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0) 제 2 부

이번 단계에서 교제하는 주제는 ‘사람의 추구와 이상, 바람을 내려놓기’로, 지난번 예배 때는 가정에서 비롯되는 부담을 내려놓는 일에 관해 교제했다. 가정에서 비롯되는 부담이라는 이 주제에 관해 먼저 부모에게서 비롯되는 기대를 교제하고, 그런 다음 후대에 대한 부모의 기대에 관해 교제했다. 이런 건 모두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사람의 추구와 이상, 바람을 내려놓기’에서는 총 네 가지를 열거했다. 첫 번째는 취미와 관심사, 두 번째는 결혼, 세 번째는 가정으로, 이 세 가지는 모두 교제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무엇이냐? (사업입니다.) 네 번째는 사업이다. 이제 이 사업을 교제할 차례다. 너희는 이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전에 이 주제를 생각해 본 사람이 있다면 먼저 얘기해 보아라. (전에는 한 사람의 사업 성공 여부는 그 사람의 처신 성공 여부를 구체적으로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 사람에게 사업욕이 없거나 그의 사업이 엉망으로 운영된다면, 그것은 그의 처신이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사업 내려놓기 방면에 관련된 문제에서 마땅히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사업에 대한 사람 내면의 야심과 욕망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도 한 가지 견해이다. ‘사람의 추구와 이상, 바람을 내려놓기’에서 사업이라고 하면 너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을 내려놓는 것이냐?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업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여러 가지 번거로움을 해결해야 하지 않겠느냐? (전에는 세상에서 사업이 성공해 이름이 좀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사업을 추구하며 잘나가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뒤로도 하나님 집에서 잘나가고 싶고 남들에게 우러름을 받고 싶었는데, 이 문제가 제 생명 진입에 심각한 방해가 되었습니다.) 너희가 이해하는 사업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추구이자 사람이 걸어가는 길과 관련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람의 추구와 이상, 바람을 내려놓기’ 중 사업을 교제할 때, 사람의 추구 방면에 관련된 내용은 잠시 접어 두고, 주로 ‘사업’의 문자적 의미에 대해 얘기해 보자. ‘사업’은 무엇을 가리키느냐? 바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종사하는,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직업 혹은 노동을 말한다. 이 방면의 주제는 우리가 교제하려는 ‘사람의 추구와 이상, 바람을 내려놓기’ 중에서 ‘사업’이라는 범주에 들어가는 내용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동시에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직업에 종사하고 사회에서 직업을 선택하는 범위와 원칙에 대한 것이다. 당연히 이 부분은 많든 적든 일부 사람들의 추구 내용과도 관련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종사하는 일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도 관련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각종 일과 사업을 대할 때 마땅히 갖춰야 할 사상 관점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업에 관련된 화제는 매우 광범위하므로 우리는 그것을 분류해 볼 것이다. 분류를 통해, 하나님을 믿는 사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직업에 종사하는 것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요구 기준이 무엇인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직업에 종사하거나 직업을 대할 때 하나님은 이들에게 어떤 사상 관점을 지닐 것을 요구하는지를 사람에게 이해시키고자 한다. 이로써 사람이 관념과 소망 속에 담긴, 사업에 대한 추구와 바람을 내려놓고, 동시에 세상에서 종사하는 직업, 혹은 세상에서 추구하는 사업에 대한 그릇된 관점도 바로잡도록 하려는 것이다. 사람이 내려놓아야 할 사업의 내용에 관해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하기로 하자. 첫 번째로 사람이 이해해야 할 문제는 자선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만족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각종 사회 세력을 멀리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정치를 멀리하는 것이다. 이 네 가지 내용을 기준으로 사업 내려놓기에 관한 문제들을 교제해 보겠다. 너희가 볼 때 이 네 가지 내용이 너희가 교제한 내용과 관계가 있느냐? (관계가 없습니다.) 너희가 교제한 것은 무엇이냐? (개인의 추구입니다.) 너희가 교제한 것은 진리 원칙과 관계가 없는, 개인의 작은 추구에 불과하다. 우리가 교제하는 이 네 가지는 모두 사업이라는 주제 안에 담긴 여러 원칙과 관련된다. 이 여러 원칙을 이해하면,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업과 관련된 방면에서 내려놓아야 할 것들을 쉽게 내려놓을 수 있다. 쉽게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은 이 방면의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이제 사업 내려놓기에 관한 네 가지 원칙을 하나하나 교제해 보자.

