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8) 제 1 부

앞서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에 관한 첫 항목인 내려놓기를 교제했다. ‘내려놓기’ 방면에서 첫 번째로 교제한 것은 갖가지 부정적 정서 내려놓기였다. 주요하게는 사람의 갖가지 부정적 정서를 교제하고 분석하여 부정적 정서 아래에 감춰져 있는, 올바르지 않고 치우친 사상 관점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맞느냐? (그렇습니다.) 즉, 사람 마음속의 부정적 정서를 해결하여 여러 사람과 일, 사물에 대한 내면 깊은 곳의 갖가지 부정적 사상 관점을 해결한다. 물론 갖가지 부정적 정서를 폭로하고 분석하여 사람에게 올바른 사상 관점과 인식을 심어 줌으로써 사람의 갖가지 부정적 정서를 해결하기도 한다. 또한, 현실 생활 속에서든, 인생길에서든 어떤 일이 임할 때마다 잘못되고 치우친 사상 관점 탓에 곤혹스러워지거나 그것에 결박당하는 대신 긍정적이고 올바르고 진리에 부합하는 사상 관점으로 그날그날의 생활과 매일 임하는 사람과 일, 사물을 대하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현실 생활 속에서 어떤 사람과 일, 사물이 임했을 때 사람이 혈기의 방식으로 대하지 않고, 정상 인성의 양심과 이성 안에서 살며 하나님이 가르쳐 준 정확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이성적으로 생활과 인생길에서 직면하거나 체험하는 모든 일을 마주하고 처리할 수 있게 한다. 이러면 사람이 올바른 사상 관점의 인도와 영향하에 생활하게 되는 한편, 그런 긍정적인 사상 관점의 인도와 영향하에서 모든 일을 올바르게 처리하게 된다. 물론 모든 일을 올바르게 처리하게 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 및 하나님이 마련한 모든 환경에 순종하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당연히 하나님이 주재하는 네 운명에 순종하면서 임하는 모든 사람, 일, 사물과 환경 속에서 이성적으로 살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교제하고 분석하는 것이 사람의 부정적 정서이든 아니면 부정적인 사상 관점이든, 전부 피조물이 응당 걸어야 할 길과 하나님이 요구한 정상인이 걸어야 할 인생길에 관계된다. 물론 지음 받은 인류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원칙과도 관계된다. 갖가지 부정적 정서를 내려놓는 것이 겉보기에는 사람의 부정적 정서를 해결하고 부정적 정서에 감춰진 사람의 각종 부정적이고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을 해결하는 것이지만, 사실상 본질적으로는 사람을 인도하고, 사람에게 공급하고 도움을 준다고 할 수 있다. 또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여러 환경과 사람, 일, 사물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진정한 사람답게, 정상적인 사람답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떻게 이성적인 사람답게 행동해야 하는지, 하나님의 요구대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답게 행동해야 하는지, 하나님이 열납하는 사람답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다른 방면의 진리 원칙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처신 방법과 관계된다. 갖가지 부정적 정서를 내려놓으라는 말이 겉보기에는 그저 일종의 사소한 정서에 관계되거나 사람이 오늘을 사는 일종의 상태에 관계된 것 같지만, 사실상 그러한 정서와 단순한 상태는 사람이 걷는 길과 관련되고 사람의 처신 원칙과 관련된다. 사람이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고 언급할 가치가 없는 것 같겠지만, 그것은 다양한 사람과 일, 사물이 임했을 때 사람이 가지는 관점 및 입각하는 위치와 입장에 관계되므로 사람의 처신과 관계된다. 더 구체적으로는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과 관계된다.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과 관계되기 때문에 그러한 부정적 정서와 부정적 사상 관점은 모두 사람이 일상생활 속에서 부단히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할 것이 필요하다. 물론 사람은 반성 과정에서 자기한테 부정적 정서와 부정적이고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이 있다는 걸 발견했을 때 즉시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하고, 또한 긍정적이고 올바르고 진리 원칙에 부합하는 사상 관점으로 자신의 그런 부정적인 정서와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을 대체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진리를 준칙으로 하여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사람이 성품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데 이르는 길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우리가 교제한 것은 기본적으로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의 첫 항목인 ‘내려놓기’의 주요 내용이다. 물론 사람의 다양한 정서 중 일부 구체적이고 지엽적이거나 특수하고 전혀 대표적이지 않은 부정적 정서도 역시 부정적이고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에 관계된다. 그런 부정적 정서 혹은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아주 미미하다고 할 수 있으므로 하나하나 더 자세하게 교제하지 않겠다.

