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7) 제 3 부

여기까지 하고, 지금부터는 사람이 자기 이상과 바람, 그리고 본분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해야 하는지를 교제하겠다. 우선 이상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앞에서 말한 사람들의 이상을 생각할 때, 사람이 하나님 집에서 자기 이상의 실현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적절하겠느냐?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떠한 성질의 행동이냐? 어째서 적절하지 않으냐? (본분을 이행하면서 자기 이상을 실현하려는 것은 자기 과시인 동시에 개인적인 사업을 하는 행동입니다. 피조물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는 자세가 결코 아닙니다.) 자기 이상과 바람을 실현하려는 것이 과연 정당한 행동인지 말해 보겠느냐? (정당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정당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인권을 박탈하는 것이 아니냐? (아닙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진리를 추구해야 하고,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사람에게 알려 준 길을 따라 추구해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 바람과 이상만 추구한다면, 육이 좋아하는 것들을 추구하는 것인데, 그것은 사탄이 주입한 것들입니다.) 만약 세상에서라면 자기 이상을 실현하려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네가 어떤 이상을 실현하든 법을 어기거나 도덕적 마지노선을 넘지만 않는다면 다 괜찮다. 추궁할 사람도 없고, 옳고 그름을 따질 문제도 아니다. 개인이 무언가를 좋아해서 추구하다가 그걸 얻고 목적을 이루면 성공한 것이고, 그걸 얻지 못하고 실패하더라도 본인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너는 하나님 집에 왔다. 하나님 집은 특별한 곳이다. 네가 품은 이상과 바람이 어떤 것이든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이유가 무엇이냐? 이상과 바람을 추구하는 문제에 있어서 네가 추구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차치하고 이상과 바람을 추구하는 것 자체만 놓고 이야기하자면, 네 행동 방식과 네가 걷는 길은 전부 이기주의, 사람의 이익, 사람의 지위, 사람의 명예를 중심에 두고 있다. 전부 그것들이 중심이다. 즉, 사람이 자기 이상의 실현을 추구한 결과 이익을 보는 것이 오직 본인뿐이라는 말이다. 그 사람은 지위, 명예, 체면, 그리고 육적인 이익을 위해 자기 이상을 실현하려 한다. 이것이 정의로우냐?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가진 이상, 생각, 바람을 위해 그가 동원한 온갖 수법과 방식, 방법은 모두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것들이다. 진리를 기준으로 따져 봤을 때 정의롭지 않거나 정당하지 않은 것은 응당 내려놓아야 한다. 분명 이렇지 않으냐? (맞습니다.) 내려놓아야 한다. 이기주의적인 것들을 내려놓고 개인의 이상과 바람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는 사람이 걷는 길의 본질을 통해 본 것인데, 사람이 자기 이상과 바람을 실현하려는 것은 긍정적인 행동이 아니며, 부정되었다. 이것이 한 방면이고, 또 다른 방면도 있다. 하나님 집이든 교회든 뭐라고 부르든 간에 여기가 어떤 장소냐? 어떤 곳이냐? 교회며 하나님 집의 본질이 무엇이냐? 일단 이론적으로 볼 때 세상이나 사회가 아니다. 사회의 그 어떤 사람의 단체, 사람의 조직도 아니다. 세상이나 사람에게 속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냐? 무엇으로 인해 출현하고 존재하는 것이냐? 하나님, 하나님의 사역으로 인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사역, 이 두 가지로 말미암아 교회가 생기고 하나님 집이 생겼다. 그렇다면 교회 혹은 하나님 집이 개인의 재능을 발휘하고 개인의 이상과 포부며 바람을 실현하는 곳이겠느냐? (아닙니다.) 명백히 아니다. 교회 혹은 하나님 집은 하나님이 있기에, 하나님의 사역이 있기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개인의 재능을 발휘하고 개인의 이상과 포부며 바람을 실현하는 곳이 아니다. 사람의 육적인 생활과 육적인 장래, 명리, 지위, 명예 등등을 중심에 두고 사역하는 곳도 아니다. 또한 사람의 육적인 명예, 지위, 향락, 장래로 인해 생겨나 존재하는 곳도 아니다. 그렇다면 교회 혹은 하나님 집은 어떤 곳이냐? 하나님이 있고 하나님의 사역이 있기에 생겨났으니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고,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곳이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것이 진리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교회 혹은 하나님 집은 하나님이 있기에, 하나님의 사역이 있기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고,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곳일 수밖에 없다. 개인의 지위, 명예, 장래 혹은 그 어떤 이익과도 관계가 없다. 