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선집) [낭송]

목차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너희들이 많은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너희의 행위와 모든 생활이 결코 나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기에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너희에게 나의 뜻을 설명하는 수밖에 없다. 너희의 분별력이 매우 부족하고 감상 능력 또한 너무 부족하여 너희는 나의 성품과 실질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래서 지금 내가 급히 너희에게 알려 줘야 할 것은 나의 성품과 나의 실질이다. 이전에 네가 얼마나 알고 있었든지, 이런 문제에 대해 얼마나 알려고 했든지 상관없이 그래도 나는 너희에게 상세히 알려 주겠다. 이 문제를 언급하면 너희에게 그리 생소한 것은 아니지만 그 가운데 내포된 뜻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리 익숙한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어렴풋이 조금은 알지만 그것마저도 수박 겉 핥기 식이다. 너희들이 진리를 더 잘 실행하기 위해, 즉 나의 말을 더 잘 실행하기 위해 나는 너희들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의 믿음은 여전히 아주 막연하고 가식적이며 게다가 종교적인 색채로 가득할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고, 네가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두려워할 리가 없으며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건성으로 대하고 얼버무리며 더욱이 만회할 수 없는 모독만 할 뿐이다. 물론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는 것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 몰두해 진지하게 연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보다시피 너희는 내가 반포한 행정에 대해서도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면 아주 쉽게 하나님의 성품을 범하게 되는데, 하나님의 성품을 범하는 것은 곧 하나님 자신을 거스려 진노를 사는 것과 같다. 그러면 네가 마지막에 맺는 열매는 바로 행정을 범하는 것이다. 지금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면 동시에 하나님의 성품도 알게 되고, 또한 하나님의 성품을 알면 동시에 행정 자체를 알게 되는 것이다. 물론 행정의 많은 내용이 모두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되지만 하나님의 성품은 결코 행정 가운데 다 발표되지는 않았으므로 너희가 하나님의 성품을 더한층 알아갈 필요가 있다.

내가 여기서 너희에게 하는 말은 결코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므로 너희가 신중히 대해야 하고 더욱이 나의 말을 많이 상고해야 한다. 내가 이 말을 하는 뜻은 너희가 내가 한 말에 대해 공을 들인 것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더구나 하나님의 성품을 언급하면 너희는 거듭 심사숙고하려 하지 않고, 이 문제에 공을 들이는 사람은 아주 적다. 그래서 나는 너희의 믿음이 다 허울만 그럴듯한 논법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너희의 가장 치명적인 부분에 대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참으로 너희에 대한 나의 애쓰는 마음을 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 눈에 하나님이 없고 생활 가운데 진리가 없는 것은 이상할 것도 없다. 이런 한 무리 사람들을 어찌 성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하늘의 이치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너희가 이런 일에 대해 아는 것이 매우 적은 만큼 내가 말을 많이 하는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성품은 각 사람에게 있어서 매우 추상적이고 또한 각 사람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성품이 사람의 성격과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도 자신의 희로애락이 있는데 이런 희로애락은 사람의 희로애락과는 다르다. 하나님은 자신만의 소시소유가 있다. 하나님의 모든 발표와 유로(역주: 흘러나옴)는 그 자신의 실질과 신분을 대표한다. 이 소시소유와 실질과 신분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성품에는 인류에 대한 사랑과 위로 그리고 인류에 대한 증오도 있고 더욱이 인류에 대한 투철한 이해가 있다. 그러나 사람의 성격에는 명랑함, 활발함 혹은 마비되어 무감각함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의 성품은 만물의 생령(生靈)의 주재자가 구비한 것이고 조물주가 구비한 것이다. 그의 성품은 존귀와 권세를 대표하고 고상함과 위대함을 대표하며 더욱이 지고지상함을 대표한다. 그의 성품은 권병(역주: 권세)의 상징이고 모든 정의와 모든 미(美)와 선(善)의 상징이며 더욱이 모든 적대 세력과 흑암이 압도하거나 침해할 수 없는 상징이고 그 어떤 피조물도 범할 수 없는(또한 범함을 용납치 않는) 상징이다. 그의 성품은 최고 권력의 상징이므로 그 어떤 한 사람이나 그 어떤 사람들이라도 그의 사역과 그의 성품을 방해할 수 없고 더욱이 방해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사람의 성격은 단지 동물보다 약간 높다는 것을 상징한다. 사람 자체는 권병과 자주(自主)가 없고 자아를 초월하는 능력이 없으며, 오직 나약하게 모든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의 지배를 받는 실질만 있다. 하나님의 ‘희(喜)’는 정의와 광명이 존재하고 탄생함으로 인한 것이고 흑암과 사악이 훼멸됨으로 인한 것이다. 그의 ‘희’는 그가 인류를 위해 광명을 가져왔고 인류에게 아름다운 삶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의 ‘희’는 정의로운 것이며 모든 긍정적 사물이 존재함의 상징이고 더욱이 길함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노(怒)’는 비정의적인 사물의 존재와 방해가 그의 인류를 침해하고 있기 때문이며 사악과 흑암이 존재하고 진리를 몰아내는 일이 존재하고 더욱이 아름답고 선한 사물에 저촉하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의 ‘노’는 모든 부정적 사물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 상징이고 더욱이 그가 본래 거룩하다는 상징이다. 그의 ‘애(哀)’는 그가 기대했던 인류가 흑암 가운데 떨어졌고 사람에게 행한 그의 사역이 결코 그의 뜻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그가 사랑하는 인류가 결코 다는 광명 속에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무고한 인류를 위하여 슬퍼하고 근심하며, 성실하지만 우매한 사람을 위하여 슬퍼하고 근심하며, 선량하지만 주견이 없는 사람을 위하여 슬퍼하고 근심한다. 그의 ‘애(哀)’는 그의 선량함의 상징이고, 긍휼함의 상징이고, 아름다움의 상징이고, 인자함의 상징이다. 그의 ‘낙(樂)’은 물론 원수를 패배시키고 사람의 진실한 마음을 얻은 것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이며 더욱이 모든 적대 세력을 몰아내고 멸한 것으로 인해 있게 된 것이며 또한 인류가 아름답고 평안한 생활을 얻음으로 인해 있게 된 것이다. 그의 ‘낙’은 사람의 기쁨과 같은 것이 아니라 기쁨보다 더 높은 아름다운 열매를 얻은 기분이다. 그의 ‘낙’은 인류가 이때부터 고난을 받지 않는 상징이고 인류가 광명의 세계로 진입하는 상징이다. 그러나 인류의 희로애락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있는 것이지 정의나 광명 그리고 아름다운 사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하늘의 은사를 위해 있는 것도 아니다. 인류의 희로애락은 이기적이고 어두운 세계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이 아니고 더욱이 하나님의 계획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과 하나님을 영원히 함께 논할 수 없다. 하나님은 영원히 지고지상하고 영원히 존귀하며, 사람은 영원히 미천하고 영원히 한 푼의 가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원히 인류를 위하여 봉헌하고 지불하고 있지만 사람은 모두 영원히 자신을 위하여 토색하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원히 인류의 생존을 위하여 수고하지만 사람은 영원히 정의와 광명을 위하여 그 어떤 것도 바치지 않는다. 설령 사람이 잠시 노력한다 해도 일격에도 견디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노력은 영원히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지 남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영원히 이기적이고, 하나님은 영원히 무사하며, 하나님은 모든 정의와 아름다움과 선의 기원이며, 사람은 모든 추함과 사악함을 계승하고 표현하는 자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정의와 아름다운 실질을 영원히 바꿀 리 없지만,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정의를 배반하고 하나님을 멀리할 수 있다.

