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선집) [낭송]

목차

사람의 정상 생활을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귀숙으로 이끌어 들어간다(상)

사람은 지금의 사역에 대해 혹은 이후의 사역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인류가 이후에 도대체 어떤 귀숙으로 들어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있다. 피조물로서 마땅히 피조물의 본분을 해야 하고, 사람은 하나님이 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 너희는 내가 가라고 하는 대로 가야 한다. 너는 너 자신을 다스릴 수 없고 장악할 수 없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지배를 받고, 하나님의 손안에 장악되어 있다. 하나님이 사역을 하면서 미리 사람에게 어떤 결말이나 아름다운 귀숙을 주는 것으로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겨 하나님을 따르게 하고 사람과 거래를 한다면, 그것은 정복이라고 하지 않고 또한 사람의 생명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어떤 결말로 사람을 통제하여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결코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을 얻을 수도 없거니와 귀숙으로 사람을 통제하는 것이다. 사람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이후의 결말과 귀숙 그리고 도대체 좋은 소망이 있는지의 여부이다. 만약 사람을 정복하는 사역에서 사람에게 아름다운 소망을 주거나 사람을 정복하기 전에 먼저 사람에게 적합한 귀숙을 주어 추구하게 한다면, 사람을 정복하는 효과에 도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정복 사역의 효과에 오히려 영향을 끼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정복 사역은 사람의 앞날과 운명을 박탈하고, 사람의 패역한 성정을 심판하고 형벌하는 것을 통해 효과에 도달하는 것이지, 사람과 거래하는 것이 아니다. 즉, 결코 사람에게 축복과 은혜를 베풀어 주어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고 앞날을 거두어 사람의 충성심을 보는 것으로 효과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정복 사역의 실질이다. 처음부터 사람에게 아름다운 소망을 준 후 형벌과 심판의 사역을 한다면, 사람은 앞날이 있는 바탕에서 형벌과 심판을 받아들이는 것이기에 마지막에 가도 모든 피조물이 조물주에게 무조건적으로 순복하고 경배할 수 없다. 다만 계속 우매하게 순복하기만 하거나 혹은 토색하려고만 하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철저하게 정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런 정복 사역은 사람을 얻을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수도 없다. 그런 피조물은 결코 자신의 본분을 할 수 없고 조건만 따지게 된다. 그러면 그것은 정복이라고 할 수 없으며, 긍휼히 여기고 복을 베풀어 주는 것이다. 사람에게서 해결하기 가장 어려운 것은 운명과 앞날을 늘 마음에 두어 우상이 된 것이다. 사람은 다 운명과 앞날을 위해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인해 경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정복하려면 반드시 사람의 사심과 탐심 그리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처리해야만 사람을 정복하는 효과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맨 처음에 사람을 정복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사람의 야심과 가장 치명적인 것들을 제거해야 한다. 그것으로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발견하게 하고 인생에 대한 인식과 하나님에 대한 견해 그리고 생존의 의의가 바뀌어지게 한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은 순결해진다. 즉, 사람의 마음이 정복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결코 정복만을 위한 정복이 아니라 사람을 얻기 위해, 그의 영광을 위해, 처음 사람의 원래 모습을 회복시키기 위해 정복하는 것이다. 만일 단순히 정복을 위한 정복이라면 정복 사역의 의의를 잃게 된다. 다시 말해, 단지 사람을 정복한 후에 내버려 두어 상관치 않고 사람의 생사를 도외시한다면, 그것은 인류를 경영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도 아닌 것이 된다. 