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제1부분

먼저 찬양을 부르자.

<하나님나라의 축가 1 하나님나라가 인간 세상에 임했네>

아… 아… 아… 아…

1. 하나님나라 인간 세상에 임하였네. 충만하고도 완벽한 하나님의, 완벽한 하나님의 본체, 누군들 경축하지 않을까? (경축하지 않을까?) 누군들 기쁨의 기쁨의 춤을 추지 않을까? 시온이여! 승리의 깃발 들고 경축하라! 개선가를 불러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전파하라! 온 백성이 하나님 찬미하고, 입을 모아 참하나님 칭송하며, 하나님의 모든 행사 바라보네. 하나님나라 인간 세상에 임하였네.

2. 온 땅에 있는 만물이여! (온 땅의 만물이여!) 정결히 씻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라! 하늘의 별들이여! 제자리로 돌아가 하늘에서의 하나님 권병 나타내라! 하나님 귀를 기울이시니, 온 땅의 백성들 노랫소리엔 하나님 향한 한없는 경외와 사랑 담겨 있다네! 온 백성이 하나님 찬미하고, 입을 모아 참하나님 칭송하며, 하나님의 모든 행사 바라보네. 하나님나라 인간 세상에 임하였네.

3. 만물이 소생하는 날 (소생하는 날), 하나님 친히 세상에 임하셨네. (세상에 임하셨네.) 이때에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새들이 노래하며, 만물은 기뻐하네! 사탄의 나라는 하나님나라의 축포 소리와 축가 소리에 무너져 영원히 일어서지 못하리! 온 백성이 하나님 찬미하고, 입을 모아 참하나님 칭송하며, 하나님의 모든 행사 바라보네. 하나님나라 인간 세상에 임하였네.

4. 이 땅에서 누가 감히 대적할까? (대적할까?) 이 땅에 강림하신 하나님은 진노와 재난과 불사름 가져오셨네. 세상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 되었도다! 구름은 뭉게뭉게 피어나고, 호수는 곡조를 연주하네. 쉬고 있던 동물, 굴에서 나오고, 잠자던 만백성, 하나님이 깨우셨네. 기다리던 그날이 드디어 왔도다! 하나님께 가장 아름다운 노래 바치네! 온 백성이 하나님 찬미하고, (온 백성이 하나님 찬미하고,) 입을 모아 참하나님 칭송하며, 하나님의 모든 행사 바라보네. 하나님나라 인간 세상에, 하나님나라 인간 세상에 임하였네.

너희는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드느냐? (감격과 감동에 벅차오릅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하나님나라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사람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나님과 함께 지낼 수 있을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너희가 상상하기에 사람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나님과 함께 이후의 아름다운 하나님나라의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성품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품이 어느 정도까지 변화되어야 하느냐?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하느냐? (성결해져야 합니다.) 성결해진다는 것에는 어떤 기준이 있느냐? (모든 생각이 그리스도와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된다는 것은 어떤 모습이냐?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고,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의 대답은 정답에 가깝다. 모두 마음을 열고 하고 싶은 말들을 해 보거라.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생활할 사람이라면 마땅히 기본적으로 진리를 추구하면서 사람과 일, 사물의 통제를 받지 않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마음이 하나님과 일치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하나님과 일치하고,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적어도 사탄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희는 사람이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아직 하나님의 구원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기준은 사람의 마음과 뜻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더 이상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을 알고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결말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차지하는 무게