그러면 교회 혹은 하나님 집에서 하는 모든 일과 그 모든 일의 중심이 되는 원칙이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요구, 하나님의 가르침이어야 한다. 크게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역이 중심이라 할 수 있고, 구체적으로는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확장하고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고 널리 전하는 것이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고, 하나님 말씀을 널리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 외에 또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 선민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함으로써 정결함을 얻고 구원받는 곳입니다.) 핵심을 잘 짚었다. 교회 혹은 하나님 집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고, 하나님 말씀을 널리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곳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구원받는 곳이라는 점이다. 기억했느냐? (기억했습니다.) 읽어 보아라. (교회 혹은 하나님 집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고, 하나님 말씀을 널리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 선민이 정결함을 얻고 구원받는 곳입니다.) 교회 혹은 하나님 집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고, 하나님 말씀을 널리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하고, 또 하나님 선민이 정결함을 얻고 구원받는 곳이다. 교회 혹은 하나님 집은 바로 이런 곳이다. 그러면 이런 곳에 개인의 이상과 바람을 실현하기에 알맞은 일이나 항목이 어느 하나라도 있을 수 있겠느냐? 개인의 이상과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 봉사하는 일은 단 하나도 없다. 개인의 이상과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또한 단 하나도 없다. 그러니 개인의 이상과 바람은 하나님 집에 존재해야 하느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개인의 이상과 바람은 교회에서 하나님이 하려는 모든 일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이상과 바람은 하나같이 교회의 모든 일과 어긋나고, 진리에 위배되고, 하나님의 뜻에 반하고, 하나님 말씀을 널리 전하는 것과 배치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과 배치되고, 하나님 선민이 정결케 되고 구원받는 일과도 배치된다. 사람이 가진 이상이 어떤 것이든 개인적 이상과 바람인 이상 반드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을 것이다. 또한, 개인적 이상과 바람인 이상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널리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에 지장을 주거나 이를 가로막을 것이다. 사람이 정결함을 얻고 구원받도록 두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이 둘 사이는 모순되기만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서로 반하는 관계다. 네가 자기 이상과 바람을 추구한다면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가로막게 되며, 하나님 말씀을 널리 전하고 하나님 사역을 증거하는 일이 진행되지 못하도록 가로막게 된다. 또한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도록 가로막게 되고, 당연히 네가 구원받는 것도 가로막게 된다. 요컨대 사람의 이상은 그게 무엇이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실제적 성과를 낼 수 없다. 사람이 자기 이상과 바람을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은 진리를 깨닫고,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깨닫고, 어떻게 하나님을 흡족게 할 것인지, 어떻게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것인지, 어떻게 제대로 된 피조물이 될 것인지를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하고 하나님에게 진실로 순종하는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반대로 이상과 바람이 실현될수록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지는 동시에 사탄과 점점 가까워진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자기 이상을 추구하고 실현할수록 마음이 점점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진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소원대로 자기 이상이 실현되고, 자기 바람이 실현, 성취됐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하나님의 주재와 하나님의 모든 것을 갈수록 무시하게 된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대적하고, 하나님과 대립하는 길을 갈 수도 있다. 이것이 최종 결과다.

