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하나님을 알아가는 길)

말세 그리스도의 말씀 (속편) [낭송]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하나님을 알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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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 그리스도의 말씀 (선집) [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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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발췌문)

제5부분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태도에 따라 결정된다

하나님은 살아 있는 하나님이다. 어떤 일에 부딪히면 사람들은 각기 다른 행실을 보인다. 하나님은 사람의 각기 다른 행실에 따라 다른 태도를 취하는데, 이는 그가 목석도 아니고 공기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태도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의 태도를 알아 가면서 조금씩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조금씩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다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이해하게 되면 하나님을 쉽게 규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더 이상 하나님을 규정하지 않게 되면 하나님을 쉽게 거스르지 않을 것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이 너를 인도하여 하나님을 알게 해 줄 것이다. 이로써 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또한 더 이상 자신이 알고 있는 글귀의 이치나 이론을 하나님께 씌우지 않고,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 될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하는 사역을 보지 못하고 짐작하지도 못하지만, 하나님 입장에서는 모든 사람의 행위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를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볼 수도 있다. 이는 사람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부분이다. 만약 네가 속으로 늘 이런 생각을 품고 있다고 해 보자. ‘내가 여기에서 이렇게 하는 걸 하나님이 아실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걸 하나님이 아실까? 아실 수도 있고 모르실 수도 있을 거야.’ 네가 한편으론 이런 관점을 가진 채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또 한편으론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한다면 언젠가는 하나님을 거슬러 노하게 할 것이다. 너는 이미 위험한 경계에 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보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었으면서도 진리 실제를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은 더더욱 모르며, 생명과 분량이 전혀 자라지 않는 사람, 얕디얕은 수준의 도리밖에 지키지 않는 사람 말이다. 그렇게 된 원인을 살펴보면 그들은 지금껏 하나님 입에서 나온 말씀을 생명으로 받아들인 적이 없고, 하나님의 존재를 직시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보면 기뻐하겠느냐? 마음에 위로가 되겠느냐?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방식이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추구하고 하나님을 대하는지, 사람의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을 공기처럼 여겨 뒷전에 미뤄 두지 말고, 네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 있고 확실히 존재하는 하나님임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는 셋째 하늘에서 할 일 없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시시각각 사람들의 마음과 모든 언행을 감찰하고 있으며, 너의 행실과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를 감찰하고 있다. 너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기 원하든 원치 않든 너의 모든 행위와 마음과 생각은 다 하나님 앞에 놓여 있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고 있다. 너의 일거수일투족으로 인해, 너의 태도로 인해 하나님은 끊임없이 너에 대한 견해를 바꾸고 있고, 너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일부 사람들에게 충고하고자 한다. 자신을 하나님의 손안의 귀염둥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너를 매우 총애하고 하나님에겐 네가 없으면 안 된다고 착각하지 말고, 너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고정불변이라고 착각하지도 말아라. 꿈꾸지 마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공의롭게 대한다. 그는 아주 신중하고 엄숙하게 정복 사역과 구원 사역을 행한다. 이것이 그의 경영이다. 그는 모든 사람을 엄격하고 진지한 태도로 대한다. 사람을 애완동물처럼 어르고 달래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총애나 지나친 애정이 아니다. 사람에 대한 긍휼과 관용은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방임이 아니다. 반대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아끼고, 가엾게 여기며,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긍휼과 관용에는 그의 기대가 깃들어 있으며, 그의 긍휼과 관용은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밑천이다. 하나님은 살아 있는 분이고, 실제로 존재하는 분이다. 사람에 대한 그의 태도에는 원칙이 있다. 그 원칙은 바뀔 수 있는 것이지 절대로 규례가 아니다. 인류에 대한 그의 마음은 시간과 환경에 따라, 사람들의 태도에 따라 점차 바뀌고 달라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본질은 변함이 없지만 하나님의 성품은 시간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아마 너는 이 일을 그리 심각하지 않게 여기면서 너의 고정 관념으로 하나님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상상할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일은 너의 관념과 정반대이다. 네가 자신의 관념으로 하나님을 가늠하는 순간, 너는 이미 하나님을 거슬러 노하게 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로 네 상상대로 행하지 않을 것이고, 절대로 너의 말처럼 일을 대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신중하게 대하라고 일깨워 주고자 한다. 또한 범사에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것, 곧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원칙에 따라 실천하는 법을 배우라고 일깨워 주고자 한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태도에 관한 일을 대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올발라야 하고, 분별이 있는 사람들과 교제하며 성실히 구해야 한다. 네가 믿는 하나님을 장난감처럼 여겨 함부로 판단하거나 결론을 내리거나 오만불손한 태도로 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고 너의 결말을 정하는 과정에서 너에게 긍휼과 관용을 베풀든, 심판과 형벌을 주든 결론적으로 너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너의 태도와 인식에 달려 있다. 네가 하나님의 어떤 면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해서 그걸 가지고 영원히 하나님을 규정해서는 안 된다. 죽은 하나님을 믿지 말고 살아 있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기억했겠지? 내가 한 말들은 사실이자 너희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지금 너희의 내적 상태와 분량을 감안해 나는 더 높은 요구로 너희의 적극성을 꺾고 싶지 않다. 그런 식으로 너희 마음을 처량하게 만들거나 하나님에 대해 큰 실망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반대로 나는 너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존중하는 태도로 앞을 향해 나아가기 바란다. 하나님을 믿는 일을 흐리멍덩하게 대하지 말고, 가장 큰 일로 여겨 마음속에 담아 두고, 실제와 연결 짓고 실생활과 연결 짓기를 바란다. 입에만 달고 있지 말아라. 왜냐하면 이 일은 목숨과 결부된 일이고, 너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일을 우스갯소리나 아이들 장난으로 여기지 마라! 오늘 너희와 나눈 말을 통해 너희가 뭐라도 깨닫고 얻은 것이 있는지 모르겠구나. 내가 한 말에 대해 또 궁금한 것이 있느냐?