너희는 자신이 지켜야 할 도에 대해 나름의 인식이나 깨달음 같은 것들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인식이나 깨달음이 공허한 것인지 실제적인 것인지는 너희가 평소 실행할 때 무엇에 중점을 두느냐에 달려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너희는 각 부분의 진리에 대해 도리적인 면에서나 진리의 내용적인 면에서나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뒀다. 그것은 지금의 사람들이 진리 추구를 무척 중요시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진리의 각 부분과 이런저런 틀은 분명 일부 사람들 마음속에 이미 깊이 뿌리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런 진리의 주제와 이론은 너희 마음속에 뿌리내렸지만 실제적인 내용은 아직 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너희가 시련에 직면하고 선택에 직면했을 때 그런 진리의 실제가 너희에게 있어 얼마만큼의 역할을 할까? 너희가 난관을 헤쳐 나가고 시련에서 나와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고, 시련 속에서 굳게 서서 하나님을 힘 있게 증거하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너희는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느냐? 너희에게 묻겠다. 너희는 마음속으로나 너희가 매일 생각하는 이런 일에서 너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너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 혹자는 당연히 진리 실행이라고 하고, 또 혹자는 당연히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것이라고 한다. 혹자는 당연히 매일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라고 하고, 또 혹자는 당연히 매일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범사에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하고 싶을 뿐이라고 한다. 맞느냐? 이런 내용들만 있을까?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싶었지만 막상 일이 닥쳤을 때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저는 한 번만이라도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아무리 해도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릴 수가 없어요.”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싶었어요. 시련이 닥쳤을 때 하나님의 지배에 따르고 어떤 원망이나 요구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해도 순종하지 못하고 거의 매번 실패했습니다.” 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저는 선택을 해야 할 상황에 놓였을 때, 늘 진리 실행을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늘 육체적 만족을 바랐고, 제 개인의 사욕을 만족시키려고만 했습니다.” 왜 그런 걸까? 하나님이 검증하기 전에 너희는 수차례 자신에게 도전해 보고 자신을 검증해 보지 않았느냐? 자신이 진실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진실로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절대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자신의 선택 없이 자신과 자신의 사욕을 만족시키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만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를 보았을 것이다. 이렇게 해 본 사람이 있지 않으냐? 너희 앞에 놓인 사실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최대 관심사이자 가장 궁금해하는 것, 바로 각자의 결말과 종착지이다. 아마도 너희는 이 점을 의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아무도 이 점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의 결말과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을 어떤 종착지로 이끄는지 등 이 몇 가지 진리와 하나님 말씀을 이미 여러 차례 연구해 봤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리저리 찾아보고 고민한 뒤에도 결론을 내지 못하였거나, 혹은 애매한 결론만 얻고 결국 자신에게 어떠한 결말이 있을지는 확신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리 교제를 받아들이고, 교회 생활을 받아들이며,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늘 그 실제 사정을 알고 싶어 한다. 즉, 자신의 결말은 어떠할지, 자신이 끝까지 갈 수 있을지, 하나님은 사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 심지어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전에 어떤 일도 했었고, 어떤 말도 했어. 전에는 하나님을 거역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기도 했지. 그리고 어떤 일은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지도 못하고 상심케 하기만 했어. 그 일로 하나님이 내게 실망하신 것은 물론이고 나를 미워하고 증오하셨지. 그러니 내 결말은 미지수일 거야!’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결말에 대해 불안해한다. “난 내가 살아남을 거라고 100% 확신해. 난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자신이 있어. 난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고,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이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를 지키기가 아주 어렵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자신은 구제 불능이고, 좋은 결말이 있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혹은 자신은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없고, 살아남을 사람이 되지 못한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자신에게는 결말이 없고, 자신은 좋은 종착지를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 어떻게 생각하든 사람은 저마다 마음속으로 자신의 결말을 수도 없이 따져 본다. 자신의 앞날과 하나님의 사역이 끝났을 때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따져 보고 계획한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들은 배로 대가를 치르고, 어떤 사람들은 가정과 직장을 내려놓고, 어떤 사람들은 결혼을 포기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직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고, 어떤 사람들은 고난과 괴로움을 참고 견디면서 가장 힘들고 고달픈 일을 감당한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헌금하거나 모든 것을 바친다. 더욱이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 알기를 추구한다. 너희가 어떤 실행 방식을 택하든 그 방식이 중요하겠느냐?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 방식이 중요하지 않다면 무엇이 중요하냐? (외적인 행위가 좋다고 해서 그것이 진리 실행을 뜻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실행했는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가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적그리스도들이 넘어지고 또 일부 거짓된 리더들이 넘어지면서 저희는 외적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기꺼이 대가도 치렀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해부했을 때 저희는 그들에게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전혀 없고, 곳곳에서 하나님과 맞서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늘 사탄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일이 닥쳤을 때 우리가 어느 편에 서는지,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무엇인지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잘 말했다. 보아하니 너희의 마음속에는 진리 실행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요구에 대해 어느 정도 기초적인 인식도 있고 기준도 있구나. 너희가 그렇게 말하다니 무척 감동되는구나. 너희의 말이 적절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진리에 대해 마땅히 갖추어야 할 해석에 근접했다. 이는 너희가 주변의 사람, 일, 사물과 하나님이 마련한 환경과 너희 눈으로 본 것에 대해 이미 자신만의 진정한 인식, 즉 진리에 근접한 인식을 갖췄다는 점을 증명한다. 너희의 말이 완벽하지 못하고 적절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너희의 인식은 이미 진리의 실제에 매우 가까워졌다. 너희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니 기쁘구나.

