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1) 제 3 부

사회의 각종 세력을 멀리하는 일과 관련해서, 사람이 생활하면서 관련을 맺는 각종 세력 외에도 사회에 항상 나타나는 각종 세력이 있는데, 이들 역시 멀리해야 한다. 생활에서든 일에서든 그들과는 어떤 관계도 맺지 말고, 접촉하지 않도록 해라. 자신의 생활과 일은 스스로 처리하고 동시에 겉으로 보이는 각종 세력의 강대함에 겁먹지 말아야 한다. 속으로 저들을 거절하고 멀리하는 동시에 그들과의 관계를 지혜롭게 처리하고 그들과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이것이 네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너는 단지 밥그릇, 생계를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네 목적은 단순하다. 즉, 먹는 것과 입는 것만 해결하기 위한 것이지 그들과 어떤 결과를 두고 다투려는 것이 아닌 것이다. 설령 그들이 너에게 뭐라고 듣기 거북한 소리를 하더라도, 설령 종교와 신앙을 박해하는 나라, 기독교를 박해하는 나라에서 일부 사람들이 네 신앙을 비꼬고 비아냥거리고 심지어 유언비어를 날조하더라도 너는 참아야 한다. 자신을 보호하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고, 늘 기도하고 자주 하나님 앞에 오도록 해야 한다. 그들 세력의 겉으로 보이는 거대함이나 흉악함에 겁먹지 마라. 마음속으로 그들을 분별하는 것은 물론이고, 또 멀리해야 한다. 늘 입을 엄히 단속하고 행동에 신중을 기하고, 그들과 평화롭게 지내고 그들을 지혜롭게 대해야 한다. 이것이 마땅히 갖춰야 할 실행 원칙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당연히 속으로는 그들을 멀리해도 좋고, 거절해도 좋고, 심지어 멸시해도 좋지만 겉으로는 지혜를 발휘해서 그들이 뭔가 낌새를 느끼지도 알아차리지도 못하게 해야 한다. 너는 어디까지나 생계유지를 위해 일하면서 그들 사이에서 기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그들을 멀리해야 한다. 그들이 어떤 부당한 행위에 동참할 때는 그들의 죄에 일조하지 않도록 이를 멀리하고 피해야 하고, 동시에 집중 공격을 당하거나 남에게 모해받는 궁지에 몰리지 않도록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이것이 쉬운 일이냐, 어려운 일이냐? 젊고 미숙한 사람들이 이런 복잡한 사회 환경에 막 발을 들였을 때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 혹은 자질이 부족하고 적응력이 떨어져서 인간관계에 서툰 사람들도 역시 좀 어려울 수 있다. 그렇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네가 개인의 능력을 바탕으로 네가 맡은 본업만 잘하면 된다는 점이다. 누구의 눈 밖에도 나지 않도록 해라. 신앙도 전혀 없고, 도덕적 마지노선도 없고, 양심도 이성도 전혀 없는 이런 사람들과 진지하게 따지지 마라. 말 한 마디, 일 하나 때문에 그들과 크게 도리를 얘기하지 마라. 그들에게 하나님 믿는 일, 처신, 혹은 양심, 인성 등의 도리를 얘기하지 마라. 그럴 필요가 없다. 좋은 얘기는 지인에게 해라. 짐승만도 못한 그런 인간들과는 사람의 말을 하지 말고, 진리에 관계된 얘기는 더더욱 하지 마라. 그건 어리석은 짓이다. 만약 그들이 거대한 세력이라면, 그들을 대할 때 속으로는 멀리하고 거절하면서도 겉으로는 그들과 우호적이고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 그래서 먹을 것과 입을 것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성과만 거두면 된다. 이렇게 온갖 복잡한 세력이 얽히고설킨 생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은 네가 어떤 일에 참여함으로써 스스로를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좋은 사람, 정직한 사람이라고 증명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네가 비둘기같이 순결하고 뱀같이 지혜롭게 시시각각 하나님 앞에 나아오고, 너를 보호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서 평온한 마음으로 기도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기를 원한다. 구체적으로 이루려는 성과는 무엇이냐? 악인에게 모해당하지 않고, 온갖 복잡한 세력과 얽히지 않고, 그들에게 동네북 취급을 당하거나 그들의 희생양, 속죄양이 되지 않아야 하고, 그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일도 없어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알면 그들은 너를 비웃을 것이다. “보세요. 저 사람 종교를 믿는 사람이에요.” “그 종교 믿는 사람 있잖아요. 자기 하나님은 이러저러하대요. 또 자기 하나님한테 기도하네요. 자기가 번 돈은 다 하나님이 준 거라고 합니다.” 그러니 괜한 꼬투리를 잡히지 않도록 그들에게 하나님 믿는 일에 관한 얘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과 교제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일에는 전혀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다. 