앞서 교제한 모든 부정적 정서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현실 생활 속에 혹은 인생길에 존재하는 문제를 대변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갖가지 관점에 관계되며,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갖가지 부정적인 사상 관점은 큰 방향, 큰 원칙과 관계될 뿐만 아니라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도 관계된다. 그러므로 이는 사람이 반드시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자, 사람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상 관점에 속하는 것들이다. 나머지 특수하고 대표적이지 않거나 비교적 개인적인 것들, 예를 들어 먹는 것이나 입는 것 또는 사생활 등등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큰 원칙에 관계되지 않는 것들은 긍정적인 사물과 부정적인 사물의 구분과 관련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은 우리가 교제하는 화제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나는 검은색이 좋아.”라고 한다면 그것은 너의 자유요, 개인의 안목이고 취향이다. 그것이 원칙과 관계되느냐? (무관합니다.) 사람과 일을 바라보는 것에 관계되지 않으며,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과는 더더욱 무관하다. 예를 들어, 눈이 나빠 안경을 쓰는 어떤 사람은 “나는 금테가 좋아.”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금테는 너무 촌스럽잖아. 나는 무테가 좋아.”라고 한다. 이것이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원칙에 관계되느냐? (관계되지 않습니다.) 이는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원칙에 관계되지 않는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매일 집안일을 하고 청소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 정서가 있어. 항상 귀찮고 사는 것이 힘들어. 밥 먹는 것도 귀찮아. 밥 한 끼 해 먹으려면 한 시간 넘게 걸리잖아. 먹고 난 다음에는 그릇이랑 조리 도구도 씻어야 하고 주방 정리도 해야 하고. 그런 일이 너무 성가셔.” 또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한다. “산다는 것은 진짜 귀찮은 일이야. 계절마다 다른 옷을 입어야 하는데, 여름에는 아무리 얇게 입어도 덥고, 겨울에는 아무리 두껍게 입어도 추워. 이 몸뚱이, 정말 귀찮아 죽겠어!” 머리가 지저분해도 감기 싫어한다. 하지만 그냥 두자니 가려운 데다가 사람이 폐인 같고 꾀죄죄해 보여서 도저히 안 감을 수가 없다. 결국, 감으면서 성질을 낸다. “차라리 대머리면 얼마나 좋아. 머리카락이 있으니까 잘라야 하고 감아야 하고 너무 귀찮아!” 이것이 부정적 정서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이러한 부정적 정서를 해결할 필요가 있겠느냐? 이것이 반드시 내려놓아야 할 갖가지 부정적 정서에 속하느냐? (속하지 않습니다.) 어째서 속하지 않느냐? (그저 육체 생활 속의 습관이자 나쁜 버릇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상생활 속의 잡다한 일들은 여자들의 경우, 특히 성인 여성의 경우에는 스스로 씻고 닦고 치우면서 그럭저럭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남자들은 이런 방면에 약하다. 밥을 하고, 옷을 빨고, 집안일 하는 것을 귀찮아한다. 특히 옷을 빨아야 할 때면 근심이 많다. 빨자니 하기 싫고, 안 빨자니 너무 더러운 데다가 남들이 비웃을 것 같아 물에 대충 헹구고 끝낸다. 일상생활 속의 잡다한 일에 대한 처리 방식과 마음가짐은 성별에 따라 조금 차이가 난다. 여자는 상대적으로 꼼꼼하고 신경을 쓰는 편이다. 위생에 주의하고 체면을 따진다. 남자는 여자에 비해 서투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잘못은 아니다. 단, 지나치게 불결하면 좋지 않다. 특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나쁜 습관을 많이 드러내 남들이 싫어하게 한다면, 그것은 인성에 결함이 있는 것이다. 극복할 것은 극복하고 해결할 것은 해결해야 한다. 조금 부지런해져서 자기 생활 범위 안의 물건을 잘 정리해야 한다. 옷과 이불은 깔끔하게 개고, 업무 환경은 하루 이틀이나 이삼일에 한 번씩 청소하고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 남들이 싫어하지 않을 정도로 하면 된다. 이토록 간단하다. 곤란해할 것도 없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는 주기는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을 정도면 된다. 