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정상 생활을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처소로 이끌어 들어간다 (하)

사탄을 물리치고 나면, 그러니까 사람이 완전히 정복되고 나면 사람은 이 모든 사역이 구원을 위한 것이며, 그 방식은 사탄의 손아귀에서 사람을 빼앗아 오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6천 년 경영 사역은 율법시대, 은혜시대, 그리고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의 3단계로 나뉜다. 이 3단계 사역은 모두 인류, 즉 사탄에 의해 심하게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탄과 싸우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구원 사역이 3단계로 나뉘고 사탄과의 싸움도 3단계로 나뉘며, 이 두 부분의 사역은 동시에 진행된다. 사실, 사탄과의 싸움은 사람을 구원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한 단계 사역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사탄과의 싸움도 단계와 시기를 나누어 진행되며, 인류의 필요와 사탄에 의해 패괴된 정도에 따라 사탄과 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싸움’이라고 하면 사람은 두 군대가 맞붙어 싸우는 것처럼 하나님과 사탄 간에 벌어지는 전쟁을 상상한다. 이것은 그저 사람의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지극히 막연하고 비현실적인 구상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은 전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여기에서 내가 사람을 구원하는 방식은 바로 사탄과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은 3단계로 진행된다. 다시 말해, 사탄과의 싸움은 3단계로 나뉘며, 이를 통해 사탄을 완전히 물리치게 된다. 하지만 사탄과 싸우는 모든 사역의 실상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되며, 사람의 죄를 사해 주고, 사람을 정복하고, 사람을 온전케 하는 등의 몇 단계 사역을 통해 성과를 거두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탄과의 싸움은 사탄과 전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의 생명을 만들고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켜 하나님을 증거하게 함으로써 사탄을 물리치는 것이다. 즉, 사람의 패괴 성품을 변화시켜 사탄을 물리친다는 뜻이다. 사탄을 물리치고 나면, 그러니까 사람을 철저히 구원하고 나면 수치당한 사탄을 단단히 결박할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완전히 구원받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의 본질은 사탄과 싸우는 것이고, 사탄과의 싸움은 대부분 사람을 구원하는 것으로 구현된다. 사람을 정복하는 최종 단계 사역은 사탄과 싸우는 마지막 사역, 즉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완전히 구원하는 사역이다. 사람을 정복한다는 것은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탄의 화신을 정복하여 창조주에게 돌아오게 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이 사탄을 저버리고 완전히 하나님께 돌아오면 철저히 구원받게 된다. 그러므로 정복 사역은 사탄과 싸우는 마지막 사역이자 사탄을 물리치는 마지막 단계의 경영이다. 이 단계의 사역이 없다면 최종적으로 사람을 완전히 구원할 수도, 사탄을 완전히 물리칠 수도 없으며, 인류는 영원히 아름다운 종착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영원히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탄과의 싸움이 끝나지 않으면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도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경영 사역의 핵심은 바로 온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인류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었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과 패괴로 사람은 사탄에게 속박당해 악한 자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이로 인해 사탄은 경영 사역에서 물리칠 대상이 되었다. 사탄이 사람을 점령했고, 사람은 또 전체 경영의 밑천이기에 사람을 구원하려면 반드시 사탄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와야 한다. 즉, 사탄에게 사로잡혀 간 사람을 다시 빼앗아 와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의 옛 성품을 변화시켜 본래 이성으로 회복시킴으로써 사탄을 물리쳐야 한다. 이렇게 하면 사로잡혀 간 사람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다시 빼앗아 올 수 있다. 사람이 사탄의 권세와 결박에서 벗어나면 사탄은 수치를 당한다. 결국 사람을 빼앗아 오고, 사탄은 패하게 된다. 사람은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남으로써 모든 싸움의 전리품이 되겠지만, 사탄은 싸움이 끝난 후에 징벌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류를 구원하는 모든 사역도 끝을 맺게 된다.