오직 사람을 정복한 뒤에 그들을 다시 얻고 마지막에 인류를 아름다운 귀숙으로 이끌어 들어가는 것이야말로 모든 구원 사역의 중심이고, 사람을 구원하는 목적을 이룬 것이다. 즉, 사람을 인류의 아름다운 귀숙으로 이끌어 안식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피조물에게 있어야 할 전망이고, 또한 조물주가 마땅히 해야 할 사역이다. 만약 사람이 사역한다면 너무나 유한하여 사람을 어느 정도까지만 이르게 할 수 있을 뿐, 영원한 귀숙으로 이끌어 들어갈 수는 없다. 인간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고, 사람의 앞날과 이후의 귀숙은 더더욱 보장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사람이 하는 사역과 다르다. 그는 사람을 창조한 만큼 사람을 이끌고, 사람을 구원하는 만큼 철저히 구원하여 완전히 얻으며, 사람을 인도하는 만큼 적당한 귀숙으로 이끌어 들어갈 수 있고, 사람을 창조하고 경영하는 만큼 사람의 운명과 앞날을 책임진다. 이것이야말로 조물주가 하는 사역이다. 비록 정복 사역은 사람의 앞날을 거두어 가는 것을 통해 도달하지만, 사람은 마지막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예비해 놓은 적합한 귀숙으로 이끌려 들어갈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기 때문에 사람에게 비로소 귀숙이 있게 되고, 사람의 운명에도 마침내 결말이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언급한 적합한 귀숙이란 지난날 거두어 갔던 사람의 앞날과 소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것과 별개의 것이다. 사람이 소망하고 추구하는 것들은 육체의 사치스러운 욕망을 추구할 때 바랐던 것들이지, 결코 사람에게 있어야 할 귀숙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에게 예비해 준 것은 사람이 정결케 된 다음 받아야 할 축복과 약속이고, 하나님이 창세후에 사람에게 예비해 놓은 것이기에, 사람의 선택과 관념 그리고 상상과 육체가 뒤섞여 있지 않다. 이런 귀숙은 어느 한 사람을 위해 예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안식의 땅이다. 그러므로 이런 귀숙은 인류에게 가장 적합한 귀숙인 것이다.

조물주가 뜻대로 피조물을 움직이려고 하면, 그가 어떻게 하든지 너는 벗어나려고 하지 말고 그가 하는 대로 따라야 하고, 그를 거역하지 말아야 한다. 그가 사역하여 마지막에 그의 목적을 이루면 영광을 얻은 것이다. 지금 왜 너를 모압의 후손이나 큰 붉은 용의 자손이라고 하지 않고 선민이라고도 하지 않고 피조물이라고만 하겠는가? 이것은 사람에게 원래 있었던 호칭이자 신분이다. 즉, 피조물인 것이다. 사역의 시대와 단계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호칭이 있게 된 것이다. 사실, 사람은 아주 평범한 피조물이다. 무릇 피조물이라면 가장 심하게 패괴된 자든 아니면 가장 거룩한 자든 모두 피조물의 본분을 해야 한다. 하나님은 정복 사역을 하면서 앞날과 운명 그리고 귀숙으로 너를 속박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역을 할 필요가 없다. 정복 사역을 하는 목적은 사람이 피조물의 본분을 하고, 모두 조물주를 경배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 후에야 사람은 아름다운 귀숙으로 들어갈 수 있다. 사람의 운명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 너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없는데, 설령 늘 자신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바쁘게 지낼지라도 자신을 장악할 수 없다. 네가 자신의 앞날을 알 수 있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다면, 너를 어찌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든 그것은 다 인류를 위한 것이다. 마치 하나님이 만든 천지 만물이 다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처럼 해와 달, 별을 창조한 것은 다 사람을 위한 것이고 동물과 식물을 창조한 것도 사람을 위한 것이며 봄, 여름, 가을, 겨울도 사람을 위한 것인데, 이런 모든 것은 다 사람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어떻게 형벌하고 심판하든 그것은 다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설령 사람의 육체적 소망을 빼앗는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고, 사람을 정결케 하는 것은 또 사람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사람의 귀숙이 모두 조물주의 손안에 있는데, 사람이 어찌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겠는가?