그것이 기준이다. 너무 오래 목욕을 안 하고, 머리를 안 감고, 옷을 안 갈아입어 몸에서 냄새가 나는 통에 사람들이 네게 가까이 가려 하지 않을 정도라면, 그것은 부적절한 일이다. 적당히 관리를 해야 한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거나 사람들이 너와 이야기할 때 코나 입을 막고 거북해하게 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너를 그렇게 대해도 아무렇지 않고 상관없다면 계속 살던 대로 살아라. 네게 과한 요구를 하는 사람은 없다. 네가 받아들일 수 있으면 된다. 만약 네가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한다면 개인 생활 환경과 위생을 최대한 잘 관리해라. 다른 사람이 싫어하지 않을 정도면 된다. 다시 말해, 자기 생활에 부담과 스트레스를 초래하지 않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타인이 받는 느낌도 고려해서 타인에게 스트레스와 악영향을 주지 말아야 한다. 이는 정상 인성의 양심과 이성 안에 갖춰져야 할 최소한의 것이다. 만약 이조차 갖추지 못한다면 네가 어떻게 처신하겠느냐? 그러니 정상 인성으로 응당 해내야 할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는 길게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 집에서 구체적으로 안배해 주거나 하라고 명령을 내릴 필요 없이 너 스스로 잘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개인 생활에 관련된 일들은 전부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원칙 및 준칙과 관계가 없으므로 사람 인성의 가장 기본적인 양심 및 이성에 기대어 처리하면 된다. 정상 인성의 양심과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정도 지능은 갖추고 있다. 사소한 문제로 호들갑을 떨 것도 없고, 그런 자질구레한 일을 진리를 추구하여 반드시 깨닫고 해결해야 할 문제로 취급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될 일이다. 이는 정상 인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개도 체면이 무엇인지 아는데 네가 모른다면 사람으로서 수준 미달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내가 개를 한 마리 키웠는데, 아주 예쁘게 생긴 녀석이었다. 눈이 크고, 입도 크고, 코도 예뻤다. 한번은 녀석이 먹이를 놓고 제 새끼와 싸우다가 얼굴을 물렸다. 하필 코 중간에 구멍이 나서 예쁜 얼굴을 망쳤다. 나는 얼른 약을 발라 줬다. “어떡하니? 이렇게 예쁜 녀석한테 흉이 남으면 보기가 얼마나 괴롭겠어!” 그러고는 녀석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우리가 나갈 때 너는 따라오지 마. 남들이 보기에 그 상처가 얼마나 흉하겠니.” 내 말을 듣고 “낑” 소리를 내던 녀석이 잠시 뒤에 멈칫하더니 눈을 커다랗게 떴다. “다쳤잖니. 코에 이렇게 큰 상처가 났으니 남들이 보면 놀릴 거야. 너는 일단 쉬어야 해. 우리가 나갈 때 따라오지 말고 상처가 다 나으면 너는 그때 나가자.” 이 말을 들은 녀석은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고, 나가겠다고 떼를 쓰지도 않았다. 개도 사리 판단을 한다는 말이다. 얼마 지나자 상처에 딱지가 앉고 많이 좋아져서 녀석을 데리고 나갔더니, 한 자매가 녀석을 보고 물었다. “어머, 코는 어쩌다가 그랬니?” 그 말을 들은 녀석은 곧장 돌아서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가 있는 곳까지 달려가 다시 오지 않았다. 그 자매가 처음에 말을 걸었을 때만 해도 녀석은 얌전했다. 물을 주면 마시고, 도망치지 않았다. 그런데 “코는 어쩌다가 그랬니?”라고 묻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난 것이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녀석에게 이렇게 물었다. “코 상처에 대해서 자매가 물어봤을 때 왜 도망쳤니? 혹시 너도 부끄러워?” 나를 쳐다보던 녀석은 부끄러움에 자꾸만 고개를 아래로 떨궜다. 내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서 사람 품속으로 파고들며 쓰다듬어 달라고, 안아 달라고 했다. 나는 녀석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는 아들내미랑 물어뜯고 싸우면 안 된다. 또 물려서 흉이 지면 얼마나 보기에 안 좋겠니. 사람들이 놀릴 텐데, 그러면 네 체면이 뭐가 되겠어?” 보아라. 다섯 살짜리 개도 부끄러움을 안다. 얼굴에 상처가 났다고 사람을 피할 줄도 알고, 누가 보고 놀릴까 봐 걱정한다. 개도 이 정도 지능이 있는데 사람이 없겠느냐? (있습니다.) 