하나님 집 혹은 교회가 어떤 곳인지 알았다면 다음으로는 하나님 집의 구성원으로서 사람이 어떠한 태도와 입장으로 하나님 집에서 생활하고 생존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자기 이상을 추구하지 말고 자기 바람을 실현하지 말라는 거네요.” 나는 너희의 이상 추구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집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피조물로서 하나님 집에서 어떤 입장에 서야 하는지, 본분을 어떻게 이행하는 것이 적절한지 너에게 알려 주는 것뿐이다. 만약 네가 기어코 자기 이상을 실현하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나는 거리낌 없이 나가라고 말할 것이다. 교회는 네가 자기 이상을 추구하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 집이 아닌 곳에서는 네가 이상 속에서 하고 싶었던 일을 뭐든 해도 되고 네 이상과 포부를 추구해도 된다. 하나님 집을 떠나기만 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 간섭할 사람이 없다. 그러나 교회, 하나님 집은 네가 자기 이상을 추구하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네가 이곳에서 자기 이상과 바람을 추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네가 하나님 집, 교회에 하루라도 있는 이상, 네 이상을 실현할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하며, 네 이상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제 이상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본분을 이행하며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되길 원합니다.” 네가 이렇게 말한다면 괜찮다. 너는 하나님 집에서 착실하고 성실하게 네가 응당 이행해야 할 본분을 이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만약 이번 생을 헛되이 살지 않기 위해 자기 이상을 추구하겠다고, 자기 이상을 실현하겠다고 고집을 부릴 것이라면 본분을 포기하고 하나님 집에서 나가거나 이런 선언문을 쓰면 된다. “저는 자진해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나가 제 이상과 바람을 추구하겠습니다. 이 넓은 세상에 저 하나 받아 줄 곳이 없을 리는 만무하죠. 이만 작별을 고합니다.” 이러면 당당하게 나갈 수 있다. 가서 네 이상을 추구해라. 하지만 네가 만약 “제 이상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열심히 이행하고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로 구원받기를 추구하겠습니다.”라고 한다면 우리는 말이 통하는 셈이다. 네가 안정된 마음으로 하나님 집에 머물면서 하나님 집의 일원이 되고자 한다면 우선 제대로 된 피조물이 되고 분수에 만족하며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 집의 명실상부한 피조물이 된다. 피조물은 네 형식상의 신분이요, 호칭이다. 이 호칭에는 구체적인 모습과 본질이 따라야 한다. 네게 호칭을 주고 그걸로 끝인 것이 아니다. 네가 하나의 피조물이라면 피조물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 피조물인 이상 피조물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렇다면 피조물의 본분이 무엇이냐? 피조물의 책임은 무엇이냐? 하나님 말씀에 피조물의 본분, 의무, 책임이 명확하게 나와 있다. 그렇지 않으냐? 오늘부터 너는 명실상부한 하나님 집의 일원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하나님의 피조물 중 하나라고 너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면 너는 오늘부로 인생 계획을 새로 세워야 한다. 예전에 네 인생에 계획해 두었던 이상, 바람, 목표를 더는 추구하지 않거나 내려놓기 시작해야 한다. 신분과 각도를 바꿔 피조물로서 응당 가져야 할 인생 목표와 인생의 방향을 계획해야 한다. 우선, 네 목표와 방향은 지도자가 된다거나 어떠한 업계의 능력자 혹은 선도자가 된다거나 어떤 한 가지 일에 종사하며 업무 기술에 통달한 유명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본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 당장 네가 해야 할 일이 도대체 무엇이고 네가 이행해야 할 본분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네게 하라는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하나님 집에서 네게 안배한 본분이 무엇인지 물어보아라. 너는 그 본분과 관련해 반드시 알고, 파악하고, 준수해야 할 원칙을 전부 숙지하고 분명히 해야 한다. 기억하지 못하겠으면 종이에 적어 두거나 컴퓨터에 기록해 두고 시간 날 때마다 읽어 보며 되새기거라. 피조물의 일원으로서 네가 최우선적으로 가져야 할 인생 목표는 피조물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이는 네가 응당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인생 목표다. 