정복 사역이 끝나면 인류는 아름다운 하늘과 땅으로 이끌려 들어갈 것이다. 물론, 여전히 땅에서 살지만 지금 사람이 사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그 삶은 온 인류가 정복된 후에 있게 되는 삶이고, 인류가 땅에서 맞이하는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이다. 인류에게 그런 삶이 있게 되면 그것은 인류가 새롭고 아름다운 또 다른 경지에 들어섰음을 증명하는 것인데, 하나님과 사람이 땅에서 함께하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 아름다운 삶이 있게 되는 전제는 반드시 사람이 정결케 되고 정복된 후 모두가 조물주 앞에 순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복 사역은 인류가 아름다운 귀숙에 들어가기 전에 하는 맨 마지막 단계의 사역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류에게 있게 되는 그런 삶은 앞으로의 땅에서 사는 삶이고, 땅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삶이며, 사람이 지향하는 삶이고, 유사 이래 사람에게 없었던 삶이다. 이것은 6천년 경영 사역의 최종 효과이고, 인류가 가장 소망하던 것이며, 또한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약속이다. 그러나 그 약속은 반드시 일정한 시간을 거쳐야 한다. 마지막 단계의 사역을 끝마치고 사람이 철저히 정복되면, 즉 사탄이 철저히 패배당하면, 인류는 이후의 귀숙으로 들어가게 된다. 사람이 연단을 받고 나면 죄성이 없어지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사탄을 패배시켰기 때문이다. 곧, 침요할 수 있는 적대 세력이나 사람의 육체를 공격할 수 있는 그 어떤 적대 세력도 다 사라지게 되면, 사람은 자유롭게 되고 또한 거룩하게 된다. 이런 사람이 바로 영원한 세계로 들어간 사람이다. 오직 어둠의 적대 세력을 결박해야만 사람이 어디를 가든지 다 자유롭게 된다. 그러면 사람 또한 거역하거나 대적하지 않게 된다. 사탄이 결박당하기만 하면 사람은 좋아진다. 아직까지는 사탄이 땅의 곳곳에서 교란하고 있고, 또한 모든 경영 사역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탄을 패배시킨 후에야 사람은 완전히 해방되고, 하나님을 얻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나오게 되며, 공의로운 날을 보게 되는 것이다. 정상인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삶은 모두 회복된다. 예를 들면, 선악을 분별할 줄 알고, 정상적인 의ㆍ식ㆍ주를 할 줄 아는 것과 같은 이런 정상인에게 있어야 할 것들이 모두 회복된다. 처음에 인류를 다 만들고 뱀이 하와를 유혹하지 않았을지라도 사람에게 그런 정상적인 삶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먹고 입으며 땅에서 정상인의 삶을 살았어야 하였다. 하지만 인류가 타락된 후에 그런 삶은 물거품이 되었고, 심지어 사람은 지금 그런 일들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사실, 사람이 지향하는 그런 아름다운 삶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인류에게 그런 귀숙이 없다면 땅에 있는 인류의 타락된 삶은 끝이 없게 된다. 그런 아름다운 삶이 없다면 그것은 사탄의 운명을 끝내는 것이 아니고, 땅에서 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의 시대를 끝마치는 것도 아니다. 반드시 어둠의 세력이 사람에게 미치지 못하는 그런 경지에 이르게 해야 사탄을 패배시켰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면 사탄의 방해가 없게 되고, 하나님 자신이 인류를 장악하고, 인류의 모든 삶을 장악하고 지배하게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사탄을 패배시킨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지금의 삶은 대부분 아직도 추하고, 환난과 고통이 있는 삶이다. 그것은 사탄을 패배시킨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사람은 아직 고해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인생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은 여전히 보잘것없다. 사람의 고통은 모두 사탄이 초래한 것이고, 인생의 고난도 그것이 사람에게 가져다준 것이다. 