그들이 너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네가 좋다고, 착한 사람이라고 해 주는 것도 필요 없다. 너는 그냥 공적인 일은 공정하게 처리하면 된다. 넌 그저 보통 직원이고 이 업계의 평범한 일원일 뿐이다. 하나님은 네가 그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도 원치 않고, 하나님의 진리를 그들에게 교제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네가 그들을 멀리하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다. 네가 그들의 늪에 빠지지 않고, 어떤 시험에도 빠지지 않고, 더욱이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각종 시비에 휘말리지 않고, 그들이 만든 각종 혼란, 음모, 곤경, 혹은 각종 복잡한 국면에 말려들어가지 않기를 원한다. 너는 언제나 네가 그 직업을 수행하는 목적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승진이나 벼락출세를 위한 것도 아니고, 부자가 되기 위한 것도, 사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무슨 일을 해서 보스나 상사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 목적은 본인의 생계와 밥그릇을 확보하고, 이 세상과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고, 그런 다음 시간과 여건을 마련해 본분을 이행하고, 진리를 추구해서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직장에서도 승진이나 연수, 유학 기회를 잡으려 애쓸 필요도 없고, 상사 눈에 들거나 더 직급 높은 상사 눈에 들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다. 그럴 필요가 없다. 만약 네가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며 생존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너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자기 직업 범위 내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만 있으면 된다. 하나님은 많은 걸 요구하지 않는다. 네가 지켜야 할 원칙은 그저 사회의 각종 세력을 멀리하는 것이다. 단순한 환경,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기계에 갈아 넣으며 스스로를 망치지 마라. 그것은 미련한 짓이다. 명백히 가장 간단한 방식으로 일하면 얼마든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데도 언제나 옳고 그름을 따지려 하고, 자신의 직업이나 생계와 무관한 일에 발을 담그거나 참여하려 한다면 결국 스스로 온갖 복잡한 사람과 일, 사물에 빠져들고, 각종 사회 세력 사이의 복잡한 갈등과 다툼 속에 빠져들 것이다. 그럼 너는 하나님이 네게 마련해 준 환경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 그건 자업자득이고 멸망을 자초하는 것이다. 너는 늘 일이 너무 바쁘고 피곤해서 예배드리고 본분을 이행할 시간이 없다고만 한다. 이유야 어떻든 네가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얼마 못 가 하나님 집에서 도태되고, 구원받을 희망도 사라질 것이다. 이것은 네가 걸어가는 길이자 네가 선택한 길이다. 마지막에 네가 거두게 되는 결과는 바로 이런 것이다. 네가 처한 환경에서 하나님이 교제한 원칙대로 실행해서 자신을 잘 보호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다면, 설령 업무와 본분 이행을 병행하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구원받을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제 조건은 사회의 각종 세력을 멀리해서 평온한 마음을 갖는 동시에 자기 능력 범위 내에서, 그리고 자신의 유한한 조건하에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고 진리 추구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네 가정 환경이 얼마나 힘들고 개인적인 여건이 얼마나 제한적이든 결국에는 하나님의 보호,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 아래 너는 한발, 한발 진리 추구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면 네가 구원받을 희망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 어쩌면 너는 네 개인적인 추구, 개인적인 노력과 치른 대가 때문에 결국 구원에 이를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다. 그에게는 이런 생활이 너무나 지루하고, 세상에서 고립되어 사는 것이 너무 고독하고 외롭게 느껴진다. 