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1) 제 2 부

‘사업 내려놓기’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실행하라고 요구하는 세 번째 원칙은 무엇이냐? ‘사회의 각종 세력을 멀리하는 것’이다. 이 조항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비록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이 역시 그중 한 가지 원칙이다. 이는 사람이 이 사회에서 생존하려면 마땅히 엄수해야 할 원칙이자 사람이 이 사회에서 생존하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일종의 생존 태도와 수단, 방식이다. 당연히 정확히 말해서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일종의 지혜라고도 할 수 있다. 사회의 각종 세력을 멀리하는 것은 겉보기에는 누구에게나 요원한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 여기서 언급하는 사회의 각종 세력은 모든 사람의 주변에 숨어 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세력이자 무형의 존재로, 모든 이의 주변에 숨어 있다. 네가 한 가지 직업을 선택할 때, 그 직업은 사회에서 어느 계층에 속한 것이든 관계없이 모두 관련 직업의 방대한 세력 아래 놓여 있다. 네가 종사하는 직업이 최상위 직업이든 하위 직업이든 그 직업에는 관련된 그룹들이 있다. 이들 관련 그룹들이 만약 사회에서 일정한 연한과 경력, 혹은 일정한 사회적 근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이 그룹은 분명 보이지 않는 세력이다. 교사라는 직업을 예로 들면, 이 직업은 상위 직업이라고도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하위 직업도 아니다. 교사는 농민이나 각종 수공업 등 이런 직업보다는 상위에 있고, 사회적으로 진정한 상위 직업들보다는 다소 낮은 위치에 있다. 이 직업은 네가 종사하는 간단한 일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와서 이 업계를 채우고 있다. 그렇다면 이 업계 안에서 사람은 관록이나 경력의 많고 적음에 따라 구분된다. 이 직업의 상부, 즉 이 직업의 인사, 동향, 정책, 규칙, 규정 등을 통제하는 그 상부는 바로 이 직업의 상응하는 세력이 된다. 교사라는 직업을 예로 들어 보자. 교사라는 이 직업을 이끌고 통제하고, 네 밥그릇과 급여를 통제하는 최고의 우두머리가 누구냐? 교사 노조가 있는 나라도 있고, 중국의 경우는 교육국, 교육부가 될 수도 있는데, 이들 기관이 바로 사회에서 이 직업의 상응하는 세력 범위이다. 농부를 예로 들어 보자. 농부의 직속상관은 누구냐? 대(隊)장, 촌(村)장, 향(鄕)장이다. 지금은 또 농업관리위원회가 생겨났는데, 이것이 이 직업의 상응하는 세력 범위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들 세력 범위는 생활 속에서 네 사상과 언행, 심지어 네 신앙과 네가 걷는 길에까지 영향력과 통제력을 행사한다. 그것은 네 생계뿐만 아니라 너의 모든 것을 통제한다. 특히 큰 붉은 용의 나라에서 이방인들은 항상 사상 세미나를 열어 사상을 보고하고, 사상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당을 반대하는 요소, 반국가적이고 반인류적인 요소가 있는지 없는지를 살핀다. 어느 직업에 종사하든, 비교적 전통적인 직업이든 현대적인 직업이든 네 주변에는 각양각색의 직업 범위 내 상응하는 세력이 존재할 것이다. 어떤 세력은 네 직속상관, 즉 직접적으로 너에게 급여를 주고 생활비를 주는 그 상사이고, 어떤 세력은 일종의 보이지 않는 세력이다. 예를 들어, 네가 직장에서 눈에 띄지 않는 말단 직원이라고 해 보자. 그러면 네 업무 범위 내에는 각양각색의 세력이 존재한다. 사장을 가까이하면서 사장 주변만 맴도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일종의 세력이다. 또 총재를 가까이하면서 총재만을 위해 일하는 세력이 있다. 또 총감독을 가까이하는 무리들이 있다. 이렇게 각종 세력이 존재한다. 이 세력들이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이냐? 이 세력들은 어떻게 형성된 것이냐? 각자 필요한 것을 취하고, 또 자신의 목적 달성과 자신의 생존을 위해 줄을 서고 아첨하느라 여러 다양한 세력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어떤 세력이 이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어떤 세력은 저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세력이 비교적 법을 준수하고 직장 규칙을 잘 지키는가 하면 어떤 세력은 저열하게 행하고 법과 직업 도덕도 잘 지키지 않는다. 각종 세력이 얽힌 환경에서 지낼 때 너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느냐? 어떻게 생존해야 하느냐? 당조직을 가까이해야 하느냐, 아니면 사장이나 총재를 가까이해야 하느냐? 