사람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즉, 사람의 이성 범위 안에 이러한 것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체면이 무엇이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고 반감을 품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에 대한 기준이 자기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이는 일상생활 중에서 가장 간단한 일이다. 정상 인성의 양심과 이성을 갖추었다면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다. 사람의 패괴 성품이나 부정적 정서를 해결하듯이 진리를 교제할 필요가 없다. 물론, 네가 자기 집에서 생활한다면 조금 불결해도 괜찮다. 그렇게 엄격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네가 형제자매와 함께 생활한다면 정상 인성 방면의 기준을 반드시 충족해야 한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요구하지 않더라도, 모종의 엄격한 요구 기준을 제시하지 않더라도, 정상적인 사람으로서는 그 일에 대해 느낌이 있어야 한다. 이는 모두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이 응당 해내야 하고 갖춰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사상 관점, 또는 각도, 입장에 관계되지 않고, 인생길이나 큰 방향과 목표에는 더더욱 관계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는 정상 인성의 양심과 이성의 요구에 근거해 해결하는 것이 좋다. 남들이 그 일 때문에 뒤에서 수군거리거나 네게 반감을 품지만 않게 하면 된다. 개인이 어떠한 생활 습관과 기호를 가지고 있는지, 또는 개인별 성격상의 차이, 또는 원칙에 관계되지 않는 문제를 취사선택하는 것, 이런 것은 사상 관점과 무관하므로 자유롭게 선택해도 되고, 자신의 그런 것들을 그대로 유지해도 된다. 하나님 집에서는 간섭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 의지와 기본적인 양심 및 이성을 주었으며, 사람이 자기 취미와 기호, 생활 습관, 혹은 자기 성격에 맞는 생활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했다. 그 누구에게도 너를 단속하거나 결박하거나 질책할 권리는 없다. 진리 원칙과 하나님 말씀의 요구 사항에 관계되지 않는 문제의 경우, 구체적으로 말해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에 관계되지 않는 문제의 경우, 누구나 자기 생활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다. 만약 리더나 팀장, 책임자가 네 개인적 생활 문제를 질책하고 간섭한다면 거부해도 된다. 요컨대, 정상 인성의 이러한 문제는 하나님 말씀의 요구 사항과 진리 원칙에 관계되지 않으므로, 네가 편안하고 적절하다고 느끼는 한편 다른 사람에게 지장을 주거나 다른 사람을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괜찮다. 예를 들어, 네가 꾸미기를 좋아하고 깔끔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지장을 줘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은 밤 11시면 자야 하는데 네가 빨래하거나 청소하고 있으면 안 된다. 네가 만약 네 집에 있다면 다른 사람의 생활에 영향을 줄 일이 없으니, 밤에 안 자고 새벽 네다섯 시까지 시끄럽게 굴어도 괜찮다. 그것은 네 자유다. 하지만 네가 지금 형제자매와 함께 거주하면서 그런 행동을 하면 타인의 생활 속 휴식과 생활 리듬에 영향을 끼치게 되므로 좋지 않다. 그런 행동은 네 권리와 자유를 올바르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제멋대로인 것이다. 이를 두고 인간성이 없다고 한다. 네 자유를 위해서, 네 육적인 기호와 갈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남의 생활을 방해하고 남의 휴식 시간을 대가로 삼아 네 육을 만족시키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 것은 인성의 양심과 이성에 부합하지 않는 행태이므로 고칠 필요가 있다. 이는 사람의 처신 원칙에 관계된다. 네 개인적 생활 방식에 무슨 문제가 있다거나 네가 위생에 중시하고 깔끔한 것이 잘못이라는 말은 아니다. 네 처신 원칙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너는 타인이 받는 느낌, 타인의 기분과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다. 너는 타인의 이익을 해치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자기 이익을 온전하게 지키고 있다. 이러한 처신 방식은 하나님이 요구하는 처신 방식이 아니고, 하나님이 요구하는 처신 원칙도 아니다. 