내가 한 말마다 하나님의 성품이 그 속에 있으니 너희가 한 번 자세히 고찰해 보는 것도 좋겠다. 그러면 너희는 틀림없이 큰 수확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의 실질은 헤아리기 매우 어렵지만 하나님의 성품은 너희가 대략 알았으리라 믿는다! 그러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품을 범하지 않는 일을 많이 하여 나에게 보여 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가 마음을 놓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네가 어느 때든지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일을 처리할 때 그의 말씀에 따라 하고, 매사에 그의 뜻을 구해야 하며, 하나님에 대해 무례하고 불경스러운 일을 해서는 안 되고, 더욱이 하나님을 너의 뒷전에 두고 앞날의 네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너는 하나님의 성품을 범하는 것이다. 또 예를 들어, 네가 평생 동안 하나님을 모독하고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으며, 또 평생 동안 하나님이 너에게 부탁한 일을 착실하게 해내고, 또한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복한다면, 너는 행정을 범하지 않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네가 “나는 왜 그분이 하나님이라고 여겨지지 않을까?”, “나는 이런 말이 단지 성령의 깨우침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하나님이 행한 것이 다 옳다고는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인성은 나보다 별로 높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믿을래야 믿을 수가 없다” 등등 이와 같이 논단하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면 나는 너에게 너의 죄를 많이 자백하고 회개하라고 권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사함받을 기회를 영원히 얻을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네가 득죄한 것은 한 사람에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 한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한 사람을 논단한 것이라고 여기지만 하나님의 영은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네가 그의 육신을 존중하지 않으면 곧 그를 존중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네가 행한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범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영이 하는 모든 것은 그의 육신의 사역을 수호하고, 육신의 사역을 더 잘하기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만일 네가 이 한 가지를 소홀히 한다면, 나는 네가 하나님을 믿어도 영원히 성공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네가 하나님의 노기를 건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상응한 징벌로써 너를 질책할 것이다.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는 것은 결코 아이들 장난이 아니므로 반드시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부지중에 너는 하나님의 실질을 점차적으로 인식하게 되고, 그와 동시에 네 자신이 더 높고 더 아름다운 경지를 향해 매진하게 될 것이다. 최종에 너는 자기의 추악한 영혼으로 인해 수치를 느끼고 더욱이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될 것이다. 그때면 하나님의 성품을 범하는 너의 행위는 점점 적어지고 너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점점 가까워지며 또한 하나님에 대한 애모(愛慕)의 마음도 생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류가 아름다운 경지로 들어감의 상징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들은 아직 이르지 못하였다. 너희가 모두 자기의 운명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는데 어느 누구에게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려는 마음이 있겠는가? 만약 계속 이렇게 나간다면 너희는 자신도 모르게 행정을 범하는 일을 저지를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있는 것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너희가 행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성품을 범하려고 기초를 닦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너희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알라고 하는 것은 결코 나의 사역과 연관이 없는 것이 아니다. 만일 너희가 늘 행정을 범한다면, 너희 중에 누가 징벌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그러면 내가 한 사역이 모두 헛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은 자신의 행위를 단속하는 것 외에 자신의 발걸음도 신중히 하는 데에 도달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너희에 대한 나의 더 높은 요구이니, 너희가 모두 신중히 고려하고 진지하게 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만일 어느 날 너희 행위가 나를 노기충천하게 한다면 그 결과는 오직 너희 자신이 고려해 보아야 한다. 너희를 대신해 벌을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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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하나님의 소유소시(所有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

②저촉(抵觸): 대립하고 저항하는 심리 상태.

③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

④무사(無私): 이기적이지 않고, 사심이 없는 마음을 가리킴.

⑤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