다음은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피조물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어떻게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당연히 자기 명예, 지위, 체면, 장래 등등과 관련된 목표와 방향은 전부 포기해야 한다. “왜 포기해야 하나요?”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명리나 지위 같은 것을 추구한다면 네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가로막게 되고, 하나님 집 또는 교회의 어떠한 사역을 교란하게 된다. 심지어는 교회의 어떠한 사역을 파괴하고, 하나님 말씀을 널리 알리는 일과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에 지장을 초래하며, 더 나아가 사람이 구원받는 일에 지장을 준다고도 할 수 있다. 본분 이행에 합격하고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되기 위해서 네가 어떤 목표를 세우든, 경험을 어떻게 총정리하든 다 괜찮다. 다만 네 이상을 추구하지 말고, 네 이상을 네가 본분을 이행할 때의 그 어떤 원칙 혹은 이행 방식 안에 끼워 넣지만 않으면 된다. 본분을 잘 이행하고, 본분 이행에 합격하고, 제대로 된 피조물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에서 원칙과 더 정확한 실행 길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 말씀에서 벗어나 네 개인적인 생각과 개인의 출로를 정리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실행 원칙의 중심은 결국 어떻게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될 것인지, 어떻게 본분을 잘 이행할 것인지이다. 모든 것의 중심은 진리를 깨닫고, 피조물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여 궁극적으로는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 또는 생활 속에서 갖가지 부류의 사람, 일, 사물을 대할 때 준수해야 할 원칙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맞습니다.) 네가 하나님 집의 원칙과 요구에 따라 본분을 이행하고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되기를 추구한다면 너는 당연히 그러한 성과를 이룰 수 있다. 그러나 네 이상을 추구한다면 너는 영원히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걷지 않고 자기 이상을 실현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결국에는 점점 교만해지고, 이기적이 되고, 건방져지고, 흉악해지고, 탐욕스러워진다. 또 어떻게 되느냐? 점점 부풀어 올라 안하무인격이 된다. 반대로 자기 이상과 바람 실현하기를 포기하고 여러 진리를 깨닫고자 하면,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각 방면의 하나님 말씀과 진리 준칙을 깨닫고자 하면, 사람이 나날이 사람답게 살아가게 되고, 다양한 일을 하거나 환경을 체험할 때 과거처럼 막연하고 곤혹스럽지 않게 된다. 더 나아가 과거처럼 수시로 갖가지 부정적 정서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거나 갖가지 부정적 정서와 생각에 구애되고 결박되어 결국에는 그것에 통제당하고 휩싸이는 일이 없게 된다. 자기 이상과 바람을 추구한다면 사람은 결국 하나님 말씀으로부터, 올바로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되기 위한 원칙으로부터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 사람의 생로병사가 어떻게 된 일인지, 증오 및 갖가지 부정적 정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게 된다. 당연히 주변에 임하는 갖가지 사람과 일, 사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모르게 된다. 갖가지 사람과 일, 사물이 임했을 때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마음이 곤혹스러움으로 가득한 채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결국에는 갖가지 부정적 정서와 부정적 사상 관점이 마음속에 번져 나가며 점점 커져서 자신을 통제하고 결박하게 되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 그 밖에 부정적 정서 혹은 부정적 생각과 관점의 주도하에 과격한 행동을 하거나 남을 다치게 하고 자기도 다치는 일을 저질러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행동 방식은 사람의 정당한 추구를 방해하는 한편 사람에게 응당 있어야 할 양심과 이성을 해친다. 그러므로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 어떤 일에 대한 갈망이 존재하는지, 육과 세상 그리고 육적인 이익에 속하는 명예, 위신, 체면, 지위, 금전 등등 여러 방면 중 어느 것을 갈망하고 필요로 하며, 간파하지 못하고, 항상 그것에 결박되고 유혹당하고, 더 나아가 그것에 푹 빠지거나 그것을 깊이 숭배하여 조금만 경계를 늦추면 언제 어디서든 그것에 사로잡힐 수 있는지 분석하는 일이다. 