이런 주제는 다소 새롭기도 하고, 너희의 관점이나 너희가 평소 추구하고 중시하던 것과는 좀 거리가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교제하고 나면 내가 한 말들에 대해 너희에게 공통의 인식이 생길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주제들은 아주 새롭고 너희가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다. 이런 말들이 너희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오늘 이런 말을 하는 목적은 너희에게 겁을 주거나 이런 방식으로 너희를 책망하려는 게 아니라 진실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어쨌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태도도 알지 못한다. 그뿐 아니라 사람은 하나님의 태도에 대해 그렇게 열성적으로 관심을 갖지도 않는다. 무턱대고 믿다 보니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흐리멍덩하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내용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해 너희가 알게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즉, 너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 그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각 부류의 사람에 대한 그의 태도는 어떤지, 너희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그의 요구와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인지, 그가 요구한 기준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에 대해 말이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너희들 각자의 마음속에 판단의 기준이 생겨 자신이 이 길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아직 얻지 못한 것은 얼마나 되는지, 아직 발을 들여놓지 않은 영역은 무엇인지 알게 하려는 것이다. 평소 너희가 교제할 땐 일부 사람들이 늘 말해 오던 주제만 다루다 보니 교제의 범위가 매우 좁고 내용도 너무 얕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나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범위 기준과 거리가 멀고 차이도 난다. 계속 이대로 나간다면 하나님의 도에서 점점 멀어질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의 기존 말씀을 그저 숭상할 대상으로 삼고, 의식과 규례로만 삼게 될 뿐이다. 그게 다이다! 사실 너희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전혀 없고, 또 하나님은 지금까지 너희 마음을 얻은 적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아 가는 일이 매우 어렵다고 여긴다. 그것도 솔직한 말이다. 확실히 좀 어렵다! 본분을 이행할 때 사람에게 외적인 일을 하라고 하거나 열심히 일하라고 하면 하나님을 믿는 일이 아주 쉽다고 여길 것이다. 이는 다 인류의 능력 범위 안에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와 관련된 영역은 사람에게 있어 분명 어려움이 있다.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진입하는 일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어려움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네가 첫걸음을 떼고 진입하기 시작하면 어려움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시작이다

