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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 그리스도의 말씀 (선집) [낭송]

말세 그리스도의 말씀 (선집) [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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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말씀 (발췌문) [낭송]
대표적인 말씀 (발췌문) [낭송]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다 이후의 귀숙이나 일시적인 누림을 위한 것이다. 어떤 책망도 거치지 않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천당에 가기 위한 것이고 상을 받기 위한 것이지, 온전케 되기 위한 것이나 혹은 피조물의 본분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자신의 직책을 이행하거나 자신의 본분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주 드물고, 사람이 살아 있는 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것은 본래 천경지의이고 본래 사람의 천직인데도 말이다. 그리하여 서로 다른 사람이 추구하는 목표는 각기 다르지만 그 목적과 속셈은 다 유사하다. 그뿐만 아니라 추구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놓고 말하면, 숭배하는 대상도 대체적으로 다 엇비슷하다. 수천 년을 지나오면서 얼마나 많은 신도들이 죽었는지 모르고, 또 얼마나 많은 신도들이 죽었다가 부활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고 더욱이 일 이천 명도 아니지만, 그들 대다수가 추구하는 것은 다 자신의 앞날을 위한 것이거나 혹은 이후의 아름다운 소망을 위한 것일 뿐, 그리스도를 위해 충성을 다한 사람은 오히려 얼마 되지 않는다. 적지 않은 경건한 신도들은 여전히 자신의 올무에서 죽어 가며, 승리한 사람은 더욱 보잘것없어 언급할 가치도 없다. 사람이 실패한 원인이나 승리한 비결에 대해서는 오늘까지도 여전히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데에 ‘심취’해 있는 그 사람들은 여전히 각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이런 심오한 비밀의 근원이 도대체 어떤지를 알지 못하는데, 그 까닭은 그들이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심혈을 기울이며 추구했을지라도 그들이 간 길은 도리어 앞사람들이 갔던 실패의 길이지 앞사람들이 갔던 성공의 길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어떻게 추구하였든, 그들이 간 길은 모두 흑암으로 통하는 길이 아닌가? 그들이 얻은 것은 다 쓰라린 결과가 아닌가? 지난날의 성공한 사람들을 따라하는 그 사람들조차도 마지막에는 복을 받을지 아니면 화를 입을지 예측하기 매우 어려운데, 하물며 실패한 사람들의 전철을 밟으면서 추구하는 사람들은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실패하기에 더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들이 가는 길은 또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모두 헛걸음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추구하여 실패하든 성공하든, 결론적으로 다 원인이 있는 것이지, 결코 제멋대로 추구하여 득실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은 마음이 성실해야 하고, 또한 완전히 바치고 진실로 순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해내기 가장 어려운 것은 일생을 바쳐 진실한 믿음을 바꾸는 것으로써 모든 진리를 얻고 피조물의 본분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실패한 사람들이 해내지 못했던 것이고, 그리스도를 찾지 못한 그 사람들이 더욱 해내지 못한 것이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완전히 바치는 것에 ‘능하지’ 못하기 때문에, 조물주를 위해 본분을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진리를 보고서도 피하여 자신의 길을 가기 때문에, 늘 실패한 사람이 갔던 길을 따라 추구하기 때문에, 늘 하늘을 거역하기 때문에 항상 실패하고, 늘 사탄의 궤계에 빠지며, 자신의 올무에 빠진다. 사람은 그리스도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진리를 이해하고 경력(역주: 체험)하는 것에 능하지 못하기 때문에, 바울을 너무 숭배하는 데다가 천당에 올라갈 마음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에게 한결같이 사람에게 순복하라고 요구하고 한결같이 하나님을 지배하기 때문에, 뛰어난 위인들과 인간 세상의 상전벽해를 겪은 사람들마저도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하였고, 더군다나 형벌 속에서 죽었다. 그 사람들에 대해 나는 그들이 다 비명에 죽은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결말, 즉 그들의 죽음에도 다 원인(원문: 道理)이 있는 것인데, 하물며 그들이 실패하게 된 연고는 더욱더 천리(天理)로 용납할 수 없는 것들이 아닌가? 진리는 인간 세상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인간 세상의 진리는 그리스도가 전한 것이고,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즉, 결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하나님 그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진리만 공급할 뿐,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여 성공하는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진리에서의 성공 여부는 모두 사람의 추구에 달려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는 본래 관계없는 일이고, 사람의 추구로 결정되는 것이다. 