그런 것들이 바로 너의 이상이다. 그 이상을 실현하는 날이 곧 너의 마지막 날이요, 너의 이상이 너의 무덤이 될 것이다. 너희는 이 일을 어떻게 보느냐? (사람은 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 어떤 일에 대한 갈망이 존재하는지 분석해야 합니다. 육과 세상에 속하는 명예, 위신, 체면, 지위, 금전 등등을 꿰뚫어 봐야 하며, 그러지 못하면 자칫 그것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그것에 사로잡힌다. 그렇지 않으냐? 그래서 육에 속하는 것들은 매우 위험하다. 네가 그것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언제나 그것에게 영향을 받거나 심지어는 그것에 사로잡힐 위험성이 있다. 그러므로 현재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지금 너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 말씀과 진리에 근거해 내가 조금 전에 말했던 육에 속하는 것들을 분석하고 인식하는 일이다. 파헤쳐서 분별해 낸 후 그것을 포기해야 하며, 그런 다음에는 자기 몸과 마음 그리고 에너지를 평범한 피조물이 되는 데에 쏟아붓고, 현재의 자기 본분과 사역에 쏟아부어야 한다. 자기를 특별한 인물, 독보적인 인물, 또는 특별한 재능과 재간을 가진 인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너는 보잘것없는 존재다. 어느 정도로 보잘것없느냐? 모든 피조물 중, 하나님이 만든 만물 중 하나일 뿐이고 지극히 평범한 개체에 불과하다. 얼마나 평범하냐? 너는 하나님이 만든 그 모든 풀, 나무, 산, 물, 심지어는 땅바닥의 모래 한 알만큼이나 평범하다. 칭찬할 부분도 없고 누가 우러를 만한 부분도 없다. 그냥 평범하다. 그 외에, 만약 네 마음속 깊은 곳에 어떤 우상, 큰 인물, 유명인, 위인의 형상이 자리하고 있거나 네가 부러워하는 것들이 있다면 응당 제거하고 포기해야 한다. 또한, 그것의 본성 본질을 간파하고 평범한 피조물이 되는 길로 돌아와야 한다. 평범한 피조물로서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은 사람이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다음으로는 진리 추구라는 주제로 돌아가서 진리에 공을 많이 들여야 한다. 바깥세상의 소식, 정보, 사건, 그리고 유명인 명단 같은 것은 되도록 접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 이상을 실현하겠다는 욕망을 다시 불태우도록 너를 꼬드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안 보는 것이 최고다. 너는 지금 네게 이로울 것이 없는, 부정적인 것에 속하는 사람과 일, 사물을 멀리해야 한다. 그것들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번잡하고 어수선한 세상의 모든 것들을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 설령 그것이 네게 위협이 되거나 너를 유혹하지 못한다고 해도 마땅히 멀리해야 한다. 모세가 광야에서 보낸 40년처럼 말이다. 그래도 잘 살지 않았느냐? 언어 능력은 떨어졌지만, 결국 모세는 하나님에게 선택받았다. 그것은 모세의 일생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었지 나쁜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너는 우선 의식의 저변에서부터 마음을 가다듬고,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마음가짐을 갖추어야 한다. 너는 이러한 계획과 의지를 갖추어야 하고 이러한 의향이 있어야 한다. 자기 이상을 끝없이 돌이켜 보거나 자기 이상을 실현할 수 있을지 여부에 계속 신경을 쓰고 그것만 궁리해서는 안 된다. 너는 이전에 가지고 있던 이상과 바람을 철저하게 끊어 내고,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자 평범한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 평범한 피조물 중의 하나가 된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그것은 좋은 일이다. 네가 육에 속하는 자기 이상과 바람을 포기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네가 아무런 신분도 지위도 가치도 없는 평범한 피조물이 되기로 했다는 것은 그때부터 네게 하나님의 권세 아래, 창조주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 완전히 복종하고, 하나님의 지배와 주재에 따를 의향 및 의지가 생겼다는 의미다. 순종할 의향을 갖고, 개인의 이상과 바람을 포기하고 버리고자 하고, 하나님을 네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이 네 운명을 주재하게 하고,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되고, 이러한 마음가짐과 태도로 네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 네가 지녀야 할 인생관이다. 맞지 않느냐? 