주임이나 과장을 가까이해야 하느냐, 아니면 국장이나 공장장을 가까이해야 하느냐? (모두 가까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생존을 위해서 종종 자신의 존엄성을 포기하고, 또 사람됨의 원칙을 포기한다. 더욱이 사람으로서 최소한 지켜야 할 것도 포기한다. 온갖 복잡한 세력 범위 내에서 사람은 어느새 줄을 서고, 대세를 따르고, 각종 세력을 따르는 것을 택한다. 자신을 받아주고 보호해 줄 세력을 찾거나 아니면 자신이 쉽게 받아들이고 흔들 수 있는 세력을 찾아 가까이하고 심지어 그들에게 휩쓸린다. 이것이 사람의 본능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사람의 생존 기술 혹은 수단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사람이 이 사회, 혹은 다양한 그룹에 적응하는 본능이나 기술이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실행 원칙이냐?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비록 지금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정말 그 상황에 놓이게 되면, 현실 생활에서는 줄 서는 쪽을 택하게 될걸요. 어떤 세력이든 자신한테 도움이 되고 자신을 계속 살아남을 수 있게 해 주는 쪽을 택해서 의지하게 된다고요. 게다가 속으로도 사람은 독자적으로 살면 괴롭힘을 당하기 쉬우니까 독자적으로 살아갈 게 아니라 세력에 의지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 거예요. 언제나 독립적이고 고고하게 지낼 게 아니라 고개도 숙일 줄 알고 각종 세력을 가까이할 줄도 알아야 해요. 눈치를 봐 가며 아부도 적당히 할 줄 알고, 쇼맨십도 좀 있어야죠. 대세를 따를 줄도 알아야 하고요. 비위도 좀 맞출 줄 알고, 동향도 빨리 읽고 냄새도 잘 맡아야 해요. 상사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성질은 어떻고 성격은 어떤지, 가정 배경이 어떤지, 어떤 말을 해 주면 좋아하는지, 나이는 얼마고 생일은 언제인지, 옷이나 구두는 무슨 브랜드를 선호하고 가방은 어떤 브랜드를 선호하는지, 어떤 식당의 어떤 메뉴를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차종은 무엇인지, 컴퓨터나 휴대폰은 어떤 브랜드를 선호하고 어떤 어플들을 즐겨 다운받는지, 여가 시간에는 어떤 오락거리를 즐기는지, 어떤 사람들과 교제하는 걸 즐기고 좋아하는 대화 주제는 무엇인지, 이런 걸 일일이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어야죠.” 너는 생존을 위해 자기도 모르게, 또 자연스럽게 그들을 가까이하고 그들에게 휩쓸린다. 적당히 물러서서 마음에도 없는 일과 말을 해 가며 상사와 동료들 기분을 맞춰 주고, 본인은 직장에서 여유만만하면서도 직장 내 모든 걸 쥐고 흔드는 상황을 만들 것이다. 이러면 너의 생활과 생존이 보장이 된다. 그렇게 하느라 도덕을 위배하고 사람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또 존엄성을 포기한다 해도 너는 아무렇지도 않다. 그런데 이 아무렇지도 않음이 바로 네 타락의 시작이자 네 구제 불능의 징조다. 따라서 사람이 표면적으로 생활과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사회의 각종 세력을 가까이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지만 사람의 이런 행위와 선택, 사람이 선택한 이 길은 사람의 인성과 인격을 비뚤어지게 만든다. 동시에 각종 세력을 가까이하고 그들에게 휩쓸릴 때, 사람은 음으로 양으로 온갖 모략을 사용해 그들에게 영합하고 그들을 만족시키는 법을 끊임없이 배움으로써 자신의 더 나은 생활, 더 우월한 생존 조건을 달성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럴수록 사람은 현재의 이 상황을 유지하고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야 한다. 그렇다면 유한한 너의 세월과 시간 안에서 네가 하는 모든 말과 모든 일, 네가 지내는 모든 날은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엉망진창이 된다. 무엇을 가리켜 엉망진창이라고 하는 것이냐? 네가 나날이 타락하여 나날이 사람답지 못하게 살아간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차분히 하나님 앞에 나아올 마음도 들지 않고, 당연히 본분을 이행할 시간적 여유도 없다. 너는 본분 이행에 몸과 마음을 다 바칠 수 없고, 진리 추구에도 몸과 마음을 다 바칠 수 없다. 그러면 너는 구원받을 가망이 없고, 구원의 희망도 없다. 네가 사회의 각종 세력에 뛰어들어 그들을 가까이하고, 그들에게 휩쓸리고, 그들을 받아들이는 쪽을 택했기 때문에 이런 선택이 너에게 가져온 결과는 바로 현상 유지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가며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설령 심신이 고통스럽고, 매일매일을 고기 분쇄기 속에서 보내는 심정일지라도 본인의 선택으로 인해 너는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야만 한다. 