방금 누가 “저희는 하나님에 대해 욥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데 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까요?”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선 전에도 살짝 언급한 적이 있다. 그렇지? 사실 우리는 이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도 얘기했었다. 당시 욥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했고, 하나님을 천지 만물의 주재자로 여겼다. 그는 하나님을 원수로 여기지 않았고 창조주로 여겨 경배했다. 그런데 지금의 사람은 왜 하나님을 이렇게도 대적할까? 왜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할까? 첫 번째 원인은, 지금의 사람은 사탄에 의해 심히 패괴되었고, 사탄의 본성이 깊이 뿌리박혀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과 맞서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본성으로 결정된 것이다. 두 번째 원인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는 있지만 하나님을 전혀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고, 사람의 대립 상대로 여기고 사람의 원수로 여기면서 하나님과 맞서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원인은 이처럼 간단하다. 이것도 조금 전 교제할 때 언급하지 않았느냐? 곰곰이 생각해 보아라. 이 원인이 맞지 않으냐? 설령 네가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좀 있을지라도 너의 인식은 어떤 것이냐? 모두들 이야기하고 있는 것 아니냐? 하나님이 알려 준 것 아니냐? 너는 고작 이런 것과 관련된 이론과 도리만 알 뿐이다. 하나님의 진실한 일면에 대해 깨달은 것이 있느냐? 주관적인 인식을 갖고 있느냐? 실제적인 인식과 체험이 있느냐? 하나님이 알려 주지 않는다면 알 수 있겠느냐? 이론을 알았다고 해서 진실한 인식을 갖추고 있음을 뜻하는 건 아니다. 결론적으로 네가 어떻게 알게 되었든, 얼마나 알고 있든 하나님을 진실하게 알기 전까진 하나님은 너의 원수인 것이다. 또한 네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기 전까진 하나님은 여전히 너와 대립되는 지점에 서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네가 사탄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네가 그리스도와 함께할 때 너는 아마 하루 세끼 시중들며, 차를 대접하고 물을 떠다 드리며, 그의 생활을 돌볼 것이다.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대하는 것 같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일이 생기면 사람의 관점은 늘 하나님과 어긋나고, 사람은 늘 하나님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람이 겉으로는 그와 화목하게 지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그와 마음이 잘 맞음을 뜻하진 않는다. 일단 일이 생기면 사람은 거역하는 본색을 드러낸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과 대치된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렇게 대치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과 대립하는 것도, 하나님이 사람을 적대시하는 것도, 하나님이 사람을 자신과 대립되는 지점에 놓고 대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의 주관적인 의지와 잠재의식 속에 하나님과 대립되는 이런 본질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온 모든 것을 연구 대상으로 삼기에 하나님에게서 온 것을 대하거나 하나님과 관련된 것을 대할 때 가장 먼저 보이는 반응은 추측과 의심이다. 그런 다음 사람은 재빨리 저항하는 태도를 취하여 하나님과 대립할 것이다. 이어서 부정적인 감정을 품고 하나님을 ‘논박’하거나 하나님과 겨루려 들 것이다. 심지어 이런 하나님을 따를 가치가 있는지 의심하기까지 할 것이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알더라도 어쩔 수 없이 이런 선택을 하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이 선택을 끝까지 고수할 것이다. 가령 하나님에 관한 어떤 유언비어나 비방을 들었을 때 사람의 첫 번째 반응은 무엇일까? ‘그 유언비어가 사실인지, 거짓인지, 존재하는지, 아닌지 모르니 조용히 지켜봐야지.’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런 다음 ‘이 일이 정말 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네. 이 유언비어는 진짜일까?’라고 생각해 본다. 물론 겉으로는 아무런 태도도 취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이미 의심하기 시작했고, 하나님을 부인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태도와 관점은 어떤 본질을 지니고 있느냐? 배반이 아니냐? 이 일이 닥치기 전까진 그 사람의 관점이 보이지 않으니 그는 하나님과 대립하지 않고 하나님을 원수로 여기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그 사람은 즉시 사탄의 편에 서서 하나님과 대립한다. 이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느냐? 사람은 하나님에게 대립적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하나님이 사람을 원수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본질 자체가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따른 시간이 얼마나 오래되었든, 지불한 대가가 얼마나 되었든, 하나님을 어떻게 찬양하든,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어떻게 억제하든, 심지어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스스로에게 요구할지라도 사람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못한다. 이것은 사람의 본질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냐? 네가 그를 하나님으로 대하고 정말 하나님으로 여긴다면 그에 대한 의심이 생길 수 있겠느냐? 마음속에 그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겠지? 이 세상의 풍조가 이렇게 사악하고, 이 인류가 이렇게 사악한데 너는 왜 그들에 대해서는 관념을 가지지 않는 것이냐? 너 스스로가 그렇게 나쁜데 왜 관념을 가지지 않느냐? 몇 마디 유언비어나 비방으로 하나님에 대해 그렇게 큰 관념과 그렇게 많은 생각을 갖는데, 너의 분량이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다. 모기나 역겨운 파리 몇 마리가 ‘앵앵거렸을’ 뿐인데 미혹되었단 말이냐?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느냐? 사실 그런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아주 분명하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차갑게 무시해 버린다. 아예 상대하지 않는다. 이 무지한 자들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는 그를 필사적으로 적대하려고 하고, 그의 마음에 합하는 길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을 얻을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해서 또 일부에게 상처를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너희는 내가 계속 이렇게 너희에게 상처 주는 것을 원하느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쨌든 내 말은 사실이다! 내가 계속 이렇게 너희에게 상처를 주고 늘 너희의 흉터를 들춰내면 너희 마음속에 있는 위대한 하나님의 이미지에 영향을 주지 않겠느냐? (아닙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애초에 너희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다. 너희가 마음속으로 애써 지키고 보호하는 위대한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 상상해 낸 것으로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이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밝히는 편이 좋겠다. 그러면 ‘진상이 환히 드러나지’ 않겠느냐? 참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해 낼 수 있는 분이 아니니 너희 모두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그래야 너희가 하나님을 알아 가는 데에 유익하다.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