첫 번째, 자선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자선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문자적인 의미는 이해하기가 쉽다. 자선 활동이라는 일에 대해 다들 어느 정도 개념은 있지 않으냐? 이를테면 복지원이나 보호소 등 사회의 이런저런 자선 기구들은 모두 자선 사업과 관계된 기관, 명칭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종사하는 사업과 관련해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첫 번째 요구가 자선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인데, 이것이 무슨 뜻이냐? 바로 자선을 베푸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고, 자선 활동과 관계된 업종에 종사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이 쉽게 이해되느냐?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너는 육 안에서 살고 있으며, 가정이 있고 자기 생활이 있다. 자신을 돌보고 가족을 부양할 생활비가 필요하기에 너는 직업에 종사해야 한다.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첫 번째 요구는 자선 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자선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육의 생계를 위해 자선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즉, 그 일은 네가 종사해야 하는 직업이 아니고, 하나님이 너에게 부탁한 직업도 아니며, 하나님이 너에게 부탁한 본분은 더더욱 아니다. 자선 활동 같은 일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과 관계가 없다. 반대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만약 네가 자선 활동을 했다고 해도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일을 완벽하게 잘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심지어 형제자매들에게 인정받았다고 해도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는다. 과거에 네가 자선 활동을 많이 한 대단한 선인이었다고 해도,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고 선한 일을 많이 해서 그만큼 사람들이 혜택을 받았다고 해도, 심지어 아무리 많은 생명을 구했다고 해도 하나님이 너를 기억하고 궁극적으로 축복해 주는 일은 없으며, 너를 파격적으로 구원하고 아름다운 종착지를 주는 일도 없다. 즉, 자선 활동을 하는 것은 구원을 받기 위한 필요조건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자선을 베푸는 일에는 무엇이 포함되느냐? 사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확실히 일종의 자선 사업이라고 생각할 만한 일이 한두 가지쯤은 있다. 유기견을 입양하는 일이 그런 예다. 일부 국가들은 애완동물에 대한 관리가 별로 엄격하지 않거나 경제적 여건이 썩 좋지 않아서 길에서나 다른 장소에서 유기견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유기견이 무슨 뜻이냐? 사람들이 더 이상 키우지 못하거나 키우기 싫어서 개를 버리거나 혹은 다른 사정으로 개를 잃어버리면 그런 개들이 길가에 돌아다닌다. 그러면 너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니까 이런 동물들을 입양해야 해. 선한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야. 이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짊어져야 할 일종의 책임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그래서 유기견이나 길고양이를 보면 집으로 데려와 키우기 시작한다. 먹을 것, 쓸 것을 아껴서 사료도 사 주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급여, 생활비까지 거기에 보탠다. 나중에는 데려다 키우는 개, 고양이가 점점 많아져서 집을 빌려야 할 정도다. 이렇게 해서 생활비는 더욱 모자라고, 급여로도 지출을 감당할 수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빚까지 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그는 그것이 도의적으로 거절하거나 미뤄서는 안 될 책임이니 선한 일로 여기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것을 진리를 실행하고 원칙을 고수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돈과 에너지, 시간을 들여 유기견이나 길고양이를 데려다 키우면서 자선 사업을 한다. 그러면서 마음이 편하고, 성취감도 있고, 스스로도 잘한 것처럼 생각한다. 심지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야.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물을 키우는 일이고, 덕을 쌓는 일이니 하나님도 분명 기억하실 거야.’ 이런 생각은 옳으냐?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너에게 이런 일을 부탁하지 않았다. 이것은 네 의무도 아니고, 네 책임도 아니다. 만약 길고양이나 유기견을 마주치면 네가 좋아해서 한두 마리 입양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길고양이나 유기견을 입양하는 일을 일종의 자선 사업으로 생각해서 하는 것이라면, 자선 활동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이것은 치우친 인식, 치우친 이해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생존 능력이 좀 있다고 생각해서 손에 약간의 여윳돈만 생기면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한다. 그 사람들에게 옷과 음식, 생필품, 심지어 돈까지 나눠 주고, 그 일을 자신이 다해야 할 일종의 의무로 생각하는가 하면, 심지어 가난한 사람들을 집에 데려와 복음을 전하기도 한다. 