각종 시비에 관여하지 않으면 할 일이 없는 것 같아 자신의 가치를 못 찾겠고 자신의 가치와 자신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요구하는 원칙을 포기하고 고독과 침묵을 깨뜨리는 쪽을 택한다. 그리고 사회의 각종 세력에 휩쓸려 그들과 사소한 것을 두고 지나치게 따지고, 뒤엉켜 싸우고, 함께 소란을 피우고, 온갖 시비에 말려든다. 이런 삶에서 커다란 보람과 가치, 행복을 느끼며, 더 이상 고독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이 선택한 길은 무엇이냐? 바로 본분을 이행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길이다. 그러면 끝이다. 이 길로 들어섰다면 구원받을 희망이 없는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냐? 어떤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듣고 괜찮다고 느끼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해 보니 별로 어렵지도 않았다. 그런데 한동안 실행한 다음 이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사는 건 너무 피곤한 거 아닌가? 남들에게 이상한 사람 취급이나 받고, 친구도 같이 다닐 사람도 없으니까 너무 외롭고 쓸쓸해. 사는 것도 너무 재미없고, 별로 좋지 않고 행복하지도 않은 것 같아.’ 그러면서 원래 생활로 돌아가 버리는데 이런 사람은 도태되고, 구원받을 희망이 없다. 고독을 견디고, 하나님 요구대로 사느라 그룹 내에서 조롱당하고 따돌림당하는 고통을 견디는 대신, 각종 세력의 경쟁 속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고, 각종 세력에 휩쓸려 그들과 얽혀 소란을 피우고, 그들과 다투는 것을 좋아한다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택한 대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설령 그가 이런 설교를 듣고 괜찮게 여긴다 해도 사회의 각종 세력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사회의 각종 세력에 휩쓸리는 쪽을 택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이 이런 사람은 결코 구원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네가 만약 사회의 각종 세력을 멀리하는 길을 택하고, 생계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한다면, 적어도 너는 그 선택에 기반하여 구원받을 희망이 있고, 기본 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구원의 희망은 존재하는 것이다.

예전에 교회에서 어떤 한 사람이 어디서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백인 한 명을 알게 되었는데, 그 아버지가 의원이었다. 사실 의원이 무슨 대단한 관직도 아니지만, 그 녀석은 해외에서 의원 아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대단한 영광이라고 생각하며 본인도 지위가 올라간 기분이었다. 나중에 그 의원 아들을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먼저 소개를 했다. “이 사람은 의원 아들이에요.” 내가 물었다. “의원 아들이라고? 아버지가 어떤 의원이지? 너한테 뭘 해 줄 수 있는데?” “아버지가 의원이라니까요!” 내가 말했다. “저 사람 아버지가 의원인 게 너와 무슨 상관이냐? 네가 의원인 것도 아니면서 네가 왜 나대느냐?” 그 녀석은 그렇게 우쭐했다. 의원 아들과 사귀었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목에 힘을 주며 길 가다 아는 사람을 만나도 본체만체했다. 상대가 물었다. “왜 아는 체도 안 하는 거죠?” “지금 의원 아들이랑 같이 가고 있잖아요!” 얼마나 가벼운 녀석이냐! 이런 자는 불신파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이런 사람은 결국 어떻게 되느냐? (도태됩니다.) 교회에서 제명되어야 한다. 그런 자는 불신파이자 기회주의자이다. 그는 지위가 높고 세력이 있는 사람만 보면 빌붙는 인간으로, 하나님 집에 세력이 있는 걸 보고 하나님 집에 빌붙었다. 그러나 결국 얼마간 지낸 후 여기서는 돈을 벌 방법이 없다고 판단하고 배달 일을 찾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일이 위신이 서는 일도 아닌 데다가 나중에는 의원 아들과 사귀면서 자기도 지위가 생겼다는 생각에 배달 일도 그만두었다. 참으로 어리석지 않으냐? 교회에는 이런 사람들이 일부 있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위와 권력이 있는 사람을 알게 되면 그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또 자기 가치도 올라가 남들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느낀다. 어떤 사람은 작은 감투를 쓰고 권력이 조금 생기니까 교회에서 자기는 남다른 사람이고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이 다 불신파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럴 실력이 전혀 안 되면서도 늘 허풍을 떤다. “내가 말이야, 대통령이랑 아는 사이야!” 