각종 세력이 얽히고설킨 상황에서 네가 그들에게 휩쓸렸을 경우에는 그들이 내뱉는 말 한 마디, 그 안에 담긴 동향, 그리고 곧 발생하게 될 일, 사람들 각자의 태도, 사람들이 속으로 하고 있는 생각, 특히 이 세력의 최고층에 있는 네 직속상관이 속으로 하고 있는 생각들이 모두 네가 가늠해야 할 것들이고, 네가 실시간으로 수집해야 할 정보들이다. 너는 감히 허술하게 대처하거나 소홀히 대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들이 뒤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계획과 타산을 가지고 있는지, 심지어 그들이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어떤 전략을 세우고 어떻게 계산기를 두드리는지, 한 사람 한 사람을 어떻게 할 작정인지, 사람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이런 것들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고 싶다면 마음속 깊이 이런 국면에 대해 심도 있게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네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그런 것을 연구하고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들과 식사도 하고, 대화도 하고, 통화도 하고, 업무적으로도 더 많이 교류하고, 심지어 휴가 기간에도 가까이하며 그들의 동향을 파악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네 생활이 어떻든, 즐거운지 고통스러운지는 둘째 치고, 설령 네가 본분을 이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진리를 추구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해도 시간을 할애해서 차분하게 몸과 마음을 바쳐 제대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네가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단지 여가 취미에 불과할 뿐이다. 하나님을 믿는 일에 대해 마음속에 어떤 요구와 바람을 품든, 네가 처한 그런 상황에서라면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일은 네 모든 바람 중 가장 마지막 순위를 차지할 뿐이다. 진리를 추구하고 구원받는 일은 생각할 엄두도 못 내려니와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러니 어느 누구든, 어느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든 각종 세력을 가까이하고 각종 세력에 휩쓸리려 하거나 혹은 이미 각종 세력을 가까이하고 각종 세력에 휩쓸렸다면, 어떤 이유와 변명을 막론하고 최종적으로 맞이할 결과는 본인의 구원이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사실로 초래되는 가장 직접적인 손해는 바로 네가 하나님 말씀을 읽고 본분을 이행할 시간을 전혀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당연히 차분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도 없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정성껏 기도드리는 이 최소한의 일조차 할 수 없다. 네가 처한 환경과 사람, 일이 지나치게 복잡하기 때문에 일단 각종 세력에 휩쓸렸다 하면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쉽게 발을 뺄 수가 없다. 쉽게 발을 뺄 수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각종 세력의 범위 안에 일단 발을 들였다 하면, 그 안에 뒤엉켜 있는 온갖 일, 그 안에서 발생하는 온갖 시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계속해서 온갖 사람과 일에 의해 뒤엉켜서 피하려야 피할 수도 없게 된다는 말이다. 네가 이미 그들의 일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세력의 범위 안에서 발생한 모든 일이 다 너와 무관하지 않고, 너와 관련이 있다. 다만 한 가지 상황, 즉 네가 그 안에서 이로움과 폐단, 옳고 그름을 다투지 않고 이 모든 것을 방관하는 입장에서 지켜보기만 한다면, 아마 각종 시비나 어떤 말썽을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가까이한다면,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모든 일에 신경 쓰고 참여한다면, 너는 분명 거기에 얽혀 들어가서 방관자가 아닌 참여자가 될 수밖에 없다. 네가 참여자라는 것은 곧 네가 이 세력 범위 내에서 피해를 입는 대상이라는 말이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어느 직장, 어느 그룹 안에서 살아가든 남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건 큰 문제가 안 돼요. 