거기다 돈까지 쥐여 주면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겠다고 약속한다. 그 후 그들에게 음식과 거처를 제공한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고, 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또 어떤 사람은 사회에서 사람들이 입양하지 않는 고아들을 보면, 또 자기한테 여윳돈이 좀 있으면 그 고아들을 돕는다. 복지 시설, 고아원 등을 열어서 고아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받아들인 뒤에는 그들에게 음식과 거처를 제공하고, 학교도 보내 주고, 심지어 어른이 될 때까지 부양하는데, 자기만 그 일을 계속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다음 세대에도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들은 이것이 덕을 쌓고 복을 받는 일이자 하나님이 기억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는 동안 가난한 지역에서 신앙을 가진 복음 대상을 보면 도와주고 베풀어 주고 싶어 한다. 복음 전파는 복음 전파일 뿐, 자선을 베풀거나 남을 도와주는 일이 아니다.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하나님 말씀을 알아듣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 즉 하나님의 양들이 구원의 기회를 얻도록 하나님 집으로 데려오고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이지 가난한 사람들이 굶어 죽지 않도록 제대로 먹고 입으며 정상인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어느 각도, 어느 방면에서 얘기하든, 애완동물이나 동물을 구제하든, 가난한 사람이나 생활이 기본적인 수준에도 못 미치는 사람을 돕든, 자선 활동이라는 그 일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다하도록 요구하는 본분과 책임, 의무가 아니다. 그 일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과 관계가 없다. 사람에게 좋은 마음이 있어서 그 일을 하고 싶어 하거나 간혹 특별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났을 때 네가 능력이 된다면 그렇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 일을 너에 대한 하나님의 부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네가 능력이 있고 여건이 된다면 어쩌다 그런 일을 할 수는 있지만, 그건 단지 네 개인을 대변하는 것일 뿐 하나님 집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요구를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물론,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마음을 만족게 했다는 뜻도 아니고, 네가 진리를 실행하고 있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그건 단지 네 개인의 행위를 뜻할 뿐이다. 이따금씩 하는 것은 하나님이 정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기억하지도 않는다. 그뿐이다. 만약 네가 그것을 일종의 사업으로 생각해서 양로원, 복지원, 고아원, 동물 보호소를 차린다면, 심지어 자연재해가 닥쳤을 때 네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형제자매, 혹은 민간에서 돈을 걷어 재해 지역이나 이재민들에게 기부한다면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떠냐?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어떤 지역에 지진이나 수재, 혹은 어떤 천재나 인재가 발생하면 교회에 와서 형제자매들에게 돈을 기부해 달라고 요구한다. 더 심한 경우, 제물을 가져다 재해 지역이나 이재민을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의 의무이자 사회의 한 민간단체로서 교회가 마땅히 다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 일을 하나의 정의로운 사업으로 여기며 해 나가고, 형제자매들에게 기부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교회에도 헌금을 기부해서 재해 지역을 도울 것을 요구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떠냐? (부적절합니다.) 그뿐이냐? 그 일의 성질에 관해 얘기해 보아라. (제물은 복음을 전할 때 사용하고, 복음 확장 사역에 사용하는 것이지 이재민을 구하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데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재민을 구제하는 일은 진리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 일을 해도 그것이 진리를 실행한 것도 아니고, 성품이 변화했다는 증거는 더더욱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모든 사람이 같은 별에서 살고 있으니까 지구상에 사는 사람은 한가족이라고 생각한다. 한쪽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사방에서 도와줘서 재해 지역 사람들이 인간의 온정, 교회가 보내는 도움의 손길과 온정을 충분히 느끼도록 하는 것이 덕을 쌓는 일이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 하나님을 증거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할 때 원칙을 견지하고 하나님 말씀과 사역지침대로 실행하라고 하면 의욕을 잃고 동력을 상실해서 그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다가도, 제물을 써서 빈곤하고 낙후된 국가의 사람들을 도와주고, 본분을 이행할 설비를 사 주고, 충분히 입고 먹을 수 있도록 해 주라고 하면 무척 적극적으로 나서고, 서둘러 앞장서고, 그런 일을 더 많이 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가 이토록 적극적인 이유는 무엇이냐? 