사탄이 결박된 후에야 사람은 완전하게 고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사탄이 결박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정복하고 얻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사람을 전리품으로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사람이 추구하고 있는 이기는 자와 온전케 되는 것은 땅에서 정상인의 삶이 있기 전에 추구하는 것이고, 다 사탄이 아직 결박되지 않았을 때 추구하는 목표이다. 사람이 이기는 자와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고, 크게 쓰임받는 것을 추구하는 실질은 모두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이기는 자가 되기를 추구하는 것의 최종 결과 역시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는 것인데,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사람은 땅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정상인의 삶을 살 수 있다. 사람이 지금 이기는 자가 되기를 추구하거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것은 다 땅에서 정상인의 삶이 있기 전에 도달하려고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추구하는 것은 주로 정결함을 받고 진리를 행하여 조물주를 경배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 땅에서 정상인의 삶을 살고 환난과 고통의 삶이 없었다면 사람은 이기는 자가 되기를 추구할 필요가 없다. 이기는 자가 되고 온전케 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추구 목표인데, 그것으로 진리를 행하게 하고,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게 한다. 사람을 온전하게 만들고 사람을 얻는 것이 목표이고, 이기는 자가 되거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것은 다만 경로일 뿐이다. 앞으로 인류가 모두 아름다운 귀숙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때는 이기는 자와 온전케 된다는 말이 없고 피조물은 그저 저마다 자신의 직책을 다할 뿐이다. 지금 사람에게 그런 것을 추구하게 하는 것은 다만 사람에게 한 범위를 정해 주어 사람에게 목표가 더 뚜렷하고, 더 실제적으로 추구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여전히 막연한 가운데서 살아가며 영생에 들어가기를 추구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더 가련하지 않은가? 목표가 없고 원칙이 없는 그런 추구는 자신도 속이고 남도 속이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추구하면 마지막에 가서도 당연히 성과가 없을 것이고, 결국엔 여전히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할 것인데, 그런 목표 없는 추구를 할 필요가 있겠는가? 인류가 영원한 귀숙에 들어갈 때에는 사람들이 모두 조물주를 경배하게 된다. 사람이 구원을 받아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기 때문에 더 이상 어떤 목표도 추구하지 않으며 사탄의 포위 공격을 당할까 걱정할 필요는 더욱 없다. 그때 사람들은 모두 ‘안분지족’하며 자신의 본분을 한다. 설사 형벌과 심판이 없을지라도 사람은 모두 각자의 본분을 한다. 그때는 사람의 신분과 지위를 모두 피조물이라고 칭하게 되는데, 더 이상 신분상의 차이가 없이 하는 역할만 다를 뿐이다. 그러나 사람은 여전히 체계가 있는 인류의 적합한 귀숙에서 살며, 모두 조물주를 경배하기 위해 각자의 본분을 한다. 이런 인류가 바로 영원한 세계에 있는 인류이다. 그때 사람이 얻는 것은 하나님의 빛 비춤과 보살핌이 있는 삶이고, 하나님의 보호가 있는 삶이다.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살고, 인류는 땅에서 정상적인 삶이 있게 되며, 전 인류는 정상 궤도에 들어서게 된다. 6천년 경영 계획으로 사탄을 철저히 패배시키면, 즉 하나님이 땅에서 창조한 인류를 다시 본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면, 하나님 본연의 마음을 만족게 한 것이다. 처음에 인류는 사탄에게 패괴되기 전에 땅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았는데, 그 후에 사탄에게 패괴되고 나서 정상적인 삶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경영 사역을 시작하였고, 사탄과 싸워 사람의 정상적인 삶을 회복시키기 시작하였다. 