중요한 건 계속 살아남을 수 있느냐 없느냐죠. 만약 조직이나 각종 세력을 가까이하지 않고, 사회적으로나 어떤 그룹에서나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 안에서 계속 살아남을 수 없어요.”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이냐? (그런 게 아닙니다.) 각종 그룹 안에서 사람들이 세력을 가까이하는 목적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큰 나무 그늘, 즉 자기를 지지해 줄 세력을 찾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가장 기본적으로 바라는 것이다. 그 밖에도 사람은 각종 세력에 기대 자리에 올라감으로써 이익이나 권세를 꾀하려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 만약 이 직업 범위 안에서 네가 단순히 생계만을 위하고 먹는 것과 입는 것만 있으면 만족한다면, 너는 어떤 세력도 가까이할 필요가 없다. 만약 가까이한다면 그건 단순히 생계를 위하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데, 그것은 명예 아니면 이익이다. “저는 생계를 해결하는 것 말고도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 그러는 건데요?”라고 하는 사람이 있느냐?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 (없습니다.) 돈을 벌어서 하루 세끼가 보장되고 입을 옷이 있으면 된다. 그러면 체면을 세우고 말고가 무슨 상관이겠느냐? 누구의 체면을 세우려는 것이냐? 국가의 체면을 세우려는 것이냐? 조상이나 부모의 체면을 세우려는 것이냐? 아니면 본인의 체면을 세우려는 것이냐? 너희가 볼 때 체면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냐, 아니면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만족하는 것이 중요하냐?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만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체면을 세우려는 것은 혈기가 섞인 성품이다. 무슨 일이든 체면을 세우려는 것은 추상적이고도 공허한 소리이다. 실질적으로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돈을 벌어 오는 것이다. 너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어떤 상황이든 상관없어. 누가 어디에 줄을 서든, 어느 상사나 관료를 가까이하든 상관없어. 누가 승진하고 누가 강등되고 누구 급여가 오르고 누가 무슨 수단으로 요직에 오르든 상관없어. 나는 밥벌이만 할 수 있으면 돼. 당신들이 뭘 다투든 나랑은 관계없어. 어쨌든 나는 하루 여덟 시간 일하고 벌 만큼 벌어서 가족들이랑 먹고살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 그거면 되지. 내가 바라는 건 이게 다야.’ 자신이 해야 할 본연의 일을 잘 완수해서 당당하게 급여를 받고 보너스를 받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렇게 살아가는 자세, 이렇게 직업을 대하는 자세가 옳은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어느 부분이 옳으냐? (이런 자세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태도를 근거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건성으로 일하지 않고 본연의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세력에 빌붙거나 아첨하지 않고 그저 정상적인 생활만 유지할 수 있으면 된다는 자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에 부합합니다.) 당연히 이것은 하나님 말씀에 부합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렇게 하라고 요구하는 이유가 너를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무엇으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이냐? (사탄의 해악을 입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이런 시비에 일단 휘말리게 되면 사는 게 무척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으며 본분 이행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한 측면이다. 다른 한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네가 각종 세력과 엮인다면 최종적으로는 너 자신을 망치는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 그건 너무나 가치 없는 일이다! 