혹은 “대통령 비서 둘째 이모 아들 친구가 나랑 아는 사이야!” 보아라. 몇 다리를 건너서 아는 사이를 굳이 입에 올리다니 어쩜 그리도 뻔뻔하냐? 그렇게 몇 다리 건너뛰다 보면 남들은 그가 도대체 누구에 대해 말하는지도 모르고 별로 듣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남들은 크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 자신만 그 일을 가장 크고 중요한 일, 가장 영광스러운 일로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입만 열면 자기가 무슨 부장, 무슨 국장이랑 아는 사이고, 무슨 고위 관료랑 아는 사이라고 떠벌린다. 심지어 이런 사람도 있다. “내가 경찰, 조폭 둘 다 알고 지내지. 양쪽 길을 걷는 것이 평지를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이런 사람도 있다. “현장 처제가 나랑 아는 사이야.” 또 이런 사람도 있다. “내가 아는 사람이 시장 어머니네 교우야.” 이런 걸 밑천으로 여기며 거드름을 피우는 것이다. 그 사람들을 아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 네가 일을 성사시키는 데 도움이 되느냐? 네가 시장이나 국장, 성장, 심지어 성장 어머니, 아버지라 한들 그런 네 신분이 교회에서 소용이 있느냐? (소용없습니다.) 시장이나 성장은 인류의 일원이 아니냐? 그들이 하나님보다 위대할 수 있느냐? 세력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런 불신파들이 역겹지 않으냐? (역겹습니다.) 자기가 무슨 경찰국장을 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이런 사람도 있다. “내가 왕년에 인민경찰 출신에 파출소 소장도 했었지.” “내가 전에 주민센터 주임이었잖아. 팔에 붉은 완장도 차고 다녔지.” 그들이 이른바 ‘세력’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느냐? 일부 불신파,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이름만 걸어 놓고 믿는 자들, 어리숙한 자들은 그 말이 진짜인지 거짓말인지도 몰라서 곧이곧대로 믿고 그들을 우러러볼 수 있다. 하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느냐? 그런 자를 어떻게 평가하느냐? 한눈에 그런 자가 불신파라는 걸 눈치챈다. 세상의 각종 세력, 세상에 속하는 일만 얘기하고 하나님 집에 와서도 그런 걸 자랑하고 있으니 말이다. 네가 공직자나 유명인의 사돈의 팔촌과 아는 사이라 해도, 설령 네가 공직자, 유명인이라 해도 하나님 집에서는 한 푼 값어치가 없고, 너의 그 직함과 지위도 전혀 값어치가 없는데 뭘 그렇게 자랑하느냐? 너에게 진리가 있느냐? 원칙을 갖추고 본분을 이행하느냐? 아무것도 아닌데도 자랑할 염치가 남았느냐! 부끄러움을 모르는 게 아니냐? 역겹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어느 정도로 역겨우냐? 경찰, 조폭을 다 알고 지낸다고 허풍을 떨다니 그런 사람은 바보 아니냐? 얼간이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나중에 골치 아픈 일이 생길까 걱정도 하지 않는다. 경찰, 조폭 둘 다 알고 지낸다니 완전 양아치가 아니냐? 양아치, 늙은 여우는 하나님 집에서 전혀 무가치한 존재요, 불신파에 해당하는 인간이니 마땅히 출교시켜야 한다! 그는 이런 걸 밑천이라고 자랑하는데, 이건 좀 모자란 게 아니냐? 그게 무슨 떳떳한 일이냐? 자랑까지 하다니! 어떤 자는 손목에 커다란 금팔찌를 두르고 술에 취해서 거드름을 피운다. “우리 조상이 모금교위(摸金校尉) 출신이라 대대로 기술이 전해지고 있지. 이 팔찌 보이지? 몇 년 전 한밤중에 어떤 큰 무덤을 뒤져서 빼낸 거라고. 어때? 대단하지?” 이 소리를 듣고 누군가 신고하는 바람에 그는 잡혀가게 되었다. 그런데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말한다. “지금 차고 있는 그 금팔찌가 이 시대 거요? 그건 문화재라고요!” 멍청하게 그는 스스로를 팔아넘겼다. 사실무근인 일을 함부로 떠벌리고 다녀서는 안 된다. 자칫하면 경찰을 불러들이고 스스로에게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허풍은 스스로에게 쉽게 화를 불러일으키고 스스로 무덤을 파고, 결국에는 멸망을 자초하게 되는데 당해도 싸다. 말을 할 때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건 모자란 게 아니냐? (그렇습니다.) 한 끼에 왕만두 20개를 먹는다고 허풍을 떠는 건 그나마 괜찮다. 무슨 원칙을 어기는 것이 아니다. 기껏해야 남들에게 바보 같다고 무시당할 수는 있겠지만 범법 행위는 아니다. 사회의 각종 세력을 멀리하기라는 이 원칙의 기본은 사람이 사회의 어떤 곳, 어떤 그룹 안에서 생활하든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은혜시대에 사람에게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라고 알려 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자신을 잘 보호하려면 생계유지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니 사회의 각종 세력을 이용해서 이 사회에 발붙이고 그들의 일원이 되어 그들에게 인정받고 받아들여지려고 시도하지 마라. 