사람의 귀숙이나 사람의 성공과 실패를 하나님에게 돌려 하나님 혼자 담당하라고 해서는 결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하나님 자신의 일이 아니라 피조물이 해야 하는 본분에 직접 연관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많은 사람들은 바울과 베드로, 그 두 사람의 추구와 귀숙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의 결과만 알고 있을 뿐, 그들이 성공한 비결이나 실패한 부족한 점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들이 추구한 실질에 대해 조금도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너희 대다수 사람들의 추구도 마찬가지로 실패할 것이다. 설사 소수의 사람들이 추구하여 성공할지라도 여전히 베드로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네가 추구하는 길이 정확하다면 너에게는 성공할 희망이 있고, 네가 진리를 추구하면서 가는 길이 잘못된 것이라면 너는 영원히 성공하지 못할 것이고, 또한 너의 결말은 바울의 결말과 같을 것이다.

베드로는 온전케 된 사람이다. 그는 형벌 심판을 경력한 다음 하나님을 사랑하는 순결한 마음이 있게 되었고 그 후에야 완전히 온전케 된 것이다. 그가 걸은 길은 온전케 되는 길이었다. 다시 말하면, 베드로는 처음부터 올바른 길을 갔고, 하나님을 믿는 마음 자세는 바른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온전케 된 사람이 되었다. 그가 간 길은 이전 사람이 갔던 적이 없는 새로운 길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처음부터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길을 갔다. 단지 성령이 그를 사용하려고 했고, 그의 은사와 그의 모든 장점을 이용해 사역하려고 했기에, 그가 그리스도를 위해 몇십 년 동안 사역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단지 성령께 쓰임받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쓰임받은 것은 그의 인성이 예수의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그의 은사 때문이었다. 바울이 예수를 위해 사역할 수 있었던 것은 격살(擊殺)당했기 때문이지, 그가 예수를 위해 기꺼이 원해서 사역한 것은 전혀 아니다. 바울이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이 깨우쳐 주고 이끌어 주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한 일은 결코 그의 추구와 그의 인성을 대표하지 못한다. 바울이 한 사역은 종의 사역을 대표하는데, 즉 사도의 사역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다르다. 베드로도 사역을 일부분 하였지만, 바울이 한 사역보다는 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진입을 추구하면서 사역하였는데, 바울이 한 사역과 같지 않았다. 베드로가 한 사역은 피조물의 본분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 사랑하기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역한 것이지 사도의 자리에서 사역한 것이 아니다. 바울도 사역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추구가 있었는데, 그가 추구한 것은 단지 이후의 소망을 위하고 이후의 좋은 귀숙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사역하는 가운데서 연단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책망과 훈계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바울은 자신이 하는 사역이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고 자신이 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기쁨을 살 수만 있다면, 나중에는 자신에게 틀림없이 상이 예비되어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의 사역에는 자신의 경력이 없었다. 그는 전적으로 사역을 위한 사역을 한 것이지, 변화를 추구하는 가운데서 사역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사역에는 온통 거래뿐이었고, 피조물의 본분이나 순복은 전혀 없었다. 그는 사역하는 과정에서 옛 성정이 전혀 변화되지 않았다. 그가 한 사역은 다만 다른 사람을 위해 효력한 것일 뿐 자신의 성정은 변화시키지 못했다. 바울은 온전케 되는 것도, 책망도 거치지 않고 직접 사역하였는데, 그의 마음 자세는 상을 받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베드로는 달랐다. 베드로는 훈계와 책망 그리고 연단을 거친 사람이다. 그 두 사람이 사역한 목적과 마음 자세는 완전히 다르다. 베드로는 비록 사역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성정은 많이 변화되었다. 그가 추구한 것은 진리이고 진정한 변화이지, 사역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바울은 비록 많은 사역을 했다고 하지만 그런 사역은 다 성령이 역사한 것이다. 설사 그의 협력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의 경력에서 온 것은 아니다. 