그러므로 정상 인성의 기호, 취미, 생활 방식, 생활 습관, 자유, 권리 등등은 그 어떤 것이든 전부 사람의 양심과 이성의 범위 안에 있어야 정상 인성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정상 인성의 양심과 이성을 벗어난다면 그것은 정상 인성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정상 인성의 양심과 이성 범위 안에 있으면 너는 정상적인 사람이다. 만약 정상 인성의 양심과 이성 범위를 벗어나서도 네 자유를 강조한다면, 너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고 비인간이다. 이는 고쳐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이다. 이 점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무엇을 똑똑히 알아야 하느냐? 정상 인성의 양심과 이성 범위 내에서 이러한 개인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사람의 처신 원칙이다. 네 개인적인 생활 습관, 생활상의 요구, 생활 방식 등등 이런 것이 정상 인성의 양심과 이성이라는 범위를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어떻게 하든 네 자유이며, 이에 대해서는 어떠한 구체적 요구 사항도 없다.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의 첫 항목 ‘내려놓기’ 중 열등감, 증오, 분노, 의기소침, 근심, 염려, 걱정, 억압감 등등 갖가지 부정적 정서를 내려놓는 것에 관해 교제해야 할 굵직한 방향 문제와 원칙에 관계되는 문제는 기본적으로 이 정도다. 사소하고 지엽적인 문제, 원칙과 방향에 관계되지 않는 문제에 관해서도 앞에서 확실하게 교제한 바 있다. 네가 개인의 그러한 문제 방면에서 무엇이 내키지 않고, 달갑지 않고, 여의치 않든, 그것이 진정한 사상 관점에 관계되지 않고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원칙에 관계되지 않는 문제라면, 그것은 네 개인적인 문제이니 스스로 양심과 이성의 범위 내에서 조정하고 해결해야 한다. 배는 고픈데 밥하기는 싫은 상황을 예로 들겠다. 너는 고픈 배 때문에 일할 기운이 없지만, 밥을 하자니 짜증이 난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한다. ‘이거 부정적 정서 아닐까?’ 이는 부정적 정서 같은 것이 아니라 육체가 게을러서 밥을 하기 싫어하는 것이다. 이는 패괴된 육체의 문제다. 네 경제적 여건이 괜찮다면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해서 대신 해 달라고 하면 된다. 그 정도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생활 문제를 대신 해결해 줄 의무가 없다. 그것은 너 자신의 일이다. 사노라면 먹고, 입고, 씻고, 닦는 것처럼 귀찮은 일은 항상 있다. 이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일이다. 사람은 개나 고양이와 다르다. 개나 고양이를 키우면 주인이 먹이와 물을 책임져야 한다. 배고플 때 먹이를 줘야 한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얻어먹을 수 없다. 생활 방면에서 필요한 것들을 사람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자기가 도맡아야 한다. 이는 부담이 아니다. 그런 일을 잘 배우는 것은 정상 인성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이제껏 자기는 해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특히 일부 남자들은 집에서 부모나 다른 가족들이 대신 챙겨 줬다. 가족들이 버릇을 잘못 들여서 밥 지을 줄도 모르고, 빨래할 줄도 모르고, 자기 생활 속의 그러한 일들을 수습할 줄 모른다. 가정 환경 탓이다. 그러다가 부모 곁을 떠나 혼자 살게 되면 무엇이든 자기 스스로 할 줄 알게 된다. 빨래도 할 줄 알게 되고 이불도 깔끔하게 개어 놓는다. 사실, 이러한 일들은 전부 정상 인성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성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 아니며, 감당 못 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만약 네가 보다 높은 삶의 질을 바란다면 더 신경 써서 하고, 삶의 질에 대한 기준이 그다지 엄격하거나 높지 않다면 편한 대로 해도 된다. 이는 모두 원칙에 관계되지 않는 일이다.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에 관한 첫 번째 큰 화제, 갖가지 부정적 정서 내려놓기는 여기까지 교제하겠다. 첫 번째 화제에 대해서는 대강 이야기가 끝났다. 이어서,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 내려놓아야 할 것으로는 부정적 정서 외에도 사람의 추구, 이상, 바람이 있다. 이것이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의 실행 중 ‘내려놓기’의 두 번째 항목이다. 