그건 다 어리석은 발상이고 썩어 빠진 사상이다. 사람의 관념은 마땅히 바로잡아야 한다. 사람이 어떤 사회 환경이나 어떤 그룹에서 생존하든, 하나님의 도를 준행한다면 사회와 인류로부터 버림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네게 숨결을 주는 한 살아갈 수 있다. 너는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살면서 자신의 안전과 생계를 보장받고, 자신의 미래와 모든 걸 보장받기 위해 각종 세력에 의지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에 의지하는 것이다. 이런 믿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생존 수단은 바로 직업 한 가지를 택해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지 어떤 세력에 의지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직업에 의지해 생계를 유지한다는 이 원칙은, 사람이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인도와 예정 아래에서 물질, 금전 등을 비롯하여 하나님이 베풀어 주는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이지 사회의 각종 세력이 베풀고 분배해 주는 것으로 네 개인의 생계를 해결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다. 네가 살아가며 매일같이 의지하는 물질적인 것이나 금전은 매일 호흡하는 숨결처럼 모두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고, 하나님이 베풀어 준 것이며, 하나님이 베풀어 준 것은 아무도 앗아 갈 수 없다. 물질적인 것, 자기 몸 이외의 그 어떤 물건도 네 숨결과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에 의해 베풀어지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어느 누구도 앗아 갈 수 없다. 하나님이 네게 준 것은 어느 누구도 앗아 갈 수 없다. 이 사실은 우리가 욥의 체험에서 볼 수 있으며, 너는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한다. 네게 참된 믿음이 생긴다면, 너는 사회의 각종 세력을 멀리하기라는 원칙을 지킬 기본적인 근거와 동력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하나님 앞에서 몸과 마음을 평온하게 가질 수 있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네 몸과 마음, 영을 바칠 수 있고, 네가 이행해야 할 본분을 이행함으로써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이라는 아름다운 열매를 거둘 수 있다. 너는 이런 인식이 있어야 하고, 이 진리들을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사회의 각종 세력을 멀리하는 것’이라는 말은 하기는 쉽지만, 일이 닥쳤을 때는 너는 스스로 각종 원칙과 여러 가지 현실 상황을 근거로 판단을 해야 한다. 어쨌든, 최종적으로 도달하려는 목표는 그들을 멀리하고 그들로부터 구분되라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사회의 각종 세력을 멀리하는 이런 방식과 실행의 길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는 한편, 하나님 앞에 나아와 진리 추구의 길을 걷고, 최종적으로 구원의 희망을 얻고 네 바람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니 최종의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사회의 각종 세력을 멀리하기라는 이 원칙을 지켜야 한다. 이것은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자, 구원에 이르는 중요한 길 중 하나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사회의 각종 세력을 멀리하기라는 원칙은 이제 잘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 방면의 원칙에서 잘 모르는 부분이 있느냐? 일부 특수한 상황의 경우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겠느냐? 어떤 세력에 가입했는데, 그것이 형식적이거나 그저 직업적인 필요에 불과한 것이라면 이것은 사회의 각종 세력을 멀리하기라는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냐? 만약 직업적인 필요나 형식적인 것이라면 이 경우는 괜찮다. 우리가 말하는 세력은 이와는 관계가 없고, 형식적인 조직, 단체와도 관계가 없다. 여기에 관계된 것은 세력이다. 세력은 무엇을 가리키느냐? 권세, 집단적 역량, 또 이 사회에 횡행하는 힘, 일을 처리하는 힘을 말한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 실행 원칙을 모두 깨달았으면 이제 다음 원칙을 교제해 보도록 하자.