첫째, 너 자신을 보호할 수 없다. 둘째, 정의도 펼칠 수 없다. 셋째, 너는 각종 세력과 어울려 죄를 더하는 것이다. 그러니 세력을 가까이하는 것은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설령 네가 각종 세력을 가까이하여 급여가 오르거나 스카우트된다고 해도 그들을 따라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해야 하겠느냐? 뒤에서 나쁜 짓을 얼마나 저질러야 하겠느냐? 뒤에서 사람들을 얼마나 괴롭혀야 하겠느냐? 이 사회에서, 온갖 그룹이나 업종에 왜 세력이 있겠느냐? 그건 바로 이 사회에 공평과 공의가 없기 때문이다. 각종 세력에 의지해야 자신을 보호할 수 있고, 각종 세력에 의지해서 말하고 행동해야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여기에 공평이 있느냐? (없습니다.) 공평은 없고 오로지 세력에만 기반을 둔다. 세력이 강한 사람들이 결정권을 쥐고, 세력이 없거나 약한 사람들은 결정권이 없다. 법을 제정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네가 세력이 강하면 네가 제정한 법도 공포되고 시행되지만, 세력이 약하면 네가 제안한 법률 규정은 통과되지 못해 국가 법률에 편입될 수 없다. 어떤 그룹에서도 마찬가지다. 세력이 강하면 자신의 이익을 쟁취해서 극대화할 수 있지만, 세력이 없으면 이익을 박탈당하고 침식당할 수도 있다. 각종 세력이 형성되는 목적은 그 세력을 이용해 국면을 통제하고, 나아가 사회의 여론, 법률, 인성과 도덕을 압도하기 위한 것으로, 그들은 법률, 도덕, 인성을 초월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세력이 커질수록 권세가 강해지고, 마음대로 하고 결정권을 잡을 기회가 더 많아진다. 이것이 공평한 것이냐? (아닙니다.) 공평하지 않다. 권력과 세력은 그 사람의 신분을 대표하고 그가 이익을 분배받을 수 있음을 뜻한다. 네가 한 사회 그룹 안에서 생계유지와 먹는 것과 입는 것 정도만 원한다면, 네가 추구하는 바가 이 사회에서의 지위, 명예가 아니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면, 네가 각종 세력을 가까이하는 것은 불필요한 것 같다. 만약 네가 오로지 본분 이행에만 시간을 쏟고, 진리 추구의 길을 걸어서 마지막에는 구원에 이르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각종 세력을 가까이하려 한다면, 이 두 가지는 서로 충돌할 것이다. 둘은 서로 보완적일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 일이 지향하는 바가 다르고 물과 불처럼 상극이기 때문이다. 각종 세력을 가까이한다고 해서 네가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일에 무슨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각종 세력을 가까이한다고 해서 네가 사탄의 추악한 몰골을 보다 분명히 인식할 수 있거나 더 많은 발언권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 믿어도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지 않고 정부로부터 박해받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작은 마을에 살면서도 속으로는 커다란 청사진을 품는다. ‘내가 농촌에서 태어나서 농부로 살면서 천대받긴 해도 곡식 농사, 채소 농사도 짓고, 닭이나 소, 양도 기르고, 그럭저럭 살 만해. 하나님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려면 그래도 여건이 아주 괜찮지. 기본 생존 조건이 갖춰져 있으니까. 그런데 이 사회나 인류 가운데서 생존하고 살아가려면 어째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걸까?’ 뭐가 부족하냐? 뒤에 기댈 곳이 없다. 보아라. 사람이 집을 고를 때는 뒤에 큰 산이 있는 집을 찾는다. 그 산을 기댈 곳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집에 살면 마음이 놓인다. 만약 집 뒤쪽이 벼랑이라면, 속으로 늘 벼랑 아래로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 집에서 사는 것이 불안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자기가 사는 마을에서 명망 있고 지위가 있는 사람과 줄이 닿아서 그 집에 들락거리면서 상대의 호감을 얻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경우, 마을에서 소외감도 느끼고, 또한 멸시당할 위험과 더 이상 마을에서 살지 못할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그래서 늘 촌장을 가까이하려 한다. 이런 생각은 어떠냐? (좋지 않습니다.) 특히 하나님을 믿으면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는 나라들도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말한다. “만약 촌장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촌장은 믿지 않더라도 촌장 어머니나 할머니, 부인, 딸이 믿는다면 이건 촌장을 백으로 두는 것 아닌가요? 