오늘은 이것을 교제하겠다. 사람의 추구, 이상, 바람을 내려놓는 것 말이다. 알아들었느냐? (알아들었습니다.) ‘내려놓기’의 구체적인 실행 대상은 조금 전에 말했고, 너희도 받아 적었다. 그러면 자세히 살펴보자. 사람의 추구, 이상, 바람을 내려놓는다는 내용에 관해 너희는 무엇이 떠오르느냐? (지난번에 하나님께서 교제해 주신 사람의 이상이 떠오릅니다. 한 방면에 재능이 있는 사람을 예로 들면, 연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스타가 되고 유명인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잘 쓰고 문학적 재능이 조금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 집에서 문서 본분을 이행하고 작가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사람 안에 생겨난 이상입니다.) 더 말해 보아라. 또 무엇이 있느냐? (사람이 남보다 뛰어나기를 추구하고 자기 장래와 소망을 추구하며 복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이 있습니다.) 더 생각해 보아라. 또 무엇이 있겠느냐? 여기서 강조할 것이 무엇이겠느냐? 사람이 내려놓아야 할 추구, 이상, 바람이다. 사람의 사치스러운 욕망과 장래 운명에 대한 소망 이외에, 사람의 현실 생활과 사람의 생존에 필수적인 환경 속에서 사람이 내려놓아야 할 추구, 이상, 바람에 관계되는 것으로는 무엇이 있느냐? 즉, 인생에서 네가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일이 무엇이 있느냐? (사람이 결혼할 나이가 되면 결혼 속박을 받습니다. 또, 사업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충돌할 경우 자기 사업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도 내려놓아야 할 것들입니다.) 잘 이야기했다. 그간 하나님을 믿으면서 수확이 있고 체험한 것이 있구나. 두 가지 방면 모두 맞는 말이다. 한 가지는 결혼이고, 다른 한 가지는 사업이다. 인생길에는 평생에 관계되는 큰일이 몇 가지 있는데, 이 두 가지 역시 거기에 속한다. 결혼은 누구에게나 큰일이다. 사업 역시 누구에게나 피할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큰일이다. 이 두 가지 외에 또 다른 큰일이 있느냐? (가정, 부모, 자식을 대하는 방면이 있습니다. 이런 일이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 충돌하면 사람은 비교적 내려놓기를 어려워합니다.) 개요를 열거할 때 그렇게 길게 말해서는 안 된다. 조금 전에 하나는 결혼, 하나는 사업을 언급했다. 그러면 이 화제는 어떻게 말해야 하겠느냐? (가정입니다.) 그렇다. 가정 역시 큰 항목이다. 이는 누구나 관련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누구나 관련된다. 게다가 아주 구체적이고 대표성이 있다. 결혼, 가정, 사업은 모두 큰 화제다. 또한, 모두 사람의 추구, 이상, 바람이라는 주제와 관련되기도 한다. 사람의 추구, 이상, 바람을 내려놓는 것에 관계된 화제는 크게 네 가지가 있다. 너희는 세 가지를 맞혔다. 참으로 훌륭하다. 보아하니 이 화제는 자세히 교제할 필요가 있겠다. 이는 너희 마음속에 이미 존재하던 화제이며, 너희의 생활 혹은 분량, 체험과 비교적 밀접한 것이다. 또 하나는 사실 아주 간단하다. 무엇이겠느냐? 바로 사람의 취미와 관심사다. 간단하지 않으냐? (간단합니다.) 어째서 사람의 취미와 관심사라고 이야기하겠느냐? 깊이 생각해 보아라. 취미와 관심사가 우리가 교제하려는 사람의 추구, 이상, 바람에 관계되느냐? (관계됩니다.) 결혼도 관계되느냐? (네.) 가정은 관계되느냐? (관계됩니다.) 사업은 관계되느냐? 사업도 관계된다. 이 네 가지 내용은 모두 사람의 추구, 이상, 바람과 관계가 있다. 즉, 전부 다 사람이 마음속 깊숙이 품고 있는, 그것에 대한 상상과 구체적 요구 혹은 육체적, 감정적으로 얻고 싶은 바와 관계된다. 즉, 각기 다 구체적인 것, 구체적인 추구가 있으며, 사람이 이를 위해 치르는 노력 및 대가와 관련된다. 네 가지 모두 사람 일생의 사상 관점에 관계되고 영향을 주며, 사람의 올바른 추구 목표에 영향을 미친다. 물론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과 방법에도 영향을 끼친다. 내가 이렇게 개괄적으로 말하면 너희가 잘 알아듣지 못하고 이해하기가 힘들 수도 있다. 조목조목 교제하고 살펴보면, 너희는 그 안의 문제를 차차 분명히 파악하게 될 것이다. 문제를 파악한 뒤에는 거기에서 사람이 응당 실행하고 준수해야 할 원칙을 찾아내게 된다.

