻는 기쁨을 미리 맛보게 하였으며 하나님의 경영 계획으로 하여금 여기에서 완벽한 시작이 있게 하였다. 그리고 욥의 이름은 이로부터 하나님이 영광을 얻은 표징이 되었고 인류가 사탄을 이긴 기호로 되었다. 욥의 일생 동안의 살아냄과 사탄을 이긴 그의 위적(偉跡)은 영원히 하나님께 귀하게 보일 것이며, 그의 온전함과 정직함과 하나님에 대한 경외는 후세 사람들에게 존경받게 되었고 본이 되었다. 그는 마치 흠없고 눈부신 명주(明珠)와 같아 영원히 하나님께 소중히 여겨질 것이고 또한 사람이 소중히 간직할 만한 가치가 있다!

계속해서 우리 율법시대에서의 하나님의 역사를 보자.

(4) 율법시대의 규례

1 십계명

2 제단을 쌓는 원칙

3 종을 대하는 원칙

4 도둑질과 배상에 관한 규례

5 안식년과 3개 절기를 지키는 것

6 안식일 규례

7 제사드리는 규례

1) 번제를 드림

2) 소제를 드림

3) 화목제를 드림

4) 속죄제를 드림

5) 속건제를 드림

6) 제사장이 제사드리는 규례(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지키라고 분부함)

① 제사장이 번제를 드림

② 제사장이 소제를 드림

③ 제사장이 속죄제를 드림

④ 제사장이 속건제를 드림

⑤ 제사장이 화목제를 드림

8 제사장이 제물을 먹는 규례

9 정결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

10 부녀 산후 정결케 하는 규례

11 문둥병을 검사하는 표준

12 문둥병환자 치유받는 규례

13 병균에 감염된 방을 정결케 해야 하는 규례

14 유출병 등 질병에 관한 규례

15 매년 한번 속죄일을 지켜야 함

16 소와 양을 잡는 규례

17 이방인의 악습을 좇지 말라 (근친 결혼 등)

18 백성들이 지켜야 할 규례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19 자녀를 몰렉에게 바치는 자는 쳐죽임

20 간음죄를 범한 자를 처벌하는 규례

21 제사장이 지켜야 할 규례 (사람이 지켜야 할 일상 행동 규례, 성물을 먹는 규례, 생축으로 제사드리는 규례 등)

22 지켜야 할 절기 (안식일, 유월절, 오순절, 속죄일 등)

23 기타 규례 (등불 관리, 희년, 토지 무르기, 서원, 십일조 등)