이것이 진리가 아니냐? (맞습니다.) 모든 생활 목표와 자기 인생의 방향은 무엇을 중심으로 해야 하느냐?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을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이는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그리고 무엇이 있느냐? (평범한 피조물이 되기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또 무엇이 있느냐?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받는 것입니다.) 이 또한 개중 하나다. 또 무엇이 있느냐? (하나님 말씀을 중심에 두고 진리에 공을 들이는 것입니다.) 이는 더 구체적이다. 그렇지 않으냐? 모든 생활 목표와 인생의 방향은 하나님 말씀을 중심으로 해야 하며 진리에 공을 많이 들여야 한다. 과거에 네가 막연한 이상을 추구하는 데에 들이던 열정으로 하나님 말씀을 읽고 진리를 묵상해 네게 진리 방면에서 발전이 있는지 보아라. 정말로 네게 진리 방면에 발전이 있으면 네게서 그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즉, 사람의 생각과 관점이나 원칙에 관련된 갖가지 사람과 일, 사물이 임했을 때 속수무책이 되거나, 어찌할 바를 모르거나, 곤혹스러워지거나, 막막해지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 말씀이 이끌어 주고, 마음이 차분하고 편안하며,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길인지 알 수 있다. 이래야 올바른 인생길을 걷는 것이다. 생명 성장이 아주 느린 사람들이 많다.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항상 자기 이상과 명예, 지위, 자기가 상상하는 인생 목표를 추구하고, 거기다가 복을 받으려 하고, 육적인 욕망을 채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착실하게 제대로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고, 참된 생명 진입이 없으며, 늘 참된 체험 간증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래서 본분을 얼마나 오래 이행했든 진리 및 생명 진입 방면에서 발전이 거의 없고 수확도 미미하다. 만약 네가 정말로 몸과 마음을 본분 이행에 다 바치고, 모든 에너지를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쓰고, 진리에 공을 들였다면 너희 분량이 지금 같지는 않았을 것이고, 지금 같은 내적 상태와 양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이 평소에 일부 잡무, 업무, 수중의 일거리에만 집중하는데, 이런 일을 하는 본질은 사실 자기 바람을 이루고 욕망을 채우는 한편 자기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이란 무엇이냐? 일하면서 항상 자아를 찾고, 일정한 성적과 수확을 거두고 남의 인정을 받는 동시에 자기 꿈과 추구 목표를 실현해 자기 가치를 드러내고, 그런 다음 뿌듯해하려는 것이다. 사실상 이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공허함을 채우는 것이고, 일을 하는 것으로써 자기 생활을 알차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오랜 세월 바삐 보냈든 얼마나 많은 일을 했든 진리와는 무관하다. 그 사람은 여전히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진리 추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본업과 관련된 원칙 방면에서도 진입과 인식이 전혀 없다. 그래서 삶이 피곤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 항상 책망받는 거지? 우리가 얼마나 공들였는데, 얼마나 고생했는데,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는데, 왜 책망받는 거야?’ 네가 원칙을 모르기 때문이다. 항상 원칙을 알지도 파악하지도 못하고 원칙 방면에 공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너는 진리에, 하나님 말씀에 공을 들이지 않고 그저 단순하게 규례만 지키며 네 상상대로 일을 처리했다. 너는 늘 네 이상의 세계에 살고 네 관념의 세계에 산다. 네가 하는 일은 모두 진리와 무관하다. 너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네 사업을 한다. 그래서 너는 항상 하나님 말씀의 원칙을 알지 못한다. 결국, 어떤 사람들은 힘만 쓰는 것으로 규정되는데, 어떤 사람들은 억울해한다. 억울한 이유가 무엇이냐? 자기가 고생하며 대가를 치르는 것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것은 약간의 고생에 불과할 뿐 진리를 실행하는 것도,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것도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 그저 힘쓰고 일하는 것이다. 그저 힘쓰고 일하는 것이 합격한 본분 이행이냐? 그러면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냐? (아닙니다.) 둘 사이에는 거리와 차이가 있다.