첫 번째로 우선 취미와 관심사를 보겠다. 취미와 관심사, 이는 당연히 사람이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아져서 어떠한 일을 하고 싶어 하거나 일시적으로 무언가를 좋아하고,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 하는 것과 관련되지 않는다. 일시적인 것과는 무관하다. 여기서 말하는 취미와 관심사는 진정으로 사람의 정신세계 및 마음 깊은 곳에 존재하는 일종의 지향이자 추구이며, 더 나아가 사람의 행동이 있고, 이를 위해 대가를 치를 계획이 있고, 더욱이 이러한 취미와 관심사를 충족시키거나 더 가지기 위해, 혹은 자기 취미 및 관심사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기 위해 사람이 하는 구체적 노력과 분투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취미와 관심사란 사람이 이를 위해 목표를 세우고 이상을 가진 것이며, 더 나아가 이를 위해 대가를 치르고, 에너지를 쏟고, 구체적인 행동을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자기 취미와 관심사를 위해 관련 지식을 익히고, 일상생활에서 시간을 주로 그 취미와 관심사에 관련된 지식을 학습하고, 실천하고, 몸소 경험하는 데에 할애하는 것이다. 그림 그리기를 아주 좋아하는 것이 취미이자 관심사인 사람을 예로 들겠다. 여기서 가리키는 그림 그리기는 인물 하나 혹은 풍경 한 폭을 그리는 것처럼 간단한 수준이 아니다. 그렇게 간단한 취미 및 관심사가 아니고, 소묘, 산수화, 인물화 등 다양한 회화 테크닉을 배우는 것이다. 더 나아가 유화와 수묵화까지 배우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배우는 목적은 그저 취미와 관심사이기 때문만은 아니라 회화에 대한 자신의 취미와 관심사로 말미암아 꿈이 생기고, 이상을 가지게 되고, 자기 바람도 생겼고, 심지어 이를 위해 필생의 에너지를 쏟아 회화를 배움으로써 이상적인 화가가 되어 회화를 업으로 삼고 싶어 하는 것이다. 미술 일에 종사하려면 아주 많은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전문 교육 기관에 입학해서 수업을 받고 깊이 연구하고, 각종 회화 관련 지식을 배우고, 현장에 가서 스케치도 해 보고, 그런 다음에는 전문가 혹은 유명한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대회에 나가는 등의 활동이 있다. 이 모든 활동의 중심에는 그의 추구, 이상, 바람이 존재한다. 물론, 그 모든 추구, 이상, 바람은 그의 취미와 관심사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한 취미와 관심사가 있었기에 그의 인생에 추구, 이상, 바람이 생긴 것이다. 어떤 사람은 역사 연구를 좋아한다. 고대사, 현대사, 국사, 세계사 모두에 큰 취미를 느낀다. 큰 취미가 생긴 뒤로 점점 자기가 그 분야의 인재라는 생각이 들고, 반드시 해당 분야에 종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후 그는 부단히 역사를 공부하고 깊이 연구한다. 그러는 동안 당연히 그의 추구, 이상, 바람이 부지런히 틀을 갖추고 형태가 완성된다. 그는 역사학자가 되고자 한다. 역사학자가 되기 전까지 그의 시간과 에너지 대부분은 자기 취미와 관심사를 중심으로 소비된다. 또 어떤 사람은 경제를 유난히 좋아한다. 숫자와 친하고 경제 방면에 관한 것들을 배우기를 좋아하며, 언젠가는 자기가 금융업계에서 실력자 혹은 성공한 인물이 되기를 바란다. 아무튼 그 역시 자기 취미와 관심사를 근간으로 추구가 생긴 것이고, 자기 취미와 관심사에 관련된 이상과 바람이 생긴 것이다. 한편으로 그는 이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몸소 행동하고, 대가를 치르고, 에너지를 쏟는다. 그리고 자기 취미 및 관심사와 관련된 여러 방면의 지식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깊이 파고들고, 수학한다. 또 어떤 사람은 문예, 연기, 춤, 노래를 좋아하고 감독 역할을 좋아한다. 이러한 취미와 관심사가 생긴 후 자기 취미와 관심사로 인한 동기 부여로 그의 이상과 바람도 점차 틀을 갖추고 형태가 완성된다. 그의 이상과 바람이 점차 그의 인생 목표가 되어 갈 때, 그는 마찬가지로 이를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바쁘게 일하고, 몸소 행동하며, 자기 인생 목표를 향해 추구한다. 그런가 하면 교육에 종사하기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교육과 관련된 지식, 예를 들어 심리학 등 여러 방면의 지식을 익혀 취미 및 관심사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디자인을, 어떤 사람은 엔지니어링을, 어떤 사람은 과학 기술을, 어떤 사람은 전자를 좋아한다. 또 어떤 사람은 곤충이나 미생물 연구, 그리고 각종 동물의 생활 습성과 생존 법칙 및 그들의 기원에 대한 연구 등등을 좋아한다. 또 어떤 사람은 매스컴을 좋아해서 그 업계에 종사하며 진행자 혹은 앵커, 기자 등등이 되고 싶어 한다. 사람은 자기만의 갖가지 취미와 관심사로 인해 부단히 공부하고, 파고들고, 점차 이해하게 되며, 그런 뒤에는 자기 추구, 이상, 바람이 마음속에서 계속 뚜렷해지는 동시에 틀을 갖춘다. 당연히 추구, 이상, 바람이 점차 틀을 갖추어 가는 동안 사람은 자기 이상과 바람을 향해 노력하고 전진한다. 사람이 하는 구체적인 일 하나하나가 전부 이를 위해 에너지, 시간, 청춘을 쏟는 일이고, 더 나아가 감정과 심혈을 쏟는 일이다.