대단한 선인이 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대단한 선인이라고 하면 무척 고상하게 느껴지고 그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위해 자기 힘을 바치고 자신의 빛과 열을 발휘할 수 있어서 무척 영광이라고 생각되어 더욱더 흥분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무척이나 이 일을 하고 싶어 한다. 무척이나 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배후에는 어떤 목적이 있느냐? 정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이냐? 하나님에게 이런 영광이 필요하겠느냐? 하나님에게 이런 증거가 필요하겠느냐? 네가 돈을 꺼내 도와주지 않으면 하나님 이름이 치욕을 당하는 것이냐? 하나님에게 영광이 없어지느냐? 네가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영광을 얻는단 말이냐? 네가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만족하느냐? 그런 것이냐? (아닙니다.) 그건 어찌 된 일이냐? 그 사람들은 어째서 그렇게 하길 원하느냐? 그가 그렇게 하는 목적은 자신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수혜자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통이 크고, 관대하고, 돈이 많다고 칭찬하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늘 영웅 심리를 품고, 늘 구세주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째서 자신은 구하지 않는 것이냐? 스스로가 어떤 인간인지 모르느냐? 다른 사람을 구할 능력은 있으면서 왜 자신을 구할 능력은 없느냐? 네가 그렇게 통이 크다면 어째서 자신을 팔아 그 돈을 그 사람들에게 주고, 그 돈으로 그 사람들을 구제하지 않느냐? 어째서 제물을 쓰는 것이냐? 능력이 있다면 네가 먹지도 마시지도 않거나, 아니면 하루에 한 끼만 먹어서 아낀 돈을 그 사람들에게 줘서 배불리 먹이고 따뜻하게 입힐 것이지 어째서 하나님의 제물을 함부로 사용하느냐? 이것은 하나님 집 제물로 인심을 쓰는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하나님 집 제물로 인심을 써 다른 사람들 입에서 ‘대단한 선인’이라는 칭호를 들음으로써 자기가 남들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그런 허영심을 채우다니, 뻔뻔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뻔뻔하다면 그런 짓을 해야 하느냐?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집에서 복음을 확장하는 일의 성질은 자선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알아듣는 양을 찾는 것이고, 그 사람들을 찾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경륜에 협력하는 것이지 자선을 베푸는 것도 아니고, 빈곤 지역에 가서 구제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행동은 복음 전파를 내세워 자선 사업을 하는 것이고, 그 사람들이 충분히 먹고 입고, 현대식 기기를 사용함으로써 현대식 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단 말이냐? 그런 건 복음을 전하여 사람을 구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 없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다. 복음 전파는 사람의 마음을 얻어서 그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고, 사람들이 진리를 받아들여 하나님에게 구원받도록 하는 것이지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 사역의 필요로 직장과 가정을 포기하고 풀타임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소수 사람에게 하나님 집에서 생활비를 지급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는 구제도 아니고, 자선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 집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은 복지원을 세우는 것도, 보호소를 세우는 것도 아니고, 이런 혜택이나 금전으로 사람들을 매수하고 그들이 하나님 집에서 꼽사리 끼어서 먹고 마시게 해 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집은 기생충, 거지를 먹여 살리는 곳도 아니고, 부랑아나 고아를 받아 주는 곳도 아니며, 밥 못 먹는 사람을 구제해 주는 곳도 아니다. 그가 밥을 못 먹는 것은 자신이 게으르고 능력이 없는 탓이니 그래도 싸다. 그건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과 관계가 없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다. 하나님 말씀을 알아듣는 사람,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얻으려는 것이지 가난한 사람, 불쌍한 사람, 멸시당하는 사람, 의지할 곳 없는 사람을 받아 주고 구제하려는 것이 아니다. 복음 전파에는 복음 전파 원칙과 기준이 있고, 복음 대상자에 대한 요구 기준이 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거지를 찾는 일이 아니다. 따라서 네가 복음 전파 사역을 자선 사업으로 생각한다면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혹은 네가 복음 전파 방면의 본분을 이행하고, 그 사역에 종사할 때 그것을 자선 사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건 더더욱 크게 잘못된 일이다. 그것은 방향 자체가 틀렸고, 출발점 자체도 틀렸다. 