율법시대의 규례는 하나님이 전 인류를 인솔한 실증이다

율법시대의 이런 규례나 원칙을 너희는 모두 보았겠지? 이런 규례는 범위가 넓은가, 넓지 않은가? 먼저 십계명을 논하고 그다음은 어떻게 제단을 쌓는가 등등의 규례이다. 이어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3개 절기를 지키는 논법이고 그다음은 제사를 드리는 규례이다. 너희들이 봐라, 제사를 드리는 데에 모두 몇 가지가 있는가?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등등이 있고 그다음은 제사장이 제사를 드리는 규례인데, 제사장이 번제를 드리는 것, 제사장이 소제를 드리는 등등 여러 가지 제사를 드리는 것을 포함한다. 여덟 번째는 제사장이 제물을 먹는 규례이고 그다음은 사람이 생활 속에서 지켜야 할 규례이다. 여기에 사람의 생활과 관련되는 여러 방면에 모두 규정이 있다. 예컨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에 관한 규례, 부녀 산후 정결케 하는 규례, 문둥병 환자가 치유받는 규례이다. 이런 규례 중 질병에 관한 일까지도 하나님이 다 말씀하였다. 심지어 또 소나 양을 잡는 규례 등등도 있다. 소나 양은 하나님이 만든 것이니, 하나님이 어떻게 잡으라고 하면 그대로 잡아야 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없이 일리가 있기에 하나님의 규정에 따라 행한다면 틀림없이 옳은 것이고 틀림없이 사람에 대해 유익한 점이 있다! 그리고 일부 지켜야 할 절기와 규례도 있다. 예컨대, 안식일과 유월절 등등도 하나님이 논법을 제시하였다. 우리 마지막 한가지 기타 규례를 보자. 등불 관리, 희년, 토지 무르기, 서원, 십일조 등등 이런 규례 중의 각 방면은 관련된 범위가 넓은가, 넓지 않은가? 먼저는 사람이 제사를 드리는 문제에 관련되고, 그런 후 또 도둑질, 배상, 안식일 지키는 것……생활 속의 사소한 부분까지도 관련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그의 경영 계획을 시작하여 정식으로 사역을 하였을 때 사람을 위해 많은 규례를 제정해 사람들에게 지키게 하였다. 이런 규례가 바로 사람에게 땅에서 정상적인 인류의 생활이 있게 하는 것이다. 이 정상적인 인류의 생활은 하나님을 떠날 수 없고 하나님의 인솔을 떠날 수 없다. 하나님은 우선 사람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제단을 만드는지, 어떻게 그의 제단을 쌓는지를 알려주었고 그다음 사람에게 어떻게 제사를 드리는지를 알려주었으며 또 사람이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생활 속에서 어떤 것에 주의해야 하는지, 어떤 것을 지켜야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정해주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위해 각 방면을 빈틈없이 규정하였는데, 이런 규례, 이런 규칙, 이런 원칙으로써 사람의 행위를 규범화하고 사람의 생활을 인솔하고 사람을 하나님의 율법 속으로 들어가도록 인솔하고 사람을 하나님의 제단 앞으로 오도록 인솔하고 사람을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만든 만물 가운데서 질서있게, 법칙있게, 절제있게 생활하도록 인솔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선 이런 간단한 규례와 원칙으로 사람에게 얼마간의 범위를 제정해주어 땅에서 정상적으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생활이 있게 하고 정상적인 인류의 생활이 있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그의 6천년 경영 계획을 시작한 일부 구체적 내용이다. 이런 규례와 규정은 망라한 내용이 아주 광범위한데, 하나님이 율법시대에서 인류를 인솔한 구체적 항목이다. 그것은 율법시대 이전의 사람들이 반드시 받아들이고 반드시 준수해야 할 것이고 하나님이 율법시대에 한 사역의 기록이자 역시 하나님이 전 인류를 인솔하고 전 인류를 인도한 실증이다.