하나님의 목적은 오직 사탄을 물리치는 것뿐, 피조물에 대해서는 어떤 악감정도 없다. 형벌이든 심판이든 그의 모든 사역은 사탄을 겨냥해 하는 것이고, 인류 전체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것이 사탄을 물리치기 위한 것으로, 목표는 단 하나, ‘사탄과 끝까지 싸운다! 꼭 사탄을 이기고야 말 것이다! 사탄을 이길 때까지 이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모든 사역은 사탄을 겨냥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람은 모두 사탄의 권세 아래에 통제되어 있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사탄과 싸워 끝을 내지 않으면 사탄은 사람들을 풀어 주지 않으며, 사람들은 하나님께 얻어지지 못한다. 사람을 얻지 못했다는 것은 사탄을 물리치지도, 사탄과 싸워 이기지도 못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6천 년 경륜 중 첫 번째 단계에서는 율법의 사역을,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은혜시대의 사역, 즉 십자가의 사역을 했으며, 세 번째 단계에서는 인류를 정복하는 사역을 한 것이다. 이 사역들은 모두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킨 정도에 따라 한 것이고, 사탄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다. 어느 단계 사역이든 다 사탄을 물리치는 데 목적이 있다. 6천 년 경영 사역의 본질은 큰 붉은 용과 싸우는 것이고,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은 사탄을 물리치는 사역이자 사탄과 싸우는 사역이다. 6천 년 동안 싸우면서, 즉 6천 년 동안 사역하면서 마지막에는 사람을 한 경지로 인도하는 것이다. 사탄이 패하면 사람은 완전한 해방을 얻는다. 지금의 사역이 바로 이런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느냐? 사람을 모든 것에서 해방시키고 자유롭게 하며, 그 어떤 규례에도 속박받지 않고 그 무엇에도 얽매이거나 통제받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지금의 사역 추세이다. 모든 사역은 너희의 분량과 필요에 맞춰 진행된다. 다시 말해, 너희가 닿을 수 있는 만큼 공급하지, 건목수생하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모든 사역은 너희의 실제 필요에 맞춰 진행된다. 각 단계의 사역은 다 사람의 실제 필요와 요구에 따라 하며, 사탄을 물리치는 것이 그 목표이다. 사실 처음에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간격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은 사탄이 초래한 것이다. 사탄이 사람을 교란하고 패괴시켜 사람은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알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은 피해자이자 기만당한 자이다. 사탄을 물리치면 피조물은 창조주를 볼 수 있고, 창조주도 피조물을 보며 친히 인도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이 땅에 있어야 할 삶이다. 그러므로 주 사역은 역시 사탄을 물리치는 것이라 하겠다. 사탄을 물리치면 무슨 일이든 다 해결된다. 오늘날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 온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은 너도 알 것이다. 하나님은 날마다 너희를 괴롭히고 이것저것 말하려고 온 것이 아니며, 너희에게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 온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너희에게 보여 주거나 너희의 시야를 넓혀 주고, 그가 말한 비밀과 그가 뗀 일곱 인에 대해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탄을 물리치기 위해서 성육신했다. 그는 육신을 입고 친히 인간 세상에 임하여 사람을 구원하고 사탄과 싸운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의 의미이다. 사탄을 물리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그가 친히 사역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을 하고, 친히 사람 앞에 나타나고 사람에게 보게 하는데, 이것이 작은 일이겠느냐? 이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사람에게 보게 하고 막연하거나 공허한 존재가 아니라 실제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하나님은 위대한 존재가 될 수도, 자신을 낮출 수도 있음을 알게 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그것이 그렇게 단순할 리 있겠느냐? 사탄이 패괴시킨 것은 사람의 육이고, 하나님이 구원하는 대상 또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반드시 육신을 입고 와서 사탄과 싸우고 친히 사람을 목양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역에 이롭다. 