사람의 생각은 진리를 대신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고난과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대가를 치르고 외적 행위가 아주 좋아 사람에게서 존경을 받고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외적 행위가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느냐?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한다고 확정할 수 있느냐? 왜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보면 흔히 그가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길을 가고, 하나님의 도를 지키고 있다고 여기느냐? 왜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냐? 거기에는 한 가지 이유밖에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진정으로 진리의 실제가 있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등의 문제에 대해 아직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종종 겉으로 보았을 때 영적이고 고상해 보이는 사람, 이미지가 괜찮은 사람에게 미혹된다. 사람들은 글귀 도리를 말하고, 말과 행동이 다른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그런 사람들의 일을 하는 본질과 원칙, 일을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또 그런 사람들이 진실로 하나님께 순종하는지,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지는 살피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의 인성 본질을 전혀 분별하지 않는다. 그 대신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점점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탄복하고 우러러보다가 나중에는 그 사람들을 자신의 우상으로 삼는다. 게다가 일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숭상하는 우상,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가정과 직장을 내려놓고 대가를 치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사람, 참으로 좋은 결말과 좋은 종착지가 있을 사람, 하나님이 칭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존재하는 이런 ‘생각’은 어떤 원인으로 초래된 것이냐? 이 일의 본질은 무엇이냐? 이 일로 초래된 결과는 무엇이냐? 먼저 이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앞에서 언급한 사람의 관점과 실행법, 사람이 스스로 취한 실행 원칙, 그리고 사람들이 평소에 중시하는 것들은 본질적으로 모두 하나님의 요구와 무관하다. 사람이 중요시하는 것이 깊든 얕든, 글귀의 이치이든 실제이든, 결론적으로 말해서 사람은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했고,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했다. 그 원인을 따져 보면, 사람이 진리를 전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실행 원칙을 찾아 실행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도리어 지름길로 가면서 자기 자신이 생각하고 있고 알고 있는 좋은 행위와 방법을 종합해 그것을 자신의 목표로 삼아 추구하고, 진리로 삼아 실행하고 있다. 이렇게 했을 때 직접적으로 초래되는 결과는 바로 사람이 인위적인 좋은 행위로 진리 실행을 대체하게 되고, 동시에 하나님의 환심을 사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시키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람에게는 진리에 대항하는 밑천, 하나님과 이치를 따지며 맞서는 밑천이 생기게 된다. 그와 동시에 사람은 서슴없이 하나님을 한쪽에 제쳐 놓고 자신의 마음속 우상을 하나님 자리에 놓는다. 사람에게 이런 미련한 행위와 우매한 사고방식, 혹은 단편적인 사고방식과 실행법이 생기게 된 근본 원인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을 오늘 알려 주겠다. 그 원인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면서 날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있어도 사실상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지 못한 데에 있다. 이것이 문제의 근원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혐오하는지, 무엇을 얻으려고 하고 무엇을 버리려고 하는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을 싫어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사람에게 요구하고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는지를 안다면, 사람에게 자신만의 생각이 있을 수 있겠느냐? 또 멋대로 다른 사람을 숭상할 수 있겠느냐? 또 일반 사람을 자신의 우상으로 삼을 수 있겠느냐? 만약 하나님의 뜻을 안다면 사람의 견해는 다소 이성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패괴된 사람을 함부로 자신의 우상으로 삼지 않을 것이고, 진리를 실행하는 길에서 제멋대로 몇 가지 간단한 규례나 원칙을 지키는 것을 진리 실행으로 여기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의 결말을 정하는 기준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고 있다

원래 주제로 돌아와 계속해서 결말에 관한 얘기를 해 보자.