우리 교회 형제자매가 마을에서 명망이 있거나 촌장과 친척 관계라면 이 마을에서 우리 교회 입지가 튼튼해지지 않겠어요? 자리가 생기지 않을까요? 그러면 우리, 하나님 믿는 형제자매들이 이 마을에서 밥 먹고 농사짓는 것도 문제가 될 것 없지 않겠어요? 그뿐만 아니라 큰 붉은 용이나 통일 전선 사업부에서 조사하러 올 때 누군가 우리 대신 막아 줄 사람이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요!” 언제나 어떤 조직이나 세력을 가까이함으로써 본인이 절대 위험한 지경에 놓이지 않고, 안전하게 하나님을 믿으며 박해받지 않기만을 바란다. 이것이 아주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명망 있는 사람과 알고 지내면 자기도 세력을 지닌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생각이야 아주 좋다만 촌장이 너더러 자기를 가까이하라고 하더냐? 촌장이 네가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이냐? 촌장이 네가 이용하도록 하겠느냐? 일개 평범한 인간인 네가 조직이나 촌장을 가까이해 복음만 전하면 그만이겠느냐? 네가 촌장을 가까이하려면 그럴싸한 선물을 바치거나 실질적인 일을 좀 해 줘야 하지 않겠느냐? 너희는 어떤 경험이 있느냐? 촌장을 가까이하는 것이 쉬운 일이냐? 촌장네 집 개를 가까이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촌장에게 직접 선물을 보내도 소용없다. 촌장의 아내나 어머니, 둘째 고모, 셋째 작은할머니 등 가까이하기 쉬운 주변 사람들을 먼저 가까이해야 한다. 왜 촌장의 셋째 작은할머니를 가까이해야 하느냐? 촌장과 비교적 사이가 가깝기 때문에 그 작은할머니를 먼저 가까이한다. 너를 대신해서 말을 잘 해 줄 수 있는 연장자인 그 작은할머니를 통해 서서히 촌장을 가까이하는 것이다. ‘우회 전술’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느냐? 네가 직접 촌장에게 선물을 들고 가면 촌장이 묻는다. “누구신지?” “저는 마을 동쪽 이씨 집안 아무개입니다.” “이씨 집 누구? 난 모르겠는데?” 네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를 가까이하기가 쉽겠느냐?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선물을 하겠다면 어떤 선물을 내밀어야 그의 눈에 들어오겠느냐? 골드바나 금괴 같은 것이 네게 있느냐? 그가 해삼을 반기겠느냐? 네가 보낸 해삼이 수입산인지 아닌지부터 따질 것이다. 그런 건 그에게 넘쳐난다. 너는 허리띠 졸라매며 덜 먹고 덜 써서 마련한, 감히 먹어 보지도 못하고 만져 보지도 못한 것을 선물해도 그는 눈길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벨트를 선물하는 너에게 그가 묻는다. “이거 국산이지?” “소가죽입니다.” 그럼 그가 말한다. “요새 누가 소가죽 벨트를 차나? 아무도 안 해. 다들 고급 피혁 제품을 쓰지. 유럽 국가 로고가 찍혀 있고 큐빅 박힌 것 말일세. 그런 건 없나?” “어떻게 생긴 건가요? 본 적이 없어서요.” “그러면 찾아오지 말게. 거지 취급하고 이 벨트를 주는 건가?” 이런 사람을 네가 가까이할 수 있겠느냐? 너는 네가 나름 타산을 잘하고 주판알을 잘 튕겼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상대방에게 네 선물은 아예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억지로 들이대는 것이 적절하겠느냐? 네 선물을 마음에 들어 한다 한들 네가 들이대는 것이 적절하겠느냐?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저 밥 한술 얻어먹기 위해, 마을에서 기댈 대상을 찾기 위해 그런 천한 일을 한다. 너희가 보기에 창피하지 않으냐? (창피합니다.) 그런데도 또 촌장의 둘째 작은할머니, 셋째 작은할머니를 찾아가고, 촌장 마누라, 처제를 찾아가 선물을 주며 가까이하는 등 별 구질구질한 방식을 다 동원한다. 남들은 말한다. “이런 선물 보내도 소용없어요. 촌장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는 거예요.” 그래도 가까이하겠느냐? 선물은 뭘 해도 눈높이에 맞추지 못해서 상대는 눈길도 주지 않고 맘에 들어 하지 않는다. 적어도 네가 너 자신을 내놓아야 하는데 그래도 가까이하겠느냐? (가까이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댈 대상으로 이런 사람을 찾을 것이냐? 촌장은 어떤 인물이냐? 네가 마음대로 기댈 수 있는 존재더냐? (아닙니다.) 네가 설령 그에게 줄이 닿고 기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들 뭐가 어떻게 되겠느냐? 그가 네 운명을 장악할 수 있느냐, 아니면 네가 구원받게 해 줄 수 있느냐? 아니면 정말 박해나 환경이 닥쳤을 때, 하나님이 환경을 허락하고 마련했을 때, 네가 그것을 요행으로 피할 수 있겠느냐? 