하나님은 두 번 성육신했는데, 그 두 차례 입은 육신은 모두 사탄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자 사람을 더 잘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사탄과 싸우는 대상은 하나님의 영이든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든, 어쨌든 하나님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천사는 사탄과 싸울 수 없고,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람은 더더욱 사탄과 싸울 수 없다. 천사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으며, 사람은 더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명을 만들고 인간 세상에 임하여 사람을 구원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직접 성육신해야 한다. 즉, 육신을 입고, 그의 원래 신분을 지니고 그가 해야 할 사역을 가지고 사람들 가운데 와서 친히 사람을 구원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하나님의 영이 사역하거나 사람이 사역한다면 이 싸움은 영원히 성과를 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끝을 맺지도 못한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사람들 가운데 와서 친히 사탄과 싸워야 사람이 구원받을 기회를 얻게 되며, 사탄도 수치를 당하고 더 이상 틈탈 기회나 수작 부릴 방법이 없게 된다.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모두 하나님의 영이 할 수 없는 것이고, 육에 속한 사람은 더더욱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그가 하는 사역은 모두 사람의 생명을 위한 것이며, 사람의 패괴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 싸움에 ‘참여’한다면 그저 참패하여 낭패를 당할 뿐, 사람의 패괴 성품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사람을 십자가에서 구원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패역한 인류를 정복할 수도 없다. 그저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낡은 사역을 하거나 사탄을 물리치는 것과 관련 없는 사역을 조금 할 수 있을 뿐이다. 무엇 때문에 그런 헛수고를 하겠느냐? 사람을 얻지 못하고, 사탄을 물리치는 사역은 더더욱 할 수 없다면 그 사역에 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사탄과의 싸움은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할 수 있으며, 사람은 결코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람의 본분은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다. 사람은 결코 천지개벽의 사역을 할 수 없고, 사탄과 싸우는 사역은 더더욱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오로지 하나님의 인도하에서 창조주를 만족게 함으로써 사탄을 물리칠 수밖에 없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싸움이 시작될 때마다, 즉 새 시대의 사역이 시작될 때마다 하나님 자신이 친히 그 사역을 행하며, 이를 통해 시대 전체를 이끌고 온 인류를 위해 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이다. 시대가 새롭게 바뀔 때마다 사탄과의 싸움이 새로 시작되며, 이로써 인류도 더 새롭고 아름다운 경지, 하나님이 친히 이끄는 새 시대에 들어가게 된다. 사람은 만물의 주인이지만, 하나님께 얻어진 사람은 모든 싸움이 끝난 후의 열매이기도 하다. 사탄은 만물을 부패시킨 존재이고, 모든 싸움의 패장이자 싸움이 끝난 후에 벌을 받는 대상이다. 하나님, 사람, 사탄, 이 셋 중에서 오직 사탄만이 버림받을 대상이지만, 사탄에게 얻어져 하나님께 돌아오지 못한 사람은 징벌받는 대상이 된다. 앞서 말한 셋 중에서 만물의 경배를 받아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한편, 사탄에 의해 패괴되었다가 하나님께 되찾아진 뒤 하나님의 도를 행하게 된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하나님을 위해 악한 자를 심판하는 대상이 된다. 하나님은 반드시 승리하고 사탄은 반드시 패배하겠지만, 사람은 이기는 자도 있고 실패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이기는 사람은 이긴 자에 속하고, 패배하는 사람은 패배자에 속한다. 이것이 바로 각기 부류대로 나뉘는 것으로, 모든 사역의 종결이자 근본 취지이며,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다. 경륜의 주된 핵심은 사람을 구원하는 데 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은 주된 이유도 이 핵심과 이 사역을 위함이고, 사탄을 물리치기 위함이다. 첫 번째 성육신도 사탄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하나님은 친히 성육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첫 번째 싸움의 사역, 즉 인류를 속량하는 사역을 완성했다. 