넷째, 정치를 멀리하는 것이다. 정치는 민감한 주제다. 30년 전에는 특정 지도자나 정책, 정치 시사 등에 관한 얘기를 입에 올리면, 설령 그것이 교회에서 한 얘기라고 해도 많은 사람에게 지탄을 받곤 했다. 정치에 관련된 얘기만 했다 하면 물컵을 들고 나가 버리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 사람은 그런 화제를 감히 입에 올리지도 못한 채 이렇게 말했다. “정치를 논하는 건 당과 국가에 반하는 행위요. 당신은 반혁명 분자이니 잡혀가게 될 거요. 형제자매만 아니었다면 제가 신고했을 거요.” 그 시대 사람들은 정치에 무척 민감했다. 지금도 그러하냐? 교회에서 정치를 논하고 들추거나 큰 붉은 용, 사탄을 폭로하거나 정치적으로 보이는 내용을 언급할 경우, 대부분 이런 주제에 대해 아직도 그런 태도를 보이느냐? 지금은 조금 달라졌느냐? (그렇습니다.) 과거에 예배 때 어떤 악마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크리스천을 박해하는 등의 일에 관해 얘기했더니 어떤 사람이 목에 뭐가 걸린 듯 헛기침을 하고는 나가서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잠시 후 교제를 들어 보더니 “아, 이제 반혁명적인 얘기는 안 하나 보군.” 하면서 다시 들어왔다. 그런데 네가 계속 교제를 이어 나가자 다시 헛기침을 하며 나가 버렸다. 나는 이자가 왜 계속 기침만 해 댔을까 생각했다. 사탄을 분별하고 사탄의 본질과 추악한 민낯을 폭로하는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정치 얘기냐? (아닙니다.) 일부 어리석은 자들, 즉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소위 ‘영적인 자들’은 이런 주제에 큰 반감을 보인다. 그들은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진정한 정치 참여인지, 공산당이 말하는 반혁명이란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분별하지 못한다. 그는 무지해서 공산당에게 세뇌된 채 자기도 반혁명 분자가 될까 봐 큰 붉은 용을 폭로하는 주제를 감히 말하거나 언급하지 못했다. 큰 붉은 용을 폭로하는 것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냐? 큰 붉은 용을 저버리는 것이 반혁명적이냐? (아닙니다.) 지금은 아니라고 하지만 중국에 있어도 감히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당과 국가에 반하는 정치범이냐? (아닙니다.) 아니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정치범이란 무엇이냐? 네가 정치에 참여했느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정치에 참여한 것도 아닌데 어쩌다 정치범이 된 것이냐? (큰 붉은 용이 덮어씌운 것입니다.) 네가 도둑질에 가담했다면 절도범일 것이고, 살인에 가담했다면 살인범일 것이며, 강도에 가담했다면 강도범일 것이다. 이런 죄명들은 무엇을 기초로 성립되느냐? 해당 범행에 가담해서 죄명이 성립되면 그 범죄 행위의 가해자가 된다. 하지만 범행에 가담하지 않았다면 그 범죄는 너와 관계가 없고, 해당 죄명 역시 너와는 무관하다. 사탄과 당을 추종하지 않고, 공산당에 반기를 들고, 큰 붉은 용을 반대하고 증오하며,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정치에 참여한 것이냐? (아닙니다.) 그렇다면 너를 반혁명 분자 혹은 정치범으로 정죄할 경우, 그 죄명이 성립되겠느냐? (성립되지 않습니다.) 성립되지 않는다. 