인류는 영원히 하나님의 가르침과 공급을 떠날 수 없다

이런 규례에서 하나님이 사역을 대하고 그의 경영을 대하고 인류를 대하는 태도가 엄숙하고 진지하고 신중하고 책임지는 것임을 보게 된다. 그는 그의 절차에 따라 조금도 차이없이 인류 가운데서 그가 하려는 사역을 하고, 그가 하려는 말씀을 조금도 차이없이, 조금도 빠짐없이 사람에게 알려주어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이 하나님의 인솔을 떠날 수 없음을 보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한 것과 말씀한 것이 사람에 대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게 하였다. 사람이 다음 시대에는 어떠하든지 간에 총체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이 가장 최초의 율법시대에는 바로 이런 간단한 사역을 하였다. 하나님이 보기에 그 시대의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세상에 대해, 인류에 대해 개념이 아주 모호하고 아주 혼탁한 것이었다. 설령 의식 속에 생각이 좀 있거나 타산이 좀 있다 하더라도 다 분명한 것이 아니고 정확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인류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가르침과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공급을 떠날 수 없다. 가장 최초의 인류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하나님은 가장 간단명료하고 가장 기본적인 인류 생존의 원칙과 생활에 있어야 할 이런 규례에서부터 사람을 가르치고, 이런 것을 조금씩 사람 마음속에 만드는 수밖에 없었으며, 이런 말씀의 규정을 통해, 이런 규례를 통해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점차적인 요해가 있게 하였고 하나님의 인솔에 대해 점차적인 터득이나 이해가 있게 하였으며 하나님과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해 하나의 기본적인 개념이 있게 하였다. 이런 효과에 달한 후에야 하나님은 조금씩 이후에 해야 할 사역을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율법시대의 이런 규례와 하나님이 한 사역은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의 기초의 기초이고, 하나님 경영 계획의 시작 사역이었다. 비록 율법시대의 사역 전에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 또는 그의 후대에게도 얼마간의 말씀을 한 적이 있지만 그런 분부와 가르침은 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이렇게 구체적으로 이와 같이 한 조목씩 사람에게 반포한 것이 아니고 문서화되지 않았고 규칙화되지도 않았다. 그때는 하나님의 계획이 아직 그 정도에까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을 인솔하여 이 정도에까지 이르게 해야만 율법시대의 이런 규례를 말씀하기 시작할 수 있었고 사람에게 율법시대의 이런 규례를 집행하도록 하기 시작할 수 있었는데, 이 과정은 필수적인 것이고 이 결과도 역시 필연적인 것이다. 이런 간단한 규례와 규칙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 경영 사역의 절차를 보게 하고, 하나님의 경영 계획 중에서 유로된 하나님의 지혜를 보게 한다. 하나님은 어떤 내용으로, 어떤 방식으로 시작하고 어떤 방식으로 계속하고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해야 그를 간증하는 한 무리 사람들을 얻을 수 있고 그와 합심할 수 있는 한 무리 사람들을 얻을 수 있는지를 알고 있다. 그는 사람 안에 무엇이 구비되어 있는지를 알고 사람 안에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며 그는 사람에게 무엇을 공급해야 하는지를 알고 어떻게 사람을 인솔해야 하는지를 알며 그는 사람이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사람은 마치 나무 인형과 같다. 설령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대해 요해가 없을지라도 사람은 여전히 자신도 어쩔 수 없이 하나님 경영 사역의 절차에 따라 한걸음씩 오늘까지 인솔되어 오게 되었다. 하나님 마음속에서는 어떤 일을 하든지 다 흐리멍덩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마음속에는 분명하고 뚜렷한 계획이 있다. 그는 그의 절차에 따라, 그의 계획에 따라 얕은 데서 깊은 데로 그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한다. 설사 그 이후의 사역을 미리 사람에게 예시해주지 않았을지라도 그의 다음 사역은 여전히 엄격하게 그의 계획에 따라 계속 진행되고 전개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소유소시의 창현이자 역시 하나님의 권병이다. 그가 그의 경영 계획에 따라 어느 단계 사역을 하든지 그의 성품과 실질은 다 그 자신을 대표하는데, 이것은 조금도 틀림없다. 어떤 시대에서든지, 어느 한 절차의 역사 중에서 그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어떤 사람을 혐오하든지 그의 성품과 그의 소유소시는 영원히 변할 수 없는 것이다. 설사 사람이 하나님이 율법시대 역사에서 규정한 이런 규례와 원칙을 현재에 가져와보면 아주 얕고 아주 간단한 것일 뿐만 아니라 사람이 쉽게 이해하고 쉽게 해내는 것이라고 보았을지라도 그중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지혜가 있고 여전히 하나님의 성품과 소유소시가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 왜냐하면 보기에 간단한 이런 규례 속에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책임과 염려가 발표되어 있고 하나님 마음의 아주 세밀한 실질도 발표되어 있어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만유를 주재하고 있고 만유는 전부 하나님 손에 주관되고 있다는 이 사실을 진정 체험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인류가 지식을 얼마큼 장악했든지, 도리와 비밀을 얼마큼 깨달았든지 하나님이 보기에 모두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공급과 인솔을 대체할 수 없으며 인류는 영원히 하나님의 인도를 떠날 수 없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도 떠날 수 없는데, 이것은 하나님과 인류와의 갈라놓을 수 없는 관계이다. 하나님이 너에게 준 것이 하나의 계명이든지, 하나의 규칙이든지 또는 하나님이 너에게 진리를 공급함으로 그의 뜻을 깨닫게 하든지,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목적은 다 사람을 인솔하여 아름다운 내일을 향해 나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발표한 모든 말씀과 하나님이 한 이런 사역은 다 하나님 실질의 한 방면의 유로이고, 그의 성품과 지혜의 한 방면의 유로이며, 그의 경영 계획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절차인데, 이것은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지 모두 하나님의 뜻이 그중에 있다. 하나님은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마구 논하는 것을 염려하지 않고 사람에게 그에 대해 어떤 관념과 생각이 생기는 것도 염려하지 않는다. 그는 오로지 그의 경영 계획에 따라 그 어떤 인사물의 통제도 받지 않고 그의 사역을 하고 그의 경영을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얘기하자. 짜이찌엔(再見)!

2014년 6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