6천년의 경영 사역이 끝날 때에야 전 인류가 땅에서 사는 삶이 정식으로 시작되고, 인류에게는 아름다운 삶이 있게 된다. 그래야 처음에 사람을 만든 목적과 사람의 원래 모양을 회복하게 된다. 그러므로 땅에 인류의 정상적인 삶이 있게 되면 사람은 이기는 자가 되거나 온전케 되는 것을 추구할 필요가 없게 되는데, 그것은 사람이 모두 성결해졌기 때문이다. 사람이 말하는 이기는 자와 온전케 되는 것은 하나님이 사탄과 싸울 때 사람에게 추구하라고 준 목표인데, 그 목표는 사람이 패괴되었기 때문에 있게 된 것이다. 너에게 목표를 하나 주고 그 목표를 향해 추구하게 하여 사탄을 패배시키는 것이다. 너에게 이기는 자가 되고, 온전케 되는 자와 쓰임받는 자가 되라고 하는 것은 간증으로 사탄을 수치스럽게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마지막에 이르러 사람은 땅에서 정상인의 삶을 살게 되고 또한 성결해졌는데, 이기는 자가 되려고 추구할 필요가 있겠는가? 모두 똑같은 피조물이 아닌가? 이기는 자가 되고 온전케 된 자가 되라고 하는 것은 사탄을 겨누어 말한 것이고, 사람의 더러움을 겨누어 말한 것이다. 이기는 자라고 하면 사탄과 적대 세력을 이기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네가 온전케 되었다고 말하는데, 무엇이 온전케 되었다는 말인가? 결국은 사탄의 패괴 성정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아닌가? 여전히 그 더러운 것을 겨누고, 사탄을 겨누어 말한 것이지, 결코 하나님을 대상으로 말한 것이 아니다.

지금 너에게 온전케 되고 이기는 자가 되기를 추구하라고 하는데 네가 추구하지 않는다면, 이후에 땅에 인류의 정상적인 삶이 있게 될 때에는 그것을 추구할 기회가 없게 된다. 그때는 이미 각 부류 사람의 결말을 드러냈을 때이다. 네가 도대체 어떤 물건짝인지 그때가 되면 다 드러나게 된다. 그때 네가 다시 이기는 자가 되기를 추구하려고 하거나 온전케 되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저 사람의 패역으로 인해 사람을 드러낸 후에 징벌할 뿐이다. 그때 사람은 누가 높고 누가 낮은 자인지, 누가 이기는 자이고 누가 온전케 되는 자인지, 누가 장자가 되고 누가 뭇 아들이 되는지, 그런 것들을 추구하지 않는다. 모두가 피조물에 속하고, 땅에서 살며, 다 하나님과 더불어 땅에서 산다. 지금은 모두가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을 경력(역주: 체험)하는 기간이고,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은 때이며, 또한 사람이 아직 완전히 얻어지지 못한 때이다. 지금은 바로 과도기 단계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이기는 자가 되고 자민(子民)이 되기를 추구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지금은 이런 지위의 구별이 있지만 그때 가면 이런 구별이 없다. 무릇 이긴 사람의 지위는 모두 같고, 다 합격된 인류가 땅에서 평등하게 사는 것이다. 즉, 모두가 합격된 피조물이기에 너에게 주고 그에게 주는 것은 다 같다. 사역 시대가 다르고 사역 대상이 다르기에 너희에게 역사하면 너희는 온전케 되어 이기는 자가 될 자격이 있다. 만약 외국에서 한다면 그들이 처음으로 정복되는 무리가 될 자격이 있고, 또한 처음으로 온전케 되는 무리가 될 자격이 있다. 지금은 외국에서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온전케 되어 이기는 자가 될 자격이 없고, 그들은 첫 무리가 될 수 없다. 초점을 둔 대상이 다르고, 역사하는 시대가 다르며,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첫 무리가 있는 것이다. 즉, 이기는 자가 있고, 두 번째 무리로 온전케 되는 자도 있는 것이다. 처음으로 온전케 되는 무리가 있으면, 표본이 되는 모형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다음에 온전케 되는 사람은 두 번째, 세 번째 무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세상에서는 모두 같고 지위의 구별이 없으며, 다만 온전케 된 전후가 다를 뿐, 결코 지위가 다른 것은 아니다. 이후에 사람이 모두 온전케 되고 전체 우주의 사역이 끝나면, 지위의 구분이 사라져 사람의 지위는 평등하게 된다. 지금은 너희에게 역사하여 너희를 이기는 자로 만들지만, 만약 영국에서 했다면 영국에서도 처음으로 이기는 무리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도 마찬가지인데, 단지 오늘날 너희에게 하는 것은 특별히 은총을 베풀어 준 것일 뿐이다. 