어떤 사람들의 믿음은 하나님께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그 사람들을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따른 시간이 얼마나 되었든 그들의 생각과 관점은 바뀐 적이 없다. 그들은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방인의 처세 원칙과 방식을 지키고 있고, 이방인과 같은 생존 법칙과 신념을 지키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받아들인 적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사실을 믿은 적이 없으며,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려고 한 적도 없고,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라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취미로만 믿을 뿐이고, 하나님을 정신적 의지처로만 여길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은 알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 다시 말해, 진정한 하나님의 모든 것은 그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그들은 관심을 가지려고도, 거들떠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늘 ‘하나님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다.’라고 말하는 강렬한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런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고, 자신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입으로만 인정하면서 그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고 그 어떤 실제적인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 진짜 현명한 것이라고 여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볼까? 하나님은 그들을 이방인으로 여긴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방인이 하나님 말씀을 볼 수 있나요? 본분을 이행할 수 있나요? 하나님을 위해 산다는 말을 할 수 있나요?” 사람들이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다 외적 행실이지 사람의 본질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외적인 행실을 보지 않고 사람의 내적 본질만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들에 대해 이런 태도를 취하고, 이런 정의를 내리게 된 것이다. 이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시죠? 하나님은 왜 저렇게 하시죠? 난 이 일을 납득할 수 없고 저 일도 납득할 수 없어요. 이 일은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아요.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을 해 주셔야 합니다.” 이런 말에 나는 이같이 답할 것이다. “너에게 설명해 줄 필요가 있느냐? 이 일이 너와 상관이 있느냐? 너는 누구냐? 너는 어디서 왔느냐? 네가 하나님에 대해 흠잡을 자격이 있느냐? 네가 그를 믿기라도 하느냐? 그가 너의 믿음을 인정하느냐? 너의 믿음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데, 그의 행사가 너와 또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하나님 마음속에서 너의 위치가 어떤지도 모르는데, 네게 하나님과 대화할 자격이 있겠느냐?”

훈계의 말씀

너희는 이 말을 듣고 무척 괴롭지 않으냐? 듣기 싫거나 받아들이기 싫을지라도 이는 다 사실이다. 이 단계의 사역은 하나님이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태도에 관심이 없고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을 알아 가지 않는다면, 최종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은 너 자신이다. 너희는 내 말이 듣기 거북하다고 탓하지 말고, 내 말이 너희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다고 탓하지도 마라. 내가 말하는 것은 다 사실이지 너희에게 타격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너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어떻게 하라고 요구하든 모두 너희가 올바른 길을 가기 바라고, 너희가 올바른 길에서 빗나가지 말고 하나님의 도를 행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그의 도를 지키지 않는다면, 너는 하나님을 거역하며 올바른 길에서 엇나가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래서 나는 어떤 일들에 대해서는 너희에게 명확히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너희가 흐리멍덩하지 않고 아주 분명하고 정확하게 믿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태도,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온전케 하는지,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의 결말을 정하는지를 너희가 분명히 알 수 있도록 말이다. 언젠가 네가 따라가지 못하게 되더라도 나는 이미 내게 책임이 없다고 할 것이다. 나는 이미 많은 말을 분명히 해 주었기 때문이다. 네가 자신의 결말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전적으로 너에게 달렸다. 하나님은 각기 다른 태도로 사람들의 결말을 대하고 있다. 그에게는 자신만의 가늠 방식이 있고, 자신만의 요구 기준이 있다. 그 가늠 기준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 이유로 어떤 이들의 걱정은 불필요한 것이다. 이제 안심이 되겠지? 오늘은 여기까지 얘기하겠다. 안녕!

2013년 10월 17일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하나님을 알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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