촌장이 결정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마련한 커다란 환경에서는 촌장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어떤 세력도 결정권이 없고 그 어떤 세력도 언급할 가치가 없다. 그러니 네가 이 세상에 있는 한, 거기가 마을이든, 현성이나 도시이든, 아니면 어느 한 나라이든, 나아가 구체적으로는 네가 어느 한 나라에서 어느 업종에 종사하든, 그 안에 존재하는 그 어떤 세력도 너의 운명을 주재할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다. 어떤 세력도 네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없고, 네 운명의 주재자, 네 운명의 제정자는 더더욱 될 수 없다. 반면 사회에 존재하는 각종 세력에 일단 휩쓸려 들어갔다 하면 재난이 찾아오고 액운이 시작된다. 너는 그들을 가까이할수록 더 위험하고, 그들에게 휩쓸릴수록 발을 빼기가 더 어려워진다. 이 각종 세력들은 너에게 어떤 유익함도 가져오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휩쓸리는 순간부터 너는 계속해서 유린당하고 짓밟혀서 몸과 마음이 비뚤어지고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이 세상에서 공평과 공의의 존재를 믿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진리 추구와 구원이라는 너의 그 가장 아름다운 소망을 망쳐 버린다. 따라서 이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어떤 계층과 환경, 그룹 혹은 업종을 막론하고, 그 안에서 세력을 찾아 기대고 자기의 보호막으로 삼으려는 생각은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극단적 사상 관점이다. 네가 만약 생존만을 위한 것이라면 이런 각종 세력들을 멀리해야 한다. 설령 이 세력들이 네 인성의 정당한 권익을 지켜 주는 것에 불과하다 해도 그것이 네가 그런 세력에 발을 들이는 이유와 구실이 될 수 없다. 사회에서 각종 세력의 생존 상태, 그들의 전진 목표, 그들이 일하는 방향 등이 무엇인지를 막론하고, 어찌 되었든 너는 하나님 믿는 사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일원이나 각종 세력의 주동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너는 그들을 멀리하고 피해야 한다. 그들이 일으키는 각종 시비, 그들이 정한 각종 룰을 피해야 하고, 또 그들의 요구대로 해당 직업 혹은 그 세력의 범위 안에서 남에게 해가 되는 여러 가지 말이나 행동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들의 일원이 되어서는 안 되고, 그들의 하수인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이것이 바로 각종 세력이 존재하는 각 직업에서 하나님이 너에게 하는 요구이다. 즉, 그들을 멀리하고 피해야 하고, 그들의 희생양이나 이용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고, 그들의 앞잡이나 스피커가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사회에서는 각 업종에 관계된 직속상관도 그렇고, 민간 조직도 그렇고, 일부 부당한 사회단체도 그렇고, 모두 사람이 피해야 할 대상이다. 이런 사람들과 연줄이 닿아서는 안 되고, 이런 사람들과 어떤 관계도 맺어서는 안 된다. 사회의 사채업자를 예로 들어 보자. 어떤 사람이 장사에 자금이 부족한데 정상적인 경로로는 대출을 받을 수가 없다. 하지만 자금을 유통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바로 사채를 빌리는 것이다. 이자만 높은 게 아니라 리스크도 큰 것이 사채이건만 어떤 사람들은 큰돈을 벌기 위해, 사업의 부도를 막기 위해 결국 사채를 빌리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사채업자가 사회에서 정당한 사람이냐? (아닙니다.) 그것은 일종의 부당한 사회 조직으로, 어느 때건 가까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너의 생존이나 현재 상태가 어떤 상황까지 치닫든 그 길은 생각도 하지 말고, 멀리하고 피해야 한다. 네 생활과 생계에 어떤 문제가 생겨도 사채는 꿈도 꾸지 말고, 그 길로 들어설 생각도 하지 마라. 그 작자들은 당 조직과 별반 다를 바 없지 않으냐? 소위 합법 기구와 지하 조직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이 너에게 생계를 위한 길을 열어 주고 새로운 기회를 줄 것이라는 착각은 버려라. 그건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 일단 그 방법을 선택하고, 그 길로 나아간다면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을 것이다. 