만약 누군가 그런 관점을 가지고 있거나 일을 처리하는 방향이 그렇다면, 얼른 관점을 수정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하나님은 지금껏 가난한 사람, 혹은 사회 밑바닥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긴 적이 없다.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최소한 하나님이 있다고 믿는 사람,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는데 하나님이 너를 긍휼히 여기겠느냐? 불가능하다. 그러니 사람은 ‘하나님은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야. 세상에서 멸시당하는 사람,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 억압받는 사람, 이 사회에서 소외된 의지할 곳 없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어 하나님 집으로 들여보내 주시지.’라고 착각하지 마라. 틀렸다! 그건 네 관념이고 상상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한 적도 없고, 그렇게 한 적도 없다. 그건 너의 일방적인 바람, 인의적인 좋은 생각에 불과하지 진리와는 관계가 없다. 보아라,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 하나님 집에 들어온 사람 중에 사회 어느 계층 사람을 막론하고 밥을 굶었다고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겨서 하나님 집으로 데려온 사람이 있더냐? 한 명도 없다. 반대로 하나님이 선택한 그 사람들은 사회 어느 계층 출신이든 관계없이 설령 농민이라 해도 밥을 굶는 자도 없고, 거지도 없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이 너를 선택했다면, 네가 하나님 선민이라면 하나님은 네가 밥을 굶거나 구걸할 만큼 가난하게 두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네가 충분히 입고 먹도록 해 줄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늘 일종의 관념을 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는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하나님 믿는 사람은 대부분 사회 밑바닥에서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고, 심지어 죄다 거지에다 구걸하는 사람들이야.’ 그런 것이냐? (아닙니다.) 심지어 내가 전에는 거지였다고 헛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마대 자루를 걸치거나 개 쫓는 막대기를 들고 다닌 적이 있었느냐? 내가 전에 거지였다고 하는데 어째서 나는 모르는 일이냐? 당사자인 나도 모른다면 그건 완전 헛소리다! 하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라고 했다. 이 말이 가리키는 바가 무엇이냐? 하나님이 거지였다는 말이냐? 하나님이 의지할 곳 없고, 밥을 굶었다는 말이냐? (아닙니다.) 아니다. 그렇다면 이 말이 무슨 뜻이냐? 이 세상, 이 인류가 하나님을 저버려서 하나님이 몸을 둘 곳이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는데도 인류가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을 접대하려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은 패괴된 인류의 추태를 가리키며, 하나님이 성육신으로 인간 세상에 와서 받은 고통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이 말을 들은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은 거지를 좋아하시는데, 우리가 거지보다 훨씬 나으니까 우리 지위가 하나님 눈에는 더 높아 보이겠군.’ 그래서 그는 거지를 도우려고 한다. 이것은 완전히 사람의 치우친 이해이고, 사람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일 뿐, 하나님의 본질, 성품, 또 하나님의 긍휼, 자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사람의 추구와 이상, 바람을 내려놓기’에서 사업을 얘기할 때 사람에게 자선 활동을 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그렇다면 왜 늘 동물을 학대하지 말고 잘 대해 주라고 하십니까? 그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 집에서도 개와 고양이를 기르고, 개와 고양이를 학대하지 못하게 하는데요.” 너희가 보기에 이것이 자선 활동과 차이가 없느냐? 이것이 같은 일이냐? (아닙니다.) 이건 어떻게 된 일이냐? (동물들을 학대하지 않는 것은 정상 인성의 구현입니다.) 정상 인성의 구현이라면, 정상 인성이 지녀야 할 실행법과 모습은 어떤 것이냐? (자신이 기르는 동물에 대해서는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 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냐? (동물을 보살펴야 합니다.) 그것이 구체적인 방법이다. 지켜야 할 원칙은 무엇이냐? 이것은 진리와 관련된다. 내가 너희에게 얘기해 볼 테니 이것이 진리와 관련되는지 잘 들어 보아라. 하나님이 만든 동물을 아끼는 것은 정상 인성의 구현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동물에 대해 책임을 다하고 잘 보살펴야 하는 것이다. 동물을 기르는 이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애완동물은 사람이 길러야 하고 보살펴야 하는 것으로, 야생 동물과는 다르다. 야생 동물은 너의 보살핌이 필요하지 않다. 네가 고의적으로 그것들의 생존 환경을 파괴한다든가 잡아 죽이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야생 동물을 최대로 존중하고, 최고로 아끼는 것이다. 사람이 집에서 기를 수 있는 가금과 가축, 또는 애완동물의 경우, 네가 기르고 있으니 당연히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러니까 네 여건에 맞게 네가 시간이 있으면 많이 챙겨 주고, 바빠서 시간이 없으면 따뜻하고 배불리 지낼 수 있게 해 주면 된다. 