베드로가 한 사역이 많지 않은 것은 성령이 그에게서 그리 큰 사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온전케 되는지의 여부는 사역의 양으로 결정할 수 없다. 그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상을 받기 위해 추구했고,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하고, 더 나아가 사랑스러운 형상을 살아내어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기 위해 추구했다. 겉보기에도 다르고 실질도 같지 않다. 너는 사역한 양에 따라 그들 중에 누가 온전케 된 사람인가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 베드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형상을 살아내려고 추구했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되고 훈계와 책망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며 피조물의 본분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였다. 그는 자신을 헌신할 수 있었고,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 손에 맡길 수 있었으며, 죽기까지 순복할 수 있었다. 그에게는 그런 심지(心志)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대로 해냈다. 이것이 마지막에 베드로와 바울에게 서로 다른 결말이 있게 된 근원이다. 성령이 베드로에게 한 역사는 온전케 하는 것이었고, 바울에게 한 역사는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추구하는 관점과 그들의 본성이 전혀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 다 성령의 역사가 있었는데, 베드로는 그런 역사를 자신에게 구체화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공급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성령의 역사를 전부 다른 사람에게만 공급해 주었고, 자신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바울은 오랫동안 성령 역사를 경력하였어도 변화는 미미했고, 여전히 타고난 모습 그대로였으며, 여전히 과거의 바울이었다. 바울은 단지 오랫동안 사역하면서 겪은 어려움 속에서 ‘사역’하는 법을 배웠고 인내를 배웠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옛 성정, 즉 강한 승부욕과 이익만 꾀하는 본성은 그의 몸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사역하였어도 자신의 패괴성정을 인식하지 못하였고, 자신의 옛 성정도 벗어 버리지 못하였다. 그런 옛 성정은 그의 사역에서도 여전히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바울에게는 사역의 경험만 좀 더해졌을 뿐인데, 그 얼마 되지 않은 경험은 바울을 변화시킬 수 없었고, 그의 생존 관점과 추구하는 의의를 변화시킬 수 없었다. 바울은 비록 그리스도를 위해 오랫동안 사역하였고, 주 예수를 핍박하던 시기의 행위는 재현되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그는 자신을 바치기 위해 사역한 것이 아니라 장래의 귀숙을 위해 마지못해 사역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처음에 그리스도에게 순복한 것이 아니라 핍박했던 사람이고, 본래부터 그리스도를 고의로 대적한 패역자이며, 본래부터 성령 역사를 인식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역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도 여전히 성령 역사를 인식하지 못하였고, 자신의 성미에 따라 독단전행하면서 성령의 뜻은 조금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그의 본성은 그리스도와 적대되는 것이라고 한다. 바로 진리에 순복하지 않는 것이다. 성령 역사에 버림받은 사람, 즉 성령 역사를 인식하지 못하고 또한 그리스도를 대적한 이런 사람이 어찌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 한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는 그가 한 사역이나 그가 얼마만큼 바쳤는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 역사를 인식했는지, 진리를 실행했는지, 사람이 추구하는 관점이 진리에 부합되는지의 여부에 근거하여 정해진다. 베드로도 예수를 따르면서 비록 본연(원문: 天然)의 것을 드러낸 적이 있었지만, 본성에 따라 말하면, 그는 처음부터 성령께 순복하고 그리스도를 추구하려고 소망했던 사람이고, 성령께 단순하게 순복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명리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진심(원문: 存心)으로 진리에 순복하였다. 베드로는 비록 그리스도를 세 번이나 부인했고 또한 주 예수를 시험하였지만, 그런 자그마한 인성의 연약함은 그의 본성과는 상관이 없고, 그것이 앞으로의 추구에 전혀 영향을 주지도 않았다. 또한 그가 시험한 것이 적그리스도의 행위라고 충분히 증명할 수도 없다. 인성의 정상적인 연약은 천하의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있는 것인데, 설마 너는 베드로에게만 예외로 하자고 요구하려는 것인가? 사람들이 베드로에 대해 견해가 있는 것은 베드로가 어리석은 일을 몇 번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지만 사람들이 바울을 그처럼 숭배하는 것은 바울이 사역을 많이 하고 서신을 많이 썼기 때문이 아닌가? 사람이 어찌 사람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겠는가? 정말로 이지(理智)가 있는 사람이라면 설마 이만한 일도 꿰뚫어 보지 못하겠는가?