마찬가지로 이번 단계도 하나님이 친히 사역한다. 성육신 하나님은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고 친히 말씀하여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꼭 필요한 다른 사역도 곁들여 하겠지만, 그가 친히 이 사역을 하는 주목적은 역시 사탄을 물리치고, 모든 인류를 정복하여 얻는 데 있다. 그러므로 성육신 하나님의 이 사역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만약 그가 사람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낮추고 감춘다는 것을, 하나님이 바로 실제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만 사역을 한다면 성육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성육신하지 않아도 그의 낮춤과 감춤, 위대함과 거룩함을 사람에게 직접 계시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인류를 경영하는 사역과는 아무 관련이 없고, 사람을 구원하거나 온전케 하지 못하며, 더욱이 사탄을 물리치지도 못한다. 단순히 영과 영의 싸움으로 사탄을 물리치는 사역은 실질적인 가치가 전혀 없으며, 사람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사람의 운명과 미래를 그르칠 뿐이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이 이렇게 사역하는 것은 깊은 의의를 지닌다. 그것은 그저 사람에게 보여 주거나 사람의 시야를 넓혀 감동과 격려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이라면 어떤 의의도 없다. 네가 이런 인식밖에 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네가 아직도 하나님이 성육신한 진정한 의의를 깨닫지 못했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전체 경륜의 사역을 모두 친히 행한다. 세상을 창조한 첫 번째 단계는 하나님이 친히 한 것이다. 하나님이 하지 않으면 아무도 인류를 창조할 수 없는 것이다. 온 인류를 구속한 두 번째 단계도 하나님이 친히 한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끝을 맺는 사역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이 더더욱 그가 친히 해야 한다. 모든 인류를 속량하고, 정복하고, 얻고, 온전케 하는 것은 다 하나님이 친히 행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직접 그 사역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신분을 대변할 수 없고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도 없다. 사탄을 물리치기 위해, 인류를 얻기 위해, 또 인류가 땅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친히 사람을 인도하고,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한다. 모든 경륜과 사역을 위해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행해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은 그저 사람에게 자신을 보여 주고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왔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인식은 아무런 가치도, 의의도 없다. 그것은 너무나도 얄팍한 인식이다! 반드시 하나님 자신이 친히 행해야만 이 사역을 철저하고 완전하게 할 수 있다. 사람이 한다면 그를 대변할 수 없다.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없고, 설사 한다 하더라도 성과를 내지 못한다. 첫 번째 성육신은 속량을 위한 것, 즉 인류를 죄에서 속량해 정결케 하고 죄를 사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 정복 사역 역시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친히 행한다. 이 단계에서 하는 것이 예언뿐이라면 예언가, 그러니까 은사가 있는 사람을 찾아서 시켜도 그만이다. 예언만 한다면 사람이 대신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 자신이 직접 해야 하는 사역, 사람의 생명을 만드는 사역이라면 사람이 할 수 없다.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해야 하고, 성육신하여 친히 행해야 한다. 말씀의 시대에 예언만 한다면 하나님이 친히 사역할 필요 없이 이사야나 선지자 엘리야를 찾아 시키면 된다. 그러나 이 단계의 사역은 예언에 그치지 않으며, 말씀 사역으로 인류를 정복하고 사탄을 물리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 사역을 할 수 없으며, 반드시 하나님이 직접 해야 한다.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일부 사역만을 행한 후, 선지자를 통해 약간의 말씀과 사역을 했다. 사람이 그의 사역을 대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언가는 하나님을 대신해 예언을 말하고 꿈을 해석할 수 있었다. 