한마디로 말하면, 아껴 주는 것이다. 아껴 준다는 것이 어떤 것이냐? 하나님이 만든 생명을 존중하고, 하나님이 만든 생물을 아끼는 것이다. 그것들을 아껴 주고 지켜 주는 것, 이것은 자선이 아니라 바르게 대하는 것이다. 그것이 원칙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건 자선 활동이 아니다. 자선이란 무엇을 가리키느냐? 자선은 책임을 다하는 것도 아니고, 생명을 아끼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능력과 에너지의 범위를 초월해서 그 일을 일종의 사업으로 생각해 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과 무관하다. 만약 자신이 기르는 애완동물을 대할 때 최소한의 사랑도 없거나 책임도 다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런 자는 어떤 사람이냐? 인성이 있느냐? (없습니다.) 적어도 그 사람은 인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강아지나 고양이는 사람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네가 그것들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는지를 떠나, 그것들을 좋아하고 말고를 떠나 최소한 책임지고 보살펴야 한다. 제때 먹이를 주고, 학대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네 경제적 여건에 맞춰서 먹일 수 있는 만큼 먹이고,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면 그만이다. 그것들은 생존하기 위한 조건이 그리 까다롭지 않다. 네가 학대만 하지 않으면 된다. 이만한 사랑도 없는 사람이라면 인성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알 수 있다. 학대란 무엇이냐? 이유 없이 때리고 욕하는 것이다. 밥을 줘야 할 때 주지 않고, 산책시켜야 할 때 시키지 않고, 아플 때도 돌봐 주지 않고, 기분이 나쁘다고 화풀이하고, 때리고, 욕하고,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동물을 대하는 것이 바로 학대다. 네가 학대하지 않고 책임만 다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만약 책임을 다할 만큼의 사랑도 없다면 차라리 기르지 말고 당장 놓아주든가,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보내서 살길을 마련해 주도록 하여라. 어떤 사람은 개를 기르면서 학대하지 않는다는 기본조차 지키지 못한다. 그는 화풀이를 목적으로 개를 기르는데, 기분이 안 좋거나 언짢아서 감정을 발산해야 할 때 감정 쓰레기통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을 때리고 욕했다가는 후환이 생기거나 책임을 지게 될까 봐 감히 하지 못한다. 집에 애완동물로 기르는 개가 있으니 화가 나면 그 개한테 푸는 것이다. 어쨌든 개는 아무것도 모르고 반항도 못 할 테니 말이다. 이게 바로 인성이 없는 사람이다. 개나 고양이를 기르면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좋아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기르지 말고, 기르겠다면 책임을 다해야 한다. 동물들도 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부분이 있고, 감정적으로 필요로 하는 부분이 있다. 동물들도 목이 마르면 물이 필요하고, 배고프면 먹을 게 필요하다. 또 가까이에서 어루만져 줄 사람이 필요하다. 네가 기분이 좋지 않다고 해서 “너 상대해 줄 시간 없으니까 저리 가!”라고 하는 식으로 애완동물을 대하는 건 좋지 않다. 여기에 양심과 이성이 있느냐? (없습니다.) 사람들이 “도대체 고양이, 강아지 목욕을 얼마나 안 시켰길래 이렇게 더러워요?”라고 얘기하면 그는 “흥, 얘네를 왜 씻겨 줘? 나는 씻겨 줄 사람이 없는데. 난 며칠 못 씻어도 아무도 신경 써 주지 않는다고요!”라고 말하는데 이것이 인성 있고, 인정 있는 사람 입에서 나올 법한 소리냐? (아닙니다.) 주인 기분이 좋든 나쁘든 그 앞에서 얼쩡거리면서 가까워지려고 하는 고양이, 강아지를 그는 한 발로 걷어찬다. “저리 가, 귀찮게시리! 꼭 빚쟁이같이 올 때마다 좋을 일이 없단 말이야. 밥 달라는 거 아니면 물 달라는 거잖아. 너랑 놀아 줄 정신이 어딨어!” 그만한 사랑도 없다면 아예 키우지 말고 당장 풀어 줘라. 고양이, 강아지가 너 때문에 고생하니 말이다! 너는 너무 이기적이어서 애완동물을 키울 자격이 없다.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우면 물과 먹이는 네 보살핌에 기대야 한다는 이치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는데, 너는 왜 동물들과 아웅다웅하느냐? 네가 “난 씻겨 줄 사람도 없는데, 누가 날 씻겨 주나?”라고 말하는데 누가 너를 씻겨 주겠느냐? 넌 사람이니 당연히 알아서 씻고,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 고양이, 개는 네가 기르고 있기 때문에 네가 돌봐야 한다. 네가 기르고 있는 한 너에게는 그것들을 돌볼 의무가 있다. 이 의무조차 감당하지 못하겠으면 동물을 기를 자격이 없는 것인데, 굳이 아웅다웅할 필요가 있느냐? 너는 또한 “나는 널 돌보는데, 나는 누가 돌봐 주나? 너는 기분이 안 좋으면 나더러 어루만져 달라고 하는데, 내가 기분이 안 좋으면 누구한테 위로받지?”라고 하는데, 넌 사람이 아니냐? 사람은 스스로 조절하고 조정해야 하지만, 고양이나 개는 얼마나 단순하냐! 그것들은 스스로 조절할 줄 모르니까 사람이 어루만져 줘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동물을 대하는 일과 자선 활동의 차이에 관한 내용이다. 동물을 대하는 원칙은 무엇이냐? 생명을 아끼고 존중하며, 학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든 만물을 대할 때는 그것의 자연법칙을 따르고, 하나님이 만든 법칙에 따라 하나님이 만든 각종 생물을 올바르게 대하고, 각종 생물과 정당한 관계를 유지하고, 그들의 생존 환경을 파괴하지 말고, 그들의 생존 환경을 훼손해서도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생명을 존중하고 아끼는 원칙이다. 