만약 너희에게 하지 않았다면 너희도 역시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네 번째나 다섯 번째 무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저 사역의 전후로 인해 있게 되는 것일 뿐이다. 첫 번째 무리나 두 번째 무리는 지위의 높낮이를 뜻하지 않고 그저 온전케 되는 순서를 의미할 뿐이다. 왜 좀 더 일찍 너희에게 알려 주지 않고 오늘에야 이 말을 교통하겠는가? 그것은 과정이 없으면 사람이 쉽게 극단적으로 가기 때문이다. 마치 예수가 당시에 “내가 간 그대로 다시 오리라”고 말한 것과 같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그 말에 지나치게 잘못 빠져 늘 흰옷을 입고 들림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많은 말들은 너무 일찍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너무 일찍 말하면 극단적으로 가게 되고, 사람은 분량이 너무 작아 그런 말들을 분명히 알지 못한다.

인류가 땅에서 진정한 사람의 삶을 살게 되고 모든 사탄 세력이 다 결박되면, 사람은 땅에서 매우 홀가분하게 살게 될 것인데, 지금처럼 이렇게 복잡하지 않다. 인간관계라든가, 사회 관계, 복잡한 가정 관계는 너무나 번거롭고 고통스럽다! 사람이 그 속에서 살면 너무나 괴롭다! 사람이 하나님에게 정복된 후에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다 바뀌어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게 된다. 온 우주 아래에 하나님 사랑하기를 추구하는 사람이 모두 정복된 후에, 즉 사탄이 패배될 때에, 사탄이 결박되면, 곧 모든 흑암 세력이 다 결박되면, 사람은 땅에서의 생활에 아무런 방해도 없어 땅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다. 사람의 삶에 육체적인 관계가 없고 육체의 복잡한 일들이 없다면 훨씬 홀가분해진다. 사람의 육체적 관계는 너무나 복잡하다. 사람에게 그런 것들이 있으면 그것은 사람이 여전히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네가 형제자매들과도 동등한 관계이고, 평소에 가족들과도 동등한 관계이면 아무런 고민도 없을 것이다. 누구도 근심 걱정하지 않게 되면, 그것은 더없이 좋은 것이다. 그러면 사람의 고통은 반으로 줄어든다. 땅에서 사람의 삶이 정상이 되면 사람은 마치 천사와 같다. 비록 여전히 육체이기는 하지만 천사와 별 차이가 없다. 이것은 마지막 약속으로, 최후에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약속이다. 사람이 지금 형벌과 심판을 경력하고 있는데, 너는 이런 것을 경력하는 것이 다 무의미한 것이라고 여기는가? 형벌과 심판의 사역을 헛되이 할 수 있겠는가? 이전에 사람을 형벌하고 심판하는 것은 사람을 무저갱에 두는 것, 즉 사람의 운명과 앞날을 빼앗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단지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지, 결코 일부러 사람을 무저갱에 두고 수수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패역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마지막에 사람 내면의 것이 정결함을 받고, 하나님에 대해 참된 인식이 있게 되며, 사람이 모두 성결한 사람과 같이 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 사실, 제거해야 할 사람 내면의 것들을 모두 제거해 버려 사람이 굳센 증거를 하게 되면 동시에 사탄을 패배시킨 것이다. 설사 사람 안에 원래 있던 그런 것이 완전히 다 정결케 되지 않고 조금 남아 있을지라도 사탄을 패배시킨 후에는 방해가 없게 되는데, 그때 사람은 철저히 정결케 된다. 사람은 그러한 삶을 체험한 적이 없다. 사탄을 패배시킬 때에는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데, 사람 안의 그런 자질구레한 일도 다 해결된다. 그러면 모든 것이 다 끝난다. 이번에 말씀이 육신 되어 땅에서 역사하고, 친히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는데, 행하는 사역은 모두 사탄을 패배시키기 위한 것이다. 사람을 정복하는 것으로, 또한 너희를 온전케 하는 것으로 사탄을 패배시킨다. 너희가 굳센 간증을 해내면 이것도 사탄을 패배시키는 상징이 된다. 