베드로가 수년간 고통받은 경력은 비록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베드로에게 진실한 경력이 없다고 증명할 수 없고, 베드로를 온전케 된 사람이 아니라고 증명할 수도 없다. 하나님이 하신 사역을 사람이 어찌 완전히 측량할 수 있겠는가? 성경에 기록된 것은 예수가 친히 선택해 수록한 것이 아니라 후세 사람이 편성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속에 기록된 것은 모두 사람의 뜻에 따라 선택된 것이 아닌가? 게다가 서신에는 베드로와 바울의 결말에 대해 모두 명시되어 있지도 않다. 그리하여 사람은 사람취향에 따라 베드로와 바울을 평가하게 된 것이다. 또 바울은 사역을 아주 많이 하였고 ‘공헌’도 매우 컸기 때문에 만인에게 깊은 신뢰를 얻었다. 사람은 모두 외적인 것을 중시하지 않는가? 사람이 어찌 사람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바울은 또 몇천 년 동안 사람이 숭배한 대상인데, 또 누가 감히 경솔하게 그가 한 사역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베드로는 그저 그물을 던져 고기 잡는 사람이었는데, 그가 어찌 바울처럼 큰 ‘공헌’을 할 수 있었겠는가? 공헌을 놓고 따지면 베드로보다는 바울이 먼저 상을 받아야 하고, 또한 베드로보다 바울이 먼저 더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맞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울에게서는 은사만 활용하여 역사하였고, 베드로에 대해서는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누가 알았겠는가! 이런 것은 처음부터 주 예수가 그들에게 미리 안배해 놓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원래 본성에 따라 온전케 하거나 역사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보는 것은 단지 외적인 공헌이지만, 하나님이 보는 것은 사람의 본질이고 사람이 처음부터 추구하는 길과 추구하는 마음자세이다. 사람이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는 다 사람의 관념에 따라 판단하고, 다 사람의 안목에 따라 판단한다. 하지만 사람의 최종 결말은 사람의 외적인 것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네가 처음부터 가는 길이 성공의 길이고 처음부터 추구하는 관점이 올바른 것이라면 너를 베드로와 같다고 말한다. 또한 네가 간 길이 실패의 길이라면, 대가를 어떻게 치르든 여전히 바울과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너의 귀숙이나 네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모두 네가 추구하는 길이 정확한지에 근거하여 정하는 것이지, 네가 봉헌하는 것이나 치르는 대가에 근거하여 정하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와 바울, 그 두 사람의 실질과 그들이 추구한 목표는 다르다. 이런 것은 다 사람이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고,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완전히 알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는 것은 사람의 본질이지만,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실질을 전혀 모르고, 사람 내면의 실질을 볼 수도 없으며, 내면의 실제 분량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바울이 실패하고 베드로가 성공한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숭배하고 베드로를 숭배하지 않는데, 그것은 바울이 쓰임받아 공개적으로 사역한 사실을 사람들이 다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바울의 ‘업적’을 공인한다. 그러나 베드로의 경력은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었고, 그의 추구는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베드로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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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귀숙(歸宿): 사람이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 또는 결말, 처소, 본향을 뜻함.

②천경지의(天經地義): 하늘이 정하고 땅이 받드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나 법칙을 뜻한다. 천경지위라고도 한다.