그런데 생명을 존중하고 아끼는 원칙이 자선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그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이 만든 만물의 법칙을 따라야 하는 하나의 원칙이지만, 이 원칙을 지키는 것이 자선 활동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또 이렇게 묻는다. “사업과 관련해서 하나님은 자선 활동을 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그건 왜 그런가요? 자선 활동을 하지 말라고 하시면 사회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나 생물은 어떡하나요? 누가 도와주나요?” 누가 도와주는지가 너와 상관있느냐? (상관없습니다.) 너는 인류 중 하나가 아니냐? 너와 관계가 있느냐, 없느냐? (없습니다. 그건 사람의 사명이 아닙니다.) 그렇다. 그건 네 사명도 아니고, 너에 대한 하나님의 부탁도 아니다. 네 사명은 무엇이냐? 피조물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진리를 받아들여 구원에 이르는 것이며, 하나님이 시킨 일을 하고,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는 일은 멀리하는 것이다. 자선 활동에 관계된 일은 누가 하느냐? 누가 하든 네가 관심 가질 일이 아니다. 어쨌든 너는 할 필요도 없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자선 활동을 국가가 하든, 아니면 여러 민간단체가 하든, 그것은 우리가 관심 가질 화제가 아니다. 요컨대, 하나님을 믿으며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을 준칙으로, 실행 목표와 방향으로 삼아야 한다. 이것은 사람이 깨달아야 하는 것이고, 언제나 변하지 않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물론, 이따금 남을 돕는 일은 사업이 아니라 가끔 하는 행위로, 하나님이 그것을 정죄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는다. 네가 전에 거지에게 100위안을 적선하거나, 집에 갈 차비가 없는 사람에게 돈을 주거나, 또는 집 없는 사람을 도와주는 등 어쩌다 이런 일을 했거나, 아니면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일을 여러 번 했다고 해서 하나님 눈에 이런 일이 기억할 만한 일이겠느냐?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일의 성질을 하나님은 어떻게 규정하겠느냐? 하나님은 기억도 정죄도 하지 않으며, 성질을 규정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이냐? 그것이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건 개인의 행위일 뿐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고,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과는 조금도 관계가 없다. 네가 개인적으로 하기 원해서 일시적으로 크게 선심을 쓰거나 일시적으로 양심이 발현되어 좋은 일을 했거나 혹은 일시적인 열정과 충동으로 좋은 일을 한 것일 뿐 나중에 후회가 있든 없든, 보답이 있든 없든 그 일은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하나님은 이를 기억하지도 않고, 정죄하지도 않는다.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바로 네가 이런 일을 했다고 해서 구원받는 과정에서 형벌과 심판을 면하게 해 주지는 않는다는 뜻이고, 네가 전에 좋은 일, 착한 일을 했다고 해서 파격적으로 네가 구원받은 사람이 되게 해 주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정죄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네가 한 그런 좋은 일들은 진리와 무관하다. 그것은 그저 너 개인의 좋은 행위를 뜻하고, 하나님의 행정 법령을 거스르지 않고, 또 어느 누구의 이익도 침범하지 않았을 뿐이다. 물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했다고도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요구에 어긋나지 않았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일과도 관계가 없을뿐더러 더욱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과도 관계없다. 그러니 하나님이 정죄할 정도는 아니다. 다만 개인의 좋은 행위를 뜻할 뿐이다. 비록 이런 좋은 행위는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사회에서 인정받겠지만, 하나님 눈에는 모두 진리와 무관한 일이기에 하나님은 기억도 정죄도 하지 않는다. 즉, 하나님에게는 따질 만한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가능한 상황이 한 가지 있는데, 바로 네가 한 사람을 구한 경우, 금전적인 도움이든, 물질적인 도움이든, 감정적인 도움이든 악인이 목적을 달성하게 하고, 그가 더 많은 죄를 저질러 사회나 인류에게 위협이 되고 일정한 손실을 초래하는 경우다. 그렇다면 이런 일은 얘기가 달라진다. 만약 일반적인 자선 활동이라면 하나님의 관점은 기억도 정죄도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기억하지 않고 정죄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네가 벌이는 자선 사업을 하나님이 지지하고 격려한다는 뜻은 아니다. 어쨌든 네가 자신의 에너지와 시간, 금전을 구원받는 것이나 진리 실행, 본분 이행과 전혀 무관한 일에 쓰지 않기를 바란다. 네가 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네 시간과 에너지, 네 생명은 자선 사업에 쓰라고 있는 것이 아니고, 자선 사업을 해서 너 개인의 인격적인 매력을 자랑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어떤 사람들이 공장을 열고, 학교를 세우고, 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더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받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도록 하고, 이런 방식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려는 게 목적이다. 