당시의 사역은 직접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었고, 사람의 죄와 무관했으며, 사람에게 율법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 데 그쳤다. 그래서 여호와는 성육신하여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직접 모세나 다른 사람에게 말하여 그들이 하나님이 하려는 말씀과 행하려는 일을 하게 하고, 직접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게 했다. 첫 단계 사역은 사람을 인도하는 것으로, 사탄과의 싸움이 시작되기는 했지만 본격적인 것은 아니었다. 사탄과 본격적으로 싸운 것은 첫 번째 성육신 때부터 지금까지이다. 첫 번째 싸움은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성육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사탄을 물리치고 첫 번째 싸움에서 승리를 거뒀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직접 사람의 생명을 만들게 되면서부터 사람을 되찾아 오는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사역은 사람의 옛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이기에 사탄과 싸우는 사역이다. 여호와가 처음에 행한 사역은 그저 인류가 땅에서 살도록 인도한 것으로, 사역의 시작이었다. 그것은 그 어떤 싸움이나 큰 사역과도 관계가 없었지만, 훗날 싸울 사역을 위한 기반 다지기였다. 두 번째 단계인 은혜시대의 사역은 사람의 옛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 즉 하나님 자신이 사람의 생명을 만드는 것과 관련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친히 해야 했고, 반드시 직접 성육신해야 했다. 그 단계의 사역은 성육신한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었다. 그것은 직접 사탄과 대결하는 사역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그 사역을 대신하여 하게 하면 사탄과 마주했을 때 사탄이 굴복하지 않으므로 물리치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반드시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사탄을 물리쳐야 한다. 성육신 하나님의 본질은 여전히 하나님이고, 또한 사람의 생명이자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의 신분과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육신을 입고 사역하여 사탄을 철저히 굴복시키는 것이다. 이 마지막 단계의 사역을 사람에게 맡겨 직접 말씀을 선포하라고 해도 사람은 하지 못한다. 예언만으로는 사람을 정복할 수 없으므로 성육신을 통해 사탄을 물리치고 철저히 굴복시켜야 한다. 사탄을 완전히 물리치고 사람을 완전히 정복한 후 얻으면, 이 단계 사역은 끝이 난다. 즉, 대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의 경영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 특히 시대를 이끄는 사역과 새로운 사역을 여는 일은 더더욱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해야 한다. 사람에게 계시와 예언을 주는 것 등은 사람이 대신하여 하게 할 수 있지만, 하나님 자신이 하려는 사역, 사탄과 직접 싸우는 사역은 사람에게 시키지 않는다. 사탄과 싸우지 않은 첫 단계 사역에서 여호와는 선지자를 통해 예언을 전했고, 또한 친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다. 사탄과 싸우는 두 번째 단계 사역에서는 하나님 자신이 직접 성육신하여 육신을 입고 사역했다. 사탄과의 싸움과 관련되는 것이라면 성육신과도 관련된다. 다시 말해, 사탄과의 싸움은 사람에게 시킬 수 없으며, 사람은 싸워 봤자 사탄을 물리치지 못한다. 사람이 아직 사탄의 권세하에 있는데 어떻게 사탄과 싸울 힘이 있겠느냐? 사람은 본래 중립적인 존재로, 사탄 쪽으로 기울면 사탄에 속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면 하나님께 속한다. 그러니 이런 싸움의 사역을 사람이 대신하여 하게 한다면 할 수 있겠느냐? 그랬다면 진작에 목숨을 잃지 않았겠느냐? 이미 오래전에 황천으로 가지 않았겠느냐?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대신하여 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본질이 없기에 사탄과 싸우면 사탄을 물리치지 못한다. 사람이 일부 사역을 할 수 있고 일부 사람들을 구슬릴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대신하여 할 수는 없다. 사람이 어떻게 사탄과 싸울 수 있겠느냐? 싸우기도 전에 사탄에게 사로잡힐 것이다.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사탄과 싸울 수 있다. 사람은 그것을 기초로 따르고 순종해야만 하나님께 얻어져 사탄의 결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람은 지혜와 능력, 그리고 도달할 수 있는 수준에 한계가 있기에 사람을 온전케 하지 못한다. 사람은 사람을 인도하지 못하며 사탄을 물리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사람의 총명과 지혜가 사탄의 계략을 이기지 못하는데 어떻게 사탄과 싸울 수 있겠느냐?