그건 황당한 일이다. 직업이 없는 농부가 농사지어서 수확한 작물을 시장에 내다 팔다가 빨간 완장을 찬 사람에게 걸렸다고 해 보자. “거기, 영업 허가증 있소? 위생증은?” “제가 허가증이 어디 있겠습니까? 직업도 없고 취직도 못 한 사람한테 무슨 허가증을 요구합니까?” 직장도 직업도 없는 농부가 물건을 팔았다고 허가증을 요구하다니 황당한 일 아니냐? 큰 붉은 용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너를 가리켜 정치에 참여했다고 하는데, 네가 국가 헌법 조항 제정에 참여한 적이 있느냐? 국가의 어떤 정치 운동을 획책한 적이 있느냐? 네가 어느 관청의 공무원이라도 되느냐? 어느 관청 공무원들의 내부 투쟁과 내홍에 낀 적이 있느냐? 국가 차원의 대회나 회의에 참여한 적이 있느냐? (모두 없습니다.) 정치 참여는 고사하고 알 권리조차 없는 네가 급기야 정치범으로 정죄되다니 이건 근거 없는 죄명 아니겠느냐? 황당한 나라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바보 같은 이들은 아직도 이렇게 생각한다. ‘이를 어쩌나? 정치범, 반혁명 분자로 정죄되다니,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정말 큰 수모를 당하게 되는구나!’ 바보 같지 않으냐? 심지어 하나님을 믿었다는 이유로 반혁명 분자, 정치범으로 정죄되어 15년, 20년 형을 선고받은 이들 중 일부는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뒤 그 일을 치욕스럽게 생각한다. 동창이나 친구들, 가족들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뒤에서 손가락질을 받을 때마다 자신이 부끄러운 짓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어리석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 시대가 너를 버리고 큰 붉은 용이 너를 박해하는데, 그들이 모두 정의로우냐? 모든 인류가 일어나 너를 박해한다면 진리가 더 이상 진리가 아닌 것이 되느냐? 진리는 영원히 진리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일어나 반대한다고 해도 진리의 본질은 변하지 않고, 사탄의 사악한 본질 역시 변하지 않는다. 설령 아무도 인식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진리는 진리이며, 이는 영원히 변치 않는 사실이다. 모든 인류가 일어나 하나님을 반대하고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인류는 사악한 인류다. 그 수가 많고 세력이 크다는 이유로 사탄의 사악한 세력이 정의로운 것으로 될 수는 없다. 거짓말을 만 번 반복하면 진리가 된다는 말은 사탄의 궤변이자 사탄의 논리일 뿐, 진리가 아니다. 하나님을 믿어서 온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큰 붉은 용에게 박해와 모욕을 당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냐? (아닙니다.) 그렇지 않다. 네가 의를 위해 박해받는다면, 그건 이 세상이 정말 사악하다는 증거이며, 온 세상이 악한 자의 손 아래 놓여 있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네가 의를 위해 박해받을 때, 아무리 정당한 길을 걷고 아무리 정의로운 일을 해도 일어나 칭찬하는 이 하나 없는데, 세상 사람들이 저지르는 부끄러운 짓들은 포장과 조작만 거치면 긍정적 사물로 변모해 세상에 공개된다. 그러니 그들이야말로 사악한 자들이고, 그들의 행위는 모두 더러운 짓거리다.