네가 이런 식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려면 반드시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 하기에 평생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여기에 쏟아붓고 소모하게 된다. 그 때문에 너는 진리를 추구할 시간이 별로 없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고, 나아가 자신의 본분을 이행할 기회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진리와 무관하고 교회 사역과 무관한 사람과 일, 사물을 위해 네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는데, 이것은 미련한 방법이다. 이 미련한 방법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어떤 사람들이 늘 자신의 좋은 마음, 자신의 유한한 능력에 기대어 다른 사람의 운명을 바꾸고 이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고, 자신의 노력과 선한 마음을 통해 다른 사람의 운명을 바꾸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건 미련한 짓이다. 미련한 짓이라면 하지 마라. 물론, 하지 말라고 하는 전제는 네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진리를 추구하고 구원받기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네가 “저는 구원받는 일에 관심이 없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도 저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라고 한다면, 마음대로 하여라. 자선 활동을 하는 것이 네 이상이고 네가 추구하는 사람됨이라면, 네 생각에 자선 활동이 너의 사람됨의 가치를 구현하고 네 인생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다면 해도 좋다. 네가 얼마나 큰 능력과 재주를 가지고 있든, 그걸 마음껏 발휘하여라. 너를 제한할 사람은 없다. 우리가 여기서 교제하는, 자선 활동을 하지 말라는 사항은 네가 진리를 추구하고 구원받고자 한다면 자선 활동을 하고자 하는 이상과 바람을 내려놓아야지 그것을 일생의 이상과 바람으로 삼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개인적으로도 그런 일은 하지 않고, 하나님 집에서도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물론 하나님 집에서 가난한 형제자매들의 가정생활을 돌보는 상황이 있는데, 이런 건 전제가 있는 경우다. 그 전제는 다들 알고 있을 텐데, 이는 자선이 아니라 형제자매의 생활 방면에 관한 하나님 집의 내부 사역지침으로, 자선 활동과는 관계가 없다. 하나님 집에서 자선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그 어떤 자선 활동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하나님 집에서는 학교를 세우거나, 공장을 열거나, 기업을 운영하지 않는다. 교회 사역의 정상적 운영을 위해 수입원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누군가 공장이나 학교, 기업을 세우거나 어떤 상업 활동에 참여한다면, 이는 모두 하나님 집의 행정 법령을 거스르는 행위이므로 제지해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 집의 사역을 영위하기 위한 수입원은 무엇이겠느냐? 너희는 알고 있느냐? 형제자매들의 헌금, 제물을 가지고 정상적으로 사역을 운영해 나가는 것이다. 이건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나님에게 바치는 형제자매들의 헌금, 그것이 바로 제물이다. 제물의 용도는 무엇이냐? 교회 사역의 정상적인 운영을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이 정상적인 운영에는 지출 항목들이 있고, 각 지출 항목들은 원칙에 따라 집행되어야지 원칙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교회 사역이 경제 문제와 관련되는 경우 일부 리더 일꾼이 제물을 낭비해서 큰 손실을 초래하면 하나님 집에서는 그 일을 엄중히 처벌한다. 왜 엄중히 처벌하겠느냐? 어째서 제물을 낭비하는 사람은 그냥 넘어가지 않는 것이냐? (하나님의 제물은 형제자매가 하나님께 바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누리실 수 있습니다. 이런 제물은 또한 하나님 집 사역의 정상적인 운영을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리더 일꾼이 제물을 낭비하면 하나님 집 사역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손해를 입히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 집의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행위이므로 하나님 집에서 엄중히 처벌해야 합니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엄중히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으냐? (마땅합니다.) 왜 마땅하냐? 왜 엄중히 처벌해야 하느냐? (제물을 낭비하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행위에 해당합니다. 사람이 제물을 대하는 태도는 바로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사람이 제물을 낭비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다는 뜻입니다.) 너희가 말한 것도 한 가지 측면이다. 제물을 낭비하는 사람을 왜 엄중히 처벌해야 하는지, 오늘은 이 일에 관해 교제해 보기로 하자.

성경은 개역한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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