사람이 먼저 정복되고 마지막에 철저히 온전케 되는 것은 다 사탄을 패배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사탄을 패배시킴과 동시에 전 인류를 구원하여 이 공허한 고해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전 우주의 사역을 하든, 혹은 중국에서 하는 사역이든, 모두 사탄을 패배시키는 것으로 전 인류를 구원하여 안식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도성육신(역주: 성육신) 된 하나님의 이 정상적인 육신은 사탄을 패배시키기 위한 것이고, 육신으로 하는 하나님의 역사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는 천하의 사람을 구원하고 모든 인류를 정복하기 위한 것이고, 더욱이 사탄을 패배시키기 위한 것이다. 전체 경영 사역의 핵심은 사탄을 패배시켜 전 인류를 구원하는 것을 벗어날 수 없다. 왜 많은 사역에서 항상 너희로 증거하라고 말하는가? 그 증거는 누구를 향해 하는 것인가? 사탄이 아닌가? 그 증거는 하나님을 위해 하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의 사역이 효과에 도달한 것을 증거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증거는 사탄을 패배시키는 사역과 관련된다. 만일 사탄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면 사람에게 증거하라고 하지 않는다. 사탄을 패배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사람을 구원하는 동시에 사람에게 하나님을 위해 사탄 앞에서 증거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사람을 구원하고 사탄과 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구원할 대상이기도 하고, 사탄을 패배시키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전체 경영사역의 핵심은 사람이며, 사탄은 단지 훼멸시킬 대상이고 원수에 불과하다. 아마 너는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느끼겠지만 너의 성정 변화로 인해 증거를 해낸 것이다. 그 증거는 사탄을 상대로 하는 것이지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증거를 누릴 자격이 없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이 하는 사역을 꿰뚫어 볼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싸움 대상은 사탄이고, 사람은 구원받는 대상일 뿐이다. 사람은 사탄의 패괴 성정이 있어서 이 사역을 꿰뚫어 볼 수 없다. 이것은 모두 사탄의 패괴로 인한 것이지, 사람에게 원래 있던 것이 아니며 모두 사탄이 지배한 것이다. 지금은 주로 사탄을 패배시키는 것인데, 바로 인류를 철저히 정복하여 사탄 앞에서 하나님을 위해 최후의 증거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진다. 많은 경우에 네 육안으로 보기엔 별로 이루어진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사실 사역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사람의 요구에 따르면 무릇 이루어진 사역이라면 반드시 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너에게 보여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미 이룬 것이다. 왜냐하면 사탄이 인정하였기 때문인데, 즉 사탄이 철저히 패배하였기 때문이다. 모든 지혜와 능력 그리고 권병(역주: 권세)으로 사탄을 이겼는데, 이것이 바로 하려는 증거이다. 비록 사람에게 별로 뚜렷한 표현이 없고, 사람의 육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이미 사탄을 패배시킨 것이다. 이 모든 사역은 다 사탄을 겨누어 말한 것이고, 사탄과의 싸움으로 인해 한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경우에 사람이 보기에는 성공하지 못한 일이지만 하나님에게는 이미 성공한 일이다. 이것은 모든 사역의 한 방면의 내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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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귀숙(歸宿): 사람이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 또는 결말, 처소, 본향을 뜻함.

②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③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