③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

④효력(效力):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힘이나 기능만 다하는 것을 뜻함.

⑤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⑥독단전행(獨斷專行): 자기 혼자만의 판단으로 제멋대로 행동함.

말세 그리스도의 말씀 (선집) [낭송]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해야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타남으로 새 시대가 열렸다 하나님은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속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았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가 패괴된 사람은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 종교적인 섬김은 마땅히 없애야 한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순복해야 한다 온전케 된 사람에 대한 약속 악인은 반드시 징벌받을 것이다 어떻게 섬겨야 하나님의 뜻에 맞겠는가 ‘실제’에 대하여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새 시대의 계명 천년 하나님 나라가 이미 도래하였다 너는 실제의 하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현재 역사에 대한 인식 하나님의 역사가 사람이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가? 너는 하나님을 믿는 이상 진리를 위해 살아야 한다 일곱 우레가 크게 울리다―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곧 전 우주로 확장될 것을 예언하다 성육신 하나님과 쓰임받는 사람의 실질상 구별 하나님을 믿는 것은 종교 의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를 중요시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현재 역사를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진다 하나님나라시대는 바로 말씀시대이다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천년 하나님 나라가 이미 도래하였다”를 간략하게 논하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 베드로가 ‘예수’를 알아간 과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게 된다 너는 살아난 사람인가? 성품이 변화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역사와 진입> 열 편에서 발췌한 말씀 · 제1부분 <역사와 진입> 열 편에서 발췌한 말씀 · 제2부분 <역사와 진입> 열 편에서 발췌한 말씀 · 제3부분 <역사와 진입> 열 편에서 발췌한 말씀 · 제4부분 <역사 이상> 세 편에서 발췌한 말씀·제1부분 <역사 이상> 세 편에서 발췌한 말씀·제2부분 <성경에 관한 논법> 네 편에서 발췌한 말씀· 제1부분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네 편에서 발췌한 말씀 제1부분 <성경에 관한 논법> 네 편에서 발췌한 말씀· 제2부분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네 편에서 발췌한 말씀 제2부분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네 편에서 발췌한 말씀 제3부분 <정복 사역의 내막> 네 편에서 발췌한 말씀·제1부분 <정복 사역의 내막> 네 편에서 발췌한 말씀·제2부분 두 차례의 성육신으로 성육신의 의의를 완전케 하였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존재하는가? 베드로의 체험——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상) 베드로의 체험——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하) 너는 앞으로의 사명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하나님’에 대해 너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진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혈기에 속하는 사람은 아무도 그 분노의 날을 벗어날 수 없다 ‘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 복음을 확장하는 사역도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다 율법시대의 사역 구속시대의 사역 내막 너는 전 인류가 어떻게 오늘날까지 발전해 왔는지 알아야 한다 (상) 너는 전 인류가 어떻게 오늘날까지 발전해 왔는지 알아야 한다 (하) 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 (상) 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 (하) 온전케 된 사람만이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낼 수 있다 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해 놓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이 흡족해하는사람이다 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주이다 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 (상) 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 (하)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상)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하) 3단계 역사를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경로이다 (상) 3단계 역사를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경로이다 (하) 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 (상) 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 (하)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상)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하) 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실행 (상) 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실행 (하) 그리스도의 실질은 천부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다 사람의 정상 생활을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처소로 이끌어 들어간다 (상) 사람의 정상 생활을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처소로 이끌어 들어간다 (하)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간다 (상)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간다 (하) 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꾸었을 때이다 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 너는 그리스도와 합하는 도를 찾아야 한다 너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 너는 아는가?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매우 큰 일을 하였다는 것을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베풀어 줄 수 있다 너의 처소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너는 도대체 누구에게 충성하는 사람인가? 훈언 3칙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땅의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너희는 자신의 모든 행위를 숙고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 전능자의 탄식 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르라 하나님나라시대의 선민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10가지 행정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4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5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6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7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8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9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10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11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12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13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14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15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16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17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18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19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20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21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22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23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24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25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26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27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28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29편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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