억압감 방면의 부정적 정서를 내려놓는 것에 관해서는 오늘 우선 여기까지 교제하겠다. 일부 사람들이 자기 이상과 바람을 실현하지 못해 억압을 느끼는 문제에 대해 이해했느냐? (이해했습니다.) 무엇을 이해했느냐? 한번 정리해 보자. 우선 이상이 무엇인지부터 이야기하겠다. 여기서 분석하는 이상은 부정적인 것이지 정당하거나 긍정적인 것이 아니다. 이상이란 무엇이냐? ‘이상’을 가장 적절한 말로 정의해 보아라. (정상 인성의 양심과 이성에서 벗어나 사람이 스스로 상상해 낸, 실제에 부합하지 않는 공상이며 비현실적인 것입니다.) 네가 말한 것은 이상주의자의 이상이다. 보편적으로 이상이란 무엇을 가리키느냐? 정의할 수 있겠느냐? 정의하기가 쉽지 않으냐? 사람이 자기 지위, 명예, 장래를 위해 수립한 추구 목표가 무엇이냐? (자기 지위, 명예, 장래를 위해 수립한 추구 목표가 바로 이상입니다.) 이 정의가 맞느냐? (맞습니다.) 사람이 자기 지위, 명예, 장래, 그리고 이익을 위해 수립한 추구 목표가 바로 이상이고 바람이다. 이것이 이방인들이 말하는 ‘이상’의 광범위한 정의가 아니냐? 우리는 그것의 본질에 근거해 정의했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사람의 이상은 어느 방면에 속하든, 위대하든, 미천하든, 아니면 평범하든, 전부 사람이 한 방면의 이익을 위해 수립한 추구 목표다. 이 목표가 바로 사람의 이상 혹은 바람이다. 이것이 우리가 앞에서 예시로 삼아 교제하고 분석했던 그 사람들의 이상 아니겠느냐? 사람이 자기 지위, 명예, 장래, 이익 등등을 위해 수립한 추구 목표가 바로 이상과 바람이다. 이상과 바람을 추구해도 그것이 충족되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에서 수시로 억압을 느낀다. 그들이 억압을 느끼는 것을 보며 생각해 보아라. 너도 그러한 내적 상태를 가지고 그러한 양상으로 살고 있지는 않느냐? 수시로 그러한 양상과 정서가 생겨나지는 않느냐? 만약 그러한 정서가 있다면 무엇 때문이냐? 지위, 명예, 장래, 그리고 네 이익 때문이다. 진리와 긍정적인 것이 자꾸만 네가 수립한 이상과 네 추구 목표가 실현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저지해서 너는 답답하고 울적하다. 그로 인해 억압의 정서 속에서 살고 있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이상 문제다. 사람의 이상을 분석한 다음에는 무엇을 교제했느냐? 교회 혹은 하나님 집은 사람이 이상을 실현하는 곳이 아니라는 점을 교제했다. 그런 다음에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져야 할 올바른 추구 목표와 어떻게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될지, 어떻게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할지를 교제했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교제한 주요 목적은 사람의 이상과 본분을 어떻게 선택하고 대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것이었다. 이런 정당하지 않은 사람의 이상은 마땅히 포기해야 하는 것이며, 반대로 사람의 본분은 마땅히 이번 생에 그것을 위해 일생을 내놓거나 바쳐야 하는 것이다. 피조물의 본분은 긍정적인 것인 반면 사람의 이상은 긍정적이거나 사람이 가져야 할 것이 아니며, 포기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가져야 하고 추구해야 할 것은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되어 피조물이 응당 이행해야 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상과 본분이 충돌할 때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자기 이상을 내려놓고 포기해야 합니다.) 자기 이상을 포기하고 본분을 지켜야 한다. 때를 막론하고, 사람이 몇 살까지 살든, 사람이 응당 해야 하고 추구해야 할 것들의 중심에는 어떻게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여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 진리에 순종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 실행해야 삶에 가치와 의의가 있게 된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교제하고 다음 시간에 보도록 하자!

2022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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