온전케 되기를 바라는 자에게는 모두 온전케 될 기회가 있다. 장차 너희 모두 그 종착지에 들어갈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 네가 온전케 되기를 바라지 않고 아름다운 경지로 들어가는 것도 원치 않는다면, 그것은 너 자신의 일이다. 온전케 되기를 바라는 사람과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 순종하는 사람, 정직하게 역할을 다하는 사람은 모두 온전케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본분에 충실하지 않는 자, 하나님께 충성하지도 순종하지도 않는 자, 특히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있으나 실행하지 않는 자들은 온전케 될 수 없다. 충성하고 순종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모두 온전케 될 것이다. 조금 우매해도 괜찮다. 추구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모두 온전케 될 수 있으니, 이 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라. 네가 이 측면으로 추구하기를 원하는 한, 온전케 될 것이다. 나는 너희 중 그 누구도 버리거나 도태시키고 싶지 않다. 사람이 노력하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해치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너를 도태시키는 것이 아니라 너 스스로 자신을 도태시키는 것이다. 네가 분발하지 않는다면, 즉 게으름을 피우거나 본분을 이행하지 않거나 충성하지 않는다면, 혹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늘 자기 멋대로 하며, 나쁜 짓을 저지르고, 명예와 이익을 다투며, 부적절한 남녀 관계를 맺는다면 너는 그 죄를 스스로 감당해야 하고, 사람에게 동정받을 가치도 없다! 나는 너희가 모두 온전케 되길 바란다. 아니, 최소한 정복이라도 되어 이 단계 사역이 순조롭게 완성되길 바란다.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온전케 되어 마지막에 하나님께 얻어지고, 하나님에 의해 완전히 정결케 되어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너희보고 뒤떨어졌다고 한 것도, 자질이 부족하다고 한 것도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너희를 버린다거나 너희에게 희망을 잃었다는 뜻은 아니며, 너희를 구원하기 싫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오늘날 내가 온 것은 바로 너희를 구원하는 사역, 즉 구원을 이어 가는 사역을 하기 위함이다. 누구에게나 온전케 될 기회는 있다. 원하고 추구하기만 하면 모두 성과를 얻을 것이고, 어느 누구도 버림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네 자질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훌륭하면 훌륭한 대로 그에 맞춰 너에게 요구한다. 네가 무지하고 글을 모르면 그런 조건에 맞춰 요구할 것이며, 네가 글을 알면 그 기준에 맞춰 요구할 것이다. 또 네가 나이가 많으면 나이에 맞게 요구하고, 네가 접대할 수 있다면 그 상황에 맞춰 요구할 것이다. 네가 접대는 할 수 없고, 복음을 전하거나 교회를 돌보거나 다른 업무적인 사역을 하는 등 한 부분의 역할만 수행할 수 있다고 하면, 또 그 역할에 맞춰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너는 오직 충성하고, 끝까지 순종하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 이는 네가 이르러야 할 세 가지로, 최고의 실천이다. 사람에게 최종적으로 이르라고 하는 것도 바로 이 몇 가지이다. 여기에 이른 사람은 온전케 될 수 있다. 하지만 너는 우선 진심으로 추구하고 능동적으로 향상하려고 노력해야지, 이 일을 소극적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나는 누구나 온전케 될 기회가 있고 온전케 될 수 있다고 했으니 이 말에 책임을 질 것이다. 하지만 네가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지 않아 이 세 가지 기준에 이르지 못한다면 결국 도태될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따라오기를, 모든 사람에게 성령 역사와 성령의 깨우침이 있기를, 또 모든 사람이 끝까지 순종하기를 바란다. 이것은 너희 모두가 이행해야 할 본분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본분을 이행할 때, 너희는 모두 온전케 될 것이며 힘 있는 간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간증할 수 있는 사람은 사탄과 싸워 이기고 약속을 받을 사람들이며, 장차 살아남아 아름다운 종착지에서 살게 될 사람들이다.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나타나심을 맞이하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함께 탐구하며 이야기 나눠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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