정치를 멀리하는 일에 대해 계속 교제해 보자. 정치란 무엇이냐? 정치가 무엇인지 알아야 어떻게 정치를 멀리할 것인지도 알 수 있다. 정치란 무엇이냐? 가장 기본적인 한 가지는 관직에 오르고 벼슬길을 걷기 좋아하는 것으로, 이는 정치 영역의 한 가지 부분이다. 정치란 곧 관직에 오르고 벼슬길을 걷는 것이다. 관직의 고하를 막론하고 어떤 기관의 주임이나 과장부터 당 지부 서기, 당위 서기, 나아가 처장, 국장, 부장 등 여러 기관장에 이르기까지, 이런 자리에 오르는 것이 곧 정치다. 정치란 무엇을 가리키느냐?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세력, 권세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사회적인 권세의 상징이다. 이것이 정치의 한 부분이다. 정치에 해당하는 것에는 또 무엇이 있느냐? (하나님, 국가 정권을 빼앗거나 세우거나 공고히 하기 위한 일종의 투쟁도 정치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인사 투쟁, 권력 투쟁도 모두 정치다. 또 어떤 것이 있느냐? 투쟁 속 음모, 공공연한 모략, 수법, 그리고 정치 및 권세와 관계된 각종 선거, 운동, 세몰이도 모두 정치에 해당된다. 이것은 우리가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정치다. 조직이나 당을 가까이하고 진보를 요구하는 것은 작은 인물의 정치 아니겠느냐? 사람들은 이를 두고 ‘작은 인물, 큰 그림’이라고 한다. 비록 지위는 미천하지만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조직이나 당을 가까이하며 진보를 요구한다. 이를 위해 우선은 청년단에 가입한 후 다시 당에 가입하는 식으로 점차 당과 가까워진 뒤, 당의 명령과 지휘, 방침과 정책, 방향을 따른다. 이렇게 당에서 지시한 방향대로 엄격하게 실천함으로써 한 당원의 당성을 충분히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당을 위해 말하거나 일하는 등 당의 이익과 통치, 지위를 수호하고, 인민들 마음속 당의 이미지를 지키는 등 당의 모든 것을 지킨다. 이런 것이 다 정치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조직을 지킨다고 할 때, 그 조직은 곧 당을 말한다. 어느 당파, 어느 당에서 만든 조직이든 참여하는 한, 너는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너희는 정치에 참여한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렇다면 안심해도 된다. 너는 정치범이 아니고, 스스로를 정치범이라고 말할 자격도 없다. 정치범이라면 최소한 해외로 나가 인권 기구나 단체를 결성하고 인권 활동을 하면서 현 정부의 정책과 통치, 정부가 하는 여러 가지 일에 반기를 드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 또한, 해당 조직은 규정, 장정, 헌법을 제정하고 조직의 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여러 가지 조항도 갖추어야 한다. 조직 체계와 규율을 갖추고, 지도자 밑에 실무를 담당하는 인원들이 있어 위에서 아래까지 완전한 일련의 조직 체계를 이루어야 비로소 정치 단체라고 칭할 수 있고, 이런 정치 단체에서 일을 해야 정치에 참여했다고 할 수 있다. 너희 중 정치에 참여한 사람이 있느냐? 참여하지 않았다면,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없느냐? 어떤 정당에 가입해서 최소한 의원이나 고문 자리를 맡을 계획을 가진 사람은 없느냐? 그럴 계획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정치에 참여했다는 뜻이 된다. 아직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도 정치에 참여하려는 의사가 있는 것이다. 그럴 생각이 없다면 아주 바람직하다. 국민이 투표에 참여하는 것도 정치 참여로 볼 수 있겠느냐? 국민에게 투표권이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네가 어느 후보자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면, 이것을 정치 참여라고 볼 수 있느냐? (아닙니다.) 그건 정치 참여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 나라의 정책과 제도가 그렇다면 국민은 투표할 권리를 가지며, 이는 정치 참여에 해당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바람에 따라 특정 인물을 선택했지만 그들의 정권 투쟁에 참여한 것이 아니므로 너는 어떠한 정치 활동과도 관계가 없으며, 단지 그 나라의 국민으로서 한 표를 행사한 것에 불과하다. 이런 행위는 단순히 국민의 권익을 행사한 것일 뿐, 정치 활동도 아니고 정치 행위도 아니다.

성경은 개역한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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