그 밖에도 당연히 우리가 별로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은, 이른바 모 사회 조직도 절대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특히 어떤 특수한 문제, 손을 쓸 수 없는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특수한 상황이 닥쳤을 때, 혹은 매우 위험한 처지에 놓였을 때라 해도 위험한 상황을 벗어나고 곤경에서 빠져나가고자 비상수단을 이용해서 자신을 보호할 생각은 하지 마라. 그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절대 그런 사람과 거래하거나 엮이면 안 된다. 왜 그렇게 하느냐? 그것이 기개라는 것이냐? 그것이 크리스천이 갖춰야 할 기개이냐? (크리스천이 갖춰야 할 기개가 아닙니다.) 그럼 그건 무엇이냐? (그들을 가까이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어째서 옳지 않으냐? (그들을 가까이한다면 그 후로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앞으로 더 큰 위험이 닥쳐옵니다.) 단지 이후에 닥칠 위험을 피하기 위함이냐? 그렇다면 당장의 위험에서 먼저 벗어나면 되지 않느냐? 왜 이런 세력을 가까이하면 안 되는 것이냐? 성경에서 시험을 받은 예수가 사탄에게 뭐라고 했느냐? (예수님께서는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 4:10)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경배해야 할 존재는 하나님이고, 사람이 유일하게 섬겨야 할 존재도 하나님이다. 그리고 사람은 오직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허락한다면, 네 생명을 앗아 가려 한다면 너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순종해야 합니다.) 마땅히 순종하고 하나님을 찬미해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칭송해야 마땅하다. 사람은 마땅히 순종해야 하며, 목숨을 구걸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너를 살게 하려 한다면 누가 네 생명을 앗아 갈 수 있겠느냐? 그 누구도 앗아 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너에게 어떤 환경, 어떤 위험이 닥치든, 설령 죽음에 직면한다 해도 너를 죽음의 늪에서 벗어나도록 구해 줄 수 있는 세력이 있는데 그것이 정당한 세력이 아닌 사탄에 속한 세력이라면 너는 뭐라고 해야 하느냐? “사탄아, 물러가라! 나는 죽으면 죽었지 너와는 어떤 관계도 맺지 않겠다!”라고 해야 한다. 이것은 원칙의 문제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내가 너의 세력 덕분에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내버려둔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손안에 있으니 나는 어떤 세력에 기대 타협하며 살지 않아.” 이것이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원칙이다. 네가 곤경에 빠졌을 때, 누군가 와서 너를 구해 줄 수 있는 일종의 사회 세력이 있다고 말해 주었다고 해 보자. 이 사회 세력이 너를 성공적으로 구해 주겠지만, 그로 인해 너와 크리스천, 교회, 하나님 집의 명예가 실추되고 하나님 집이 비방받게 된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수용하겠느냐, 거절하겠느냐? (거절하겠습니다.) 당연히 거절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우리는 어떤 세력에 기대 살아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환경, 어떤 위험과 고난이 닥치든, 가장 기본적인 것은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는 것 외에 각종 비상수단을 이용해 위험한 곤경에서 벗어나려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해야 할 책임을 다하고, 사람이 해야 할 노력을 다했다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지배한다. 만약 어떤 불법 사회 조직이 너를 구해 줄 수 있다고 알려 주는 사람이 있다면, 너는 여기에 동의하겠느냐? (동의하지 않겠습니다.) 동의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냐? 살고 싶은 게 아니냐? 곤경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은 게 아니냐? 네가 아무리 곤경에서 벗어나고 싶고 아무리 살고 싶어도, 사람됨에는 원칙이 있어야 하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속으로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원칙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성경은 개역한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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