사람의 취미와 관심사가 어떤 업계에 속하든, 어떤 범주에 관계되든, 그것으로 인해 사람에게 추구가 생기고 그것에 맞는 이상과 바람을 갖게 되면, 사람의 인생 목표와 인생의 방향도 확립된다. 사람의 이상과 바람이 인생 목표가 되면, 이 세상에서 장차 걸을 인생길이 대강 확정된다. 왜 확정된다고 말하겠느냐?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문제가 무엇이겠느냐? 네 취미와 관심사로 인해 생겨난 이상과 바람이 확정되고 나면, 그와 동시에 너는 그 방향으로 노력하고 분투하고자 한다. 심지어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죽어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과 심리 상태가 생긴다. 그러면 너는 반드시 이를 위해 네 일생의 에너지와 시간을 바치고 대가를 치르게 된다. 즉, 네 일생, 운명, 장래, 그리고 너라는 사람의 이후 종착지가 필시 네가 이미 확정한 인생 목표의 영향을 받고 심지어는 거기에 말려들 것이다. 여기에서 내가 주요하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일종의 취미와 관심사 때문에 자신의 추구, 이상, 바람이 확립되고 나면 사람은 절대로 아무것도 안 한 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너는 구체적인 취미와 관심사가 있기에 구체적인 행동을 하게 되고, 그와 동시에 구체적인 행동의 주도하에 자기 이상과 바람을 가지게 된다. 그때부터 네 가슴은 계속 뛰고 발걸음 역시 멈출 줄을 모른다. 너는 반드시 한평생을 네 이상과 바람을 위해 살게 된다. 너는 절대로 간단하게 조금 배우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너는 분명 자신이 그러한 특기가 있고 그러한 잠재력과 타고난 자질을 갖추었다는 이유로 자기에게 맞는 위치를 찾거나 벼락출세하기 위해, 이 세상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비범한 존재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며, 절대로 그 마음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필승의 신심을 가지고 네 이상과 바람을 추구할 것이다. 심지어 자기 이상과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대가도 달게 치르고, 그 어떤 어려움, 곤란, 위험, 고통도 기꺼이 마주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째서 그렇게 하는 것이겠느냐? 어째서 자기 취미와 관심사를 바탕으로 이상과 바람이 생기고 나면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겠느냐? (그는 자기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더 높은 무언가를 추구하고자 하며, 남보다 뛰어나겠다는 목적을 이루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난관에 봉착하더라도 위축되지 않고 계속 자기 이상과 바람을 추구합니다.) 사람에게는 한 가지 본능적인 것이 있다. 자기 장점이 무엇이고 자기 관심사와 취미가 무엇인지 아예 모르면 자기는 존재감이 없고 자아 가치를 실현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또한 자기가 무가치하게 살고 자기 가치를 드러내지 못한다고 여긴다. 사람이 자기 취미와 관심사를 발견했을 때는 그 취미와 관심사를 자아 가치를 실현하는 징검다리 혹은 발판으로 삼고, 대가를 치러 자기 이상에 도달하고자 하고, 더 가치 있는 삶을 살고자 하며,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또한, 사람들 사이에서 두각을 드러내고자 하고, 남의 눈에 띄고자 하며, 남들이 칭찬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는 사람이 되고자 하고, 비범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리하여 이번 생에 보람을 일구고, 한 번 사는 세상에서 성공을 이룰 뿐만 아니라 이상과 바람을 모두 실현하여 더 가치 있게 살고자 한다. 시야를 넓혀 주위를 둘러봐도 어수선한 군중 속에 자기처럼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몇 없다. 그리고 원대한 이상과 바람을 가지고 결국에는 부단한 노력으로 자기 이상과 바람을 실현하여 자기가 좋아하는 사업을 이루고, 원하던 명예, 이익, 위신을 얻고, 자기 가치를 드러내고, 자아 가치를 실현한다. 이것이 사람이 추구하는 바이다. 사람은 저마다 취미와 관심사가 다른 까닭에 제각기 다른 추구, 이상, 바람을 가진다. 물론 사람이 추구, 이상, 바람을 갖게 된 후 그 이상과 바람이 반드시 실현되리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사람이 이상과 바람을 가지고 이러한 추구가 생기면, 사람은 절대로 평범한 인물로 남을 리가 없다. 속된 말로 한 수 제대로 보여 줘서 자기가 보통이 아님을 다른 사람이 알게 할 것이다. 평범한 인물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번 생은 그냥 이렇게 살아야죠. 소를 방목해도 되고 농사꾼도 좋아요. 평범한 미장이나 청소부도 상관없고. 심지어 택배 기사나 음식 배달부라도 괜찮아요.”라고 말하며 이러한 이상을 가진 사람은 없다. “즐거운 택배 기사가 되는 것도 이상 아닌가요?” “그게 어떻게 이상이에요? 택배 회사 사장, 그것도 온 세상에 이름난 사장이 되겠다고 해야 이상과 바람이죠!” 기꺼이 보통 사람이 되려는 사람은 없다. 손톱만큼의 관심사와 취미라도 있으면, 그것이 사람을 사회적 유명인으로, 좀 이름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가능성이 0.01%라도 있으면, 사람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엄청난 힘을 발휘하며, 이를 위해 그 어떤 대가라도 치른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사람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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