모든 사람의 관심이 자신의 결말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너희는 하나님이 사람의 결말을 어떻게 정하는지 알고 있느냐? 하나님은 한 사람의 결말을 어떤 방식으로 정할까? 어떤 기준으로 한 사람의 결말을 정할까? 사람의 결말이 아직 정해지기 전, 하나님은 어떤 사역들을 하여 사람의 결말을 드러낼까? 이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느냐? 내가 방금 말했다시피, 일부 사람들은 사람의 결말이 무엇인지, 사람의 결말이 어떻게 나뉘는지, 사람마다 각각 어떤 결말이 있는지, 하나님 말씀에서는 사람의 결말을 어떻게 정했는지, 하나님이 어떤 기준과 방식으로 한 사람의 결말을 정하는지 알고 싶어서 하나님 말씀 가운데 오랫동안 연구를 해 왔다. 하지만 결국 아무 결과도 찾지 못했다. 사실 하나님 말씀에는 아주 조금만 언급되어 있을 뿐 내용이 많지 않다.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은 사람의 결말이 드러나기 전까진 그 누구에게도 최후의 결과를 알려 주기를 원치 않고, 사람의 종착지가 어떤지 미리 알려 주는 것도 원치 않는다. 사람에게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서 너희에게 알려 주고 싶은 것은 하나님이 어떤 방식을 통해 사람의 결말을 정하고 어떤 사역 원칙으로 사람의 결말을 정하고 드러내는지, 어떤 기준으로 한 사람이 살아남을지를 정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너희도 가장 관심 갖고 있는 내용이 아니냐? 그럼 사람의 관념에 따르면 하나님은 사람의 결말을 어떻게 정하느냐? 조금 전에 너희가 일부를 얘기했다. 즉, 어떤 사람들은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고 헌신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여 하나님을 흡족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배에 따르는 것이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너희가 이런 진리들을 실천하고, 스스로 원칙이라 생각하는 것에 따라 실천할 때,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느냐? 너희는 너희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는 것인지, 하나님의 기준에 맞는 것인지, 하나님의 요구에 부합하는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나는 많은 사람이 그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저 하나님 말씀의 일부, 설교의 일부, 그리고 자신이 숭상하는 일부 영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준을 따라서 적용하며 스스로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강요할 뿐이다. 마지막 결과가 어떠하든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여기며 계속 이를 고수하고 그대로 행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난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렇게 실천해 왔어. 그동안 많은 진리를 깨달았고, 지난날 몰랐던 것들도 많이 알게 됐지. 특히 사상과 관점, 인생의 가치관이 많이 바뀌고, 이 세상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됐어. 그래서 하나님을 아주 흡족게 해 드렸고 얻은 것도 적지 않은 것 같아.’ 그러면서 그것을 수확이라고, 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에게서 맺는 최종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너희 모든 사람이 실천하고 있는 것들을 포함한 이런 기준들을 종합해 보면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해 드리는 것이냐? 어떤 사람들은 확신에 차 대답한다. “물론이죠! 우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천하고, 상부의 설교에 따라 실천하며, 계속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따르면서 지금껏 하나님을 떠난 적이 없거든요.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고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이해했든,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깨달았든 결론적으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길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행한 것이 올바르다면, 결과도 틀림없이 옳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은 어떠하냐? 올바르냐? 아마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는 이런 일들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면서 계속 하나님 말씀의 요구대로 행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할 수 있는지, 하나님의 요구 기준에 다다랐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선 그런 걸 저한테 알려 주신 적도, 명확하게 지시하신 적도 없으시거든요. 저는 그저 쉬지 않고 행하면 하나님께서 흡족해하실 것이고, 더 이상 다른 요구는 없으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올바르냐? 내가 봤을 때, 너희의 그런 실천과 생각, 관점에는 상상이 섞여 있고 다소 맹목적이다. 내가 이 말을 하면 낙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맹목적이라고요? 그럼 우리가 구원을 받거나 살아남을 가망이 불투명하고 희박하다는 말인가요? 저희에게 찬물을 끼얹는 말씀 아닌가요?” 너희가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말하려는 것과 내가 하려는 것으로 너희에게 찬물을 끼얹는 느낌을 주려는 것은 아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더욱 잘 깨닫고, 하나님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혐오하고 무엇을 증오하는지, 어떤 사람을 얻으려고 하는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싫어해 버리는 대상인지 더 확실히 알게 하는 것이다. 너희 모두의 모든 행위와 생각이 하나님의 요구 기준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분명하고 뚜렷하게 알게 하려는 것이다. 이런 주제들에 관한 교제가 참으로 필요하지 않으냐? 나는 너희가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고 그렇게 많은 도를 들었지만 이런 부분이 가장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는 모든 진리를 다 기록해 두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부분은 머릿속에 기억하고 마음에 새겨 두며 준비를 해 둔다. 실천할 때가 되면 그 진리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릴 수 있도록, 수시로 필요한 것을 채울 수 있도록, 혹은 눈앞에 연이어 놓인 난관들을 극복하는 데에 도움을 받도록, 아니면 그 진리들이 너희의 삶에 함께하도록 말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너희가 어떻게 행하든 마냥 행하기만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하겠느냐? 네가 행할 때 그 행함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인지, 너의 행함과 생각과 이루려는 결실과 목표가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는 것인지, 하나님의 요구에 부합하는 것인지, 하나님이 인정하는 것인지 아주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이것들이야말로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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